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 - 공자·맹자·순자·묵자·노자·장자·한비자
옥현주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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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중국 대륙은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군웅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나라를 세우고 인재를 발탁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륙 전체에 퍼져 있을 시기다. 물론 대륙에는 전쟁이 없던 날이 하루도 없었을 것이다. 군대를 상시 운영하는 나라들은 없고 생업,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비교적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병사로 차출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나라는 물론, 자신 그리고 가족의 운명도 보장할 수 없다. 전쟁에서는 이기지 못할 때는 죽거나 노비 신세다. 나라나 개인이나 전부를 걸고 전쟁을 치른다. 이때 전쟁도 나라도 제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치를 할 인재를 모시는 것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유력한 가문은 제후나 고위 관료예서 왕이 될 수도 있다. 전쟁이 일상인 사회는 혼란의 연속이다.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질서는 엉망이 될 것이고, 나라 살림은 텅텅 빈 금고나 다름없다. 전쟁 물자를 대는 것 또한 다른 나라를 복속시켜 거기서 얻은 땅이나 포로로 얻은 군사로 대신해야 한다. 전쟁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누구나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전쟁터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총성 없는 전쟁터'로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 더구나 현대는 풍요로워 '가난'이 없을 것 같지만 굶지는 않아도 상대적 빈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부의 편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이란 부작용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에 반발해 공산주의가 생겼지만 공산주의 체제는 100년도 안 되어서 실패로 끝났다.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나 현대 사회는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감정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숙명처럼 일상화되어 있다. 다양한 욕망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혼돈과 위험이 닥칠 때도 있고, 무기력에 빠질 때도 있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인들은 가끔씩 ‘내 삶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토록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삶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숙고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없다. 질문들의 답을 찾지 못한 채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답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다. 살면서 난관에 부닥치면 극복하고 넘어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극복하지 못한 채 안고 살아가면 점점 더 삶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이미 그렇게 굳어져 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은 우리 속담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자주 들어서 거의 DNA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격언은 우리나라 만의 속담이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비슷한 의미의 격언이 있다. 시대를 거술러 올라가면 지금 인류의 사상과 철학의 원류는 사실상 2,500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 중국의 공자, 인도의 고타마 싯타르타 등 세계 종교의 창시도 대부분 인류 정신사의 혁명적 전환기라고 일컬어지는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 책 『제자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의 저자 옥현주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줄 2,500년의 지혜」라는 제목의 〈서문(들어가는 말)〉에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철학자들이 활약한 시기를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라는 말을 인용해 대신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철학자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장자, 한비자는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에 태어나서 활동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는 힌두교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문헌으로써 《우파니샤드》가 조성되었으며,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해 불교가 성립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구약을 기록했던 아모스, 이사야, 에레미야가 활동햇고,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인류정신사의 전환의 시기가 열렸던 것입니다."(p.8) 축의 시대에 등장하는 중국, 인도, 이스라엘, 그리스는 서로 교류가 없었는데도 비슷한 시기에 놀라운 사유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당시 네 지역은 공통적으로 급격한 도시와와 인구 증가,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도덕성이 매우 피폐한 상황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최근 유독 고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도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전에는 삶에 대한 깊은 고찰과 본질적인 지혜가 담겨 있어 읽는 이들에게 일종의 인생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자백가는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수많은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전국시대에 탄생했다. 이 같은 약육강식의 시기에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질서와 대안을 모색했던 이들을 ‘제자백가’라 부르는 것이다. 제자백가가 출현한 시기는 오늘날처럼 크고 작은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문제가 넘쳐나는 시기였기에, 그들의 철학은 우리의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제자백가에는 사람의 생사 문제에서부터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의 도리, 정치, 사람 간의 사랑,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 배움과 수양의 문제, 운명론 등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천오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자백가의 철학이 내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통찰과 지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p.11)

이 책 『제자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는 공자·맹자·순자·묵자·노자·장자·한비자 등 제자백가 핵심 사상가 7인의 가르침을 엮었다. 『논어』, 『장자』, 『도덕경』, 『한비자』와 같은 제자백가의 고전에는 당대의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사상가들의 삶의 지혜와 교훈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단단한 내면을 만들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깨닫게 할 35가지 지혜를 저자가 엄선했다. 당장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방법론이나 처세술 대신,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진리를 통해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한다는 집필 취지에 따라서다. 또한, 다양한 문제를 여러 사상가의 시각으로 바라보아 균형 잡힌 사고를 키우고 인생을 꿰뚫는 통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2,50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제자백가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마음에 되새기고 깊이 성찰하다 보면 복잡한 환경, 갑작스러운 고비, 잘못된 가치관 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단단한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믿는다.

동양철학연구가인 저자는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제자백가, 그 가운데서도 공자, 맹자, 묵자, 순자, 노자, 장자, 한비자 등 대표적인 7인의 철학을 집중 조명한다. 이들은 인간의 도리, 자연과의 조화, 사회적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겼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들의 철학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삶의 본질을 꿰뚫고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앞날을 준비하려거든 뒤부터 돌아보라”-공자의 준비」, 2장 「“버틸수록 하늘이 길을 연다”-맹자의 인내」, 3장 「“내가 바르면 천하가 뒤따른다”-순자의 처신」, 4장 「“이루고자 할 때는 의지가 필수다”-묵자의 실천」, 5장 「“마음을 따르니 걸리는 바가 없다”-노자의 자존감」, 6장 「“나를 잃으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장자의 자유」, 7장 「“빨리 결단하고 변화에 순응하라”-한비자의 통찰」 등이다. 1장에 나오는 공자는 유가학파의 개조로서 춘추시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교육자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공자의 천인관계, 학문의 자세, 사명과 운명, 살신성인, 제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의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서 발전시킨 전국시대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상가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맹자의 왕도정치, 사생취의, 성선설, 수양론, 우환의식을 짚어본다. 3장의 순자는 전국시대 후기의 유학자이다.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으며, 맹자보다 현실적인 사상가이다. 저자는 순자의 성악설, 화성기위, 비판적 사고, 예론, 상례와 제례에 대해 밝힌다. 4장에서 저자는 묵가학파의 개조로서 순자가 하층계급의 입장을 대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임을 부각시킨다. 이 장에서는 겸애교리, 명정론 비판, 삼표법, 후장구상 비판, 묵가의 실천력을 자세히 안내한다. 

5장의 노자는 도가학파의 개조이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무위자연, 도와 덕, 유약과 견강, 섭생의 원칙, 양생법을 이야기한다. 6장에 나오는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계승한 도가학파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전국시대에 활동했다. 이 장에서 장자의 가치 판단, 무용지용, 상대주의, 기화 사상, 물화 사상을 풀이한다. 7장에 나오는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면서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다. 아 장에서 저자는 수주대토, 법·술·세의 통합, 조짐, 유세의 어려움,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7개의 장 가운데 독자의 관심을 유독 끌었던 부분은 '순자의 처신'이란 부제가 붙은 3장 「내가 바르면 천하가 뒤따른다」이다. 사실 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악설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맹자와 비교되며, 온전한 평가에서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닌가 싶어서다. 이와는 반대로 맹자는 성선설을 주창한 학자로 순자와는 상대적으로 이상주의자라는 힐난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회자되는 경우가 훨씬 많고 따르는 유학자도 많은 것 같다. "당신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약속한 날짜에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친구가 날짜를 착각했을 것이라고 믿을까요, 아니면 친구의 행동에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게 될까요?" 저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와 순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하며,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친구의 입장을 먼저 들어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하며 사람은 나면서부터 이득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순자의 관점을 따른다면 친구를 행동을 경계하고 이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려 할 것이다. 저자가 밝히는 답으로부터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명쾌하게 가려낸다. 

이에 대해 저자의 성선설과 성악설에 관련된 해석은 엄정하고 편중적이지 않다. "인간 본성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리는 선택과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느냐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p.108)

우리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변화와 불안한 미래로 혼란스럽고, 각자의 삶에 닥쳐오는 고난을 현명하게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부, 성공, 인간관계 등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재조명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생각난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이란 사전적 풀이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한비자에 관한 장 가운데 '나라가 망할 47가지 징조'란 항목에 눈이 간다. 혹시 조선조 말의 우리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진 게 있나 싶어서다. 한비자는 〈망징〉 편에서 나라가 망할 징조를 마흔일곱 가지로 열거하는데,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의 창고는 비어 있는데 대신들의 창고가 가득 차 있거나, 큰 이익을 보고도 취하지 않고, 재앙의 조짐을 듣고도 방비하지 않으며, 공적도 없는 사람이 존귀해지고, 나라를 위해 애쓰고 수고하던 사람이 천한 대우를 받게 된다면 아래 신하들이 원망을 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나라는 망할 것이다."(p.311) 하지만 한비자는 나라가 망할 징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망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단지 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그 나라가 얼마나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또는 혼란스러워지고 있는지', '부강함과 쇠약함 중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등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벌레를 통해서이며 담장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틈에서 시작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강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부러지지 않고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그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내부의 조건인 망할 조짐과 외부의 조건인 비와 바람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비자가 미세한 조짐을 파악하고 미리 예방하라고 한 이유는 훗날 강한 태풍이 몰아쳤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사전에 미리 대비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해 준다.


저자 : 옥현주


동양철학연구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이자 동양문화 융합학회 이사이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제자백가의 여러 구절을 읽으며 삶의 가치관이 다시 정립되는 것을 느꼈고, 그 길로 곧장 동양철학의 길에 들어섰다. 주로 죽고 사는 문제, 즉 생사관을 연구한다. 삶과 죽음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와 공부를 통해 깨달은 바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단단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장자, 한비자 등 수천 년 동안 사랑받은 제자백가 7인의 지혜를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더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을지 알려준다. 특히 인생의 고비를 맞닥뜨린 이들이라면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힘을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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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의 풍경 -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
신복룡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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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한민족에게 가장 어려운 시대라고 하면 아마 20세기를 꼽을 것이다. 이 시기는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해방, 그리고 비극의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전쟁.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한 다음에도 분단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 군부 쿠데타, 군부 독재로 점철된 시기가 20세기다. 정치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가 일제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정치학자나 시대평론가들은 해방정국을 이 시기로 본다. 물론 학자마다 다르게 볼 수도 있다. 1943년부터 한국전쟁까지를 해방정국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일부는 1945년 이후 한국전쟁까지로 보기도 한다. 이 책 『해방정국의 풍경』의 저자 신복룡은 해방 직전 일제 치하였던 1943년부터로 해방정국을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원래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글이었다고 한다. 광복 70주년이라고는 하지만 보수지임을 자임하는 〈주간조선〉에 해방정국을 제대로 평가하는 게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의 시선을 연재 초부터 독자들이 보냈다고 한다. 

'슬픈 예감은 항상 잘 들어맞는다'는 연재 중단 사태가 벌어진다. 이른바 좌우익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고 한다. 우익들은 저자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였고, 좌익들은 보수신문에 기생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결국 17회를 끝으로 연재는 막을 내렸다. 대구 사건과 여순 사건, 제주 4·3사건, 그리고 김일성의 항일 투쟁과 가짜 논쟁의 진위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룰 무렵 〈주간조선〉 데스크로부터 저자의 글이 〈조선일보〉의 입장과는 달리 다소 좌경의 색채를 보이고 있으니 용어들을 수정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저자는 나름의 논지를 수정할 의사가 없었고, 글을 고치느니 연재를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저자가 생각해 중단되었다고 저자는 『해방정국의 풍경』의 〈서문(글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당초 데스크의 의도는 〈조선일보〉가 보수라는 사회의 평판으로부터 진일보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에 이 글의 연재를 시작했다고 저자는 이해했다고 말한다. 결국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지만 이미 25회를 예정하고 자료를 정리해둔 저자는 게재의 중단이나 계속과 관계없이 전면 탈고를 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저자의 사정을 전해들은 인터넷 동호회 〈마사모(마르코 글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속편을 연재하겠다고 나서 완전히 탈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에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은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로 손꼽히는 신복룡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인물‘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 책 『해방정국의 풍경』이라는 표제어로 완전한 책으로 거듭났다.

앞서 설명했듯 이 책은 해방정국의 이승만, 김구, 김일성, 박헌영 등 한국 현대사를 풍미하는 좌익과 중도, 우익을 대표하는 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일화와 사건을 상세히 소개한다. 또 저자의 연구와 많은 자료 등을 치밀한 분석으로 한국 역사의 진실과 이면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앞서 독자가 언급했던 해방정국(解防政局)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림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다. 한국사에서는 보통 이 시기를 현대사로 간주한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군정 기간(1945~1948)은 사실상 1907년부터 1910년까지의 일본의 통감(統監) 정치보다 더 자유롭거나 주권적인 국가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일본에 이김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을 식민지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한국전쟁 때도 미국이 주도해 UN군을 파견함으로써 군사적으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구해준 은혜로운 나라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살 것이 절대 부족한 대한민국에 밀가루 등 대규모의 식량도 무상으로 보내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해방정국에서는 4대 강국의 `해방을 시켜주지만, 독립을 시키지 않는다`는 확고한 정책 하에서 한국은 미국의 준식민지로 불리었다는 점도 저자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다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나 곧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3개월 정도 `공화국 군대(북한 인민군)` 가 지배하던 시대를 맞이했고, 이는 중공군이 참전했다 물러난 `겨울 피난`(1·4 후퇴)이 끝난 1952년 3월까지 계속되었다. 다시 대한민국은 주권을 찾았으나, 그 과정에서 일본, 미군정, 대한민국, 이른바 인민공화국(북한), 미8군 사령관(UN군 사령관)을 거쳐 다시 대한민국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다. 이 짧은 시간에 통치권자가 여섯 번은 바뀐 셈이다. 저자는 현대사에 이렇게 팔자가 드센 세대가 일찍이 없었으며, 이 기간에 겪은 10년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소설이었고, 밤새 이야기를 해도 쉬이 끝내기 어려운 한국전쟁의 전말이라 이야기한다.

현재 팔순을 훌쩍 넘긴 저자는 지금껏 강의나 연구서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풀어놓는 사실도 있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결국 사람이 저지른 업보였고, 그 가운데 일부만을 우발이론(contingency theory)으로 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격동의 시대에 이념, 체제, 강대국의 입김이 세태를 좌지우지했을 수 있지만, 어느 시대이든 사람이 독립 변수였기에, 이 책은 바로 그 사람,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다른 구분 없이 모두 32장(章)으로 한데 묶었다. '해방정국'이란 표제어에서 암시하듯 한정된 짧은 기간이고 좌우와 한반도 주위 강대국들이 모두 관여하고 있기에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중도적인 입장의 학자로서 책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에 저자가 의도하는 객관적 사실과 자료 분석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기술하다보니 별도 구분 없이 장으로 묶었을 것으로 읽힌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다루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풀어본다. 먼저 인물 면에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구·이승만·여운형·백관수·박헌영·김일성·홍명희·맥아더·모택동·조봉암 등이다. 사건은 해방, 미군정, 좌우 대결, 대구 사건, 제주 4·3, 여수·순천 사건, 한국전쟁, 휴전회담, 분단과 통일논의 등이 시기순으로 나열되고 있다. 이는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역사 기술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1장의 제목 「해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한국에 있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이 어느날 갑자기 닥친 일이다. 사실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한 일본의 공식 항복 방송을 못 들은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믿기지 않아 눈치 보느라 도로에 나와 만세 한번 제대로 외치지 못했다고 한다. 익히 일본 경찰의 악랄함에 이미 순치되었다고 할까. 슬프지만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장을 시작하며 저자는 핸더슨의 말을 인용했다. "1910년에, 그 많은 인구를 거느리고 그토록 훌륭한 유산을 가진 한국이 그렇게 쉽게 멸망한 것은 기이한 일이다."(p.21)

저자는 "역사의 흥망성쇠는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대한제국의 멸망이라고 해서 남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역사이기에 앞서 우리의 경험 속에 기억되어 있고 그 잔혹성이 다른 어느 유형보다 심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의 뉘우침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그렇다고 일본의 잘못만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과 역사를 반성하며 자신의 실수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을 듣는 사람은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포화를 퍼붓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로 판단해 보면 영·정조의 시대가 끝나고 순·헌·철종의 시대가 오면 조선은 이미 국가로서의 활력을 잃은 채 타성으로 연명하는 제국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부패로 말미암은 왕조의 피로와 민중의 지친 삶은 조국의 운명에 대한 연민을 많이 잃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친 삶 앞에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운명은 백성들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밖으로부터의 일격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운 국가의 공통된 특징은 암군(暗君)의 시대와 관료의 타락, 그리고 의욕을 잃은 민중의 지친 삶이 동시에 벌어지며 그 결과는 끝내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이럴 경우 외침에 대한 저항력은 거의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많은 도덕론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역사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우리는 인류 사회가 정복 전쟁으로 얼룩진 것을 보게 된다. "평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평화롭다'고 말한다.(《구약성경》「예레미아서」 6:14) 유사 이래 지구상에는 1만4,500회의 전쟁이 있었고 36억 명이 죽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순간은 모두 합쳐도 230년에 지나지 않았다.(온창일, 2001)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전쟁의 총성이 멎었던 순간은 단 하루도 없었다.(황병무, 2001)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쟁은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는 프러시아 육군사관학교 교장 클라우제비츠 장군의 말, 곧 "정치는 피 안 흘리는 전쟁이요,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이다"라는 경구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고 저자는 피력한다.

그 숱한 전화를 겪으면서도 유교 국가가 고집스럽게 문민 우위의 원칙을 지키려 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상감사 이언적이 우병사 김질과 함께 배를 타고 김해로 간 일이 있었는데, 조식이 그 말을 듣고서 질책했다. "감사가 어찌 무지한 무부와 더불어 같은 배를 탈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성찰을 하게 하고 세계 역사의 흐름은커녕 주위 국가들의 무장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유교 선비들은 전쟁 대비에 무신경했다고 한다. 또 식민지 정책의 일본에 대해서도 한 번의 침략을 받아 그 수난을 당했음에도 조선은 군사력을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왜군 침략 불과 30여년 만에 청의 침략으로 전 국토와 백성이 유린당하고 항복하고 만다. 저자는 일본인에 대한 잔인함을 우리가 잘 아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인용해 내놓는다. "일본인에게는 종교적 죄의식이 없어 잔인하다. 죄의식이 없는 민족은 회개나 반성 또는 사과의 미덕을 모르고 산다." 위안부 문제이든 득도 문제이든, 한일관계사를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 해답이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최근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024) 을 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당시의 생생한 상황과 이승만 대통령, 김구 등 당시 건국 1세대 인물들에 대한 저자 특유의 분석을 엿볼 수도 있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는 이 책 『해방정국의 풍경』을 통해 이승만과 김구는 현실 인식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김구는 민중적인 지지 기반이 취약해 민중 봉기나 지지에 대한 국가 건설이 당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윤봉길이나 이봉창 의사처럼 순교자적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개별적 테러리스트에 의한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그를 테러리즘에 몰두하게 했다고도 전한다. 이는 김구를 숭모하는 무리에게는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분석이나, 저자는 테러리즘에 대한 학술적인 정의는 ‘자금이나 훈련이 부족해 조직적인 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략) 순교자적 우국심으로 무장된 개별적 투사가 적군에게 무장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중략) 적군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투쟁 방법‘을 뜻한다고 전한다. 또한 한국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를 ’의열 투쟁’이라고도 일컫는데, 본질적으로 테러리즘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는 흥미로운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2024)에는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사의 평가가 그렇게 바뀐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라며 반문한다. 역사에는 모든 정치인이 과오와 공덕을 함께 이루었으나, 그렇다고 공덕이 과오를 덮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엇보다 지금 와서 이승만이나 김구의 숭모자들이 해야 할 일은 누구의 죄를 묻기보다는 양쪽 후손들이 먼저 화해하고 좌익에 대해 항거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승만과 김구의 기일에 서로 초대장을 보내고, 그 답례로 조화를 들고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 저자의 소망이다. 왜 이 칼럼들이 오늘날 좌익과 우익의 십자포화를 맞았는지 짐작이 간다. 해방정국에서 이름과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대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부호들의 자녀들인 경우가 많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아시아 전제의 일본의 위력이 미칠 것으로 판단한 군부를 앞세워 아시아 각국을 향해 무력으로 점령해 나간다. 메이지유신 이후 무기의 근대화는 물론 신기술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 정도로 군사 강국이 된 일본이 드디어 마수를 드러내고 이를 일본 국민들은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침략해 항복을 받아내는 과정에서는 열도가 흥분에 들떠 마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새로 출범한 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인민을 위한 나라 소련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일본 열도 북해도 위쪽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부동항을 가지려는 소련의 정책과 북진해 아시아를 제국의 손에 넣으려는 일본은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대 러시아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역시 영토 일부를 할양받기도 했다. 승승장구 일본을 막아선 나라는 미국보다는 소련과 공산화 우려가 있는 중국이었다. 그들이 나서서 막았다기보다는 천황의 국가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좌우 군대가 내전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 중일전쟁 등 많은 전쟁에서 이겨 일부 영토의 조차권 등 많은 이권을 챙기기도 한다. 이때 우리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와 함께 생사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조선에도 공산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이는 결국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싸움에 휘말린 독립운동가들의 비극이다. 

부르조아 공산주의자 중 한 명인 박헌영은 공산주의 이론에 해박한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여성 편력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당시 아내였거나 관련이 깊은 여성들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자로 갈리는 운명을 직접 겪고 보고, 그 가운데 인물인 박헌영은 남로당(남한 노동당)을 이끌어 나중에 월북한 후 북한 외무상까지 지냈지만 한국전쟁 실패의 책임을 묻는 김일성에 의해 숙청 당한다. 김일성은 공산주의보다 정치적 술수가 더 뛰어났던 것 같다. 박헌영은 공산주의자로서 삶을 마칠 때까지 충실한 이론가였지만 정치에는 감각이 뒤졌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해방정국의 갈등을 설명하면서 좌우익의 갈등이 비극을 낳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좌익 내부의 갈등과 우익 내부의 갈등이 좌우익 사이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고 더 적의(敵意)에 차 있었으며 잔혹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해방정국을 더욱 비극의 길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몽양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해방정국의 희생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의 손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우익은 우익의 손에 죽었고 좌익은 좌익의 손에 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안에서도 중도 온건 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려는 극단적 도그마와 성숙하지 않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p.80~81)


저자 : 신복룡(申福龍)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同) 대학원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중앙도서관장, 대학원장, 석좌교수(1979~2012)를 지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1999~2001),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의 객원 교수(1985~1986)를 지내고,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1999~2023)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풀빛, 2002) 『한국정치사』(박영사, 2003, 5판) 『대동단실기』(선인, 2004)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 『The Politics of Separ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 1943-1953 (Edison, NJ : Jimoondang, 2008)』 『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仁齋)저술상 수상) 『전봉준 평전』(들녘, 2019)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선인, 2021) 『잘못 배운 한국사』(집문당, 2022) 『이방인이 본 조선의 풍경』(집문당, 2022) 등이 있다.

역서로 『외교론』(H. Nicolson, Diplomacy, 1979) 『군주론』(N. Machiavelli, The Prince , 1980) 『칼 마르크스』(I. Berlin, Karl Marx , 1982) 『모택동 자전』(E. Snow, Red Star over China : Genesis of A Communist , 1985) 『묵시록의 4기사』(E. Penchef, Four Horsemen, 1988) 『한국분단보고서』(1992, 공역) 『현대정치사상』(L. P. Baradat, Political Ideologies, 1995, 공역) 『정치권력론』(C. E. Merriam, Political Power, 2006) 『입당구법순례행기』(옌닌, 2007) 『임동(하야시 다다쓰) 비밀회고록』(2007, 공역) 『한말외국인기록』 전23권(2018, 일부 공역) 『삼국지』 전5권 (집문당, 202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5권 (을유문화사, 2021) 『한국분단보고서』 전3권(2023, 일부 공역) 『신·구약 성경 : 교감』(Naver/blog/shinbokryong=신복룡 성경, 2023)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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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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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인지 종교에 관한 책도 별로 읽은 기억이 없다. 다만 서양의 문학, 철학, 미술, 음악 등을 다룬 서적에는 기독교 신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불교 음악은 스님들이 염불하는 것을 제외하고 따로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승무」를 읽고서야 불교에서도 음악을 중요시하는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불교 방송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불교 음악을 따로 들은 적이 없다. 우리 한민족이 음악을 즐긴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이지만 독자는 스스로 음악 공부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음악에는 문외한이다. 특히 최근(거의 20년이 넘었지만) K-팝이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퍼지고 나서야 "우리가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는 게 정말 맞나 보다" 싶었다. 

이 책 『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이하 『음악인류학』)은 불교 음악에 대한 저자 윤소희의 심층 고찰이다. 서양이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중심이듯 한국인은 오랜 세월 불교와 함께 해왔다. 불교의 교리나 경전의 내용이 사람의 삶과 만물의 이치를 밝혀 삶에 적용한 데 적절했기에 불교를 국교로 한반도 삼국시대에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는 유교(종교인지 정확히 모르지만)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 삶에 적용했다고 알고 있다. 유교는 현실에 치중하는 학문으로, 동양 각국에 정치,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 내렸기에 국가의 이념은 유교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불교보다 먼저 유교의 가르침대로 살았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유교는 공자의 학문을 후학들이 계승 발전시켜 주자학, 성리학 등으로 이름을 달리 했지만 뿌리는 공자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문자를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빌려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고, 우리 발음으로 고쳐 발음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는 불교가 전래(중국을 통해)되면서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불교 국가였다. 불교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 국교로 인정됐으며 1,000년 이상을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국가의 유지나 우리의 삶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한 것이다.

저자 윤소희는 이 책에서 한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전제한다. 흥이 넘치고 떼창에 열광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서양음악을 뒤늦게 접하고 공부했지만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계속해서 나온 것도 우연히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세계 음악계를 압도하는 음악적 재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자는 한국인의 유전적 DNA에 2,000년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된 불교음악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음악과 사람, 종교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종교의 세계와 음악문화는 고대사에서 근현대사까지 아우르고 통섭하며 불교음악으로 귀결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 윤소희의 화제의 연재 칼럼 〈불교와 세계 종교〉를 묶어 다듬었다. 저자는 불교음악 작곡자이자 음악인류학자로 세계를 여행하며, 다른 문화권의 종교음악과 비견되는 한국의 음악을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저자의 통찰력과 위트가 엿보이는 목차 구성도 흥미롭다. 여러 나라의 종교와 음악을 경험하며 이해를 돕는 이미지와 직접 찍은 사진도 볼거리인데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읽히는 구어체 문장에서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범음성을 찾아서」란 제목의 〈서문(책을 내며)〉을 통해 저자는 "불교 경전에는 '붓다의 음성'에 대한 내용이 많다"고 전제한 뒤 "세계 어떤 종교에도 종조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변에는 '음성행법'으로 범아일여의 경지에 들었던 고대 인도문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불자들은 음악을 번거롭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음악,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음악, 불안과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치유음악 등 신통한 묘력의 음악들이 있지만 불교음악의 꽃밭에 벌들은 왜 조용한 것일까. 통일신라 시대에 거사들이 유행처럼 들고 다니던 비파는 건달바의 악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고, 고려 시대 사찰의 악가무는 파계승을 놀리는 탈춤이 되었다. 그 사이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고,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불교음악은 시대 흐름과 함께 다양한 음악으로 변모했다. 음악인류학의 관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을 연구해 보니, 불교야말로 가장 '음악적인 종교'임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불교는 미술, 기독교는 음악'이라고 평가할까? 여기에는 조선 시대 억불정책으로 숨죽여 살아온 훈습의 탓도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종교의 예배당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반면, 한국 사찰은 산골에 피신해 있는 모양새다. 종교처에는 고요함도 있어야겠지만 신난 흥겨움도 있길 바란다. 미래 과학의 시대에는 '호모사피엔스'가 무상·무아의 연기설이 상식이 될 정도로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모든 종교는 스마트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기쁨과 환희의 꿀을 내뱉는 꽃이 되면 좋겠다. 종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한편 법열의 꿀을 내어놓는 꽃들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 윤소희의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계 어느 민족보다 한국인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칼럼 〈불교와 세계 종교〉를 연재하는 동안 지면의 한계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사진 자료를 대폭 보완해 다른 문화권의 종교음악과 비견되는 우리의 음악을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이 책은 2부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다〉와 2부 〈이슬람·기독교·불교를 통섭하다〉 등이다. 1부에는 1장 「인도의 음성행법과 붓다의 범음성」, 2장 「유교와 도교의 제사와 음악」, 3장 「중국음악에 유연성을 부여한 서역음악」, 4장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5장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이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되면서부터 우리의 불교 수용, 확장,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내고 있다. 또 2부는 1장 「아라비아와 인도의 만남 수피 춤」, 2장 「인류 문명과 호모뮤지카」, 3장 「다르지만 통하는 기독교와 불교음악」, 4장 「같은 혈통 다른 나라, 한·일 풍속과 음악」, 5장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 등으로 나뉘어 불교음악을 전해준다.

책의 서두(1부 1장)에서는 세계 종교의 출현과 창시자의 음성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짚어낸다. 책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단계에서 고등 종교의 출현 시기는 생활 양식, 정치와 학문, 문화와 예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기였다. 서기전 500년 전후 세계 각지에서 발현한 이들 종교의 공통점은 '말씀'이라는 도그마(dogma, 교리)가 있어 유교·기독교·불교와 같이 '가르치다'라는 의미의 '교(敎)'자가 붙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로고스(logos)요, 그 존재 형식이 말씀이라, 기독교 성서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라고 하며, 그 말씀의 육화(肉化)가 예수의 탄생이었다.

특정 창시자가 없는 힌두교는 브라흐만의 존재 형식이 '말씀'이었고, 말씀을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복잡한 제사 의식을 위해서 고도의 훈련을 쌓았고, 우주의 궁극인 '범(梵, 브라흐만)'과 자신의 실체 '아(我, 아트만)'가 합일되는 범아일여를 추구하였다. 이를 위해 초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힘과 신성에 나아가기 위한 공진 훈련이 사브다비드야(聲明)였다. 이러한 학습으로 음성에너지의 효력을 알게 된 사제들은 갖가지 진언으로 주술을 부리며 민중을 현혹하고 나아가 신의 대리자로서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코살라 왕국의 석가모니가 나타나서 범(梵)도 아(我)도 없다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수천 년간 쌓아온 힌두 사제들의 절대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핵염기 DNA과학이나 시공간의 양자역학도 없던 시절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결과일 뿐 아트만이 없으며 시공간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설하였고, 그 이치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섯 비구가 있어 《초전법륜경》이 설해졌다. 이후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브라만이었던 범마유도 그를 찾아갔다.

석가의 탄생과 불교가 창시된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언급되고 있다. 이후 부처의 음성은 '말'과 함께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반인들은 정치나 비즈니스를 위해서 음성과 말씨를 조절하며 다듬지만, 붓다는 존재 자체의 울림이었으니 말하자면 '무의(無爲)의 공명'이었다. 불교의 각종 경전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것으로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종조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붓다의 말슴 중 그 율조가 가장 유려한 것은 '가타(시)'이다. 가타는 '노래하다'는 산스끄리뜨 어근 '가우'의 명사형으로 법언 자체가 아름다운 음악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가타를 모아 놓은 《법구경》은 붓다의 노래 모음집이라 할 만큼 운율이 아름답다. 그러므로 붓다의 말씀을 소리로 기록한 빠알리 경전을 외는 남방 스님들의 수행처에서는 수시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점에서는 석가모니는 출세간의 음유시인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싱어(singer)이며, 범음성의 초대 어장(魚丈)이었다. 석가모니 붓다의 법언 율조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찬탄의 기능이 강조돼어 '범패'로 불리게 되었다. (중략) 따라서 범패의 원음은 '붓다의 음성이요, 범패의 시작은 '붓다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역사가 흐르면서 범패의 '범'은 '신성하다, 청정하다'는 뜻으로도 통용되어 짓소리('짓는 소리'라는 뜻으로 가락이 길고 규모가 크며 장엄하다는 의미)를 '범음'이라 하고, 범패를 '범음범패'라고도 하였다. 여기에는 탈세속적, 성스러움, 여법함과 같은 의미들이 있다."(p.24~25)

저자의 학문적 음악탐구는 ‘붓다의 소리’에 방점이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앞서 이 책의 구성 자체가 '붓다의 소리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부에서는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며, 각국의 문화와 종교, 음악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이슬람·기독교·불교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고 분석하며 붓다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고 기술한 바 있다. 불교계나 불교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 최소한 불교 신자들은 훨씬 더 깊은 지식을 요구할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은 불교가 우리의 춤과 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더 관심이 많고, 가무를 즐긴다는 말대로 우리 조상들의 가무와 불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당연히 연구자인 저자 윤소희의 순레길에는 '우리의 음악을 찾아서'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도 1부 4장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5장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과 2부 4장 「같은 혈통 다른 나라, 한·일 풍속과 음악」, 5장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에서 깊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코리안 떼창과 일본의 사찰 교훈극'이라는 항목에서 독자가 관심 가는 부분을 다뤘다.

2부 4장에 담긴 이 글은 "불교계에서는 공립 합창단의 종교 편향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운을 뗀다.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이 부분은 공론화된 부분인 것 같다. 이에 따르면 여론이 더욱 거세어 총무원 사회부에서 불교음악원 연구팀에게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처음에 몇몇 프로그램들을 보니 그간 익혔던 베토벤·모차르트·헨델의 미사곡이나 레퀴엠들이 보였다. 예술곡인데 너무 과민한 것 아닌가 싶었으나 전국의 연중 프로그램을 조사해 보니 일반적인 연가(戀歌)와 외국어 제목들이 실제로는 성경 속 이야기나 라틴어 제목의 찬송가들이어서 기독교 음악에 편중됐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변의 몇몇 음악전문가와 학계의 의견을 들어보니 '기독교는 음악, 불교는 미술, 우리가 실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음악 인류학자로서 지구촌 인류문명과 음악의 면면을 연구해 온 바에 의하면, 불교는 으악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음률의 종교이고, 경전 자체가 합송에 의해서 성립되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부처님의 말씀 자체에 율이 있으므로 굳이 작곡가의 기술을 빌리지 않더라도 경전 자체가 음악이 되는 경구들이 많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다는 듯 많은 말을 쏟아낸다. "중국의 역장에는 반드시 범패사가 있었다. 경전 자체의 율조를 중시하는 것은 기독교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남방불교에서 일반 신도들이 함께 외는 자비송 '메따'는 세계적 명상음악이 되었다. 이러한 데에는 부처님의 설법어에 율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석가모니 붓다를 '불교 최초의 유랑시인이자 싱어'로 표현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21세기 세계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K-팝에는 한국인들의 유별난 음악적 기질이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 로큰롤'이라 불릴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노엘 갤러거(1967~)가 한국인의 떼창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Crazy Korean'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2006년 한국에서 공연을 하며 코리안 떼창을 보고는 그의 마음이 180도로 바뀌어 "한국인은 즐길 줄 안다"며 가는 곳마다 엄지척을 하였다고 설명한다. 또 미국의 3인조 인디밴드 'Fun'이 2013년에 안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참가해서 〈We are young〉을 부르다 한국인들의 떼창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설명한다. 그때의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2년 후에는 아예 〈Korean Song〉을 만들어 왔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당시 '···코리아'를 격하게 외치는 엔딩은 그야말로 류이스와 한국 팬들의 진심과 열정이 한데 어우러진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만약 이 대목을 그냥 말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한국인의 이러한 기질을 헤아릴 때라야 불교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인의 떼창 에피소드는 원효 대사 때부터 이어진다. 원효의 〈무애가〉를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며 표주박 춤을 추던 신라인들부터, 이 민중의 춤이 일본으로 건너가 〈봉오도리〉가 되었단다. 이 봉오도리는 일본의 『불교음악사전』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비파’ 하면 떠오르는 불교의 이미지로 인하여 조선 후기에 사라진 반면 군자의 저음을 숭상한 유생들의 취향에 맞는 거문고가 득세하게 되었다. 앞서 중국음악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무겁고 경직된 음악을 말랑 젤리로 만든 서역 음악이었듯이 불교의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감성을 우아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악기로 비파가 제격이었다. 그러나 억불이 당연지사였던 유생들이 공자의 금(琴)보다 더 무겁고 중후한 거문고로 영산회상을 탔다. 이렇듯 영산회상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거문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p.347) - 「허허 탕탕, 세상을 잊게 만드는 거문고」 중에서


저자 : 윤소희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음악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대우교수로 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음악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계를 다니며 현지 조사를 통한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일궈가며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국악 창작곡 분석』·『국악 창작의 흐름과 분석』· 『동아시아 불교의식과 음악』·『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경제 · 영제 · 완제 어떻게 다른가』·『문명과 음악』·『문화 와 음악』·『세계 불교음악 순례』·『한·일 불교의례와 쇼묘』· 『한·중 불교의례와 범패』 등이 있다.

연구논문은 「팔리어 송경율조에 관한 연구」·『화엄경』 「입법계품」의 音과 字에 대한 고찰」·「범어범패의 율적 특징과 의례 기능」·「불교 의례활동과 사원경제」·「티벳 참 의례와 몸짓 만다라」·「보로부두르 주악도와 한국의 불교 악가무」·「향품범패의 장르적 규명과 실체」·「세종·세조 악보와 佛典·梵文의 관계」·「天台?明과 眞言?明에 관한 연구」·「천수다라니 범문원리와 한·중·일 율조 비교」·「삼국유사의 음악과 악기」 외 다수. <윤소희 카페>(http://cafe.daum.net/ysh3586)에서 좀 더 다양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E-mail : ysh3586@hanmail.net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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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 - 불안, 허무, 자책에서 자유로워지는 빅터 프랭클 심리학
모로토미 요시히코 지음, 나지윤 옮김 / 유노책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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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에 대해 독자가 아는 것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이하 『죽음의~』)를 쓴 의사라는 사실이다. 『죽음의~』는 독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독일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의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현재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 '프랭클 심리학'의 권위 있는 학자이다. 저자는 몸 담고 있는 대학의 부속 상담센터에서 30년 이상 젊은이들의 인생을 상담하며, 쉽게 허무감을 느끼고 주저앉거나 절망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늘 고민했다. 그런 그가 내놓은 게 ‘빅터 프랭클 심리학’이었다고 출판사 측은 전한다.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이기도 한 빅터 프랭클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에 생각하고 기억하면 좋을 빅터 프랭클의 절대 긍정의 철학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에 다가서기 전에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의 내용이 무엇이고, 빅터 프랭클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물론 이 책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 역시 『죽음의~』의 내용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인용, 설명하기도 한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의사로서, 1944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히틀러와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 만행으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수용소에 끌려갈 때 기존에 연구하고 정립했던 이론을 쓴 원고를 코트에 숨겼지만, 결국 이 원고조차 잃고 말았다. 전쟁 중 수용소에 일시적으로 끌려갔다 풀어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2,000년 동안 유럽인의 '공공의 적'으로 생활했던 유전자화된 심리였을까. 그곳은 학살을 대기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그닥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들어가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용소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아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직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랭클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우슈비츠에서 만나고 직접 본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새로운 심리학설을 정립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반드시 출간하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라는 기적을 경험한다.
오늘날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라는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의 저자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원서명은 『Man's Search for Meaning』인데, 이 제목에 빅터 프랭클이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바로 “어떤 순간에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살아갈 의미와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로고테라피(의미치료)’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의 「부서진 마음을 단단하게 이어붙이는 절대 긍정의 철학」이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인생이란 같은 일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게 다가온다고 전제한 뒤 "살아갈 의미가 있다"라고 여겨지는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 생생한 울림을 준다고 자신의 과거 경험을 사례를 들며 밝힌다. 반대로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사명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누구든 살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지고 삶 자체가 고역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프랭클의 책을 펼친다고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기운을 불어넣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럴까?' '난 운이 나빠서 뭘 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등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저자의 말에 주목하고 명심할 것을 요청한다. "어떤 경우라도, 그 어떤 상황이라도 자기 안의 무언가를 바꾸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돌이켜보면 모든 일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났고, 모든 일은 내가 뭔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일어났다고 생각하게 됩니다."(p.11)

저자는 이처럼 생각 하나만 바꿔도, 마음 하나만 바꿔 먹어도 사람의 인생이 행복으로 바뀌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았다고 독자들을 격려한다. 이 책을 통해 살아갈 의미를 잃고 허무함에 빠져 마음이 소모되는 독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를 기대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방법, 이것이야말로 프랭클이 말하는 절대 긍정의 철학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인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현대인이 이러한 인생철학, 즉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어도 진정한 행복이나 깊은 충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세상에는 운 좋은 인생도 있고 운 나쁜 인생도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인생도 없고 늘 나쁜 일만 있는 인생도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요컨대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을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운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이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인생철학이라고 부른다면 올바른 인생철학을 체득하고 실천하는지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비결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먼저, 우리의 인생이 왜 허무한지, 왜 욕구를 채워도 공허한지 되짚고 인생철학의 의미와 바른 기준을 세우는 법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로는 프랭클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제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 긍정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법을 제안한다. 프랭클 심리학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보다 쉽게 프랭클 심리학과 함께 이 책의 주제에도 쉽게 접근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① 꼭 인정받아야만 좋은 삶인지 고민해 본다. ② 왜 쉽게 허무해지고 마는 것인지 되짚어 본다. ③ 왜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나부터 탓하는 건지 진단해 본다. ④ 어떻게 하면 빅터 프랭클이 말한 대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본다. ⑤ 빅터 프랭클이 제안한 삶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창조 가치 실현법을 알려 준다. ⑥ 남들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생각해야 할 체험 가치 실현법을 정리했다. ⑦ 나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생각해야 할 태도 가치 실현법을 이야기한다.
앞서 책의 주제에 다가가기 위해 열거한 7가지 항목은 이 책의 구성과 같다. 이 책이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저자가 풀어 쓴 것이다. 위의 나열된 일곱 가지를 이해한다면 책의 목차에 적힌 대로 표기해 본다. 독자들이 비교해서 더 쉽게 이해되는 쪽으로 생각하면 각인하기에 훨씬 더 편리할 것이다.1장 「꼭 인정받아야만 좋은 삶일까?-프랭클이 말하는 ‘마음이 소모되는 이유’」 2장 「왜 쉽게 허무해지는 걸까?-프랭클이 알려 주는 ‘행복의 역설 깨닫기’」 3장 「왜 나부터 탓하는 걸까?-프랭클에게 배우는 ‘인생철학 바로잡기’」 4장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까?-프랭클이 소개하는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기’」 5장 「삶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 생각할 것-실전1: 창조 가치 실현하기」 6장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생각할 것-실전2: 체험 가치 실현하기」 7장 「운명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생각할 것-실전3: 태도 가치 실현하기」 등이다.

저자는 마음 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프롤로그〉에서 한 여성의 불의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따르면 한 여성이 미국 유학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살아나긴 했으나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때문에 해외에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어머니가 해외로 날아가 장애인이 된 딸을 돌보며 살게 되었다. 처음 두 사람은 가해자를 증오하며 불운한 운명을 저주했다. 동반 자살을 결심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된다. “언젠가 드라이브를 하다가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푸른 하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딸이 사고를 당하고 제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은 모두 이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한 시련이 아니었나 하고요.” 생각이 바뀌자 인생을 보는 눈도 바뀌게 되었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준 지인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자신들이 받은 위로와 격려를 다른 어려운 사람에게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건 바로 ‘인생철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인생철학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바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살아생전 최대한 즐겁게 살고 싶다”라는 단순한 목표라도 인생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2장의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란 제목의 글이 우선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허무함이 불현듯 엄습하면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기 마련이다'라며 별것 아닌 감정으로 치부하거나,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런 감정은 사라질 거야'라며 평소보다 바쁘게 생활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속 허무함을 털어 낼 수 있을 거라 여기면서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허무한 마음과 마주하는 일에 서툽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속 텅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는 거지요.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OO중독'에 빠집니다. 쇼핑 중독, 도박 중독, 연애 중독, 자녀교육 중독 등등. 그중 가장 흔한 중독이라고 하면 단연 알코올 중독이 아닐까 싶네요."(p.57)

저자는 알코올 중독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만일 당신이 2~3일에 한 번꼴로 술을 마신다면, 이미 가벼운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자는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일 중독도 알코올 중독 못지않게 흔하다고 말한다. 가끔 견디기 힘들 만큼 허무함이 엄습하지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다고 딱히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그 결과 더욱 일에 매진하게 된다. 자기 삶이 가진 문제와 직면하면 왠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외면하고 바쁘게 지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에 매진하는 게 최선이니까. 이런 저자의 지적에 딱 들어맞은 경우가 독자이다. 불행하게도 둘 다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회사나 동료들은 "의욕적이다" "프로네~"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속마음은 씁쓸하다. 진심인지 인삿말인지 구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중독이라는 생각에서는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중독이라는 말은 알코올 못지않게 입에 잘 올리지 못했으니까. 특히 산업화 시대 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일과 알코올이었으니까.

저자는 중독이란 견디기 힘든 허무함이 밀려와도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들은 끊임없이 강한 자극을 추구하고 도파민을 충족하면서 자기 감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현대인이 'OO중독'에 빠지기 쉬운 이유라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살다 보면'이란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독자는 무책임한 단어라고 생각해서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도 이 말은 빠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풍파가 생기고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p.229) 에필로그에서 접하는 저자의 '살다 보면'은 독자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상투적 문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문구는 심리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케 한다. '살다 보면'에는 자신의 의지가 100% 들어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이 문구를 붙이면 묘하게도 설득력이 큰 말로 바뀌기도 한다. 바로 그런 순간, 프랭클의 말은 힘을 발휘한다. 절망에 빠지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진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힘, '이제 지쳤다. 모든 걸 내버리고 싶다'라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조금만 더 살아보자'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프랭클의 호소를 저자가 독자들에게 대신한다.

"언제라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해야 할 일, 채워야 할 의미가 주어져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 무언가와 누군가는 당신에게 발견되고 실현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p.230)

저자는 이런 생각을 자신의 전문 분야인 ‘빅터 프랭클 심리학’과 엮어 이 책 『마음이 소모되기 전에 생각할 것들』 안에 차근차근 풀어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자신만의 살아갈 의미를 찾은 것’을 꼽는다. 생명이 있는 한 의미 없는 인생이란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하여 ‘목표지향적’으로 사는 삶 대신 ‘자신의 존재의 필요성’을 고민하도록 제안한다. 다시 말해, 프랭클 심리학의 핵심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저자 : 모로토미 요시히코(もろとみ よしひこ, 諸富 祥彦)


1963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츠쿠바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미국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치바대학 교육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교육카운슬링학회 상임이사, ‘교사를 지원하는 협회’ 대표이며, 임상심리사, 상급학교 카운슬러 등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아이는 의미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라는 메시지를 토대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들에게 35여 년 동안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왔다. 《아이의 마음을 구하는 부모의 한마디》 《당신의 아이, 이대로 두면 큰일난다》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운슬링 기법》 등 육아, 학교 교육, 카운슬링 및 심리요법과 관련하여 10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 밖에도 빅터 프랭클 심리학 및 칼 로저스 심리학 전문가로서, 고독, 허무함, 삶의 의미 등을 키워드로 하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관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였고, 《프랭클 심리학 입문-어떤 때에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등을 펴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남자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여자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외동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등이 있다.


역자 : 나지윤


숙명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잡지사 기자로 일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해결하고 싶은 남자 공감 받고 싶은 여자』, 『당당하게 말하고 확실하게 설득하는 기술』, 『무시했더니 살만해졌다』, 『스트레스 한방에 날리기』,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등 다수가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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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프 2 - 메시아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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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권에서 외계 생명체의 침공을 받은 인류는 지구의 주인 자리를 침공자 홀랜프들에게 내주고 피지배 계급으로 전락한다. 또 인간 중에는 홀랜프 측에 붙어 그들에 기대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 생존하는 '페카터모리'들도 등장한다. 『홀랜프』는 외계 침공과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력, 과학과 기술, 종교적 상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1권 〈거룩한 땅의 수호자〉에서 '홀랜프'의 침공을 받아 인간은 제대로 맞서기는커녕 힘의 부족을 느끼면서 끊임없이 추락한다. 그러나 이를 걱정하던 노과학자 '최 박사'가 평소 대응책으로 오랫동안 연구해온 '7인의 어빌리스'가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맞서 싸운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싸우느냐, 아니면 홀랜프에게 복종하며 새로운 삶을 선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이미 외계 침공자들에게 붙은 인간, 페카터모리들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이들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설 구상 때부터 미리 예비해둔 사항일 것이다. 외계인이 침공할 때의 모습은 1권 '7장 3절 생명체'에서 자세히 언급된다. 

"갑자기 나타난 괴생물체들의 공격에 온 세상이 폐허가 되어간다. 인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괴생물체들에게 죽어간다. 하늘에서 비행하는 대형 괴생물체들은 인간들이 이제껏 지어온 건축물들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대형 괴생물체 위에 탑승하고 있던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중형, 인간의 반 크기인 소형 괴생물체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들을 공격한다. 중형 괴생물체들은 한 손에 총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알 수 없는 빛을 쏴대고 돌기가 나 있는 날카로운 팔로 사람들을 베어 죽인다. 괴생물체들은 흡사 해파리와 물곰을 섞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하늘에서 공격하며 날아다니는 괴생물체는 100미터 정도 되는 대형 괴생물체로서 마치 용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에 크고 길다. 그들이 입을 벌릴 때마다 빛이 나와 건물을 부수고 공군의 비행기가 공격해오면 공중전을 하면서 모든 인간의 기계를 파괴한다. (중략) 인간의 신체 크기와 비슷한 중형 괴생물체는 인간과 비슷한 머리 형태만 있을 뿐 입은 뻥긋거리며 팔에 붙어 있는 칼을 이용해 공격하고 다른 쪽 팔에는 빛이 나오는 총이 있어 사람들을 죽인다."(p.140~141, 1권)

『홀랜프』의 저자 사이먼 케이의 장면 묘사가 탁월하다. 영화 제작자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케 하는 생생한 장면 묘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더욱이 상상 속 상황을 독자들의 머리에서 현실로 바꿔야 한다는 SF 세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독자들에게는 읽기만 해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로 치환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의 독창적인 상상력뿐만 아니라 기술적 이론도 오랫동안 외계 침공을 대비해온 사람처럼 차분하게 정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뛰어나다. '어빌리스'라는 다소 익숙한 이름을 가진 추상적 묘사는 곧바로 '어벤저스'라는 영웅들과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지면서 사전에 노력으로 획득한 '능력자'로서의 의미로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뜻과도 상통한다.

『홀랜프』 2권 〈메시아의 수호자〉에서 인류를 해방할 7명의 아이들, 이들은 권력을 얻은 인간에게는 이단자가 될 수 있다. 반면 홀랜프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낸 도시 '파라다이스'를 벗어나 궁핍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구원자가 될 수 있다. '인류의 희망'이다. 메시아라는 존재를 빗대어 저자가 희망과 메시아가 역사 속에서 모순적었음을 주목하게 한다. 2권 〈메시아의 수호자〉는 '예언서'에 대한 대목으로 이어진다. "마구 갈겨쓴 글귀라고 생각하겠지. 자네는 분명 저런 글을 많이 봤을 거야. 홀랜프 침공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미친 소리였겠지만 침공이 일어난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말들이지. 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 동안 우리는 두 번이나 멸종의 위기에 처했어. 큰 혼란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았다고. 2차 대전 후 최 박사의 예언서가 확실하다고 사람들은 평가했지. 이 예언서 덕분에 그나마 사람들은 이만큼 함께 생활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 관련된 내용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만날 것이라는 내용. 이것이 다 그들 눈에는 실현되고 있는 진실이라고." 

서 집사는 김 중령이 알려주는 곳으로 책장을 넘겨본다. 거기에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적혀 있다. 서 집사도 들었던 6년의 세월에 대한 내용이다. (중략) 아이들은 신이 아니야. 그런 희망적인 존재로는 가능할지 몰라.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신이라고 말해버리면 아이들조차 위험해. 저 홀랜프를 이기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란 말인가"(p19~21, 2권)

『홀랜프』에는 등장 인물들의 과격함도 분출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인간 스스로의 성찰이기도 하다. 다 알면서도 이기심과 눈앞의 이익만을 취하다가 자멸한다는 내용 말이다. 선우필과 헤든의 대화 과정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드러난다. 

"인간들······ 자신들의 편의만 생각해서 배신하고, 이익을 위해 서로를 해치우고, 마음 맞는다는 핑계로 편을 만들어 약자를 괴롭히고. 그런 인간들은 이제 존재해서는 안 돼. 세상이 썩었어. 무법 천지가 되어버렸어.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이 속속들이 썩었어. 인간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이 땅은 멸망해야 해. 인간은 멸종되어야 해. 다 죽여버려야 해. 다 몰살 시켜야 해."(p.160)

선우민이 예전에 했던 말 중에는 인간이 생물체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능력과 함께 '배려심'이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은 배려심이 없고 그저 본능에만 충실할 뿐이다. 바다의 고래도 먹기 위해 생물체를 입으로 흡입한다. 사자는 배가 고프면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다. 이기심은 생물의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이기심을 인식하고 배려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배가 고파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변해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의식도 변해간다. 배려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다 결국 잃을 것이다. 그날이 인류가 멸종하는 날이다. 선우민은 늘 그렇게 배려심을 강조했다. 

이는 홀랜프 생물체가 파라다이스라는 장소를 만들어 인류를 지배한다 해도 배려심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기심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다가 자유를 주는 척 인간을 배려하는 행동은 배려심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은 선우민을 통해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최 박사가 심어둔 능력 '스위븐'은 꿈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꿈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로써 미리 꿈에서 봤던 이미지를 기억해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에게 스위븐은 과연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질문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결국 아이들은 홀랜프가 이룩한 파라다이스로 향하고 스위븐에서 봤던 이미지를 기억하며 여왕이 있는 최상부로 이동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선우필, 리브, 선우희만이 여왕의 뒷편의 암흑과 같은 공간으로 향한다. 그곳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아이들의 희생과 처절한 싸움은 치열하고 화려하기까지 하다. 저자의 세세한 묘사, SF적인 요소의 표현은 저자의 소설 구성 능력이 결합되며 빛을 발한다. 소설의 스토리를 더욱 판타스틱하게 해주는 요소 중 새로운 단어는 많은 부분 저자의 SF에 대한 관심과 오랜 영화 경험 등이 어우러져 주제와 소재로서 SF의 소설로서의 완벽에 가깝게 녹아들어 간다. 

책에서 제목이나 소제목으로 다루어진 SF적인 단어들을 열거하면 거의 끝없이 나열된다. 잠재력, 생물체, 죽음, 훈련, 편도체, 하늘의 도시, 배신, 전투, 꿈의 실현, 꿈의 능력, 잠입, 여왕, 만들어지는 전설, 3차 대전, 배려심, 연합 등 평범한 단어들로 모든 제목들이 이루어지면서 종교적 언어와 결합되면 SF적 용어로 변신하는 마술 같은 표현과 묘사가 가능해진다. 이 또한 저자의 묘사 능력일 것이다. 책에 이용된 종교적 단어들은 에덴동산, 신의 열매, 창조주, 생식세포, 신의 선물, 신의 시점, 성장, 메시아, 유혹, 만들어지는 전설, 신의 뜻대로 등이다. 종교와 과학은 흔히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SF 소설에서는 흔히 두 분야가 결합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다. 종교와 과학의 이질감으로 원인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작품은 두 분야가 잘 어울리면 과학은 실현되지 않은 종교적 꿈과 믿음의 실현을 이룰 수 있고, 반대로 종교는 과학과 융합된다면 신화마저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상상의 영역에 사실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이 소설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목표는 영원히 산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 건강하다거나 하는 그런 육체의 것이 아니야. 인간의 삶은 결국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을 깨닫는 과정이거든. 태어날 때 육체의 완성을 거쳐 정신적인 발전을 이루다가 결국 더럽게 썩어지는 육체는 버리고 정신과 영혼만 가져가는 거지. 그러니 진정으로 인간이 갖고 싶은 것은 결국 더러움에서 분리된 상태, 코데시(Kodesh), 즉 거룩하기 위함이야.”(p.9, 2권)

『홀랜프』는 많은 독자들의 눈을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무척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난다. 이 소설이 매력적이고 생각할 소재가 충분하다고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종교와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철학, 생물학, 유전학, 물리학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재 접하는 많은 분야의 학문에 걸쳐 있다. 심지어는 전투 방법이나 훈련 방법 등 군사학적 요소도 끼어 있다. 외계인과의 전투에는 필요하지 않은 학문이야 없겠지만 설득력을 갖추려면 아무래도 풍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상상력을 현실화해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이 소설 작품은 저자의 각 분야에 학문이나 지식이 매우 다채롭다. 독자들에게는 인기를 끌 만한 충분한 까닭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특히 영화계에서의 경험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외계 생명체의 미래 기술은 우리의 평범한 상식을 뛰어넘어 전투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에서 작품에 몰입하게 해준다. 이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기존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것 같다. 독창성이 탁월하고 청소년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또한 그들이 인류, 지구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리라. 특히 저자는 사이먼 케이가 던지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은 단순한 오락적 SF 소설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특히 움스크린이라는 독자적 인공 자궁을 발견으로 과학에서의 윤리 문제로까지 발전시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단순한 외계인 침공으로 인류 멸망을 다루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파멸과 구원을 둘러싼 인간 자체의 본성과 추구하는 이상의 괴리 등의 철학적 문제로까지 포함시키는, 인간의 무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력적이고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인력을 갖춘 소설이다.


“자네들에게는 꿈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네. 최 박사는 그 능력을 스위븐(Sweven)이라고 불렀지. 자네들에게 심어둔 능력이라고 말해주었네. 너희 일곱 명의 아이들이 꿈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하지만 그 꿈을 너희들이 조종한다는 건 우리로서는 미지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같다네. 최 박사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했을 뿐 실제로 그런 능력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p.136, 2권)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살려고 내뱉는 9호의 외침에 더 많은 초소형 홀랜프가 모인다. 이미 뉴컨밴드도 머리에서 떨어져나간 터라 그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는다. 초소형 홀랜프들은 무지막지하게 9호의 등을 파헤친다. “껙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튀어나온 두 앞발로 계속해서 낫을 찍듯 그의 등을 파헤친다. 9호의 고통에 찬 소리가 멈추고 벽을 잡던 그의 몸뚱이가 땅으로 떨어진다. 다른 초소형 홀랜프들이 떼지어 다가와 그대로 그의 시체를 다 먹어버린다.(p.218, 2권)


그때 선우희 앞에 있는 좁은 문이 열린다. 그 안에서 강한 빛이 비치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순간 터져 나온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이던 리브는 다시 돌아온 시야에 통로 내부가 보인다. 통로는 마치 여자의 배 속처럼 생긴, 이전에 선우희를 품은 움스크린의 모양과 같은 구조다. 리브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흔든다.

“아니야. 안 돼…….”(p.299, 2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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