푸른 낙엽 푸른사상 소설선 50
김유경 지음 / 푸른사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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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임을 내세워 레닌이 창설한 구소련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제풀에 쓰러졌다. 민주주의 중추 세력이었던 미국의 자본주의에 패배한 것이다. 특히 공산주의는 경제 혁명임을 감안한다면 구소련 붕괴는 경제 다툼에서 스러진 것이다. 자본주의 병폐에서 벗어나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앞세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아직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 나머지 공산 세력은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 식으로 바꿔가고 있어서 살아남았다. 중국이 그렇고 쿠바, 러시아 등이 어정쩡한 경제·사회 체제로 바꾸면서 그나마 몰락은 면한 셈이다. 동유럽 국가 대부분은 이미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의 구소련 체제에서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로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는 구소련의 중심국으로 경제체제 일부를 바꿨고 선거 역시 대통령제 국민 직접 선거제로 바꾸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서방 나토 가입을 목적으로 러시아로부터 완전 탈피하고 친 서방 정책을 선언하자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기약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모양새를 바꾸며 전혀 변화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변화는커녕 오히려 더 과거 체제를 더 강화하는 모양이다. 수령제 일당 독재 정권의 유지를 위해 개혁·개방은 실패하고 북한 주민 입장에선 새 '고난의 시대'가 온 셈이다. 21세기 지구상에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역별로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이고 나머지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아시아 지역 북한이다. 경제 제제가 길어지면서 여러 문명은 물론 생필품마저 제대로 보급이 안 되니 굶어죽는 일이 발생한다. 독자가 알기로는 핵무기 때문이다. 이래서 고난의 시대 이후 수많은 탈북자가 생겼고 그 중 10분의 1 정도는 대한민국으로 왔다. 목숨을 건 탈출이다. 그 수가 대한민국 정착민만으로도 3만5,000여 명에 이른다.

 


 

코로나가 각 나라가 국경을 폐쇄한 바람에 탈북자 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나타나지만, 국내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탈북자들이 아사하느니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이젠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북한에서도 생활이 탄탄한 층에서도 가세한 점을 미뤄볼 때 언젠가는 다시 탈북 행렬은 다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탈북민들이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도 탈북민을 위한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탈북민들의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을 방송이나 인터넷 등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탈북-대한민국 정착이 꿈이 커진다. 물론 한류 바람에 영향을 받은 바도 크다고 한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민감해 TV 드라마나 음악, 영화 등을 몰래 밀반인 루트를 통해 구입해 감화된다고도 했다. 탈북민 TV 출연은 긍정적 영향을 미쳐 중국에서 떠돌던 탈북민들과의 연결로서의 역할도 했다.

모두 탈북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탈북부터 대한민국 정착까지는 브로커라는 중개인이 필요하며 대한민국 정착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방송에 나온 루트만으로도 얼마나 험난한지, 수많은 사람이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자주 방영됐다. 수천 만 원의 탈북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국경 감시가 더욱 조여들어 예전처럼 탈북자가 많지는 않은 듯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 폐쇄 후 정식으로 해제하지 않은 탓이다.

이 책 『푸른 낙엽』은 탈북민 작가가 쓴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저자 김유경 역시 탈북민으로 ‘탈북시대’ 북한 실상을 다룬 것, 탈북해서 입국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다룬 것, 입국 이후 정착해서 생기는 일을 다룬 것 등의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탈북민이 장편 소설이나 수기를 써서 책을 내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단편만을 모아 단편집을 낸 것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독자 개인의 생각이다. 단편을 쓰는 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여러 작가가 한두 편씩 발표한 것을 묶어 낸 것은 있지만 한 작가가 쓴 단편만을 모은 것은 처음인 듯싶다. 탈북 문학의 새 지평을 내는 일이 될 것이다.

 


 

독자는 그간 탈북 작가들이 낸 책을 두세 권 읽은 기억이 있는데 많은 단어들이 많이 생소하다는 느낌이었다. 또 북한의 외래어 역시 영어보다는 러시아어, 중국어나 유럽 언어의 말들이 많다. 영어가 배제되는 듯한 느낌이다. 묘사나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문예사조로 보면 사실주의, 자연주의, 낭만주의의 신경향에따른 묘사가 주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강렬한 단어의 뜻을 직접 전해야 하기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생각했다.

책 뒷 부분에 「증언에서 질문으로」란 제목의 〈작품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덕규에 따르면 지금까지 탈북민의 체험 세계라는 관점을 위주로 설명했지만 『푸른 낙엽』은 미학적 관점에서도 여러 가지 얘깃거리를 낳을 수 있는 소설집이다. 가령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그것이 던진 질문을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명제와 관련해 『푸른 낙엽』이 창출한 캐릭터를 주목할 수 있다. 탈북민 소설에서 탈북의 실제 경험을 수행하는 인물을 설정하는 일은 실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정 선생, 쏘리」의 ‘정’, 「푸른 낙엽」의 ‘미선’, 「밥」의 ‘순녀’ 같은 인물이 탈북 시대의 탈북민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그로부터 보다 창조적 전형의 자리에 「사생아」의 ‘경수’, 「붉은 낙인」의 ‘진미’ 같은 미성숙한 인물이 놓인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평양 손님」에서 체제에 비순응으로 맞서는 허수혁, 「자유인」에서 엘리트 탈북민의 지위를 버리고 무위도식하는 삶을 지향하는 ‘자유인’ 등 전에 없이 질문거리를 안기는 문제적 캐릭터들이 탈북민 문학을 한국문학사에 내적 지위로 자리매김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는 또 "탈북민의 문학은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자전 고발 성격이 강했다"며 "이젠 탈북 과정뿐만 아니라 정착 과정에서 겪는 고충을 단편에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탈북민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탈북민 작가 김유경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삶과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한국 사회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탈북민들의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체제의 폭력 아래 부서지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비롯해, 탈북 이후 남한에 정착하면서 마주하는 극한의 상황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남과 북, 상반되는 두 제도를 체험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이념과 고통의 무게에 가려져 있던 탈북자들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같은 뿌리를 가진 한민족의 이해와 화합의 장을 여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평양 손님」에서는 한때 주목받는 물리학 박사로 성장하다가 연좌제로 인해 변방으로 숙청된 자, 「사생아」에서는 인민을 수령에 충성하도록 만든 북한 체제로부터 세뇌되어 ‘시대가 빚어놓은 사생아’가 되어버린 인물을 통해 탈출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비인간적인 사회 체제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국경을 넘은 후에도 한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남한 사회에서 정착하는 일이다. 「장첸 씨 아내」에선 낯선 곳에서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하다가 몰래 도망치거나, 「정 선생, 쏘리」에서는 인신매매로 참담한 일을 당하기도 하는 등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는다. 「붉은 낙인」은 북에 둔 가족을 빼내오는 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표제작인 「푸른 낙엽」에서는 중국 노래방에 예속된 한 탈북 여성이 자신의 탈출을 도와준 남자를 버리면서까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탈북민들은 갑작스러운 한파에 단풍으로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땅에 마주한 푸른 낙엽과도 같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때 이르게 땅에 팽개쳐진 낙엽을 닮은 탈북민들은 북한이라는 나무에서 거센 폭풍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졌기에 은유한 것이다. 기본권을 박탈당한 북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끝내 한국으로 입국했지만, 신분 없는 유민으로서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동안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어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탈북민을 다문화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언어도 문화도 뿌리도 같은 한민족이다. 다만 남과 북, 상반되는 두 제도를 삶으로 경험한 사람들일 뿐이다. 더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탈북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같은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북한 사람들의 큰 관심사라고 한다. 한류를 통해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목숨 걸고 한국 영화를 보고 문화를 따르려 한다. 동경은 곧 희망이다. 탈북민의 삶이 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 대한 탈북민의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각성은 남다르다. 나 자신이 그러하니까. 한반도의 절반 땅에나마 자유롭고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이로움이 짝사랑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탈북민의 애환을, 이해와 화합의 바람을 그리고 희망을 소설에 담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앞서 언급한 박덕규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에서 "탈북은 살아남았으되 완성이 아닌 과정"이라는 말로 '푸른 낙엽'의 현주소를 밝힌다. 탈북 결정이나 과정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의 난관이지만, 대한민국 정착 또한 만만치 않은 살아남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보여지지만 통제 시스템의 고리 안에서 기본권을 박탈당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수령지상주의에 세뇌된 일상을 사는 북한 주민의 실상은 지엽적일수록 구체적이고, 구체적이니만큼 충격적이다. 탈북은 그들 사이에 거의 본능적으로 촉발된 행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탈북으로 끝이 아닌 데 있다. 박덕규는 탈북은 '기본권 없는 인민'에서 '신분 없는 유민'을 거쳐 '상처 많은 실향민'으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 죽거나 실종되거나 잡혀 가거나 갇혀 있거나 묻혀 살아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인물들은 탈북에 가까스로 성공해도 막상 정착의 어려움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생각에 담아놓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살아남기 경쟁이 기다린다. 탈북민들에게는 '산 너머 산'이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살아온 만큼 치열하게,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것임을 인식하고 기꺼이 끼어들어 이겨내길 진심으로 독자는 바란다.

 


 

“진미야, 걱정 마. 보위부 감시망에서 벗어났어. 여기는 안전해. 보위원하고 통화하던 전화기는 그 방에 버리고 왔어. 그래야 널 찾지 못하니까. 안심해.”

진미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늙은이처럼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진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며 눈물을 밀어냈다. 도르르 눈물이 굴러가는 흰 볼이 창백하게 반들거렸다.

“언니야, 난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해. 언니하고 같이.”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긴 보위원이 포위하고 있는 위험한 곳이야.”

“아니야. 보위원 동지는 언니를 구원하려고 왔어. 언니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가려고 나와 함께 왔어. 남조선 괴뢰들로부터 언니를 구원하려고. 지금 애타게 나를 찾고 있을 거야. 어쩌면 나까지 조국을 배반한 줄로 오해할지 몰라. 어서 그 집으로 가야 해!”(p.253)

- 「붉은 낙인」 중에서

 

저자 : 김유경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에 남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 때문에 실명과 과거 행적을 숨긴 채 살아가야 하지만, 작가로서의 의무를 포기할 수 없어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청춘 연가』 『인간 모독소』가 있다. 『인간 모독소』는 Le camp de l’humiliation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 번역 출판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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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of HOPE - 새로운 세계로부터
오태석.전다형.박민초 지음 / 꽃씨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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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해외자원봉사 활동을 마친 3명의 저자가 캄보디아의 아이들에게 미술과 사진을 가르쳐준 활동보고서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피사체는 자연"이라는 말은 독자들에게 사진예술을 이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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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of HOPE - 새로운 세계로부터
오태석.전다형.박민초 지음 / 꽃씨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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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EYES of HOPE : 새로운 세계로부터』은 해외 자원봉사 청년들의 귀국 보고서 성격의 사진첩이다. 저자 오태석, 전다형, 박민초 등 청년들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봉사단 일원으로 캄보디아에서 어린이 교육, 특히 '미술'과 '사진'을 가르쳤다. 저자 3인은 그들이 어렸을 때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카메라를 접하고 배워 대학을 다니고, 성인이 되어 캄보디아에 봉사단원을 자원, 더욱 의미가 깊다. KOICA는 개발도상국의 빈곤감소 및 삶의 질 향상, 여성, 아동, 장애인, 청소년의 인권향상, 성평등 실현, 지속가능한 발전 및 인도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해외봉사단체다. 협력대상국과의 경제 협력 및 우호협력관계 증진,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어 민간 차원의 외교를 하는 셈이다. 이들 저자는 캄보디아에서 그곳의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며 나눔의 선순환의 가치를 높였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들은 자신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카메라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대부분이 캄보디아 봉사 현장 사진으로 이루어진 이 포토에세이에서 꽤 긴 분량의 프롤로그(PROLOGUE : TAESEOK, OH)의 부분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저자 3명이 각각의 프롤로그를 썼지만 첫 번째 프롤로그이어서인지 해외자원봉사 지원 동기와 과정, 현장 모습 등을 비교적 전혀 수식 없이 담담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가 터지고 유야무야 졸업을 하자마자 무엇을 할지 모르는 차에 좋은 기회로 알게 되어 코이카 YP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되었다. 원래 비영리 쪽 분야에 관심은 있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7개월 인턴십을 경험하면서 비영리 NGO 생테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으며 YP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도중 코이카에서 해외 봉사단 파견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도에서만 보던 개발도상국이란 나라들에 직접 몸과 마음을 담아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두려우면서도 막연한 궁금증이 생겼다.

 


 

저자 오태석은 지원 후 과연 1년 봉사활동이 나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해외 출국이 자유롭지 못하던 지난 2년 동안 내적으로 쌓여왔던 출국에 대한 갈망이 적지 않았고, 해외 봉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설레는 마음을 적고 있다. 다음 문장으로 우리 나라 청년들의 불안의 단초를 챙겨 들을 수 있다. "하지만 1년 여 시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나의 청춘을 보내게 되면 혹시나 주변 친구들의 행보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이럴 때 '청춘은 기지개를 켠다'.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생각을 계속하면 나중에 정말 불안해서 하고 싶던 일을 못하게 한다. 그래서 청춘이니까 한다는 생각 말이다. 저자 오태석의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긍정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이 모든 걱정들과 우려는 상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다. 무엇이든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아닌가. 직접 가서 겪고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고민들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청년의 패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수많은 번복과 고민을 했지만 봉사활동을 결심한 것이다. 문득 떠오른 17세 고등학교 때, 10년 후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막연히 미래를 상상해서 적었던 수업 시간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저자는 개발도상국에 가서 봉사활동을 1년 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별 생각 없이 상상했던 자신의 모습을 10년 후 일치하는 모습이 떠오른 듯하다.

저자는 캄보디아에 가기 전 캄보디아가 어디에 위치했는지도 몰랐고, 무슨 언어를 쓰는지도 몰랐던 저자가 이 나라는 자신의 청춘의 일부를 채워주는 나라가 되었다. 꿈과 희망은 청춘의 특혜다. 청춘에게만 꿈과 희망이 오롯이 주어진다. 청춘이 지나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현인들은 꿈과 희망을 잔뜩 갖고 그 길로 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늘 조언하지 않던가. 개인적인 꿈과 희망이지만 나라에서도 그들은 꿈과 희망이다.

 


 

저자는 캄보디아에 내렸을 때의 첫 느낌도 여기에 적었다. 상상했던 더위보다 무척 더웠다. 습도가 높은 탓이리라. 한 달 가량은 고온다습한 기후에 적응하느라 애 좀 먹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더욱이 더위에 굉장히 약한 체질의 저자로서는 8개월 간의 생존이 걱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한의 환경 속에서 적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은 있다는 연구 학자들의 말에 힘을 내면서 봉사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생존능력이 훌륭하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도인 프놈펜에서 4시간 가량 떨어진 〈뽀샷〉에서 활동했다. 캄보디아에서는 네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우리나라 읍내와 같은 정겨운 분위기라고 전한다. 이곳에서 사진과 미술 선생으로 방과 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훌륭하게 끝냈다.

이곳의 아이들(10~13세)에게 미술과 사진을 가르치는데 언어가 가장 문제였을 것이다. 처음엔 주로 눈빛과 이미지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엔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소통을 하며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처음 대면했을 때 무척 신기해 했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휴대폰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당연히 사진을 보고 찍는 행위를 낯설고 신선하다고 느꼈을 아이들이다. 사진 수업을 한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마을 이곳저곳 다양한 곳에 갈 수 있었고, 저자로서는 캄보디아를 속속들이 알게 된 계기이고, 아이들에게는 같은 핑계로 소풍을 다닌 셈이다. 차량으로 이동할 때 차문을 여는 법도 모르는 아이들이 멀미에 시달릴 때 안타까운 심정과 심지어는 안 간다고 떼를 쓴 아이들마저 한없이 맑은 눈빛을 읽어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터, 아이들의 티없는 모습이 이 책의 사진에 잘 잡혀 있다.

 


 

저자 전다형은 「기억이라는 선생님」이란 제목으로 이 책에 사진 기록을 담았다. 주로 풍경과 집 구조나 주변 환경 등을 사진에 담아냈지만 '조용한 나라 캄보디아'를 표현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더위를 머금은 듯한 수목, 집과 인공 설치물들이지만 무척 자연스러운 모습이 주위 풍경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커다란 슬픔을 갖고 있는 나라이고 사람들이지만 그 기억들이 아직 남아서인지 톡톡 튀는 활동적인 모습을 애써 담지 않은 것은 저자의 의도적 사진을 짐작케 한다. 그래도 별장과 같은 번듯한 가옥과 자연 웅덩이에 물이 가득한 정원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다. 역시 저자의 의도가 풍긴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의 유물은 방치된 듯 폐허로 변해가는 모습엔 안타까운 저자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지만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숲속에 버려진 노란 샌들이 과거의 한 장면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독자의 오버센스일까? 캄보디아라는 점을 강조하듯 고유 토종 키큰 나무를 아래에서 윗쪽으로 카메라 시건을 두어 하늘이 배경이 된 사진들은 너도나도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듯한 끈질기게 뻗어오르는 캄보디아인의 기상을 닮았다.

저자 박민초는 캄보디아 봉사활동은 '사적 호기심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되었다고 언급한다. 학창 시절 매년 국내에서 봉사활동을 했었기에 해외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후회로 남았음을 말하고 혹시 해외봉사 활동을 가려는 이들에게 주의 사항부터 건넨다. "계획했던 모든 것은 바뀌었고,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초등학교 전 학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철저하지 못한 사전 준비에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후회감을 나타낸다. 짧은 시간에 영어와 크메르어 두 가지 언어를 하기는 쉽지 않을 터, 고초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들은 이미 안다는 듯 언제나 웃으며 반겨주었다고 한다.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 등을 얻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아이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후회를 남겼다.

 


 

이들 3명의 저자들은 캄보디아 봉사활동에 대한 소감을 하나같이 "가서 나누어준 것보다 받고 배운 것이 많아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피력했다. 이 책의 뒷 부분에 저자들이 활동한 하비에르 국제학교의 아동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따로 묶었다. 사진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훌륭한 예술품이다. 저자들은 "하비에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피사체는 자연이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꽃을 친구 삼아 사진을 찍고, 사진 한 장 한 장 초록빛을 담는다는 저자들의 말에서 사진 예술의 한 부분을 이해하게 해준다. 사진은 피사체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몰아일체物我一體)'일 때 가장 좋은 작품이 된다는 교훈 말이다. 저자들은 책 마지막 부분에 셀로판지를 통과한 세상이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비춰진 사진을 설명하면서 "평범했던 풍경이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는 모습이 마치 피어오르는 아이들의 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저자들의 봉사활동과 아이들의 마음이 한마음으로 될 때 아이들의 꿈은 점점 무르익어갈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TAESEOK, OH(오태석)

나의 두 번째 유년 : 캄보디아 뽀삿

 

DAHYUNG, JEON(전다형)

기억이라는 선생님 : 하비에르

 

MINCHO, PARK(박민초)

마음에 더하는 색 : 하비에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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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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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부님과 시인 스님의 예술로 어우러짐은 우리 문화의 격을 높이고, 맑고 순수한 영혼의 교감은 사회적으로도 선하고 큰 영향을 준다. 이 책은 이들의 만남과 기쁨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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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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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화합이라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종교라는 게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바꾼다는 일이 쉽지 않으리란 추측은 쉽게 할 수는 있다. 더욱이 종교에 따라서는 자신 이외의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율도 있으니 타 종교와의 화합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종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계율이 타 종교와의 화합을 막기 위해 전해오지는 않았을 듯하다. 더욱이 인류의 삶을 이끌어온 위대한 종교들을 나쁘다고 말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는 버리지 않더라도 타 종교인들을 배척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뿌리는 같다고 들었는데 무려 1,500년 가까운 세월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고... 죽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으니 종교가 인간들의 삶을 평화롭게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 맞나 싶기도 하다. 비종교인인 독자가 보기에는 서로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러서야 바람직한 믿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는 가톨릭 신부와 불교의 스님이 예술로 화합하고 교감하는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만남을 엮은 책이다. 그림 그리는 김인중 신부와 시 쓰는 원경 스님이 시화집을 냈다. 이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로서는 하나됨을 보여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 김인중 신부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서양 특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이미 세계적 예술가로 탄탄한 명성을 쌓고 특별한 이력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수상과 이력을 쌓은 분이다. 원경 스님 역시 출가 후 조그마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중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예술하는 사람이나 해당 종교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분들이라 하니 독자의 예술과 종교에 대한 부족함을 탓해야 할 것 같다.

 


 

독자가 짧은 지식으로 '시화집'으로 표현했지만, 이미 화중시 시중화(畵中詩 詩中畵)라고 예부터 전해오는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이다. 동서고금의 많은 선인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는’ 시와 그림의 일체를 찬양했다고 한다. 문학과 미술로 나뉘어졌지만 당초 이는 예술이라는 한 가지에서 태어나 다른 줄기로 뻗어간 차이일 뿐 뿌리나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적 측면에서는 서로 보완해주는 성격도 강하다. 예술가의 예술관이 서로 같다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예술 작품의 가치를 높일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읽다보면 예술이라는 게 인간이 편의상 나눈 것일 뿐 뿌리가 같다는 게 저절로 이해된다. 예술의 다른 장르가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의 크기도 더욱 증폭될 것이란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서로 보완해주고 상승 작용을 일으켜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에 따르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인 김인중 신부와 승려 시인 원경 스님이 종교 간의 화합과 사상적 융합으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 시대 속에서 자애의 덕목을 구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김인중 신부는 ‘꽃의 시인’ 원경 스님의 시 세계에 깊이 공감했고, 원경 스님은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구도자적 삶에 존경과 섬김으로 그림 곁에서 마음의 시를 썼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히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찬사가 담겨 있다. 김인중 신부와의 자매적 우정이 담겨 있는 글이 곱기만 하다. 도종환 시인의 원경 스님을 향한 찬사도 아름답다.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추천의 글을 통해 “매우 희귀하며 아름다운 책이다. 종교, 예술, 출판의 영역을 떠나 우리 시대의 큰 자산이라 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김인중 신부는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일찍이 국전과 민전을 휩쓸었으나 돌연 유럽으로 건너가 사제의 길을 걸었으며, 유럽에서는 사제였음에도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피카소와 세라믹 작품을 공동으로 전시할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귀국해 돌연 카이스트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그의 이력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 건축물인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해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설치된 성당과 일반 건물은 전 세계 45곳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예술가로서도 대단한 이름을 알렸다. 프랑스 혁명 이후 어떠한 전시회도 열리지 않았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품을 거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또한 그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납선을 이용해 모자이크 방식으로 유리 조각을 이어가는 게 일반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방식인 데 반해, 그는 붓과 큰 나이프 등으로 판유리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780도로 구워낸다.

그의 작품은 비구상(그의 표현대로라면 추상화)이다. 존재의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영혼을 달래는 데 의미가 있으며,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해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므로 비가시적인 신비의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다. 개별 작품의 제목은 없다. ‘무제(無題)’가 제목일 순 있겠다. 자신의 작품은 가슴에 선뜻 다가오는 아름다운 노래처럼 어떠한 주장도 표방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봉헌일 뿐이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글을 썼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2018년 타계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며 미술사학자인 웬디 베케트 수녀는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들의 예술은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드니 쿠타뉴(Denis Coutagne)는 김인중과 세잔, 마티스, 피카소를 비교한 저서 『Kim En Joong artista della luce』에서, “김인중의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독보적인 조형세계는 다른 거장 화가들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세잔, 피카소를 잇는 빛의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그의 작품을 실물로 접한 원경 스님은 “상승하는 불꽃처럼 일렁이고 산곡에 내려앉은 새벽안개처럼 고요히 스미는가 하면 풀꽃을 건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오묘하고 섬세한 선율을 보여준다. 때론 장엄하고, 때론 숭고하며, 때론 온화하다. 언뜻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의 시구처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 뭇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했다.

‘빛’이 김인중 신부와 가까이 있는 언어라면 ‘꽃’은 원경 스님이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다. 2021년에 출간한 시집의 제목이 『그대, 꽃처럼』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시편 곳곳에는 꽃이 피어나고 스러진다. 이에 대해 김인중 신부는 “경직된 남성들 사회에서 꽃이 화두에 오르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으니 스님은 ‘꽃의 대부’라고 생각하며, 그것만으로도 단순하고 깊은 시봉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인 것은 여러모로 합당하다 하겠다.

이 책에 수록하고 있는 원경 스님의 시편들은 대부분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대하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영감을 포착해 쓴 것이라고 한다. 팔순이 넘도록 고독과 고난의 수행을 이어온 수행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화장세계(華藏世界)를 가슴에 품고 있는 그이기에 종교의 구분 따위는 한갓 실오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원경 스님의 시편들에는 꽃향 못지않게 그윽한 차향이 번진다. “지극한 차 맛과 참사람은 서로의 성품이 닮아있다. 찻잎의 푸른 생기를 좋아하여 그 싱그러움을 닮게 되고, 물의 맑은 기운을 좋아하게 되어 청정함을 닮게 되며, 천연의 맛을 우려내는 중도를 깨닫게 되니 그러는 사이 어느덧 거친 악취미의 경향은 자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차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도종환 시인은 해설에서 “원경 스님에게는 차와 도가 둘이 아닙니다. 차를 마시는 일 그 자체가 도를 알아가는 일입니다”라고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그대 입김으로

나의 가슴에 숨결을 주오

 

천지의 바람으로도

가슴은 숨가빠 하나니

(중략)

그대여

바라옵건대

나의 천지가 되어

숨결을 주오

- 「그대 나에게 숨결을 주오」 부분

 


 

그대는

빛의 혼을 그리는데

 

그리움 그리움 그리다 그리다

화룡점정에 이르러

쓰러져 잠드시리

 

잠 못 드는 한밤의 꿈을 꾸다가

새벽에 드는 비울음처럼

그리 쓰러져 울다 잠들면

 

바람도 쓰다듬듯 달래며

새날을 맞으리

- 「혼빛」 전문

 


 

저자 : 김인중

 

1940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프리부르(Fribourg)대학교와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62년 국전에서 특선을, 1965년 제1회 민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파리 장 푸르니에(Jean Fournier) 화랑의 개인전 이후 전 세계에서 200여 회의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1974년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줄곧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다가 2022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카이스트(KAIST) 초빙석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훈 훈장인 오피시에(Legion d'Honneur Officier)를 수훈했으며, 2021년 12월 스위스 유력언론 르 마탱(Le Matin)은 김인중을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선정하고,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를 뛰어넘는 화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됐으며, 프랑스 중부 도시인 앙베르에 시립 ‘김인중미술관’이, 이수아르시에 ‘김인중 상설전시관’이 설립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개최했으며,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해 독일과 이탈리아·스위스 등 전 세계 45개소에 작품이 설치돼 있다. 세계적인 미술사가 웬디 베케트 수녀는 “만일 천사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의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드니 쿠타뉴는 김인중을 “세잔, 피카소를 잇는 빛의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2001년 KBS는 다큐인사이트 ‘천사의 시’ 편을 통해 김인중 신부의 삶을 소개했다.

 

저자 : 원경

 

어려서부터 사유적 성향이 짙어 ‘투쟁 없는 사랑과 자유의 삶’이 무엇인가 의문을 품다가 1982년에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1984년 조계총림 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득도, 전통적 교육기관인 강원에서 사집을 수학했다. 1987년에 범어사에서 일타 대화상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선방 수행 후 제방 선원에서 성만했다. 1990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LA 고려사 주지를 지냈으며 현재 북한산 심곡암 주지를 맡고 있다. 조계종 15대 중앙종회의원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중앙승가대학 법인 처장을, 최근에는 조계종 사회부장직을 역임했다.

‘불심, 자연, 예술이 하나’ 되는 염원을 담은 산사음악회를 전국 사찰 최초로 시작해 새로운 문화적 반향을 일으켰다.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을 해소해주기 위해 보리 스님이 21년 동안 운영해오던 탑골공원 무료급식소가 중단될 위기를 맞자 그 맥을 이어받아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사회복지원각(원각사 무료급식소)을 운영 중이다.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다’는 슬로건 아래 연중무휴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외된 노인 계층을 위한 점심 한끼 봉사를 하고 있다. 시집 『그대, 꽃처럼』을 통해 문인협회 회원으로 등단하였으며, 산문집 『그대 진실로 행복을 원한다면 소중한 것부터 하세요』와 『밥 한술 온기 한술』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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