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 안전가옥 오리지널 4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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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저자 배예람은 〈작가의 말〉을 통해 "나의 인생 한편에 늘 존재했지만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러브레터"라고 말한다. 우리는 괴물에 대해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는 말로 일축한다. 사실 우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괴물은 대부분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다만 구전이나 설화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에 교훈적인 내용을 담아 '도깨비'처럼 선한 인상을 남긴 괴물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일단 외모가 무섭다. 외모가 무서우면 사람들은 당연히 가까이 하기 어렵고 꺼려한다. 권선징악의 우화나 전설에서 선행을 하는 괴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악을 행하는 무리들을 징벌하기 위해 무서운 외모로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 소설의 경향이 빠르게 SF 판타지로 옮겨진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의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고서도 판타지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 왠지 부조화스럽다. 과학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판타지 소설을 집필한다면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독자들의 취향이 판타지를 이끌고 있는 것일까? 문학을 공부하거나 직접 쓰는 작가가 아닌 일반 사람으로서 궁금하지만 속내를 읽을 수 없어 답답하지만 판타지는 과학만 함께 엮는 게 아니라, 범죄와 미스터리 등 합동하는 영역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등을 밝혀낸 21세기 과학은 무한하게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가운데 들어선 느낌이다. 과거에 상상했던 게 눈앞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인류는 과학으로 접근하면 인류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발전하고 있다.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우주여행도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에 대해 의문을 갖든 풀지 못할 것은 없다는 태세다. 

그러나 인류가 우주를 지배할 꿈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인 '속도'와 '시간'이다. 두 물리적 현상이 지금까지의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초월한 타일 슬립 소설,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대시킨 '순삭(공간 이동)'까지 많은 SF 소설의 전성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전설이나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귀신(괴물)의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그 모습을 바꿔가기도 한다. 기괴한 모습의 괴물들은 사실 우리에게 "괴물은 무섭다", "귀신은 나쁜 일을 한다"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저자 배예람은 괴물에 대해 공포나 무서운 느낌을 벗어난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저자에게 괴물은 친구이고 애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거침없이 러브레터도 쓴다. 이 책이 러브레터다. 저자는 장르 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과 기대를 받아 온 분이다. 이 소설도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장르소설이다. 괴물과 귀신이 공존하는 현대를 배경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오컬트 판타지를 선보이고 있다.

귀신을 보는 ‘눈’을 가졌지만 괴물을 다루는 ‘손’은 갖지 못한 주인공 보늬는 그럼에도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꿋꿋이 버티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쓴다. 3년 동안 사무실 붙박이로 지낸 보니는 어느 날 회사에 나타난 전래 동화 괴물을 물리친 일을 계기로 신입 직원 지운과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리게 된다. 앞으로 그들의 눈앞에는 또 어떤 괴상하고 기이한 괴물이 나타날까?

저자에게 괴물은 내쫒거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니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을까? 저자가 이번 작품에서 내세운 주인공 보늬는 저자의 분신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늘 자신을 한심하게 묘사하지만, 언제나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이 책을 출판한 〈프로듀서의 말〉에서도 명확하게 지적되고 있다. "보늬는 아주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매일매일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받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그럼에도 그런 하루하루를 버티며 좋아하는 것 옆에 있고자 하는 마음은 얼마나 큰 것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 자신이 훨씬 더 큰 재능을 가진 대안이 명확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런 보늬의 용기와 괴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감동하여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p.397)

괴물과 귀신이 공존하는 현대의 대한민국.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중으로부터 괴물을 격리하고 보호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암약하는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이하 한국괴물관리협회)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사단법인 한국실뜨기협회〉로 알려진 협회는 전국에 다섯 개의 지부가 있으며 괴(怪)와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비밀 조직이라는 점 외에는 일반 회사와 다를 게 없는 협회에서는 괴물을 다루는 ‘손’을 가진 ‘괴물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협회에서 유일하게 괴물을 다루는 ‘손’ 대신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인물, 강보늬가 있다. 괴물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손’을 갖지 못한 보늬는 파견팀 소속이면서도 3년 내내 사무실 붙박이 신세다. ‘손’이 없는 보늬는 괴물에게 생채기 하나, 흠집 하나 낼 수 없고, 따라서 파견을 나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협회 사람들은 그런 보늬를 본체만체하기 일쑤이고, 그럴 때마다 보늬는 탕비실 구석에서 여자 귀신과 잡담을 나누거나 회장실에서 목이 없는 괴물 무두괴와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없는가. 그렇게 보늬는 늘 괴로워하면서도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꿋꿋이 버틴다.

사무실에 남은 인력이 없어 모처럼 구 팀장과 파견을 나간 보늬는 잡으러 간 도깨비에게 연민을 느껴 그냥 보내 주고 만다. 구 팀장은 화가 나서 보늬에게 협회를 그만두라고 말하고, 다음 날 사직서를 제출하려던 보늬는 밤마다 사무실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는다. ‘귀신’이란 두 글자에 귀가 번쩍 뜨인 보늬는 스스로 귀신을 잡겠다고 나서서 탐문을 시작한다. 모두가 귀신인 줄 알았던 존재는 알고 보니 전래 동화에 나오는 괴물이었고, 보늬는 신입 직원 지운과 함께 전래 동화 괴물을 물리친다. 이 일을 계기로 보늬는 지운과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리게 된다. 앞으로 이들의 눈앞에는 또 어떤 괴상하고 기이한 괴물들이 나타날까?

이 소설 작품은 모두 8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돗가비와 돗가비」「어서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웰컴 투 해피랜드」「요술 맷돌」「여우 누이의 재앙」「도근천의 비밀」「나랑 같이 먹지」「에필로그」 등이다.

첫 장의 「돗가비와 돗가비」에서는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직원들의 역할과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한국괴물관리협회는 괴물들의 등급을 정하고 자료화해 관리하고 있다. 이를 테면 제목에 있는 '돗가비'는 도깨비의 옛말이다. 이 도깨비의 출현이 인지되면 직원들이 출동한다. 출동하는 직원들은 괴물 잡는 '손'을 가지고 있다. 형사가 범죄자를 잡아들이듯 괴물을 잡아 완전히 굴복시켜 관리한다. 물론 범죄 조서 쓰듯이 일일이 신상 정보는 물론 '범행 사실'을 바탕으로 낱낱이 관리 카드에 저장된다. 여기서 보늬는 '손'이 없어 현장 출동엔 갈 수 없다. 대신 괴물을 보는 '눈'이 있지만 이는 현장 출동의 부적격 요소다. 손이 없으면 괴물을 제압하거나 잡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도깨비는 위험 괴물은 아니다. 흉악한 범죄자는 아닌 것으로 협회 직원들은 분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늬도 함께 출동은 했지만 차량 안에서 기다릴 것을 지시 받는다. 직접 제압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직접 제압하려고 출동한 직원들의 대화로 봐서는 보늬가 자격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직원 구 팀장이 지금 잡으러 가는 도깨비는 '백(白)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고지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손가락 하나로도 제압 가능하다는 표시다. '핑거 스냅'.

저자가 달아놓은 주(註)를 통해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괴물을 분류하기 위해 부여하는 등급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백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려는 목표가 아닌 다른 특정 목표를 가지고 있거나, 괴물 전문가의 힘으로 통제가 가능한 괴물을 말한다. 백 등급의 괴물은 한번 확보되면 보안실에서 지내게 된다고 설명이 달려 있다. 또 '청(靑) 등급'도 있다. 이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우호적인 괴물로,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거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괴물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이 등급의 괴물은 보안실을 나와 사무실 구역을 돌아다니도록 풀어놓기도 한다는 주석의 설명이다. 구 팀장의 핑거 스냅은 수많은 괴물들을 체포하면서 슬슬 권태에 빠져든다. 그 핑거 스냅으로 제압이 충분하다는 구 팀장은 선배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실적을 올린다. 도깨비 다음에는 어둑시니였고, 다음에는 불가사리. 불가사리 다음에는 생사귀(까만 모습에 머리에는 다섯 갈래로 나뉜 뿔이 달린 괴물)였다. 그 이후로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단피몽두(사람의 두세 배 정도 되는 크기에 얼굴에는 몽두를 쓴 괴물), 쌍두사목(머리가 둘 달린 듯한 느낌을 주느 괴물. 눈이 네 개이며 뿔이 달렸다), 식인충(고운 망사 같은 껍질에 싸인 벌레로 사람을 빨아 먹는다)······.

이 소설 작품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는 다양한 전래 동화 속 괴물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 동화가 사실은 괴물들의 탄생 설화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떤 전래 동화 괴물이 등장하는지는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한 가지 주제는 빗나간 재능에 관한 이야기다. 보늬는 어릴 적부터 괴물을 사랑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고, 한 번도 이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엄마처럼 괴물을 다루는 ‘손’을 갖게 될 거라 믿고 있던 보늬에게 찾아온 것은 귀신을 보는 ‘눈’이었다. 보늬의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나 괴물을 향한 순정이 반짝거렸지만, 보늬는 오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난한 학과를 졸업해 무난한 회사에 다니고, 무난한 현실을 살던 어느 날, 보늬는 한국괴물관리협회의 회장인 외할머니 귀순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스물여섯 살 보늬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한국괴물관리협회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것들 옆에 있기 위해서.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일은 괴롭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보늬의 모습은 읽는 이에게도 용기를 선물할 것이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주제는 괴물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보늬에게 괴물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징그러우면 징그러울수록 어여쁜 친구들’이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린 지운 역시 괴물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보늬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괴물을 아끼는 보늬는 인간이 괴물을 ‘다스리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괴물도, 인간도,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뿐인데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괴물을 다스리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이는 단지 인간과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며 자신만의 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괴물 '옹고집'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고딕활자로 지면에 드러나 있다. 물론 다른 괴물들도 모두 하나씩 차례로 활자화돼 지면에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옹고집에 대한 보고서를 여기에 발췌, 정리한다. 

개체 이름: 옹고집

일련번호: KMMA-448

등급: 황(黃) 등급*

종류: 인간형 괴물(둔갑)

활동지역: 전국

탄생(일부 『월야괴담』 발췌): 옛날 옛적에 황해도 옹진에 옹고집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그는 심술궂고 끔찍한 구두쇠여서, 여든 살 노모를 차가운 방에 재우고 식사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불효를 저질렀다. 그는 습관처럼 노모를 구박했을 뿐 아니라 남녀 종들을 심하게 부려 먹고 폭력까지 행사할 정도로 사악한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의 행패와 폭력을 견디다 못한 종들이 죽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죽어 나가는 종들이 많아 집 안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도는 등,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한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와 집 안의 불길한 기운을 물리쳐 주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옹고집은 스님에게 오물을 뿌리는 등 푸대접했고, 이에 크게 화가 난 스님은 지푸라기 인형을 만들어 옹고집을 벌하는 주술을 걸었다. (중략)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괴물 전문가들에 의해 격리되었다. 괴물 전문가들은 괴물에게 옹고집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붙였고, 이 사례는 진짜 옹고집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변형되어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 황(黃) 등급: 황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목표를 가진 괴물로, 이 등급의 괴물은 제거해야 한다.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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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지음 / 푸른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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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실제 촬영지가 어디인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탐구해야 할까? 현 시점에서 지역이나 건물 공간까지 형성된 역사적 배경까지 알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이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발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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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지음 / 푸른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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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표제어에 나타난 두 개의 단어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과 '공간'이라는 단어들이다. 영화는 태생이 매스미디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영화는 문학에서 소설의 서사와 과학의 사진(필름)을 연결시켜 허구가 사실로(상상이 현실로) 바뀐 경험을 제공한다. 즉 소설 문학이 가진 상상적 허구를 마치 사실인 듯 형상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이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데 이 움직이는 사진들이 현실의 공간과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영화 속 스토리가 사실로 인지돼 관람객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책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장소나 인물을 머릿속에 각인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힘들여 발휘할 필요가 없게 해준다. 영화가 처음 나타날 때는 영화관이 있어야 상영이 가능했다.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물인 필름과 영사기를 각 가정에서 구비해 사용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일상에서 매일 사용할 필요도 없는 물건이기도 하다. 영화는 태생부터 대중을 상대로 대량 전달 기능이 전제되어 있었다. 

더욱이 영화 제작 기법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화 속 공간은 필요하다면 우주나 바닷속, 땅 속 등 실제 가지 않고서도 촬영이 가능한 구조물을 만들어 영화를 그럴 듯하게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영화는 예술 분야보다 산업이 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영화 속 매시지를 담아 전달한다면 상업 이익보다 훨씬 큰 홍보도 가능하다는 데 영화의 매력은 날로 커졌다. 

영화가 발명된 지 150년 정도 될 시점에서도 여전히 영화는 커다란 대중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TV가 등장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던 영화는 이제서야 콘텐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문학에 비해 독자의 상상력을 앗아가고 세뇌 시키는 영화는 예술성보다는 대중 전달 기능을 충분히 살려 산업화됐다. 이젠 영화 한 편 제작하는 데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게 예삿일이 된 시대다. 우리나라 영화도 이미 '천만 관객' 시대를 맞은 지 수십 년이 됐다.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도 충분히 수익이 보장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관객만 대상이 아니다. 콘텐츠에 따라서는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도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는 시대다. 이는 오롯이 영화 관련된 분들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높이는 데도 한몫을 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는 아니지만 영화는 이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당당히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책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영화 속 공간과 실제 공간이 어떻게 관람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품격은 물론 스토리의 진실성에 한층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지리적 공간에 대한 연구 논저의 하나로 출간됐다. 관객 중에서도 깊숙이 영화에 관계한 분들은 물론 영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영화 속 공간 배경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데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영화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 시대는 미디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삶의 전 분야에서 미디어(대량 전달 매체)를 이용한다. 누구나 쉽게, 그것도 별도의 돈이나 시간이 필요 없다. 이미 신문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영상으로 이루어진 뉴미디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미디어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미디어 속 데이터-영화, 드라마, 광고 등 공간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는 영상 데이터-는 다양한 매체로 축적되며, 절대적인 양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무한 축적된 데이터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은 이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몇 개의 검색어만 입력하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을 누비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손에 넣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방법만 터득한다면 미디어 속에서 생겨난 지리적 궁금증 역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 속의 무심코 지나간 공간이 어떤 장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지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호기심을 드러낸다. 저자 장윤정은 영화지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분이라고 한다. 사실 영화 입문자라도 되면 들어봤음직한 용어지만 영화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용어인 것 같다. 이 책은 영화와 영화 속 공간, 그리고 실제 공간이 어느 정도 역할과 기능을 하는지, 영화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는지, 또 공간의 이미지 확보에는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논문에 가깝다. 저자는 영화에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영화 관람부(그런 동아리나 자치모임이 있나?)에 소속돼 한 달에 한 번씩 종로의 단성사나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니 진정 영화광이라 해도 괜찮을 듯 싶다.

그 시절을 거쳐 시간이 훌쩍 지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저자는 요즘 영상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과거 경험했던 영화보다 지금의 영화가 폭력성, 선정성이 커졌기에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건강한 성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아이들 사고에 매체가 영향을 주는지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영상을 요약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해왔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짜 뉴스와 유튜브의 무분별한 정보 사이에서 사실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영화처럼 개연성 있는 픽션은 가끔 현실과 혼동한 경우도 발견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어리기도 하지만, 아이언맨이 만든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대역배우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스파이더맨에 푹 빠졌다. 그의 불운을 이겨낸 성장 스토리나 마블 책을 읽을 때도, 아이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마블 백과사전을 찾아 읽었다. 허구일지도 모를 상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설과 다르게 이미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영향이 염려되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은 랜드마크를 기억하고,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같은 장소가 나올 때마다 기뻐했다. 영화 〈슈퍼소닉 2〉(2022)에 스페이스 나들이 배경으로 나오거나 〈인사이드 아웃〉(2015)에 금문교가 나오면, 여행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즐거워했다. 영화 속에서 미디어와 관련된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초등학교 역사 수어 시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손 들고 발표하는 것과 같은 기쁨을 주는 듯했다. 지리 정보나 역사 연표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왜 그 장소가 선택되었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가 내용과 장소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집필 동기와 취지는 생각해보면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도 박사학위를 마친 지 11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는 동안 육아에 전념했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더해졌다고 말한다.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이 넓은 세상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공간의 재현과 간접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 생겨나는 물음에 답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은 〈서문(intro)〉과 〈맺음말(outro)〉 외에 4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미디어 속 공간의 재현 경험〉, 2부 〈미디어 공간의 텍스트 생산〉, 3부 〈미디어 인지 공간과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의 상호작용〉, 4부 〈지리학을 통해 본 미디어 속 상징 스팟: 촬영지가 왜 궁금할까요?〉 등이다. 책에 따르면 삶에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은 함께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시간의 흐름과 내용의 전개에 따라 장소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지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장소에 대한 논의를 축적해 왔고, 이를 영화에 응용하여 영화에 나타난 장소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에 표현된 장소는 실제 세계에서 영화의 특정 신(scene)과 관련된 촬영지가 함께 선택된다. 그 장소는 익히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곳으로 해당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지역민, 관객, 여행자 등)이 있는 곳이다. 또한 영화에 나타난 공간들은 영화가 제작·편집·상영에 이르기까지 제작자에 의해 재현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즉 만들어진 이야기의 전개 결과로서 영화 속 장소는 영화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사라져 가고, 지역 극장보다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선호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인 2021년 서울 극장이 문을 닫은 것을 저자는 기억해 낸다. 이제는 복합 영화관이 영화를 선별하여 상영하고, 집에서는 OTT로 편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다. 저자는 드라마의 양적인 성장과 확장된 채널을 통한 미디어 송출은 실제 장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방영 이후 시청하면서 겪는 촬영 장소에 대한 논의는 물론, 미디어 관람자나 지역의 방문자 인식 변화 또한 지리학의 실존적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OTT의 성장과 함께 tvN을 포함한 종편 드라마의 진입과 그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ENA와 같은 신규 채널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배우와 감독-프로듀서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 책은 1부에서 우리 영화 중 공간 재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디어를 통한 경험은 특정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며,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디어 공간 재현은 미디어가 특정 장소, 사람, 사진 등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미디어 텍스트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선택, 구성, 왜곡하는 과정을 통해 재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것. 재현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를 표현한 것이라 쉽게 이미지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왜 특정한 사건이 영화 소재로 선택되는지, 특정한 하나의 장소가 어떻게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진 영화들의 촬영지가 되었는지를 분석하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얻게 해 줄 것이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1부에서는 「동일한 장소, 영화마다 다른 관점」이란 주제에 따라 6·25 한국전쟁 중 벌어진 '인천상륙작전'을 그린 영화를 대상으로 인천을 살펴본다. 각 영화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고 제작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중 전세를 역전시킨 변곡점으로 역사와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동족상잔이라고도 하는 6·25 전쟁 가운데 인천상륙작전이 어떤 변곡점을 가져왔는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저자는 1950년 9월 15일만을 영화화하기란 쉽지 않다고 전제한다. 전개 내용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선동의 의미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이데올로기 편향성이 반영된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서 포지셔널리티(위치성)를 제시한다. 포지셔널리티는 개인의 속성과 대상에 대한 해석에 주관적 편향성을 반영하여 형성된 편향성을 의미하기에, 제작자에서 비롯된 포지셔널리티를 분석하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진 장소의 미디어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인천상륙작전을 상륙군 관점, 방어군 관점, 첩보부대 관점으로 나뉘어 살펴보고 있다. 1965년에 상영된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참전 군인 편거영이 극본을 썼다. 또한 조긍하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을 만들면서 고심했다고 한다. 남주인공 배우 신영균과의 인터뷰로 알 수 있듯이 당시 특수촬영을 할 수 없었던 실정이라 실탄을 쏘며 목숨을 걸고 촬영에 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당시 유행했던 007류의 첩보영화 스타일로 긴박함이 느껴지고 극본가가 통신장병이었던 경험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흑백영화이고 1960년대 우리나라의 야산은 벌거숭이였기에 마치 전쟁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965년의 한국 정세는 냉전체제 아래에 있었다. 한국 정부는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을 한국, 미국, 일본의 반공전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명확한 대결구도를 선택했다. 그해 소려의 코시긴 수상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중국문화대혁명으로 중소 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1965년의 경직된 분위기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1965년에 한국전쟁 영화 13편이 개봉했다. 영화 〈남과 북〉, 〈나는 죽기 싫다〉를 이어, 휴전 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에서 촬영한 반(反) 기록영화 〈비무장지대〉, 〈북에 고한다〉까지 제목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어 「〈월미도〉에서 방어군 관점」이란 소제목을 통해 북한이 인천상륙작전을 어떤 관점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월미도〉란 영화를 찾았지만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서는 이 자료가 없다고 한다. 북한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단어는 인정할 수 없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월미도〉가 제작된 시점은 김일성 생일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시기이다. 또 김정일은 『영화 예술론』(1973)을 책을 저술할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김씨 일가의 체제를 수비하는 데 북한 영화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저자는 지적한다.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휴전일인 7월 27일에 개봉됐다. X-RAY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하신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 외 15인의 대원들과 켈로 부대원에 관한 실화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장학수라는 인물을 허구적으로 설정하여 이념적 대립이 종교, 사회, 계급 간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인천상륙작전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것은 확실하지만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값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38선으로 나뉜 이념적 대립이 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팽팽했던 긴장 관계가 한반도에서 화약고를 터뜨린 것이다. 이후 70여 년이 지났고, 여전히 휴전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인천 외에도 한국전쟁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영화 속 장소들이 있다. 3년 여 동안의 전쟁에서, 장소를 다루게 되면, 배경으로 전쟁 시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작 당시의 쟁점을 파악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러한 영화를 토대로 공간 재현의 경험 결과를 여섯 가지로 나눠 내놓았다. ① 싸움의 치열한 전장이다. ② 수도 서울이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3개월 간 북한군을 경험한다. 일부 문인들은 부역의 불가피성과 북한군 통치하의 체험을 생생히 전달한다. ③ 후방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부산이나 전쟁 초기 피난시기 대구 일대이다. 〈내가 마지막 본 흥남〉과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구를 표현한 영화이고 낙동강 전선 일대를 중점 표현한 영화 〈포화 속으로〉(2010),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 등이 있었다. ④ 지리산 권역이다. 휴머니즘 반공 영화라 명명되는 빨치산 영화는 〈피아골〉(1955), 〈남부군〉(1990), 〈태백산맥〉(1994)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잃어버린 공간이다. 〈내가 마지막 본 흥남〉(1984), 〈길소뜸〉(1985), 〈간 큰 가족〉(2005), 〈만남의 광장〉(2007) 등을 들 수 있다. ⑥ 인천상륙작전 이후 체류했던 북한지역이다. 〈원산공작〉(1976)은 첩보부대가 세균전을 준비해 원산 상륙을 단계에 걸쳐 시도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평양에서 시가지전을 벌인다. 북한 영화 〈적구 도시에서〉(1966)는 중국 참전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기 전 연합군에 포위되었던 시기를 재현하며 도시에 잔류에 있었던 자유 진영을 보여 준다. 한국전쟁 영화는 진영 간 체제수호를 기저에 두고, 지배체제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해 왔다. 이는 주제 선택 시에 전쟁을 촬영할 만한 장소를 섭외하고, 허가를 받고,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전투장면을 재연할 때 환경을 훼손해 가면서 영화를 제작해 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공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미나리〉〈도굴〉〈신과 함께: 인과 연〉〈도깨비〉〈슬기로운 감빵생활〉〈사랑의 불시착〉〈천문〉〈국제시장〉〈낭만닥터 김사부〉〈동백꽃 필 무렵〉〈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외국의 영화도 몇 편 소개된다. 


저자 : 장윤정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에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화를 통한 장소 이미지의 교류?북제주군 우도를 사례로」로 석사학위를, 「인천상륙작전 영화 속 장소 재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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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2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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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우리 역사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우리 최대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고 '다산 연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다산의 학문과 사상은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평생을 통하여 중단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탄생한 것이다.

“사실에 의거해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의 삶을”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인민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꼭두새벽의 쇠북 소리”이자 “잘못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주는 관개 사업”이었다. 1권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서 저자 한승원은 유배지에서 다산의 '관개 사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선비의 사업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잉잉거리면서 꽃을 찾아가서 꿀고 꽃가루를 머금어다가 통 속에 저장하고, 애벌레를 먹여 키우는 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어여쁜 아가씨와 사랑에 깊이 빠지듯이, 책 저술하는 사업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자. 금방 날이 저물고 바미 짧았고, 배고픔과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사약에 대한 공포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1권, p.312) 

다산은 “‘세상을 올바르게 경영하는 지표’, 즉 가장 진실한 예”를 쓰고 싶어 했고, 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실한 의지였다. 남인이었던 정약용을 노론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던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한때 천주교에 이끌렸던 과거를 빌미로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 길고 고통스러운 유배 생활을 보낸다. “‘예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예가 아니면 보지 않고 예가 아니면 듣지 않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자기 성찰에 투철한 참 선비 학자” 정약용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기구하고 신산한 운명을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지난하고도 치열한 일생의 운명을 따라 짚으며 그에게서 “갇혀 사는 사람의 아프고 슬픈 절대 고독과, 그 고독을 이겨내려는 고귀한 분투와 꿈꾸기와 도학자의 여유”를 깨쳤고 정약용과 하나가 되어 그가 삶에서 품었던 꿈과 우정을 이 소설 작품을 통해 소생시킨다.

정약용의 가장 큰 후견인은 정조였다. 정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큰 환란이 없었지만,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승승장구하던 정약용도 정조 사후에 완벽히 정계에서 배제되고 잊혀져 갔다. 사실 정약용은 관직에 나간 지 2년 만에 당색으로 비판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가 해미에 유배되었으나 정조의 배려로 열흘 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1801년(순조 1) 〈신유사화〉가 일어나면서 주변 인물들이 참화를 당했고, 손위 형인 정약종도 참수를 당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약용은 그해 2월에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11월에는 강진으로 옮겨졌다. 18년 동안 긴 강진 유배생활의 시작이었다. 『다산시문집』 제4권에는 정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정약용의 시가 전해진다.


운기(雲旗), 우개(羽蓋) 펄럭펄럭 세상 먼지 터는 걸까 홍화문(弘化) 앞에다 조장(祖帳)을 차리었네

열두 전거(?車)에다 채워둔 우상 말(塑馬)이 일시에 머리 들어 서쪽을 향하고 있네

영구 수레(龍?)가 밤 되어 노량(露梁) 사장 도착하니 일천 개 등촉들이 강사(絳紗) 장막 에워싸네

단청한 배 붉은 난간은 어제와 똑같은데 님의 넋은 어느새 우화관(于華館)으로 가셨을까

천 줄기 흐르는 눈물 의상(衣裳)에 가득하고 바람 속 은하수도 슬픔에 잠겼어라

성궐은 옛 모습 그대로 있건마는 서향각 배알을 각지기가 못하게 하네 - 『다산시문집』 제4권

유배 생활 처음에는 천주교도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천주교인이라는 소문으로 나자 모두 정약용을 모른 척했다. 유배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승려 혜장 등과 교유하고, 제자들을 키우며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담배 역시 유배의 시름을 덜어주는 벗이었다. 강진에 도착해서 처음 머무른 곳이 사의재(四宜齋)라는 동문 밖 주막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그곳에 기거하면서 예학 연구를 시작하였고, 이후 고성사의 보은산방과 목리의 이학래집으로 전전하면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1808년 귤동의 〈다산초당〉에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1,000여 권의 서적을 쌓아 놓고 유교 경전을 연구하였다. 그의 이른바 주석 학문인 경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 2권에는 정약용과 혜장의 만남 이후 그들이 나눈 『주역』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바야흐로 주역에 심취해 있는 혜장은 선배 학자들의 주역론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도와 낙서의 이론과 주자의 『역학계몽』도 읽은 듯, 그들의 이론을 자기 이론인 양 말하고 있었다. 무슨 책을 읽든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고, 선배 학자들의 결함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하고, 자기만의 특이한 주장을 펼 줄 알아야 하는데, 혜장은 『주역』에 관한 한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르는 법인데, 그것은 그 도둑이 도둑질의 즐거움에 취해 있는 까닭이고, 취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도둑질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고, 아직 도둑의 도를 터득하지 못한 까닭이이고, 그 도둑의 성정이 주정적일 뿐, 이지적이고 창조적이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도둑질의 방법 여기저기에 허술한 점이 많으므로 쉽게 꼬투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도둑으로서 도통하려면, 강희맹의 가르침을 익혀야 한다."(2권, p.147)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온 것은 1818년 가을,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57세에 해배되어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고향인 마현에서 자신의 학문을 마무리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해배되었다고는 하나 오랜 기간 지냈던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이 지은 많은 저술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하기위해서였다. 초로의 나이에 더 이상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다산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저술들을 널리 소개하여 읽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경세(經世)의 길이었다. 

이후 자신의 호를 다음 시대를 기다린다는 뜻의 ‘사암(俟菴)’을 즐겨 사용한 것 역시 그런 의미였다. 그는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저술에 대해 “육경과 사서는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고, 일표와 이서는 천하와 국가를 위함이니, 본말이 갖추어졌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이 근본이라면, 『경세유표』와 『목민심서』·『흠흠신서』는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었다. 해배 이후 학문적 교제를 했던 대상은 신작·김매순··홍길주·김정희(추사) 등 당시 저명한 노·소론계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정권을 잡은 노·소론계였지만 고정된 정론이나 학설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경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경세관을 펼쳐 나갔다.

정약용이 가진 국가개혁의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 국가개혁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는 『경세유표』에서 그는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이 종합된 개혁사상을 전개하였다. 정약용의 개혁안은 장인영국(匠人營國)과 정전법을 중심으로 한 체국경야(體國經野)라 평가할 수 있다. 통치와 상업, 국방의 중심지로서의 도시건설(체국)과 정전법을 중심으로 한 토지개혁(경야)을 바탕으로 세제, 군제, 관제, 신분 및 과거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를 고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개혁안의 주요 골자이다. 『주례(周禮)』의 체국경야 체제를 기본 모형으로 삼아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상공업의 진흥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떠나가는 나그네」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아들이 읽는 그의 유언장 내용이 소개되면서 기어코 독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대부분의 유배생활인 관료로서의 생활과 평상시의 인격, 그리고 집안 식구들에 대한 세세한 관심과 애정은 그가 남긴 500권의 장서에 담기지 않았지만 저자 한승원의 이 소설 작품은 포착해 낼 수 있다. 유언장의 주요 내용은 자신의 주검을 염하는 방법부터 순서까지 자세히 적혔고 이에 필요한 수의의 옷감까지 일일이 지정할 정도로 긴 시간 읽게 한다. 그만큼 평소에 예(禮)를 중시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일상을 어김없이 철저한 성격을 분명하게 묘사하는 저자의 속뜻이 담겼으리라고 추측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섞여 있고 절차에 대한 무지로 독자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분위기만 보아도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낼 정도로 저자 한승원이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란 추론까지 가능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산은 아들의 유언장 낭독을 하는 동안 숨을 거두며 육체에서 이탈한 혼이 천국에서 마중 나온 이들과 조우한다. 

한 무리의 하얀 도포 차림을 한 사람들은 이벽과 정약전·정약종·이가환·이승훈·황사영·김범우·윤유일 등이다. 이벽이 다산에게 한 말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뇌리에 남을 명장편을 연출한다. 

"정공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정공이 자리 잡은 새 세상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아래쪽에 강의 물너울을 거느린 거대한 천지 우주의 치마폭 같은 다산성의 세상 한복판입니다. 동암에는 서재가 있고, 서암에는 차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산골짜기에 암자가 있는데, 암자의 주지가 곡차를 즐길 줄 아는 화통한 스님이랍니다. 이 초당에서 저술하며 사시다가 답답해지면, 암자의 주지하고 술 대작도 하시고, 밭도 일구시고, 저 아래로 내려가서 낚시질도 하시고······."(2권, p.307)


저자 : 한승원(韓勝源, 호 : 해산海山)


자신의 고향인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희망 사진관』,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까마』 『시인의 잠』 『우리들의 돌탑』 『연꽃바다』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화사』 『멍텅구리배』 『초의』 『흑산도 하늘길』 『추사』 『다산』 『원효』 『보리 닷 되』 『피플 붓다』 『항항포포』 『겨울잠, 봄꿈』 『사랑아, 피를 토하라』 『사람의 맨발』, 『달개비꽃 엄마』, 산문집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 『푸른 산 흰 구름』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바닷가 학교』 『차 한 잔의 깨달음』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시집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 『달 긷는 집』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이별 연습하는 시간』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꽃에 씌어 산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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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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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2』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민족 역사상 두 분의 큰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 현대문단사의 거목, 한승원이다. 한승원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이 책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이 다산의 일대기를 소설로 지어낸 작품이다. 한승원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하고,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승원의 작품을 문학평론가들이 그렇게 일컬었다. 크게 잘못된 지적은 아니지만 평론의 일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다.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가 한강, 한동림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장흥 바닷가 해산토굴에서 집필중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그는 지난 19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승원의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사자인 한승원은 이렇게 말한다. "제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이 아니라 '생명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독자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승원은 토속적인 작가다' 하는 것도 게으른 평론가들이 만들어놓은 가면일 뿐이지요. 작가는 주어진 얼굴을 거부해야 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장편 『연꽃바다』를 쓸 때부터 제 작품세계는 크게 변했습니다. 생명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우주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노장(老莊)이나 불교 사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승원의 이 말은 한국문학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민족 정서의 원동력은 '한(恨)'라는 '조각의 전체화',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고, 소극적 받아들임이 아니라 적극적 생명력에 천착하는 문학이라는 반론이기도 하다.

이 소설 작품 『다산 1, 2』는 저자 한승원의 자신의 작품의 근원을 '생명력'으로 말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다. 이번에 열림원에서 새롭게 출간된 『다산』은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에 이은 작품이자, 그가 평생에 걸쳐 좇아온 〈조선 천재 3부작〉의 완결판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정약용의 일대기와 사상을 소설화”함으로써 “인물소설 쓰기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다산』은 정약용이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대(大)작가 한승원의 광활하고도 심지 깊은 작품세계와 탄탄한 내공을 집약시킨 결정체이다. 이로 인해 “소설가는 흘러 다니는 말이나 기록(역사)의 행간에 서려 있는 숨은 그림 같은 서사, 그 출렁거리는 파도 같은 우주의 율동을 빨아먹고” 산다는 그의 말과 일치된다. 저자 한승원은 역사 속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남다른 소설적 집요함으로 한 시대의 공기, 바람과 햇살, 심지어 역사적 인물의 숨결까지 살려내 이 소설에 담아냈다.

저자 한승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 출생으로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같은 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木船)」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 동창생들인 이문구?조세희 등과 교유했다. 국민학교 교사를 거쳐 광양중학, 광주 춘태여고 교사를 지냈다. 교사 재직 시절에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계속했으며 1980년 「그 바다 끓며 넘치며」로 한국소설문학상을, 1983년 「누이와 늑대」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3년 「포구의 달」로 한국문학작가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승원이 〈조선 천재 3부작〉으로 지목한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정조 사후 교리가 불충하고 요사스럽다는 천주교에 빠졌다는 이유로 둘째 형 정약전, 셋째 형 정약종과 함께 정치적 처벌 대상이었으며, 특히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 순교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기간 중 무려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로 밝혀진다. 그가 남긴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분야를 다루었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상이 담긴 〈조선비결〉이란 책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 것이다. 〈조선비결〉이란 실제 존재하는 책은 아니지만 다산이 임종 시 "아직 세상에 알려질 때가 아니니 훗날 적절한 시기에 세상에 내놓으라"고 했다는 책이다.

책은 두 권으로 분책되어 발간됐으며 1권의 첫 장(章)의 제목은 금서(禁書)라는 「다산비결」이다. 첫 장이지만 차례 앞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문〉의 역할을 한다. 저자가 자료 수집과 취재에 들어 「다산비결」에 대해 물었다. 아마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있었기에 확인 차원에서 저자가 발품을 판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호남 지방의 의식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필사되어 읽혀졌던 책으로 금서이다 보니 「다산비결」이라는 제목의 책은 전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가는 『방례초본』(후에 『경세유표』로 개명)으로 추정한다고 알려 주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다산비결」을 은밀하게 돌려가며 읽던 그들이 1894년 임금을 싸고도는 간신배와 썩은 관료들을 징치하고 무너지는 나라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겠다고 일어선 동학군의 접주들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한 연구가가 방대한 분량의 『방례초본』과는 다른 것일 가능성을 추정하면서 핵심들만 간추려 엮은 책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가는 "그것은 『정감록』 비결보다 더 신묘한 예언을 무겁게 담은 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는 점도 살펴볼 일이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1권의 내용은 정조 재위 시에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기에, 정조와의 함께하던 시절의 이야기들, 친형제간들의 활동, 정조 사후 벌어진 천주교 대탄압으로 순교와 유배형을 당했던 정약용 가문의 멸문, 천주학, 다산의 조정 재직시 관료로서의 활약 등이 주로 서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첫 장은 「다산비결」이다.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琴)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을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선율이 되고 그 선율은 빛이 되고

찬란한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 한복판으로 날아가네.(1권, p.5)

거문고 여섯 개의 줄은 누에고치 2만여 개의 실오라기들을 겹겹으로 비틀어 만든 것이라고, 곡산의 한 거문고 장인이 말했다. 그 거문고의 아름답고 구슬픈 소리는 에밀레종 소리처럼 죽음의 고통을 비틀어 고아낸 혼의 빛인데, 그것은 이 땅의 기운이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가 천기를 호흡한 결과이다. 저자 한승원은 거문고 연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시가 떠올라 가슴이 아린다고 썼다. 18년 동안이나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신 정약용 선생이 남긴 500여 권의 혁혁한 저서들은 하나하나가 고통을 비틀어 곤 선율들이고 중천으로 날아가는 깃털 찬란한 혼의 새들이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고향 마을의 재재종제가, 종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나왔다는 흘림체의 한글로 쓰인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고 밝힌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닳고 닳아서 많이 떨어져 나가고 반쯤 부식된 책이었다. 그것을 펼쳐본 순간 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95세까지 사신 눈먼 종증조부를 떠올렸고, '아,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다산비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저자의 회고다. 어머니를 통해 종증조부가 동학군이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 책 가운데 알아볼 수 있는 일부분을 요약해 책에 썼다.

······물은 배를 뜨게 하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조선 땅에서 제일 못된 제도는 양반 제도이다. 조선 사람들이 복받고 살아가려면 양반 무리를 없애야 한다. 양반도 상사람과 똑같이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고, 누에를 쳐야 하고, 닭이나 돼지나 소를 길러야 하고, 군인이 되어 바다나 국경을 지켜야 하고, 세금을 똑같이 물어야 한다. 부리던 종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살림을 차려주면서 내보내 독립시켜야 마땅하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 한승원은 정약용의 『경세유표』의 내용과 유사한, 한글로 쓰인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다산 정약용 선생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

1권은 모두 6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부분에서 불편함은 잠시지만 그래도 지내기에는 요즘의 감옥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정 지역을 벗어나 살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책을 쓰기로 한 다산에게는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히려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다 보니 자식들이나 형들의 자제, 즉 조카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듯하다. 책 이곳 저곳에서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족들 걱정임을 알 수 있다. 

"금부도사와 나졸드이 그를 장기 관아에 넘겨주고 돌아간 순간부터, 정약용은 낯선 장기 땅에서 굶지 않을 궁리, 병들지 않고 살아 돌아갈 궁리, 고통스럽지 않게 시간을 태워먹을 궁리를 했다. 답답하면 청청 높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하늘이 말했다. '염려 마라. 궁하면 통한다. 가득 찬 달은 기울고, 기울어진 달은 다시 차게 된다. 모든 들어간 것들은 다시 나오게 된다.' 이불과 옷들을 짊어지고 온 하인 돌쇠 아비에게 금부도사를 따라가라고 일렀다. 근심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한시바삐 알리려는 것이었다. 장기 아전이 살도록 지정해준 집의 주인은 늙은 장교 성선봉이었다."(1권, p.310) 

유배지 장기에 도착한 첫날의 모습과 다산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유배지 장기에서」란 제목의 장(章)에 실린 내용이다.

유배지 근처에 〈죽림서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죽림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라고 한다. 다산은 유배살이 짐 속에 넣어온 촛불 한 자루를 손에 들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과 대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밤에 찾았다. 정약용은 주자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윤휴라는 사람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송시열을 소인으로 여기고 미워해 왔었다. 소인이라 여겨지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용납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그와 함께 소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을 열어 용서해주고 싶었다. 화해는 용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서원 안에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온 정약용입니다" 하고 말을 건네자, 서원을 지키는 노인들이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디래놓는 기갸?" 하고 소리쳤다. 정약용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노장님들 왜 이러십니까? 송시열 선생에게 배례를 하고 싶어 왔습니다." 늙은 선비는 젊은 선비를 향해 소fl를 질렀다.

"퍼떡 문 닫아걸고, 소금 뿌려삐라." 정약용은 서원에서 쫒겨나 돌아오면서, 하늘을 향해 소처럼 웃었다.(p.316~317)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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