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아편 세창클래식 14
레몽 아롱 지음, 변광배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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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조금 만만하게 생각했다가 큰코다쳤다. 낯선 저자, 취약한 현대철학ㅡ그저 호기심에 혹해 겁도 없이 집어 들었는데 진심 아차 싶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호기롭게 읽은 경험으로 그에 대한 비판쯤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을 자책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선 좌파·우파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ㅡ읽다 보니 그동안 단순하게 알아온 의미가 별 소용이 없었다ㅡ시작했으니 이미 첫 단추부터 환장할 정도로 꼬인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두세 번 읽은 것도 모자라 결국 최후의 수단인 '손으로 읽기'를 시전했다. 그만큼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다 간신히 아주 희미한 얇은 가닥을 잡았다. 물론 레몽 아롱의 전작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이 한 권으로 저자를 판단하는 것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간신히 잡은 그 가닥을 놓치기 전에 단상이라도 담어두어야겠다. 


레몽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 서문에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하겠다고 말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나 또한 진정 알고 싶었던 것은 '경제 발전이 마르크스의 예언을 뒤엎은 나라인 프랑스에서 대체 어떤 이유로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이것은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향해 종종 하고 싶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레몽 아롱은 첫 번째 장에서 정치적 측면에서의 비판을 시작했으며, 결과는 '진정한 좌파는 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귀결된다. 


좌파는 반자본주의를 자처한다. 또한 좌파는 혼란스러운 종합 속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 트러스트라고 명명된 경제 권력의 집중화에 대한 적대감, 시장 기구에 대한 불신을 한데에 결합시키고 있다. 일방통행의 길에서 '왼편으로 붙어라keep left'라는 슬로건은 국유화와 통제를 통한 소득이 평등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산업체의 국유화'를 이야기한 부분이다. 트러스트trust는 일종의 결합 독점 기업을 말하는데, 일단 이 연합에 편입되면 기업의 개별 독립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통제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봉건 영주의 근대판 모습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좌파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트러스트를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체에 대한 통제를 '국가에 일임'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경제적 불편함을 제거하기는커녕 더 조장한다는 반론에 부딪힐 것인데, 이는 국유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자본가들로부터 노동자들을, 트러스트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관여하는 사회의 영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국가가 민주적으로 될 기회는 그만큼 더 줄어든다.


그리고 난 또 하나 묻고 싶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일반 시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나갈 때 좌파는 어디에 있고, 또 우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지켜질 권리를 막아 버린 그들을 우리는 무엇이라 지칭해야 하는가? (28p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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