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2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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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 이론을 꺼내야 하는 독자는 당혹스럽다. 역사는 좋아했지만 물리학은 싫어했기 때문이다. 호불호에 따라 대학 입시도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져 대학 입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리를 싫어한 독자로서는 당연히 인문학 계열로 입학했다. 덕택에 물리학은 적어도 독자의 삶에서 수십 년 동안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어서 적지 않은 기간에 역사는 TV 드라마 사극에 나오는 정도만 이해하면 되었다. 세계사는 대부분 서양의 역사에 맞추어져 있어서 자세하고 깊은 것까지 배울 필요는 없었다. 영화나 혹은 가끔 관련 책을 읽는 정도만 흡수해도 삶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사와 우리 삶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사건편 2』(이하 『벌거벗은 세계사 2』)는 tvN의 교양 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다룬 내용 가운데 세상을 뒤흔든 중요한 사건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는 모두 10개의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매회 다른 강사와 다른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이 책에 있는 모두 강연자가 다르다. 때문에 편의상 저자를 'tvN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으로 통칭한다. 

저자는 이 책을 제작하면서 세상의 모든 사건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즉 어떤 일이든, 크든 작든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 제작팀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제작팀이 10개의 사건을 책으로 만들다보니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저자가 출판사 책 소개글에 낸 첫 문장이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인 것으로 미루어 합리적인 지적일 듯하다. 소개글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일은 저마다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역사 속 사건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된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사를 좀 더 깊숙이 배운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금이라도 예상하고 대비할 힘을 기를 수 있다.

이 일련의 소개글은 앞서 언급한 '양자역학'의 이론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에 대답하기 위해 반도체 없는 컴퓨터를 상상해 보자. 반도체가 없다면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컴퓨터의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는 등 현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 또한 양자역학은 과학기술의 측면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20세기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이란 무엇일까? 물리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는 독자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개념이라도 알기 위해선 백과사전이나 관련 책을 이용해야 할 듯하다. 김재영의 『물리산책』에 따르면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으로, Quantenmechanik(크반텐메하닉)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뒤에, 일본에서 ‘量子力學(료오시리키가쿠)’라 새로 번역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양자역학’이란 용어로 번역됐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로,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力學)’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2』에 나오는 사건은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순간은 물론, 처음 만나는 의외의 사실들까지 더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프레임 밖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와는 다른 시각을 보인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양자역학 이론이 적용된다는 점, 일종의 통찰력을 가진 역사 의식에 바탕한 내용으로 풀어헤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신’ 제우스가 시작한 집안싸움이 아테네의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놀라운 과정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비행기 납치와 테러가 벌어지던 공포의 20세기 후반의 상황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사건을 둘러싼 역사 속 결정적 순간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시간 관계상 방송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내용까지 상세하게 정리해 역사 속 흥망성쇠의 진짜 원인부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뒷이야기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역사란 스포일러가 넘치고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이야기"라는 말도 꺼낸다. 이는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시연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으나 역사 통찰력으로 갖고 살피면 '그냥'이나 '우연'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이 때문에 사건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시각으로 해체할 수도 있다. 이는 다시 조합을 이루어 '필연'을 만들어내는 등 독자 입장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2』는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속속들이 파헤친다. 외우지 않아도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역사의 이면을 탐구하기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독자들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 아는 것을 넘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10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작게는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인류 전체가 휘말려드는 사건으로 확대될 수도 있고, 크게는 국가라는 거대집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사건은 기록으로 남겨진 것뿐만 아니라 구전되어온 '신화'까지도 포함해 인류가 살아온 모습과 과정에 대한 혜안을 제공한다. 

1장 〈벌거벗은 그리스 민주주의-제우스의 집안싸움이 불러온 민주주의의 탄생〉, 2장 〈벌거벗은 인도-힌두교와 카스트의 진실〉, 3장 〈벌거벗은 초한지《삼국지》의 모태가 된 두 영웅〉, 4장 〈벌거벗은 종교개혁-신의 대리인, 교황의 탐욕〉, 5장 〈벌거벗은 스페인 내전-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 리허설〉, 6장 〈벌거벗은 쑹씨 세 자매-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이들의 정체는?〉, 7장 〈벌거벗은 러시아의 흑역사-괴승 라스푸틴과 러시아 제국의 몰락〉, 8장 〈벌거벗은 도쿄재판-일본의 전쟁 학살자들은 왜 풀려났나?〉, 9장 〈벌거벗은 CIA-기밀해제 문서로 본 CIA와 라틴 아메리카〉, 10장 〈벌거벗은 테러의 시대-뮌헨 올림픽 참사와 비행기 납치 사건〉 등 10개의 장(章)이다. 

지금까지 역사는 승자의 입맛에 맞춰 그들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만 기록되어 왔다. 사가(史家)들도 모두 인정하고, 그것을 텍스트로 역사를 해석한다. 물론 명백하게 허위를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팩트)은 접어두고라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사가의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그동안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의 사실과 근거를 살펴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진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잊고 싶어 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도 잘못된 시선으로 한쪽의 역사만을 보면 전체를 놓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고르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로 읽힌다. 이 책은 세상과 질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통찰과 미래를 읽는 전망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다. 언급한 대로 1장에서는 신화의 이야기다. 신화는 문자 기록보다는 문자 이전, 즉 구전으로 내려온 설화나 영웅담을 모아놓은 것이다. 우리가 2,500년 동안 사실로 믿어온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다. 구전의 내용을 기초로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배웠고, 믿었다. 물론 문학적 위치나 최초 문명의 발상지라는 영예는 뒤늦게 발굴된 바빌로니아 수메르인들의 『길가메시』에게 내주었지만. 

이 책에는 여전히 그리스 신화를 더 믿을 수 있는 위치에 놓고 있다. 아직 『길가메시』를 새긴 점토판이 완전히 발굴되지 않은 데다 이미 발굴된 점토판의 문자 해독이 불가능해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예지력을 가진 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결과 ‘신들의 신’이자 자신의 사촌인 제우스로부터 절벽에 매달린 채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 년이 넘도록 프로메테우스는 굴하지 않았고, 그의 뚝심에 제우스는 끝내 손을 들고 만다. 시간이 흘러 프로메테우스의 저항정신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원전 6세기경, 아테네 평민에게도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왕정과 귀족 정치를 거쳐, 참주 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층 민중의 불만을 이용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정치를 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p.39)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참주는 노예를 해방시키고, 귀족이 독점했던 땅을 빼앗아 평민들에게 나눠줬으며, 농사지을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또 이때 대규모 축제를 열어 평민들의 지친 마음을 풀어주려던 대규모 축제인 '디오니소스 축제'로 성장했다. 이 축제는 참주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민들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디오니소스는 최대 1만8,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공연장이었고, 공연은 프로메테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라는 연극이다. 절벽 위에 매달려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수백 년 감내하면서 최고 권력자인 제우스에게 굴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내뱉은 대사가 "그대들 신출내기들은 통치한 지가 얼마 안 되거늘 벌써 고통도 모르고 성채에서 사는 건가?"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축제를 통해 연대의식을 느끼고, 공연을 통해 저항 정신과 민주 의식을 깨친 시민들은 이제 국가 권력의 주체는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태동한 이유다. 아테네와 민주주의는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인도에서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흐름도 세계 정세를 바꾸어놓은 사건이다. 사실 카스트 제도는 2,000년간 유지되어온 인도 고유의 신분제도다. 인도의 종교 힌두교는 원래 사회적 의무와 물질적 풍요, 쾌락만 가르친 종교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불교와 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가 등장하면서 힌두교는 물질만 추구하고 불평등을 강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불평등한 사회를 떠나 수행자의 가르침을 쫓아 깨달음을 구하려는 사람도 점차 증가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최고 신분계급인 브라만이 고심 끝에 내놓은 해답이 힌두교도의 삶의 목표에 '깨달음'을 추가했다. 힌두교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회유하려는 의도였다. 이 결과 힌두교에는 물질과 쾌락을 추구하는 동시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다소 모순적인 가치관이 공존하게 된다. 사실 깨달음을 통해 속세에서 벗어난 사람은 인도에서도 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인도인은 힌두교라는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각자의 이익과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도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기나긴 중세 시대를 겪으면서 처음에는 4개로 구분되던 카스트가 수천 개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수많은 '자띠'(직업이나 가문이라는 뜻)가 생겨난 것이다. 인도인들은 지금도 카스트보다 자띠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카스트 체계는 18세기에 들어 또다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영국의 침략이다. 식민지로 전락한 인도는 세포이 반란(1857)도 영국의 무력에 좌절되었고 멀리 떨어진 영국은 인도 대륙을 다스리기에 벅찼다. 영국 정부가 한 가지 묘안을 짜낸 것이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인구 총조사이다. 이때 영국은 조사 항목에서 인도인을 단순한 기준으로 구분했는데 바로 고대 인도 때 만든 힌두 경전의 카스트다. 이미 수천 개의 자띠로 나뉘어진 인도인들은 자신이 수드라인지, 바이샤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욱여넣듯이 대강 분류해 짜맞추었다는 것. 이 인구 총조사가 사그라들었던 카스트 제도에 다시 불을 붙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격변기가 비참한 상황의 불가촉천민에겐 기회가 되기도 했다. 도축과 가죽, 육류 가공이 근대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이 업에 종사하던 불가촉천민들이 큰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도나 영국에 꼭 필요한 산업이었기에 이들에게 신분 상승과 함께 수천 년 간 이어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 계기가 된 셈이다. 이들 신흥 불가촉천민들은 다른 계급처럼 돈을 뿌려서 높은 카스트로 올라가거나 고급 교육을 받고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하니, 독자로서는 우리 조선시대의 천민 계급이 떠올라 숙연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인도는 알고 있는 바와 다르게 1947년 영국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헌법과 법률로 차별 금지법이 만들어져 차별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러나 아직 일부 지역이나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는 아직도 남아 있는 악습이지만 완전히 사라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20세기 초 청나라, 여성의 인권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던 이곳에서 중국 여성 최초로 미국 유학생이 된 세 자매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아이링, 메이링, 칭링이라 불린 이들은 청나라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던 격동의 시대에 ‘누구의 아내’로 불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우리로 보면 '신여성'인 셈이다. 이들의 삶과 결혼은 중국 현대사를 뒤흔들었다고 하는데 커다란 변화의 물결 뒤에 숨어 있는 세 자매의 흥미진진한 인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 책에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분노하고 놀랐던 일본 전범 재판 이야기를 읽을 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전쟁으로 1,00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일본의 전쟁범죄자, 즉 전범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을 열었다. 모두 118명의 A급 전범 용의자 중 28명이 재판정에 섰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이 전쟁 중에 벌인 끔찍하고 잔혹한 학살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 다수의 전범 용의자가 풀려나거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석방되었다. 제대로 처벌받은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는 것. 도대체 일본의 전쟁 학살자들은 어떻게 법망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국제군사재판은 왜 제대로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까? 

이와 함께 1970년 전후, 세계 곳곳에서는 비행기 납치와 공항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연이어 발생했다. 1969년에만 80여 건의 항공 테러가 이어져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다. 그러던 중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올림픽을 둘러싸고 비행기 납치, 공항 시설 공격, 인질 납치 및 살인 등 최악의 국제 테러가 일어났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국제 테러는 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무고한 희생을 담보로 한 잔인한 비극은 왜 아직도 계속되는 걸까?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시작한 집안싸움이 지금의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놀라운 과정을 밝혀준 이 책은 비행기 납치가 교통사고만큼 자주 벌어지던 20세기 말 '테러의 시대'까지 조명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모르고 있거나, 알았다고 해도 뒤에 숨은 권력의 힘을 알아내지는 못했을 내용이 이 책에는 실려 있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2』는 국가를 뒤흔든 흥망성쇠의 뒷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왜 과거를 뒤돌아봐야 하는지, 이를 거울삼아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저자 : tvN〈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에 들이닥친 코로나19. 자유롭게 누군가를 만나고 여행을 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질 무렵 집에서 안전하게 세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 숨겨진 세계사까지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 <벌거벗은 세계사>입니다. 그 마음이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이 책이 조금이나마 현시대의 갈증을 해소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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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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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오만과 자기기만을 치유함과 동시에 겸손하게 잘사는 법에 영감을 제공하는 우리 삶의 필수적 요소이다. 특히 실패는 필요할 때 ‘극약처방‘으로 사용해 삶의 혁명적 변화를 꾀하는 데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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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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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 전집에는 늘 에디슨이 있었다. 미국의 발명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디슨은 전기를 발명하는 등 수많은 과학기술 발명품을 만들어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준 인물로 손꼽혔다. 위인전이어서 주로 발명품에만 집중되어 기술되었지만, 외적인 요인 한 가지 빼지 않았던 것은 그의 실패에 대한 말이었다. 그가 남긴 많은 말 중에는 전기 실험을 3,000번이나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고조롱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성공이 아닌 다른 길을 하나 더 알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수많은 발명만큼이나 발명을 위한 에디슨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인내심을 압축해 놓은 명언 중의 백미로 꼽힌다. 그의 발명 뒤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도전을 거듭해 결국은 '발명왕'이 되었기에 위인전의 인물로서는 단골 손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 『실패 예찬』 표제어는 '실패'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강한 주장이 내포되어 있다. 실패를 '예찬'한다는 말은 실패 자체를 찬양한다기보다 실패를 통해 이룬 성공이 더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나 실패보다는 성공을 원한다. 실패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이다. 실패는 자신의 노력도 송두리째 삼켜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실패를 예찬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궁금하고,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사뭇 기대된다. 

저자 코스티카 브라다탄은 이 책을 통해 4명의 역사적 인물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동안 실패를 추구한 이야기를 통해 실패에 대한 찬양의 주장을 펼친다. 이들 4명의 인물들의 투쟁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 치유뿐만 아니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실패는 피할 수 없으니 오히려 잘 사용한다면 실패의 경험이 더 나은 삶으로 이끌 것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 책 『실패 예찬』은 실패를 잘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쓰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상가들로 시몬 베유, 마하트마 간디, 에밀 시오랑, 미시마 유키오 등 4명이다. 저자는 이들은 실패한 인물들로 다룬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많은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을 끈질기게 펼쳐 나가며, 실패로써 성공한(?) 4명의 인물을 재조명하기에 갈 길이 멀어서일까?. 깊게 생각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주장이 독선적이고 오류투성이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그러나 저자의 논리는 객관적 예로 가득하고, 다양하고 충실한 논증을 제시하며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나간다. 

저자 브라다탄은 실패를 부각하기 위해 '성공'의 정의에 접근을 시작한다. "성공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간과하기 어렵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경쟁하고 순위 매기고 가치를 어림한다. 하지만 최고가 되고자 하는 이런 수그러들 줄 모르는 욕구로 눈이 멀어,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보지 못한다"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지적한다. 경쟁이나 순위 등은 실제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 시스템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어느 덧 깊숙이 경쟁의 늪에 빠져 있음을 뒤늦게 자각한다. 새로운 길을 찾기도 전에 이젠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상가들인 4명의 인물에 대해 저자는 실패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의미를 발견한 인물들이라고 단언한다. 이들은 실패를 단순한 좌절이 아닌, 깊은 통찰과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보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패는 성서에 나오는 원죄와 같아서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전제한다. 우리 모두는 계층, 신분, 종교, 성별과 무관하게 우리 모두는 실패를 타고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실패를 실천하고 타인에게 넘겨준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죄와 마찬가지로 실패도 인정하기가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당혹스러울 수 있다. 실패는 또한 추하다-죄처럼 추하다고 이야기들 한다. 실패는 그 삶 자체만큼이나 잔인하고 고약하며 파괴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일반적으로 연구가 부족하거나 도외시되거나 일축되기 마련이다. 아니면 더 나쁘게 자기 계발 전문가, 마케팅 마법사, 은퇴 후 시간이 남아도는 CEO들 손에서 뭔가 '트렌디'한 것으로 탈바꿈한다. 이들은 모두-전혀 모순되지 않는 일처럼-성공으로 가는 발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재포장해 다시 판매하여 실패를 조롱거리로 삼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신랄한 비판의 이면에는 분명 논리가 존재한다. 이를 실패를 통한 지혜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실패는 오만과 자기기만을 치유하고 겸손을 불러일으키는 잘 사는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저자 브라다탄은 이 책에서 성공은 우리를 피상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나, 우리를 겸손하고 더 주의 깊은 사람으로 만들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성공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실패의 선물이 없다면 우리는 훨씬 더 가난해진다고도 말한다. 저자는 특유의 유려한 스토리텔링과 학문과 영적 탐구 간의 경계를 기분 좋게 넘나드는, 매력적인 작가이다. 저자를 이해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결론에 이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철학적 사유와 유려하지만 은유적 표현 등으로 독자처럼 지식이 부족하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다. 

『실패 예찬』은 실패 자체를 위한 실패가 아니라 실패가 낳은 겸손, 그리고 실패가 촉발하는 치유 과정에 대한 것이다. 오직 겸손, ‘현실에 대한 자아를 버린 존중’만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게 해줄 거라고 아이리스 머독을 인용해 저자는 규정한다. 겸손을 달성했을 때 우리는 질병에서 회복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라는 점도 덧붙인다. 이를 통해 존재의 얽힘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다는 사실과 합의를 못 하면 사는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강력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정의를 규정해야 한다. "실패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요"소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패에 관여하는 방식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인 반면에 성공은 부차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 그리 많은 걸 밝혀내지 못한다. 성공 없이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고 불완전하며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합의를 못 하면 사는 의미가 없다. "이 전부를 깨닫게 하는 게 바로 실패"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실패가 발생했을 때 우리와 세상 사이, 우리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거리가 생긴다. 우리에게 그 거리는 우리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독특한 느낌, 세상, 그리고 타인들과 우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준다. 



이로써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 아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이 존재론적 각성이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자 할 때 정확히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그 각성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치유가 오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실패는 무한하고 그 징후도 무수하기 때문에 실패를 세심하게 계획하는 것은 잘 알려진 세인트 오거스틴 일화에 나오는 작은 소년처럼 바닷물 전체를 조개껍데기로 퍼내 해변에 자신이 파 놓은 작은 구멍에 넣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유적 표현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로 보이지만 그건 핵심을 벗어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시도하는 것의 광적인 미학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예로 문학작품 속 가장 비극적인 실패작으로 지적한 『햄릿』에서 폴로니우스는 '광기일지라도 그 안에 나름의 이유'를 관찰해냈다고 말한다. 실패는 우리를 포위하고 둘러싸고 있으므로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온다 상상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이제 이 책의 핵심 내용에 들어선다. 앞서 언급한 4명의 인물들을 이 원(동심원) 안에 배치한다. 이런 실패 추구에서 저자의 방식은 가장 바깥 쪽 원에서 시작해 한 번에 한 원씩 서서히 이동하여 우리와 가장 가깝고 친밀한 형태의 실패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가장 바깥에 있는 원, '물리적 실패'에서 시작한다. '거리가 멀다'는 공간적인 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물건에 둘러싸여 살고 물건을 이용하고 물건에 의지할지라도 물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내세운다. 물건의실패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물건의 무결성도 그와 마찬가지이며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원에서 저자는 시몬 베유*를 발견한다. "나는 시몬 베유가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꼈던 본보기라고 단언한다. 

*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 :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철학자.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장으로 들어가서 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에 참가하려고 귀국을 시도하던 중 영국에서 객사하였다. 억압당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 그녀의 목표였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지방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항상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1934년에는 공장으로 들어가서 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였고, 후에 스페인 전쟁에 참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한때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에 참가하려고 귀국을 시도하던 중 런던에서 객사하였다. 만년은 인간의 근원적 불행의 구제를 목표로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그녀의 생애는 억압당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이의 실천으로 일관되었으며 이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사후에 출판된 여러 논문이나 유고(道稿)는 전후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주요저서로 《억압과 자유》 《뿌리를 갖는 일》 등 외에 종교적 명상을 적은 《중력(重力)과 은총》이 있다.(독자 주 : 두산백과)



다음 원은 '정치적 실패'의 원이다. 정치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관여하기 마련이며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관여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를 멀리하며' 살겠다는 결심 자체도 분명 정치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이전 원(물리적 실패의 원)보다 정치적 실패의 원은 우리와 더 가까운데 폴리스는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심지어 반역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조차 정치적 커뮤니티와 연관된 채로 살면서 자신을 반대자로 규정한다. 이곳에서 저자는 마하트마 간디를 발견한다. 책에 따르면 간디는 순수성의 추구를 결코 멈추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정치 속에 심각하게 뒤엉켰다. (간디를 로베스피에르와 여타의 정치적 순수주의자들과 위험할 정도로 가까워지게 만든) 순수성과 완벽함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에서 간디는 가끔 경각심을 일으킬 정도의 불완전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종국에 그를 구원한 것은 오히려 다른 세상 사람 같은 면이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주목해 보면 "투우사가 나타났을 때 그는 간디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마하트마는 항상 다른 영역에 속한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이 책은 진화하는, 그리고 분명 확장하는 실패의 정의를 다룬다. 실패는 근본적으로 불편한 경험, 즉 삶 그 자체만큼 불편한 경험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는 역설적 제안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모든 여정 가운데서도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가장 어렵고 가장 오래 걸린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실패를 안내자로 두었으니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 결국 이건 최고의 의사들이 항상 가르쳐 왔듯이 당신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 당신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식 부족의 독자도 이 말에 저으기 안심하며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저자는 비유적으로 "뱀의 독은 독이자 약이다."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의 말에 새로운 용기를 내 세 번째 인물의 원으로 나아간다. '사회적 실패'의 원이다. 저자는 이 원에서 에밀 시오랑을 소개한다. 우리가 인간적 유대를 벗어나 혼자 살기로 한다고 해도 사회는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물 것이다. 우리는 늘 사회적으로 얽혀 있고, 이 얽힘 속에서 우리는 특히 만연해 있는 실패의 한 형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사회적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실패를 개인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가 에밀 시오랑이다. 저자는 에밀 시오랑에 대해 "부에 집착하고 일 중심인 우리 사회의 창조 신화를 전부 웃음거리로 만들며 능동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데 인생을 바쳤다"고 지목한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타락한 세상에서〉, 2장 〈정치적 실패의 폐허 속에서〉, 3장 〈위너와 루저〉, 4장 〈궁극의 실패〉 등이다. 4장에서는 일본의 군국시대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등장한다. 때는 일본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이후의 일본 사회와 문인 등 몇 명의 삶을 조명한다. 그 중에 당시 일본 최고의 작가로 꼽힌 미시마 유키오는 타고난 재능으로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한 대표 작가다. 저자 브라다탄은 미시마를 「긴 실패의 역사를 산 삶」을 통해 집중 조명한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재주 많은 한 천재 작가의 삶을 통해 '실패의 삶'을 찾아낸 것이다. 실제 그는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특성 중 하나"라고 말한 에밀 시오랑과 비슷한 맥락의 '좌절과 실패'란 단어가 잘 어울릴 정도로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지만, 오히려 인간의 삶과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철학자나 위인 못지않은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판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4장은 미시마의 극단적 선택으로 '생물학적 실패'로 저자는 표현했다. 그러나 미시마의 작품 『가면의 고백』을 읽은 느낌은 달랐다. 미시마는 루저로서가 아니라 실패자로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이 엿보인다. "결국 우리가 엮어내는 자아는 우리가 경험한 것뿐 아니라 갈망했지만 얻지 못한 것, 보답받지 못한 사랑, 지키지 못한 약속, 놓친 기회, 상상이나 환상만 했거나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모든 것 등 긴 부재를 다 합친 총합이다."(p.314)


저자 : 코스티카 브라다탄(Costica Bradatan)


텍사스공과대학교 아너스 칼리지(Honors College)의 인문학 교수이자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철학과 명예연구교수이다. 또한 코넬대학교, 마이애미대학교,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노트르담대학교,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유럽, 라틴 아메리카 및 아시아의 기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뉴욕타임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종교/철학 에디터이다. 『신념을 위해 죽다:철학자들의 위험한 삶(Dying for Ideas: The Dangerous Lives of the Philosophers)』을 비롯해 12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고, 『더 갓 비트(The God Beat)』의 공동 편집자이다. 그의 작품은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 채효정


경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해 동안 직장을 다니며 무역과 해외 영업 업무를 했고, 현재는 도서 번역과 법률 번역에 집중하고 있다. 책을 번역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종종 번역하는 책에 반해 버린다. 강아지 세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와 햄스터 한 마리를 키우면서 아들 녀석과 실랑이하는 가운데 정신 바짝 차리고 번역하는 게 매일의 과업이다. 옮긴 책으로 『숙제 파업』, 『수줍어서 더 멋진 너에게』, 『인플루엔자 D와 빅 블랙 큐브』, 『나의 젊은 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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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생각
이광호 지음 / 별빛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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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열에 들뜬 듯 갈망했던 새로운 낯선 땅, 파리 여행 후 저자는 유려한 글솜씨로 몽환적 정원과 도시의 석양의 기억해낸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예술에 대한 기억도 이끌어내 감동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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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생각
이광호 지음 / 별빛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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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나에게 많은 지식을 전해 주었지만 실제 예술에 대한 영감을 주지는 않았다." 20여년 전 독자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썼던 메모이다. 독자는 당시 첫 해외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에 가까웠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계획된 여행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주어진 관광성 여행이라 미리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짧은 기간에 많이 보는 게 목적인 '여행지 순례'에 가까웠다. 파리에서는 3일간의 여정이었다. 대표적으로 많이 가는 곳에 들르는 일정이어서 여러 곳을 갔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좋은 곳은 느끼지도 못한 채 일정을 마쳐야 했다. 많이 가보고 싶었던 루브르 박물관도 일부만 둘러봤다. 반나절 동안 모나리자를 보느라 기다리고, 고생고생하다 줄을 따라 거기 걸려 있다는 것만 확인한 채 나와야 했다. 니스도 들르고 칸에도 갔다. 모나코도 갔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공연 관람도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파리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남긴 메모대로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하고 파리와 작별했다. 아쉬움에 한 줄 더 썼다. 꼭 다시 넉넉한 시간과 더 자세한 계획을 세워 오겠다고. 그 메모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채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다.

이 책 『파리와 생각』은 독자가 직접 파리에 갔을 때보다 훨씬 많은 감동과 파리에 대한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연히 오랜 계획과 기간을 머물러야 했기에 독자처럼 관광차 며칠 갔다 온 것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많은 곳을 여유 있게 둘러본 여행 일정이 마음에 들었다. 목차에 나온 대로 '파리 산책'이 어울릴 듯한 일정이다. 또 저자 이광호는 처음 접하는 분이지만 성격보다는 글을 쓰는 태도가 마음에 쏘옥 들었다. 나도 저렇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모든 여행은 일회성 같아 보이지만 첫사랑 같이 오래 남아 나를 내내 성숙하게 한다.”는 저자의 말대로 작가와 파리 사이의 시 같은 여행 에세이는 감명도 주고 영감도 주었다. 

흔히 파리는 '예술의 도시'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예술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왔기에 얻을 수 있는 별칭일 것이다. 저자는 시인이며 에세이스트로서, 파리에 가고 싶은 이유가 너무나 단순하다. 첫 번째 글 「저지르기」에 적혀 있다. "오랫동안 프렌치라든지 파리지앵이라든지의 환상을 주입받으면서 자란 탓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살아갈수록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물건들 모두 파리로부터 흘러나와서."(p.18)



저자가 파리 여행을 '저지른' 후, 파리와 저자 사이의 대화 같은 사진과 파편으로 이루어진 기억들 사이를 헤매며 파리를 걸었다고 밝힌다. 거기서 저자가 본 것은 무엇일까? "고풍스러운 상앗빛 거리, 몽환적인 정원, 도시를 장악한 사람들, 풀 향을 밴 석양빛, 결정적 순간······." 저자는 파리를 걸으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오랫동안 담겨있던 상자로의 해방이자 남은 삶의 시작 같은 문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저자의 파리 여행은 오랫동안 별러 왔고, 계획하고 실천을 위해 경비도 모아서 이루어졌다고 고백한다. 요즘에 파리 한 번 다녀오는 게 무슨 인생의 큰 일이라고 오랫동안 계획하고 돈을 모으기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한 가정을 책임지는 생활인이다. 일상의 루틴이 확실한 사회 생활 중에 여행,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짧지 않은 기간 파리에 머물기까지 하려면 적잖은 경비가 들 것이다. 이 경비를 마련하는 일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저자의 말에 독자는 공감한다. 파리에 다시 간다는 독자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버킷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시간이 지나 아는 것이 늘어갈수록, 파리라는 희미한 무늬들은 내 안에서 계속 번져 나갔다. 마치 그곳에 몸을 두게 해 달라는 몸의 시위처럼. 파리를 다녀온 사람들은 항상 내게 '광호 씨는 파리랑 정말 잘 아울려요.'라며 오랫동안 파리의 이야기를 해줬는데, 정말 그들의 말처럼 낭만이 무성한 파리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곳에서 나의 영혼은 껍질을 깨고 순수한 빛을 얻을 것 같다는 착각도 들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독자에게 절절하게 설득력을 높인다.

저자의 갈수록 굳어져 가는 생활 속에서 '나'라는 인간이 더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에 "삶의 모양을 송두리째 흔들어 볼만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심정은 연민의 정까지 생기려 한다. 충분한 공감이 가서다. 여행 계획은 오래 묵힐수록 떠나야 하는 의지보다 떠나지 못할 이유들을 더 응시하게 된다. 저자 역시 오랫동안 '떠나지 못한 이유'들은 분명했고 단호했다고 「저지르기」에서 쓰고 있다.



저자의 파리 여행은 '노후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적지 않았던 듯하다. 오래 별러 왔기도 했거니와, 살아갈수록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들은 계속 늘어만 갈 것이라는 초조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주저감 때문에 계속 미루다간 결국 하지 못 할 거라는 주저함을 과감히 떨쳐 낸 것은 아직 도전하는 열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긱도 하니까 '저지르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이 일에 대한 변명처럼 저자가 늘어놓은 말들이 쓰여 있다. 

"가늠되지 않는 큰 지출 앞에서 돈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래서 돈이 많아야 되는구나 싶다. 다른 생각도 좀 많이 하게. 돈과 여행. 저울에 올릴 수 없겠지만, 여행을 삶의 사치라고 말하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래······ 이 돈이면······ 많은 걸 할 수 있지······'라는 쇠해지는 생각을 하다가 '여행을 가지 않는 게, 삶을 사치롭게 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맞은편에서 반박하며 등장한다."(p.22)

이 책은 모두 20편의 에세이를 20개 장(章)으로 나누어 담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각 제목만 보아도 여유와 진정한 여행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정제돼 있다. 여행이고, 글이고, 책이고 모두 다 그렇다란 느낌이 든다. 첫 글 이외에 「흥(excitement)」「시간을 넘어」「진짜 파리」「실전, 카페 드 플로르」「오랑주리와 수련」「강과 빛과 와인」「도시의 주인」「빌라 사보아 산책」「베르사유에서」, 「열흘」「오르세 미술관에서」「파리의 밤」「에펠탑 아래에 누워」「시차」「여행과 생활 사이의 체류」「뤽상부르 공원에서의 결정적 순간」「방브 벼룩시장」「마지막 센강」「긴 꿈」 등이다.

해외 여행을 하게 되면 대부분 '시차'가 발생해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경도가 같은 일직선에 있으면 시차가 적용되지 않아 적응의 시간이 필요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경도가 차이가 나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으로 갈 때는 비행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시차 때문에 하루 이틀은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저자는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슬기롭게도 시간에 대한 하나의 사유를 끌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몸' 앞에 놓여진 시간을 '시간'을 관통하며 몸 뒤로 '기억'을 만든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생(life)의 구조이자 규칙이다. 이 어찌할 수 없는 단순한 구조와 규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어떤 시간을 어떻게 관통할 것인지. 우리는 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삶의 요구를 사실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생이 너무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건, 우리가 만들어 낸 너무 많은 준비 운동과 요식 행위,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생과의 비교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단순해지기로 한다. 몇 번째 파리행인지도 모르는 저 중년 남자의 기내 지루함은 환희로 가득 찰 나의 기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테니까. 지금 내 앞에 놓인 새로운 시간을 쾌활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관통하자. 그것만 생각하자. 분명 내 몸 뒤로 새로운 기억의 조각들이 반짝일 것이다."(p.36~37)

「진짜 파리」에서 저자는 '진짜'란 단어를 굳이 집어 넣어 생생한 느낌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분 상태도 은근히 독자들에게 알리는 시그널로 사용하는 글솜씨을 보이기도 한다. '이국의 향이 반겨주는 진짜 파리에 왔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파리를 걷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실감난다.

"고풍스러운 상앗빛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 직선의 거리에서 느껴지는 힘과 멋. 그 길 따라 빗살처럼 늘어선 석조 외벽과 연철 발코니, 맨사드 지붕 장식들의 조화. 무엇보다, 모든 건물 1층에서 '우리 모두 인생을 즐깁시다.'라고 담합한 듯 여유롭게 테라스에 앉아 와인잔을 짤랑이는 파리 사람들의 정오 운치가 나를 사정없이 홀린다. 차분하면서도 활기가 느껴지는 도시. 길의 사람들은 경주하는 도시인들 같지 않고 대부분 읽거나 말하거나 뭔가를 즐기고 있는 듯한데, 차림새도 참 멋있다. '그래, 거대한 조각 같은 도시에 살면 누구라도 대충 입을 수 없지.' 괴상하다 생각했던 불어의 발음도 너무 멋들어지게 느껴진다. 음운들 간의 흐름이 유려하다고나 할까, 가만히 불어를 듣다 보면, 언어에도 장식이 달려있는 듯 우아해 보인다. 파리, 정말 예술 그 자체 같은 도시. '파리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 아름다운 것들의 합이 파리를 아름답게 만든 것일까' 같은 생각을 하며 목적 없이 한참을 걷는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특별한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자는 파리를 걷다가 건물 외관 장식을 재현한 것으로 알고 만져보다 깜짝 놀란다. 재현이 아니라 원형이어서다. 백 년 단위의 나이를 가진 건물들 사이에서 구정물이나 퀴퀴한 냄새 등을 생각하고, 아주 오래전 파리의 〈베르사유의 장미〉나 〈레미제라블〉 같은 것들을 연상해 내기도 한다. 울퉁불퉁 돌길을 사색하며 산책했을 수많은 예술가들을 떠올리는 저자는 이제 파리의 정체에 다가선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 대신 〈오랑주리 미술관〉 이야기를 꺼낸다. 자비 없이 쏟아지는 햇빛에 완전하게 노출됐고 모든 것을 선명하게 내 보이는 날 저자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한다. 멀리 공원의 사람들이 보이고, 돌바닥의 질감을 느낄 수 있으며, 테라스의 식기, 노인의 솜털까지도 보이는 너무 환하거나 너무 쨍한 날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 넓은 앞마당에도 미술관이라는 단서 같은 조형물 하나 없다. 미술관의 무심함에 실망을 해야 하나 허위를 걷어낸 당당함에 기대를 해야 하나. 대기 줄 맨 끝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장 시작을 알리는 불어 소리에 맞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간다. 

"'띡!' 출발 신호 같이 티켓을 스캔하는 소리에 맞춰 심장은 단거리 달리기를 시작한다. 모네의 〈수련〉 연작을 향해서. 아무래도 메인 테마이다 보니 전시 가장 한가운데 아니면 끝 쪽에 있겠지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입구 모퉁이를 돌았는데··· 거대한 빛이 쏟아진다. 아주 순도 높은 빛이. 흑백의 세계에서 색채의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황홀감이 밀려온다. 장엄하게 펼쳐진 모네의 〈수련〉 연작. 순간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치여 탄성이 나온다. 공간을 공명하는 환한 빛과 둘러싸듯 아름답게 펼쳐진 어스름한 새벽의 몽환적인 정원. 이곳의 시공간은 완전하게 다른 차원처럼 느껴진다. 모네가 살던 때의, 지베르니 정원이 눈앞에 있는 듯이. 조금 전 통과했던 좁은 통로가 판타지에 나올 법한 차원문이었나 싶다."(p.66~67)

저자는 「오랑주리와 수련」이란 글에서 모네의 〈수련〉에 놀라고 사진을 찍을 때 파리의 '톨레랑스'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모네의 〈수련〉 연작의 배치는 미술관의 노련한 스킬이지만, 작품 사진을 찍을 때 불가피하게 관람객의 모습이 함께 찍혔는데 당사자에게 사정 설명을 하니 '괜찮으니 원하는 대로 하라'는 답변해서 놀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작품 촬영에 대한 배려는 우리나라의 관람 시스템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작품의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는데, 아마 우리 미술관 입장에서는 그림을 빌려오기 때문에 손상될 우려가 있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나 싶다. 20편의 수필 중 겨우 3개만 노출시켰다. 독자들의 양해 구한다. 훨씬 많은 훌륭한 글들이 있다. 여행에세이인지, 예술 에세이인지 분류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지식과 영감, 그리고 저자의 글쓰기 능력의 탁월함에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저자 : 이광호


2014년 출판사 생각나눔을 통해서 데뷔했다. 2015년부터 독립출판을 시작해서 「당신으로 좋습니다」, 「그 당시」, 「이 시간을 기억해」,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간직할 수 있도록』, 『숲』, 『우리는 영원을 만들지』, 『숲, 광장 사막』(숲 증보판), 『아름다운 사유』, 『흰 용서』 등의 작품을 발행했고 2014년에는 『파도를 일며』라는 음원 앨범을 발매하면서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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