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학살을 넘어 - 팔레스타인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왜 인류는 끊임없이 싸우는가
구정은.오애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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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 역사상 하루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는 어느 전쟁사가의 말이 새삼 재인식되는 요즘입니다. 뉴 밀레니엄인 21세기에 들어와서도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정말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나 싶습니다. 요즘은 물론이지만 21세기 새 희망으로 가득 찬 2000년도부터 우리에게 들려오는 '전쟁' 뉴스는 매번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작은 전쟁, 내전 등에 관해서는 이젠 뉴스거리도 안 된다는 듯 외신마저 다루지 않을 정도이니 이 책 『전쟁과 학살을 넘어』를 펼치면서 떠오른 독자만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2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전쟁의 시작이라며 각종 뉴스 매체들은 앞으로 세계 패권국의 양상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해설까지 내놓으며 요란스러웠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핵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침략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아프리카나 남미 등 다른 대륙의 세계인들도 직접적인 전쟁 피해는 아니더라도 크든 작든 러-우 전쟁은 일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는 마음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은 빌고 또 원했다. 러-우 전쟁은 지금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도 종전 소식은커녕 가끔씩 확전 소식과 미사일로 인한 사상자 숫자만 늘어나고 있는 장기전 형국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세계인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면서 뜸하던 러-우 전쟁 뉴스는 이젠 거의 보도되지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 소식에 집중돼 있다. 전쟁을 일어난 계기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같은데, 공식으로 전쟁 선언은 이스라엘이 했다. 미사일 공습과 불법 침략으로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하마스 조직을 뿌리뽑아 평화를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사실 하마스 공격은 불법이었고, 사망 또는 인질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100명이 훨씬 넘는다고 하니 어느 국가든 분노하지 않겠는가. 즉각 이스라엘은 하마스 세력을 뿌리뽑겠다고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자가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 책 『전쟁과 학살을 넘어』의 공동 저자 구정은과 오애리는 오랫동안 언론사에서 일하며 국제 뉴스를 다뤘다. '새천년'을 향한 희망의 해를 바라보며 기대가 채 잊혀지기도 전에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진 21세기의 단층들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전쟁 과정과 피해, 앞으로의 전망보다는 그 나라들이 왜 전쟁을 일으키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이제 지역적 분쟁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왜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지에 당위성을 개진하는 입장에서 쓴 책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쟁과 우리는 21세기 지역 전쟁들과 무관한 것인지,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아직 휴전 중인 국가 대한민국에서 바라보는 '전쟁불가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책은 모두 6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세계를 뒤흔든 우크라이나 전쟁〉, 2부 〈팔레스타인은 왜 ‘분쟁지역’이 되었나〉, 3부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4부 〈끝나지 않는 전쟁, 아프가니스탄〉, 5부 〈세계가 반대한 이라크 전쟁〉, 6부 〈전쟁을 막을 수는 없을까〉 등이다. 1부에선 지구 전체에 그늘을 드리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뤘다. 민주주의를 향한 우크라이나인들의 힘겨운 여정과 거기에 계속 질곡을 강요한 러시아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2부의 주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다. 이 또한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맥락을 잡기 힘든 이슈다. 이스라엘 건국 때부터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을 풀어 쓰면서, 이스라엘이 무법자로 인식되어온 과정과 그 도구가 된 정보기관들의 저돌적 행태를 정리했다. 3~5부에선 21세기의 주요한 전쟁인 시리아 내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다뤘다. 뒤의 두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 침공으로 일어났고, 미국이 압도적 화력을 쏟아부어 장기전을 치렀지만 결코 ‘승리’라 할 수 없는 초라한 성적표만 받아들고 발을 빼야 했던 전쟁들이다. 사건의 진행 과정을 시기 순으로 설명한 뒤 미국의 오만과 일방주의가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는지, 그 전쟁들이 세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분석했다. 마지막 장에는 전쟁 뉴스를 오래 들여다본 저자들의 고민과 바람을 담았다.

 


 

전쟁 범죄를 왜 처벌해야 하는가, 전쟁 범죄에 대한 인식과 단죄는 어떻게 진화해왔나, 한국인들에게 전쟁과 파병 그리고 난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저자들은 주목했다. 인류애가 깨져나간 단층들을 돌아본 이 책이, 인류애를 일깨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저자들의 집필 취지에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들은 국제부 기자들로서 전쟁 현장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매일 쉴새없이 들어오는 국제 뉴스의 무게를 판단하고, 신중하고 가능한 한 우리와 관련이 되는 뉴스만을 선별해야 한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 등 굵직한 뉴스를 다루지만, 21세기 들어 전쟁 뉴스는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지난 세기 제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양차 대전을 합쳐 줄잡아도 1억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 독자들도 다 아다시피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 등이다. 군인들이 전사하는 숫자보다 민간인 피해가 훨씬 많다. 예전에는 군대를 훈련해 양측에서 어느 한 지역을 선택해 정면대결을 통해 전쟁의 승부가 가려졌다. 물론 패배한 나라와 사람들은 멸망할 수 있다. 다행히 노예로라도 끌려가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지만 노예보다 굴욕적인 일은 없다고 해서 차라리 죽음을 택한 사람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양상이 달라졌다. 직접 전쟁터뿐만 아니라 전쟁을 돕는 민간인들이 사는 곳을 비행기를 동원한 폭격, 성능과 사정거리가 엄청나게 발전된 미사일 등 대량 살상의 양상로 무기가 현대화됐다. 심지어는 핵폭탄(방사능탄), 화학탄(독가스), 생물탄(전염균) 등이 개발되면서 단 한 방으로 수십만 명을 일시에 희생시킬 수 있다. 전쟁은 점점 인류 존속 자체에 위협이 되는 수단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지만, 하루도 멈추지 않고 전쟁을 하는 인류의 앞날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저자들은 지난 세기 말 벌어진 '전쟁과 학살' 현장을 직접 갔다. 저자들은 뒤늦게나마 지난해 여름 동유럽을 찾았다. 숱하게 기사를 쓰면서 지명으로만 남았던 첫 방문지였다고 〈프롤로그〉를 통해 소개한다. 1990년 구 소련의 몰락으로 소련(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했다. 옛 소련의 위성국가 역할을 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립을 했으나 일부 국가는 내전에 휩싸였다. 이 가운데 가장 참혹한 '학살' 현장인 보스니아를 저자들은 방문했다. 이곳은 옛 유고 연방이었던 나라들끼리 내전에 돌입했다. 같은 나라였지만 기독교계 사람들과 무슬림들이 공존했다고 한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은 주위 경관엔 아랑곳하지 않고 무차별 학살의 만행이 저질러졌던 곳이다.

 

 

저자들은 "세르비아의 국경선 근처에 있는 스테브레니차를 찾아갔다. 세르비아계 혹은 정교도들은 그곳에서 사흘 만에 8,000명이 넘는 보스니아계 혹은 무슬림을 학살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어째서 이런 학살이 벌어졌을까. 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기에 이런 잔혹한 일이 펼쳐지는 것일까. 유고연방의 70년 역사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까."(p.5) 저자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 쉽게 짐작은 안 되지만 책을 통해 읽은 내용으로는 이 지역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노사이드'의 참혹한 기억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제노사이드란 인종, 민족, 종족,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30년 전 이곳에서의 전쟁은 한 지역에서 도저히 살 수 없는 학살 등의 만행을 저지른 악몽을 죽을 때까지 짐지우고 산다. 주변 아름다운 경관과는 다르게 음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 곳에서 저자들은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이방인으로서의 느낌을 갖고 "앞으로 10년 간 제노사이드는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불과 한두 달 만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됨으로써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앞서 잠깐 언급한 '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을 법하다.

저자들은 각 지역 분쟁에 대한 전쟁 발발 이유, 그리고 관련된 나라들의 속사정, 그 전쟁들이 세계에 일으킨 파장 등을 분석했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힌다. 특히 마지막 부 6부에서는 전쟁 뉴스를 오래 들여다본 저자들의 고민과 바람을 담았다. 전쟁 범죄를 왜 처벌해야 하는가, 전쟁 범죄에 대한 인식과 단죄는 어떻게 진화해왔나, 한국인들에게 전쟁과 파병 그리고 난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번 취재와 책을 쓰는 동안 자료를 통해 느낀 점을 강력한 소망을 담아 썼다고 한다. "강자의 배짱 앞에 약자들은 그저 다치고 치일 뿐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미국이라고 무소불위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겐 진화를 통해 습득해온 공감과 연민과 정의감이 있다. 그러나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앞서게 되면 정의감과 연민은 사라지고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이기주의와 폭력성이 판치게 된다. 하지만 개개인과 국가들 모두의 통합체인 '인류'가 되면 보편적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가 다시 고개를 들며 윤리적 판단이 '냉혹한 국제질서'의 일부이자 한계이자 규범으로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인류애라는 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p.8~9)

 


 

이 책은 우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부터 살펴본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문제로 불거진 전쟁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낸 명분이지만 사실을 파고 들면 또다른 이유가 보이게 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는 특별한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땅은 우리가 나눠준 것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만들었다"는 식의 푸틴의 주장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소련에 강제합병하는 바람에 둘이 한 나라가 된 것인데 '역사적 과거'를 소련 시절로만 한정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 러시아 땅이었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우크라이나 땅에 사는 우크라이나계와 러시아계 모두의 선택으로 독립을 해서 현재 주권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침략한 행위는 국제법상 엄연한 범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에는 역사적 이유뿐만 아니라 군사적·지정학적·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인 나토에 가입할 경우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된다. 러시아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타토는 유럽과 북미 31개의 회원국(2023년 10월 현재)이 소속된 정치 및 군사 동맹체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격화된던 1949년에 탄생했다. 나토의 핵심은 조약 제 5조에 명시된 '회원국 한 곳에 대한 무력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방위 원칙이다. 지금까지 나토가 집단방위 원치긍ㄹ 발동한 것은 단 한 차례로,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 국가들이 속속 민주화되면서 나토는 냉전의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꾸준히 회원국을 늘리면서 몸집을 키웠다. 러시아는 줄곧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푸틴은 1990년 독일 통일 때 미국이 나토가 동쪽으로 '1인치도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 약속한 것을 줄곧 위반해 왔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병력을 배치한 뒤 2021년 말 미국에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을 것임을 문서 형태로 확약하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나 나토가 결정하고 약속할 사안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중이다. 그러기에 러시아가 이를 이유로 침공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2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다. 이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아침(현지 시각) 발발했다. 이스라엘 남부 가자지구 접경 마을 주민들은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를 지내고 난 후 첫 안식일을 느긋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 갑자기 2,500발 이상의 로켓 포탄이 하늘을 뒤덮더니 가지지구를 장악한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장대원들이 픽업트럭과 오토바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국경 철책을 넘어 이스라엘 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야말로 기습공격이었다.

완전한 방공망 '아이언 돔'이라고 큰소리치던 이스라엘의 하늘은 뚫렸다. 한꺼번에 이처럼 대량으로 포탄이 쏟아져 들어오면 일일이 모두 대응해 요격할 수 없다는 점을 하마스는 미리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대로 포탄과 하마스 공격 요원들에 맞닥뜨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황 상태로 빠져 들었다. 삽시간에 수백 명이 죽고 240명 가량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후 팔레스타인 측은 '제 2의 나크바'를 맞이해야 했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대재앙'이란 뜻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5월 15일을 '대재앙의 날'로 부르면서 이날의 아픔과 슬픔을 해마다 되새긴다고 한다. 이날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진 날이다. 유대민족에게는 2'000년 가가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나라 없이 지내온 설움을 청산한 축복과 기쁨의 날이지만,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민족에겐 진정한 '재앙'이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 건국은 제 2차 세계대전의 후속 결정 사안이지만 전쟁에서 이긴 승전국의 입장에서 휘두른 무소불위의 힘에 의한 것이다. 당시 승전국 영국은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배풀고자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2,000년을 살아온 팔레스타인이 있는 곳을 나가라고 하는 등 '혜택' 자체가 비극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인권보고관은 전쟁 발발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23년은 나크바 75주년이 아니다. 나크바는 75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 비극의 씨앗은 로마군의 예루살렘 함락으로 유대 국가가 멸망한다. 당시 유대 저항군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구축된 천혜의 요새 마사다에서 3년이나 항전하다 패배 직전 전원 자결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이렇게 2,000년 갈등이 이 전쟁 속에 들어 있다. 세계의 패권국의 위치에 있는 미국이 뒷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분쟁에 관여해 왔다.

 


 

미군은 2003년 3월부터 2011년 12월 말 철군할 때까지 8년 9개월간 이라크에 주둔했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들어간 돈과 이라크 재건에 투입한 비용, 미국 내 전역병·부상병 복지비용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은 2조 달러 이상을 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가장 많았을 때에는 이라크에 15만 명을 파병했다.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과 다국적군 사망자 수는 4,800명이 넘는다. 이라크에서 다치고 장애를 입은 전역병들은 재정적자와 함께 미국 사회가 앞으로 수십 년간 책임져야 할 짐이다. 더불어 ‘수퍼 파워(초강대국)’로서 미국의 자존심, ‘선한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도 타격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부시의 전쟁을 승인해주고 그에게 연임까지 안겨준 ‘못난 유권자들’에게 지워진 부담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니 그 짐을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무슨 죄일까. 미국은 전쟁의 상대국인 이라크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집계조차 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을 맡았던 미군 중부사령부의 토미 프랭크스 사령관은 “우리는 시체를 세지 않는다We don’t do body counts”라는 말로 표현했다.(p.211~212) - 「미국의 오만, 미국을 실패로 이끌다」

 

저자 : 구정은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고, 이라크와 시에라리온 등 세계 여러 곳을 취재했다. 사라지는 것, 버려지는 것, 약자들과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2021년부터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국제 이슈를 비롯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일과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을 쓰고 있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10년 후 세계사』 등을 썼고,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저자 : 오애리

 

『문화일보』와 『뉴시스』에서 오래 일했으며, 지금은 국제문제를 주로 다루는 프리랜서 언론인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에 얽힌 역사적인 맥락을 전하고, 인문사회학적 이해를 높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넷플릭스 세계사』와 『숲으로 간 여성』을 비롯해 『성냥과 버섯구름』, 『모든 치킨은 옳을까?』 등을 썼고, 놈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와 마이클 무어의 『세상에 부딪쳐라 세상이 답해줄 때까지』를 우리 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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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더존스 - 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하는가
염운옥 외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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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디아더존스(In The Other Zones)』는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열쇠는 '다양성'이란 주제를 갖고 있다. '다양성(多樣性)'은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국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다양성이란 단어는 생물학에서 생물다양성이란 의미로 자주 사용해 왔다. 오늘날 세계에서 무척 중요한 이슈를 지닌 단어로 떠올랐다. 생물학자들은 생물다양성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전체로 정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인류의 번영과 존속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계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곧 오늘날 지구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주장은 인류 존속에 큰 위협이 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생태계는 거의 모든 생물종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미 오래 전에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표제어가 영어로 돼 있다. 앞서 명기한 대로 'In The Other Zones'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부제 「우리는 왜 차이를 차별하는가」가 많은 것을 뒷받침하며 설명하고 있다. 인류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차별'이 인류 역사와 함께한 것이지만 왜 생겼는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결국 인류의 번영 존속에 악영향을 미칠지 탐구한 내용을 실었다. 이를 위해 주제별로 각 분야의 전문가·학자들로 구성된 저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했다. 결국 이 책은 인간 개인과 인류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 ‘다양성’에 관한 담론집 성격을 띠고 있다. 이를 위해 진화학·사회학·인구학·미디어학·종교학·범죄심리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존경받는 여섯 석학이 글을 썼다. 염운옥(사회학), 조영태(인구학), 장대익(진화학), 민영(미디어학), 김학철(종교학),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 등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인간 사회 안에 오랫동안 형성되고 굳게 자리 잡아 고질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 차별의 실체와 그 교묘한 작동 원리를 날카롭게 통찰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각 분야에서 차별과 다양성이란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기에 매우 적절한 책이어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추천한다.

 


 

이 책은 모두 7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종, 그리고 인종차별〉, 2장 〈다양성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3장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 4장 〈미디어는 어떻게 다양성을 저해하는가〉, 5장 〈신은 왜 인간에게 혐오를 가르쳤나〉와 '차별'에 대한 대담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와 낙인〉과 '다양성'에 관한 대담 〈생존의 필수 조건: 다양성〉이 각각 6장과 7장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은 〈티앤시재단〉의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와 『행복은 뇌 안에』 등 2권의 전작의 뒤를 잇는 세 번째 시리즈 책이자 ‘혐오’와 ‘공감’ 그리고 ‘다양성’ 삼부작의 결정판인 셈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구 감소'다. 어렵게 선진국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번영과 발전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채 100년 이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의 위기감이 감돈다. 선진국에 도달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의 그늘에서 일만 하던 수많은 인재들이 땀을 닦기도 전에 그토록 애써왔던 선진국 대한민국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니, 믿기지 않을 얘기다. 전쟁도, 천재도 아닌 인구 감소에 의한 소멸... 지구 상에서 인류가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인구 감소로 나라가 없어진 곳이 있었나? 독자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찾을 수 없다. 전쟁에 진 나라의 국민들이 포로나 노예로 잡혀 간 후 나라가 소멸된 예는 많다. 그나마 대부분 중세 이전의 이야기일 뿐 근대 이후에는 전쟁으로 나라가 소멸된 곳은 없을 정도로 인류는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모든 위기를 극복해 낸, 지구상에서 가장 우월한 생물종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은 인류 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서, 나라를 잃고 대항해 싸울 무기가 없어도 끈질기게 버티며 나라를 유지해오고 다시 번영의 길목에 선 나라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나라를 잃었을 때도 전쟁으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를 위기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 나라들을 잊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듯이 이젠 국제 질서에 어긋나지 않는 한 원조도, 필요한 지원도 필요한 곳에 아끼지 않는다.

 


 

이 책의 〈서문〉을 쓴 김희영 〈티앤시재단〉 대표는 "한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역사·문화적 배경, 인구 구성 등에 기반한다"고 전제하고 "태생적으로 다양한 이민족으로 구성된 미국과 같은 국가는 여러 인종, 문화, 종교의 사람들이 공존하기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오랜 세월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보다 통합과 공존이 주는 혜택을 깨우쳤다는 주장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인구 구성을 갖는 한국 사회는 높은 폐쇄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타 지역에서 온 사람을 비하하는 말을 쉽게 하고, 온라인상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동질한 인구 구성'이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한국은 이미 상당한 글로벌 사회에 들어섰다고 지적한다. 〈서문〉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등록된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50만 명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2024년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퍼센트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인구·통계학적 기준으로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5퍼센트를 넘으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된다. 이에 더해 재외동포는 700만 명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김 대표는 전체 국민의 무려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인구가 해외 180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은 '이주 국가'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영화 〈인디아나존스〉를 패러디해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다른 곳(Zones)에서'라는 뜻도 되지만, 있어야 할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 뚝 떨어진 존스(Jones) 씨를 상상했다는 것.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로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쓸쓸함과 한의 정서보다는, 더 나은 삶을 개척하기 위해 떠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을 강조하고 싶어 채택한 제목이라고 김 대표는 밝힌다. 또 포지화 역시 매우 상징적이다. 철조망 위에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주로 우리에서 서식하는 앵무새는 해안가에서는 흔히 볼 수 없고, 철조망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없게 하는 경계의 상징이다. 하늘을 가득 메운 세계지도는 위압적이지만 언제든 흩어질 수 있는 구름을 상징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1장은 인종의 개념에 대한 설명과 인종의 허구성,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한 고찰이 담겼다. 염운옥 경희대학교 글로벌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의 인종에 대한 설명과 대안 등 해결 방안에 많은 영감을 제공한다. 염 교수는 "인종은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다. 생물학적 인종 개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은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1950~1951년 이미 유네스코도 "호모 사피엔스는 단일종이며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라고 선언했다는 점을 덧붙인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미구란스(Homo Migrans)'이면서 동시에 '호모 하브리두스)Homo Habridus)'다. 호모 미그란스는 '이동(이주)하는 인간'이라는 뜻이고, 호모 하브리두스는 '잡종 인간'이라는 의미라는 말로 설명을 더한다. 아프리카 기원설이든 다지역 기원설이든 공통된 주장은 인간이 지닌 놀라운 두 가지 속성, '이동성'과 '혼종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깊이 뿌리박고 있는 백인우월주의는 유럽인이 신항로 개척을 명목으로 다른 대륙에 진출하고, 탐험하고, 침략하고, 약탈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역설한다.

염 교수에 따르면 인간을 인종의 잣대로 구분하는 유럽인의 시도는 16세기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불류, 즉 인류를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최초의 시도는 18세기 스웨덴 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ie)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린네는 인류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분류학을 정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학자들의 순수한 분류가 분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이(difference)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차이에 인간이 의도적으로 위계(hierachy)를 부여하는 것이 문제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에 의도적으로 위계를 부여하는 순간 차이가 차별을 낳고, 불공정과 불합리함이 발생하고, 폭력과 학대로 이어질 위험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물론 린네는 인종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인종의 우열을 가리고 인종주의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방식의 분류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린네의 인종 개념은 린네 분류학의 권위에 힘입어 학계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구석구석 스며들게 된다.

염 교수의 분석대로 다음 독일 분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맨바흐가 등장한다. 이 학자는 인종을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코카서스인, 몽골인, 에티오피아인, 아메리카인, 말레이인이다. 이 중 코카서스인이 가장 우수하고 창조적이며 아름다운 인종이라고 주장한다. '백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코카시안(Caucasian)'이라는 단어가 있다.

 


 

염 교수는 '인종'이라는 단어의 발생과 역사적 전개 과정을 밝히면서 인종의 허구성을 짚어나간다. 허구적이고 악의적 창조라고 말해도 될 듯싶다. 뿐만 아니라 인종의 구분대로 혜택과 차별을 했던 백인들의 우월주의 역시 허구이라는 말이다. 책에서 염 교수는 미국 화가 아치볼드 모틀리(Archibald Motley)가 1925년에 그린 〈악터룬 소녀〉의 초상화를 사례로 들며 인종주의 맹점을 지적한다. 외양만 보면 소녀는 흑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백인 전용 시설을 이용하고 백인 행세를 하는 이른바 '패싱(passing)'이 가능했다. 물론 8분의 1 '흑인' 피가 섞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한 방울의 법칙'에 따라 흑인으로 분류된다. 유대인도 비슷한 방법으로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 어렸을 때 '예쁜 아리아인 아기'로 선발된 헤프닝을 소개하기도 한다. 외양으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염 교수의 고찰은 이제 인종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인종주의를 없애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인종주의는 사라지기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왜냐하면 '과학저긍로 인종 개념이 근거가 없다'고 아무리 열변을 통해도 '인종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인종에 대한 우리 인식을 바꾸고 바로잡고자 한다면 '식민주의'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른다. 이 점이 저자가 이 책을 펴낸 취지이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에 인종에 대한 의식 변화를 촉구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주목할 만한 일이다.

흔히 한국의 인종주의를 'GDP 인종주의'하고 규정한다는 말을 꺼낸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일 뿐만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종 차별 대우를 받아왔는데 '인종주의자'들이라고? 혼란스럽지만 저자 염운옥은 차분하게 설명을 단다. "한국에 이주해 오는 외국인을 그 출신국의 경제 수준, 즉 GDP에 따라 차등을 두어 차별한다는 뜻"이라고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른바 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에 다니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를 다르게 대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란다. 이 부분에서 독자의 뇌리에 스치는 한 사건이 있다. 제주도에 전쟁을 피해 온 '예맨 난민' 사건이다. 이들의 '난민 인정'을 싸고 찬반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각종 미디어 매체도 한몫 했던 기억이 독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슬람 국가 예멘의 난민이라면 일단 '테러' '부녀 강간' '난폭' 등이 연관 검색어처럼 머릿속에 떠올릴 정도로 매스컴의 활약(?)은 대단했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게 인종 차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겠지만... 차별과 다양성에 대한 전문가와 학자들의 글이 이어지고 뒷 부분에 별도로 대담도 2개 실려 있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 : 염운옥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1985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빠짐없이 수업을 듣는 모범생이었다. 1980년대의 대학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열기로 뜨거웠다. 캠퍼스에는 언제나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고, 학내 문제나 정치적 이슈로 수업을 거부하는 일도 잦았다. 강의실 밖에서 세상을 배우고 시대를 고민하던 때였다. 1987년 일련의 민주화운동을 경험하며 사회의식에 조금씩 눈뜨기 시작했다. 역사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결심을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남들은 학부 시절에 독파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뒤늦게 읽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에 유학해 도쿄대학교에서 〈영국의 우생학 운동과 모성주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쓰는 동안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 방황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쭉 뻗은 길이 아닌 샛길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리라 믿으며 위안하곤 했다. 페미니즘에 눈뜬 것도 박사 논문을 쓰면서 얻은 소득이다. 역사의 주체에 여성을 놓자 보이지 않던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은 남성만이 부당하게 인간을 대표해왔음을 일깨워주었다.

〈우생학과 여성〉, 〈파시즘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영국파시스트연합의 여성 활동가들〉, 〈타자의 몸: 근대성과 인종주의〉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를 썼다. 최근에는 자신의 소유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소유가 아닌 ‘몸’을 역사학의 주제로 어떻게 다룰까를 고민하고 있다. 인종주의나 이주, 이민에 대한 관심도 몸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 위에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 :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사람들이 태어나고, 이동해 다니고, 사망하는 인구현상을 통해 사회의 특성과 변화를 읽어내는 인구학자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석사를, 인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인구학을 공부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또 2015년부터 베트남 정부의 인구정책자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6년 가을에 출판한 첫 저서 《정해진 미래》를 통해 한국사회가 인구변동으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될지 예측했다. 당시 생소했던 인구학이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과 개인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소개하여 인구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2021년 현재, 지도교수로 있는 서울대학교 인구학연구실에서 학생 및 박사연구원들과 함께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는 작업, 지방자치단체들의 미래전략 수립을 돕는 일, 기업들이 국내외 시장변화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필요한 자문을 하고 있다.

《정해진 미래》 이외에 《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공저)》, 《2020-2040 베트남의 정해진 미래(공저)》 등을 집필했고, 《정해진 미래》로 2017년 정진기언론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자 : 장대익(잔가지)

가천 대학교 창업 대학 석좌 교수. KAIST 기계 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에서 생물 철학 및 진화학을 연구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터프츠 대학교 인지 연구소 연구원, 서울 대학교 과학 문화 센터 연구 교수, 동덕 여자 대학교 교양 교직 학부 교수, 서울 대학교 자유 전공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 인지 과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서울 대학교 인지 과학 연구소 소장, 비대면 교육 플랫폼 스타트업 ㈜트랜스버스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 및 사회성의 진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서재』,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고 『종의 기원』, 『통섭』 등을 번역했다. 2009년 제27회 한국 과학 기술 도서상 저술상과 2010년 제11회 대한민국 과학 문화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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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2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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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다혜의 대학 졸업 이후로 들어간다. 민우는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출소 후 이모가 운영하는 술집 〈나이아가라〉에서 일하며 지낸다. 이미 순수한 청년 민우는 악에 물들어가고, 자신의 자존감과 내면이 무너지는 것을 알아챈다. 그럴 때마다 술과 담배는 늘어만 간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혜와의 함께 산다는 것도 아련한 꿈이었을 뿐 기억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술과 마약, 방탕한 생활은 계속되니 일상이 없다. 일상이 없으니 내일도 없다. 하루하루 그저 생물학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젊은 나이의 청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간다. 그러나 작가는 다혜와 민우의 마음속 사랑은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채 시도 때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기억이라는 것이 아름다울수록, 현실이 힘들수록 슬픔으로 다가오는 법. 두 사람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친구가 바로 현태다. 민우는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현태를 도와줬고 현태는 그런 민우에게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친구니까 빚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사라진 민우를 현태가 가장 적극적으로 찾는다. 그를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현태의 마음속은 그렇다고 믿어지지만 사실 작가의 표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우와 다혜의 사랑을 방해한 사람은 다름아닌 현태와 은영(제니)이다.

현태는 친구의 연인인 다혜를 사랑하게 됐다. 친구의 연인을 가로채는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현태의 사랑의 마음까지 빛이 바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저자의 마음을 짐작할 만한 단서를 소설 속에서 찾아내지 못한 독자의 속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다혜를 의정부 기지촌으로 데리고 간 사람이 현태다. 민우의 망가진 민낯을 보게 해서 첫사랑의 환상을 깬 것도 현태다. 반면 다른 방해꾼 제니(은영)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민우를 바란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자해하고, 상상임신으로 민우를 자기 곁에 옭아매려고 한다. 결국 성적으로 유혹해서 아이를 가짐으로써 민우를 옭아매는 데까지 성공한다.

 


 

또 민우의 성격도 요즘 청년 같지 않다. 매우 유약하다. 다혜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혜 앞에서 유약해진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순수함을 지녔으니 당시 시대상으로는 '좋은 남자'였을지 모르겠다. 독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 심정을 잘 안다. 이런 사람이 연애에 실패하면 오히려 스스로 타락하고 자신을 더럽힘으로써 연인을 보내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민우를 '피리부는 소년'이라고 부르던 현태는 사랑 앞에 친구를 걷어찬 꼴이 아닌가. 민우는 다혜와의 만남을 현태를 통해 완강히 거절한다.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진 민우가 자신감도, 자존감도 모두 잃었다는 증거다. 이제 이야기는 민우는 순수한 다혜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로 흘러간다. 고민하고 멀어져가게 된다.

다행히 소설은 '다혜의 예감'을 통해 하나의 복선을 드러낸다. 다혜는 민우의 내면이 어두워서 왠지 선뜻 그와 사랑한 만큼 맺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친구인 현태가 방해가 될지는 생각하지 못한 다혜. 예감일까, 아니면 작가 최인호의 소설 구성의 스킬일까. 현태의 배신적 행위가 당시 사랑의 모습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돈과 여자를 위해서는 '친구'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당시는 사회 분위기 상 전혀 아니고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는 다혜는 영리하지 못한 것이다. 젊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아날로그 세대)가 꿈꾸던 사랑 이야기을 어떻게 들을까? 미련하거나 혹은 바보이거나? 민우의 죽음은 '다혜와 현태의 결혼' 이후에 발생한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보다 이 소설을 지금 젊은 세대가 읽는다면 감동할까? 아날로그 독자로서는 그것이 더 궁금하다. 독자는 아날로그 세대로서 소설의 끝이 '해피 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경험과 그때의 사회 분위기, 연애 감정을 안다면 대부분 독자와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이 책이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삽화가 너무 현대적이라는 것. 물론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읽히기를 원하는 출판사 측의 결정이겠지만 삽화의 그림이 남녀 주인공 모두 현대적 감각이어서 소설의 내용과 조금 덜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애절하고 비극적 연애, 사랑의 느낌을 주기 위해 갸날픈 느낌의 '청순가련형'을 묘사하려는 의도인 줄 알지만 너무 만화 같은 느낌의 삽화가 이때의 느낌을 아는 아날로그 독자에게는 오히려 낯설다.

소설이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독자의 감정은 오히려 푹 내려앉았다가 알 수 없는 슬픔이 깃든다. 민우의 아들(제니와의 사이에 낳은)을 안고 현태와 다혜 부부가 안고 무덤을 찾는 일에서다.

현태가 무덤 위를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처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민우야. 너무 늦었다. 너무 네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용서해다오."

현태는 무덤가에 앉아서 손으로 무성한 잡초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무덤 주위를 돌면서 봉분 주위로 웃자란 잡초들을 뜯어냈다.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옛 친구에 대해 속죄라도 하는 듯이.

소년은 소나무숲에 앉아서 물끄러미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중략)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하고 그토록 생각하고 그토록 기도하던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그 사람이 저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 아름답던 젊음은 저 무덤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헛간 속에 채집되어 있다.

그 사라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2권 p.324~325)

 


 

저자 : 최인호(崔仁浩)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 왔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소설 『가족』을 연재하여 자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이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우리의 역사에 천착하며 한민족의 원대한 이상에 접목하는 날카로운 상상력과 탐구로 풍성한 이야기 잔치를 열어왔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또 얼마 뒤에는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인기를 모은다. 이후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병정놀이」, 「죽은 사람」 등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에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왜곡된 개인의 삶을 묘사한 최인호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 ‘상업주의 작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과 같은 장편을 선보이며 지칠 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최인호는 2001년 『상도』의 대성공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거듭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병태와 영자』『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만의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꾸준한 관심의 결실로 1986년엔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분야들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길을 보여주었다.

 


 

〈샘터〉지에 34년 6개월 간 연재한 '가족'을 건강상의 이유(2008년 발병한 침샘암 투병중)로 2010년 2월을 기해 연재중단을 선언하였다. 2010년 1월에는 죽음과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집 『인연』을 출간하였고,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투병 중 집필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등단 이후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제1기의 문학’과, 종교·역사소설에 천착했던 ‘제2기의 문학’을 넘어, ‘제3기의 문학’으로 귀착되는 시작을 알렸다. 이 소설로 2011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암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어 2013년 9월 25일 오후 7시 10분에 향년 68세로 사망하였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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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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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억에 최인호는 '천재 작가'다. 그의 천재성은 작가 등단 때부터 빛났다. 고등학생 때 이미 중앙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한국 문단사에서 드문일이다. 한 번도 아니고 다른 신문사에 또 한 번 당선됐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려운 신춘문예 통한 등단을 두 번이나 어린 나이에 통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 생활의 신호였을 뿐이다. 문장과 표현, 묘사 등 독자의 관심과 가독성을 생각하고 쓴 것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인기를 발표한 소설마다 끌었다. 마침내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우리나라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다는 신문사에서 신문연재 소설을 제의한 모양이다. 최인호는 응했다. 그래서 책으로 펴내기 전에 신문 연재로 발표됐던 소설이 이 작품 『겨울나그네』다.

당시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 공모에 장편소설이 없었고, 단편이 주로 심사 대상이었다. 장편은 자신의 능력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책을 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란 글쓰는 능력을 말한다. 지금도 그런 출판사들이 있겠지만 당시 출판사는 대부분 영세했다. 독자 역시 소설 책을 사볼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았다. 책에 대한 욕망은 크더라도 실제로 사서 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돈이 있어야 소설 책을 사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까지의 소설은 대부분 단편소설 위주다. 같은 소설 한 편을 읽더라고 열 편 가까이 실려 있는 책과 한 권으로 한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것은 커다란 결심이 아니면 선뜻 사기 어려울 때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독자라면 대부분 대학생이나 일반 시민들인데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소설 책을 사본다는 것은 '부자' 아니고서는 감행하기 어려운 결단이다.

이런 이유로 단편소설은 60~80년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 소설 문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작가들 입장에서도 장편을 쓸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사서 보지 않는다면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는 없다. 그러나 최인호는 달랐다. 이미 신춘문예를 통해 검증된 작가인 데다 '대중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그의 천재적 재능이 발휘된 것 같다. 그는 잘 쓸 뿐만 아니라 많이 썼다. 놀라울 속도로 글을 썼다는 후문이다. 글쓰기에 성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인호가 소설가로서 명성을 날리자 인기를 체감한 영화사들도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대중작가로서 최인호는 그렇게 대한민국 1위가 되어 갔다.

 


 

이 책 『겨울나그네』 역시 영화로 영화관에 걸린 후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당시 작가 수입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막대한 인세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출판사 역시 돈을 얼마나 벌었을지 짐작이 간다. 최인호는 쓰기도 전에 출판사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릴 때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한적한 곳으로 피신할 수도 있을 텐데 최인호는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열중이었는지, 원래 아무곳에서나 잘 쓰는지는 독자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최인호 인기 만큼 경제적으로 차츰 좋아져 갔다.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급속한 산업화는 상대적 빈곤을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절대적 경제 사정은 점점 나아지게 했던 것 같다. 의식 있는 작가들은 산업화의 그늘(노동자 문제, 빈부 문제 등) 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발견해 응축적으로 잘 썼다고 한다. 사회를 풍자하고 어두운 곳도 그대로 표현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나라 발전을 위해 '펜'을 보탰던 작가들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몇 소설가들의 이름을 댈 수 있지만 당시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 독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니까. '단편소설 전성시대'는 우리나라 리얼리즘 문학의 전성시대이기도 하다.

최인호는 사회의 또 다른 소외 계층에게 시선을 돌린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남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여공들, 사랑하는 남자의 고시 뒷바라를 위해 손가락질을 받으며 술을 따르던 호스티스 등이다. 모든 그늘진 곳도 최인호가 펜을 들면 사랑이 피어난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다. 이런 사랑이 당시의 사회적 추세이기도 하겠지만 원래 사라은 비극적이어야 더 아름답다는 옛말이 있잖은가. 이때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노사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요 1위곡을 차지할 때와 때를 같이한다. 이 소설 작품 『겨울나그네』도 비극이다. 두 주인공은 다혜(원래 신문 연재 때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책으로 펴낼 때 딸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와 민우. 두 사람의 만남은 사소하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민우가 다혜와 가벼운 부딪침으로 다혜가 안고 가던 책을 바닥에 내동댕이처진 상태로 다혜는 넘어진다.

 

 

최인호는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이 소설은 1984년 동아일보에 일 년여를 연재했고, 같은 해 첫 출간 이후 100쇄 이상 중쇄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읽히며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 소설에는 통속적이고 가벼운 세태 속에서 빛 바래가던 ‘민우’와 ‘다혜’, 두 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 최인호는 〈머리말〉을 통해 이 소설의 표제어 '겨울나그네'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빌려왔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잘 알려진 것처럼, 현실과 사랑의 환상 사이에서 방황하다 마침내 미쳐버린 청춘의 절망과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한 연가곡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제목 「보리수」, 「거리의 악사」도 〈겨울나그네〉에서 따온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가슴 아픈 청춘의 방황과 참혹한 젊은의 슬픔을 그리고 싶은 열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은 책으로 펴낸 이후에 영화, TV 미니시리즈, 뮤지컬로까지 다양한 문화장르와 결합해왔다. 1986년 영화화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 청춘영화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고, 1989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1997년에는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소설의 〈머리말〉은 2005년 작가가 직접 쓴 것이다. 2023년, 작가의 10주기를 맞는다. 출판사는 작가 최인호를 기리며 이 개정판을 올해 출간한 것이다.

작가는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사랑을 그리고 싶다는 작품의 모티프”로 ‘민우’라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전도유망한 의대생 ‘민우’와 병약하지만 불꽃같은 열정을 품은 ‘다혜’를 통해 변치 않는 사랑의 원형과 순수한 청춘의 초상을 일깨워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통속적이고 가벼운 세태 속에서 지고지순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풋풋하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한없이 빛나고 가슴 설레었던 지난날을 추억하게 한다. 독자 역시 오랜만에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의 모습에 새삼 가슴 저미는 슬픔과 열정이 한동안 눈을 가렸다. "나도 그랬었나?" 하는 마음속 질문과 함께...

 


 

잠깐 언급한 대로 민우와 다혜가 처음 만난 것은 설렘으로 가득한 개강 첫날, 봄날의 오후 대학 캠퍼스였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다혜를 사랑하게 된 민우는 친구 현태의 도움으로 다혜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술집 여인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민우는 뜻하지 않게 전과자가 되어 대학을 떠나게 되고, 기지촌으로 흘러들어가며 이후 그의 삶은 점점 타락과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다혜가 속한 세상과 멀어져만 간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와도 같았나니.

 

기지촌에서의 생활과 전과로 인해 다혜의 곁을 떠나려는 민우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기다리는 다혜. 현태의 도움으로 둘은 재회하지만 민우는 기지촌과 그곳에서 만난 은영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다혜는 점점 현태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민우가 또 한 번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감했을 때 은영은 그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현태와 다혜는 서로 의지하며 차츰 민우를 잊어가고, 몇 년 후 불현듯 찾아온 은영에게서 민우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지고지순한 민우와 다혜의 사랑은 찬란한 빛 속에서 흘리는 한 줄기 눈물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장갑은 공짜로 드립니다."

은영은 신부를 위해 준비해둔 열 벌의 드레스를 거의모두 입어본 뒤에야 한 옷을 선택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데 너무 시간이 걸렸으므로 예식장 직원은 실경질을 부리면서 짜증을 냈다.

"어때요?"

마침내 좀 커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은영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물었다.

"어울려요?"

민우는 물끄러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영을 보았다. 그는 약간 취한 상태였다. 용기를 돋우기 위해 숨을 가볍게 마셔으므로.

"예뻐."

감정 없는 목소리로 민우는 대답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영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변신해서 아름답게 보인다 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악마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 역시 상관없는 일이었으므로.

단 위의 촛대에 촛불이 켜졌다. 두 사람은 단 아래 섰다. 양옆 게시판에 민우의 이름과 은영의 이름이 나붙었다. 서로의 부모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하객들이 앉아야 할 객석에는 을씨년스런 어둠이 가득했다.

이미 술에 취한 사진사가 혼자 신이 나서 두 사람에게 팔짱을 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은영은 민우의 팔장을 다정스럽게 꼈다.

"웃으세요."(1권 p.412~41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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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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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우리 시인 박인환이 떠오른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박인환은 우리나라 모더니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언급되는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했던 것 같다.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시인 박인환을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그의 시를 즐겨 읽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의 서울 명동에서 문우 등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대한민국의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생활을 견뎌낸 시인이어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은 곡까지 붙여 뒤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에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하략) - 〈목마와 숙녀〉 일부

 


 

〈목마와 숙녀〉 싯구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가 알기에는 숙녀와 버지니아 울프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시 발표 후에 문학평론가들이 싯구의 문맥상 다른 인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목마와 숙녀〉를 몇 번이고 읽어 보면 시의 분위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나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버지니아 울프의 13편의 작품에 대한 설명 및 해석, 마음 깊이 기억할 212개의 문장을 소개한다. 저자 박예진은 풍부한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20세기 대표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의 작품을 한 권의 책에 엮어냈다. 후대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버지니아의 명문장을 영원히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힘이 되는 그의 문장들로 우리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바탕으로, 버지니아는 그의 명료한 생각과 아름다운 상상을 글로 그대로 옮겨냈다. 저자 박예진은 울프의 작품 『자기만의 방』에서는 언제든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할 수 있고, 『등대』를 통해서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기도 한다.

울프는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자랐지만 정신질환은 그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린다. 더욱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하니 정신적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짐작이 일반적이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 증세를 보임으로써 마지막 가늘 길에도 유서에 이를 남겼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프롤로그〉에서 그가 남편에게 쓴 마지막 편지 내용을 알림으로써 시작한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p.14) - 유서 일부(전문은 p.205~206에 수록돼 있음)

 


 

정신질환이 다시 도짐으로써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절반이다. 또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 대한 사랑에 감사함과 당신이 만들어준 삶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말을 남겼다. 간결하고 명징해 독자로서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다. 이 정도의 글을 쓸 능력이 있다면 정신질환이 심해진 상태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미욱한 판단이겠지만. 버지니아는 사실 결혼 전부터 신문에 평론과 에세이를 꾸준히 기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훗날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다.

저자 박예진에 따르면 한때 버지니아는 작품보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더욱 유명한 작가였다. 그래서 그를 둘러싸고 예민하고 우울한 얼굴을 가진 작가라는 편견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의 요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쓴 작품들은 수많은 이이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바이올렛 디킨슨에게 남긴 편지는 희망과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다.

"불행해질지도 모르지만 행복해질지도 몰라요. 수다쟁이 감상주의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책 속의 글자 하나와 나를 활활 타오르게 할 그런 작가가 될지도 몰라요."

저자는 버지니아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로서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털어놓는다. 난해하다고 인식되는 '의식의 흐름' 기법조차 버지니아 특유의 명쾌함과 예리함을 가릴 수는 없었으니까. 특히 버지니아만의 개성이 선명히 드러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면, 저자는 종종 그의 문장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노트에 적어 놓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노트를 채우고 이 책이 탄생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유명 작가, 버지니아의 문장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의 글 속에는 여러 차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물상, 자연현상의 의식적 표현 등 버지니아의 글은 때로 난해하게 읽히기도 해 종종 독자들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하니까요."(p.17)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모두 4부(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다〉, 2부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식의 흐름에 몰입하다〉, 3부 〈초월적인 존재를 사랑하게 되다〉, 4부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등이다. 각 부에는 3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으며 1부에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A Room of One’s Own」,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Three Guineas3기니」, 「내면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여행-The Voyage Out」이다. 각각 작품 「자기만의 방」, 「3기니」, 「출항」에 들어 있는 문장들을 뽑아 설명하고 있다. 2부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의식의 흐름-The Mark on the Wall」,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Night and Day」, 「인생에서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Jacob’s Room」로서 작품 「벽에 난 자국」, 「밤과 낮」, 「제이콥의 방」에서의 문장을 뽑아 영문과 함께 번역문으로 나란히 두고 작품의 해석을 곁들인다. 3부는 「개의 공간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Flush」, 「남성과 여성이라는 분리를 넘어서-Orlando」, 「삶과 연극은 어떻게 다른가-Between the Acts」라는 제목으로 작품 「플러시」, 「올랜도」, 「막간」을 비교 설명한다. 마지막 4부에는 「내면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 미학-To the Lighthouse」, 「영혼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The Waves」, 「생의 유한함과 영속성 사이에서-The Years」으로 작품 「등대로」, 「파도」, 「세월」에서 저자 박예진이 좋아하는 문장을 뽑고 읽으면서 남긴 메모나 주석 등을 달아 책으로 펴냈다.

버지니아는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해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는다. 소설가로서 버지니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또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버지니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고 문학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자 박예진은 이 책을 통해 의식의 저편 너머로 버지니아의 문장을 읽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아우르는 문장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버지니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출 때, 우리는 드디어 자아를 돌보고 자립과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울이나 어둠의 정서로만 비춰졌던 오해의 그늘을 벗어나 페미니즘, 여성 퀴어 등 시대를 앞선 주제의식을 포함해 다정함, 따듯한 사랑, 유머와 위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비행'을 끝없이 추적하는 버지니아 열정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란 제목의 〈부록〉을 통해 『버지니아의 일기』 일부를 소개한다. 이 일기는 버지니아가 26세였던 1915년부터 53세가 되기까지 썼던 일기 중에서 버지니아의 문필생활과 관련된 부분만을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가 엮어낸 것을 이 책에 소개했다. 저자 박예진은 "일기에 그려진 버지니아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자주 아팠던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초조하거나 비참한 기분일 때 주로 일기를 썼기 때문에 그의 벙든 측면이 더 부각된 것인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밝힌다. 저자는 "주로 본인이 겪었던 일,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 인생이나 우주에 대한 고찰, 그리고 어떻게 글을 구상하고 쓸 것인지를 정리한 것들"이라며 "버지니아는 글의 결말까지 빠르게 써 내려간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고쳐 쓰는 식으로 글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인다. 작품 해설에서 한마디로 책과 울프를 정리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영문학의 거장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울프의 단편 모음은 깔끔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을 울프의 작품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는 문장의 소개에서 계속해서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덕분인지 그는 『등대로』를 쓰면서는 "평생을 통해 가장 빠르고 가장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제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이다"라는 내용을 일기에 찾아내 소개한다. 또 자기 확신이 생긴 버지니아가 『제이콥의 방』을 대하는 태도는 인상적이라고도 말한다. 버지니아는 마음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는 방법을 나이 마흔이 되어 찾아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외친다는 부분을 소개하기도 한다.

 


 

울프는 영국에서 나고 살았지만 '하버드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BBC에서 뽑은 위대한 영국소설 25편 중 세 편을 싹쓸이한 유일한 작가라고도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선정 인류의 필독서,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순위 TOP100에 언제나 올라 있는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라고 소개된 책도 있다. 이처럼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지니아 울프는 독자들의 사랑과 놀라운 기록을 한몸에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었다. 이유는 이 책을 읽는다면 금세 알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편역 : 박예진

 

북 큐레이터, 고전문학 번역가. 박예진은 고전문학의 아름다운 파동을 느끼게 만드는 고전문학 번역가이자 작가이다. 또한, 문학의 원문을 직접 읽으며 꽃을 따오듯 아름다운 문장들을 수집하는 북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문체의 미학과 표현의 풍부함이 담긴 수많은 원문 문장들을 인문학적 해석과 함께 소개해 독자들이 영감을 받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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