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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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들어 올렸을 때, 빛을 보고 놀라 달아나는 벌레 때처럼 이곳에는 온갖 말들이 바글거린다. 오직 신만이 전부 이해하고 기뻐할 만한 문법들과 시제 그리고 멜로디가 .... 여성과 남성형, 복수와 단수, 수동과 능동, 반말과 높임말 등 각 나라의 고유한 문법이 오선지 역할을 하면, 사람디 낼 수 있는 많은 소리들, 어금닛소리, 헛소리, 입시울소리, 잇소리, 반잇소리와 콧소리, 목소리 등이 음표가 되어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 거기에 억양이나 손동작, 표정 같은 것이 가미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다채로운 화음 안에는 도무지 지루한 걸 싫어하는 신의 성격과 남과 똑같은 걸 못 견뎌하는 인간의 의지가 담겨있다.

 

(24-25p)

 

 

 

길을 걷다 보면 꼭 어딘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멍하니 허공을 보며 이상한 단어를 끊임없이 내뱉는 사람, 전철 이 곳 저 곳을 막 왔다갔다 하면서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사람들. 그들을 보는 시선은 어딘가 각이 져 있거나 기울어져 있다. 어쩌면 푸코의 지적처럼 우리가, 사회와 학교, 병원이 그들을 그렇게 정의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철을 타면 다들 고개를 떨구고 조그만, 네모진 화면을 열심히 눌러댄다. 그것이 어떤 대답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말하는 법을 점점 잊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TV, 신문.. 짧고 간결하게, 몇 개의 그야말로 "충격" 스럽지 않는 것들만 순간적으로 나열하는 단어들을 보면서 점점 우리의 단어가 그렇게 하나로 모아지다 결국 그 규정된 무엇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들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짓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이상한 말을 끊임없이 되뇌거나, 마치 누가 듣고 있다는 듯 아주 작은 소리로 허공에 무엇을 속삭이는 그 단어들에 귀 기울이게 된다. 무언가 신비한 조합의 단어와 문장을 마주칠 때는 마치 댐에 수십년 동안 갇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쏟아져 거대한 몸집을 하고 나를 덮치는 느낌이다.  

 

 

 

조셉 코수스  <하나와 세 개의 의자> , 1965

 

 

조셉 코수스의 <하나와 세 개의 의자> 라는 작품에는 실제 의자, 사진의 의자, 그리고 글로 적힌 의자가 각자 존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의자인가? 이는 플라톤 이래 "진정한 의미의 실재" 를 찾아 끊임없이 나섰던 수많은 이론과 사상, 미술적 개념에 대한 도전이며 그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정의해온 개념에 대한 회의에 대한 시도이다.

 

미술사에서 입체파가 매우 지적인 시도를 한 이후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추상을 거쳐 그린버그가 자기비판과 자기규정의 형식성으로 규정하여 만들어진 모더니즘의 거대한 덩어리는 당연하게도 그 순수함과 미니멀리즘이라는 사회와 분리된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것을 낳았으며 한편 그 반대얼굴의 쌍둥이격인 "의도" 라는 개념 또한 낳게 된다.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관념에 의해 규정한 것을 위한 틀에 무한히 개성을 함몰하였으되 다시 또 그 틀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짧고 간결하며, 눈만 뜨면 "충격"과 "경악" 을 주는 내용과 인과관계 없는 화면과 글의 사각에 갖혀버려 결국 그 틀을 깨고 나온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는 꿈틀대는 단어들과 같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두 다리와 귀동냥으로 배운 '중앙어' 에 의지해 고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며 달리다, 걷다,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뒤꿈치가 갈라지고 발톱에서 피가나도 개의치 않았다. 중앙에서는 그를 '마지막 화자' 라 명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획책일지 몰랐다. 

 

...

 

그래도 그는 또 걸었다. 그리고 앞으로 고향사람들을 만나 밤새 이야기할 거리를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해졌을 땐 어릴 적 자신이 먹고 자란, 아주 달고 시원하며 과즙이 가득 들어 있는 열매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거의 몇 달 만에, 갖은 고생을 한 그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 협곡을 지나 산등성이를 넘고, 무성한 덤불을 헤쳐 마침내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 그곳에는 먼지바람이 이는 황량한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 잘려,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처참하게 박혀 있었다.

 

(28-29p)

 

 

 

어디선가 출처없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적절한 양념을 뿌려 가공한 단어와 글, 말이 점점 더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하나의 단어를 익히고, 저마다 그것으로 무수한 많은 문장을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 주던 시대는 이미 먼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은 시간을 두고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장 컨베이어벨트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소근소근 작고, 나긋나긋 밝고, 살랑살랑 귀를 간지르던 그런 감정을 담은 글자들은 구 시대적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그것을 만들어내던 애틋한 생각과, 행동, 나아가 사람의 관계 또한 촌스러운 것이 되어 부끄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소중하다고 여긴 많은 것들이 버려야 할 것들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길에 굴러다니는 돌, 풀, 하늘, 바람, 이름 모를 벌레들, 밤새 몰래 내리는 비... 저마다 다른 무엇이듯, 각자의 생각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그 생각이 만들어 낸 단어, 문장, 글. 나는 너무나 쉽고 빠르게 그것을 누군가 정해 놓은 단어, 생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비정상이되, 어딘가에서 울리는 태곳적 글과 웅얼거림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 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르는 그 단어를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였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었다. 내 몸은 점점 불어났다. 내 이름은 길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그게 어떤 세계에서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33p)

 

 

작가는 빠르게 변해가고, 그렇지만 점점 더 삶과 멀어지는 글자들을 보면서 누군가 곰살맞게 해주는 얘기를 떠올리면서 이 작품을 써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태곳적에서 터져나오는 약간 정신나간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이 시대에서 그것을 바로 보고, 그것에 대한 고민를 꺼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짧은 단편의 행간에서 무수한 물음표을 보았다. 아주 먼 곳의 기억, 말과 글. 그리고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의. 그리고 각자의 삶의. 그리고 나는 그 곳 어딘가에 서 있는가 하는 고민의 흔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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