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하나만 질문할께요. '음악의 기쁨'은 어디 있는 거죠?

 

r-m.   언제나 양극단 사이에 있죠. 한쪽에는 자연의 모사, 다시 말해 물리적이고 맹목적인 흉내내기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자연에 대한 망각, 다시 말해 음악을 설계도 한 장으로 전락시키는 철저한 추상화가 있고요.

 

(중략)

 

인간의 음악은 자연의 목소리에 메시지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그 메세지는 우리에게 사물과 마음의 거대한 신비를 밝히는 듯합니다. 

 

p.24

 

 

책 뒷면에는  1947년 출간된 클래식 음악의 고전   이라는 말이 크게 적혀 있다.  그렇다! 이 책은 꽤 오래전에 나온 책으로 주로 클래식 음악을 이루는 각 요소들과 현대음악까지 음악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하여 출간하는 클래식 음악이나 음반의 역사를 다룬 외국의 책은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인 경우가 많다.) 주제를 하나 정해 그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대담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해 가는 형식이다. 작은 판형으로 나온 책이지만 그 내용과 폭이 상당히 넓고 깊다.

 

클래식 음악의 다양한 요소와 장르를 다룬, 1권의 목차를 보자. 


* 음악은 무엇으로 하는가?
대담 1 우리는 왜 음악을 하는가? 12
대담 2 성악에 대하여 26
대담 3 기악에 대하여 38
대담 4 합창에 대하여 52
대담 5 현악기에 대하여 68
대담 6 하프와 금관악기에 대하여 83
대담 7 성악에 대하여 98
대담 8 하프시코드에 대하여 112
대담 9 피아노에 대하여 125
대담 10 오르간에 대하여 136
대담 11 리듬 150
대담 12 조성 164

* 음악의 형식들
대담 13 민요 180
대담 14 협주곡 195
대담 15 오페라발레와 무용곡 205
대담 16 조곡 218
대담 17 소나타와 교향곡 232
대담 18 교향곡의 안단테 245
대담 19 푸가 255
대담 20 서곡 266
대담 21 교향시 277

* 형식과 장르
대담 22 실내악 290
대담 23 4중주 302
대담 24 종교음악 314
대담 25 교회 칸타타 329
대담 26 음악의 형식이란 무엇인가 342
대담 27 미지의 미녀들,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음악들 356
대담 28 작곡은 어떻게 하는가 370
대담 29 신구논쟁 383
대담 30 ‘부정음不正音’에 대하여 395

 

 

이 책만 제대로 읽어도 클래식 음악의 상당한 부분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습득할 수 있을 정도로 각 대담의 주제가 빈틈 없다. 대담자와 진행자가 모두 음악의 전문가이다 보니 해당 음악 장르의 태동과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변화의 맥을 매우 잘 짚고 있으며, 간결한 설명으로 장황하지 않게 핵심을 전달한다.

 

 

 

  

 

2-3권은 음악사를 다루고 있는데, 작곡가를 시대 또는 악파로 나누어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책 앞장에 따로 붙어 있는 음악사 일람표를 보면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영국, 스페인 작곡가들이 그 대상임을 알 수 있다. 대담자들은 각 작곡가의 작품과 생애, 후대에 끼친 영향 등을 간결하면서도 균등하게 다루고 있다. 다양한 작곡가들이 어떤 음악적 자양분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작곡가들 간에 서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예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n-t. 베토벤의 명백한 독창성, 거의 심란할 정도의 독창성은 시대에 앞선 과감하고 새로운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나요?

 

r-m. 분명히 짚고 넘어갑시다. 베토벤은 음악의 정신과 어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음악은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분명히 갈라지죠. 따라서 그의 메세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음악적 요소, 방법, 기법은 시대에 앞서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베버나 로시니에 비하면 되레 뒤처져 있었어요.

 

(중략)

 

r-m. 들어봐요, 타그린 씨, 베토벤의 새로움은 음악의 짜임새에 있지 않아요. 속도, 절대적인 어조, 전례 없는 고집스러움, 고독과 침묵 속에 갇힌 마음과 정신의 폭발이라고 할 만한 면이 새로운 거죠.

 

<음악의 기쁨 2권 중 - 베토벤>

 

 

r-m. 그런 점에서 슈만이 독보적이고 생산적이지요. 슈만 덕분에 음악은 장식적이거나 극적인 차원에서 벗어납니다. 음악이 내면의 서정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음악은 일상의 기적 속으로 파고듭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로써 슈만은 근대적인 감성에 그토록 접근했지요. 그는 근대적 감성의 분위기를 도입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낭만파를 뛰어넘어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륵스키와 드뷔시를 예고한 음악가이지요.

 

<음악의 기쁨 3권 중 - 슈만>

 

 

 

 

 

흥미로운 부분에 붙여 놓은 포스트잍이 어지럽다. 실은 내용이 좀 어려워 보여 번역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매우 매끄러운 번역탓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번역투의 글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간결한 문장 덕에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서양 고전)음악의 기쁨]. 책을 읽고 이 책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말하는 음악의 기쁨이란 길고 긴 클래식 음악을 수놓고 있는 다양한 작곡가의 삶과 그 삶 속에서 피어났던 음악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음악의 기쁨을 한껏 느끼는 것이 쉬워 보이진 않지만 먼지가 쌓여가는 나의 흔적을 또렷하게 다시 들여다보게 한 계기였다. 그 음악의 기쁨은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나름의 열정과 흥미를 맛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이 책에 대한 끝없는 호의.. 그렇다고 불평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클래식 교양서의 신기원!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만 반복하는 초심자용 클래식 입문서와 너무 어려운 음악 교양서 사이에 놓인 '예쁘고 반가운 징검다리"..

 

"너무 어려운 음악 교양서" 가 과연 어떤 종류의 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견해로는 이 책은 꽤나 오히려 읽기 어려운 교양서에 속한다. 그 까닭으로 첫째, 이 책에는 전문적인 둘의 대담이다보니 둘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때로는 핵심을 표현하기 위해 문학이나 다른 예술적 장르를 빗대어 표현하는 부분이 종종 등장한다. 둘째, 해당 작가의 일생이나 사상, 그리고 그 음악에 대한 얘기가 매우 다양한 수준에서 접근이 이뤄지다 보니 짧은 문장이지만 다양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셋째,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할 때 다른 작곡가와 비교 대조하는 부분은 그 특성을 더욱 잘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칫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는 그 특성을 파악하기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n-t. 그런데 순수음악을 그토록 강조했던 당디가 어떻게 회화성은 용납할 수 있었죠?

 

r-m. 나는 당디의 회화성을 이해하려면 그가 프랑크의 가르침에 빠져 있을 때조차 베를리오즈의 관현악법을 줄기차게 참조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베를리로즈는 기악으로 회화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단연 최고였죠. 그리고 당디는 바그너의 악극에서 온전한 예술작품의 실현을 기대했었어요..

 

<음악의 기쁨 3권 중 - 당디>

 

이 짧은 부분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당디는 프랑크와 베를리오즈의 영향을 받았고, 바그너의 악극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했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더 잘 읽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작곡가의 특성 또는 작품의 느낌을 알아야 한다. 당디(댕디)의 어쩌면 가장 유명한 작품 <프랑스 산 사람들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 과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를 들어본 적 없는 독자라면? 바그너의 다양한 악극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독자라면?

 

앞서 말했듯 이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많은 대화들은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때로는 피상적이거나 장황하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텍스트를 온전히 읽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더 많은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생각으로 보다 클래식의 감상과 "이해를 위한 징검다리"를 위해서는 서양 음악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해설서나 사전류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나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또는 <라루스 음악 사전> 등.

 

 

 

               

 

 

 

 

++

한때. 음악을 업으로 삼아 살 때가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클래식 음반.

이제 그때를 지나, 돌이켜 보니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없는 것, 내 범위를 뛰어넘은 것들.

 

무수한 말들이 담긴 서재를 없앴을 때

잠깐 앓았다. 

그리고 그 문자 사이 의미 없는 공백을 알았다.  

 

형형색색의 탁한 색의 외투를 벗고 차라리.

이곳저곳 해진 옷을 입고 다시 보는 흰 공백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공백은, 조금은 더 맑다.

 

그럼에도 조금 머뭇거리는 것은 그때 두고 온 사람들 때문.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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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4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동영상을 업로딩하셨네요. 알라딘서재 바뀐 이후로 안되고있는걸로 알았어요.
저도 글렌 굴드의 이 음반 가지고 있는데 최소의 소리? 혹은 자극만 필요한 상황에서 일을 해야할때 주로 들어요.

저 책 세권을 다 읽으셨군요. 전 처음에 표지를 보고 진짜 교과서인줄 알았다니까요 ㅠㅠ

Nussbaum 2015-01-15 12: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
어제 껌껌한 새벽부터 길을 나서서 하루종일 밖에서 떨었더니 몸이 아직까지 좋지 않네요.. ㅠㅠ

동영상..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차단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유투브 동영상 링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올리기는 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글렌 굴드의 음반을 자주 듣진 않지만(그러고보니 요새 음반을 듣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네요~)이렇게 가끔 찾아 들으면 넘치는 생동감이 돌아서 좋던데 페이퍼에 무슨 음악을 올릴까 하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동영상이 좋겠다 싶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굴드의 허밍이 같이 들어가 있어서 혼자 있을 때 들으면 좀 무섭기도 하덴데, 혼자 계실 때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ㅎ

요 책들은 한꺼번에 모아서 올리려 했는데, 시간 틈틈히 읽고 정리해둬서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자가 꽤나 작다보니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읽기 힘들었어요 ㅠㅠ

수연 2015-01-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권은 보라색이더라구요. 저는 이제 막 1권을 펼치고 있는 시점이라서_ 근데 초심자에게는 확실히 어렵더라구요;;

Nussbaum 2015-01-15 12: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야나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 시리즈가 4권도 있군요 +_+ 한 번 검색해봐야겠습니다.
확실히 재밌긴 재밌는데, 워낙 종횡무진 하다보니 때로는 너무 많은 개념이나 사람들이 등장해서 어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느끼겠지만요..

다락방 2015-01-1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책, 엄두도 나질 않아요.
안녕, Nussbaum 님.
:)

Nussbaum 2015-01-15 12:20   좋아요 0 | URL
오 다락방님. 안녕하세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마구 솟네요. 오늘은 회사에 몸을 잘 붙들고 계실지.. 아침에 출근길에 책은 잘 들고가셨을지.. 모닝 커피는?.. 점심은..? 저녁 메뉴는..? 등등 뭘 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이 책, 한 번 읽는 건 어렵지 않은데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점점 어려워지고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이제 점심시간이네요. 무슨 메뉴를 고르실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