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가 되기 위한 리셋 혁명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서승범 옮김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업혁명 이후 사회의 흐름과 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사회 변화의 빠른 속도는 제1차 산업혁명에 의해 기계가 사람의 노동력을 대신해 각종 재화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공업이나 가내공업으로 만들어지던 생활필수품 등 각종 재화가 시장에서 대량 소비가 예상되는 물건들을 무한 생산하면서부터 예고된 변화다. 당연히 재화의 24시간 생산이 가능해지고 가격도 내려감으로써 대량 소비를 유도했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화폐가 일반화되고, 재화와 비용을 감당할 화폐가 금은 중심에서 종이로 바뀌면서 사회는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이를 학자들은 "빠른 속도로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인 오늘날에는 디지털 시대에 인공지능(AI)이 더해져 매일 쏟아지는 정보가 무한하다고 표현될 정도로 엄청난 정보가 쏟아진다. 이를 기록하고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빅데이터가 필요한 시대다. 이처럼 급하게 변하는 사회에서 사회 최상층으로 불리워지는 '상위 1%'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책 『상위 1%가 되기 위한 리셋 혁명』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이른바 사회의 하이클래스에 도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과 방법을 살펴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점을 부각해 알려준다. 특히 저자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현직 교육자로서 일본과 한국 등 '성숙사회'에서의 상위 1%가 되는 제시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은다. 저자는 성숙사회의 우리들은 지금 조직과 개인의 관계가 바뀌게 된다고 강조한다. 즉, 조직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으로서의 희소성을 연마하지 않으면 돈벌이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사회가 심화될수록 희소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면 SNS에서 아무리 어필을 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비즈니스맨도 상하 양극화되는 사회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투명한 시대에서 먹고사는 데 걱정 없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100명 중 1명의 희소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럼 샐러리맨이든 공무원이든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저자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언젠가 사장이나 간부가 되고 싶은 조직형 인간인지, 혹은 일의 성취감을 더 중요시하는 개인 사업가를 지향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공적인 조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사람인지, 4개의 타입으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세밀하게 노하우를 알려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희소성을 높여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제는 학벌이나 연줄보다는 어느 분야에서든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 적성에 맞으면서도 경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평생 일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경쟁력과 희소가치를 지닌 자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상위 1%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다. 이 책이 그러한 시도와 준비에 구체적인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상위 1%가 되기 위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3가지 조건’에서 예상치 못한 조건을 내세운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어렵고 처음 들어보는 일을 의미하지 않아서 예상치 못한 것이다. 저자는 성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3가지 조건에 대해 ① 파친코를 하지 않는다. ② 모바일 게임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다. ③ 한 달에 책을 1권 이상 읽는다.를 주장한다. 이 3가지가 상위 1%가 되기 위한 공통적인 조건이라니 매우 쉬운 일이다. 누구나 가능하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만큼 사회 문제가 되어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의외의 조건이다. 더욱이 저자는 이 3가지조차 충족되지 못하면, 스타트라인에조차 설 수 없다고 역설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조건(전제)이지 결코 충족조건은 아닌 셈이다. 다만 이 책이 전제로 내세우는 조건 등 많은 설명에서 수치가 자주 언급되는데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사회적 병리 현상도 다를 텐데 일괄적으로 적용 가능할지는 독자가 읽고나서 판단할 몫이다.

저자는 〈서문(프롤로그)〉을 통해 "슈퍼 엘리트와 그 외의 사람들, 비즈니스맨도 상하 양극화되는 사회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고 전제한 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글로벌한 슈퍼 엘리트를 많이 예찬한다. 일본의 엘리트 비즈니스맨 중에는 외국계기업에 취직해 높은 수입을 얻는 사람도 있고, 해외에 진출해 현지인들과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사람도 있고, 해외에 진출해 현지인들과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지금까지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로 규정한다. 이 슈퍼 엘리트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슈퍼 엘리트에 함께 올라서려면 지금은 경제외적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대가 신중산층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심으로 행복의 가치를 돈이 아닌 방법으로 찾고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의 사회 수준의 국가들이 삶의 보람을 일 중심이 아닌 가족,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 혹은 인터넷을 통한 활동이나 사회공헌 같은 일로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한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살면서도 외롭지 않은 삶을 추구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를 '권력(월급쟁이) 지향'의 중심, 즉 출세만이 목표인 사람들이 과거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프로(독립) 지향'의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돈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가치'를 추구해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관계 활동이나 사회공헌 등을 중시하는 '경제외적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권력 지향'을 목표하는 회사조직에 남아 출세를 꿈꿀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조직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 스킬 획득을 위해 '프로 지향'적 삶을 영위할 것인가. 어떤 길이 최상의 선택인지는 아무도 없다.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에 따라 멋진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어둡고 어두운 낯선 길에서 빛도 나침반도 없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이 책이 어둠 속 독자들의 손에 들린 지도와 나침반이 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슈퍼 엘리트 이외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고 핵심사항, 그것은 상위 1%, 즉 '100명 중 일인지', 희소가치에 속한 사람(rare)이 되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경제적 가치×권력 지향(CEO 타입)〉, 2장 〈경제적 가치×프로 지향(개인 사업가 타입)〉, 3장 〈경제외적 가치×권력 지향(공무원 타입)〉, 4장 〈경제외적 가치×프로 지향(연구자 타입)〉 등이다. 저자는 7가지 조건만 갖추면 누구라도 상위 1%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7가지 조건이란 '2의 7제곱'이란 저자만의 계산법이다. 즉 7가지 관문을 말하는 것으로 2의 7제곱이란 매우 간단한 수식이고, 따라서 간단한 조건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쉬운 일은 아니다. 2의 7제곱은 '128'이다. 따라서 7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하는 조건은 128분의 1에 해당한다. 이것은 단순 수치상의 비교일 뿐 첫째 관문은 모두 동등한 사람들이지만 두 번째 관문은 첫째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과의 관문이다. 훨씬 어려운 상대와 맛서야 하는 것이다. 

제1장에서는 ‘파워’를 추구하는 사람의 4가지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회사에서 작업이 아닌 일을 한다, 자신만의 프레젠테이션 스킬이나 협상 능력을 갖춘다 등, 회사 내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하는 4가지 조건을 담았다. 제2장에서는 ‘기술’을 추구하는 사람의 4가지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1만 시간으로 기술을 체득하는 요령이나 개인 사업가가 되기 위한 심리적 포인트 등을 담았다.

제3장에서는 ‘연결’을 추구하는 사람의 4가지 조건에 대해 설명한다. 어쩌면 낭비라고 생각될 수 있는 시간을 견디거나 일 외의 부분에서 타인의 신임을 얻어 이 조건에서 성공하는 일인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담고 있다. 마지막 제4장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4가지 조건에 대해 수록했다. 이 장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 등이 담겼다.

이 책이 담고 있는 3가지 공통 조건에 대해 잘 숙지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를 제대로 읽어내는 바탕이다. 앞서 언급한 조건을 간단한 키워드로 분류하자면 ① 시간 ② 중독 ③ 독서 등 3가지다. 시간과 독서는 쉽게 수긍이 되지만 '중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에서 모바일 게임을 들고 있지만 모든 종류의 중독에는 지나치게 몰두하고 몰입해 상습적으로 반복함으로써 헤어나오기 힘든 상태에 빠지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일 중독 등 생명체의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하는 모든 약물과 오락 등이 이에 속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인사 채용자로서 전철 안에서 모바일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을 채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일과 건강에 해를 끼치는 이런 중독 상태의 사람을 회사에 채용할 수 있겠는가를 따져본다면 너무나 쉽게 배제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중독 상태에 있는 사람은 휴식이나 일에 있어서도 시간을 쓸모없는 일에 버리는 셈이기 때문에 발전의 한계가 분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은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시간 관리'와 관련이 있다. ① 시간의 경우 유럽이나 일본, 한국처럼 성숙사회에 접어들면, 파친코족과 파친코를 하지 않는 사람은 명징한 차이를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의 경우 파친코이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을 저자는 예로 들고 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에게 싼 임금으로 일을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피지배층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적은 돈을 도박을 위해 쓰게 된다. 따라서 주 단위로 임금을 지불하고, 그 주에 돈을 다 쓰게 만든다고 한다. 유럽의 임금노동계의 현실로부터 증거된 사례를 들고 있다. 유럽의 피지배층이 베팅 오피스를 찾는 이유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들 피지배계층이 파친코장으로 몰려든다고 주장한다. 

파친코족과 파친코를 하지 않는 차이에서 저자가 차이를 끌어내려는 것은 시간 관리다. 이 책에서는 '시간 매니지먼트 능력'이란 표현을 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의 평등한 자원이며 보물입니다. 돈과 인맥이라는 자원은 소유자와 무소유자로 나뉘어 어쩌면 처음부터 불공평합니다. 또 상황에 따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그럴 재주가 없습니다. 다른 상황,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선물이 있다면, 바로 시간이라는 보석입니다. 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p.46)

자신이 마음속 깊이 열중할 수 있는 것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인제 그만둬라”라는 말을 들어도 절대로 그만두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압도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모르는 사이 습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언젠가 비즈니스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어 언젠가 각광을 받을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p.216)


저자 : 후지하라 가즈히로(ふじはら かずひろ, 藤原 和博)


‘조례만 하는 학교’ 교장이며 교육 개혁 실천가로 활동 중이다. 195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78년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주식회사 리크루트에 입사했다. 도쿄 영업 총괄 부장과 신규 사업 담당 부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유럽 주재를 거쳐 1996년 리크루트의 펠로로 활동하며 성과를 거두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도쿄 의무교육 최초의 민간 교장으로 스기나미구립 와다중학교의 교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나라시립 이치조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2021년에는 온라인 학교 ‘조례만 하는 학교’를 개설했다. 저서로는 『인생의 마지막 교과서』, 『언덕 위의 언덕』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서승범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랐다.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 외국어대 대학원에서 일본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아사히 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 광고업계 사관학교라 불리는 두산그룹 오리콤에 입사했다. 세계적인 광고회사인 덴쓰와 협업하며, 대전 엑스포 프로젝트를 성공 적으로 지휘했고 이후 덴쓰 합작회사인 휘닉스 커뮤니케이션에서 한일월드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시통역가, 번역가, 작가, 리딩 퍼실리테이터, 코치, 컨설턴트, 기업가 등의 커리어를 갖고 있다. 30년 경력의 일본업계통으로, 일본 비즈니스를 꾸준히 배우고 가르치며 컨설턴트와 비즈니스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 비즈니스 53가지 성공 법칙』을 출간했고, 후지하라 가즈히로의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1% 평생 일할 수 있는 나를 찾아서』, 간다 마사노리의 『비상식적 성공 법칙』을 번역하고 다수의 책을 자문하고 감수했다.

트러스트코칭스쿨 한국 대표코치 | 나홀로비즈니스스쿨 대표.

간다 마사노리 국내 유일 비즈니스 파트너.

리드포액션 독서 모임의 국내 최초 리딩 퍼실리테이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 이정모 선생님이 과학에서 길어 올린 58가지 세상과 인간 이야기
이정모 지음 / 오도스(odos)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는 우리 일상에서의 과학을 배울 수 있다. 과학은 어렵고 과학자만의 전유물로 생각되지만 실제는 우리가 사는 일상의 삶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 이정모는 과학자지만 우주나 엄청난 힘을 만들어내는 에너지 등에 관심을 갖는 과학자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접하는 것이나 삶의 과학에 관심이 많다. 그가 과학자로서 쓴 책의 제목만 살펴봐도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공생 멸종 진화』, 『바이블 사이언스』, 『달력과 권력』,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삼국지 사이언스』 등 흥미롭고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과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일에 몰두한다. 책을 쓰는 이유도 대부분 과학에 흥미를 느껴 과학의 길을 걷게 하는 스승으로서 과학자 양성에 뜻이 있는 것 같다. 또 과학을 쉽게 이해하고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생활밀착형 과학'을 추구한다. 

이 책 역시 과학에서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쏟아지는 뉴스와 쉽게 통용되는 상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매일 보는 달력’부터 ‘과학자의 정치 출마’까지 그 무엇도 저자의 날카로운 과학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생활밀착형 소재로 유쾌하게 던져지는 질문은 과학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다. 이 책이 갖는 독창적 가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은 실패를 피하지 않는다. 실패는 곧 경험치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하고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저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저자는 '과학 문해력'이란 말로 대치시켜 과학과 삶이 밀접한 관계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를 테면 달에 처음 도착한 아폴로 11호와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테지만, 아폴로 11호 이전의 열 번의 아폴로 프로젝트와 암스트롱을 대신해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던 우주인, 마이클 콜린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21세기에 사는 오늘날 현대인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린다. 될수록 짧은 시간에 중요한 정보만 받아들이기에도 벅차다. 때문에 자칫 겉은로 드러난 현상만 주목할 뿐 그 이면이나 속사정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폴로 11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 발자국을 내디딘 첫 지구인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내린 우주인과 그들이 작업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우주선을 타고 달 주위를 빙빙 돌았던 세 번째 우주인에 대한 관심이 적다. 때문에 우리의 기억 속엔 닐 암스트롱만 남아 있다. 이처럼 성공한 일부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지식은 과학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과학하는 태도에도 못 미치는 행위다. 원인은 눈앞에 드러난 성공만 기억하려 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탑은 수많은 실패와 이름 없는 자들에 의해 올려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학은 사실과 숫자에 기반하지만, 저자의 과학 이야기에는 따뜻함이 있다. 저자가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은 타인을 올바르게 대우하려는 어른의 노력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돌고래부터, 미래의 세대를 위한 백두산까지, 따뜻하지 못하면 발견할 수 없는 과학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탐구한다.

저자의 따뜻한 과학은 그의 야학 교사 시절 경험에서 온다고 한다. 대학생 때부터 9년 넘게 야학 교사 생활을 하며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일하고 온 피곤한 야학의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쳤다는 것.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농담과 예시까지 미리 설계해 가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몸에 익혀다고 한다.

시작부터 따뜻했던 저자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다시 세상을 향하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더욱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세상과 나를 알아가며 더욱 단단해지는 과학의 여정이 되기를 저자는 기대한다고 말한다. 특히 크기와 숫자로 근거를 의심하고 질문할 때도 따뜻하고 예의 바르고 겸손해야 한다고 저자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것은 학문하는 태도, 과학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겸손은 자신의 본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것이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바꾸는 태도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여기서 과학 문해력이 생긴다는 것이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4부 5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멸종을 피하기〉, 2부 〈더불어 살아가기〉, 3부 〈지혜로워지기〉, 4부 〈상식 발견하기〉 등이다. 각 부의 핵심어 멸종, 공생, 지혜, 상식 등의 단어로 미루어보면 마치 인문학 책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4개의 단어는 생명의 진화부터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삶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2025년 현재의 지구의 모습과 인류의 삶이 모두 담겨 있다. 1부의 경우 대체적으로 지구의 생명의 진화와 멸종하는 생명에 대한 이유, 그리고 오늘날 지구 45억년 역사상 최대 위기인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과학의 범위에서 설명하고 지식을 전한다. 이 과거의 발자취를 바탕으로 내일의 삶을 위한 상식이 인류의 보편적 삶이란 사실을 담아내고 있다. 

1부 3장 「바닷속 오아시스」를 살펴본다. 제목에 쓰인 '바닷속 오아시스'란 산호초를 말한다. 먼저 1605년 프랑수아 피라르 드 라발이 한 이야기를 인용한다. "인간이 만든 것 하나 없이, 꼭대기가 전부 돌멩이인 거대한 둑으로 된, 환초 하나하나를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한 놀라움이다." 이 무구를 프레데릭 위리엄 비치 함장의 항해기(1826년)에서 읽고는 후에 자신의 『비글호 항해기』(1839년) 제20장과 지질학 전문서인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1842년) 서문에서 연거푸 언급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는 찰스 다윈이 1836년 비글호를 타고 호주 남서부를 돌아 인도네시아 남서쪽 코코스 제도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환초를 보고 피라르의 묘사를 떠올렸다고 밝힌다.

환초는 고리 모양의 산호초를 말한다. 파도치는 파란 바다 한가운데 하얀 해안이 있는 섬이 있고 섬 안에는 다시 에메랄드빛의 잔잔한 바다가 있다. 환초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과거의 항해자들은 산호를 만드는 동물들이 본능에 따라 환초 안쪽에 있는 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고리를 만들어 쌓았다고 여겼다. 그야말로 상상일 뿐이다. 속과 과가 다른 많은 종의 산호들이 같은 목적으로 협력해야 하는데, 그런 예를 자연계에서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p.26) 당시엔 환초 아래에 화산의 화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같은 것들이 바다 밑에 있고 그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에서 산호가 자라났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환초의 모양과 크기,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산호의 일반적 과학 상식을 덧붙인다. 이에 따르면 산호는 깊은 곳에서 살지 않는다. 연평균 수온이 대략 25도이며 수심 30~100미터인 얕은 바다에서만 산다. 산호가 죽으면 석회질로 변하여 산호초를 형성하는데, 산호초는 1년에 1.5센티미터 정도 자란다. 태평양의 산호초는 15~20만 년 정도 자란 셈이다. 지질학자인 찰스 다윈은 환초 주변의 수심을 측정한 끝에 환초가 생기는 과정을 3단계로 추정했다. ① 먼저 섬을 둘러싼 가장자리를 따라서 산호가 자라면서 섬이 살짝 가라앉는다. 그 결과 산호초의 윗부분이 공기 중에 노출되고 이곳의 산호는 죽는다. 섬 가장자리에 드러난 산호초를 거초라고 한다. ② 섬은 계속 가라앉고 그 결과 산호초와 섬 사이에는 고리 모양의 호수가 생긴다. 이때 고리 모양의 산호초를 보초라고 한다. ③ 결국 섬이 완전히 가라앉고 그 사이에도 산호초는 계속 자란다. 고리 모양 산호초 둑 안에 동그랗게 호수만 남는다. 이 산호초를 환초라고 한다. 거초-보초-환초로 이어지는 3단계 산호초 진화 과정은 지금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찰스 다윈은 산호초뿐만 아니라 산호의 생태계에도 큰 호기심을 가졌다고 저자는 밝힌다. 산호초에 사는 다양한 생명을 관찰하고 산호 조각을 얼굴과 팔에 비빈 후 생기는 고통의 정도와 지속 시간을 노트에 기록할 정도였다. 다윈에 의해 산호초 탐구 결과를 기록에 남겨 오늘날에도 산호초 연구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5월 캐나다 과학자들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바다 밑바닥에 숨어 사는 엄청난 수의 물고기가 급속히 성장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 먹이의 60퍼센트를 공급한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다윈의 산호초 탐구를 바탕으로 발전한 산호초 연구는 오늘날 산호초가 바닷속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현재의 바다는 오염으로 산호초가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백화 현상은 보통 10미터 미만의 얕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었지만 최근에는 30~150미터 깊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백화 현상은 주로 20~30년 주기로 엘리뇨가 극심해지는 해에 나타나는데 이제는 5~6년 주기로 발생한다.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일상화됐음을 산호초 관찰로 증명되고 있다는 것. 인근 국가와 때로는 전 지구적으로 나서 현장 관리를 잘해도 기후위기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도 밝혀냈다. 저자는 이 일련의 사건을 보고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인간이 만든 것 하나 없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다의 오아시스 산호초가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로 인해 단 수십 년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처참한 괴로움이다."(p.29)

오늘날 과학의 생물학 분야는 다윈의 진화론이 대세다. 1859년 11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꼭 10년 만인 1869년 11월 4일 영국에서 창간된 주간지 〈네이처〉지의 권두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고 저자는 인용한다. "자연! 우리는 그녀를 포위하고 포옹합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힘이 없고, 자연을 넘어서 뚫을 힘도 없습니다. 묻거나 경고하지 않은 채 자연은 우리를 빙글빙글 도는 춤에 끌어들이고는, 우리가 피곤하여 그녀의 팔에서 떨어질 때까지 우리를 돌립니다. 자연은 항상 새로운 형태를 형성합니다.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형태입니다. 모든 것은 새롭지만 또한 항상 오래된 것입니다."(p.176)

이 권두언의 주인공은 유명한 독일 시인 괴테다. 1832년에 죽은 괴테가 직접 자신의 글을 잡지에 실을 수는 없다.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책의 머리말을 쓰면서 괴테가 베수비오 화산과 폐허 도시 폼페이를 여행한 후 쓴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지다」를 한 페이지 반에 걸쳐서 길게 인용한 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가 이 잡지의 권두언에서 괴테의 시를 인용한 이유는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이후 불거진 과학적, 신학적, 도덕적 논쟁과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을 자처하며 논쟁에 뛰어들었고, 다윈은 헉슬리를 "나를 대신하여 복음, 즉 악마의 복음을 전하는 착하고 친절한 대리인"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저자가 이 잡지 〈네이처〉의 발전 과정과 현재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썼다. 책의 3부 〈지혜로워지기〉 중 「흑백논리 탈출하기」에서 〈네이처〉지 창간부터 오늘날까지 과학 발달에 큰 기여를 했음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잡지에 찰스 다윈의 글은 1869년부터 사망한 이듬해인 1883년까지 총 40편이 게재됐다. 대부분 유전, 꽃, 수정, 그리고 본능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네이처〉가 다윈을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다윈을 옹호하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다윈 옹호론자들의 모임인 X클럽 회원들은 〈네이처〉를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논쟁에 사용했지만, 다윈의 권위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중심은 언제나 과학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것이 〈네이처〉가 창간된 지 150년이 넘었지만 현실은 온갖 권위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우리의 가슴에서 〈네이처〉의 창간 정신인 신뢰가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남았다는 점을 비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괴테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자연을 신뢰합니다. 그녀는 나를 꾸짖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녀의 작품을 미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자 :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연세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 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으며, 안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일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연사박물관과 과학관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2019년 교양과학서를 저술 또는 번역하고, 자연사박물관과 과학관의 새로운 모델을 구현해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공생 멸종 진화』, 『바이블 사이언스』, 『달력과 권력』,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삼국지 사이언스』(공저), 『과학하고 앉아있네 1』(공저), 『해리포터 사이언스』(공저) 외 다수가 있고 옮긴 책으로 『인간 이력서』, 『매드 사이언스 북』, 『모두를 위한 물리학』 외 다수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저작권의 역사
데이비드 벨로스.알렉상드르 몬터규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는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부제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저작권의 역사」가 책의 내용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아는 바와 같이 저작권의 개념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저작권이란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가 가지는 재산적·인격적 권리의 총체를 의미한다.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 다만, 당해 조약 발효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보호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서양 문명에서 처음 제정된 저작권의 역사는 짧다. 19세기 후반 국제간의 문화교류·통신이 활발해짐에 따라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하여 저작권의 국제조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저작권에 대한 국제협약으로는 1886년에 체결된 〈만국저작권협약〉(베른조약)과 1952년에 체결된 〈국제저작권협약〉이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주로 가입하고 있는 〈만국저작권협약〉은 저작물이 저작되면 아무런 절차도 필요없이 곧 저작권을 인정하는 무방식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가입하고 있는 〈범미주조약〉(몬테비데오조약)은 납본·등록 등의 절차를 거쳐야만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식주의를 택하고 있다. 이 두가지 조약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세계저작권협약〉(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UCC)인데, 우리 나라가 1986년에 가입한 것이 이 조약이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이 조약에서는 방식주의의 보완을 위하여 ⓒ기호와 저작자명, 저작연도 표시만 하면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다. 1986년에 우리나라가 이 조약에 가입함으로써 〈저작권법〉이 같은해 12월 전면 개정되고, 198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비록, 능동적으로 이 조약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선진국의 대부분이 가입하여 있고, 또 국제적으로 해적판 출판으로 물의를 빚어온 시점에서 이 〈세계저작권협약〉의 가입을 계기로 적극적이고도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해간다면 우리 출판물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법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독자 개인적으로 생각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80년대 초반 일본의 주말 TV 드라마 가운데 하시다 스가코의 〈오싱〉이 큰 인기 프로그램으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시다 스가코는 우리 방송계로선 김수현 씨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오싱'은 여주인공 이름이며 표제어로 사용됐다. 이 드라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침울한 사회 분위기에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홋카이도를 무대로 하고 있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나간 한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다. 일본에서의 엄청난 인기 프로그램을 대본을 가져다 우리가 소설로 번안했다. 이를 출판사의 이름으로 소설 6부작으로 번안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는 이 소설을 계기로 당시 벌어들인 돈을 사옥을 마련해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저작권에 관한 어느 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출판사에서 소설로 번안된 책이 히트를 치자, 이를 비슷하게 베낀 수많은 '해적판'이 나타났으나 크게 재미를 본 것은 없다고 한다. 한 가지 예이지만 저작권법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독자가 아는 에피소드여서 적어 봤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저작권에 관련된 것이 이젠 차고 넘친다. 책장에 꽂힌 소설과 시, 스마트폰으로 보던 영상, 길에서 들리는 음악,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 여행 기념품으로 사온 캐릭터 인형···. 오늘날 우리는 무형의 콘텐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무형의 창작물은 돈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 이 모든 무형의 자산은 누구의 것일까? 이 수익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이 책은 저작권에 관한 역사, 법률, 대상, 과정 등 모든 것을 다룬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뒤로 책과 지식의 유통을 인쇄업자들이 독점하게 되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이들의 지식 독점을 막기 위해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저작물에 대한 권한을 저작권자에게 출간 후 28년 동안 보장했는데, 이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저작권의 탄생이었고, 이후 저작권 개념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출판된 글을 넘어서 소리와 인격까지 저작권의 대상이 되었고, 저작권의 보장 기간도 여러 이유로 점점 더 길어졌다. 이제 저작권은 복잡하고 강화된 수익 추구 수단이 되어 많은 기업들에게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저작권은 수많은 단체의 이권과 법정 싸움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확립되었다. 이 책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는 저작권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하며 저작권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준다.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저작권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저작권은 18세기 초반 런던에서 생겨났다. 책 저자와 그의 양수인(讓受人)들에게 책의 인쇄 및 판매에 대한 독점을 단기간 허용해주는 것이 최초의 형태였다. 그런 독점이 허용되는 대상은 그 후 몇 세기 동안 점점 많아졌고 독점 가능 햇수도 거듭 늘어났다. 그다음엔 저작권의 범위가 차차 넓어져 축약, 각색, 공연, 번역 등등의 2차적 사용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저항이 있었지만 살금살금 전진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저작권을 멈춰 세우려는 철학적·윤리적·현실적 논거가 먹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18)

우리나라 저작권 법 조항에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가 가지는 재산적·인격적 권리의 총체.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 다만, 당해 조약 발효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보호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에서 저작물의 종류에는 소설·시·논문·강연·연술(演述)·각본 등의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 및 무용·무언극 등의 연극저작물, 회화·서예·도안·조각·공예·응용미술작품 등의 미술저작물, 건축물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를 포함한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지도·도표·설계도·약도·모형 등의 도형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등을 말한다.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기타 방법으로 작성한 2차적 저작물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그리고 편집물로서 그 소재의 선택 또는 배열이 창작성이 있는 편집저작물도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그러나 법령,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고시(告示)·공고·훈령 등, 법원의 판결·결정·명령 및 심판이나 행정심판절차 등에 의한 의결·결정 등,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편집물 또는 번역물,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 공개한 법정·국회 또는 지방의회에서의 연술 등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규정도 마련돼 있으며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몸집을 불려나간 과정을 생생하게 추적한다. 영국의 인기 판화가 호가스는 판화 또한 인쇄물이라며 국회에 진성서를 올렸고, 글이 아닌 판화 또한 저작권의 보호 범위에 들어갔다. 이후 인쇄소에서 찍어내는 출판물인 포스터도 보호 범위에 들어갔으며, 음반, 음악, 캐릭터, 프로그램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발표 후 최장 28년이던 기간은 저작자의 가족들을 위해 사후 10년이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9세기 중반 푸시킨 아내의 탄원으로 보호 기간이 사후 50년으로 늘어났고, 이제는 많은 국가가 사후 70년 동안 저작권을 보호한다. 이제 10여 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저작권 보호를 위한 국제 공조인 베른 협약에 가입한 상태다.

이처럼 저작권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잡음들이 생겨났다. 여러 기업의 독점을 막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당초의 취지와 다르게 이제 강화된 저작권법은 강대국의 거대 기업들을 위한 칼이 되었다. 전 세계 라이선스 계약금의 4분의 1 이상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며 국가 간의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편 현재 발표되는 대부분의 저작물들은 창작자를 찾을 수 없는 ‘고아 저작물’이 될 운명에 처한다. 고아 저작물이란 저작자인 법인이 폐업하거나, 작가가 자식 없이 사망해 저작자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게 된 저작물들이다. 지난 세기에 발표된 저작물의 90퍼센트가 고아가 되었으며, 이 저작물들의 재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관련 논의가 멈추게 되기도 한다.

저자들의 안내에 따라 저작권의 역사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저작권을 둘러싼 다양한 분기점에서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면 저작권의 모습은 오늘날과는 달랐을 것이다. 저작권은 훨씬 강력하고 복잡해졌지만 여전히 모호한 면이 있다. 저작권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봄으로써 독자들은 저작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새로 나올 책에 영화 리뷰를 싣기를 원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캡처를 넣어도 될까? 삽입된 노래의 가사는? 저작권이 의식되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문의를 해야 하지? 저작자를 알아보고 문의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닿는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할 때면 당연하게 저작권을 의식한다. 그런데 이 생각은 언제부터 당연했을까?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에게 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재산이며, 타인의 창작물을 함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상식적으로 퍼져 있는 이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저작자에게는 창작물을 언제 어떻게 발표할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었고 타인이 멋대로 저작물을 발표해버려 시비가 붙기도 했지만, 발표된 저작물을 재배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용과 표절은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 때 윤리적 문제로 지탄받았을 뿐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업자들이 책을 찍어내게 된 뒤로 출판된 글에 대한 권리는 인쇄업자에게 주어졌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독점권을 가진 인쇄업자들은 유명 저자들의 저작물의 유통을 관리했으며 타 지역에서 다른 이들이 멋대로 같은 내용의 책을 찍어내는 것을 막았다. 18세기 영국은 이들의 독점을 제한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고, 이로 인해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저자에게 주어졌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현대적 의미의 저작권이 생겨난 것이란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이다. 이후 프랑스에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저작자에게 평생 보장하는 법이 만들어졌고, 점차 ‘독창성을 지닌 창작물은 저작자의 재산’이라는 개념은 전 세계로 퍼져갔다.

이 책은 4부 4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저작권의 탄생〉, 2부 〈독창적 표현이란 무엇인가?〉, 3부 〈저작권의 홍수〉, 4부 〈갈림길에 서다〉 등이다. 각 부는 44개의 장으로 나뉘어 별도의 제목으로 각각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책의 주제인 '저작권의 역사'로 수렴된다. 

저작권은 18세기 초반 런던에서 처음 시작된 개념이긴 하지만 그 이전의 출판 인쇄물은 어땠을까? 이 책에서 독자에게 가장 흥미를 끈 데다 서양 사람들이 자의적 해석으로 저작권이 개념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 있다. 5장 「저작권 이외의 책들」에서다. 이 책에서 공동 저자 데이비드 벨로스와 알렉상드르 몬터규(이하 저자)는 인쇄술은 중국의 4대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고 명시한다. 8세기 당나라 때 목판 인쇄술을 지칭하는 것이다. 필경사가 필사한 종이(역시 중국의 발명품)를 목판에 뒤집어 붙이고 글자를 양각으로 새겨넣는 기술이다. 목판 하나에 텍스트 한 장 분량이 담겼다. 낱말 개수는 종이와 글자 크기에 따라 달라졌다고 기술한다. 목판만 있으면 사본을 한 권이든 100권이든 1,000권이든 그 자리에서 당장 찍어낼 수 있었다. 여러 묶음으로, 수년 동안, 어떤 때는 수백 년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목판을 분해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새겨진 글자들을 재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각각의 목판에는 1회분의 재료와 기술이 녹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문학적·철학적·과학적 작품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 책을 인쇄하는 방식은 아주 달랐고,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의 문제가 더 까다로웠다고 말한다. 1458년 구덴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이기 때문이다. 이때 활자는 각각의 낱개로 분해되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인쇄술 덕분에 읽을거리에 드는 비용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구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인쇄업자는 어떻게 원고를 손에 넣고, 저자에게서 그것으로 책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 물건을 구매하거나, (고전 같은) 옛날 작품들 또는 성경처럼 저자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저작물에 대한 특권을 적법한 당국으로부터 (대개는 요금을 내고) 취득하면 된다. 둘째, 책이 인쇄되고 판매되기 시작하면, 그 구매자가 원고를 사거나 특권을 취득하지도 않고 직접 조판하여 똑같은 책을 찍어내는 것을 막을 방도가 있을까? 더 적은 착수비로 다시 인쇄한 책이 더 싼 값에 팔리면 초판의 시장성은 무너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책은 품절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복제는 금방 끝나기 때문에, 서양의 출판 사업은 강제적인 규제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구조였다.

AI가 ‘학습’이나 ‘훈련’을 위해 자주 접해야 하는 1차 자료들?이미지, 음향, 정보 데이터베이스?은 대부분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AI 도구 개발은 다시금 저작권 소송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고, AI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 산출물은 저작권 침해 혐의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다른 시대에 다른 매체를 상대로 만들어진 기존의 저작권 제도가 새로운 유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지, AI가 현 시스템의 방해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p.368)


저자 : 데이비드 벨로스(David Bellos)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프린스턴 대학교 프랑스어와 비교문학 교수이다. 여러 편의 전기를 집필해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영어로 옮겨 맨부커 국제 번역가상을 수상했다. 그가 집필한 번역학 입문서인 『번역의 일』은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저자 : 알렉상드르 몬터규(Alexandre Montagu)


변호사이자 지적 재산권법, 국제 상업 거래, 뉴미디어 상업 및 기업법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의 창립 파트너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하버드 로스쿨,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비교문학과에서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적 재산권: 새로운 시대의 돈과 권력』,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비롯한 많은 책과 기사를 집필했다.


역자 : 이영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시리즈, 캐런 M. 맥매너스의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리 중 하나가 다음이다』, 『두 사람의 비밀』, 리처드 H. 스미스의 『쌤통의 심리학』, 조지 오웰의 『신부의 딸』, 『엽란을 날려라 』, 『숨 쉴 곳을 찾아서』, 앤서니 에브니의 『별 이야기』,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 이비 우즈의 『사라진 서점』 등 다수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이터의 역사 -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권력 관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데이터에 관한 진실!
크리스 위긴스.매튜 L. 존스 지음, 노태복 옮김 / 씨마스21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 『데이터의 역사』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권력 관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데이터에 관한 진실」이란 긴 부제를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데이터는 단순한 수학적 통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업이나 정치적 사용을 목적으로 수집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 현상은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관계를 포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책은 저자 크리스 위긴스와 매튜 L. 존스가 함께 쓴 공동 논저다. 공동 저자 중 크리스 위긴스는 컬럼비아대학교 응용수학과 부교수로서 데이터의 역사에 관한 강의를 하며 〈뉴욕타임스〉의 데이터과학 부분 수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두 저자가 함께 시작한 「데이터: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강의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그 강의 내용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위긴스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어느 날의 일을 되살려내며 시작한다. 이날의 상황을 저자는 소설적 감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데이터, 그 진실과 권력의 역사」란 제목의 〈서문〉의 시작 부분이다. "2018년 4월 어느 날 아침, 봄 햇살이 컬럼비아대학교 셔머혼홀의 한 세미나실 동쪽 창문으로 비쳐 들던 그때, 나는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정량적 구체화, 즉 실증적 관찰 결과를 그에 대응하는 수치로 변환하는 마법과도 같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돌프 케틀레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불멸의 '정규곡선'을 칠판에 그렸다. 케틀레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신체 측정치에 관해 자신이 얻은 데이터를 사용하여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 상태를 알아내고자 했던 사람이다. 수학자들한테는 가우스곡선이라고 알려진 이 곡선은 IQ 검사의 유명한 '종 곡선'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데이터가 자연 현상의 실체를 밝혀내며 심지어 초월적인 실체까지도 밝혀낸다는 사실을 자연과학자들에게 알려준 곡선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흥분을 학생들도 함께 느꼈는지 보려고 몸을 돌려 그들의 눈을 응시했다. 한 학생이 내 시선과 마주치자 손을 들고서 물었다. '지금 페이스북에 관해 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p.8)

이날은 데이터가 악용되어 개인 사생활이 침해되고, 나쁜 목적에 활용됨으로써 사회 발전에 얼마만큼 악영향을 미칠지 미국 의회에서 밝혀지는 날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날 시대 문화를 뒤바꾸고 있는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기술 기업의 불손한 CRO가 미국 상원에 불려갔다. 〈뉴욕타임스〉의 설명처럼, 상원의원들은 모든 시민을 대표하여 어떻게 우리 대학교 학생들을 포함해 수백만 명의 개인 데이터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정과 개인 사생활에 관한 규범을 어기고 나쁜 목적에 악용되었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의회 증언이 끝날 무렵 학생들은 선출 공무원들이 디지털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과 학생들 자신이 알고리즘과 함께 자라면서 체득한 지식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실감했다.

저자는 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는 경쟁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무엇이 참인지 정의하기 위한 경쟁, 데이터를 이용해 권력을 키우기 위한 경쟁,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이용해 어둠에 빛을 비추고 무력한 존재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경쟁 등에 관한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서 나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아울러 과학사가이자 데이터과학자로서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살게 된 과정과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르게 사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경험에서 나왔다는 점을 역설한다.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용자와 개발자처럼 우리는 기술의 앞날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집단적으로 그런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이해하고자 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진실과 권력의 역사도 함께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전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은 지 어느덧 10년은 되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터져 나온 단어들도 몇 가지가 또렷이 떠오른다. 독자는 디지털 시대를 쫓아가기 바쁜 아날로그 세대기에 4차 산업혁명을 오히려 두렵게 느끼고 있지만 관련 학자들이나 업계는 굉장한 노력이 뒷받침되고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섰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Davos Forum)에서 포럼의 의장이었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이슈화됐다고 한다. 당시 슈밥 의장은 "이전의 1, 2, 3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 환경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은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동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에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①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②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③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④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의 구축이 기대되는 산업상의 변화를 일컫는다고 백과사전은 규정하고 있다. 

또 데이터(data)란 재료·자료·논거라는 뜻인 'datum'의 복수형이다. 넓은 의미에서 데이터는 의미 있는 정보를 가진 모든 값, 사람이나 자동 기기가 생성 또는 처리하는 형태로 표시된 것을 뜻한다. 어떠한 사실, 개념, 명령 또는 과학적인 실험이나 관측 결과로 얻은 수치나 정상적인 값 등 실체의 속성을 숫자, 문자, 기호 등으로 표현한 것이며 데이터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될 때 정보가 된다. 데이터 자체는 단순한 사실에 불과하지만, 일련의 처리과정에 따라 특정한 목적에 소용되는 정보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는 또 다른 정보를 위한 자료, 즉 데이터로 사용될 수 있다.

협의적 의미로는 주로 컴퓨터 용어로 정보를 작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뜻한다.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개별 값들을 읽고 처리하며 저장하는 등의 작업이 수행된다. 이 때, 데이터는 숫자, 영자 혹은 주기(period), 정부(+, -) 부호 등의 특수문자에 의해 구성되며 디지털의 기본 단위로서 0과 1의 이진법으로 표기된다고 풀이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서 빅데이터(big data)란 기존의 데이터 처리 응용 소프트웨어로는 수집, 저장, 검색, 분석, 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인 데이터를 말한다. PC와 인터넷, 스마트 기기의 보급,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인류 사회의 디지털 생활은 크게 변화했고, 곳곳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다. 얼마나 커야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처럼 아날로그 세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지만 이 정의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고 있다. 30년 전에는 1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빅데이터 문제가 될 수 있었으며 특수 목적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는 보편적이며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기기에 의해 쉽게 전송 처리 및 저장될 수 있다. IDC가 2018년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의 총규모가 2025년에 175제타바이트(ZB, 1021)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누군가 175제타바이트를 블루레이 디스크에 저장한다면 디스크를 지구에서 달까지 23번 갈 만큼 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빅데이터는 단순히 규모가 큰 특징만 갖는 것이 아니다. 흔히 빅데이터의 특징을 3V로 정의하고 있는데, 데이터의 크기(Volume), 데이터 종류의 다양성(Variety), 그리고 데이터의 입출력 속도(Velocity)이다. 여기서 크기는 이미 설명했듯이 빅데이터의 어마어마한 물리적 크기를 말한다. 다양성은 데이터의 형태를 의미한다. 기존의 기업 환경에서 사용되는 정형화된 데이터는 물론, 사진, 비디오, 소셜 미디어 데이터처럼 통일된 구조로 정리하기 어려운 비정형화된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빅데이터다. 속도는 데이터의 고도화된 실시간 처리를 뜻한다. 융복합 환경에서 디지털 데이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생산되므로 이를 실시간으로 저장, 유통, 수집, 분석 처리가 가능한 성능을 의미한다.

빅데이터의 성장에 대한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또한, 데이터의 품질이 낮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빅데이터에 비해 더 정확하고 양질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 데이터(smart data)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과 기계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는 미래 사회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데이터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빅데이터에서 스마트 데이터의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데이터'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데이터 중심의 알고리즘에 기반한 의사결정 시스템의 축약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는 어떻게 데이터가 창조되고 활용되었는지와 더불어 그런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의 삶, 아이디어, 사회, 군대 운영 및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어떻게 새로운 수학 및 계산 기법들이 경쟁적으로 개발되었는지를 탐구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터에는 권력이 뒤따라오는데, 가령 무엇이 참인지를 규정하는 권력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데이터 역사의 핵심에는 수학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국가, 기업 및 시민 간의 불안정한 개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그날 아침 우리는 단지 데이터만이 아니라 데이터가 중개하는 세계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데이터의 탄생 과정에 관한 수업을 개설하자는 생각은 2015년 11월에 시작되었다. 이후 2017년 1월 처음으로 수업을 시작하고서 금세 깨달은 것은 학생들은 데이터가 지금의 상태에 이른 과정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윤리와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적이고 활용 가능한 기틀을 찾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정치'란 '투표'와 같은 좁은 의미가 아니라 '권력의 역학과 관련된'이라는 넓은 의미의 단어다. 우리의 목표는 권력, 즉 기업 권력, 국가 권력 및 시민 권력이 재조정될 때 데이터가 갖는 지속적인 역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역사적 궤적을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지식을 지렛대 삼아 우리는 현재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결정할 수단과 도구까지 수중에 넣을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 1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데이터의 탄생〉, 2부 〈진화하는 데이터〉, 3부 〈데이터, 권력이 되다〉 등이다. 1부에는 1장 「권력이 된 데이터의 경고」, 2장 「숫자로 사회를 정의하다」, 3장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답」, 4장 「개인 차이의 과학」, 5장 「무엇을 위한 데이터인가?」가 함께 묶여 있고, 2부엔 6장 「전쟁과 데이터」, 7장 「인간 지능의 원리를 찾아서」, 8장 「빅데이터의 시대」, 9장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 10장 「진화하는 데이터과학」 등이 포함돼 있다. 마지막 3부에는 11장 「데이터를 둘러싼 윤리 전쟁」, 12장 「주의력 경제의 탄생」, 13장 「해결지상주의를 넘어선 해결책」 등이 있다.

1부에서는 국정 운영을 위한 데이터를 시작으로, 사회 개선을 위한 데이터 사용을 거쳐 '수리통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탄생과 함께 데이터가 수학의 세례를 받게 되는 과정을 살핀다.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암호해독을 위해 데이터를 군사적으로 적용한 데에서 시작된 디지털 연산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영국 불레츨리 파크와 미국의 벨연구소,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기업과 기술 분야에 데이터를 적용한 사례까지 추적한다. 기업 권력으로부터 국거 권력 그리고 '시민 권력'으로까지 옮겨가면서 디지털화된 개인벙보 기록이 우리가 프라이버시, 특히 1970년대에 지배적인 국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이해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또 '인공지능' 분야가 탄생하고 사그라들었다 시민, 소비자 및 적국에 대한 데이터가 점점 증가하며 '기계학습'이라는 형태로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화하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데이터의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및 미래와 연결하여 어떻게 데이터와 권력이 국가의 관심사에서 기업의 관심사로 옮겨갔는지를 논의한다. 이를 위해, 한 단일 기업이 데이터 중심으로 작동하는 기술의 도움으로 전 분야를 재빠르게 지배할 수 있게 해준 금융협정 및 기업 모형을 살펴본다. 기업 권력의 문제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잠재적 해결책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빚어졌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연구 분야에 대한 응용 윤리의 역사를 추적하여 데이터 중심의 알고리즘이 제품으로 이용되어 우리의 개인적·정치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응용 윤리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아울러 살핀다.


저자 : 크리스 위긴스

컬럼비아대학교 응용수학과 부교수. 컬럼비아칼리지에서 학사학위를,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데이터의 역사에 관한 강의를 하며 <뉴욕타임스>의 데이터과학 부분 수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데이터과학연구소 집행위원회의 창립회원을 맡고 있으며, 2010년에는 뉴욕시의 신생 기업과 학생을 연계해주는 비영리단체인 hackNY를 공동 설립했다. 2017년부터 매튜 존스와 함께 시작한 ‘데이터: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강의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그 강의 내용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 : 매튜 L. 존스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데이터과학 및 사이버 보안 분야의 전문가. 케임브리지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초기 근대 유럽의 정보기술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과학혁명 속의 좋은 삶(The Good Life in the Scientific Revolution)》(2006), 《물질에 대한 계산(Reckoning with Matter)》(2016)이 있다.


역자 : 노태복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환경과 생명운동 관련 시민 단체에서 해외교류 업무를 하던 중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에서 즐겁게 노니는 책들 그리고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생태학 개념어 사전』, 『생각하는 기계』, 『진화의 무지개』, 『19번째 아내』, 『우주, 진화하는 미술관』,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수학의 쓸모』,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음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디플롯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생각의 음조』는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더 주목받는 철학자 현병철의 강연을 번역 출판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분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강연과 책을 쓰는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자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책의 번역자 최지수는 저자 현병철에 대해 '첨예한 시선과 독창적 사유, 문학적 문체가 돋보이는' 철학자라고 소개한다. 현병철의 책은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독일과 한국은 물론,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역자는 왜 세계는 한병철에게 열광하는가를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자는 또 ‘진단과 명명의 철학자’ 한병철의 사유는 무엇으로부터 발화되는가. 그의 시선은 지금, 무엇을 직시하고 있는가? 등 많은 질문이 담겨 있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정을 이 강연 번역서에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생각의 음조』는 한병철의 가장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낸 유일한 책이라고도 역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한병철의 사유의 유래와 음조와 지향, 그리고 그가 펴낸 숱한 책들을 관통하는 사유의 궤적까지 담아냈다고 밝힌다. 피로사회와 불안사회 너머 희망의 정신을 향해, 지금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한병철의 목소리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처럼 흐른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과 스페인어권 최대 규모의 출판사 〈플라네타〉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강연과 클래식 연주를 함께 진행한 후 텍스트, 사진, 영상을 책의 형태로 펴내는 특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책은 ‘한병철 콘퍼런스 트릴로지’의 첫 책으로, 한병철의 가장 내밀한 고백과 사유의 정수를 담고 있다. 디플롯이 펴내는 한국어판은 한병철이 직접 집필한 독일어 원고를 저본으로 삼아 우리말로 옮긴 뒤, 다시 스페인어 출간본과 비교하며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었다고 한다. 이는 ‘한병철의 목소리’를 가장 온전하게 담아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역자는 설명을 덧댄다.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의 저서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독자는 철학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접해본 적도 별로 없다. 학교 졸업 후 철학 서적을 읽은 경험은 이번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다. 재택 근무를 하는 동안 남아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이것저것 읽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독자는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기껏 읽어봐야 베스트셀러, 특히 소설 작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독자에게는 책을 다시 손에 잡는 좋은 습관을 가져다 주었다. 읽다보니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것들이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읽기에 좋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설, 특히 판타지와 스릴러 소설 등이 대부분이었고, 정신 의학, 철학, 예술 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들 책들은 대부분 위안과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이었다. 이 책 『생각의 음조』는 독자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쉽지 않다. 독자의 개인적 무지에서 비롯되겠지만 문장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연 내용을 번역하다 보니 우리 작가가 쓴 글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독자들은 아는 사실이니 굳이 변명거리는 되지 않다. 철학적 사유나 철학과 다른 분야와의 접목으로 깊이를 더하는 책은 전문가들에게는 쉽게 통하겠지만 문외한인 독자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조금 읽다 말 책이지만 이젠 조금 더 어른스럽게 생각해야겠다는 다짐 후 읽은 책이니만큼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읽어볼 욕심이 생긴다.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같고, 공감되는 부분도 더 많아진다. 더욱이 저자는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다 독일로 유학을 간 철학자라니 더 관심이 갔다. 

음악과 철학의 하모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철학과 음악의 상호 동화 작용이라고 봐야 하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철학 자체도 어렵고 힘든 독자에게 이 책은 철학의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느낌을 받게 돼 어려움이 많이 가셨다. 또 이해 가능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니 한결 진의에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 책이다.

표제어 '생각의 음조'는 2023년 4월 23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샤론 프루샨스키가 한병철의 강연에 맞춰 바흐와 슈만의 곡을 연주했다고 〈기획자의 말〉이란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날 저자 한병철은 '생각의 음조'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사유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했다고 책의 기획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병철에게 음악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동시에, 그 안에 깊이 깃들어 있는 존재잉. 이 음악적 고백은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음조와 주제로, 즉 대지의 고양, 형이상학적 갈망, 진정한 생물학으로서의 신학으로 발화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프랑스 모음곡〉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 등 항상 그가 함께하는 음악을 경유하며 한병철 사유의 음조가 드러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펴낸 책들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곡, 즉 위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표라고 말한다. 이 때의 강연 제목이 그대로 이 책의 표제어가 됐다고 기획자는 알린다.

이에 앞서 같은해 4월 11일, 포르투에서 저자는 '에로스'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강연에서 한병철은 신체적, 인격적 접촉이 점점 사라져 타자가 소멸된 사회를 이야기하며 사랑의 의미를 물었다. 오늘날 우리가 실제 만지고 접촉하는 거의 모든 것은, 심지어 치과에서 통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틀 후 포르투갈 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50주년 기념 강연에서 한병철은 '희망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에 따르면 희망은 "우리를 우울과 지친 미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도약이자 열정"이며, 이 미덕의 초월성에 대해 성찰한다. 흐망은 '영혼의 차원'이 되어, 즉 마음과 정신의 이정표가 되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준다고 기획자는 전한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생각의 음조〉, 2부 〈에로스의 종말〉, 3부 〈희망의 정신〉 등이다. 1부에서 저자는 피아노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역자 최지수에 따르면 한병철이 두 대의 그랜드피아노를 즐겨 연주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병철의 피아노와의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그것을 날개 삼아 사유한다는 이야기는 '그랜드피아노'와 '날개'가 독일어로 같은 단어임을 생각할 때 일견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개'는 동시에 검은 광 나는 기도용 염주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를 날아오르게도, 수련하게도 만드는 모순은 그의 생각의 음조를 이룬다. 그는 자신의 저작들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에 빗대기도 하고, 〈사라방드〉, 〈시니의 사랑〉 등 다양한 곡과 연결 짓기도 하며 풀어낸다. 음악이라는 은유를 통해 그가 사유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우리는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 더 빠르게, 더 직관적으로 한병철의 '생각의 음조'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 한병철은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사유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두운 빛, 어두운 영롱함, 밝은 슬픔’과 같은 역설이 생각의 음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진실은 이러한 ‘모순적 아름다움’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책들이 너무 많이 반복한다고 불평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들이 반복이 아니라 변주곡에 가깝다고 말한다.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멜로디는 변하지 않으면서 숱한 변주를 통해 멜로디는 명징해지고 밀도가 높아지며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것처럼. 한병철은 프리드리히 횔덜린, 베르톨트 브레히트, 롤랑 바르트, 로자 룩셈부르크, 페터 한트케, 가브리엘 단눈치오 등의 텍스트를 경유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사유의 음조와 글쓰기의 이상을 풀어낸다.

2부에서는 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꽃에 둘러싸인 저자의 안락한 방, 그리고 먼 타국에서 만난 플로레스 호텔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꽃향기'를 찾아 맡으며 살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한다. 계속되는 강연에서, 접촉 없는 사회에 대한 그의 경종은 삭막한 '타자의 결핍'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타자 없이 '자기참조'에 갇힌 자기애적 성과 주체인 우리는 외로운 성공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 반면에 그가 말하는 '에로스'는 타자를 고유의 타자성 안에서 경험하게 하며 자기애적 지옥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우리는 타자를 내 눈 안의 거울을 통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에로스'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꽃과 연관된 감각과 열정은 진정한 사랑, 진정한 자유, 진정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3부는 앞서 언급한 피아노와 꽃을 다시 거론하며 축제와 희망의 개념으로까지 나아간다. 축제 없는 현대 사회, 노예이자 가축이 되어버린 신성이 부재한 지옥에서 우리는 '고양된 시간'과 '초월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축제 없는 시간은 곧 희망 없는 시간으로, 그러한 시간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기존의 것, 뒤의 것만을 향해 있다. 한병철이 말하는 '희망의 정신'은 무언가를 단순히 바라는 차원을 넘어, 바츨라프 하벨의 말처럼, '저 너머'의 궁극적인 새로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하이데거의 불안의 현상학과 함께 설명한다. 2부와 3부는 지금껏 한병철이 펼쳐왔던 사유의 정수를 다시 한번 변주하되 마침내 그가 도달한 희망의 정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타자의 추방』 『고통 없는 사회』 『정보의 지배』 『관조하는 삶』 『서사의 위기』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등 핵심 저작들을 비롯해 가장 최근에 출간한 『불안사회』(원서 제목은 『희망의 정신(Der Geist der Hoffnung)』)까지 아우르며 평생 천착해왔던 사유의 궤적을, 그리고 바로 지금 그를 사로잡고 있는 ‘희망의 정신’을 고도의 우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즐거움은 무엇보다, 예컨대 하이데거의 철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피아노를, 바흐의 〈샤콘느〉로 바이올린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 독일어를 처음 배웠다는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점이라고 역자 최지수는 강조한다. 그동안 조각조각 접해온 음악과 꽃에 대한 한병철의 사랑, 그리고 그의 철학이 변주곡처럼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듯하다. 역자는 이 책을 통해 한병철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것에 더해, 언어와 생각, 세상을 향해 가지고 있는 그만의 음조, 그리고 그의 아리아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인다.

“짐승은 주인에게서 채찍을 빼앗아서 자기가 주인이 되기 위해 다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카프카는 썼다고 한병철은 인용한다. “우리는 각자 고유해지고 싶어 하는 복제인간”으로, “가축의 떼” “절대적 노예”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는 끊임없는 자기 착취를 요구한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최적화하며 ‘나’의 자유의지로 자신을 착취한다. 성과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사회로 이어진다. 우울이 감염병처럼 창궐하고 불안과 혐오가 곳곳에서 촉발한다. 불안은 권력과 체제의 도구로 사용되며 희망의 씨앗을 질식시킨다. 저자 한병철은 바로 이 지점, “역사적 기로에서” 희망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희망의 정신을 건져 올린다.

비평가들은 비관주의자라고 비난하지만, 한병철은 자신을 희망의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희망하는 사람만이 사유할 수 있다. 희망의 사람은 낙관주의자들과는 달리 세상의 비극과 삶의 부정적 측면,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완전히 다른 삶의 형태를 열망하며 행동으로 옮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긍정성 숭배는 사회를 탈연대화하지만, 희망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화해와 연대로 이끈다. 긍정성의 주체는 ‘나’이지만 희망의 주체는 ‘우리’다.

“희망한다는 것은 ‘희망을 확장’하고 ‘희망의 불꽃을 퍼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망은 혁명의 누룩, 새로운 것의 발효제, 즉 비타 노바(vita nova)의 시작점입니다. 불안의 혁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불안은 모두를 복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사람은 지배자에게 복종합니다.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혁명의 잠재력이 자라납니다.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희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불안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살아남기의 삶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p.169).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주요 언론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서사의 위기』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저자는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짙은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의 정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희망에 관한 그간의 무지한 착각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고, 비로소 생기로운 삶을 되찾을 것이다.


역자 : 최지수


영어 및 독일어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국제회의통역전공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경제, 법, 제약,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서를 번역했다. 현재 출판번역 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영미서와 독일서 번역 및 리뷰에 매진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통번역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역서로는 『프렌드북 유출사건』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