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 1819 - 1892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 1840 - 1916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 1865 - 1939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 1880-1918

 

 

 

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길모퉁이에 다다른 발걸음 하나를 꺼내본다. 비가 내리는 하늘에 뒷모습을 내어주고, 습기먹은 마음을 얇게 접어본다. 어찌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어떤 이. 접은 마음에는 풀잎이, 새벽이, 장미가 있다.

 

 

 

살아오며 나의 발걸음이 끝나는 지점은 늘 길모퉁이였다.

직선으로 나 있는 짧았던 길도, 길고 복잡했던 구불구불한 길도.

 

몇 걸음 조심스러운 발자국을 찍으면 나타나는 길모퉁이. 칠월의 회색구름처럼, 부풀어 마음을 누르는 공기처럼, 머리를 짓누르며 내리는 비처럼.


푸름을 머금은 공기와 바람. 

그것은 내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만 조용한 풀잎만이 내 발 가까이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무겁고 검은 상처를 밤새 맞은 아침, 길에서 그 검정을 투명으로 바꾸어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는 풀잎.

늘 내게 펼쳐져 있던 길모퉁이를 지나, 험한 길 앞에서 조용히 풀잎에게 말을 건넨다. 




 



 

 

풀잎 - <나 자신의 노래> 중 

 

                                                      휘트먼 (Walt Whitman)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손안 가득 그것을 가져와 내밀면서.

내가 그 애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 그것이 무엇인지

그 애가 알지 못하듯 나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하느님의 손수건이라고 생각한다.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 구석 어디엔가 그 주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그것을 

본 우리가 누구 것이지? 하고 묻게 되는 그런 것.


아니면 나는 풀잎은 아이 그 자체라고 ...... 식물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불면의 상형 문자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은, 넓은 곳에서든 좁은 곳에서든 똑같이 피어나며, 

흑인들 사이에서, 마치 백인들 사이에서처럼,

프랑스계 캐나다인, 버지니아 사람, 하원 의원들,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 사이에서처럼 자라난다는 것, 

내가 그들에게 똑같이 주고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그것은 내개 깎이지 않은 아름다운 죽음의 

머리칼로 보인다. 


나 너 둥근 풀입을 부드러이 사용하겠다. 

아마도 너는 젊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들을 알았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나이 든 사람들과 여성들로부터, 그들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곧장 받은 후손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이곳에서 어머니들의 무릎인 것이다. 


....



칠월, 유난히 키가 커지는 풀잎은 낮은 사람들의 것이다. 생각이 낮고, 눈이 낮고, 마음이 낮은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누군가 규격화한 머리와 허리, 눈과 귀가 잘려지기 전의 풀잎은.


눈 안, 바스락거리며 돌아다니는 모래알같은 팍팍함과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의 열기, 낯선이에게 밟힌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풀잎은 이슬눈물을 전해준다. 비록 곧 제 몸이 사라질지라도.


닮지 않음의 닮음, 말없음의 가르침, 법칙을 벗어난 법칙. 빛과 물질 아래 나를 자꾸 어딘가로 떠나 보내려는 사람들에게 굵은 목소리로 말없이 소리친다. 짧은 길 끝 좁은 길모퉁이를 걸어도, 나를 잊지 말라고.


습한 공기속에 들어 있는 뜨거운 햇살이 지치게 할 때면 나로 향한 나긋한 목소리, 세상으로 향한 굵은 목소리. 또는 그 반대의 목소리를 늘 잊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열음의 계절에, 여린 마음에게.


풀잎이 떨면 바람이 분다. 풀잎이 눈을 감으면 비가 온다.  



 

 

나의 발은 늘 갓길을 걷고 있었다. 한 낮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열음을 맺으려는 칠월의 분주한 새벽에도 나의 새벽은 무겁고, 시끄러웠으며, 가볍고, 침묵했다. 


앞으로 나 있는 계단, 그 모서리를 걷던 발은 얇고 시린 피부를 지녔다.  시린 피부를 어루만질 새도 없이 갓실, 아슬아슬한 모서리를 걸으며 노래했다. 


벗겨진 피부, 시리고 지친 눈이 숨을 수 없는 칠월의 새벽이 되면 마음을 먼곳에 두고 눈을 감았다. 멀고 먼 다른나라 어느 곳, 멀고 먼 어느 이의 마음에 닿을 것처럼.


짧은 새벽이 지나면 네모진 건물, 세모진 무수한 마음들 속으로. 

갓길같은 그 도형의 선을 따라 끊임없는 길을 걷는다. 마음이 띠를 어딘가에 풀어둔채.

 


 


 



 

<새벽>


                               W. B. 예이츠 


나 무심하고 싶어라, 

브로치의 핀으로

도시를 재는 저 늙은 여왕이나

자신들의 현학적인 바빌론에서 

제 길을 가는 속 편한 행성들과

달이 뜨는 곳에서 사라지는 별들을 보며

서판을 가져와 셈을 하던

시들어 빠진 남자들을 내려다보는 

새벽처럼.

나 저 새벽처럼 무심하고 싶어라, 

그저 서서, 말들의 구름 진 어깨너머

반짝이는 마차를 흔드는 새벽처럼 

어떤 지식도 지푸라기만 한 가치도 없으므로

나는 무심하면서도 제멋대로인 새벽이고 싶어라.

 


 

마음의 띠를 풀고 풀어, 무심함이 무심함을 넘어설 때.   

이른 새벽이 걷히고 풀이 노래할 때. 그제서야 잔뜩 부풀어 오른 공기를 분주히 담는다.  


깊은 여름의 날카로움, 카드처럼 평평해진 일상의 명료함.

짧고 깊은, 밤 사이 저마다 의미와 그로 빚어진 행동을 덮었던 희고 얇은 이불을 걷어내고 그렇게 갓길을 걷는다. 

 

 

 

 

 

 

 

 

<미래>

 

                      기욤 아폴리네르

 

밀짚을 올리자

눈을 쳐다보자

편지를 쓰자

명령을 기다리자

 

사랑을 생각하며

파이프를 피우자

진지는 저기 있나니

장미꽃을 바라보자

 

분수는 마르지 않았고

밀짚의 황금도 시들지 않았다

꿀벌을 쳐다보고

미래 때위는 생각지 말자

 

우리들 손바닥을 들여다보자

손바닥은 미래와 같이

눈이요 장미요

그리고 꿀벌이다

 

 

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길모퉁이에 다다른 발걸음 하나를 다시 걷어낸다. 비가 그친 하늘에 뒷모습을 내어주고, 팽팽하게 마른 마음을 다시 펼쳐본다. 어찌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어떤 이. 장미 향기 한 줌 손에 쥐고 서 있다.


 

 

 

 


 

 

 

<한낮의 천문학>

                                                  가을방학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

해 떨어지는 시간을 적기

그림자가 섞이는 그때 비로소 난 도착할 수 있는 것


낯선 그대가 내게 퍼붓는 질문들

겸손한 학생의 눈빛으로

천문학자가 밤을 기다리듯 조금만 시간을 가져요


어제 일과 작년의 다짐과

어린 시절의 반짝거림들

이 모든 것들을 어찌 다 전하나요

한낮 창가의 문답 몇 개로 


숱한 밤을 함께 보내며

켜켜이 쌓인 은하수만큼 많은 얘길 나눠도

동이 트고 태양이 뜨면 연인들의 별은 빛을 잃던 걸요


잔인한 한 낮 더위에도

제자리에 붙잡한 별들이 때론 안쓰럽죠


숱한 밤을 함께 보내며

켜켜이 쌓인 은하수만큼 많은 얘길 나눠요

동이 트고 태양이 뜨면 

겸손한 학생이 되어 기다려요. 우리..


 


 







 

칠월은 누군가가 아닌, 어딘가에 말을 건네기에 좋은 달이다. 

잔뜩 부푼 공기, 날카로운 명암을 만드는 햇빛, 변덕스러운 비와 구름, 어느새 훌쩍 커버린 풀잎, 아주 투명하고 고운 두께와 질감을 가지고 밤을 덮는 새벽. 


늘 그렇게. 길가를 따라 잠시 걷다 만난 길모퉁이에서 뒤돌아보며 묻기. 

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풀잎과 새벽은 침묵의 대답을 건넨다. 대답없는 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명료한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편평함 속에서, 견디고 또 견디어낸 어떤 이의 마음을 듣는다. 설운 장미향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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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잎 마음이 되어
풀잎 노래를 부르고
풀잎 동무를 사귀니
모두 푸른 빛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