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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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세 번 얼굴이 바뀌는 달이다. 


동틀 무렵 연하게 흩어지는 빛으로 말갛고 동그란 얼굴을 드러낸 아이, 

해가 뾰족하게 날을 세울 때문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어느 청년의 성급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풋풋함.

건물의 그림자가 긴 사선이 될 무렵에는 어느 평상에 앉아 지나간 시간을 꺼내보는 노인의 눈동자를 품고 있다. 


밝기에 더 깊은 어둠이 느껴지는 달, 곧 있을 맹렬함을 준비하는 유월은 아직 쌀쌀함이 몸의 반을 유지하고 있는 오월에 비해 활동하기에 좋은 달이다. 꽃의 화려한 색보다 짙은 푸름의 나뭇잎을 닮은,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랜 벗을 만나기에도 좋고 한때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물건을 곱게 쓰다 잠시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던 것 같은 가까운 친구와의 늦은 저녁도 좋겠다. 해 질 녘 혼자 부풀어 오르는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동네 한 바퀴, 장마가 일찍 오지 않는다면 편하고 가벼운 옷을 준비하여 하루 이틀쯤 한적한 곳을 다녀와도 좋을 날이다. 


혼자라면 세 번 얼굴이 바뀌는 달, 유월에 그림책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가 눈과 손에 바람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나만의 새벽별, 손끝하늘, 무지개저편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은 또 어떨지. 동틀 무렵의 어느 이름 모를 댕기 머리, 해가 뾰족하게 날을 세울 때의 약간 시끄러운 소리와 발자국, 건물의 그림자가 짙어질 무렵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공책과 연필 한 자루, 열두 색 색연필, 붓 하나와 작은 고체 수채화물감.  그리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는 않다. 단지 천천히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눈에 잘 담아 손으로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대한 많이 담고, 그려보고, 망쳐도 보자. "쉽게 그리는.." 시리즈에서나 볼법한 그 도식화하고 정형화한 그림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만져보고, 마음에 담아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보자.



       



        



언젠가 나의 노트에 남겨 두었던 스케치 몇 장.


* * *


"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이 책은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으로 입시생들의 그림이나 기법적 설명에 그치지 않는 보다 내면적인 그림 그리기의 방법을 보여준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처음의 책에서 그러했듯 여기에서도 친근한 설명, 왜 그려야 하는지, 사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기에 관한 내용도 좋다. 





작가는 자신의 결과물과 그것을 담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여행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좀 더 쉽고 다양하게 끄적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스케치 기법만 알려주고는 싶지 않다. 나의 여행 철학과 경험담이 자칫 주관적일 수 있으나 그것은 그저 한 사람의 느낌이자 생각일 뿐이니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그보다는 이 책을 통해, 여행은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며, 여행 스케치 역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p.18



그리고 앞으로 그림을 그려 나갈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그림 실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손재주-기술이 현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관찰법이 달라지면 손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림 실력이 좋아지는 진짜 비결은 '관찰' 이다. 지금부터 스치는 모든 물체를 외워서 그리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p.39 








이 책에 담긴 스케치 몇 장.


* * *


이 밖에도 책 안에 작가가 남겨놓은 그림들이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앞서 써 놓은 말이라 생각한다. 자신만의 이야기, 사람과 사물의 관찰, 그리고 그것을 마음과 손으로 풀어내는 것. 무작정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그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눈과 마음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색깔 있게 표현하는 일. 아마도 자신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보다 책의 저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칠월의 맹렬함을 앞둔, 표정이 다채로운, 가벼운 발걸음을 걷기에 좋은 유월.

낯선 마음 한 움큼, 짙은 푸름 한 다발, 설레는 바람 한 줄기를 맞으러 밖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지도 못한 무엇이 눈과 손에 담겨올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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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2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눈'으로 바라보면 '남 흉내내는 그림'을 그리고,
'내 눈'으로 바라보면 '내 이야기 담은 그림'을 그려요..

Nussbaum 2013-06-23 12:43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기록하고 그리는 연습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락방 2013-06-2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어디에서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대로 그려라, 생각한 대로 그리지 말고. 뭐 이런 말을 들었었어요. 읽은거겠죠.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게 아니라 생각한 대로 그리려고 해서 그렇다고요. 저는 그림을 아주 못그리는 편이라 미술 시간이 싫기만했던 1人인데, 그 말을 듣고 '보.이.는.대.로.' 그려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제 그림 실력이 나아지지는 않더라고요. 전 여전히 '생각한대로' 그리고 있는걸까요? 역시 그림은 나랑 맞지 않는군, 흥. 이러고 있는데 여기서 또 비슷한 말을 듣네요.

"그림 실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손재주-기술이 현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관찰법이 달라지면 손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림 실력이 좋아지는 진짜 비결은 '관찰' 이다. 지금부터 스치는 모든 물체를 외워서 그리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음치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귀가 안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들은 자신에게 들리는 대로 부르고 있는거라고요. 그들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 거라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요. 그러니 음치는 '귀'가 안좋은거라고 말이지요.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는 '관찰'을 잘 못하기 때문에 그림을 못그리는 걸까요? 그러고보면 저는 그림을 기억하지도, 외우지도 못하는 사람이니 맞는 것도 같아요. 그렇다면 '관찰'이란건, 어떻게 하는걸까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제게는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Nussbaum(어떻게 읽어요, 이거?)님의 스케치들을 보다가 한숨이 나와서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Nussbaum 2013-06-29 09:3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안녕하세요 :)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그리라는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한대로 그리면 자꾸 아는 것을 그리게 되고, 이것이 객관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왜곡한 모습을 그리게 되어서 그런 듯 싶네요. 비례, 형태, 선의 꺾임, 명암차이 등을 잘 관찰해서 그것을 토대로 그려야 하는데 생각한 대로 그리면 앞에 얘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대략 이상한 모습이 되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본 대로 그리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락방님이 올려주신 무수한 페이퍼에 등장하는 책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배경 들을 읽다보면 다락방님은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고 계시는 듯 한데,, 아마도 중, 고등학교 시간에 너무 사실적인 그림만 강요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신 것 같습니다. 대부분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 미대를 나온 분들의 작품들 & 미대 준비하는 학생들의 작품들이 많다보니, 자연적으로 사실적이고 그 기준에 맞는 표현력을 요구하겠지요.

제가 많이 알지 못하다보니 '관찰' 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림 실력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비례나 명암 또는 선의 강약을 자꾸 찾아보고 물체의 외곽선을 보려고, 노력하고 색을 채워 넣어보고, 그것을 종이에 옮겨보는 것" 과 같은 시도를 많이 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림 실력은 늘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얘기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처음에는 누군가(학원)의 도움을 좀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그 상황에서 수정을 받는 과정에서 보다 명료하고 빠르게 기초를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종종 받곤 하는데, 다락방님께 뭔가 조언해 드릴 처지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 Nussbaum 은 누스바움 이라고 읽습니다. 이미 아실것도 같은데 호두나무 라는 뜻이고, 슈만 가곡집 노래에서 따 온 것입니다 :) 즐거운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