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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ㅣ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평점 :
독자는 일본 문학 작품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완화되었지만 일본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 받은 항일·반일·극일의 한복판에 독자의 세대는 끊임없이 반일 감정을 갖도록 배웠다. 실제로 역사를 배울 때 그들은 군부를 앞세운 식민지 확장 정책을 100년 가까이 계속했다. 동북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침략해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남겼다. 역사에 남은 증거자료와 증인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데도 그들은 침략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준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쳐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메이지유신 주역들은 대부분 영국(대영제국)에 유학 가서 그들의 문화부터 정치, 외교, 군사까지 배웠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했다.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당사국이다. 놀라울 정도의 선진국으로의 진척이 빨랐다. 특히 군사 무력 확대는 그대로 식민 침략의 선봉이 되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한반도와 중국의 여러 곳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던 중국 역시 청나라 말기와 민간 정부의 힘으로 일본의 군사력을 막을 수 없었다. 동남아의 각국들은 도미노 쓰러지듯 게속해서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다. 20세기 들어 시도한 전쟁에서 실패한 적이 없는 일본은 아시아 제일을 넘어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갖게 됐다. 제1차 세계대전에도 군대를 보내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힘을 빼려고 시도했다. 특히 일본 해군은 태평양에서의 제해권을 확보한 듯했다.
이 책 『청춘』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관,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 각 12편씩을 묶어 1, 2권 출판사 기획 시리즈로 동시 출간했다. 일본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두 작가의 유명세와 당시 젊은이들의 세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읽고 싶은 책'이 됐다.
독자가 이 두 권의 책에 시선이 고정된 것은 두 작가 모두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요절 작가이다. 왜 그들은 스스로 삶을 끝냈을까? 당시 일본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후세 일본 청년들도 일본의 국보급 작가들로 꼽을 정도로 문재(文材)가 뛰어난 작가들인데도 말이다. 이들은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해 단숨에 산업화하고 군사력을 집중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무렵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까지 살았던 작가들이다. 한마디로 청년기의 일본인으로서 청년기의 일본을 살다 간 문인들이다. 독자가 이들 작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이들이 그린 '일본 청년기'는 어떤 모습일까?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일본 청년기'란 표현은 독자가 임의로 붙인 명칭이며, 두 작가가 왕성한 문필 활동한 기간이 일본 100년 중 가장 왕성한 기간이란 의미에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렵고 외가로 양자로 입적한 듯하다. 문재나 두뇌가 명석하고 뛰어났던 모양이다.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당시 영문학자이자 최고의 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니 스승과 제자로 만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 경향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 관상적인 입장이었다.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9),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알려진다.
이 책 『청춘』에 실린 작품을 번역한 최고은은 책 뒷 부분 〈옮긴이의 말〉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품 중 '청춘'을 테마로 한 단편들을 모은 것"이라며 "청춘을 테마로 하고 있긴 하지만, 삼십오 년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선보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청춘'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게 보다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역자에 따르면 1927년 7월 음독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십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수많은 명작을 발표했으며 명실공히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전통 설화나 고전을 재해석한 「라쇼몽」 「코」, 기독교를 소재로 한 「난징의 그리스도」 같은 작품이 눈에 띄는 초기를 거쳐, 「지옥변」처럼 예술지상주의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한 중기, 「점귀부」 「톱니바퀴」 「어느 바보의 일생」처럼 작가 자신의 모습이 짙게 반영된 사소설적 작품들을 발표한 말기에 이르기까지, 아쿠타가와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인 뛰어난 재능의 작가였다. 하지만 개인사적으로 어릴 적 친어머니가 정신 이상을 일으킨 탓에 외가에 맡겨져 자라다 외삼촌의 양자가 된 일, 겨혼을 생각한 첫사랑과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 일, 존경하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죽음, 시인 히데 시게코와의 불륜 등 결코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유서로 남긴 「어느 옛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자살의 동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며 역자는 일부를 소개한다.
"자네는 신문의 삼 면 기사에서 생활고나, 병고나, 또는 정신적 고통이나, 다양한 자살의 동기를 발견하겠지.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그것들만이 동기의 전부라 할 수는 없네. 대부분은 동기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 자살자는 대체로 레니에(프랑스의 시인 앙리 드레니에-옮긴이 주)가 그린 것처럼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 모를 거야. 그건 우리의 행위만큼이나 복잡한 동기를 내포하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저 막연한 불안이야. 무언가 나의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 때문이지."(p.320~321)
이처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인간적 고뇌와 생에 대한 불안의 정체성을 알아내기엔 편지 내용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역자는 판단하는 것 같다. 이 단편집에 실린 열두 편의 작품을 잘 읽고 접근한다면 완전치는 않겠지만 불안의 윤곽과, 고뇌 속에서 피어난 문학적 재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청춘'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벅차다는 우리나라 한 수필가의 「청춘예찬」이란 수필이 떠오른다. 사실 ‘청춘’만큼 반짝거리는 단어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청춘은 반짝거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20대에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문단에서 유례없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인정받으며 일본 문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일본 작가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소설집에는 아주 짧은 작품도 있지만 중편에 해당될 정도의 긴 소설도 있다. 「갓파」는 꽤 긴 중편소설로서, 어느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갓파 나라를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독자로서는 소설의 길이에 상관없이 '갓파'가 무엇인가가 더 궁금해서다. 처음 듣는 단어고, 국적이 불분명해서 더 관심이 갔다. 소설 제목 아래에는 한자어 '하동(河童)'이라고 적혀 있다. '물가의 아이'(?) '물의 아이'(?) 독자처럼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인지 소설 맨 앞 부분에 "부디 Kappa라고 발음해 주십시오.)라고 씌어 있다. 역자 최고은은 친절하게 주를 달아놓았다. (갓파는 물에 사는 일본 요괴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도쿄 가나가와현에서는 갓파라고 불린다. 아쿠타가와 역시 그런 이유로 이 구절을 넣었다고 1927년 〈문예춘추〉와의 대담에서 밝힌 바 있다.-옮긴이 주)
소설은 〈서문〉부터 시작한다. 한 페이지 분량의 서문에는 "이것은 어느 정신병원의 환자 제23호가 누구에게나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이미 서른이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는 아주 젊은 광인이었다. 그의 반평생 경험은-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는 그저 가만히 두 무릎을 안고 가끔 창밖으로 눈길을 주며(쇠창살이 달린 창밖에는 마른 잎조차 보이지 않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눈 내릴 듯 흐린 하늘에 가지를 뻗고 있었다.) 원장인 S박사와 나를 상대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전혀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예컨대 "놀랐다."라고 말할 때면 갑자기 얼굴을 뒤로 젖히기도 했다. 이 소설은 〈서문〉 이후 17개의 번호만 붙은 채 이어진다. 분량이 꽤 긴 중편소설이라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역자의 견해를 빌리면 인간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갓파 나라의 문화와 사상 등에 대한 서술은 이야기 자체만 놓고 봐도 흥미진진하다. 소설은 곳곳에서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 정신도 엿볼 수 있다. 갓파 나라에서 긴간 세계로 돌아온 '나'가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에서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 즉 경계를 넘은 자는 이단자로서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염세적인 메시지를 읽어 낼 수도 있지만, 갓파들이 우정을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고, '나' 역시 친구 갓파를 만나러 다시 갓파 나라로 가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작중 S박사는 아쿠타가와의 친구, 시인이자 의사인 사이토 모키키롤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다.
17개로 나뉘어진 작품 중 9번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하지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푸후 신문은 노동자 편을 드는 신문이지 않습니까. 그곳 사장인 쿠이쿠이도 당신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건······."
"푸후 신문 기자들은 물론 노동자의 편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을 지배하는 건 쿠이쿠이 말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쿠이쿠이는 이 게르의 후원을 받지 않을 수 없죠."
(중략)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칠 년 전의 전쟁은 분명 어느 암컷 갓파 때문에 시작된 게 틀림없습니다."
"전쟁? 이 나라에도 전쟁이 있었습니까?"
"있었고말고요. 앞으로도 언제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웃 나라가 있는 한······."
저는 사실 이때 처음으로 갓파 나라도 국가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게르의 설명에 따르면, 갓파는 항상 수달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p.152~153)
저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Ryuunosuke Akutagawa,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역자 : 최고은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일본 전후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인형 탐정』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의 『서브머린』, 『칠드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미치오 슈스케의 『스켈리튼 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그림자밟기』,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시리즈를 비롯해 『인사이트 밀』, 『절규성 살인사건』, 『46번째 밀실』 『도미노』, 『덧없는 양들의 축연』, 『거대 투자 은행』, 『소녀지옥』, 『침묵의 거리에서 1, 2』, 『말레이 철도의 비밀』, 『백년법 상,하』, 『골든애플』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