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하고, 말을 한다. 생각의 마음을 담아 그 말을 전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 축하해주거나 위안을 주려할 때 그것의 마음을 담은 어떤 물건을 전해준다. 작은 컵, 반짝이는 반지, 꽃, 작고 귀여운 소품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신을 닮은 무엇인가를 주변에 놓아두길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반이나 음악가의 흉상을, 책을 좋아하면 수많은 책이나 만년필을, 그림을 좋아하면 화집이나 그림도구를 곁에 둔다.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것, 감촉이 느껴지는 것.

 

 

마음을 담는 어떤 물건 곁에 둔다는 것은 합리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저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은 심미성에 대한 욕구(빗살무늬 토기와 같은.)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것은 때로 지나치게 비싸기도 하고, 쓸모없기도 하며, 외설적이기도 하다. 물건은 쓸모를 넘어 개인의 욕구와 취향을 투영하기도 한다. 계속 그것을 곁에 두고 관찰하면서, 그것이 마치 생명체인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그것에 담아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면서 그 사물이 다른 의미로 환원하여 자신의 정신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즐긴다.

 

 

정물화 (Still Life)는 사전적 의미로 다음과 같다.

 

 

 

서양화 한 장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물건 즉 화초, 과일, 죽은 고기와 새, 악기, 책, 식기 등을 그린 회화(그림). 그 자체는 정지하고 있으나 배열의 미적 효과를 위해 화가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여짐. 생물도 전혀 배제되는 것이 아니고 들러리 역할로 그려지기도 함. 정물은 고대 로마 때의 벽화에서 부분적으로 그려졌으나 중세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음. 14세기 말경에 약간 그려졌고 16세기에는 죽은 새와 물고기가 단독으로 그려졌으나 17세기의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세밀묘사의 대상이 되어 독립된 화제로 확립됨. 18세기에는 샤르댕이 나와 섬세한 색채로 친밀한 효과를 높여 19세기에 가장 일반적인 제재(題材)가 됨.

 

- 출처 :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 미술 편집부

 

 

 

Still life. 이 정지되어 있는 시간은, 어떠면 정물화는 인간 개개인이 점유하고 있는 "각자의 사물" 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물이나 풍경의 부분에서 걸어나온 정물화의 배경에는 커지는 자의식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Giorgio Morandi, Still Life (Natural Morta) 1953. Oil on canvas /

출처 : http://www.artcritical.com/2008/09/01/giorgio-morandi-resistence-and-persistence/

 

 

모란디의 정물에는 병의 라벨이나 책의 표지와 같은 표식이 없다. (-위대한 예술가 501, 마로니에 북스, 363p.) 그것을 나타내는 사물의 형태,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형태, 색에 집중하며 그 사물들이 갖고 있는 고요한 물질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샤르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화가의 그림은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사물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며, 그러기에 보는 이에게 새로운 의미를 환기시켜 준다. 사물은 상징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 스스로 어떤 알레고리나 교훈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관심성과 몰개성성의 속성이 말을 하고, 생각을 투영한 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모란디의 정물이 그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무채색의 빈 종이로 나의 감정을 환기시킨다면 레이먼드 로위의 (Raymond Loewy)의 "유선형 디자인" 의 예는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물건을 돋보이게 한다. 그것은 물건 스스로 나는 저것과 왜 다른가? 를 스스로 항변한다. 동일한 형태, 동일한 쓰임이라도 그것이 만들어진 생산지, 상표가 지닌 어떤 무형의 힘을 드러내며 대중매체의 끊임없는 노출을 통해 우리는 그것에 어떤 정신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Raymond Loewy , 1934

 

 

 

마치 인격을 지닌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의 사회" 에서 물건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갖고 태어난다. 그것이 얇팍한 상술일 수도 있고, 진정한 가치일수도 있다. 필요와 쓸모, 관조 혹은 정신의 전달로서의 대상인 사물들을 소유하는 것은 반드시 흔히 말하는 굿디자인의 4요소(기능성, 심미성, 경제성, 독창성) 에만 따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소유하고, 같이 숨 쉬고, 삶의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며 사물에 투영하는 정신에 의한 것이다. 필요와 쓸모, 관조와 정신의 대상물은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문다.

 

 

 

 

 

 

윤광준은 그의 책(<윤광준의 생활명품>)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게걸스러운 탐욕은 죄악이다. 사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길 수 있어야 미덕이다. 가진 것이 넉넉지 않으므로 제대로 된 물건을 골라야 한다. 두 번의 선택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적지 않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앞으로 맞게 될 봄날의 화창한 풍경은 내 차지가 아니다.

 

물건은 시간이 담겨야 아름다워진다. 보잘것없는 행적과 허비한 시간만이 내 몫이다. 잡다한 물건은 함께하며 생산의 도구로 활약했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못한다. 시간을 머금은 도구는 비로소 단단해지고 쓸모가 커져갔다. 손때 묻은 나의 물건들은 이력서처럼 또렷하다.

 

7-8p.

 

 

<윤광준의 생활명품> 을 처음 보았을 때 자신의 물건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라 단정하였다. 그러나 읽다 보니 조금씩 단지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며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려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연재 형식으로 올렸던 글로서 그가 박봉의,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겠지만, 글은 단순히 사물의 그럴싸한 외투만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오래된 주전자, 작은 수첩, 포스트잍, 미군용 수통, 장서표, 손톱깎기, 가위, 골뱅이, 호두과자, 막걸리.... 모두 우리곁 가까이 쉽게 소유할 수 있는 것들도 꽤 많이 등장한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시간이 담겨 비로소 단단해지고 쓸모가 커진 것들"이다.

 

 

 

- Designers Meda, AlbertoRizzatto, Paolo / 1998

 

 

잠시 눈을 들어 내 주위를 본다. 언제부터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를 물건들. 모란디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수줍게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것도 있고, 레이먼드 로위의 연필깎기처럼 겉멋을 잔뜩 부리고 잔신만만하게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 것도 있다. 극히 미세한 것부터 내 키를 훌쩍 넘는 사이즈와 그만큼의 사이를 지닌 무게를 지닌 무엇들.

 

 

내가 가진 사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설명한다는 것. 때로 그것은 나의 생각과 말을 더 잘 드러내는 것, 나의 정신을 더 잘 보여주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그 사물들의 외피를 묘사하고, 그것들과 함께 한 시간을 나열해보는 것은 스스로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내가 갖고 있는 사물들은 <생활명품>의 자격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가격의 기준을 낮춰준다면 나의 꽤 많은 사물들은 <생활품> 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나의 생각과 말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의 삶의 공간과 시간을 꽤 오랫동안 함께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카테고리는 나의 주변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시간을 지니고 숨 쉬고 있는 어떤 사물들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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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5-1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밑에 Giorgio Morandi라는 이름이 두번 쓰인 것을 보고, 하나는 그린 사람 이름, 다른 하나는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일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저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링크해주신 사이트도 들어가보았어요. 볼로냐에서 나서 볼로냐에서 생을 마감했군요. 세잔느의 정물화보다 좀 더 차분하고, 어떻게 보면 더 우울해보이기도 하고요. 전쟁에 참전한 후 신경쇠약에 걸렸다는데 그 이전에 그린 그림인지 후에 그린 그림인지 모르겠네요.
사물에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기까지는 함께 한 시간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요. 제 친정에 가면 저랑 동갑인 선풍기가 아직도 제 역할을 잘 하며 버티고 있답니다 ^^

Nussbaum 2013-05-17 15: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하루 잘 보내고 있으시지요?

어제 새벽에 뭔가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 머리도 좀 쉴겸 썼더니 제가 모란디 를 두 번 적었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실수로 작가 이름인 모란디(Morandi) 를 두 번 적어 넣었네요. ^^

정물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샤르댕의 정물이 은은하고 고요함을 지니고 있는 사물들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면 세잔의 정물은 우리 눈과 뇌의 감각을 일깨우는 진실이라는 면에서의 사물들의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모란디의 정물에서 보다 진한 우수와 애써 드러내려는 지각에의 의지를 벗어난 관조를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1차, 2차 대전을 모두 겪은 그의 그림은 분명 미래파의 역동성이 지니는 힘과는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적어주신 그의 신경쇠약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전쟁의 영향 또는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그림이 왠지 모르게 우울해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사회의 변화도 그렇고, 미술사적 흐름도 그렇고 매우 복잡한 시대를 살았던 그가 사망한 시점 (1964)을 봤을 때 이 그림은 모든 유파나 사상(특히 파시스트의 웅장함) 에서 벗어나려 했던 모습을 꽤나 잘 보여주는 그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hnine님과 나이가 같은 선풍기라니.. 저는 제가 중학교때 용돈을 모아 샀던 작은 필통, 물건을 넣는 주머니 등을 보면서 꽤 오래 썼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 있는 생물인양 대하는데 그 선풍기는 마치 살아 움직일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역할을 한다는 그 선풍기가 꽤 멋지다는 생각도 해 보고요.

빛과 어둠이 딱 반이었던 날씨가 점점 그 정점을 지나가려 합니다. 일교차에 감기조심, 바쁜 일상에 마음조심 하셨음 합니다. ^^

숲노래 2013-05-29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살림살이
언제나
아름다운 손길로
알뜰살뜰
보살펴 주셔요

Nussbaum 2013-05-30 13:17   좋아요 0 | URL

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삶에 보기 드문 함께살기 아름다운 사진과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실은 몇 해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답글을 남기지 못했었네요.

살림살이 하시니 뭔가 더 주위 물건들이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인사 드리러 가겠습니다.

oren 2013-06-15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정확히는 어제) 일찍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소개되었던 화가가 바로 조르지오 모란디였어요.
(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노래의 날개위에'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는 평생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살다가 그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라구요. 여행이나 미술관도 찾지 않았다고 하고요. '감정적인 여운이 작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군요.

평생 벽, 탁자, 컵, 그릇이 놓인 정물만 그렸던 그의 그림의 가치를 당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그의 그림은 대부분 '헐값'에 주위 사람들에게 넘겨졌다고 하던데,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고도 하더군요. '존재로서의 고독'을 담아낸 그의 그림을 Nussbaum님 덕분에 '알라딘'에서 직접 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림을 보니 '이탈리아의 박수근'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도 하네요.

Nussbaum 2013-06-16 11:05   좋아요 0 | URL
아 모란디를 라디오에서 소개했군요.

17세기부터 이미 독립하고 있던 정물화를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킨 샤르댕의 작품도 좋지만, 저는 이상하게 모란디의 작품에 끌립니다.

섣부른 판단이지만 모란디는 왠지 조용한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 부, 다른 이의 관심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미적 가치를 위해 매진했을 듯 싶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피카소처럼 정치나 미술적 유행에 무관하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마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모딜리아니도 그렇고 사후에 이렇게 가격이 비싸지는 건 참 아이러니 합니다.

모란디의 작품이 들어 있는 페이퍼 관심있게 보아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몇 해 전부터 oren님 사진과 글들 늘 감탄하며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