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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ㅣ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이제야 언니에게>는 도서출판
창비에서 '내일을 향한 질문, 젊은 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슬로건으로 나온 '소설Q'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입니다. 이 시리즈가 어떠한
곳으로 향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시리즈의 시작인 이 소설은, 읽는 동안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나고, 내가 어른이라서 미안하고, '애쓰는
인간'이 되길 노력하는 제야의 등 뒤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18살, 친구가 있고, 꿈이 있고, 동생
제니와 사촌인 승호와의 시간들이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소녀, 이제야.
한 권은 숙제를 위해, 한 권은 비밀
이야기를 적기 위해 일기를 쓰는 평범한 소녀에게 2008년의 7월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시간이었는데요, 평소 자신에게 친절하던
'사람 좋은' 당숙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었죠. 사건 당시 십 대의 치기 어린 마음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피해자 임에도
비난받아야 했던 제야. 어른들은 유지였던 당숙의 호소를 듣고 제야를 '행실이 나쁜 음탕한 년'으로 매도합니다.
승호와의 비밀 장소에서 치기 어린 마음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 것이, 너무 무서워서 반항하지 못해 상처 하나 없었던 것이, 사건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 폭행 피해자 치곤 너무 냉정한 대처라서 '믿을 수 없다'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 거죠. 엄마마저도 '엄마를 믿어'라며 제야의 인생을 위해
'입을 다물어야 한다'라고 압박합니다. 어른들은 당사자인 제야를 제쳐두고, 어른들끼리 합의를 하고, '제야의 미래를 위해'라며 사건을
덮어버립니다.
일어난 일은 종이가 아니니 찢어도 태워도 없어지지 않고 없던 일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없애버리고 싶다.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건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내게 모든 걸 떠밀고
나를 없애버리고 있다. 지금의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다 나를 위해서라고,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찢어버리고
싶은 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찢어지고 있다.(49쪽)
진짜 읽는내내
어찌나 분하고 억울하든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너무도 미안해서,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제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울 지경에 이르더군요. <이제야 언니에게>는 성폭행 이후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너무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어, 마치 제야가 제 주변에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특이하게 이
소설에서는 대화체에 따옴표(" ")를 사용하지 않고, 쉼표의 사용도 극도로 자제한 문체 때문인지, 오히려 제야가 더 가까이 다가오는 기분이
들어요. 문장과 대화체의 구분(따옴표)이 없어서 읽는 동안 걸리는 부분이
없거든요.
나는 이제 가만히 있어도
음흉한 애다. 헤픈 애고, 착각하는 애고, 꿍꿍이가 있고, 남자를 꼬드기는 애다. 거짓말하는 애고, 부풀리는 애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애다.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나는 그런
애다.(129쪽)
아 진짜... 우린 제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가슴에 묵직함이 느껴져 죄스러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 '이제야 언니에게... 이제야 말해봅니다. 이런
어른이라 미안해요. 나도 애쓰는 인간이 되기를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 견디는 것이 아닌 당신의 온전한 삶을 살아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