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미술 철학사 1~3 세트 - 전3권 미술 철학사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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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국내에 나온 많은 미술관련 도서를 읽어야 했고, 또 그것을 정리해서 머리에 넣어야 할 때가 있었다. 미술사와 미학관련 책이 참 어려웠다. 미술사는 책을 쓴 사람에 따라 시대 구별 및 작가의 평가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고 미학은 그 아래에 깔린 철학적 흐름을 알아야 했고, 설명하는 개념들의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흔히 서양미술사 라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포스트모던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양식과 그 양식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것들이 나오게 된 간단한 사회적 배경을 서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독자는 때론 익숙한 작품, 가끔 그렇지 않은 작품들을 권위 있는, 혹은 권위 있다고 믿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대로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이런 서술을 읽을 때면, 나는 어떤 유명한 미술관에 들어가 저자의 설명을 듣는 수동적 관람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아마도 이 책들은 서양미술사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 받는 책일 것이다. 


과연 이 책들이 포스트모던의 경향을 얼마나 잘 설명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각각 나름의 장점을 지닌 서양미술사 책들. 


단순히 서양미술사의 개괄과 흐름을 명료하게 나열해주는 점에서 보면 

잰슨, 이은기, 곰브리치 순으로 추천하고 싶다. 


짧지만 잰슨과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의 비교.

https://blog.aladin.co.kr/728246198/6414821




언젠가 뒤샹이 그러했듯 현대에 이르러 아서 단토나 조지 딕키가 제기한 무엇이 예술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강한 물음이 그간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예술작품과 예술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고, 그 아름다운 작품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도 그만큼의 다양하기에 이 문제는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미의 개별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을 지니고 예술품을 본다면 그것에 대한 서술 또한 의구심을 갖게 할 것이다.

 

다양한 매체의 혼합과 다양한 사랑의 혼합으로 인해 뚜렷한 양식의 구별이 어려워진 현대미술은 어쩌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이런 다양한 미적 개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최근의 미술사를 설명하고 또 그것에 관련된 책들은 이 예술품(편의상 회화, 건축, 조각의 범주에 한정하도록 하자)에 대한 형식적 설명보다는 이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 작가가 제작하고자 했던 근원적 물음, 작품의 철학적 가치 등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예술품을 바라보는 독자는 작품을 보고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자신만의 예술적 기준을 보다 날카롭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얘기했듯 날카롭게 다듬는다는 것은 시대와 양식의 보다 명료한 구별, 그 예술품을 둘러싼 시대의 영향관계, 타 문화와의 교류, 사람들의 미적 인식의 변화, 그 시대를 흔든 중요한 사회적 사건 등을 다각적으로 알아본다는 것 등이 되겠는데 미학과 철학, 미술품에 대한 책들은 이런 것이 있겠다. 




           




  


            



처음에 제시한 미학강의는 조금 오래된(2003) 책이고, 다양한 개념들을 정립하는 데는 좋지만 챕터별로 분리된 느낌.

예술과 사상은 보다 쉽고 개괄적이다. 미학산책은 미학자들의 주요 주장에 대해 명료한 설명이 좋다.


움베르트 에코의 책은 미와 추라는 대립적 개념에 대해서 엄청난 도판을 통해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설리반의 책은 다양한 동, 서의 교류를 통해 미술품과 그 양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을 수 있다. 

마지막 책은 미술비평의 흐름과 다양한 미술비평론에 대한 명쾌한 개괄을 얻을 수 있다.



제롬 스톨니츠는 예술 작품을 맥락적인상적의도주의적규칙적작품내재적으로 다양하게 비평할 수 있다고 하였다자신이 그 어떤 방법으로 예술품을 보고자 하는지또는 보아 왔는지 점검을 통해 그 예술품에 훨씬 더 깊게 따져보고 싶다면 단순히 미술사적 흐름에 치중한 책보다는 그것의 다양한 분석이 들어 있는 미학 또는 비평이 담긴 책을 접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만일 위의 책을 모두 읽을 시간이 없다면 이 책 하나를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이란 아름다워야 하는가?", "다른 가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미학적 개념을 차분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 서문만 읽어도 서양미술사의 흐름에 대해 간략히 파악이 될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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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 주인공이 먼저 등장해야 하지만 상황상 늦게 등장하였다.





이 거대한 책을 지금 리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6개월에 걸쳐 간 두 번 읽고 있는데 애꿎은 포스트잍만 늘어가고,

다시 읽어도 또 다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계속 미루기만 하다 영원히 마음 속에만 묻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여기 꺼냈다.


  


이 책은 미술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로 설명해야 한다. (<철학을 지참한 미술> 만이 양식의 무의미한 표류와 표현의 자기기만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07년에 출간한 "미술을 철학한다" 에서부터 잉태하였다. 고 저자는 말한다.) 미술을 철학의 흐름으로 다시 풀어보자는 선언으로 무수한 미술품과 미술가들을 분해하여 재정립하는 책이다. 


각 미술가들이 서로 주고 받는 영향관계와 그 시대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흐름과 철학적 의미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미술품과 미술가들의 허상을 벗겨내고 진정한 모습을 찾아준다. 미술작품의 내재적 형식의 분석 뿐만 아니라 사회 맥락적, 작가의 개인주의적 측면까지도 면밀히 분석하여 매우 입체적인 작품 분석을 시도한다. 


이런 심도 있는 분석과 끈질긴 관찰을 통해 어쩌면 그 작품을 제작한 미술가들도 당시에는 몰랐을 다양한 철학적 개념의 틀로 작가와 작품을 구별지음에 있어 무리가 없고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며 길고 복잡한 글이지만 그 다양한 의미연합체들이 보다 쉽게 다가온다. 


언젠가 서양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 만든 도표가 있다. 하나는 미술가들에 대한 것이며, 또 하나는 양식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이 도표를 꺼내 보았는데 조금 불투명 하던 것들이 매우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위의 사진들은 시대별 작가의 영향관계/    아래는 양식들의 영향관계









나는 어찌어찌하여 대학이후 서양미술사 수업을 세 번이나 듣게 되었다. 셋 다 모두 시대 순으로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고, 그 특징들을 설명하는 수업이었는데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 이후 어떤 시험을 위해 다시 서양미술사 책들을 끼고 공부를 했는데 그간 얼마나 내가 단편적인 방식으로 서양미술사를 접했는지 알게 되었고 위의 도표에서 정리한 것처럼 수직적 수평적으로 연결해 봐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기획부터 출판까지 10년이라는 시간. 그 긴 시간을 짐작하게 하는 글의 수준과 양이다. 사적 흐름과 미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개념을 모두 연결해 그 거대한 시간을 수직적 수평적으로 종횡무진 한다는 엄청나고 무모한 시도였지만 부족한 독자가 보기에는 꽤나 성공적이다. 


다만 이 높은 완성도와 깊이 있는 텍스트와는 별개로, 읽으며 내 스스로 끊임없이 명심하며 읽은 것이지만 반드시 이 책의 리뷰에 덧붙여 얘기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예술가의 내적 충동에 의한 결과물은 꼭,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렇게 나와야만 하는 성질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예술은 때로는 사회를 한참이나 앞서며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개인의 선호도 혹은 다른 미술사 책과 다른, 미술가에 대한 필자의 평가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인데 읽는 내내 나의 선호 혹은 평가와 다른 작가들이 나온다.  

매우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미술사적 흐름을 미학적, 철학적으로 심도 있게 살펴보고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기에 이 거대한 책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점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서양미술사를 다채롭게 조망하기에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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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12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박 알차다..... 이 글을 말뚝으로 삼아 미술책 읽어나가면 뭐가 되도 될 것 같은 이 든든함..... 미술책이 막 그냥 막 막 읽고 싶어지네요^ㅁ^

Nussbaum 2019-08-12 13:22   좋아요 0 | URL
syo님 안녕하세요. 댓글로는 처음 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리뷰를 써야지 하다가 어제 밤에 썼네요. 부족하지만 숙제를 결국 하고 제출한 느낌이어서 마음이 좀 상쾌합니니다.

늘 열정적으로 올려주시는 페이퍼 잘 보고 있습니다 :)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

무식쟁이 2019-08-12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학과 미술이랑 움베르토에코의 미의 역사, 추의 역사까지 보관함에 넣게되네요. 당장 사보지는 못하겠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보이면 모르고 지나치지는 않을것같아요. 누스바움님덕에 인연의 책이 좀더 늘어납니다. ^^

Nussbaum 2019-08-12 14:38   좋아요 0 | URL

무식쟁이님 안녕하세요.

보관함에 넣어놓으셨다니 제가 여기에 장점만 주르륵주르륵 늘어 놓은 것 같네요. 보시면 또 제가 얘기한 다른 인상을 받으실지 모르겠어요. 말씀하신대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보이면 한 번 살펴보심 좋을 것 같습니다.

인연의 책이 늘어난다니 참 이거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알라딘에 오래 둥지를 틀고 계신 분들은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희선 2019-08-13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보는 책만 봅니다 가끔 다른 것도 봐야 할 텐데 하지만 바로 보고 싶은 걸 보는군요 미술사 미학 잘 모릅니다 전에 한번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봤지만 끝까지 못 봤습니다 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끝까지 한번은 봤다면 좋았을걸... 미술사와 미학이 미술 철학사와도 이어질 듯하네요 제가 이 책을 읽었다면 한번 죽 훑어보기만 했을 듯합니다 두번이나 보다니...


희선

Nussbaum 2019-08-13 02:52   좋아요 1 | URL
이 시간에 서재에 나타나시다니, 아직 잠에 들지 않으셨군요.

음, 위에 본문에 쓰다 만 느낌이 있는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다른 서양미술사 책에 비해 그렇게나 많이 팔려야 하는지 좀 의문스럽긴 합니다. 시대와 화가, 작품에 대해 확실하고 명쾌하게 들리긴 하나, 여전히 제게는 작가의 주장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발 <예경> 출판사는 책 좀 다시 만들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찍어내려고 하는지. 평을 보면 번역이 좋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음. 말씀하신대로 아마 이 페이퍼는 미술사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미학, 철학, 사회학 등 많은 분야를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제 나름대로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가을을 준비하고 있을 희선님,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수입] 바흐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180g 3LP] Nathan Milstein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1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작곡, 나탄 밀스타인 (Nathan Mil / DG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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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바이올린을 단선율적인 악기로 보지 않고 화성적대위법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악기로 보았다화성적인 시각으로 얘기하자면 샤콘느 등과 같이 쌓여 있는 화음으로 진행하는 것도 있지만 펼침화음으로 진행되는 것도 있다

 

..

 

바흐의 자필악보에서는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 어떤 의미로는 비슷한 형태로이면서 아주 음악적으로 엄격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타에 이어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파르티타를 놓음으로써 대비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

 

소나타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3곡 모두 이탈리아 교회소나타와 동일한 전형적인 4악장의 악장배치를 하고 있지만완전하게 이탈리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가장 특징적인 것은 제2악장을 독일적 분위기인 푸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악장에 선생하는 제1악장은 독일의 건반음악에서 푸가 앞에 존재하는 이른바 전주곡과 비슷하다그리고 그 뒤에 오는 제3악장과 제4악장은 제2악장이 폴리포닉적인 것에 비해서 호모포닉적인 서법을 사용하고 있다

 

파르티타는 제3번 작품이 류트를 위한 모음곡으로 편곡된 것처럼 원래 모음곡이다모음곡은 주로 춤곡을 나열한 것이지만 바흐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거의 기본적인 모습이 갖추어졌다그것은 '아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와 같은 악장배열이다그러나바흐는 3곡에서 이 패턴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지 않았다

 

 

- 음악세계 <바흐>, 155페이지 발췌

 

 

 

수많은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의 이름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야사 하이패츠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일 것이다. 더 선호하는 연주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 둘을 빼 놓기는 쉽지 않겠다. 이 두 사람이 표현하는 성향은 일견 반대적이기도 해서 오랜 동안 누가 더 우위에 있느냐 하는 논쟁도 많았다.

 

 

만일 세 명으로 범위로 넓혀야 한다면 나는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러시아, 1904-1992)을 넣고 싶다처음 밀스타인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 앨범(DG, 1973, ADD)  CD로 들었을 때 프레이즈의 유연성과 소리의 균형성곡마다 보이는 뚜렷한 흐름이 눈앞에 마치 생생하게 펼쳐졌다거의 70세의 녹음이니 수많은 생각과 연주의 깊이가 담긴 음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주로 EMI DG에서 녹음을 남겼는데 확실한 것은 그가 엄청난 기교의 소유자였지만브람스나 베토벤 등의 협주곡에서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를 듣다가 밀스타인의 연주를 들으면 꽤나 심심하게 들리듯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비해 뭔가 폭발하는 패시지를 보인다거나 넘치는 잔향을 들려주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듣고 확 끌리는 점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밀스타인의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느껴보기에는 이 바흐의 음반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며많은 클래식 음반 감상자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이 거대한 산과도 같은 곡에서 당당하면서도 거침없다그렇게 당당하게 나가면서도 높고 낮은 소리에서 하나를 버리는 일이 없는 연주로, 바이올린 한 대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힘차다.

 

 

내가 온갖 찬사를 다 갖다 붙인 것 같아잠시 펭귄가이드(2008)의 소개를 살펴보자. 참고로 그라모폰가이드(2011) 에서는 왜인지 이 연주를 꼽지 않았는데 (그라모폰에는 레이첼 포저, 기돈 크래머, 빅토리아 뮬로바,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이작 펄만, 알리나 이브라기모바, 이사벨 파우스트 를 선정) 만일 추천 연주 분석을 위해 밀스타인이 본문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매우 괘씸한 생각마저 든다.

 

 

Milstein's set from the mid-1970's remains among the most satisfying of all versions. Every phrase is beautifully shaped, there is highly developed feeling for line, and these performances have an aristocratic poise and a classical finesse which are very satisfying.

 

 

펭귄가이드에서는 품위 있는 표현과 안정된 연주를 장점으로 내세웠다이와 함께 또 추천한 연주자로는 펄만그뤼미오메뉴힌이다 헨델헨릭 셰링율리아 피셔 등이 있다밀스타인의 연주와 유사한 쪽은 아무래도 그뤼미오헨릭 셰링 일텐데 개인적으로는 그뤼미오는 보다 섬세하고 셰링쪽은 보다 유연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선이 굵은 연주이기에 다른 연주자와도 겹치는 부분도 있겟다. 어쨌든 위에 언급한 연주자의 음반들에서는 누구의 연주가 더 뛰어난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으며 그들의 연주의 미묘한 차이점과 특징을 구별하는 것이 훨씬 갚진 일이다.

 

 

각각 곡의 자세한 설명 - 가령 소나타 1번이 모두 4악장으로 되어 있고 3악장은 시칠리아풍이며, 2악장은 푸가의 구성을 엿볼 수 있다 등등.. 의 설명과 그것의 따른 해석은 바흐의 음악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깊이 있는 해석을 먼저 살펴본 후의 일이다물론 알고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음악이 주는 다양한 감정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잠시 LP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보자.

 

나는 이 음반을 대략 15년 전에 CD로 들었다참 많이 들었던 음반으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 연주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이번에 LP박스가 고맙게 나와서 조심스레 듣고 있는데 문득 CD LP의 특성에 대해그리고 어떻게 들리는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게 되었다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물리적인 차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재생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수많은 논쟁을 뒤로하고 내가 확실히 느낀 것은 LP 소리가 조금 더 자연스럽다는 점이다만일 CD LP 소리의 특성에 대해 내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해본 적이 있는지 반문하겠다악보에는 음표가 있고 쉼표가 있다듣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감동을 주려면 음표는 하나하나 모두 각자의 개성을 살리되꽉찬 소리로 들려줘야 하고쉼표는 음표의 여운을 잘 숨겨주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그런데 제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모든 음표의 소리를 동일하게 낼 수는 없으며모든 쉼표를 동일하게 쉴 수는 없다같은 악보를 연주하더라도 각각 그 음표를 미묘하게 다르게 인식하고 다른 개성을 부여한다그날의 분위기연주자의 컨디션곡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 등을 통해 악보에는 적혀 있지 않은 그 무엇을 함께 전해준다음표와 쉼표로 이루어진 곡을 연주했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의미의 연합체들이런 것이 음악의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견해로 같은 장비로 재생했을 때 LP CD의 음질에 못미친다는 생각을 한다음질이란 것은 균등하게 뭔가를 재생한다는 뜻이다판에 소리골을 내어서 재생시키는 LP는 비록 CD에 비해 균등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약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음표와 쉼표로 만드는 의미의 연합체를 조금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CD를 들었을 때보다 LP를 들었을 때 덜 피곤함을 느낀다는 어느 실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도 든다.

 


 


 





 

 

턴테이블의 플라스틱 덮개를 열고 조심스럽게 LP박스를 열어 음반을 꺼낸다음반을 회전판위에 올려놓고 턴테이블 전원을 켠 후톤암을 조심스럽게 놓는다완전 수동인 턴테이블이어서 음악을 듣고 나면 다시 톤암을 원래 위치에 놓아야 한다. LP를 뒤집거나 바꾸려면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유투브에 검색만해도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번거롭게 이렇게 음악을 듣고 있다니.  때론 한심스럽다. 


그렇지만 그 동작이 끝나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반이 돌아가고 잠시 후 스피커가 울리면 15년 전에 들었던 밀스타인의 바흐와는 같지만 조금은 다른 음표와 쉼표가 나온다. 음표와 쉼표를 더 풍부하게인간적으로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바흐를 듣고 있으면서밀스타인과 더 가까이 만나고, 풍부한 감정과 감각을 지닌 인간이라는 자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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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19-08-03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축 바늘이 LP에 닿는 순간의 그 먼지 부서지는 소리가 이렇게 그리워질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지요..

Nussbaum 2019-08-04 00:28   좋아요 0 | URL
오늘 라디오를 듣는데, 오프닝 멘트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늘 우리가 가진 것에 비해 놀랄만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 더 좋은 것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략 이랬는데, 제게 이말은 과거가 좋았다는 어떤 향수의 의미라 아니라 우리가 생각을 하고 감각이 있는 인간이라는 걸 잊을 때마다 다시 그 인간다운 것으로 돌아간다는 말로 들리더군요.

이 음반 리뷰를 하다가 문득,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나는 무엇을 얻는가 하는 것도. 그러다보니 이 음반 리뷰가 이렇게 흐르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 회전판위에 뭔가 물건을 올려 놓고 동글동글 돌아가는 걸 마냥 재밌어 하던,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는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훌쩍 먹었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무식쟁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