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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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Zombie)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형 좀비 영화의 가능성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에 이어, 칸 영화제 초청작 〈반도〉가 코로나로 침체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 역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K-팝' 열풍을 넘어서는 'K-좀비' 시대라고 하면 독자의 편견일까.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 좀비영화는 대개 사회 풍자적이거나 블랙 코미디 성향이 강하다. 이 사회 풍자가 좀 막 나가면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좀비영화 같지가 않은 괴작들도 종종 나온다. 일반적으로 좀비영화라 하면 시체, 피, 고어. 괴작 중에는 심지어 전쟁에서 죽은 것이 한이 되어 투표권을 행사하려고 군인 좀비들이 국립묘지에서 부활하는 미쿡 좀비영화도 있다(《마스터즈 오브 호러》 1시즌 6편 '귀향<Homecoming>').

이 책은 좀비 장르가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이던 시절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오늘날까지 무한한 상상력으로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왔던 자타공인 ‘좀비 전문가’ 정명섭의 장편 소설이다. 미스터리, 서스펜스, 호러, 로맨스 장르를 아우르는 들녘 〈미스티 아일랜드〉 시리즈의 신간으로 선보인다. 책의 제목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에서 '그들'이 바로 좀비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살아 있는 시체, 즉 좀비들이 지구를 잠식한다. 인류는 좀비들을 피해 우주로 도피하였다가 102년 만에 귀환하는데, 폐허가 된 지구에 다시 돌아온 이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2012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절찬리 연재되었던 바 있으며,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다듬어 정식 출간한다. 여기에 따뜻하고 몽환적이면서 개성적인 작품 세계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산호가 표지 및 삽화를 그렸다. 작품 속 세계를 선명한 시각 이미지로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좀비물이라는 장르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긴 하지만, 그 시초는 오래전 일인 까닭에 많은 이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고 일종의 클리셰까지 형성되어 있는 장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비물의 핵심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이언스 픽션 장르까지 접목하여 새롭고 독창적인 서사를 펼쳐 보인다. 단연코 올여름 기대할 만한 신작이다.


좀비 상상도 시사상식사전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구인류라 불리는, 좀비 바이러스 발생 당시를 살았던 인간들의 이야기와 우주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지구를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신인류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며 소설의 서사를 이룬다.

좀비 바이러스 확산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인류는 우주로 이주하고, A.D.의 종식과 함께 좀비 아포칼립스, 즉 Z.A.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한다. 하지만 필요한 자원은 물론 산소조차 얻기 힘든 우주에서의 생활은 고달픈 것이었다. 그리하여 102년 만에 인간은 지구로 돌아가기를 선택하고, 곳곳에 선발대를 보낸다. 그중 한반도 원정대장으로 파견된 K-기준은 현지를 정찰하던 중 우연히 구인류의 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일기를 통해 좀비 출현 사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해간다. 맨 처음 아칸소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유행병처럼 퍼져나간 좀비 바이러스는 차츰 일상의 균열을 내고 모든 사회 질서를 전복하며 남은 자들의 인간성까지 파괴해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한반도 원정대는 예측 밖의 돌발 상황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고, K-기준은 곧 사령부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으며 지구를 되찾기 위한 또 다른 사투가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세상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자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정말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상상의 나래와 함께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호러 장르의 수많은 분과 중에서도 유독 좀비 장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좀비 장르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만들어내는 불가해한 공포와 재앙 및 재난 서사가 만들어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두려움 사이의 영역에 위치해 있다.

일상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라는 현실적인 공포와 좀비라는 대상이 주는 비현실적인 공포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좀비 장르는 일상의 위기에 반응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좀비물은 상당 부분 현실의 반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어느 날 등장한 좀비 바이러스로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목도하면서도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하였다. 그러면서도 우주 세대 신인류의 시각을 통해 서사를 전개해간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상상력을 배가하는 장치도 잊지 않았다고 평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상의 끝에서 자신의 모든 소유와 인간애까지 가진 것을 다 잃고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살아남겠노라고 다짐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생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확인해줌과 더불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때는 Z.A. 102년. Z.A.란 좀비바이러스가 팬데믹 사태에 이르러 전 지구가 좀비에 의해 잡아먹힌 사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우주로 떠난 인류가 102년이 지나 다시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 곳곳에 착륙해 생존지를 확보하려는 원정대. 그 가운데 한반도에 도착한 팀을 중심으로 사건은 진행된다. 과연 이들은 지구 정착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 아칸소에서 시작된 독감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한반도는 서울을 시작으로 수도권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심정지 후에도 움직이는 시체의 출현에 미국 당국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정보가 밖으로 유출되지 못하게 하는 데만 급급해하는 사이 사건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런 아비규환 같은 상황에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지구를 탈출한지 어언 백여 년, 시뮬레이션대로라면 좀비가 멸종했을 거란 예측을 토대로 지구파는 11개 탐사선을 꾸려 세계 곳곳에 탐사팀을 보내 지구의 근황을 살펴보기로 하지만 대부분의 탐사선은 지구 착륙 도중 불안한 기체 결함으로 인해 사라져 실제로 지구에 발을 내린 탐사선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한반도에 발을 내린 K-기준이 선두로 이끄는 탐사선은 지구에 닿자마자 좀비와의 격렬한 싸움을 한 뒤 곧 뒤따라 올 지원팀을 맞이하기 위해 정착지를 만든다.

그리고 다음날 주변 정찰에 나갔던 K-기준은 맨홀 밑으로 빠져 고립되고 어두운 곳에 혼자 갇혀있다는 사실보다 좀비가 있을지도 모를 두려움 속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때 오래전 좀비 출현 당시의 상황을 지구인이 기록해 놓은 일기장을 발견한다.





기장의 주인은 이대 앞 치즈베라는 카페에서 일하는 청년으로 미국에서 발생한 아칸소 독감이 전 세계로 퍼지는 상황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다. 그럼에도 아직 한반도까지는 영향이 미치지 않아 긴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윽고 정부의 조치로 항공이 폐쇄되고 사람들의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점점 혼란스러움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프리덤 워치라는 단체가 미국이 숨기는 영상을 보여준다 .

그렇게 조금씩 밝혀지는 아칸소 독감의 실체가 죽지 않고 썩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인간이었으니 점차 수가 증가하면서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고 일기장의 주인공을 비롯해 프리덤 워치 멤버 몇 명이 모여 카페를 아지트화하기 시작한다.

버려진 건물처럼 보이도록 꾸미고 장기전 돌입을 위해 비상식량과 무기 등을 구비해놓던 젊은이들은 좀비 소탕에 나선 군인들의 등장에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좀비와의 전투는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아닌 군인의 개입으로 아군 간의 피 터지는 전쟁이 군인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불투명해지기만 하다.





좀비 이야기라고 하면 다소 뻔한 스토리대로 이리저리 끌고 가다 결국엔 비스무리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곤 하는데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도 그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그런 뻔해 보이는 스토리보다 좀비의 출현으로 당장 내가 살기 위해 약자를 내쳐야 하는 인간 상실에 비중을 두고 있어 눈앞에서 뇌수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 널브러져 있는 것에 무덤덤해지고 당장 내가 살기 위해 돌이 갓 지난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는 애 엄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외면해야만 하는 현실은 내가 살아남고자함인 본능이지만 당연히 느낄 인간애까지 버려야 할 때의 그 고통은 죽음과 견주었을 때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점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어 좀비 소설임에도 지금껏 보았던 좀비 소설과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달에서 채취한 석영을 정제해 만든 관측창으로 본 지구는 온통 잿빛이었다. 왠지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K-기준은 공용어인 영어로 중얼거렸다.

“지구는 밝고 찬란한 녹색이라고 하지 않았나?”

“웬걸. 데이모스보다 더 어두운데.”

그들에게 Z.A. 이전의 지구는 물과 대기가 무한하고, 필요한 광물질이 모두 존재하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어쩌면 그런 꿈같은 기억 때문에 인간들은 지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비에게 희생당하고, 핵폭발로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말이다. 여하튼 드디어 인간이 이 땅에 다시 돌아왔다. 백 년만에.





“좀비들은 주로 남동쪽에서 나타났네. 하지만 나흘 전까지는 그쪽에 위협이 될 만한 좀비 집단이 없었어. 그런데 이걸 봐. 사흘 전 저녁에 찍은 거야.”

홀로그램 이미지가 변하면서 좀비를 뜻하는 녹색 점이 지도 위에 표시되었다.

“좀비 무리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마법처럼 갑자기 나타났어. 그리고는 곧장 우리 쪽을 향해 진군해왔네. 마치 군대처럼 말이야.”

“그래도 출몰한 곳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의심 가는 곳이 있긴 하지.”

사령관이 손으로 홀로그램 지도의 끝을 찍자 지도가 그쪽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인공적인 구조물들의 홀로그램이 솟아났다.

“이건 뭡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구조를 보면 군사용임이 틀림없어. 지명도 확인했다네. 평택이야.”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그래, 꼬맹아. 인간이 지구를 되찾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해. 하지만 적어도 그 피는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지 않고 대지에 뿌려지겠지. 지구에서 인간으로 죽는 거야.”

우리는 동시에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스쿠터가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자빠질 때까지. 와당탕 넘어지면서 그녀와 부딪치는 바람에 이마가 얼얼했지만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

짧은 입맞춤 후 그녀는 두렵지만 이겨내보겠다고 말했다. 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대답했다.





저자 : 정명섭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과 바리스타를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대중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글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하거나 사라진 공간을 얘기할 때 빛이 난다고 믿는다. 그동안 쓴 작품으로 역사추리소설 『적패』를 비롯하여 『개봉동 명탐정』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유품정리사』 『한성 프리메이슨』 『어린 만세꾼』 『상해임시정부』 『살아서 가야 한다』 『달이 부서진 밤』 『미스 손탁』 『멸화군』 『불 꺼진 아파트의 아이들』 『어쩌다 고양이 탐정』외 다수가 있다. 그 밖에 『조기의 한국사』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선 사건 실록』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라』 『역사 탐험대, 일제의 흔적을 찾아라』 등의 역사서와 함께 쓴 작품집 『일상감시구역』 『모두가 사라질 때』 『좀비 썰록』 『어위크』 등이 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상을 받았다. 한국 미스터리작가모임과 무경계 작가단에서 활동 중이다.


그림 : 산호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상상을 눈앞에 옮기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픽노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을 출간했으며,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그림 속에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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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K-포엣 시리즈 13
이영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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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는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은 이영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동시에, 적절한 무게로 이영주 시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시집이다. ‘K-포엣’ 시리즈 열세 번째 시집이다.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을 시에 대해 “거대한 상실의 시간을 삼킨 채 존재하는 삶을 그린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깊게 드리워져 있는 불행 등을 부정하지 않고, '포개어진 손으로 백지를 가득 채우며' 삶에 대한 도전을 이어 간다고 평했다.

이따금 그 불안을 딛게 해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록하며. 시인의 삶의 의지를 시인이 쓴 죽음에서 찾아낸 듯하다.

함께 출간된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영문판에는 이영주 시인의 시 세계를 오랜 시간 들여다 본 김재균 번역가의 번역이 실려, 시의 해석과 품격을 높였다.





이영주 시인의 시에는 늘 죽음이 어른거린다. 얼핏 죽음을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옥의 다양성. 나가고 싶어. 나는 슬픔처럼 얼음에 끼어 있다. 하지만 넌 유리 유골 공예처럼 죽음까지 다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며 말했다. 걸어가면서 파편이 떨어진 한밤을 뒤돌아보곤 했다.(하략)

<빙하의 맛>


다마스쿠스의 이야기꾼들은 몇 세기가 넘도록 카페에 모여 있지. 나는 카페 문을 닫을 수가 없네.


이야기꾼들은 불빛 아래에 모여 서로의 사랑에 대해 물어본다. 세계에서 제일 끔찍한 일에 대해 물어본다. 어떤 자는 깊숙이 앉아서 생물이란 천천히 짓밟히면서 섬세하게 자란다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어두운 마음에 대햐여 이야기하고 있다. 의자 곁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검은 생물체와 마주보고 있어. 어떻게 이 오랜 시간을(하략)

<생활적인 카페 주인>





시인은 <시인 에세이>를 통해 덧붙인다.


안경을 썼지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매일매일 망명을 생각한다.

열하홉. 일기에 쓴 문장이다. 아, 이런 허세라니.

인간이 자아를 형성하는 데에는 동일실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는 돌 같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든 돌이든, 우리는 격렬한 불안의 세계로 내던져진다. 그 사라과 그 돌과 나는 다른 층위에서 걸어 나왔잖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잖아. 태어나서 죽는 위치도 다르니까. 심지어 죽지 않는 돌은 어쩌니. 물론 죽는 순서는 뒤비뀔 수 있다.

(하략)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이영주의 이번 시집은 그간의 이영주 시집의 존재 여부를 무의미하게 여기게 되는 지점에서 읽힌다. 대부분 새로운 시집은 앞선 시집들이 일궈놓은 성과의 연장으로서(그 의미가 하나의 맥락을 이루는가 그렇지 않는가와 무관하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주목을 요하는 하나의 지점을 갖는다. 어째서 이 시집에 묶인 시집들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쌓은 이영주 시의 세계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는 이어 "무엇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기' 자체에 의미를 두듯이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눈물집]에서 말하듯 "죽었는데도 왜 형태를 보존하는 일에 그렇게 힘을 쓰는지"와 같은 물음의 형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데도 그 삶을 지속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째서 어떤 삶은 그 삶과 연결된 또 다른 삶들에게 '삶이란 단절의 형식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물음이 절실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의 삶'의 상실을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흘러가는 것'에 주목하는 이 시집 속의 특별한 시선에 주목해볼 수 있다. 여기서 흘러가는 것들은 '흐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비자발적인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가족의 죽믕을 목격하고 경험한 삶에게 죽음은 생을 마치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듯 살아 있어야만 했을 그 모든 순간들에, 그 삶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듯 실제로 죽음을 맞을 때와 같은 굵직한 국면들 외에도 그 사이를 메우는 무수한 기억들 속에서 그는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주의 시는 그 역설적인 삶의 방식ㅇ르 '흐르는 것'이라는 존재 양태로 그려낸다.

삶은 그저 흐르는 것 속에서 발견되고, 흐르는 것은 그것을 흐르게 하는 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채로만 계속 흐를 수 있다는 것. 이 점을 시인은 말하고 있나 보다.

독자는 제목 속에서 '이 여름의 나'를 생각해본다. 코로나와 집중폭우 속 어수선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의 고통도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기 힘든 것이라면 동반하면서 그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죽음 같은 고통이라도.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읽고 싶은 한국 시의 정수를 소개하는 ‘K-포엣’ 시리즈. 시간이 흘러도 명작으로 손꼽힐 한국 시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알리어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저자 : 이영주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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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란 무엇인가 - 맨날 속는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 설명서
신상준 지음 / 생각의창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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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란 무엇인가』란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독자 개인으로선 어렸을 때부터 정치엔 큰 관심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의 범위 자체에 없었다. 집안에 정치하시는 분도 없는 데다 독자 성격상 정치와는 안 맞는다는 스스로의 판단 결과다. 더욱이 그들이 저지른 비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는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란 생각으로 국회뿐만 아니라 정치인 자체가 싫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정치 일선에 들어서고 정책적으로 국민의 아픈 부분이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법 제도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부터다. 군부 독재시절 학교를 다니고 사회 첫 발을 내디딘 많은 분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라 봐도 무방할 때였다. 군부 독재시절엔 그야말로 순치됐기 때문에 별 희망도 갖지 않아서 그런 장면은 가슴이 설렐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 교수가 서양 사상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당신보다 더 멍청하고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란 말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 정착 단계까지 왔다고 대외적으로 인정 받게 됐다.

그런데 민주주의 본산이란 국회는 왜 아직도 서로를 바방하고 심지어 몸싸움에 막말까지 하며 싸우나? 하는 의문이 많이 일었다. 이 책은 그런 의문을 해소해줄 적절한 책이란 생각이다. 부제에 "맨날 속는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 설명서'라고 쓰여 있다.





『국회란 무엇인가』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놈이 그놈'이라며 불신하고 욕만 하는 국회에 대한 이야기다.

‘국회를 알아야 나라가 산다’는 사명감으로 저자 신상준이 집필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헬조선’이라 불리는 곳에서 태어나, 새벽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최저임금의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도 생애 첫 선거권 행사에 설레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국회란 어떤 곳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썼다.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문헌조사를 병행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그만큼 이 책은 전 국민의 인문학적 상식 쌓기를 위한 정치 교양서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했다는 얘기로 읽힌다.





저자는 책에서 자문자답하며 책이 왜 썼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을까.

“국회선진화법은 무엇인지?” “패스트트랙은 무엇이고, 연동형비례대표는 또 무엇인지?” “선거권은 어떻게 주어지는지?”

“국민과 국회의원의 관계는 무엇인지?” “대통령은 임기 중 탄핵할 수 있는데, 국회의원도 탄핵할 수 있는지?” “국회의원을 탄핵할 수 없다면 왜 그럴 수 없는지?” “국회는 왜 맨날 싸우는지?”

아마 대다수의 우리는 제대로 된 답을 못하고 진땀이 흐르는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기 위해 쓰였다.

“국회란 무엇인가?”가 “정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일 정도로 국회가 곧 정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국회는 우리 정치에, 아니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로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이라는 우리는 어떤가?

국회를 잘 모른다. 아니 모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불신한다. 그리고 욕만 한다.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이 대목에선 독자도 '뜨끔'한다.

이 책은 이런 국회를 알기 위해, 국회의 기원에서부터 역할, 기능 등 우리가 알아야 할 국회의 모든 것을 이론화하고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 한 권이 정치 교양서로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상식과 지식 쌓기에 도움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마음을 담아서.





중앙정부의 의회인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우리는 매일 국회나 국회의원들이 한 일을 뉴스로 듣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국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원들이 모여 중요한 국가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은 다수인 국민의 뜻을 대신 전달하기 위한 곳으로 의회의 권한 중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은 입법에 관한 사항이다.

입법은 법률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의 실정은 어떨까? 국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싸우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국회에서 서로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국회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국민의 대표로 여겨지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있기에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토론과 거국적 협상을 통해 다양하게 분열된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것이 국회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인 대의 민주주의는 공개성과 투명성을 이념적 바탕으로 한다. 특히 대의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자유는 아주 중요하다. 언론기관이 공평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작동이 불완전하기도 하다.

국가가 언론기관의 독과점 현상을 방지하고 자유 언론 제도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해소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이유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개인의 자유도 보장되고 민주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으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해 독재의 우려가 있다. 물론 이런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현대는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퍼져있는 가짜뉴스가 오히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일부 매체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다. 지적이 받아들여져 가짜뉴스를 만들어 사익을 위해 쓰는 사람들이 받아들일지는 그래도 의문으로 남는다. 국회의원들이 뉴스를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회에서 '진짜 뉴스'만 발언할 정도로 정보와 지식이 있을까도 의문이다.





또다른 의문(과제)을 내놓은 채 이 책은 끝맺는다. 책의 주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순수하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를 말한다.

또 국민이 국회와 정치인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도출된 문제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제기된 문제에 국민과 정치인들이 각자 관심을 갖고 해결에 뜻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집필의도고 국회가 할 일의 첫 지점이다.


저자 : 신상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법학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은행 법규실, 조사국 등을 거쳐 금융안정분석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8년에서 2010년까지 바젤은행감독위원회, 바젤Ⅲ 개정을 위한 자본 정의 그룹에 참여했다. 한국은행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가족이 있는 삶’을 지향하며 주말 저녁 식사를 직접 마련한 지 15년이 넘었다. 2016년 11월, 대학생 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난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광장에 울려 퍼지던 평범한 주권자들의 외침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왔던 것이다. 길거리 분식점이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평범한 주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이 땅의 수많은 법률가와 정치인, 학자와 엘리트 가운데 그 누구도 민주주의와 공화국과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갑갑함을 느꼈다. 숭고한 광장의 주권자들과 마음속의 울림에 응답하기 위해 새벽 3~4시까지 숱한 문헌을 뒤적이며 정리한 투박한 공부의 결과로, 2017년 3월 《평범한 주권자의 탄핵공부》라는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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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를 꿈꾼다 -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 : 심화 편
임상빈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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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렵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느낀다.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 연주나 노래를 만나도 확 닿는 느낌이 별로 없다.

예술에 직접 참여하는 예술가들을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은 '예술은 어렵다'에 쉽게 동의한다. 물론 학문도 문외한에게 느낌이나 감동을 먼저 주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이 가야 비로소 감동도 되고, 아름다움과 숨겨진 메시지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라는 제목에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이란 부제를 붙였다. 독자 입장에서 잘 된 제목이라 생각지 않는다. 제목이야 주어와 목적어가 도치됐더라도 우리와 예술을 동급으로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우리와 예술이 공감대를 이룬다면 문제될 것도 없다.

부제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통찰이란 말도 쉽게 의미가 잡히지 않은 단어인데도 '예술적 인문학'이라니 이 무슨 언어의 향연인가. 독자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비롯됐기를 바란다. 만일 '예술이 전공한 사람들만의 전유물, 소수만을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 편견 말이다.

저자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예술 엘리트다.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위치도 확고한 것 같다. 예술 엘리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위해 책을 쓰는데 제목부터가 거부감이 드는 무지몽매한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가 사뭇 관심이 간다.





저자 임상빈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중요성, 인문학으로써의 예술, 자기 계발을 위한 예술의 세 가지다. 결론은 예술적 삶을 살고 예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장에서 <예술> <인문> <통찰>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서두를 연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본 작품의 이미지는 우리의 상상과 다르다. 저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실제로 봤을 때 훨씬 작았다고 회고한다. 뉴욕의 더러운 길거리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름에 충격이었다고 한다. 작품 자체가 뿜어내는 매력은 좋은 것인데 그것의 유명세에 편승해 유혹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을 상상하고 들은 것에 기초해 직접 가서 보면 실망한 점도 있을 것이다. 독자도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그 경험이 정말 있다. 모나리자를 봤을 때 그랬다. 그러나 박물관 규모는 크고 웅장한 것에는 경이롭다고 할 만큼 놀랐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며 ‘미술을 막연히 어렵고 멀게만 느끼는 현실, 갇혀 있는 사고방식과 죽은 지식으로 답답하게 전해지는 예술’이 안타까워 선입견을 넘어 예술의 매력을 함께 나눌 예술 인문학 시리즈를 구상했다. 앞서 선보인 첫 책에 이은 심화 편,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에서는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고 드러내는지,” “예술 작품은 어떤 도구와 요소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시되는지, ” 또한 “예술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탐험한다.

이 책은 도입부에 문어체로 화두를 던진 후 ‘사방으로 튀며 생생하게’ 이어지는 다채로운 대화로 구성된다.

저자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인 아내와 딸, 다른 이들과의 대화 상황을 비롯해 여러 담론이 담겼다. 더불어 곳곳에 유년기부터 유학 시절, 현재까지의 삶을 솔직하게 녹여낸 통찰과 생각들을 풀어낸다. 편안한 이야기 속에서 ‘미학, 예술, 역사, 철학, 사상, 사회’ 등 폭넓은 지식을 아우른다.

눈으로 보며 머릿속에서 들리는 그 대화와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미술에 대한 넓어진 시야와 마음에 남는 묘한 여운을 경험하게 된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많이 봐왔던 것이 꽤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작품에 대해 많은 듣고, 본 것도 있고, 다른 책이나 영상을 통해 배운 것도 있다. '환영'인데 실제보다 생생하게 생각되는 신기한 작품도 있다. 예술은 이렇게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나 보다.

저자는 '마술적 환영주의'라고 풀이한다. 사실적인 이미지, 느낌 오는 이미지, 다중 감각적인 느낌을 포함한 일종의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도구적 측면, 즉 작품을 어떤 도구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아쉽게도 미술학과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그 과목의 이수 학점수를 줄이는 추세여서 안타깝다고 한다. 저자는 입대했을 때 선임들의 자화상을 그린 예를 들고 있다. 재료의 중요성과 함께 작품을 어떤 요소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전시하며 우리는 그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만이 예술품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누구나 작품을 설계하고 구상할 수 있다. 노래방세서 누구나 가수이듯 예술도 언제 어디에서나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주장에 공감하자 실제로 예술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불현듯 생긴다. 주입식 교육에서 교과서에 실린 미술 작품과 화가들은 나의 생활, 나의 삶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선입견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면서 천천히 읽다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자질이나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쯤 되니 저자가 제목과 부제에서 사용한 부조화하고, 어려운 단어를 꿰맞췄다고 잠시 생각했던 독자의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을 고백한다.





독창적인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작품 등 다양한 창작을 이어 온 예술가인 저자는 ‘책’이라는 매체에서도 개성을 발휘한다. 현실감 있는 ‘대화’는 낯설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마치 예술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흥미롭게 만나도록 돕는다. 나아가 인문학적 지식 전달을 넘어 독자 스스로 능동적인 사고의 주체로 삶을 돌아보며 한결 자유롭고 행복하게 예술을 누리는 계기를 주고자 한다.

이 모든 시도는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는 ‘열린 사고와 대화’, ‘멀지 않은 예술’을 지향하는 저자의 순수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독자는 추측한다. 페이지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독자들과 마음을 나누려는 진심이 가득하다는 게 오롯이 전해져온다.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에서는 다채로운 비유와 의인화한 알레고리를 통해 예술 자신의 속마음과 예술의 절친한 친구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예술 작품은 경직된 지식과 특정한 방법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저마다 느끼는 대로 누리면 된다는 당부로 미술 감상의 높은 문턱을 낮춘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인생의 감독으로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예술가임을 강조한다. 맥락에 따라 오랜 역사를 가진 고전 작품은 물론, 최근의 현대 미술 작가와 작품들까지 폭넓은 예시들이 언급된다.

그렇게 인류와 함께 수많은 흔적으로 이어져 온 예술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꿈꾸는”, 인간을 위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목차를 살펴보면 독자들이 편하게 저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잘 구성돼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며,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가 미술가이기에 미술 위주의 설명이 이어진다. 완성된 예술작품이 어떻게 전시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마무리로 책을 전개시킨다. 같은 그림이라도 전시되는 장소에 따라 또 배치에 따라 주는 인상이 달라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본질은 같은데 놓인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찾아가는 작업이 예술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본격 이론들은 기대보다 다소 어렵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운 대목이 중간 중간 드러나오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가끔 철학 이야기까지 등장하여 당황할 수도 있다. 또 대화식으로 이어지는 미술 이야기에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독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읽는다면 마지막 책을 덮을 때는 유명 철학자의 강의보다 저술가의 어려운 말보다 훨씬 예술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놀라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미술 이야기를 글로, 말로 오래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미술은 시각 예술인데 작품 자체를 보지 않고 얘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조금만 갖고 저자의 예술론을 듣는다면 달콤하고 아름다운 작품 감상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고.





저자 : 임상빈


1976년 서울 생으로 어려서부터 미술작가가 꿈이었다. 예원학교 미술과,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교 대학원 회화와 판화과(PAINTING & PRINTMAKING)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티처스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과(ART & ART EDUCATI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미국 등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 세상을 살면서 깨우친 자신의 예술적인 통찰을 여러 방식의 글쓰기로 기록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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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교통
정병두 지음 / 크레파스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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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물물교환을 하기 전부터 모여 살았다. 가족 단위가 시간이 지나고 친척, 부족, 국가로 집단화했다.

집단화되면서 집단 간의 잉여생산물(주로 곡식이나 가축, 농기구 등)을 교환해 사용했고, 교환물을 용이하게 운반하기 위해 육로는 물론 강과 바다 등을 수로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물교환과 수로로 이용되는 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한 번 도시화가 되면 전쟁이나 대규모 감염병, 자연재해를 입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번성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자 이젠 운반을 위한 교통로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 정책적으로 인구 분산책이나 대체 도시 발전을 꾀하기도 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국가는 세금을 많이 내는 상인이나 무역 종사자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교통 편의를 정책적으로 해결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 계획적으로 도시화가 된 곳도 일정 기간 지나면 늘 교통 문제가 닥쳤다. 쇠퇴해 폐허화된 곳이 아니면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도시화는 결국 교통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더욱이 산업혁명 이후 지나친 화석연료 이용으로 기후변화가 대두되자 환경문제까지 겹치면서 어느 나라나 국가적 난제가 된다. 교통과 환경은 정반대 개념으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간혹 전쟁이 나면 전략적 이용을 위해 설치된 곳이 전쟁 후 도시화가 되기는 했지만 강 유역이나 바닷가가 대체적으로 상업화되기 쉬운 조건이었다.





이젠 각 나라들은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및 환경보호 요구 등 전 세계적 여건 변화에 발맞추는 도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이것은 관련 분야 관계자들만의 논의가 아니라 모두가 고민하는 과제이자 함께 이루어야 할 ‘모두의 일’이다. 도시 시스템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교통 역시 전공 학생이나 실무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통’이어야 한다. 이에 교통공학을 전공한 정병두 교수는 세계 곳곳을 돌며, 도시 공간의 특색을 살린 교통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자신의 견해를 담아 『도시와 교통』을 펴냈다.

교통수요관리, 교통정온화, 대중교통 중심개발, 간선급행버스체계, 환경친화적인 트램, 보행자 및 자전거와 공유하는 통합가로 등 사람 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교통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과 해법을 담은 『도시와 교통』.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 스마트모빌리티로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구성했으며, 국내 도시재생 활성화와 인간과 환경을 생각한 지속가능한 도시, 미래가치 지향의 사람 중심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을 살펴본다.





1장에서는 환경과 교통의 관계, 지속가능한 교통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며, 2장에서는 교통정온화, 최고속도규제, 보행자공간, 교통약자의 이동원활화 등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을 짚어본다. 3장에서 대중교통 중심 개발과 복합환승센터, 간선급행버스, 친환경 교통인 트램, 트랜짓 몰 등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를 다룬 데 이어 자전거 공유시스템 공용자전거, 승용차 공동이용 카셰어링, 실시간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주차, 미래의 모빌리티 서비스 등 스마트모빌리티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을 4장에서 다루었다. 이를 통해 교통의 현재를 돌아보고 환경과 어우러지는 교통의 미래를 생각한다. 나아가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도시를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을 찾아본다.


1장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환경과 교통 / 지속가능한 교통 / 교통수요관리 / 혼잡통행료

2장 :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교통정온화 / 최고속도규제, 존(Zone) 30 / 보행자 공간 / 교통약자의 이동원활화

3장 :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를 꿈꾸며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 복합환승센터 / 간선급행버스(BRT) / 친환경 교통, 트램 / 트랜짓 몰

4장 : 스마트모빌리티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자

자전거 공유시스템 공용자전거 / 승용차 공동이용 카셰어링 / 실시간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 파킹 / 미래의 모빌리 티 서비스


불과 20여년 전에 발표된 교통 문제 해결 논문은 몇 개만 살펴보더라도 대략 노약자와 장애자를 위한 교통시설, 자전거와 자동차, 교통수요관리, 화물수송, 버스, 전철 지하철 및 환승시설, 수운 등에 맞춰져 있던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친환경적으로 바뀌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을 생각하는 친환경 교통이란 무엇인지,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재생과 창조도시의 지속가능한 교통 역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친환경 교통 시스템과 그 도시만의 고유한 공간과 문화와 어우러진 교통 시스템을 들여다봄으로써 역사와 문화 예술의 도시가 어떻게 교통과 어우러지며, 교통 역시 그 도시만의 색깔을 어떻게 가꾸는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지속가능하며 모두를 위한 교통 시스템 구축과 관련된 내용들을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담고 있는 『도시와 교통』.

일반인들에게는 교통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교통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실무자들에게는 지속가능한 교통 시스템의 방향을 짚어줄 것이다. 사람과 환경이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교통, 모두를 위한 교통을 함께 찾아간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온실가스 농도가 가장 많이 증가하여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그 원인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교통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친환경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가까운 곳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p. 15>





안전속도 5030 시행으로 사람이 안전한 도로를 만들어나가다

국토교통부는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를 위해 2016년 ‘교통사고 사상자 줄이기 종합대책 시행계획’에서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를 OECD 중위권 수준인 1.6명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교통안전 시행계획으로 어린이와 노인 등 보행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생활도로구역, 어린이와 노인 보호구역을 확대하고, 통행속도를 30㎞/h 규제 제한 등 최근 경찰청에서 ‘안전속도 5030’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p. 101>


도시개발, 대중교통을 먼저 생각하다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이란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보행권과 역세권을 공간 범위로 대중교통 친화적인 공간이 조성되도록 도시를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저밀개발과 도시확산(Urban Sprawl) 등으로 환경과 교통 문제를 경험한 북미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성장과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개발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p. 155>





퍼스널 모빌리티 시대를 열다

근년 친환경 차량 개발 투자와 기술 경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스마트시티 교통서비스에 있어서는 자율주행셔틀 서비스, 퍼스널 모빌리티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모든 교통수단을 통합해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통합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스(MaaS)가 대중교통 이용 서비스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 본문 중에서>


저자 : 정병두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교통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매년 방학 때마다 전 세계의 특색 있으면서도 시민과 어우러지는 도시들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CITY 50,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교통》을 펴냈다. 특히 도시 공간의 특색을 살리는 교통, 이용자의 편리와 교통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 환경을 생각하는 교통관리체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크레파스북에서 출간한 《도시와 교통》 역시 이러한 발품과 연구의 결실 중 하나다.

주요 저역서로는 《CITY50,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교통》(2016), 《지구교통계획》(2015), 《공간과 생활〉(2013), 《지구교통계획 매뉴얼》(2013), 《지속가능교통》(2013), 《살고싶은 도시100》(2012), 《가로환경 매뉴얼》(2003)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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