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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서서 본 어느 풍경

어느 기억이 있고 이어진 긴 생각이 있었던 어떤 밤

잠시 멈춤, 그리고 짧은 낮 잠깐

 

그것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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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의 엘레지

 

- 비스와바  쉼로브르스카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붙들어 완전한 내 소유로 만들 순 없다.

 

가까스로 떠오른 불완전한 기억,

깊은 땅속에서 애써 끄집어낸,

몸통과 머리를 잘못 맞춘 오래된 여신의 조각상처럼.

 

사모코브에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른다.

 

파리의 정경은

루브르에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까지

가물가물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생마르탱의 가로수 길,

그곳의 계단은 갈수록 페이드 아웃.

 

내 기억 속에서 '다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작 다리 한 개와 반쯤 남은 또 다른 다리의 영상.

 

가여운 웁살라에는

무너진 대성당의 잔해.

 

소피아에는 얼굴 없이 몸통만 남은

가여운 무희가 있다.

 

떨어져 나온 얼굴에는 눈이 없고,

떨어져 나온 눈에는 동공이 없다.

결국 떨어져 나온 동공은 고양이의 몫.

 

새롭게 재건된 협곡 위에서

카프카스의 독수리가 날고 있다.

태양의 황금빛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고,

바위는 엉터리 모조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실은 잠시 동안 통째로 빌려온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을 붙들어 완전한 내 소유로 만들 순 없다

 

더 이상 재생도, 복원도 불가능하다.

미세한 섬유질이나 모래알,

물방울이 만들어낸 세밀한 풍경일수록 더한 법.

 

작별을 내포한 환영의 인사는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족하다.

 

과잉이건 결핍이건 간에

그저 고개 한번 까닥이면 그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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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8-28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곡 정말 정말 좋아하는 곡이랍니다.
단, 자주 안들으려고 하는 곡이기도 해요. 마음을 천근 만근 아래로 무너뜨려서요.
아껴서 듣는 곡을 지금 듣고 있습니다.
저 그림은 물론 Nussbaum님이 그리셨을텐데 그림 사이즈가 얼마나 될까요?
정말 멋집니다. 채색 안한것도 그대로 좋고, 파랑과 노랑이 들어간 위의 그림도 좋고요.
쉼보르스카 시 속에 등장하는 도시가 도대체 몇개인가 헤아려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도 다리가 많은가봐요. 저 이번에 다녀온 피츠버그도 다리의 도시라고 불린다던데요.

Nussbaum 2019-08-28 21:35   좋아요 0 | URL
엊그제, 어제 퇴근 후에 그림 그리면서 꽤 많은 음악을 들었는데 하나같이 이 그림의 느낌을 대변하는 음악이 없어서 놀랐습니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제가 이 밤풍경을 봤을 때랑 맞아 떨어졌는데 음악을 뭘로 할지 고민하다 결국 이 음악까지 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음. 이 그림은 도화지 8절에 그렸으니 대략 35x26 센티미터 정도 될까 합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길을 걷다 문득 발견한 풍경. 수채로 그리려다 펜화로 마무리했네요. 마무리하니 펜과 마카로 그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차분한 느낌이었고, 어딘가 어둡지만 조금은 밝은 그런 느낌이어서 말이지요. 코팅해서 어딘가 걸어두고 계속 보고 있는데 여전히 늘,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제가 본 풍경의 느낌과 꽤나 일치해서 다행이네요.

얼마 전 가죽으로 된, 꽤 비싼 여권지갑을 구매했습니다. hnine님 여행하신 밤 사진을 보면서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떠나게 될 어느 곳의 밤풍경을 기대해 봅니다.

그 때는 쉼보르스카와 hnine님의 댓글을 기억하면서 뭔가를 눈에 담겠지요.




그나저나 댓글쓰다 밖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참 시원합니다.
이제 가을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ㅎ

blanca 2019-08-29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ussbaum님 그림이 나날이 더 좋아지네요. 깊이도 넓이도 다요. 쉼보르스카 시와도 잘 어우러집니다. 가을이 오려고 하니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가 싶어 마음이 좀 그렇네요.

Nussbaum 2019-08-29 12: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

이렇게 마실다니는 것처럼 뵙네요. 이젠 밤도 낮도 바람도 햇빛도 다 가을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어서 굳이 가을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듭니다. 아마 조금 빨리 올 해 나머지가 지나겠지요.

요새 사진기를 하나 사서 그 사진을 보니 디테일도 색감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으네요. 그림은 매일 그리면 참 좋을텐데 그러질 못해서 아쉽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 나아졌다면 아마 디테일이 더 담긴 사진(또는 눈)이 있고 뭐라도 그려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며칠 어제 올린 사진하고, 그림, 시가 계속 생각나 무한 반복중입니다.

애써 서로 잘 어울린다고 합리화 중일지도 모르겠어요 ^^
 

 

*





꽤 오래 전 일이다.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리뷰를 서재에 올린 적이 있었다. "읽다가 지치면 다른 책과 함께 읽는다" 고 했는데 어떤 분이 프루스트의 소설은 다른 책과 함께 읽히기를 거부한다. 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때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나는 그 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방을 코르크로 막아 모든 소음을 차단한 채 썼다는 프루스트의 소설은 어떻게 보면 단독으로만 읽어야 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프루스트의 소설은 닫힌 텍스트가 아니다. 다른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시를 읽으면서 살아가며 어떤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른 이와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떠올리는 어떤 대상이다. 프루스트가 남긴 소설의 진정한 의미는 그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각자 자신의 기억의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풍부한 인간적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읽으면서 꽤, 자주 숨이 막혔다. 프루스트가 남긴 텍스트를 따라가다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아 잠시 책을 덮어야했다. 오래 전 이 소설을 읽으며 어렴풋했던 것이 좀 더 명료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소설이며 인간의 감각이 과연 얼마큼의 깊이와 넓이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료한 증명이라는 것.

 

여전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얘기하려는 두 단어. 시간과 공간.

 

 

 




* *




 

이 끔찍한 만연체를 읽다보면 처음에 그가 묘사하려고, 또는 서술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비연속적인 시간과 실재 차원을 넘어선 공간의 개념으로 기억을 재생하고 사건을 서술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에는 아주 긴 시간과 폭 넓은 공간이 존재한다. 그 불연속적인 시간과 두서없는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낯설지만 낯익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일상의 아주 작은 사건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감각들을 다시 불러와 삶의 새로운 기억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 속 기억의 단편들은 또 다른 의미가 되며 그 자체로 살아가게 된다.

 

안심. 요즘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 프루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20-30대 그를 만났던 내가 이 소설에서 그리 빗겨나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의 소설이 묘사하는 바는, 우리가 점유하며 살고 있는 실제공간의 묘사가 아니며 3차원이라는 공간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를 시간에 대한 것이라고.

 

그가 펼쳐놓은 공간은 어떤 실재하는 것에 대한 묘사의 촘촘한 공간보다는 그를 넘어서는 의미의 공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아닌 만남과 잠시의 이별. 작은 손짓이나, 눈의 깜빡임 같은 것이지만 사실 그것 자체보다는 그 작은 행동에 담긴 무수한 감정과 의미,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전혀 새로운 감각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한 구절을 읽어보자.

 

오늘날 어떤 작가가 자신과 구별되지 않아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그런 자기만의 몽상들로 채워진 작품을 두고 출판업자가 그 몽상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종이를 고르거나 지나치게 아름다운 활자를 택하는 걸 보고는 겁을 내듯이, 글을 쓰고 싶은 내 욕망이 아버지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친절을 베풀게 할 만큼 중요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더욱이 변하지 않을 내 취미와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줄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아버지는 두 가지 무서운 의혹을 내 마음속에 심어 넣었다. 첫 번째는 내 삶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게다가 뒤이어 올 삶도 지나온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의혹이었다. 두 번째는 사실을 말하자면 첫 번째 의혹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시간' 밖에 있지 않고 소설 속 인물처럼 시간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콩브레에서 덮개 달린 버드나무 의자 깊숙이에서 그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인물들이 그토록 날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하며, 우리가 걷는 땅도 움직이지 않는 듯 느끼며 그래서 편안히 살아간다. 삶의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려고 소설가는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미칠 듯이 가속화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 초 동안 십년이나 이십 년, 삼십 년을 뛰어넘게 한다. 페이지 첫머리에서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한 연인과 헤어졌지만, 다음 페이지 끝에 가면 양로원 안뜰에서 일상의 산책을 힘겹게 마치고 과거를 망각한 채 사람들이 건네는 말에 겨우 대답하는 여든 살 연인과 만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p.104



 

프루스트가 무수히 깔아놓은 감정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매우 촘촘하며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때로는 전혀 실제적이지 않아서. 그러나 그 숨막히는 감정의 묘사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우리는 세상 저편에서 다른 차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스토리가 있을 것이며 스토리라는 뼈대를 지탱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존재할 것으로 인식하며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에서 생겨나는 사건과 좀 더 치밀한 플롯이라는 장치도 기대하며 읽을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E. M. 포스터의 말을 빌려보면.




이야기를 시간의 연속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플롯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 관계를 강조하는 서술이다. 플롯은 지력과 기억력을 함께 요구한다. p.96

 

우리는 프루스트의 실제적인 음악 묘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문학에서 리듬을 사용하고 리듬이 조성해야 하는 효과와 본질적으로 흡사한 무엇, 즉 음악적인 소절을 사용했다는 것을 우리는 찬양해야 한다. p.181

 

짧은 소절은 마치 그것을 작곡한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없듯이 청중의 생활과도 관련이 없는 자신의 생활을 갖고 있다. <이것은 거의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하는 말은 그것의 힘이 프루스트의 작품을 내부에서부터 한데 얽어매는 데로의 지향이며 미를 이룩하고 독자들의 기억을 즐겁게 만드는 데로의 지향이라는 말이다. 때로는 이 짧은 소절이 처음에는 그것이 침울하게 시작하여 소나타를 지나 6중주곡에 흘러들도록 독자에게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이것이 독자에게 아무 의미도 주지 못하여 잊어버리게 될 때도 있는데 이것이 소절에서는 리듬의 역할인 것 같다. 이것이 패턴처럼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귀염성 있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우리에게 놀라움과 신선함과 희망을 채워 준다. 182

 

E. M. 포스터는 스토리, 인물, 플롯 환상, 예언, 리듬과 같은 소설의 다양한 요소를 서술하면서 프루스트의 텍스트에서 리듬에 주목했다. 내게는 어떤 뚜렷한 사건과 그로 인한 작가의 의지가 아니라 때로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환기에 이 작품의 뛰어남이 있다고 들린다.

 

잠시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대를 다시 한 번 간략히 둘러보자. 산업혁명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람들은 다양한 변화에서 혼란과 기대를 동시에 갖고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였다. 그가 살았던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를 대입해본다면 1871-1922 클로드 모네(1840-1920), 르누아르(1841-1919) 로 대표하는 인상주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색을 부정하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빛의 순간성을 집중탐구하려했던 화가들이다. 또한 이 시기는 로베르 드마시, 오스카 레일렌더, 피치 로빈슨 등의 사진가들이 일명 "회화주의 사진"을 추구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프랑스에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실내악과 교향곡을 장려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고 이 가운데 세자르 프랑크(1822-1890)가 순환형식(forme cyclique) - 공통의 주제적 소재를 통해서 각 악장을 사슬처럼 엮으면서 전개시켜가는 기법 으로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인상주의자들이 사진의 등장과 그간 자신들이 끊임없이 재현하려 했던 것들의 가치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점에 위기를 느끼고 빛의 집요한 탐구와 과학적 지적인 시도를 통해 회화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있었고 이는 어떤 물체는 어떤 색을 갖고 있다는 고유색의 개념을 부정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물체의 색을 담아내려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작업을 시도했으며, 그 시간과 공간의 순간성으로 인해 빠른 붓질를 할 수 밖에 없었으라. 스티글리츠가 등장하기 전, 회화주의 사진은 다양한 화면처리를 통해 우리가 그림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인물과 풍경 그리고 사물들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뚜렷한 선적 표현보다 부유하는 듯 동적 표현으로 섬세한 감각으로 눈을 깨우고 있는 프랑크, 생상스, 포레의 음악들이 문화를 주도하고 있던 시기였다.

 

 

   

      

 





프루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다양한 문화적 내용들을 살펴볼 때 그가 이 시대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회화나 음악과 함께 시대를 흐르고 있던 다양한 문화적 흐름들을 내면화 하고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느낀 다채로운 감각을 함께 느껴보라는 말을 전한다. 그 감각을 함께 느끼는 것 뿐 아니라 그동안 너무나 단편적으로 보았던 시간과 공간을 다시 살펴보라고 노래를 부르듯, 시를 읽듯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 * *

 




 

예전 이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렴풋하지만 프루스트의 소설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집요한 탐구이자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펼친 책에서 다시 한 번 그 유사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희생> 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대개 길고 느릿하다. 인물과 배경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하나의 은유로 이루어져 있는 듯 하고, 그 한 장면이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나리만 스카코브가 타르코프키의 영화에 대해 얘기한 부분을 잠시 살펴보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B612출판사, 2012)


 

<프롤로그> 그는 단일한 숏 안에서 '실제 시간'을 재현하기 위해 이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롱테이크란 영화의 일반적인 편집 속도보다 더 오랫동안 중단되지 않고 이어지는 화면으로, 타르코프스키의 경우 보통 슬로모션과 함께 구사한다. 롱테이크는 닫히기를 거부하며 계속 열린 상태로 남아 지속적인 현장감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내러티브를 잠시 제쳐 놓고 순수한 형태의 시간을 응시하도록 초대받는다. 말 그래도 '시간 속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p.9

 

 

<시간과 공간들> 종래의 영화에서 줄거리가 시-공간적 제어 장치 역할을 하는 반면,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느슨한 내러티브는 시간과 공간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대신 수많은 혼란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절대성에서 불안정한 조건부 상태로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미학적 전략을 설명할 때 후자를 전자의 선형적 논리와 대조한다. '나는 피사체의 논리가 아니라 생각, , 기억 등 주관적인 논리를 보여줄 수 있는 몽타주 원칙을 찾고 있다. 또 불필요하게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공간적 불연속과 단절은 사실 우리의 생각, , 기억의 특징이기도 하다. p.22

 

 

<거울의 기억> 문학작품의 참조에 대해서는 다소 진부한 감은 있어도 프루스트의 기념비적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거울>의 담론에 미친 영향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자서전을 주제, 자아, 저자와 같은 견고한 개념을 해체하는 텍스트 생산 행위로 본다는 점에서 이 프랑스 작가를 추종하는 듯하다. 나아가 감독은 자서전이 기존 장르의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는 창조적 행위라고 여긴다.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직고 약 10년 뒤에 <거울>의 시나리오를 고쳐 썼다는 사실은 '끝없는 전주곡'으로 남아야 할 자전적 작업의 특성을 재확인시킨다. p.122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다양한 상징, 은유로 현실의 장면을 건너 뛰며 절대적 시간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우리의 감각을 다양하게 자극하며 기억이 지니는 다양한 색채로 하나의 회화를 구성한다. 은유와 상상, 기억, 감각들. 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프루스트와 궤를 같이 한다.

 

 

 

 

* * * *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p.12

 

내가 앉았던 오렌지색 안락의자, 바로 옆에 놓여 있던 역겨운 냄새가 나는 재떨이, 카펫이 깔린 방, 골목에서 고함지르며 축구하는 아이들,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내 앞에 새로운 세계가 단어들로 문장들로 열렸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는 책장을 넘길수록 분명해져, 마치 특수 약품을 부을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 그림처럼 서서히 형태가 드러나고, 선 그림자, 사건, 등장인물 들이 명백해지곤 했습니다. 이 순간에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늦추고 사람, 사건, 사물들을 기억하고 상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나타나면 정말 속상하고 초조해졌습니다. (중략) 이윽고 힘들여 집중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내가 보고자 했던 진짜 커다란 풍경이, 마치 안개가 걷힌 후 커다란 대륙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내 앞에 펼쳐졌지요.

 

소설이 우리에게 삶의 평범한 세부 사항, 환상, 일상의 습관과 사물을 보여 줄수록, 우리는 호기심을 갖고 경탄에 사로잡혀 읽어 나가게 됩니다. 이것들이 배후에 숨어 있는 어떤 의미, 어떤 의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대하고 광활한 풍경 속 모든 세부적인 것들, 모든 잎사귀와 꽃이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 뒤에 의미가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삼차원적 허구이기에 우리 현대인에게, 다시 말해, 모든 인류에게 강력하게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설은 가장 표면에 있는 모습, 그러니까 우리 감각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사적인 경험과 지식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때로는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그리니까 중심부에, 삶의 본질에, 톨스토이가 '삶의 의미' 라고 했던 것에, 다다르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낙관하는 그것에 대한 지식, 직관, 실마리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본질과 관련된 가장 심오하고 가장 귀중한 지식에, 철학의 난해함이나 종교의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도,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평등하며 가장 민주적인 희망입니다.

 


프루스트가 열어놓은 감각적인 미로그가 열어 놓은 감각의 입구는 활짝 열려 있으며 입구의 방향 또한 다양하다단지 몸을 맡기고 그 무수한 갈래의 미로를 탐험하면 된다그 미로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공간이 그 전과 다름을 느끼게 된다이 미로에는 불편하고 어두움의 영역이 아닌숫자를 다 세기도 어려운 다채로운 색과 구체화할 수 없는 형태를 가진 어떤 감각의 장면들이 펼쳐져 있다그리고 그 감각의 장면들 끝에는 읽는 이 각자의 또 다른 의미의 시간과 공간이 이어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내 나름의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지금, 오르한 파묵이 어느 강연에서 했던 말을 떠오른다. 소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삶의 본질" "의미"에 가장 근접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라 확신한다.

 

 

 

 * * * * *


음악 하나,  낡은 사진 한 장 

시간, 공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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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7-01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는 동안에 아주 가끔씩은 특이한 경험을 할 때가 있더라구요. ‘눈‘으로는 소설 속의 주인공과 이야기와 시간과 공간과 분위기를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온갖 감각으로 소설 속의 풍경들이나 소리나 냄새까지도 열심히 그려내지만, 정작 또 다른 상상의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지난 날에 직접 경험했던 온갖 댜양한 공간과 시간과 햇살과 바람결과 냄새와 소리와 분위기 등이 아주 생생한 어떤 과거의 기억들‘을 부지런히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 올려 ‘소설 속의 이야기‘와 잠깐씩 대조해 보기도 하고, 일부러 겹쳐 보기도 하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저는 찰스 디킨스의 몇몇 작품들과 밀란 쿤데라의 여러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체험을 했던 듯한데(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작품에서도 자주 느꼈던 듯하고요.) Nussbaum 님이 쓰신 글을 읽어 보니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야말로 바로 그러한 체험을 극대화하도록 쓰여진 소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Nussbaum 님의 말씀대로, ‘프루스트가 열어놓은 감각적인 미로‘를 탐험하면서,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공간이 그 전과 다름을 느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그때 마주치게 될 ‘이루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색과 형태들‘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구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Nussbaum 2019-07-01 22:30   좋아요 1 | URL
방금 oren님께 다른 페이지에서 답글을 달고 왔는데, 또 이어서 달게 되었습니다. ^^

남겨주신 댓글의 첫 단락을 읽자마자 제가 프루스트를 읽으며 하려고 했던 말을 아주 적확히 꿰뚫고 있어 이렇게 답글을 다는 것 조차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꼼꼼히 읽어주셨다는 생각도 들고,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약간 쓸 데 없는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지극히 어려운 대상, 또는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무 선입견 없이 개인의 감각을 활짝 열어놓고 그가 펼쳐 놓은 텍스트를 차분히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매 순간 무수한 감각을 가진 ˝인간˝임을 지각하면서 말이지요. 어쩌면 이 말은 20대의 저 스스로의 자기고백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너비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제 삶의 장면들이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집니다. 언젠가 보게 될 수 있을, oren님만의 프루스트 또한 매우 궁금해지고요.

밀린 숙제를 하나 끝냈는데 어제는 괜찮다가 오늘은 약간 허리가 아프네요. 뭔가 쓰면서 약간 긴장을 했나 봅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

희선 2019-07-04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빨리 읽기보다 천천히 되새기면서 봐야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어본 적은 거의 없어요 본래 책을 빨리 못 보기도 하지만... 책을 보다보면 거기 나온 것뿐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것을 떠올리기도 하죠 모든 책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책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합니다 어딘가로 가면 자신한테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네요 책도 실제 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기도 하죠 그걸 다 머릿속에 그려내지는 못하지만...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대와 사람들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11월이 가기 전, 눈에 담았던.


가을 빛과 공기

 

사진 하나,  그리던 그림 몇 장








2018년 공기와 햇살을 간직한 나뭇잎














가을 나무, 어느 건물 입구










< 제주 >


















흐린 날, 섭지코지 / 성산일출봉 / 용머리 / 마라도











그리고 








감 두 개








 Masaaki Kishibe  <November>  -  Elisabeth Fröh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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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11-29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좋네요. 자꾸 보게 되네요. 딸아이도 보여주니 놀라네요.^^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요..

Nussbaum 2018-11-29 12:36   좋아요 1 | URL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시간의 변화, 세월의 흐름, 의미의 변화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림에 대해 부연설명을 조금 드리면,

어쩌면 매해가 될 지 모르겠는데, 나무가 잎을 떨어뜨릴 때가 되면 아마 주위 나뭇잎을 주워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는 그다지 원치 않은 여행이었는데, 비도 오고 계속 흐려서 좋은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갔을 땐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그저 그런 풍경들이네요. 이것도 나이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아쉬운 건 흐린 날씨여서 사진도 흐리게 나오고 그림도 영 탁하게 나오네요.

마지막으로 감은 시월에 나뭇가지채로 따 둔 것인데 얘네가 스스로 홍시가 되어서 저렇게 변했습니다. 신기하네요. 그림 그리는 건 뭔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어서 매일 꾸준히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리고 나니 뭔가 다시 생각할 거리를 주니 다행입니다.

늦가을 정취를 조금이나마 같이 공유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

2018-11-29 0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6 0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6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일터에서 조퇴했다.


곧 일이 폭풍처럼 닥칠, 기상청의 폭풍예보에 마음의 준비를 하듯 그런 낮.

어제 도착한 시집을 하나 읽고 어느 작가의 수필집을 읽었다. 

시집은 긴 삶에 관한 것이었고, 작가의 수필집은 1년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문득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책장을 뒤졌다. 

따로 노트를 모아 넣어둔 책장을 살펴보며 썼던 글을 읽었다. 밤, 낮,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며 썼던 기억을 떠올렸다. 



늘 서툰 마음 연습지.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 완성할지 모를 연습지에 남긴 기록들이 무심히 다시 나를 바라보는 느낌.



08년부터 지금까지 쓴 노트를 모두 꺼내보았다. 08년이면 알라딘 서재를 처음 시작한 때이니 그때부터 뭔가를 어딘가에 열심 적었구나 하는 생각에 어딘가 오랫동안 떠나 있어도 다시 알라딘 서재를 들르게 되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각각 노트에는 조금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그림 반, 글자 반이 들어있다. 열심히 그리고, 열심히 적었지만 여전히 서툰 것을 보면서 마음이 움츠러든다. 그러니 글과 그림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분들은 얼마나 내면과 대화를 잘 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려 노력을 했을까 하는 존경심도 든다. 


 


요새 새로운 분들이 글을 쓰면 추천을 누르고 간다. 언젠가는 알라딘 서재가 없어지겠지만 열심 글을 남기는 마음에, 그리고 다시 그 글자를 새겨 삶을 마주하는 과정에 대한 추천을 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알라딘 서재가 없어질 때까지 열심히 계셨으면 하는 바람에.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꽤, 꾸준히 엄청난 글을 쓰기 때문에 몇 줄만 보고도 늘 추천을 누를 수 있다. 그분들께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얼마간 서툰 마음 연습지에 뭔가를 적기가 어려웠는데 다시 적을 힘이 난다.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당분간 알라딘 서재에서 멀어질 것 같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다. 






참! 가끔 알라딘 서재를 지나다니는 분들께서 내 서재 이름인 Nussbaum을 궁금해하셔서 얘기하고 가야겠다. 또 언제 얘기할 기회가 될지 모르고, 이 자리가 아니면 말하기 어색할 테니. 


슈만의 가곡 "미르테의 꽃 Op.25 <Myrthen op.25>". 

이는 슈만이 클라라에게 결혼 선물로 헌정한 곡집이다.  그 가운데 세 번째 곡인 Nussbaum에서 따왔다.  


Nussbaum 은 호두나무를 뜻하는 것이고 가사는 이렇다. 





짙푸른 호두나무가 집 앞에 무성하게 서 있다. 


그 만발한 사랑스런 꽃은 미풍을 타고 둘씩 짝이 되어 속삭이고 입술을 맞댄다. 


그 꽃의 이야기는 처녀가 밤이고 낮이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것이고, 


속삭이는 것은 내년에 그녀가 새색시가 된다는 것. 


처녀는 그 소리를 듣고 동경하고 공상하며 미소를 띄우고 꿈길로 들어간다. 




음악세계 슈만 편에서 발췌          





슈만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미르테의 꽃을 작곡하여 클라라에게 주면서 온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서툴지만 그 어떤 마음에도 비견할 수 없는. 


나는 늘 서툰 마음 연습지이지만, 온 힘을 담아 호두나무처럼 단단히 적어보려는 마음으로 서재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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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4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18-07-1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어디 가세요? ㅠㅠ 저 돌아왔는데 ㅠㅠ

Nussbaum 2018-07-18 20:40   좋아요 0 | URL
멀리 가지 않습니다.

잠시 생각 좀 하다 오겠습니다. 곧 돌아옵니다 ^^

그나저나 수연님 !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

2018-07-17 0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8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8-11-29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새 자꾸 없어진다, 사라진다, 이런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돼요. 그러면 가슴이 선뜩해지지만 어쩌겠어? 이러네요. 커피 한 잔 하며 좋은 글 읽을 때는 영원히 살고 싶다, 뭐, 이런 생각도 들지만요. 아, 그리고 저는 왜 Nusbaum을 저는 막연히 ˝새시대˝라고 결론 내리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죠?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Nussbaum 2018-11-29 11:35   좋아요 1 | URL
저는 요새 소통과 태도같은 것들에 많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 때에 따라 오해하고 또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시간도 보내고 있구요.

그럴때마다 예전에 썼던 노트들이나 알라딘 서재의 글들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ㅎ 그리고 한편 생각하면서 여기 오래 남아 있는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기도 합니다. 뭔가 늘 주위에 감사를 전하고 싶은 걸 보면 저도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blanca님. 꾸준히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남아 계셔요 ^^

말씀하신 단어 새시대. 그것도 생각해보면 좋은 느낌이네요 ㅎ
 


요즘 나는 책을 사 모으기보다 버리고 있다. 


마지막 잠깐, 눈 인사를 뒤로 하고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마음은 무겁지만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이라는 생각에 아주 잠깐 뒤돌아선다. 그 뒤돌아섬이 나의 삶 속 장면들과의 이별은 아니라는 생각에 아파트 둘레를 걷는다. 걸으며 한 부분 책장을 넘기 듯 그 장면을 넘기다보면 이상하게도 익숙한 결말은 조금 달라져 있다. 


이사를 하고 뒤죽박죽 책장을 정리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몇 가지 꺼내보면. 

쉽게 사는 책은 쉽게 버려지는구나 

언젠가 떠나 보낼 날을 생각하며 읽자

읽기보다 더 쓰는 날을 만들자

등등  


그리고 책장을 정리하면서 몇 가지 원칙도 세웠다. 

책 앞에 물건을 놓지 말고 책 위에도 다른 물건을 놓지 말자

크게 세 분류로 묶자

남아 있는 책들은 다시 한 번 읽자

등등


그리하여 책장은 이런 모습이 되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이제는 볼 수 없는 인물이 담긴 가족사진 같다. 여기에는 10대 후반부터 내 삶을 지탱해온 책도 없고, 누군가와 함께 읽던 책도 없다. 한 때 열심히 리뷰를 하던 책도 없다. 빼고 빼서 버리고 버리다 보니 그냥 그림책, 음악사전, 시집만 남았다. 


요즘 감정의 바겐세일처럼 생각들을 헐값에 어딘가로 흘려보내니 마음이 편해서일까. 여기 책들은 활자보다는 마음에 끌려 남아 있다.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책들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동안 멀어졌던 책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많아 다행이다. 


요즘 나는 책을 버리고 있으니 당분간 정든 책들과 이별하는 날이 더 많을 것 같다. 그것은 한편 평안과 익숙함을 벗어나는 일이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 만큼의 마음의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 상쾌하기도 하다.





이사 후 책장앞에 잡다한 물건을 모두 치우니 말끔하다. 예전에 참 좋아했던 시집도 가지런하다. 

이상하게도 책장이 여유가 있다보니 다시 시를 읽을 여유가 생겼다.  

거실을 지나 상쾌하고 맑은 느낌의 커텐을 달아준 방에 들어가 조금은 우울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혼자 살짝 웃어보기도 하면서.





<새벽에 생각하다>

                                                

                                             천양희


어느 잡지의 한 페이지에

누군가의 시 한 편이 들어 있다

누구의 시인지도 모르고 읽는

누군가의 시 한 편


머리에 도둑 든 것처럼 뒤죽박죽 시들이

쓸모없는 모자를 쓴 시들이

위기 극복의 유전자도 없는 시들이 시들해지고

씁씁할 시에 맛 떨어질 때


누군가의 시 한 편

입맛 돋우는 봄나물 같아

웰빙시도 좀 먹어봐야지

희망버스 같은 시도 좀 타봐야지

이 무슨 발견인가!

무릎도 좀 쳐 봐야지


나는 그만

아무 생각 없는 듯 쓴 누군가의 시 한 편이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라네

눈물의 뼈 같은

침묵의 뿔 같은

누군가의 시 한 편



새벽에 책장에서 시집을 하나 꺼내 시를 읽었다.  


오늘같이 하루종일 비오는 날은 청소하기 좋은 날이다. 차분한 마음에 청소하고 말끔해진 사물을 찬찬히 바라보기 좋다. 

감정의 바겐세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빈 공간을 청소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 좋은 날이다.  


그리고 그런 날 읽었던 시 하나. 책장 빈 마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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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7-0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으는 건 좋은데 이사가면 그런 애물단지가 없죠.
안 산다, 안 산다해도 또 사지고...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평생 2백권의 책만 갖고 사셨다는데
저는 이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버리는 것도 자신없고...ㅠ

Nussbaum 2018-07-01 18:50   좋아요 0 | URL
네. 괜히 이사짐 나르는 분이 싫어하는 물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 살림에 비해 책을 많이 갖고 다녔는데, 이제는 더 갖고 다닐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국내책은 어찌 중고로 팔거나 할 수 있는데 외국책은 처분이 참 어렵네요. 그래서 늘어나는 외국책은 좀 고민입니다.

요즘은 물건도 많이 버리고 있는데 늘 집 둘러보며 버릴 궁리만 하고 있네요.

비오는 하루, 차분히 마감하셨음 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뵙는 분인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hnine 2018-07-01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분류라 함은 음악, 미술, 문학인가요?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그냥 있던대로 두면 되니까 힘들어 뭘 결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버린다는 결정을 내리려면 생각을 해야하고 판단을 해야하는, 일종의 두뇌활동이 필요하니까 사람들이 쉽게 못하는 것 같아요.
‘버린다‘는 말은 어딘지 부정적인 의미로 들려서 저도 사실 좋아하지 않아요. 계속 보존하기를 멈춘다? 아니면 정리한다? 이렇게 바꿔 생각하면 좀 덜 심난하려나요.
눈물의 뼈, 침묵의 뿔.
눈물이 뼈가 되고 침묵이 뿔이 될 정도라면 얼만큼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지...그 결과 탄생하는 시는 결국 심오하기보다 욓려 무심한 듯한 시가 되는거군요.

책장앞에 걸리적거리는거 놓지 않기로 하는 것은 저도 같습니다 ^^

Nussbaum 2018-07-01 23:29   좋아요 0 | URL
역시나 제가 쓰지 않은 말을 각주처럼 부연해 주시는 hnine님.

서재를 10년하다보니, 이렇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시는 분들이 생기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세 분류는 음악, 미술, 문학인데 늘 먼발치에서나 바라보고 있고 가까이 다가서기가 어렵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리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끔은 허무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hnine님도 mbti 중 intj 이신지요? 저는 그러한데(매우 각각 성향이 뚜렸한) 이 부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추억이 담긴 물건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 무언가 추억이 깊게 배인 물건들을 마구 버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어쩌면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쌓아둔 생각들을 표현하는 쪽으로 당분간 나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둔 책도 많고, 해야 할 것들이 잔뜩이어서 조금 안심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눈물의 뼈, 침묵의 뿔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고요.

부디 다시 10년 후가 되었을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여유있는 마음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시간이네요. 페이퍼를 남길 때는 몰랐는데 hnine 님께 답글 달면서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


라로 2018-07-02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깔끔하네요!!! 제 책장은 저렇게 변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님처럼 몇가지 규칙을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못하지만 저도 언젠가 이사를 하게 되면 님의 이 정리법을 기억하겠어요~~~.^^

Nussbaum 2018-07-02 17:48   좋아요 0 | URL
라로님. 안녕하세요.

엄청 오랜만입니다. 소식 늘 잘 받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새벽이려나요?

책장은 아직도 막 지저분해보여서 막 버려야 할 책들을 고르고 있습니다. ^^ 맨 아래칸에는 다양한 사물들을 넣어놓았는데 사진에는 이 칸이 보이지 않아서 좀 깔끔해 보일 수도 있어요.


언젠가 라로님의 멋진 책장사진을 볼 수 있기를. 여기서 꾹 참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7-02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장 사진을 한참 쳐다봤어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삼림욕을 하듯 다른 세상에서 숨쉬는 기분이예요.

저도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기 시작한지 좀 됐어요.
저는 이사때문은 아니고,
그동안 버리지 못하는 병을 앓았달까요.
물건에 감정이입을 해서,
뭔가를 버리면 제가 버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여전히 잘 버리지 못하기는 한데,
그래도 새로 구매하는 물건엔 신중해지더라구요.

그나저나 님의 이 페이퍼를 읽으니,
생각을 좀 단출하게 정리하고 글을 그렇게 써봐야겠다 싶습니다.
위로가 되는 페이퍼와 사진, 고맙습니다~(__)

Nussbaum 2018-07-02 18:17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서 양철님이 그렇다면 그런겁니다 ^^

제 서재에 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거의 알라딘 서재 경력 10년에 가까우신 분들이라 어쩌면 저보다 제 스타일을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위에 hnine님께 답글 달았지만 저는 intj 유형입니다. 뭔가를 참 못버리고 간직하고 쓰다듬고 꺼내보고 하는 스타일인데 이사오면서 참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아주 과감히. 그것 없이는 못살것 같았지만 그래도 버렸네요. 그렇게 한바탕하고 나서도 역시나 그리운 마음이 들지만, 또 한편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래서 물건들에서 멀어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 책장에서 보일지 모르지만, 소설책 가운데 네 명의 작가의 책들이 대부분 살아 남았습니다. 그들의 책이 거의 전부이긴 하지만요.

파스칼 키냐르, 도스토옙스키, 마르셀 프루스트, 김소진. 제 관점으로는 이들의 공통점은 조용하면서도 자기 얘기를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참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고 자기 얘기를 하는데, 실은 저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남들은 잘 모르는 특이한 것을 부풀려 말하거나 은근히 자신의 지적우월을 드러내는 글들. 우선 저부터 반성하고자 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작게 위로의 시간을 드렸다니. ^^

희선 2018-07-17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버리면 아쉽겠지만 가볍기도 하겠습니다 저는 정리를 잘 못해서 정리 잘하는 사람 보면 부럽습니다 정리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지만... 아무것도 없는 방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책장에 여유가 생겨 시를 만나는 여유가 생겼다니, 좋은 일이네요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더 잘 해야 하는데...


희선

Nussbaum 2018-07-18 20:42   좋아요 0 | URL
책을 또 샀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책을 그만큼 버릴 거니까요.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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