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수명 시네마
노유정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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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기대 수명 시네마』의 표제어는 장르소설 작가답게 새롭게 만든 저자 노유정의 신조어다. 고유명사인 듯하지만 직업 종류의 하나인 보통 명사로 쓰인다. 영화의 종류를 가르키는 말로서 쓰이기도 한다. 업종의 탄생과 임종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영화이고, 직업이다. 작중 주인공 송세린은 11년 차 무명 배우다. 학연, 지연도 없고,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극단에 들어갔지만, 11년째 극단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서본 경험이 없다. 타고난 재능은 자타가 인정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항상 캐스팅에서 주요 배역을 낙점받지 못한다. 11년째 극단 밑바닥 생활로 송세린은 연기가 아닌 연출이 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다.

'기대 수명 시네마'에서는 기대 수명이 궁금한 이에게는 기대 수명을 알려주고, 직업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JOB 콘서트'를 통하여 직업의 세계를 보여준다. 시네마를 관할하는 점장에게는 고민거리 한 가지가 있다. 기대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행방불명된 직업인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일명 ‘재연 배우’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송세린을 만나게 된다. ‘무명의 배우 지망생이 기대 수명 시네마의 입구를 통과했다고? 초대받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인 이곳에?’ 말은 냉정했지만,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졌다. 적임자가 나타난 걸까? 하는 기대감도 갖는다. 직업 수명 ‘0’년의 배우 지망생 송세린은 ‘기대 수명 시네마’에서 자신의 ‘진짜’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11년 차 배우 지망생 송세린은 사실 딱히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주위에서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며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여전히 진로에 대한 확신 없이 극단에 들어간다. 결국, 자신에게 내정되었던 역할을 친한 후배에게 빼앗기게 되고, 홧김에 극단을 박차고 나온 세린은 우연히 '기대 수명 시네마'를 발견한다. 환영인 듯 축축하고 안개 같은 분위기다. 오랜 대학로 생활을 하면서도 처음 본 극장이고 분위기다. 세린은 혼자 "나······ 혹시 죽었나?'라고 되뇌인다.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어디까지가 이승이었고 어디서부터가 사후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다행이란 심정이다. 지금 이 순간이 이생이라면 마이너스통장에 신용도 제로인 본인에게 기물를 파손한 상해죄를 크게 물었을 테니 말이다. 세린은 시네마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에 들어가 송마호를 만난다. 송마호는 이곳의 관리인이다. 송마호를 통해 점장을 만나게 된다. 간단한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지고 점장은 세린에게 카드 한 장을 꺼내 책상 위로 뒤집어 올린다. "한 번 확인해 봐."

세린은 황급히 바지에 손을 문질러 땀을 닦아낸다. 건조해진 손은 책상 밑에서 올라와 카드를 집어 들었다. 방금 발급된 것인지 미적지근한 열기가 남아 있다. 세린은 카드를 뒤집었다. '배우 송세린: 기대 수명 0년'

"이게 뭐예요?"

세린의 질문에 적막이 흘렀다. 점장 대신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마호가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직업의 기대 수명이에요. 세린 님의 직업 기대 수명이요."(p.36)

 


 

세린이 받아든 카드에는 일말의 기대와는 달리 배우로서의 직업 기대 수명이 ‘0’년이다. 세린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조감에 젖어든다. 세린은 항의하듯 점장에게 따져 묻는다. "저기요! 하······ 왜 저는 배우로서의 기대 수명이 0년이죠?" 욱하는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뿜어졌다.

"뻔한 걸 왜 물어봐? 재능이 없는데 무턱대고 맞지 않는 옷을 꾸역꾸역 입으려고 애만 쓰고 있으니까. 물론, 이유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넌 네가 생각한 배우는 될 수 없을 거야. 자, 그럼 이제 어느 정도 궁금증도 해결된 것 같고, 그만 가봐, 늦었네."

무례한 점장의 말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 세린은 오히려 오기가 불타오른다. 시네마 직원 손에 들린 ‘재연 배우 모집 공고’ 포스터를 보고 실력을 증명하겠다는 포부를 내던진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세린은 6개월 계약직 재연 배우로 시네마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서서히 기대 수명 시네마와 산하단체 직원들과 함께 교류하며 합을 맞춰나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곳 기대 수명 시네마는 직업 데이터 센터와 영화 제작사도 갖고 있다. 시네마에서 총체적으로 직업을 관리한다면, 직업 데이터 센터는 매년 직업의 트렌드와 직업 기대 수명 측정에 유용한 자료수집에 관련된 업무가 진행되는 곳이다. 영화 제작사는 기대 수명 시네마가 가진 직업 DNA 정보를 검수하고 편집하여 영화화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는 곳이다.

시네마에서 세린의 주 업무는 자신의 직업 기대 수명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을 대신해서 기대 수명이 사라진 이유를 찾아 직업의 서사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른바 실제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는 '재연 배우' 역할이다. 다양한 직업인들이 기대 수명 시네마를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다짐을 다지는 것을 보고 세린은 시네마 재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저자 노유종은 이 책의 두 번째 사건을 한 학교에서 벌어진 학생 실종 사건을 다룬다. 책의 두 번째 장(章)의 제목은 「사라진 학생」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유진은 특성화 학교 교사다. 유진은 입시 수험생 시절부터 교사가 꿈이었고, 피나게 노력해 원하던 교사가 되어 12년째이다. 학생 한 명이 갑자기 사라진다. *이름: 이소민, *반: 그래픽디자인 반 *진로 및 특기: 없음 -1학년: 애니메이션 디자이너란 파일 속 내용의 학생이다. 2학년인 현재 *진로 및 특기란은 비어 있다. 그러다가 한 학기, 아니 몇 달 새 180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진은 소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교과목 세부 특기란을 찬찬히 살피던 중 1학년 2학기 그래픽 애니메이션 과목에 대한 평가가 눈에 띄었다.

"스토리텔링과 일러스트 그래픽 구현에 우수한 감각이 있음. 자율 애니메이션 기회 및 제작 실습 시간에 애니메이션 〈블루문 베타〉를 제작함. 소외되어 마땅한 비주류의 존재와 사라져가는 전통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 감동적인 스토리로 끌어냄. 특히 수중도시 그래픽과 질감 구현이 수준급임."

유진은 '소외되어 마땅한', '비주류', '사라져가는'에 샛노란 형광펜을 치며 생각에 잠겼다.(p.55)

2장의 이 부분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체 책의 일부 기능을 한다. 역시 가상 공간이다. 상상력 속의 세상에서의 일이다. 마치 현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상상력으로 재연되고 있는 점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상 특징이고, 다양한 얘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끼워넣음으로써 전체의 줄거리에 기여를 하는 스타일의 구성 능력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세린이 눈을 떴을 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손을을 펴자 카드엔 햇빛을 닮은 황금색이 담겨 있었다. 색의 이름은 'Daylight'.

"세린 님!"

상영관을 나오자 누군가 경쾌한 목소리로 세린을 불렀다. 마호였다.

"소민 학생이 가장 간절하게 기다려 온 말을 세린 님이 건네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마호의 칭찬에 세린의 기분은 훨씬 가벼워졌다. 두 사람은 대화 중 앞서 가던 점장이 말한다.

"너는 본체의 인생에 잠깐 스며드는 역할이니까. 그리고 이소민의 앞날은 교사 한유진과 학생 이소민의 몫이지. 분명한 건 네 덕분에 이소민 학생의 미래가 달라졌을 수도 있고."

세린은 점장의 시선을 따라 함 쪽을 바라봤다. 명패는 '인문계 영어 교사 한유진'에서 '교사 한유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교사 한유진이요?"

"자기 업의 본질을 깨달은 거야. 희미해서 지나칠 수도 있는 빛을 감지하는 눈을 갖기 시작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교사 한유진의 카드를 확인하자 기대 수명도 바뀌어 있었다. '기대 수명 38년'

 


 

독자는 저자의 구성 솜씨에 감탄한다. 어릴 때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착한 일을 하는 만화를 많이 보던 생각이 난다. 그때 독자의 꿈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어릴 때 만화를 보고 잠시 했던 공상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실감 나게 이야기를 구성한 이 책의 매력을 듬뿍 맛볼 수 있다. 좋은 일은 상대를 직접 마주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배역으로서 당시 현실에 맞게 대역을 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이 책은 10여 편의 에피소드가 각각 독립적이면서 하나의 스토리로 귀결되는 연작 소설 형식을 띠고 있다. 자칫 주제에 어긋나거나 팔방미인의 히로어(영웅)가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통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위험을 당초에 막는 구성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이 소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또 가상 공간인데도 현실처럼 생생하게 재연해내는 일을 오래된 재연 배우가 맡아 가능하게 했다는 저자의 구상에도 감탄한다.

이 책은 무명의 배우 지망생과 각자의 이유로 갈등과 위기를 겪는 직업인들이 자신의 업의 의미와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이다. ‘번아웃이 찾아온 최고 벤처기업의 CEO’ ‘앞만 보고 달려가던 고등학생’ ‘꿈에 그리던 순간을 맞이한 파티쉐’ ‘엄마’ 등 다양한 직업인들의 에피소드와 함께, 점장이 숨기고 싶어 하는 시네마의 비밀을 함께 밝혀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흥미거라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노유정

 

‘이로운 언어를 널리’라는 소명으로 활자를 대한다. 단어 하나가 바꾸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반해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포용의 언어를 배웠다. 다중전공인 영상학부에서 언어의 시각화를 익혔고, 졸업 후 IT분야에서 일하며 수치화된 언어의 효용을 깨달았다. 여전히 낯선 언어를 배우는 일이 즐겁다. 혼자만 곱씹기 아쉬웠던 온화한 문장들을 나누고 싶어 글을 썼고, 《기대 수명 시네마》를 펴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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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리노블 1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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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불안의 틈을 파고드는 유혹의 손짓, 범인과 아이들의 흔적을 지운 신도시 ‘드림힐’. 꿈에 그리던 아파트가 꿈에 볼까 무서운 아파트로 변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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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리노블 1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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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금 1억 원에 달하는 공모전이 있다는 것은 '장르문학'이 최근 소설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장르문학은 SF소설의 대세를 평가하고 있다. 공모전 대상 수상은 작가 지망생에게는 문단 데뷔라는 꿈의 실현이 이루어진다. 대상 수상작인 마태 작가의 『습기』가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으로 동시 출간됐다. 이번 〈장르문학 IP 공모전: 리노블 시즌1〉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해피북스투유’가 국내 NO.1 웹툰 제작사 ‘투유드림’, ‘CJ ENM’, ‘밀리의 서재’와 공동으로 주최한 국내 최대 규모 장르문학 공모전이다. 주최사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수한 IP를 발굴하여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웹툰, 영상으로 이어지는 콘텐츠 벨류 체인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책 『습기』는 이번 공모전 대상작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과의 추격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심리 싸움 등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주요 배경을 대단지 아파트로 설정한 것과 밤 시간 아닌 낮 시간을 택한 것, 사람이 많이 밀집한 열린 공간에서 사건을 전개시키는 대담함으로 기존 장르소설과의 차별점을 두었다. 심사위원 이미예 소설가(『달러구트 꿈 백화점』) 역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캐릭터, 영리하게 숨어있다가 등장하는 소설적 장치들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고 평가하며, “클라이맥스 이후에도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게끔 탄탄하게 쌓아 올린 구조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번 ‘리노블 시즌1’ 대상 수상작인 『습기』는 공동주최사와 협업을 통해 웹툰과 영상, 오디오 드라마 등으로 다양한 매체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작가 '마태'의 건필을 기대하게 한다.

 


 

앞서 심사위원이 극찬한 것처럼 소설의 발단은 우리의 일상이 주무대다. 등장인물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설정으로 흥미와 공포, 신비감과 미스터리 소설을 이끌어간 저자 마태의 글솜씨가 탁월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기적과도 같은 청약 당첨으로 신도시 신축 대단지 아파트인 ‘드림힐’에 입주하게 된 워킹맘 미연은 소설의 주인공이자 평범한 우리 이웃의 '아줌마' 같은 성격이다. 소설로서는 어쩌면 주인공의 성격으로서는 어딘가 못 미더운 결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축 아파트 당첨의 기적을 이룬 미연은 기자인 남편 정우와 초등학생인 아들 지호와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꾸며 ‘드림힐’로 이사한다. 본격적인 신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미연은 한 시간 이상 더 걸리는 출근 시간과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지호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시댁의 지나친 간섭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미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고, 거기서 만난 지호의 같은 반 친구 학부모인 영희엄마와 인사를 나눈다. 바로 위층인 1402호에 산다며 지나치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영희엄마에게 미연은 거부감을 느끼지만, 미연의 퇴근이 늦을 때마다 지호를 돌봐주는 영희엄마에게 점점 의지하게 된다.

미연은 새 집 마련 축하를 겸한 회식 때, 동료들이 ‘드림힐’ 인근에서 연속적인 아동 실종사건이 벌어졌다고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기자인 남편 정우에게 물었지만, 정우는 그저 루머에 불과한 사건이라고 일축한다. 지호 역시 영희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공책에 이상한 주문을 빽빽이 쓰거나 외우고, 과도하게 식탐을 보이는 등 이상한 행동이 늘어만 간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라는 현실 때문에 마땅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아등바등할 뿐이다.

 


 

모처럼 휴가를 내고 아들 지호와 근처 쇼핑몰에 있는 키즈카페에 놀러간 미연은, 그곳에서 단체 채팅방에 있던 준서엄마와 시후엄마를 만난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지만, 냉랭한 둘의 태도에 미연은 당황한다. 직장 때문에 지호 친구 부모들과 교류할 기회가 없었던 미연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같이 차를 마시자 제안하고, 단체 채팅방 등 그건의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미연의 말에 준서엄마와 시후엄마는 크게 당황하고, 단체 채팅방의 존재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둘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은 미연은 모든 배후에 영희엄마가 있음을 직감하고 미연의 집 위층인 1402호로 달려가 초인종을 누른다.

본격 사건이 일어나는 부분이지만 이 소설이 가족 소설이 아닌 만큼 평범한 일들이 모두 복선의 장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실제로 미연의 눈에는 아파트 주변의 시설 미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새 집, 널찍한 내 집에서 살림을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 탓이라고 해둬도 된다. 아파트지만 널찍한 새 집은 가구를 들이기에 충분한 공간을 갖추고 임자가 빨리 들어와 방안을 꾸며주기를 기다린다는 듯 넓게만 보인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와서 물건을 방안에 들여놓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정작 생각과는 다른 문제점들이 하나씩 노출되기 시작한다. 붙박이장 문이 슬라이딩 형태가 아니라 여닫는 공간이 필요하다. 다른 쪽 벽에 두자니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가려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장식장만 아니다. 서재는 이미 컴퓨터 책상 두 개와 책장으로 꽉 차 있는 상태다. 거기에 정우가 갖고 싶어 했던 리클라이너가 배송되어 도착하면 방은 더 좁아질 것이다. 지호 방에 옮길 것을 생각해보지만, 그렇자면 그 방의 배치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건조기 배송이 '예정대로' 모레 월요일에 완료된다는 문자도 온다. 미연은 분명 원하는 배송일을 입력하라는 칸에 오늘 날짜를 넣었다. 월요일에 미연은 출근을 해야 하고 정우는 전학 첫날인 지호를 학교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방의 공간만 말썽이 아니다. 설치된 터치 스크린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정우와 지호는 자신의 문제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짜증이 터져 나오기 전에 바람을 쐴 필요가 있다고 느낀 미연은 밖으로 나온다. 바깥으로 나온 미연은 잠시 당황한다. 아파트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했기 때문이다. 외부인에게 각 동의 입구와 시설들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듯 폐쇄적으로 돼 있어, 집의 베란다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였던 놀이터도 두 번이나 구부러진 길을 지나쳐서야 나타난다. 어디가 몇 동인지 알 수 없도록 불친절하게 세워진 건물들 자체가 드림힐아파트 단지를 외부와 완벽하게 분리하고 내부를 섬처럼 존재할 수 있도록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실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경비원의 외모도 삭발에 한쪽 눈이 의안이라 느낌이 싸~ 하다. 주눅이 들어 더듬더듬 입을 연다. "오늘 이사 왔는데요, 1302호요." "······." " 벽에 그, 조명 조절하는 패드가 안 되는데 봐주실 수 있나요? 인터폰 같은 거요."

미연의 말을 듣던 경비는 콧등이 간지러운지 팔을 들어 코를 한번 쓱 훔쳤다. 소매가 걷힌 왼팔에는 손이 없었다. 손목 위부터 잘려 나간 것 같았다. "그런 거는 저기 관리사무소에 물어보세요. 여기서는 못 해요." 경비원은 손 없는 팔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손가락 대신 뭉툭한 단면이 미연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거칠게 마감된 단면으로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팔은 작고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략) 온전치 못한 신체와 고된 노동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근육에 미연은 적대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미연은 경비실의 창문을 응시했다. 불쾌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창문을 다시 두드려 경비원을 불러낼 용기가 없었다. 바닥으로 떨구어진 시야에 경비실 벽에 기대어 있는 공구가 눈에 들어왔다. 반질반질한 돌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아빠진 도구들이었다. 낫의 자루는 손때가 묻어 새까맸고, 도끼날은 얼마나 녹이 슬었는지 붉은색에 가까웠다.

 


 

집 정리도 채 끝나지 않았지만 미연의 세 식구는 쇼핑센터를 찾는다. 식사도 해결하고 무엇보다 지호에게 집 근처의 시설물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가 있어 잠깐 들른다. 생각보다 넓은 놀이터 한쪽엔 기차선로를 따라 장난감 기차가 선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무지개 색깔의 순설대로 페인트가 칠해진 기차 칸마다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중간쯤에서 지호가 손을 흔들었다. 미연은 지호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증기관 효과음이 나오는 스피커가 달린 맨 앞 칸에는 '성인 탑승 금지'라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 정우는 지호가 손을 흔드는 쪽을 향해 스마트폰을 연신 눌러대고 있었다. 미연이 지호를 촬영하는 동안 미연은 정우를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미연보다 몇 살 어린 듯한 여성이 지호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조그마한 체구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닮은 모녀였다.

"지난주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우리 애가 타보고 싶다고 하네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처음 왔거든요."

"아아······." 그녀는 미연의 말을 듣고 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점이 있었다. 미연이 껄끄러움에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마침 기차가 멈췄다. 지호를 내리게 한 후 서 있던 딸애를 타게 해줬다. 고맙다고 반색하는 여자가 딸애를 기차에 태우기 전에 지호에 고맙다고 인사하라고 딸에게 말했다. 미연의 시선은 딸애를 주시했다. 꼼꼼하게 땋은 갈래머리에,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집에서도 꽤 예쁨을 받는 것 같았다. 딸애의 이름은 채윤이었고, 지호와 같은 나이다. 여성은 당연히 '채윤 엄마'로 불리운다.

 


 

본격적인 여러 가지 사건은 이날 이후 일어난다. 사건의 개요를 말할 수 없는 미스터리 소설에서 불문율과 같은 것이엇(스포일러) 더 이상 언급을 못하지만 신축 아파트 주변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옛날 미신 같은 부적, 사이비 종교 만세교 사건 아동 실종사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음습한 이야기들이 떠도는 신축 아파트는 여러 가지 사건의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얽히면서 몹시 불안한 아파트단지로 바뀌어 간다. 인심마저 흉흉해지고 점점 탈출해야 할 곳으로 꿈꾸던 곳이 꿈에 보일까 무서운 곳으로 변모해 간다.

 

“세상에.”

미연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찾아 플래시 기능을 켜고 붙박이장의 벽면을 비추었다. 세로로 길쭉한 노란색 종이 위에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글자가 붉은색으로 쓰여있는, 틀림없는 부적의 모양이었다. 그 미친 여자가 무슨 의도로 이걸 붙여놓은 걸까. 미연은 그것을 당장 떼내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떼버리면, 영희엄마가 이걸 붙였다는 증거가 사라진다. 지금 당장 영희엄마를 찾아가 따져도 그녀는 발뺌할 것이다. 일단 이대로 놔둔 다음 확실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듯했다. 미연은 쭈그리고 앉아 벽면의 부적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p.159)

 

저자 : 마태

 

어렸을 때부터 음습한 이야기만을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헤매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계속해서 쓰는 것이 목표다. ‘장르문학 IP 공모전 리노블 시즌1’ 대상 수상을 계기로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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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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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디자인 미학』의 표제어에는 '미학(美學)'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미학이란 낱말은 우리말 어감으로도 좋고 한자어로 된 의미 또한 아름다운 낱말이다. 그러나 미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과는 다르게 철학에서 다루는 한 분야이다. 독자도 낱말에 이끌려 『미학이론』이란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10분의 1도 못 읽고 손에서 책을 놓아야 했다. 너무 어려워서다. 이 때 독자가 구입한 책은 아도르노(Adorno, Theodor Wiesengrund)의 책이었다. 아도르노는 이미 1963년에 타계한 독일의 철학자였다. 독자가 철학이란 분야를 전혀 모르고 관심도 크게 두지 않다가 '미학'책을 '예술' 에 관한 책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아도르노는 독일 출신으로 철학, 사회학, 미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연구 활동을 했던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과 논저는 그가 활동할 때 이미 대단한 영향력을 있을 정도로 진보적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철학사전』에 따르면 1931년 모교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강사(私講師)로 일하면서 나치에 의해 추방되어 34년에 망명한 후 38년부터 미국에서 파시즘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에서도 『권위주의적 성격』(1947)과 호르크하이머와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1947)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1949년에 귀국해서 모교 교수가 되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자로 활약하며, 비판 이론, '부정적 변증법'을 전개하고, 사회, 문화, 과학 연구의 인간 소외 및 물상화 등을 예리하게 비판한 유명 철학자였다. 독자가 철학과 미학 모두 완전 문외한이었기에 '뭣 모르고' 미학이론 책을 읽으려 시도했던 기억이 이 책을 표제어를 보니 또렷하게 떠올라서 여기에 적어본 말이다. 이 책의 표제어에 '미학'이란 낱말을 사용한 만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한 마음에서다.

이 책은 미학에 관한 책이 아니고 '디자인'에 관한 책이다. 저자 최경원은 「디자인 미학의 시대를 환영하며」란 제목의 〈머리말〉 첫 문장에 "디자인 미학이라는 말은 참 낭만적"이라고 적고 있다. 디자인이란 단어에 이미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 미학이라는 말까지 더해졌으니 아름다움다움으로 충만해서 낭만적으로 들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의 발간에 역할을 한 것이 '디자인'과 '미학'이라는 단어가 조합해서 '낭만적'을 상상하게 하는 것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두 낱말의 조합이 '낯선' 이유는 오랫동안 디자인에서는 아름다움보다는 쓰임새를 앞세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미학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인문학 영역이었다. 그래서 디자인 미학이라는 말은 디자인을 수사학적으로 묘사하거나 문학적으로 표현할 때나 썼지 디자인의 중요한 이론으로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디자인 뒤에 미학이라는 말이 자주 따라다니고,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서도 많이 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대중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알렉산더 고틀리프바 움가르텐이나 이마누엘 칸드를 중심으로 서양의 근대 미학이 나타나는 데 대중이 중심이 되는 근대사회의 출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급부상하면서 디자인에서 미학이 중요해졌다. 물론 그 뒤에는 사회적, 경제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자의 말대로 18~19세기 산업혁명과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부를 쌓은 유럽의 풍요로운 사회에서 대중은 이전처럼 기업이나 디자이너가 만들어주는 대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동기가 나타난다. 부유해진 대중은 단순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처럼, 경제적 여유가 생긴 대중은 자신의 미적 안목을 길러주고 지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줄 디자인을 원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에서 기능성을 넘어서는 격조 높은 즐거움을 얻으려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디자인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이 변화를 모두 끌어안은 것이 바로 디자인 미학이라는 주장은 차근차근 논리적 단계를 밟아간다. 디자인 미학을 통해 기능주의에 의존하던 기존의 단순한 디자인 논리는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생산을 중심으로 한 오래된 디자인관(觀)도 수용자(대중)를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이 논리로 저자는 디자인을 창조하는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감상하는 수용자 모두에게 디자인에 대한 깊은 통찰과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디자인에서의 미학, 미학에서의 디자인〉, 2장 〈미학의 체계 속에서 디자인〉, 3장 〈디자인의 미학적 구조〉 등이다. 저자는 세 개의 장에서 각각 주제에 맞는 내용의 세부 항목으로 나뉘어 설명과 논리적 단계를 높여간다. 각 세부 항목에서의 설명에는 실제 디자인 조형물 등 사용예를 들어가며 설득력을 높인다. 첫 장 세부 항목 「어색한 디자인 미학」에서, 앞서 언급한 단어 조합의 '낯선' 이유를 설명한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대중이 디자인 상품으로부터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란 풀이다. 또 '미학'에 대해서는 어려워하면서도 지극한 인문학적 품격과 예술성에 대한 신비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떤 단어든 미학이란 단어를 뒤에 붙여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없는데, 정작 디자인에서는 좀 다르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디자인 종사자에게는 이 말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 미학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아름다움을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분야가 예술이다. 그래서 미학은 주로 예술 영역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디자인을 하는 많은 사람이 디자인은 예술과 거리가 먼 공업적 생산 활동이나 상품을 만드는 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질적 느낌을 갖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로 인해 디자인 종사자들이 예술이나 붙는 미학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조리하다고 느낀다고 강조한다.

이 경우 왜 디자인 종사자들은 디자인이 예술 분야와 다르다고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독자는 생긴다. 디자인 사학자 페니 스파크는 "금세기 들어 서유럽 사회에서 디자인을 창조하고 계속 지배해온 산업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디자인은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와 이중의 관계를 맺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디자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산업적 체제 안의 국한된 활동이라고 못박았다는 의미다. 디자인 이론가 스티븐 베일리도 "디자인은 미술과 산업이 만날 때,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제품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때 발생한다."고 했다. 베일리 역시 스파크와 같은 견해다. 이들의 디자인관은 예술과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 산업 생산 내의 활동이나 그 결과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에도 주위를 살펴보면 많은 디자인을 보면 그 말들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생필품, 전자제품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고 있는 공업적 생산품이 실용성을 충족시키는 물건 또는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 두 사람의 공감하고 이들의 이론을 배웠다. 만일 그 이론에 반대하는 학생이 있다면 선후배들로부터 어처구니없다는 눈총을 받기 일쑤라고 교육 현장도 지적한다. 예술이 무슨 범죄도 아니고, 아트사커 같은 말을 보면 스포츠도 예술이 되는 세상인다, 어떤 분야든 예술이 되어서 나쁠 것은 없는데도 묘하게도 디자인만은 예술이라는 뒷 말이 붙기를 꺼려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이유를 저자는 명쾌하게 설명한다. "디자인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을, 정확히 말하면 순수미술을 작가의 내면적 주관을 표현하는 고립적이고 이기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주변 세상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순전히 자신의 주관적인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고립된 활동을 순수미술이라고 보는 것이다."(p.20)

기존의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의 주장은 디자인 미학은 단순히 작품의 아름다움을 논하거나 작품의 외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미학은 본래의 뜻처럼 ‘감성적 인식의 학(學)’을 가리킨다. 즉 미학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모든 것이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 미학은 극히 자연스러운 논점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과 "예술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 어우러져 서로를 보완해 대중들에게 어필되도록 해나가는 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과제하는 인식이다.

 


 

2장 〈미학의 체계 속에서 디자인〉에서는 진정한 예술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한다. 저자는 설명을 위해 과학, 예술, 문화, 역사를 모두 동원해 하나씩 사례와 시대이 변천에 따른 예술이나 학문의 변화까지 연관시켜 재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으로서의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모든 학문과 예술 등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연결고리의 하나로서의 디자인의 영역과 역할을 찾으로는 시도로 독자는 이해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등장으로 고전물리학이 설 자리를 잃었듯이, 예술 역시 시대에 따라 개념이 재정립되었다. 대중이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전근대시대에 문화나 예술은 소수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시민혁명으로 시민사회가 성립됨에 따라 예술가들은 귀족들이 향유하던 예술을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대중이 예술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소비하면서 예술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존재이고, 대중은 그저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작품에 내재된 창작자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존재라는 이분법적 구분 방식을 탈피하기 시작했다.

즉 일방적인 관계였던 창작자와 대중(수용자)이 쌍방적인 관계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예술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대중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되었고, 수용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제품들 가운데서 좋은 작품을 고르고 작품의 본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미적감각을 기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의 범주도 점차 확대됨에 따라 전통적인 미학관으로는 예술을 더 이상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게 되면서 새로운 미학관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 새로운 미학관을 정립하는 데 이정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예술미에서 주관주의 미는 아름다움이 대상의 특징이 아니라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 보고, 미적대상을 파악하나느 주체의 태도나 작용 측면에서 미를 연구한다. 지오반노니의 조명디자인을 객관주의 미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름다움의 법칙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디자이너가 장난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아름다움의 법칙으로 만들어진 예술이라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다."(p.134~135)

 


 

3장 〈디자인의 미학적 구조〉에는 예술가 개인적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정신 속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보편적 원형인 ‘이마고imago’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에 대해 시공간을 가로지른 여러 예술가의 고뇌가 담겨 있다. 저자는 알레산드로 멘디니, 자하 하디드, 이세이 미야케, 마르셀 반더스, 하이메 아욘, 잉고 마우러, 필립 스탁 등의 산업디자이너들을 통해 개인의 창작욕과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융합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지에 대한 과정을 쉽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지향해야 할 바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빨리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해 예술이라 부르는 모든 영역이 목적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능주의의 길을 걸었다고 전제한다. 디자인 역시 예술이 아니라 산업으로 취급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문제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와서도 그러한 인식은 여전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디자인을 산업이나 기술의 소산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디자인이 디자인으로서 존재하려면 ‘형태’와 ‘색’이라는 형식미를 갖추어야 하지만, 디자인의 외적인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단순히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기능성과 형식미를 탐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정신과 역사적·전통적 가치관 등에 집중할 것을 요청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자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예술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작품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실례로 이탈리아 패션 명가 돌체앤가바나는 비잔틴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패션에 적용했고, 일본의 건축가 단게 겐조는 요요기 국립경기장을 건축할 때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을 뼈대로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술가와 대중이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다. 먼저 예술가라면 뛰어난 심미안과 예술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분위기를 읽어내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선 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디자인을 소비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경영학적, 마케팅적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대중을 아우르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창작자와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담긴 디자인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의 산업디자이너 테요 레미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불보와 담요를 오브제로 써서 ‘레그 체어’라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 것은 물론 한 가족의 역사성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펜스와 같이 대중에게 친숙한 사물들을 분해하고 재해석하면서 미학을 넘어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디자인을 담고 있다. 이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디자인의 앞날을 비추고 있다고 역설한다.

 

역사적 산물로서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단지 하나의 기능적인 대상, 프로젝트 산물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가면서 문화적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이러한 디자인은 지금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굳건하게 자리 잡으면서 역사적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을 단순히 디자이너가 창조한 개인적 작품이나 수용자 개인의 심미적 쾌감을 자아내는 오브제 정도로만 볼 수 없으며, 좀더 거시적이고 문화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p.254~255) - 「3장 「디자인의 미학적 구조」

 

저자 : 최경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디자인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등에서 한국 문화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10년에 현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디자인 브랜드 ‘훗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전3권) 『끌리는 디자인의 비밀』『Great Designer 10』『디자인 인문학』 『알레산드로 멘디니』『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Good Design』『디자인 읽는 CEO』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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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 - 소로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32가지 참 지혜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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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Walden)'은 미국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 외곽에 있는 작은 호수이다. 이곳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산 체험을 기록한 책 『월든』을 발간하면서 이름 없는 작은 호수에서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는 호수로 떠올랐다. 물론 책 발간 당시에는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 않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특별할 것이 하나 없는 평범한 호수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소로는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2년 2개월 남짓 동안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한 소로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널리 읽혔다. 대표적인 생태주의 텍스트라 이름 붙여도 좋은 이유는 저자 소로가 출판하기까지 무려 일곱 차례의 개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소로 자신이 자연에 대한 관심을 심화하면서 생태주의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1850년 이후의 개정 원고들에서 세밀하고 구체적인 자연 묘사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은 그 무렵부터 소로의 필생의 과업이 실체적인 자연에 대한 탐구였음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체적 자연 묘사의 증가가 중요한 이유는 생태주의적 사고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실체적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주는 생태주의적 성찰은 다양한 형태를 띠며 전개된다고 『월든』을 연구했던 생태·환경학자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저자 소로는 상업적 목적을 지닌 농업이 궁극적으로 자연에 끼치는 폐해에 대한 비판을 감추지 않은 생태학자이자 환경학자로서의 환경 보호와 보존을 위한 삶이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는 직접 체험을 책에 담음으로써 월든은 환경 보존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소로는 책에서 “한때 농사가 신성한 예술”이었지만 “지금은 대규모 농장과 대량 수확만을 목표로 삼은 나머지 성급하고 생각 없이 농사를 짓고 있음”을 개탄하면서 그 결과로 수반되는 자연의 착취와 파괴를 경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소유를 실천하고 『무소유』란 책을 쓴 법정 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곁에 두고 읽은 책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은 소로의 자연주의적인 삶과 철학이 담긴 책 『월든』에서 소로가 책에 담은 내용과 저자 김옥림의 사상과 철학을 가미해 그의 삶을 배우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에서 쓰여졌다. 저자 김옥림은 200년 전 소로의 글은 은유로 가득한 시와 같고, 어떤 대목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현대의 우리는 그가 자연과 교감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소로의 철학과 사상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시키고자 동서고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학자와 정치가, 예술가 등이 했던 말도 함께 수록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쓰고 비슷한 사상과 말을 남긴 위인들의 말과 글을 함께 실어 독자들과 『월든』을 함께 읽어가며 해설해주는 형식으로 책을 펴냄으로써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실천해야 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200년 전에 태어난 소로는 오늘날 이 지구가 황폐화되고, 인간이 자유와 평화를 잃고 위험에 처하리라는 것을 예감했을까? 그는 인간이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며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선견지명이 지금의 시대에 소로를 더욱 위대한 사상가로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모두 4부(部)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절망하지 않는 지혜〉, 2부 〈소로가 월든 호수 숲속으로 간 까닭은〉, 3부 〈소로가 말하는 성공한 삶의 정의〉, 4부 〈자신이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라〉 등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자신이 살았던 장소와 삶의 목적, 독서, 삶의 소리, 고독, 콩밭, 마을, 호수, 베이커 농장, 더 높은 법칙, 동물 친구들, 따뜻한 집, 겨울 손님들, 겨울 동물들, 겨울 호수, 봄 등 월든 주변에서 살아가고 일어나는 일을 2년 2개월 동안의 체험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은 4개 부에 각각 8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소로의 문장을 서두에 적고 이를 저자의 지식과 사유, 그리고 자연에의 동화의 경험 등을 추가해 독자들의 『월든』 텍스트 해석을 돕는다. 특히 『월든』 출간 전후의 사상가나 철학자, 예술가, 종교인들이 『월든』의 사상과 같은 말들을 배치시킴으로써 텍스트 이해에 완벽을 기하고 있다.

 


 

1부 8개 장 「절망하지 않는 지혜」, 「고착화된 편견을 버리기」, 「내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아가기」, 「철학자와 철학자적인 삶」, 「유행의 여신을 경계하라」,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협력의 의미」, 「부패한 선행」을 다룬다. 이는 소로의 『월든』을 분석해 내용에 따라 붙인 제목들이다. 2부, 3부, 4부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순서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저자가 비슷한 항목을 묶어 부(部)로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1부 첫 장의 「절망하지 않는 지혜」를 읽어보면 저자가 『월든』의 어떤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이 쉽게 찾을 수도, 읽고 이해할 수도 쉽게 구분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첫 장에서는 소로의 '경제생활'에서 인용한 문장을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소위 체념이라는 것은 고착된 절망에 불과하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를 떠나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서, 밍크와 사향쥐의 용기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진부하지만 무의식적인 절망은 인류의 경기와 오락이라고 불리는 것 밑에도 숨어 있다. 거기에 놀이는 전혀 없다. 놀이는 노동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적ㅇ니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한 특징이다." 첫 장의 첫 문장이다.

독자도 이렇게 쓰인 『월든』을 두 번이나 읽었지만 삶에 대해 쓴 것 같은데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번역상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읽어나갔을 뿐이다. 말 그대로 전부 읽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겉으로만 읽은 탓이다. '수박 겉 핥기'였다는 말이다. 이제 저자 김옥림의 해석에 힘입어 드디어 정확한 뜻에 접근하게 된다. 저자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인 키에르케고르를 인용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일컬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절망'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절망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게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처한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인해 절망함으로써 삶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절망이란 낱말은 '죽음'을 떠올릴 만큼 부정적이고 극단적이다."(p.16~17)

저자는 삶에 있어서 절대 가져서는 안 될 '어떤 일이 닥치든 절망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위대한 운동선수(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100m 우승자 게일 디버스, 음악가 헨델이 절망적 상황을 딛고 어떻게 성공한 삶으로 바꾸었는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독자들의 확실한 이해를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독자가 보기에는 『월든』은 자연주의적인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단지 저자가 지적한 대로 은유적 묘사와 당시 시대 상황의 비유적 표현이 많아 해독이 어려울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 멋진 제목의 책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은 이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디딤돌로서 잘 쓰인 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2부 네 번째 장 「진실하게 살되 허위와 망상을 버려라」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앞서 보인 사례처럼 『월든』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날 진실은 거짓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허위와 망상은 건전한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이 진실만을 꾸준히 관찰하고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인생은 우리가 아는 그런 것들에 비해 동화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가 불가피한 것과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만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길거리에 울려 퍼질 것이다. 또한 서두르지 않고 현명하게 살면,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만이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며 사소한 두려움과 사소한 쾌락은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월든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p.128)

진실과 허위, 이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늘 겪게 되는 '삶의 속성'이라는 말로 저자의 해석을 시작한다. 진실은 '참'이며 허위는 '거짓'이라는 명제는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함께 해왔던 것이라는 말과 함께. 사람 중엔 진실을 벗어나 허위의 삶을 좇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로 인해 삶은 순탄치 않고 늘 바람에 이는 나뭇잎처럼 소요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진실은 흐르는 강물과 같이 일정하게 흘러가고 고요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며 반문한다. 진실은 언제나 삶을 순탄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을 덧붙여 소로의 문장을 조화롭게 더듬어 나간다. 진실은 왜 사람을 평안하게 할까. 진실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 까닭이다. 자연에서의 삶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그 이유는 진실은 꾸미지 않기에 아름답다고 답하는 방법이다. 불교에서 선문답 같지만 화두가 있으면 말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가는 방식은 저자의 논리적 방법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제자백가 중 소로와 가장 가깝다면 노자가 아닐까. 저자는 스스럼없이 『도덕경』을 인용해 『월든』의 내용의 본질에 접근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라」라는 제목이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면 인생의 모든 법칙이 변할 것이다. 고독해도 더 이상 외롭지 않고 빈곤해도 더 이상 가난하지 않으면 연약해도 더 이상 약하지 않을 것이다." 소로가 한 말이다. 저자 김옥림은 공자 『논어』 「위정편」을 인용한다. 내 인생의 나를 주인으로 세우는 서른의 나이를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은 자기 나이 서른이면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른 전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해석을 준비한다. 저자에 따르면 저절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각고면려(刻苦勉勵), 즉 고생을 무릅쓰고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진리를 잊고 노력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한다. 이는 매우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는 것과 다름없다.

저자는 마지막 장이기도 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소로의 말에서 중요한 사실을 뽑아낸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면 인생의 모든 법칙이 변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만의 인생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면, 고독해도 외롭지 않고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으며 연약해도 더 이상 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주인이 되면 자신의 일생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소로의 말을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후회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게 하는 고사를 덧붙인다. 공자의 이야기다. 이처럼 삶의 법칙이나 마음을 다지는 원칙 등 정신에 관한 이야기는 에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독자에게는 하나의 지혜와 하나의 사색거리가 생긴다. 이 책을 읽은 보람이다.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콩코드 남쪽에 있는 작은 호수 월든에서 소로는 2년 2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단돈 28불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소박한 음식과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며 소로가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오히려 소로가 살던 당시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50여 년 전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시도했던 소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소로의 말과 글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진정으로 소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화두에 대해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 예술가, 문학가의 의견도 덧붙였다. 그럼으로써 소로의 생각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로의 『월든』에 나오는 이 문장은 저자 김옥림이 깊은 사유를 거듭하게 했고 마침내 소로의 삶과 그의 책에 대한 이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저자 김옥림은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무엇인가,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오늘날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하면 빛나게 만들고, 내적으로 부유하게 만들며, 사소한 행복을 찾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배우고 사유하고, 경험한 것은 물론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까지, 모든 것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싶어 이 책을 쓴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그의 독자에 대한 열정에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저자 : 김옥림(金玉林)

 

현재 시,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아침을 여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 《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언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법정 詩로 태어나다》, 《법정잠언집 365 너는 꽃이 되어라》,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아》,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인문서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통찰력편》,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교양편》, 자기계발서 《명언의 탄생》, 《고전명언의 넓고 깊은 생각》, 《책사들의 설득력》, 《유대인 대화법》, 《철학자의 말》, 《고수의 소통법》, 《인생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것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청소년 교양서 《10대에 꼭 해야 할 32가지》, 《10대를 위한 성공습관》, 《열네 살의 하이파이브》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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