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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과 이월 내가 내린 뿌리는 몇 가닥이었을까?

언제나 그 땅을 밟고 지나가는 시간에는 알지 못하는 것. 땅을 들어 지나간 시간을 헤아린다.

사이를 걷는다. 

때로는 얇았을, 때로는 그보다는 조금 굵었을.

 

 

 

 

 

 

 

 

 

 

   시큼한 냄새가 옅어지면서 배후 세력처럼 떠오르는, 지린 듯 달고 쌉싸래한 냄새.... 마비의 기운을 풍기는 그 어떤 수상스러운...... 아무리 못해도 내 육체보다는 거대하리라, 짐작한다. 내 둔감한 후각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어떤 냄새만으로.

 

  그러나 뿌리가 얼마나 거대한지, 어떠한 형상을 그리고 있는지, 어떤 빛깔인지,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나는 모른다. 원뿌리에서 지파처럼 갈라져 나온 곁뿌리가 몇 가닥이나 되는지, 곁뿌리들이 저마다 어떤 방향을 향해 흘러갔는지.

 

  나는 뿌리를 보지 못했다.    

 

김숨 <뿌리 이야기> p.17-18

 

 

 

 

때로는 시대를 건너는 눈길이, 때로는 불편을 감수하는 손길이 그늘진 응달을 따뜻하게 데워줄 때가 있다. 시대를 거스르는 소설가, 불편을 기꺼이 즐기는 예술가. 이들은 그들의 시간을 직조(織造)한다. 그들의 상념과 그들의 낯섬 사이에 잠시 머물어 눈을 감아본다. 일월과 이월 사이 시간을 헤아린다.

 

 

글자와 글자 사이를 눈이 좇듯, 그림과 종이 사이를 붓이 잠시 머문다.

종이 위에 시간을 스친다.

 

 

 

 

 

 

 

 

 

 

 

 

 

 

 

 

 

 

 

 

 

 

 

 

 

 

  그가 포도나무 뿌리 앞에 바투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산양의 발목처럼 길고 흰 초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심지에서 바닥만 한 촛불이 일고, 작업실 벽과 천장으로 포도나무 뿌리의 그림자와 그의 그림자가 일렁일렁 번졌을 것이다. 검게 타드는 심지를 중심으로 웅덩이를 만들면서 고이는 촛농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는 초를 기울였을 것이다. 심지에 매달린 촛불이 길게 늘어나면서, 포도나무 그림자와 그의 그림자도 덩달아 길어졌을 것이다.

 

  불안정한 뿌리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가 찾은 것은 촛농이었다. 촛농을 떨어뜨려 뿌리를 덮는 것이었다. 좀묘화를 그리듯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려 촛농 막을 뿌리 전체에 입히는 것이었다.

 

  원뿌리와 곁뿌리, 실뿌리가 어지럽게 얽히고 뻗은 뿌리는 결코 다루기 쉬운 오브제가 아니었다. 뿌리는 요동치는 오브제였다. 수분을 흠씬 머금은 뿌리도, 메말라 철사처럼 억세진 뿌리도, 각질이 일듯 외피가 너저분하게 벗겨진 뿌리도 요동쳤다. 죽은 뿌리도 요동쳤다.

 

* 김숨, <뿌리 이야기>   p.28-29

 

 

 

 

 

짧게 스치는 시간 속에 곁드는 짧은 무엇.

무엇은 무엇을 남긴다.

무엇은 무엇이 된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각자의 심연은.

저마다의 얇은 뿌리는.

 

 

 

모란디의 정물에는 병의 라벨이나 책의 표지와 같은 표식이 없다. (-위대한 예술가 501, 마로니에 북스, 363p.) 그것을 나타내는 사물의 형태,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형태, 색에 집중하며 그 사물들이 갖고 있는 고요한 물질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샤르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화가의 그림은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사물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며, 그러기에 보는 이에게 새로운 의미를 환기시켜 준다. 사물은 상징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 스스로 어떤 알레고리나 교훈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관심성과 몰개성성의 속성이 말을 하고, 생각을 투영한 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http://blog.aladin.co.kr/728246198/6369446

 

 

 

 

 

 

morandi < courtyard in via fondazza > 1958 / oil on canvas

 

 

 

 

 

 

 

 

 

 

 

 

 

얇은 뿌리 하나는 물을 머금는다. 그 물은 얇게 떨며 떨어지고, 저마다의 소리를 지닌다.

때로는 빛과 어둠의 소리를, 때로는 떨림과 단호함의 소리를.

때로는 약함과 강함의 소리를, 때로는 고음과 저음의 소리를.

 

 

 

 

 

        

 

 

 

  직업마다 자기 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의 왼쪽 손가락에는 티눈이 박히고, 구두 수선공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는 못이 박힌다. 그들이 생트 콜롱브 씨네 집을 나왔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생트 콜롱브 씨는 갈색의 커다란 게이프로 몸을 휘감았고, 사긱 모직 천 밑으로는 눈만 보였다. 마레가 스승을

정원이나 집 밖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집 밖에는 절대 나가지 않을 사람인 줄 알았다. 그들은 비에브르 강 하류에 이르렀다. 바람이 휙휙 소리를 냈다. 그들 발바닥 밑에서 얼어붙은 땅이 빠지직 소리를 냈다. 생트 콜롱브는 제자의 팔을 잡고는 조용히 하라는 듯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들은 두 눈을 강타하는 바람을 헤치며 앞으로 난 길을 향해 상체를 구부리고 시끄럽게 걸어갔다.

 

  "들리나!" 스승이 외쳤다. "아리아가 저음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p.56-57 

 

 

 

 

 

때로 말을 멈추면 생각이 걷는다.

때로 말을 멈추면 귀가 듣는다.

때로 말을 멈추면 손이 노래한다.

때로 말을 멈추면 내가 들린다.

 

 

때로 말을 멈추면 머리가 텅빈다. 하얗고 시원하게.

 

 

 

 

 

 

 

 

 

 

 

 

 

 

 

 

 

마분지 같은 커튼으로 새벽빛이 스며든다. 빛 한 점 떠돌지 않던 작업실에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지면서 뿌리의 전체적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뿌리가 한 가닥 지평선처럼 떠오른다. 팔 굵기의 , 원뿌리는 아니고 곁뿌리다. 취광이 감도는 그 뿌리 너머로 또 다른 뿌리가 떠오른다. 그 너머로 또 다른 뿌리가...

 

* 김숨, <뿌리 이야기>   p.60

 

 

 

 

감춰져 있는 발길.

늘 어두움으로 향하는 각자의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감춤을 드러냄이 작은 의미이다.

 

많아야 세 가닥. 일인칭 시점으로만 보는 일월과 이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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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2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제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나오네요!!! 더구나 파스칼 키냐르와 모란디까지!!!!^^

Nussbaum 2015-02-23 23:16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페이퍼에 제가 파스칼 키냐르에 대해 올린 적이 있었지요. 그때도 비비아롬나비모리님 댓글을 볼 수 있었죠~ 파스칼 키냐르. 가끔, 아주 가끔 다시 만날 때면 참 독특하면서도 깊이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좋습니다.

음. 예전에 페이퍼에 모란디에 대해 남긴적이 있었는데 마침 모란디전을 덕수궁미술관에서 하길래 다녀왔는데, 그림을 실물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꽃과 풍경도 신선했고요.

그나저나 해든이는 혼났지만 코~ 잘 자고 있겠죠~

라로 2015-02-24 03:52   좋아요 0 | URL
우왕~~~~ 역시 옛 친구는 좋아요!!! 그런 것도 다 기억하시고!!!!♥^^

Nussbaum 2015-02-25 01:34   좋아요 0 | URL
네.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밤 늦게 갈 곳 없으면 들르게 되네요. 알라딘 서재에.. 오래 전부터 들르던 서재에도 다녀오고요~

라로 2015-02-25 02:04   좋아요 0 | URL
사실,,,,알라딘 서재에서 파스칼 키냐르를 자주(?) 언급하신 분은 님이세요,,,그래서 처음에 찾아가고 좋아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그걸 기억하시니~~~~.^^
예전 닉네임처럼 참 섬세한 분이세요!!^^

blanca 2015-02-2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수채화가 너무 좋아요.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

Nussbaum 2015-02-23 23:11   좋아요 0 | URL
눈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blanca 님 댓글을 보니 문득 분홍공주님 생각이 나네요.
얼마쯤 자랐을까.. 그림도 많이 그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인터넷에 떠도는 20세기 위대한 10인의 피아니스트 순위(혹은 무순일 수도 있겠다.)를 보자. 아티스트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꼽아놓은 이름을 보면, 인기도에 따른 순위라면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서양 고전음악(이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음의 피아노 연주자들을 접했을 것이며, 그들이 연주하는 스타일과 레파토리에 따라 선호하는 연주자가 생길 것이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그 극도의 다이나믹속에서도 아주 고르게 펼쳐지는 음의 세계를,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맑고 영롱한 터치와 환상성을, 빌헬름 박하우스의 남성적인 힘과 여유를, 에밀 길렐스의 단단하며 강렬한 터치를, 알프레드 브렌델의 중립적이나 모범적인 연주를, 아르투르 베네디티 미켈란젤리의 그 강박과도 같은 피아니즘을,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교과서적인 연주를,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야생성을, 글렌굴드의 그 자유로움을..  등등 누구나 각자의 까닭으로 존경하거나 선호하는 피아니스트는 생기게 마련이다.

 

  무릇 서양 클래식 음반을 듣는 즐거움에서, 같은 곡이되 다른 개성을 첨가해 우리에게 펼쳐 놓는 그 무궁무진한 세계를 경험하는 즐거움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이 이 세상을 살고 있고, 또 살다 간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지닌, 우리가 각자 선호하는 연주자와 작품 또한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자 그러면 이쯤에서 위에서 말한 10인의 피아니스트에서 내가 일부러 빠뜨린 연주자(그 인터넷 자료 순위에는 2위에 해당하는)에 대해 얘기해보자. 아마 조금이라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를 떠올릴 것이다. 비록 리히터의 피아니즘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며 무수한 피아니스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엄청난 레파토리로 뛰어난 족적을 남긴 사람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리히터는 냉전시대 소련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바흐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레파토리를 지닌 연주자였고, 서방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뜨린 연주자였다. 그렇다면 그의 연주 스타일은 어떠했을까? 왜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을까?

 

 

해롤드 숀버그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리고 아쉬케나지는 리히터의 연주특성에 대하여 정확히 지적해 주었다. "연주가 다 끝나고 나면 나는 비로소 내가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러나 연주 도중에는 모든 것이 아주 잘 어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몰입되어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압도당하고 만다. " 핵심은 리히터가 무대에서 그러한 마력과 강렬한 집중력을 발산함으로써 모든 사람들, 의심하는 자까지도 그를 따라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청취자들은 다시 의혹과 의문으로 불평을 늘어놓는다. 말이 난 김에 아쉬케나지는 리히터가 생존하는 가장 뛰어난 드뷔시 연주자라고 강조했다. 리히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이 아름다운 소리 이면에서 신비스럽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p.625

 

  아쉬케나지의 평은 매우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마치 피아노를 두들기는 듯하여 음색이 거칠게 느껴진다. 프로코피에프, 슈만의 곡에서는 피아노를 내려 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여러 곡에서 음색이 어두우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텁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템포가 조금 들쑥날쑥하다는 인상도 받는다. 그러나 그 느낌은 역시 연주가 끝나고 난 다음에 드는 약간의 애매모호함이다. 그가 연주하는 영상이나 음반을 보고 듣다보면 그는 작곡가의 의도를 자신의 개성에 덧하여 매우 강렬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쉬케나지가 지적하듯 연주하는 중간에는 리히터가 전하는 작곡가의 메세지를 귀기울려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저 멀리서 들려오는 황홀한 노랫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 기울이는 것처럼.

 

 

 

* 크고 두꺼운 손가락과 꽉 다문 입은 강렬하면서도 직선적인 스타일의 연주를 기대하게 만든다.

 

 

 

 

 

 

*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을 담은 음반으로 그의 음반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할 것인데

거침없는 질주와 박력, 오케스트라와 주고 받는 대화에서 아찔하리만큼 강한 긴장감을 들려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는 네이가우스에게 사사받기 전에는 거의 혼자 피아노를 익힌 것으로 되어 있다. 어릴 때는 오페라에 심취했었고, 다양한 곳에서 반주를 했으며 조금은 고집스럽게 연습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네이가우스를 찾아가 지도를 받게 되었을 때, 네이가우스는 그를 천재라 여겨 음악원 내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네이가우스 하에서 그는 음색에 대한 고민과 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러나 학교의 틀에 박힌 학습에 실증을 낸 그는 때로는 고집을 피웠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가족사는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는데 독일인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러시아 지주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독일로 이주했던 사실은 그에게 평생에 남은 아픔이었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모르지만 그의 연주에는 강한 개성이 드러나며 격렬함과 서정이 동시에 빛과 어둠처럼 존재한다. 그는 정치를 매우 혐오했으며 뭔가 꽉 불편한 자리를 싫어했다. 음악에 대해서도 비슷한 자세를 견지했는데 일례로 카라얀, 로스트로포비치,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한 베토벤의 삼중협주곡 녹음에 대해 혹평을 가했던 사실이 그의 음악적 지향점에 대해 단적인 예를 제시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듯, 리히터는 베토벤의 삼중협주곡(Triple Concerto)에서 자신은 더 많은 연주를 하고 녹음하기를 원했으나 카라얀의 지시에 따라 연출하듯 사진을 찍은 것에서 분노하였다. 그는 자신이 기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본질을 끝까지 추구한 연주자였던 것이다. 악보 한 페이지를 익히기 전까지는 절대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으며 어느 누가 자신의 연주를 극찬하더라도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라고 규정하였다.  

 

 

 

* 그는 작은 등을 켜고 악보를 펴놓고 연주하곤 했다.

 

 

 

* 리히터에 따르면 카라얀은 뭔가 진지해 보이고 나머지는 바보같이 웃고 있는, 문제의 음반이지만

이 음반은 많은 이들에게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글렌 굴드와 마찬가지로 매우 강렬한 인상의 연주자이며 때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를, 브루노 몽생종은 인터뷰하여 그 기록을 책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회고담은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동영상은 <리흐테르 - 이니그마> 의 DVD로 만날 수 있다. 이번에 아울로스에서 제작한 DVD는 이전에 워너레이블에서 나온 바 있는 영상물이다. 그간 워너의 DVD는 절판이었는데 최근에 아울로스에서 라이선스 받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피아니스트 리히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면 위의 책과 영상물을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카라얀이나 푸르트뱅글러와 같은 지휘자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과 영상은 많지만 그 외의 연주자들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렇게 다양한 자료로 그의 삶과 피아니즘을 간접적으로나마 되짚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리히터의 레파토리는 이미 나온 음반에 실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아직도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기에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피아노를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이 피아노에 맞추어 운명에 맡기고, 큰 연주회이건 아주 작은 연주회이건 성심껏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음원은 매우 방대하게 펼쳐져 있어 다양한 레이블에서 나오고 있는데 DG, DECCA, Sony, EMI, Philips 등의 메이저 레이블에서 대규모로 나오고 있는 편이며 Praga, Melodiya, regis, Hanssler 과 같은 레이블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몇가지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리히터가 DG에서 남긴 음반을 모은 박스, 최근 소니에서 오리지널 자켓으로 제작한 박스, 그리고 러시아 자국에서 보관하고 있는 음원을 발해하고 있는 멜로디야 레이블, 그리고 EMI 레이블의 박스이다. DG 레이블의 음반에는 저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협주곡이 들어있고 쇼팽, 하이든, 프로코피에프, 드뷔시의 곡들을 담은 음반이 있는데 모두 어느 면에서나 최상급이다. 두번째 소니음반( RCA + COLUMBIA )에는 리히터의 미국방문시에 이뤄진 유명한 "카네기 홀 연주" 가 들어 있으며 비록 그가 그리 성공적이라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의 찬사를 받은 연주들을 만날 수 있다. 한편 멜로디야(멜로지야)에서 나오는 음원은 그가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리고 Icon 시리즈로 나온 EMI 음반은 DG 음반에 비해 조금은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 평가를 받지만 올레그 카간, 로스트로포비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한 실내악이나 드보르작의 협주곡과 같은 곡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언급할 가치가 있다.

 

 

 

 

  

 

* 만일 녹음정보가 정확히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 구하기 어려웠던 리히터의 프라하 박스를 더 좋은 음질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전에 다른 페이퍼에서도 말한 바 있다.)

 

 

 

 

 * 요즘이야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박스들이 많이 등장하기에 별 놀랄일도 없지만 이 박스는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DG, DECCA, Philips 레이블이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묶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박스인데 위에서 말한 DG의 박스, 낱장으로 어렵게 구해야 하는 DECCA의 2CD 시리즈(Richter - THE MASTER)의 음반, Philips의 명음반(소피아 리사이틀,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까지 모두 수록하고 있다.

 

 

    

 

 

 

 

 

  맨 첫머리에 제시한 리히터의 영상물을 보면 글렌굴드가 리히터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글렌 굴드는 리히터는 자신의 강한 개성을 바탕으로 작곡가와 청중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한편 그는 슈베르트의 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리히터의 연주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 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리히터가 레코딩 기술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개인적으로 굴드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그의 강한 개성을 풍기는 음악에 때로는 반신반의하는 나로서는 그가 생각을 수정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한편 굴드의 말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리히터가 레코딩 기술에는 관심이 없어 무척 다행이라는 것이다. 지금, 그가 내게 예술가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몽롱하고 모호한 지점의 정지한 시간 때문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제일 잘 했던 것을 하려고 했던 것, 그리고 그런 까닭에 리히터는 내게 매우 특별한 존재의 피아니스트로 마음에 남는다.

 

 

 

 

 

 

 

 

 

 

 

* 말년의 리히터. 그는 청각이상으로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젊을 때의 당당한 체구는 몰라보게 살이 빠져 있으며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인터뷰를 한 시기의 그의 나이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장수(1915-1997)했기에 노년의 모습이 나이에 따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때 구하기 어려웠던 리히터의 인터뷰를 담은 DVD를 한글 자막으로 다시 보면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최근에 발매한 DG+DECCA+Philips 박스를 보며 낱장으로 열심히 그의 음반을 찾아다니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둘 다 조금은 서글프고 아쉬움이 남는 찰나이지만 그의 음악을 다시 들으면서 그의 삶이 녹아든 예술의 기록을 짚어보는 시간은 지금을 살아가는 삶 속의 작은 의미를 전달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살면서 다시 그 장면을 마주칠 때는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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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2-0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랜굴드처럼 리흐테르라고 전 발음하길 좋아하는데요, ㅋ~.
저 자켓노트가 갖고싶어서 책을 충동구매했습죠~^^
낯익은 문체인데 낯선 닉이네요.
뭐 아무렴 어떤가요, 오래 머물다 갑니다~^^

Nussbaum 2015-02-09 12:03   좋아요 0 | URL
리흐테르.. 아마 양철나무꾼님이 말씀하신대로 가장 근접한 발음이 리흐테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일정하게 리히터로 적은 것은 아마도 오랜만에 숀버그의 책을 보아서일 수도 있고 처음 그 피아니스트를 만났을 때 리히터로 발음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이 페이퍼에 뭔가 남기기 위해 DVD를 보면서 처음 워너에서 나온 이 영상을 봤을때보다 더 쓸쓸한 느낌이 들었는데 새로 나온 DVD의 표지는 그 모습을 더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늘 뭔가 가슴에 그늘 한 점을 지니고 사는 듯한 모습. 그것이 느껴지는 표지인 것 같아 좋습니다.. 왠지 양철나무꾼님도 그 모습을 파악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다른 부분을 감지하셨을지도 모르겠고요.

남겨주신 댓글을 보니, 이미 제가 예전에 다른 닉네임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신 것이 감사하고 또 많은 죄송함이 몰려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뚜렷했지만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까닭이었기에 조용히, 더 자유롭게 이 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몰래 다른 님들 서재에 발길만 하고 거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익숙한 댓글이네요. 얼마전 양철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제가 지닌 목도리 하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라로 2015-02-09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읽으면서 바람결님이라는 분이 생각났어요. 원래 알라딘에서 긴 글을 안 읽지만 제가 읽는 몇 분이 계시죠~~~. 낯선 닉네임이었지만 리히터에 대해서 쓴 글이라 들어와 봤는데 참 운이 좋았네요, 제가. ^^ 리히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에요~~~^^ 언젠가 바람결님이라는 분께도 말 한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제 기억력이;;;;참 좋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Nussbaum 2015-02-10 01: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롬님. 음.. 아니 잠시 나비님이라고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 나름 잘 정착하셔서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아 늘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참 소식이 없다 최근에는 다시 왕성하게 소식과 글을 남겨주셔서 열심히 보고 있지요.

위에 양철나무꾼님이 말씀하셨듯, 사람이 쓰는 말이나 문장에도 지문이 있나봅니다. 아마도 예전의 그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 가끔은 이곳에 발걸음하시는 것 같아요. 그럴때마다 여러 감정이 밀려오는데, 그 가운데는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제가 하고 사는 일도 바뀌었기에 알라딘 서재라는 곳이 좀 더 편해졌습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제 마음에 닿는대로 뭔가 남길 예정입니다. 아직은 선뜻 안부를 남기지 못하겠기에 그저 예전의 이웃님들의 글만 몰래 보고 있네요. 비비아롬나비모리님 서재를 보면서 무엇보다 즐거이 사시는 것 같아 좋아보였습니다.

미국은 이제 낮이겠지요. 여유있는 오후 되셨음 좋겠습니다.

들려,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로 2015-02-10 12:16   좋아요 0 | URL
뭐에요!!!!! 저 누군지 아셨어요??? 저도 한동안 알라딘 못 들어왔었어요!!!! 사정은 서재에 올리긴 했는데,,, 더 자세한 소식은 차마~~~^^;;
저는 님이 주신 노트북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고이. 못 사용하겠더군요~~~ 북마크도~~~~^^
사라지지 않으셔서 좋아요!!! 막, 무지 서운했었거든요~~~^^
진짜 좋으네요~~~^^*

Nussbaum 2015-02-10 23:01   좋아요 0 | URL
당연 알죠~ 중간에 닉네임도 좀 바뀌셨던 것 같은데.. 서재가 휑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들려 어떻게 지내시나 보긴 했습니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저를 격하게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재에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가끔 살다가 읽는 책 얘기라도 올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노트를 아직도 갖고 계시다니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말씀 들으니, 한 10년쯤 알라딘 서재를 하고 있다면 그때는 특별판으로 2탄을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네요~ 음.. 그땐 몰스킨 수채화 용지에다 그리면 좋을 것 같아요!!

수연 2015-02-1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Nussbaum님 덕분에 친숙한 이름이 될 거 같아요. 리흐테르.

Nussbaum 2015-02-13 21:00   좋아요 0 | URL
네. 야나님~ 꼭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냥 얕은 미풍처럼이라도 한 번 스쳐가는 이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5-12-10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pad Air + Paper53 / 충정로 어딘가에서.

 

 

 

한 시간. 어디선가의 일을 그만둔 채,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곳의 한 시간.

무수한 말과 글, 생각들을 놓아둔 채 떠나온 곳에서 코코아 한 잔을 주문했다.

태블릿 PC의 커버를 열고 펜을 손에 쥐고 공간에 흩어질 한 시간을 담았다.

 

 

오후 다섯 시의 한산함. 이제 정해진 어디론가로 떠나는 자의 여유.

그러나 지친 몸과 마음의 관성이 그 여유를 쉬이 즐기지 못하게 한다.

눈빛과 손 끝 다양한 감정이 섞인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게 흐른다.

 

 

1년에 더해진 며칠. 의자가 놓여진 곳에서 잠시 일어나 다시 돌아오는 시간.

자리에 앉아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필요한 시간.

음반 한 장을 들으며 흘러가는 시간.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나의 한 시간은 여섯 계절동안 그렇게 흘렀고,

이름모를 검은 발자국은 경계 안으로, 현란한 흰 손짓은 경계 밖에서

제각각 다른 이름을 품고 춤을 추었다.

 

 

 

 

 

 

 

미하일 하네케는 시간을 평범하게 보여주지만, 그 시간을 제시하는 화면은 꽤나 농밀하다. 카메라는 애써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감독의 시선은 높지도 낮지도 않다. 포스터가 얘기해주는 말처럼 나이든 부부의 시간과 시선.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은 밝지 않다.

 

 

한 시간 남짓. 연극무대를 보는 듯 화면을 응시하면 "사랑" 에 대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닐까? 사랑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희생해야 하고, 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닐까. 그 흔하디 흔한 말. <사랑>

 

 

많아야 대 여섯명이, 뻔해 보이는 스토리를 엮어 나가며 말하고 몸짓한다. 영화를 떠올리며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이, 감상하는 사람의 나머지 시간과 삶을 점유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출연한다. 연약하고 담백한 느낌을 주며, 연주 또한 정갈한 맛을 풍기는 이 젊은이가 이 시간의 흐름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흔해진 듯 해서 통속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영화에 흐르는 음악을 슈베르트로 선택한 것은 꽤나 잘 어울린다.

 

 

 

 

 

 

 

 

 

 

 

언젠가 간단히 말했듯 잉그리트 헤블러(Ingrid Haebler) 의 연주는 맑고 담백한 터치가 귀를 잡아 끈다. 맑고 담백한 터치와 심장 깊은 곳을 두드리는 연주. 그 대명사격인 빌헬름 켐프의 연주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보다 내밀한 연주를 들려주었던 "그 시대" 를 이제는 쉽게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 캐스트에 이 영화 <아무르> 에 대한 글이 있다. 유니버설쪽에서 협찬을 받아 이 음반에 있는 음원을 샘플로 쓰고 있는데 담담하면서, 살짝 예뻐보이는 음색이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좀 더 음영이 짙은 느낌이 들어야 할 장면도 있지만 이 영화는 병자의 수발기를 다룬 다큐는 아니기에 작은 반짝임도 있어야 하겠다.

 

 

너무 봄이 오는 시간. 2월.

봄의 기운이 마치 뜻밖의 손님을 맞듯 놀라게 할 때, 막연한 아련함과 한 낮의 햇빛에 지나간 시간들을 꺼내 바스락 거릴 때, 아무리 씩씩하게 걸어도 작고 볼품없던 나의 갈색 발자국은 소리 없이 웃는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세상을 떴다. (1933년 6월 26일 (이탈리아) - 2014년 1월 20일)

건강이 좋지 않아 그의 팬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다시 서서 열심히 활동을 하던 그였으나 더 이상은 시간의 발자국의 웃음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미리 어느 정도 예견을 했던 것인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는 그의 교향곡 연주를 묶어 발매를 해 놓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말러, 브람스, 모차르트, 하이든의 교향곡들이 들어 있는데 연주나 가격에서 매우 훌륭한 박스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말러, 그리고 브람스에서 누구와도 당당히 견줄 수 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에서는 산뜻하면서도 미풍이 부는 느낌을, 말러에서는 다채로운 얼굴의 변화무쌍함을, 브람스에서는 정갈함과 균형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유려한 감성까지 덧붙이면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지나간 시간, 웃지 못하는 발자국, 이루었으되 이루는 마음을 붙들어야 하는 시간에.

마음이 떠돈다. 어지러운 마음에. 

포근히 놓아둔 눈빛과 손 끝 다양한 감정은 제각각 다른 이름을 품고 춤을 추었다. 나를 잊지 말라고.

 

 

 

 

 

 

그야말로 베토벤이 없었다면 오늘의 음반시장은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베토벤의 음반들. 베토벤의 교향곡집은 그 가운데에서도 꽤 많이 나오는 음반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그러했듯 몇몇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음반이 거대한 산맥을 형성한 이후로 그다지 주목할 만한 연주가 있나 싶다.

 

 

막상 떠오려 보면 인상 깊었던 음반은 그리 많지 않다. 거의 전설적으로 대접을 받는, 그래서 더더욱 들으면서도 궁금해지는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 두툼하고 치열함이 느껴지는 클렘페러의 연주, 날렵하면서도 당시 시대악기의 느낌이 생생한 가디너, 단단하고 단호한 반트, 리듬의 화신 클라이버.. 그리고 요훔, 블롬슈테트.. 등등

 

 

최근에 나온 음반으로는 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 오케스트라의 데카음반이 참신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음반은 칼 뵘의 재발매 반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저런 경로로 이미 거의 다 구해 듣고 있겠지만 나치 부역에 대한 내용 때문인지 전집은 재발매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컬렉터스 에디션으로 다시 나와 반갑다.

 

 

새벽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으면 꿈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6번 <전원>은 목관의 따뜻한 느낌과 현의 유려함이 아찔할 정도이다. 3번 또한 쉽게 지나칠 수 없이 클렘페러와는 다른 면에서 구조적이며 이지적인 느낌을 준다. 단원과 지휘자의 일체감 속에 나타난 결과물로 우표시리즈의 디자인이 아닌 것도 매우 다행스럽다.

 

 

 

 

 

지네트 느뵈, 요한나 마르치, 미셀 오클레르, 롤라 보베스코..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전해지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이다. 느뵈는 열악한 음질 때문에 아쉽고, 요한나 마르치는 테스타먼트를 통해 나온 슈베르트로 한 차례 큰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미셀 오클레르의 음반은 모 방송에서 극찬의 극찬 속에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브람스는 확실히 뛰어나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꽉찬 톤 속에서 자유로움을 구사하는 모습, 흔들림 없으면서도 미묘한 끝처리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그 위로 발산하는 열정. 

 

 

내지의 해설처럼 요즘처럼 모범생이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연주와는 다른 느낌다. 그러나 코간의 선 굵은 연주나 오이스트라흐의 유려함, 헨릭 셰링의 탄탄함을 갖춘 명연주가 있으며..... 최근의 Batiashvili 등의 연주도 좋다. 오클레르의 연주가 훌륭함에는 이견이 없지만 저마다의 근거 있는 열풍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후 여섯시에서 일곱시로 넘어가는 어느 즈음의 아련함.

그 공백을 채우는 한 시간. 

눈빛과 손 끝 다양한 감정이 섞인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게 흐른다. 지금도. 

 

 

 

 

 

 

내 곁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억.

 

사랑과 슈베르트.

 

이젠 세상에 없는 연주자들.

 

그것과 그들이 내게 불러 위안하는 한 시간.

 

 

 

 

 

 

 

 

 

 

 

나는 어느 이름 없는 꽃
어두운 응달에 둥지를 터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
아무곳도 갈 수가 없네요

나의 눈물, 나의 미소, 내 마음을 새긴
나의 눈빛 잊지 말아줘요
그대 얼굴, 그대 음성, 그대 웃음으로
행복한 한철을 보내고 시들어가요

다시 그대를 만나는 새 봄이 오면
그 긴 잠을 깰 수 있을까
내 목소리, 내 숨소리, 내 향기까지도
잊지 마요. 잊지 말아줘요

그대 고백, 그대 위로, 그대의 노래들
잊지 않고 나 기억할께요
내 목소리, 내 숨소리, 내 향기까지도
잊지 마요. 잊지 말아줘요

그대 고백, 그대 위로, 그대의 노래들
잊지 않고 나 기억할께요
잊지 못해요. 잊지 못해요

 

 

 

 

 

- 박새별 <물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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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12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섯시에서 일곱시 사이. 가족과 떨어져 저 혼자 있는 동안엔 그 시간이 하루중 제일 오묘하고 불안한 시간이었어요. 해가 지면서 마음도 한번 지는지.
많지 않지만 식솔을 거느린 (!) 지금은 그 시간이 아주 분주한 시간대가 되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니까요. 완전히 다른 시간대가 되어버렸답니다.
예전에 갔던 장소에 오랜만에 발걸음을 해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짐작이 안되어요. 그곳이 아직 그곳에 있기나 할지. 요즘은 새로 생기는 곳도 많고 업종도 자주 바뀌고요.
Schubert 피아노소나타 CD 표지의 피아노 건반을 보니 새삼 반가와요. 가지런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 오늘은 저도 오랜만에 슈베르트를 들어야겠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전집으로 가지고 있는 작곡가이기도 하니까.
위의 그림에서 커피향이 나네요 ^^

Nussbaum 2014-02-16 14:02   좋아요 0 | URL
hnine님 안녕하세요.
주중에 계속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댓글이 늦어졌습니다. 죄송스런 마음이..

지난 이년간 하루를 보내며 저녁 여섯시에서 일곱시 사이에는 참 많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까닭 모를 슬픔, 기쁨, 희망, 절망 같은 것들의 조각이 켜켜이 쌓여있는 마음에 바람이 불곤 했었지요. 그 시간을 얘기해 주시니 다시 그 시간에 걷던 길이 생각나네요.

hnine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또 바뀌어버린 시간도요. 아마도 그 시간은 늘 새로운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략 인상은 비슷하지만 늘 조금씩은 다른 무엇으로 말이지요.

예전에 한참을 다녔던 그 동네를 다시 가보니 뭔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높다랗고 반짝이는 건물이 들어서고 허름했던 그곳은 더 허름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서글퍼졌는데 너무 이른 봄을 느끼는 내 마음이 그러한 것은 아닐까 .. 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이 말씀해주신 해가 지는 무렵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해가 지면서 마음도 한 번 지는지.." 참 멋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곳을 다녀오면서 마음이 꼭 세 번 정도 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영화와 음악을 같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제 서재에 오셔서 슈베르트에 관한 얘기를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였지 싶은데요. 박새별의 노래를 들으며 슈베르트가 곡을 쓰고 세상을 떠나면서 들었던 생각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면으로 젖어 들어가면서도 마음은 그 표면위로 떠있고 싶은 마음.

..

아이패드 앱의 한계이겠지만 그림이 정교하게 그려지지 않는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잠깐 시간이 날 때 뭔가를 그려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매우 바쁘고 산만한 2월이 지나면 손으로 뭔가를 그려서 다시 페잎에 올려봐야겠습니다.

oren 2014-02-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구경조차 못해본 명반들을 Nussbaum 님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그림과 함께 소개해 주시니 정말 좋네요.

아바도가 고인이 된 직후 한동안, 라디오를 통해서나마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너무나 멋진 연주들을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 어느새 그의 연주도 차츰 뜸하게 소개된다 싶어 잠시나마 서글픈 생각이 들 때도 있더라구요.

Nussbaum 2014-02-15 15:23   좋아요 0 | URL
종종 oren 님의 서재에 들려 멋진 사진을 보고 오곤 했는데 이렇게 들려주시니 다시 그 사진들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반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그 음반에 대한 객관적 정보 이외에는 주관적인 느낌을 덧붙이게 되는데, 나름의 감정을 남긴 페이퍼에 많은 공감을 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고클래식에서 아바도를 추모하는 배너를 띄워놓은 것 같은데, 그간 여러 회원이 남긴 여러 글에서 아바도의 흔적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바도의 브람스 교향곡을 담은 음반이 꽤나 비싸고, 멘델스존이나 슈베르트가 아주 훌륭한데 이렇게 여러 음반을 묶어 나오니 그의 음악 표현력을 살펴보는 데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지휘자가 그렇듯 잠시 잊혀지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의 이름을 꼭 부르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숲노래 2014-02-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시간이라는 틀에
한 사람 살아온 나날을 갈무리할 수 있으면,
이 한 시간을 누리면서
(노래로나 영화로나 책으로나)
더없이 아름답구나 싶어 웃음과 눈물이 샘솟겠구나 싶어요.

Nussbaum 2014-02-15 14:53   좋아요 0 | URL
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너무 빨리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용 걷다보면 걷는 속도도 함께 느려지게 되고요.

그렇게 느리게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지난 몇 시간, 몇 나날. 몇 달을 떠올리다보면 지난 시간과 그 시간에 했던 일과 같은 것이 눈 앞에 펼쳐지며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네요.

얘기하신대로 생각을 갈무리하고 시간을 잘 누리면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밝은 웃음에 약간의 눈물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길의 주위가 조금씩 시끄러워질 무렵 잘 쌓아 올렸던 담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조금씩 무너지는 것처럼, 어디서인지 모를 얕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입춘이 지나고 또 몇날이 지나고 나니 졸업이 다가왔다.

 

전혀 고급스럽다고 할 수 없는. 적나라한 빨강색의 점퍼를 입은, 아직 안경을 쓰지 않았던 영효는 아무도 오지 않는 졸업을 지금은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는지 모를 학교에서 준 상장과 부상이었던 작은 국어사전과 함께 맞았다.  

 

마룻바닥은 조금 더 차갑게 느껴졌고, 교실의 창틀, 늘 앞만 보고 있었던 칠판, 헤진 실내화, 학교 건물을 오르내리며 수 없이 걸었던 계단, 점심시간에 숨바꼭질을 하면 늘 뒤로 숨던 나무, 봄의 아찔함을 전해주던 학교 지붕, 여름의 수돗가, 가을의 그네, 겨울의 운동장..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영효는 졸업이 곧 새로운 시작을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 날은 평소 먹기 어려웠던 몇의 음식과 이제 곧 낯설고, 새롭고, 날선 공기가 교실에 가득한, 기대감보다는 불안함이 가득한 그런 까닭 모를 기운에 조금 힘이 빠지는, 단지 그런 날에 불과했다.

 

햇빛은 창을 통해 들어오고, 낯빛이 조금 하얀 소년의 얼굴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만 존재했고, 누구 하나 선뜻 말거는 이 없어 더욱 고요해 보였다. 영효는 함께 했던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졸업을 함께 하기 위해 온 가족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나서야 조용히, 천천히 학교를 나왔다.

 

-

 

그날은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영효는 그 학교를 다녔던 누군가와 학교를 다시 찾았다. 텅 빈 곳. 점심시간이 되면 그렇게나 땀을 많이 흘리며 곳곳을 다니던 그곳인데 그런 곳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졸업식에 받았던 작은, 지금은 그 누구도 졸업식에 선물로 주지 않을 사전처럼.

 

밤에도 환히 불을 켜 놓고, 학생들은 공부를 했다. 물론 저마다의 특색이 있어 어떤 학생은 그야말로 책을 잡아먹을 것 처럼 공부를 했고, 어떤 이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으며, 또 누구는 영어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음악을 듣다 혼나기도 했다.

 

학교는 모의고사나 학교에서 보는 시험 성적을 복도에 붙여 놓곤 했다. 올해는 무슨무슨 대학을 몇 명 보내고, 누구는 무엇이 되었으며, 자랑스러운 동문들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얘기하곤 했다. 교실 속 아이들은 다들 잘 다듬어진 잔디 같았다.  

 

졸업식에 늦게 나타났다. 다들 무슨무슨 학교에 합격해서 때론 웃고, 무슨무슨 학교에 합격을 하지 못해서 때론 씁쓸한 얼굴을 했다. 학교의 창문은 그대로인데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 창문과, 계단은 이제 너희들에게 해 줄 일은 마쳤다는 듯, 조용히 숨을 쉬곤 했다.

 

명암이 심한 얼굴들 속에서 영효는 표정이 없었다. 그 얼굴은 졸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단지 오래 걸었던 그 문을 걸어 나오는 것이 졸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그에게는 그날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고, 3년을 가족보다 더 오래 보았으되 가깝지 않은 이들과의 이별만이.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 군대를 제대한 후 처음 들려보는 곳이었다. 이상하게 교실 속에서 했던 일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뒷 산에서 누구의 나무인지도 모를 밤나무를 털던 일.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신사참배 장소를 기웃거리던 일. 무슨 풀을 보고 그림을 그리던 일.

 

-

 

잠을 잘 자지 않았다. 홀로 기숙사에 남아 눈을 감고 누워있기 일쑤였다. 사 오년간 참 많이도 들렸던 강의실, 실습실, 도서관도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방안에 있기 갑갑하면 휑한 학교를 그냥 혼자 걸었다. 의미 없는 날이 지나 그날이 오면. 하는 상상을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영효는 밤에 학교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곤 했다. 텅 비어 버린 강의실, 동아리실, 문닫힌 매점, 급수탱크, 기숙사 옥상, 학교 옆 개울가, 노천극장.. 그러다가 미묘하게 떨리는 바람결이 사나워질 때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어색한 웃음을 건넸다. 싸구려 양복을 입고 서서히 모든 것들을 털어 냈다. 랭보를 읽던 빈 강의실,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던 실습실, 자주 걷던 오솔길, 너무 차갑거나, 너무 더웠던 공기, 자주 신발에 끼던 작은 돌멩이 까지도.

 

영효는 졸업 후 학교에 거의 가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가 어쩔 수 없이 졸업증 원본을 가져와야 할 경우를 빼고는 가지 않았다. 날 선 음지와, 저 아래로 흐르는 공기, 너무 가파르게 펼쳐진 오르막과 내리막. 가끔 그 사이 그를 맞아준 새벽빛 나무들만이 생각날 뿐.

 

-

 

입춘이 지나고 입을 꼭 다물었던 공기가 웃는다. 지금 걷는 학교 어딘가에서는 하이얀 이를 드러내며 세상 모르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코 끝이 반짝반짝한 구두를 신고 잘 다듬은 머리와 제법 값나가는 옷을 바람에 날리, 그 어딘지 모를 작은 그림자 하나를 머리에 둔, 사람들이.

 

작은 사전, 깜깜한 밤 하늘을 보며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던 부푼 공기, 처음 따뜻하고 애틋한 손을 맞잡던 설레임, 반갑게 인사하며 공중에 흩뿌리던 하이얀 웃음, 머리 뒷 편 너머 아쉬운 숨소리를 내는 계단. 저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오는 따스한 공기.

 

 

영효는 그 사이를 혼자 걸으며, 기억 저편 오래전 노래를 들었다.  

 

 

 

 

 

 

 

 또각또각

 조용히 사라지는

 공기와 바람 속에서.

 함께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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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이 늦게 빈 자리에 들면.

 

 

손끝하늘에 눈을 담는다.

 

 

무지개저편 그 끝

 

 

작은 호두나무.

 

 

 

 

 

 

 

 

이 월은

 

떨어지다 만 눈물처럼 즐거움을 모두 내어주고

그림자 곁으로 사라져 버린

끝이 말아 올라가는 바람결

 

 

앞서 가는 웃음소리

들뜬 높은 음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

 

 

짧고, 깊은 발걸음

나란히 걷는. 뒷모습 뒤로

 

 

앞을 보되, 조금씩 늘어지는 발자국

눈덮인 길

침묵.

 

 

반음 낮은 목소리와 두 계단 낮은 발걸음

사선으로 기울어진 허공 속 새를 따르며 잠시 들어올린 눈.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버린.

 

 

 

 

 

 

 

 

 

옅은 음 하나를 주머니에 담는다..

 

저 멀리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회색빛 이 월의 얼굴에 감춰진 색

 

하나를 눈에 담는다.

 

외로운 이 월을.

 

어루만진다.

 

 

 

 

 

 

 

 

눈 길 닿아진,

 

손 길 떨어진,

 

호두나무 빛

 

무지개 꿈 속

 

어느 바람에.

 

 

 



 

 

 

 

짧고 길게 맞잡은손

잊어질까. 잊혀질까.

나즈막이. 하루만더

쓰고읽다.  이 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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