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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여행자의 세계』는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저자 정병호는 여행자들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홀로 또는 함께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조금씩 여행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인 '루카스'가 여행하는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시간으로의 여행’ 시리즈의 여행 작가인 저자는 "여행은 시작과 끝, 떠남과 머무름, 도착과 돌아옴이 함께하는 또 하나의 삶"이라고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낯선 길을 걷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 정병호는 〈서문〉에서 "우리는 종종 여행의 목표를 목적지에 둔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의 본질은 도착지가 아니라 그 길을 견뎌 내는 데 있다."고 자신의 여행관을 밝힌다. "여행자들은 사막을 지나고 오아시스의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추며 오래된 신전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거친 모래 폭풍을 맞아 휘청이기도 하고 별빛 아래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여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 선다. 익숙한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미지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길이 옳은지 고민"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길에는 정답이 없다고···.",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길은 비로소 우리의 길이 된다고···."
찬찬히 읽다보면 이 책의 여행자들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목적지를 향해 걷던 그들이 점차 길 자체를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이는 걸 알아채게 된다.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또한 어느새 각자의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 여정과 닮아 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끝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도 하고 때로는 길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걸어가는 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나침반 없이 걷기〉, 2부 〈끝없는 수평선〉, 3부 〈지도에 없는 길〉, 4부 〈끝없는 여정〉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의 시작은 저자의 페르소나*인 루카스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책상 위에 놓인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크림색 종이에 단정한 필체로 쓰인 문장이 시선을 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를 집어든다. 발신인은 없다. 그리고 편지 속에는 오직 한 문장만 적혀 있다. '장난인가?' 웃어넘기려 했지만, 저 짧은 문장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그는 언제나 여행을 동경해 왔지만, 여행을 단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일쯤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편지는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음을 조용히 건네고 있다. 다음날 또다시 편지가 도착한다. 이번에는 좀 더 긴 문장이 담겨 있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당신이 제가 드린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시길 바란다. 나와의 여행에 동행하겠는가?"(p.15)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도대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편지 속의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이 책에는 〈서문〉 이외에 〈프롤로그〉를 따로 두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루카스를 등장시킨다. 저자의 페르소나인 루카스는 결국 저자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이에 따라 〈프롤로그〉에서는 자연스럽게 여행의 의미부터 목적까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편지를 쓰는 '이든'의 질문에 대한 사유를 통해 루카스가 체득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페르소나: '가면'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심리학적으로는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사된 성격, 혹은 외부로 표현하는 개인의 이상적 측면을 말한다. 개인의 실제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은 페르소나가 그 개인의 실제라고 생각한다.(독자 주)

루카스는 누군가 보내는 편지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여행의 의미에 다가간다. 앞서 기술한 「의문의 편지」에 이어 「첫 번째 여행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루카스는 도서관에서 '여행'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에 눈길이 멈춘다. 책 속 문장에서 "그는 단순한 탐험가가 아니었다. 그는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다리였다."는 글귀를 찾아내 읽다가 문득 또 다른 편지의 내용을 떠올린다.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 그렇다면 마르코 폴로가 여행을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루카스는 그날 밤 한 통의 편지를 더 받는다. 새로운 질문이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이 세계에 남긴 영향은 무엇인가? 그의 여행이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면, 여행을 어떻게 정의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루카스는 처음으로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문화를 교류하며 새로운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결론을 얻어 답장을 쓴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정말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요?(p.17)
루카스는 계속해서 편지를 받고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이번에는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여행자 이븐 바투타(Ibn Battuta)***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무려 30여 년간 이술람 세계를 넘어 인도, 중국, 아프리카까지 여행하며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루카스는 이든의 편지를 떠올리며 속으로 되뇌인다. 만약 여행이 그저 목적지를 방문하는 것이라면, 이븐 바투타의 여정은 왜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회자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날 저녁 도착한 또 하나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븐 바투타는 단순한 모험가가 아니라 세계를 기록한 사람이었다. 기록이 없었다면 여행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즉시 답장을 썼다.
"여행이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남기고 공유하는 행위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여행을 기록해야 할까요?" 이든의 다음 답장은 짧았다. "좋은 질문이다. 이제, 다음 여행자로 넘어가 보라."
** 마르코 폴로(Marco Polo):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상인, 작가(1254~1324).
*** 이븐 바투타(Ibn Battuta): 모로코 지브롤터 해협 탕헤르 출신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 가운데 한 사람(1304~1368).[이상 저자 주]

다음날 루카스는 과학 서적 코너에서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에 관한 책을 집어 들었다. 다윈의 비글호 탐험이야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 여행이었다. 그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이론을 세운 사람이었다.
"찰스 다윈의 여행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화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여행이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고···.
"찰스 다윈의 여행은 그의 이론을 가능하게 했어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든의 답장은 예상 밖이었다.
"당신은 직접 답을 찾아야 한다. 다음 여행을 준비하라." 그는 고민에 빠진다. 이든은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었다. 이든은 루카스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이제야 본격적인 본론의 장으로 넘어간다. 루카스는 이든의 편지를 받은 후 자신이 직접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을 얻는 과정'이었다. 그는 배낭을 꾸리고 노트를 챙겼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낯선 도시의 오래된 골목이다. 그는 낯선 도시의 한 골목길을 걸으며 과거의 여행자들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했듯이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골목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주변을 돌아본다. 낡은 벽돌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가로등이 부드러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의 풍경은 낯설지만, 그들의 삶은 내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같은 태양 아래 살아간다." 테이블 위의 작은 쪽지를 발견한다. 익숙한 필체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당신은 낯선 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답장을 쓴다. "여행이란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만, 동시에 같습니다."
****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진화론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생물학자, 지질학자(1809~1882).

루카스의 여행은 계속된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사막을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끝없는 모래 언덕이 펼쳐진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사막의 밤은 차갑고 별들은 끝없이 빛나고 있다. 그는 모닥불 옆에서 베두인 부족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바람과 별을 길잡이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길을 걷다가 지쳐 멀리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하고 오아시스임을 알아낸다. 발걸음을 재촉해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을 찾는다. 그는 이곳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오아시스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저는 여행의 의미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저 자신도요."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행이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오아시스를 찾아가고 있다."
루카스의 여행은 끝이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을 찾아 걷고 이동한다. 다음 목적지를 찾아 스스로의 내면에서 답하는 대로 걷는다.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에세이는 끝나지 않는다. 길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p.231)
저자 : 정병호
유럽 26개국을 자동차 투어 하였으며 여행 벤처 프로젝트 설계, 앱 여행 콘텐츠 설계에 참여했다. 해군사관학교 전임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하나투어 Tour Conductor로 재직 중이다.
[저서]
『시간으로의 여행―스페인을 걷다』(성안당, 2015)
『시간으로의 여행―오스트리아, 동유럽을 걷다』(성안당, 2017)
『시간으로의 여행―유럽을 걷다』(성안당, 2018)
『시간으로의 여행―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성안당, 2019)
『시간으로의 여행―이탈리아를 걷다』(성안당, 2024), 「프랑스, 역사의 길을 따라 도시를 만나다」(하나투어,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