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대화 감사카드 (한글판 & 영어판) - 감사하는 삶에 영감을 주는 질문 카드
홀스티.감사하는 삶을 위한 네트워크 지음, 한국NVC출판사 옮김 / 한국NVC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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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독자는 비종교인이라서 기독교나 불교의 경전 등을 통해 듣고 본 말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가장 주춧돌이 되는 가르침들이 '위대한 종교'의 경전에 모두 적혀 있다고 들었다. 그 중에 '감사'는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지켜야 할 삶의 원칙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성경에는 있고, 불교 경전에는 없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 경전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인간이 항상 지녀야 할 덕목 중의 하나라고 한다. 다만 독자나 일반 대중이 모르고 있을 뿐일 것이다. 또 동서양 철학에서 제시하는 삶에서 지켜야 할 덕목에는 왜 '감사하는 마음'이 빠져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직접적인 표현은 아닐지라도 있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고대 동양의 공자, 서양의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꼭 있어야 할 덕목들을 제시한다. 공자의 가르침은 '인(仁)'아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무지에 대한 인식'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이들도 가르침의 사상 안에는 모두 '감사'라는 마음의 품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 성인은 굳이 감사를 따로 가르치지 않고 감사가 포함한 대체 표현을 했을 뿐이다. 이들이 가르친 내용의 책도 많고, 그 사상을 이어받은 학자들은 죽 이어져 왔다. 대를 이은 학자들이 많고, 그들이 지은 책도 헤아릴 수 없다. 책이 많아서 독자나 일반 대중 등 철학 비전공자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감사는 내 삶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생명체, 또는 무생물체에게도 가지는 선한 마음의 자세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가르침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간이 가져야 할 또 다른 덕목에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를 테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제하고 인내하는 데 훨씬 높은 인격적 소양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굳이 검소, 절제, 배려, 친절을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덕목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품성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카드) 『비폭력대화 감사카드』는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 태도나 마음가짐의 하나인 '감사'를 습관을 통해 몸에 익히도록 고안됐다. 이 카드는 모두 100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놀이로 즐기는 서양의 트럼프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크기는 동양에서 즐기는 화투보다 조금 크다. 저자 홀스티(의미 있는 삶을 위한 도구와 리소스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단체)가 만들었다. 홀스티는 이 카드에 〈감사하는 삶에 영감을 주는 질문 카드〉란 별칭이자 부제를 붙였다. 이 카드는 놀이처럼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됐으며, 카드에 적힌 문구들이 삶의 기본이 되도록 습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카드는 모두 5가지 색깔로 「관점」, 「경이로움」, 「풍요로움」, 「연결」, 「치유」로 나뉘어 각 항목마다 10장씩 들어 있다. 카드 한 장에는 두 개의 문구가 적혀 있다. 홀스티에 따르면 「관점」 카드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을 기르기' 위한 질문 20가지가 새겨져 있다. 카드가 10장, 1장 당 2개 문구여서 모두 20개 문구다. 또 삶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깨어나기를 위한 문구를 적은 「경이로움」 카드도 같은 방법으로 20개 문구다. 「풍요로움」은 삶의 충분함을 알아차리고 음미하기 위해서 제작됐다. 「연결」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상호의존한다는 것을 존중하고 보살피기를 위한 카드이다. 「치유」는 우리 자신, 서로 그리고 세상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역시 20개 문구를 갖고 있다. 이처럼 카드는 모두 50장이고 문구는 100개다. 두 벌의 카드 중 하나는 한글로 돼 있고, 다른 하나는 영문으로 구성돼 있다. 

카드 제작팀은 "삶의 풍요로움을 깊이 의식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이 감사의 기쁨과 변화의 가능성에 열리게 한다. 카드마다 질문 두 개가 있는데 흰색 바탕의 준비 질문으로 시작해서 빛깔이 있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게 느껴지는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는 깊게 느껴질 수 있다"고 밝힌다. 개인 각각의 취향과 다름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작되었기에 마음에 드는 것부터 선택하면 된다. 어차피 나중에는 돌아가며 모두 마치기 때문에 순서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홀스티와 함께 〈감사하는 삶을 위한 네트워크(A Network for Grateful Living, 이하 감사네트워크)〉도 저자로 참여했다. 이 단체의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 수사는 안내 책자에 "행복이 우리를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감사네트워크는 안내 책자를 이용,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감사카드란?」, 「게임 옵션」, 「질문 팁」, 「대답 팁」, 「감사를 더 깊이 하기」, 「[유튜브] 행복하고 싶으세요? 감사하세요」, 「비폭력적인 삶에서 감사의 중요성」, 「비폭력대화(NVC)란?」, 「감사의 힘」, 「감사 표현하기」가 목차대로 적혀 있고, 마지막에 함께 만든 단체도 게재하고 있다.

감사네트워크는 「감사카드란?」 설명에서 "카드마다 질문 두 개가 있는데 흰색 바탕의 준비 질문으로 시작해서 빛깔이 있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게 느껴지는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는 깊게 느껴질 수 있음을 기억할 것"을 주문한다. 감사네트워크는 또 「게임 옵션」을 통해 '캠프파이어' 때는 불 주변에 둥글게 모여 앉거나 저녁 식탁에서 또는 온라인 지원자 한 사람이 카드 한 장을 뽑아 질문을 읽고 한 사람씩 생각을 표현하도록 초대한 다음, 자기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한다"고 제안한다. 또 배우자, 파트너, 자녀, 부모, 친구 등 한 사람과 매일 질문 하나를 다루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캐서린 한은 「비폭력적인 삶에서 감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엇이든지 더 있어야만 한다는 결핍의 태도로 삶을 살 대 우리는 불안해지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무자비하게 경쟁을 하고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말하며, 이 사회는 '자칼 사회'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감사할 때 우리는 불안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감사할 때 우리는 두렵지 않다. 우리는 감사할 때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전제하고 "아무리 검소한 식탁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할 때, 우리 마음은 풍성하고 행복하다"고 캐서린 한은 강조한다. 안내 책자에는 이 감사카드를 주도한 「비폭력대화(NVC)」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연민의 대화(Compassionate Communication), 삶의 언어(Language of Life)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간디의 아힘사(ahimsa) 정신으로,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우리의 본성인 연인으로 돌아갔을 때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말한다. 비폭력 대화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는 데 도우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방법이다. 이 안내 책자에는 이 밖에도 〈한국NVC센터〉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한국NVC출판사〉와 주요 출간물 등이 나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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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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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존재들, 그들은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있다.” 결코 이룰 수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을 상징과 은유 등 강렬하고 매혹적인 언어로 담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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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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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르톨랑의 유령』은 저자 이우연의 세 번째 소설 작품이다. 독자로서는 그의 책을 처음 읽는다. 표제어의 '오르톨랑'도 프랑스의 어느 한 지역 이름인 줄 알았다. 그 지역의 전설적 유령 이야기나 혹은 지역과 관련 있는 사람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SF소설, 스릴러나 호러소설쯤으로 생각했다. 독자의 이 같은 추측은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여지없이 깨진다. 달달하거나 공포 체험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심상찮다. 저자 이우연은 소설 본문 앞에 〈서문(들어가며)〉를 먼저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글은 혼자에 관한 글이다. 동시에 혼자일 수만은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들에 관한 글이다. 이곳, 비현실적인 악몽 속에 거주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들은 더럽고 비좁은 틈새에서 불가해한 중얼거림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악몽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로 번역하려 몸부림친다. 그 언어가 마침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p.4)

첫 문장을 제외하고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호러적' 분위기는 읽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이지 않은, 온통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듯한 미로에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것 같아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제서야 '오르톨랑'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자각한다. 놀랍게도 새의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멧새'로 번역된다고 사전은 밝히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백과사전에서 멧새를 찾았는데 '멧새 요리'에 관한 설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멧새란 참새 크기의 조그만 새인데 요리 재료라니...

멧새과에 속하는 깃털 달린 수렵육으로 고대부터 가장 고급스럽고 섬세한 맛을 지닌 새로 여겨졌다. 본래 이름이 브뤼앙 오르톨랑(bruant ortolan)인 이 철새는 점점 희귀해져 현재는 유럽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공식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캐나다에서 멧새는 인적이 드문 북극 빙하지대 변방에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남서부, 특히 랑드(Landes) 지방에서는 레스토랑에서 멧새를 서빙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새를 생포하여 살찌우는 일이 암암리에 계속 행해지고 있다. 새가 먹는 먹이(베리류 열매, 싹, 포도 알갱이, 조, 작은 곤충)는 살에 진한 풍미와 섬세한 맛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살을 찌우면 포획 시에 30g이던 무게는 한 달 사이에 네 배로 늘어난다.

멧새는 대부분 꼬치에 꿰어 굽거나 오븐에서 로스트 하며 자체 지방으로 익힌다. 이 기름은 굽는 동안 아래에 받쳐둔 빵 조각 위로 떨어져 모인다. 어떤 이들은 이 빵에 로크포르 치즈를 발라 먹을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은 새에 송로버섯을 넣은 푸아그라 퓌레를 채운 뒤 천연 창자로 감싸 익히는 조리법도 있다.(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다시 〈서문〉으로 돌아간다. "이글은 유령들이 태어나고 머무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며 그곳에서 짖어대는 소통불가능한 울음이다. 이곳의 목소리들은 감실에서 태어났다. 아직 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짐승들이 이곳에서 몽유한다." 한 문단이 끝나자 저자는 "이곳의 짐승들은 혼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쓰고 있다. "홀로 내는 소리는 홀로 사그라든다. (중략) 이런 소리들의 파동 속에서 짐승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겁을 먹거나 죽음을 결심하고, 절망에 안식한다. (중략) 그들은 망상증자이며 그것들의 고독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짓을 닮은 방식으로,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 있다. 짐승들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당신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만이 그들이 희망하는 불가능이다."

이 소설은 〈서문〉을 제외하고 두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교실 속의 미로는 새들의 우주를 닮았다」와 2장 「그녀는 TV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여자를 꿈꾸었다」 등이다. 200여 페이지의 장편소설이다. 각 장마다 수많은 장소들이 작은 항목의 제목으로 쓰였다. 1장의 경우 '청소도구함' '방 안' ' '미로' '조종실' '교실' '다락방' '서커스장' '동아리실' '우주' '고래의 뱃속' '교실' '유원지' '광장' '지하철' '교실' '침실' '교무실' '울타리 안' '지하철 계단' '바다사자의 저택' '교실 책상' '달' '버스 안' '교실' '독방' '하굣길' '주방' '생일 파티' '천국' '교실' 등이다. 살펴보면 '교실'은 중간중간 5번이나 등장한다. 굳이 장소로 지목하기 어려운 것은 '생일 파티'뿐이다. 이 제목을 가진 각각의 글들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저 유령이 이곳 저곳을 부유하듯 저자의 펜끝에 따라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2장은 장소라고 보기엔 한데 모아 말하기 어렵긴 하다. '아파트' '29번 채널' '회의장' '꿈 속' 'TV 앞' '교실' 'TV 앞' '연습실' '나무 위' '교실' '거리' 그리고 마지막 제목은 '빗길'이다. 

장소의 연관성이나 의미를 찾기 위해 첫 번째 제목 '청소도구함'으로 눈길을 돌린다. "소녀는 청소도구함 안에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녀를 꺼내주기를, 그녀를 잊어버렸다면 다시 돌아오기를. 청소도구함은 죽은 새들로 가득 차 있다. 죽음의 가스로 배가 희고 퉁퉁하게 부어오른 새들. 부리를 벌린 채 알 수 없는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는 소녀는 이곳에 갇힐 만한 잘못을 한 적이 없다. 그럴 정도로 미움을 사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소녀를 이곳에 가두었다."(p.11)



이 부분을 줄거리만 요약해 보면 한 소녀가 청소도구함에 갇혀 있다. 아이들이 와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시간은 점점 지나지만 아무도 소녀가 청소도구함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모두들 소녀를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소녀는 좁고 어두운 청소도구함 안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찾고 발견한 순간을 상상하며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저자는 내레이션처럼 쓴다. "기다림은 끝조차 없이 너를 살해할 거야. 살인자 없는 살인. 희생자는 옷장 혹은 청소도구함 속 침묵에 기댄 채 과거가 미래를 휩쓸어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 상황은 흘러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소녀의 상태는 여전하다.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도움을 원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뒤늦게 깨달은 소녀가 외치지만 구원자는 없다. 지친 소녀는 이내 "어쩌면 모든 소리가, 기다림이, 기대가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떠나간다. 

찢긴 침묵, 훼손된 언어. 소녀는 고개를 들고 이제는 신적이기까지 한 어둠을 응시한다.(p.17)

첫 번째 '교실'에서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앨리스의 이야기다. 앨리스는 교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 여자아이를 보았다. 앨리스는 그녀가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일어나 출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외에 수상한 점들을 하나하나 적는다.

① 그녀가 등교할 때 아무도 그녀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② 아무도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선생님마저도! 

③ 쉬는 시간에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④ 급식을 혼자 먹었다.

⑤ 피구를 할 때 처음부터 금 밖에 있었다.

⑥ 짝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그려지지 않았다. 유령인가? 독자의 눈은 비로소 책의 표제어로 되돌아간다.



'우주'에서는 생과 사의 이야기가 훨씬 자연스럽다. 화자(話者)는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자처한다. "생은 우주보다 깊은 환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은 입체가 아닌 평면이라는 걸, 모든 방향으로 끊임없이 증폭되고 복제되는 종이들이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겠죠."(p42) 화자가 이어가는 우주비행사는 토성의 고리 끝자락을 보고 싶어 손가락을 깨물고 유치한 피를 삼키고 유치한 눈물을 흘렸던 사내다. 하지만 우주에서 토성의 고리를 염원하는 우주비행사라니! 그 소원이 부끄러워 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사람임을 강조한다.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화자가 원하는 사항이다. 토성의 고리가 황홀한 먼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고 우주의 원리와 현상을 표현해 낸다. "무한처럼 광대한 유한 속에는 유리수를 닮은 무리수도 자연수를 닮은 허수도 분명 있을 텐데. 물론 무리수는 영원히 유리수가 될 수 없고 허수는 영원이 자연수가 될 수 없겠지만. 아마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있지 않을까요."(p.44)

'독방'에서도 앞뒤가 매우 어색한,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부조리가 독자의 눈을 잡아 끈다.

사형수가 독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직 그만을 위한 처형인이 찾아오기를. 문을 열고 그의 내부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를. 그를 찢거나 꺾어버리면서 그의 마지막 비명을 들어주기를. 사형수의 바람대로 마침내 누군가 들어온다. 사형수는 그를 보고 황홀에 찬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형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소식을 전하러 온 직원일 뿐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죠? 사형수는 직원에게 묻는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 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은 처형인뿐이니까. 그런데 처형인은 처형 당해서 올 수 없고 직원이 그 말을 전하러 대신 왔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더욱이 오늘 처형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을 무참히 짓밟은 격이다. 거기다 오늘 사형수의 방에 찾아올 수 없다는 처형인은 오늘뿐 아니라 다음날에도, 다음날뿐 아니라 그 다음날에도,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사형수를 위해 예비된 다른 처형인들은 모두 다른 일정이 있으므로 사형수를 위해 도저히 시간을 내어줄 수 없다고 직원은 긴 대사를 단숨에 읊어내리며 리허설 하는 배우처럼 말한다.



"집행은 언제든 마음대로 해도 돼요. 직원은 선심을 쓰듯 말했다. 이쪽 책임도 있으니 그 정도는 배려해 드려야죠. 원한다면 당신은 자연사할 때까지 살 수도 있을 거예요. 아무도 당신이 집행을 했는지 확인하러 오지 않을 테니까.(p.123)

어처구니없는 말에 사형수는 제발 자신의 사형을 집행해 달라고 흐느끼며 애원한다.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다른 이상은 없는 걸로 알고 나갈게요. 직원은 끔찍하게 건조한 어투로, 닳고 닳아버린 문장을 말한 뒤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이제 그곳에는 분홍색 여벌 바지와 독방, 그리고 사형수밖에는 없다. 직원은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기다림은 이제 불필요한 것, 심지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주방'에 이르러서야 이 책의 표제어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화자는 내레이터처럼 설명한다. "나는 지옥에서 훔쳐낸 이미지들로 글을 쓴다. 이미지들은 파편적인 비명만을 내지르고 있기에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불완전하고 심지어 거짓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거짓은 진실들의 단편이다. 유일하게 존재 가능한 방식의 이미지들. 날카로운 균열들, 네거티브 필름들, 공포로 흔들린 이미지와 비대한 빛으로 부풀어오른 희미한 영상만이 그곳의 단편이다. 불가능성으로 구부러진 세계에서 나는 이미지를 사유한다.(P.130)

이미 '인공지옥'인 '주방'에서 어린 새처럼 건강한 아가에게 엄마는 오르톨랑 요리를 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기칠 정도로 잔혹하다. 그것도 조그맣고 약한 생명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린 새를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 아니? 그들은 살아서 바둥거리는 오르톨랑의 작은 두 눈을 뽑는단다. 깊은 곳에 연결되어 있던 신경 다발들이 비어져나와 흘러넘치고 검은 피가 흐르는 두 개의 암흑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은 다르단다. 작은 상자에 갇은 어린 새는 검은 두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부르짖는단다. 그들은 상자 안에 무화과를 계속 퍼붓는 거야. 오르톨랑은 무화과를 다 먹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계시와도 같은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면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단다."



무화과를 먹고 또 먹은 오르톨랑은 비대해진다. 네 배 다섯 배 될 때까지 먹고 또 먹는다. 숨이 가빠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아 또 먹는다. 그들은 오르톨랑의 부드럽고 비대한 두 허벅다리를 붙잡고는 아르마냑 통에 빠뜨린다. 황금빛 액체 속에서 오르톨랑은 공기 중의 물고기처럼 비명을 지른다. 물고기처럼 침묵한다. 뻐끔거리는 공기 방울들이 위로 위로 올라가는데 오르톨랑은 점점 가라앉는다. 황금빛의 달콤한 액체가 오르톨랑의 폐와 위장에 스며들었고 오르톨랑은 물고기처럼 침묵한다.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거대한 사회 부조리, 인간들의 잔인함, 교실마저 이것들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바뀐 우리 사회 현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마치 유령처럼 약자의 혼백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 제지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으로 지켜볼 뿐이다. 하나는 피해자의 유령이고, 또 하나는 가해자의 유령이다. 그리고 그 둘은 자세히 보면 같은 몸에서 나왔다.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지 몰라도 독자에겐 경고로 이해된다.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야 살아 남는다는 것을. 그것은 '우주'에에서도 '고래의 뱃속'에서도 세상 어느 곳이든 발견되는 부조리이다.


나는 상상할 수 있었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 나는 죽었단다. 말할 수 없음에, 상상할 수 없음에, 소통할 수 없음에, 그 쉬운 말에 인간을 삶을 신을 의탁하지 않기 위해. 나는, 살해자는 오르톨랑의 죽음을 증언했단다. 살해자는 오르톨랑의 몸의 기억과 사물의 기억과 익사의 순간, 잊힘, 충격, 오아시스처럼 솟아나는 검은 피의 울림을 증언했단다. 나는 살해자지만 죽은 오르톨랑들에 대해 썼단다. 오아시스처럼 솟아나는 검은 피. 진실의 순간들. 하얀 대징 위 검은 시체들의 시차. 검게 타버린 오르톨랑. 오르톨랑. 오르톨랑의 날개를 찢는 동안 아무도 울어주지 않았지. 나는 그 와해된 몸에 얼굴을 끼워넣는 대신 얼굴 없음을 노래하려 했어. 얼굴을 강요하는 폭력들에 지쳐버렸으니까.(p.137)


저자 : 이우연


2021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2022년 장편소설 『악착 같은 장미들』, 2023년 소설집 『거울은 소녀를 용서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고용되지 않은 배우들, 유령들, 실종자들, 아이들의 불가능한 언어와 함께 산다. 그들을 위한 이상한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그 속을 벌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틈새에서 갈망하고 소리치고 애원하는 글들을 쓴다. 그들을 원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음에도 살아있는 틈들을 너무나 원하기 때문에 쓴다. 절박하게,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원하기 때문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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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요한 날에 - 고요한 날에 고유한 우리의 마음을 담아
황녘 외 지음 / 고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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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숨겼던 마음속 이야기들을 꺼내니 초여름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며 흩어진다. 보석 같은 언어들이 신선한 공기와 부딪치며 생명력을 되찾고 살아 움직이듯 마음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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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요한 날에 - 고요한 날에 고유한 우리의 마음을 담아
황녘 외 지음 / 고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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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이 고요한 날에』는 아직 작가로서 책을 내지 못한 글쓰는 이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출판사 측에서 10분의 글쓰는 이들의 글을 책으로 출간한다는 기획 아래 뜻을 모은 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장르이긴 하지만 막상 책으로 낸다면 설렘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장르라서 어쩌면 더 쓰기가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을 글 안 쓰는 독자로서 해볼 수 있지만 역시 책을 낸다는 것은 설렘과 함께 용기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글을 평소 많이 쓰신 분들이라 생각되지만 용기 내 원고를 모은 출판사 측도, 글을 쓴 작가분들도 좋은 일이 함께하기를 빌며 이 책을 읽는다. 

출판사 측 소개글에는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많은 요소가 담겨 있다. "마음이 고요한 날에 이 책을 집어드셨겠지만, 여기 글들은 독자분들의 마음을 마구 요동치게 할 겁니다." 첫머리부터 반전을 노린다. 표제어도 '마음이 고요한 날'이라는 문구가 암시하듯이 조용히 삶과 주변의 일들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듯한 관조적 글이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내용의 글 모음집이라는 도발적 문장은 독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 책에는 온통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첫 글부터 확 빨려 들어가 어느 순간 작가의 예민하고 섬세한 문장 덕에 쿵쾅대는 심장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눈물을 찔끔 흘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시공간을 여러 번 이동해 누군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공간에 다채로운 시선이 담긴 글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겠습니다." 약간의 과장이 섞인 듯한 문장이지만 최소한 첫 글 황녘의 「상실의 증명」에서만은 출판사의 소개글이 확실히 맞는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소설인 줄 알았다. 우선 단편 소설의 분량만큼 긴 글인 데다 사용하는 언어가 상당 부분 대구적이고 시니컬하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그러나 해소 불가능한 일들에 대한 내용이다. 더욱이 글의 화자가 한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눈 감은 낮은 길었으나 깨어 있는 밤은 짧았다. 언제나 낮보다 밤이 짧았고, 시간은 깔때기에 던져진 것처럼 너르게 퍼졌다가도 밤이 되면 빠르게 빨려 내려갔다. 일은 언제나 깔때기의 끝에서 끝났다. 매일의 시간이 넓게 퍼지기 전에 서둘러 눈을 감았다.(p.12)

이 글의 화자는 '김현석'이라는 남자다. 딸과 아들의 아버지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다. 사건 발생은 1996년 11월, 원인 제공자는 김상현이다. 이 글은 그의 입장에서 쓴다고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김상현은 회사 간이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래층(침대 아래칸) 병수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이 덜 깬 눈을 거슴츠레 뜨며 본 풍경은 예상 밖이다. 절대로 상상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아이들이 서 있는 장면은 살풍경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큰딸은 눈썹이 시옷자가 되도록 치켜떴다. 이마에 핏기가 가신다." 

회사 숙소에 겹쳐진 아이들, 오려다가 잘못 붙여놓은 것처럼 아이들이 있는 풍경은 기묘했고 잔인했다. 운전 교대 후에 회사 간이 숙소에서 잠든 아버지를 아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김상현은 드러난 반나체를 아이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외면하고 싶었다. 외면하고 싶은 게 아이들이 맞는가. 아니다. 사실은 나에 대한 부끄럼이었다는 걸 이내 깨닫는다. 나를 외면하려면 아는 어디로 얼굴을 돌려야 할까. 창자가 뒤틀린다. 네 행동의 결과를 이런 식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외면하는 습성 탓에 결과를 마주할 때는 언제나 충격이 동반되었고, 습관이 된 충격은 당연했고 쉬웠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핏기가 가셨던 이마에 도로 열이 찬다. 미간이 오그라드는 걸 막기가 어렵다. 딱딱하게 성난 목소리를 감추고 싶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아빠작 너무 안 와서 찾아왔어요. 

뭐 타고 왔어? 

택시 타고 왔어요.(p.12~13)



이 글은 이후 2015년 8월로 건너 뛴다. 김상현의 시점이다. 그리고 글은 그의 사유 내용이라고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 김상현은 전 장(章)에서 화자이자 그의 시점(視點)으로 글을 써 내려간 김현석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약 20년을 건너 뛴 시점은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 동기를 만나면서 이어진다. 대학 동기와의 만남은 사적이고 친교적인 만남이다. 꽤 유쾌한 친구인 덕에 상현은 전화를 받는다. 진동으로 해놓은 전화기가 허벅지를 울리는 것이 '예감이 좋지 않다'. 아버지의 전화다. 

두 사람의 통화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아빠한테 뭐 해주는 게 싫어?

······. 

나라에서 주는 주거 혜택을 받으려면 부양자가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데, 넌 그거 하나 써 보내는 게 힘드냐? 내가 너한테 돈 달라고 할 것 같아서 그래? 어? 아빠가 너 어렸을 때 어떻게 컸는지 다 알아. 너한테 돈 달란 소리 절대 안 해. 알아들어? 아빠가 절대로 너한테는 손 안 벌린다고. 내가 너한테 뭐 부탁한 적 있냐? 그게 힘들어? 알아들었냐고···.

··· 써 보낼게요.

가족관계단절사유서. 관계를 단절시킨 사유는 나에게 없다. 사유는 응당 제공자에게 묻는 것이 옳을 텐데, 나에게 묻는 사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아빠는 말끝을 떨었나. 사유를 제공하고도 사유서를 쓸 수 없는 것에 답답해서. 

늙고 병든 아빠 김현석은 이제 돈을 벌 수도 없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가족관계단절사유서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에 필요한 서류인 듯하다. 그것을 아빠 본인이 뗄 수 없는 건가? 아니면 각자가 다 써야 하는가? 독자가 알 수 없는 내용이지만 유추컨대 아마 부모자식간 헤어져 산 지 오래됐기에 의무부양자에서 이탈한다는 증명서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어 이 글 「상실의 증명」은 1996년 11월 황혜정 시점으로 '진술'하고 있다. 남편 김현석은 택시 기사로 노름꾼이다. 물론 결혼 전부터 택시 기사는 아니었고 노름도 하지 않았다. 하던 일에 실패하고 그래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빨리 쉽게 할 수 있는 택시 기사를 택했다. 그들 중 일부와 어울리다 노름에도 손을 댔다. 노름에서 돈을 따 살림에 보탰다고 하는 말을 독자는 들은 적이 없다. 김현석이라고 에외일 수 없을 터, 결국 회사 임시숙소 간이침대 신세를 지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 결혼 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황혜정의 시점으로 진술하는 장(章)에서 아내 황혜정은 집을 나가 아이들 이모집으로 가출하먀 결혼 생활의 종료를 안다. 황혜정은 아내의 이름이다. 그도 속을 끓일 만큼 끓였고, 참을 만큼 참았다. 그래도 가출하는 마음은 편치 않을 터, 특히 딸 미주를 두고 떨어져 나오는 어미의 마음은 오죽하랴. 이렇게 황혜정은 표현한다.

지옥 불구덩이 속에 아이들을 두고 나만 살려 도망가는 기분이었다.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도망이었다. 내 머리에 떠 있는 도망이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읽어낼 것 같다. 결심은 두터웠지만 가방을 싸는 손은 떨렸다. 이건 도망이 아니야. 그럼, 도피니. 아니야 전략이야, 아니야 너를 속이지 마, 이번엔 다른 걸 알고 있잖아, 도망이라는 단어를 두고 두 아이의 엄마와 술주정뱅이의 아내가 싸운다. 엄마가 지고 아내가 이겼다. 아이들이 지고 남편이 이겼다.(p.30)

2024년 2월 김상현의 '애도'의 글을 마지막으로 이 글은 끝난다. 이 장의 제목이 '상실'이다. 아들 상현의 엄마의 죽음 이후, 무미건조한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되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증명서를 출력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몰랐을 일. 세상이 약간 더 어두워진 것 같았지만 나의 세상은 원래 회색빛이었으니까, 별다를 것도 없다. 20년 이상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감정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본 날보다 못 본 날이 길었으므로 감정과 기억은 흐릿했다. 거기에 흘릴 눈물은 애저녁에 말랐다. 더 이상 예전의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마음은 새로운 감정들을 찾아냈다. 그것은 부로로서의 후회, 삶에 대한 안타까움, 결국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통한이었다.

아빠의 가족관계단절사유서와 엄마의 가족관계증명서, 살았어도 죽었어도 종이가 매개하는 가족관계는 손끝에서 팔랑거린다. 진한 글씨는 확실했지만, 글씨가 설명하는 관계는 희미하다. 이것들의 목적은 관계의 증명이 아닌 상실의 증명이었다. 이제 나는 상실로써 관계를 갈무리한다.



10편의 에세이 중 「상실의 증명」 외에 오다솜의 「지금, 여기, 백령도」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독자는 이곳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흥미롭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 다 알지만 백령도는 남한 쪽 대한민국의 서해 최북단의 섬이다. 교묘하게도 북한 쪽 황해도 바로 앞쪽에 위치한다고 들었다. 북한의 도발 때 늘 피해 대상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풍경은 오히려 서해 어떤 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다고 한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서 '버킷리스트'로 남겨놓았다. 우리 해병대가 주둔하는 곳이라서 군사도시 성격이라고 한다. 작가 오다솜은 다니던 직장이 도저히 안 맞아 그만두려고 하다 어찌어찌해 이곳 백령도에 스트레스 덜 받고, 흥미롭기도 해서 들어왔다. 회사와의 관계가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른 듯하지만 회사의 발령을 받았다고 하니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백령도에서의 생활을 쓰고 있다. 독자 역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부지런히 읽었고, 사진까지 있어 잘 감상했다. 마음이 고요한 날인데 백령도 여행의 욕구가 강렬히 타오른다. 

무심코 창문 너머 보이는 하늘의 색이 심상치 않게 예쁘다고 느껴 무작정 나가서 삼청각을 향했다. 지금 펼쳐지는 노을의 아름ㄹ다움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 행동했다. 내일이 오더라도 똑같은 색깔의 노을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자연을 마주하고자 했다. 그렇게 있는 모스 그대로의 자연은 나의 위안이 되었다.

주말 아침이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들뜸은 주체가 안 되었고 집 밖으로 나가 에너지를 쓰게 만들었다. 백령도 최애 산책 코스를 걷고 또 걸었다. 퇴근하고 피곤할 만한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곳에 갔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걸었고, 매서운 겨울에도 산책은 멈추지 않았다. 인사이동을 바라는 기대는 마음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루를 채워갔다. 그리고 이 시간을 잘 헤쳐나가리라 스스로 응원하며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채워졌다. 부모님도 나를 믿지 못했고,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했는데 그걸 가능하게 이끌어준 책 속의 글을 마음에 새기면서.

저자 오다솜의 마음을 그가 인용한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한성희)의 일부를 읽어본다.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을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의 동력으로 삼아 무럭무럭 자라서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p.243~244)



저자 : 황녘

글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고 말하고 또한 씁니다.


저자 : 유명숙

오직 한 길을 걸었다. 한 길 만을 묵묵히 걸어 온 영문학의 모든 여정을 <고독에 대한 송사>로 대유한다.

Thus let me live, unseen, unknown;

Thus unlamented let me dye;

Steal from the world, and not a stone

Tell where I lye.

Alexander Pope, 中


저자 : 이한나

카페와 예쁜 공간을 애정 합니다. 공간을 집중해서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기록으로 일상을 묶어서 소중함을 오래 간직하고, 풍요로움과 다정함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자 : 체리

보랏빛 하늘을 사랑하고, 아날로그적인 것을 애정합니다. 글이 주는 평온함을 사랑하고 유용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일궈낸 열매, 체리입니다.


저자 : 김영신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넘치면 글을 씁니다. ENFJ라 무대체질이지만 막상 수줍움이 있어 혼자만의 시간에는 굴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자듯 책읽기로 하루종일 지내기를 좋아합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있으며, 다양한 부캐로 주변을 놀라게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저자 : 임유경

방울토마토처럼 작아도 귀여움이 있고, 붉은색의 열정도 가득하답니다. 물론 영양가도 많죠. 이처럼 내 생각과 글을 통해, 물론 만났을 때도 사람들에게 '영양 가득'한, 한 알의 비타민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저자 : 류하

내용을 기억하기보다 인상으로 간직하는 독서가이자 세상의 다정을 찾아다니는 고독가. 섬세한 눈으로 봐야 보이는 무한의 아름다움들을 지치지도 않고 찾아서 나의 언어로 바꿔 세상에 내어놓는 사람. 살아가기 위해 매일 글을 쓴다.


저자 : 바니

삶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 채운 후 담담하게 비워내고 다시 인생의 파도를 기다리는 중


저자 : 오다솜

마침내 작은 섬에서 벗어나 꿈꿔왔던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중.


저자 : 조재호

계절처럼 피고 지고 뜨겁고 차가워지며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갈 사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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