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업자 서영남씨는 아이가 둘인 아줌마다.

첫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아침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물론 수업이 늦게 끝나 새벽에 집에 들어간 날은 일어나지 못해서 그녀의 남편이 아이들 챙겨서 학교 보내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 학교 마중과 남편 직장 출근을 거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돌아와서 한숨씩 자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그 토막잠도 즐기지 못하고 학교에 호출 당했다.

이유는 학교 청소. 학부모 몇 명을 불러서 학교 청소를 시키는 데 불려 나간 것이다.

학원에 출근 해보니, 여느 때면 강의실을 지키고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뒤, 피곤하고 늘어진 모습으로 그녀와 같이 청소에 동원된 학부모 몇 명이 같이 학원으로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조금 수다를 떨다가 갔다.

그리고 난 초등학교의 이런 처사에 의구심을 갖는다.

초등학교 학부모는, (저학년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학교 호출이 많다. 서씨 아줌마의 경우 급식과 도서관 사서 노릇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원 사회 선생님도 초등학교 학부모인데, 학교 급식이니 시범 수업이니 해서 학교에 불려가는 일이 잦아 보였다.

어떤 좋은 의도인지,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장을 가진 사람의 경우 이런 학교의 잦은 호출은 상당히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임에 분명해 보인다. 스승의 날같은 특정 기념일 근처에 이런 호출을 당하면 혹시라도 거기에 깔려 있을지도 모를 '복선'을 읽어내느라 쓸데없이 신경들을 쓰고 있는 모습도 본다.

암튼.. 유리창 청소와 교실 주변 청소를 하느라 1시간 반 정도의 노동에 지친 우리 서영남씨는 당연히 저녁 수업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엎드려 있다가, 머리가 아프다면 진통제 한 알 먹고 10시 40분 수업을 끝내고 부랴부랴 돌아갔다.

아내와 엄마와 직업인과 며느리-시아버지가 8남매 중 장남에 남편이 장손이다ㅜㅜ-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서영남씨의 하루하루는 옆에서 지켜보기 벅찰 때가 있다. 물론 부지런하고 자상한 남편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기 때문에 씩씩하게 그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것도 같지만, 그녀를 지켜보면서 가끔 내가 아내가 아니고 엄마가 아니고 며느리가 아님에 안도할 때가 있다.

항상 밝고 씩씩한 서영남씨. 그러면서도 자신을 사랑하기에 게으르지 않은 서영남씨.

학교가 그녀의 소박한 휴식을 빼앗아 가는 일이 하루빨리 없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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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0-12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내년에 예린이 초등학교 보내야되는데...
학교에서 일어나는 저 모든 노동이 사실상은 국가예산으로 지원되거나 학교 자체에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안하고 엄마들의 노동으로 해결하려 하니... 저건 정말 노동착취야. 중학교 1학년 담임하면 입학식하고 엄마들이 꼭 묻는 질문 있어. 교실에 뭐 필요한거 없나요? ㅎㅎ 처음엔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얼마나 어리둥절했는지.. 근데 알고보니 초등에서는 교실 비품같은 것도 학부모한테 떠넘기는 몰지각한 선생들이 있다고 하더만... 초등이 제일 안바뀌는 것 같아 나도 걱정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하던 일요일, 승준이, 자영이, 경훈이, 종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전샘에게 수업까지 미루게 하고 '급'하게 진행된 영화 관람이었지만 꽤 흡족했다.

영화는 '본 얼티네이텀'. 지나친 폭력 장면을 제외하면 줄거리의 짜임이 재밌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츠'인가에서 봤던,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한 민간인 감시는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고 살인 무기로 만든 뒤, 법을 벗어난 테러와 살인에 이용해 먹다가 폐기해버리는 미국 정보부와 지워진 자신의 기억과 양심을 되찾기 위한 주인공의 대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발전해 왔던 과학 기술이 누구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서는 얼마나 끔찍한 폭력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지를 또 한번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비봉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돼지 국밥을 싫어한다는 전샘에게, 그것을 선 보이기 위해 벼르던 행보였다. 사실 비봉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은 너무나 오래전이었다. 주인이 바뀌어 맛이 달라지지나 않았을까 걱정은 됐지만, 자리도, 내부도 그대로인 것 같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용감하게 들어가서 국밥 여섯 그릇을 시켜서 먹었다. 결과는 대만족~^^그러고 보니 비봉 주변으로도 많은 국밥집들이 새로 생겼더라. 아주 국밥집 거리로 자리를 잡을 모양이었다.  

고3들을 데리고, 이러면 안 된다는 자책감을 애써 누르고, '뭐 지들도 맨날 공부만 할 수는 없잖아~'라고 억지로 합리화 시켜가면서 저녁까지는 먹었는데, 이놈들... 노래방까지 가자는 거였다. 그건 아니라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애들 성화에 굴복하고...

니들 정말 시험 잘 쳐야 된디...ㅜㅜ  남은 기간 힘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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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났고 아이들의 시험이 거의 마무리 단계다.

추석 땐, 삼호랑 잠시 커피를 마셨다. 부대 앞 두 개의 비올라 2층에 '대안공간 숲'이라는

카페에서였는데 분위기가 괜찮았다. 주인장은, 서울말씨로. "어제 연주를 했더니 팔이 좀 아파서 서빙이 어설프다."고 하면서 아주 친절한 서빙을 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와 드럼이 세팅되어 있고, 실제 연주가 가능한 공간이 구석에 있었다. 부대 앞에서 약속이 생기면 늘 들어갈 만한 카페을 알지 못해 난감했는데, 정해놓고 갈 곳이 생겨 반가웠다.

삼호를 만나면 꼭 부대 안을 한바퀴 돌게 된다. 평소에 동선이 단조롭다니보니, 큰 맘 먹지 않으면 바깥 바람을 쐬며 산책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간만의 학교 산책은 참 좋다.

그런데, 1년에 한두 번 들리는 학교의 모습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이번엔.. 시계탑이 없어지고 또 무슨 공사를 하고 있더라. 체육관 쪽도 허물어지고 아직 높은 담장이 쳐진 채 공사를 하고 있던데, 이번엔 시계탑을 허물고 그 아래쪽으로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가 또 진행중이었던 거다.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엔 길이었던 곳이 막혀있기도 하고, 건물이 서 있던 곳에 잔디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기도 하다. 옛날 동아리들이 있었던 건물이 그새 더 많이 낡아서, 새로 들어선 번쩍거리는 첨단 건물들과는 따로 노는 것같은 인상을 풍긴다.

변함이 없는 건 어두워질 무렵의 가로등 불빛들과 공기 뿐인 거 같다. 벌써 20여년이 흘렀으니까, 전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건 터무니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 편 용도와 내부 구조를 알지 못하는 건물들이 주는 낯섦과 떠밀어냄이 조금 서운하긴 하다. 하지만.. 약간 묵직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학교 공기는 여전히 날 편안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그래서 그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걷는, 1년의 이 한두 번의 산책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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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0-0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계탑이 없어졌다고??? 이럴수가... 그럼 그 밑에서 술취해서 자던 내 추억은 어디로 갔을까? ㅠ.ㅠ

점순이 2007-10-07 01:45   좋아요 0 | URL
추억은 이제 우리들 기억 속에서만 영원해진 거지.. 암튼 부티나는 건물들이 구석구석으로 많이 들어찼더라~ 인문대 건물 아래에 있던 동아리 방을 다 터내고 원래 건물의 구조를 되살려 놓은 거는 맘에 들더라. 언제 학교 앞에서 만나게 되면 같이 한바퀴 돌아보자~^^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된 말에 '톨레랑스'가 있다. 나 역시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지나친 민족주의적 성향에 자괴감을 느끼며 프랑스적 관용에 대해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3 언어영역 문제를 풀다 보면 다양한 지문들을 접하게 되는데, 가끔은 사회과학 서적에서 이름 꽤나 익숙한 사람들의 글도 실려 반갑게 읽게 된다. 그리고 드뎌.. 박노자의 글까지 접하게 되었다. 글 내용도 나의 습자지만한 지식을 바로잡아 주는 내용이었던지라, 출제 의도나 문제 풀이와는 무관하게, 이 사람이 누구인지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침 튀겨가며 애들에게 소개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기억할 만한 글이라 여겨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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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적 똘레랑스와 같은 표현은 나에게 귀에 거슬린다. 17~18세기까지만 해도 세계의 주요 문명권 중 유럽에서 톨레랑스가 가장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러했다면 문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의 유럽이 보여 주는 모습도 톨레랑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도 흔히 사람들은 ‘톨레랑스’ 하면 유럽을 떠올리는데, 그런 생각은 시정되어야 한다.

계몽주의의 보편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톨레랑스가 사회적 가치로 받아들여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파시즘의 광기에 반발하는 측면도 있었고, 노동 계급의 꾸준한 투쟁의 성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1945~1973년에 전례 없던 경기 호황이 있었다는 것이다. 호황의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파트너’로 삼아 잉여 가치의 일부분을 나눠 줄 여유도 있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새 노동력이 필요했다. 현재 유럽 연합 총인구의 약 5.5%에 이르는 이슬람계 인구는 그 당시 알제리 출신들의 프랑스 이민, 모로코 출신들의 네델란드 이민, 터키 출신들의 독일 이민 등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 독일의 경우 해마다 난민 신청자의 85%에게 체류 허가를 내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난민에게 비교적으로 덜 잔혹한 노르웨이에서마저 80%의 신청자가 퇴짜를 맞는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신화처럼 들리는 이야기다. 그 때가 바로 ‘톨레랑스의 황금기’였다.

유럽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오일 쇼크에 빠져 성장률과 이윤율이 둔화되었고, 1980년대에 탈산업화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부터 제조업이 동유럽, 중국 등지로 이전되었다. 그에 따라 유럽 지배자들에게 미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동유럽 등지의 ‘문화․인종적으로 동질적’인 노동의 단기적 수입, 이용이 가능해졌다. 이때 실업의 화살은 이슬람 계통 이민자들에게 날아왔다. 유럽 현지 수준의 월급을 요구하고 노조에까지 가입해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아프리카, 중동 출신 이민 노동자들을 쓰느니, 차라리 우크라이나 출신 노동자를 6개월 간 들여와 한 달에 700~800달러만 주고 실컷 부려먹은 뒤에 보내 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유럽 자본가들의 계산이었다. 톨레랑스는 겉으로만 존재할 뿐 속으로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이용 가치를 상실해 게토(예전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거주 지역)에 몰려 사는 복지망에 의존해서 살게 된 이슬람 계통 빈민 이민자들에게 정치적 이용 가치가 붙어 버렸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지의 극우 정권들은 반이슬람 광풍을 이용해 집권했고, 이민자 청년들을 ‘쓰레기 인간’으로 명명해 구설수에 오른 프랑스 정치인도 같은 전략을 구사해 대통령직을 노리고 있다. 톨레랑스는 빈 명분이 되었고, ‘엥톨레랑스(불관용)’이야말로 정치판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지경이다.

경제적 침체기와 첨예해진 경쟁 시대에, 유럽 지배자들에게 톨레랑스는 허구이다. 그러나 만약 유럽 백인 노동 계급이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는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다면 톨레랑스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지난 여름에 영국 항공 기내식 납품업체 게이트 구르메가 주로 이민자 여성인 수백 명의 노동자를 전격적으로 정리 해고하자, 주로 백인 남성인 수화물 처리 노동자들이 주동이 되어 들고 일어나 런던 공항이 마비되어 악덕 기업주인 영국 항공사가 4천만 파운드 정도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요즘 특히 영국에서 이와 같은 연대 투쟁의 고무적인 사례들이 발생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 톨레랑스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박노자 (출전은 잘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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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2007-09-2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블로그에 이 글에 대해서 간략한 논평을 해두었음!
 

이영자의 반지 사건을 난 아마 평생 기억하게 될 거 같다.

티비에서 방송 복귀를 앞둔 이영자 집에 가서 이것저것 감정 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소라가 선물해준 반지가 가짜였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전소미가 대뜸 그랬다. "아무래도 저거 거짓말 같다. 방송 재밌게 할라고 억지로 짠 거 같더라."

난 "그럴리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사기를 어떻게 벌이노."

하지만 곧 밝혀진 바 그 모든 것은 짜고 친 고스톱이었음이 드러났고

난 바보가 됐다. "니는 와그래 순진하노~"

또 한번 세상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내겐 참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내 눈과 귀로 보여지고 들리는 세상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가.

뭐는 믿고 뭐는 믿으면 안 되는 것인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난 지극한, 말 그대로의 모범생이었다.

선생님들이 또는 주변 어른들이 나쁘다고 하면 나쁘다고 생각했고 맞다면 맞다고 믿었고,

하라는 건 하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살았다. 뭐 100%는 아니지만 89.9% 정도는...

근데 대학을 와 보니 그게 아니데...

스물에 처음으로 하지 말란 걸 하게 됐고 모든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맞서 싸웠다.

쉽지 않았지만 내 생각이란 걸 가지려고 했고 그 생각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 후로 사회 생활 10년...

지금 난 예전 범생이의 길로 반쯤은 되돌아 와 있는 느낌이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그들이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면 나랑은 참 달랐다는 생각-

비판하고 따지고 찾고 하는 등등은 게으르고 수동적인 나의 본성에 너무나 역행하는 노릇이다.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면면을 보자면 '반골'을 타고난 자들이다.

하지만 난 천성이 '순골'이다. 말 잘 듣고 시키는 것 잘 하는 게 주특기인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은 이런 날 가끔 갖고 놀다가 들킨다.

이 순골인 나도 열불이 터질 만큼 세상은 나를 기만하고 모욕을 줄 때가 있단 말이다.

그래서 피곤하다.

세상에 배신 당하지 않기 위해 오감을 곧추 세우고 살아야 하는 건

정말정말 피곤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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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순골이야... ㅎㅎ
제목 보고는 순골이 도대체 뭐야 했는데 재밌는 말이네. 찬바람 부는데 감기 조심하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2007-09-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