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발자국이 짧은 봄길의 따뜻함을 들어 올린다. 

그 속에서 때로는 앞서거나 뒤를 조용히 따르는 풋풋한 싱그러움. 

그 둘의 발걸음의 거리가 초봄의 한날만큼 작고 조용하다. 


꽃이 피는지도 모르고, 거리가 점점 차오르는지도 모른채

옅은 막으로 둘러싸인 책상에 앉아 답답함을 느낄 때 걷는, 

어느 그림자길 마주친 명도 9의 얼굴들.








그 명도의 극점이 불러오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날카로운 못 하나가 

가슴을 스쳐 지나갈 때, 그 날카로운 날을 세워 손에 들고 있었을지도 모를 때

깊은 검정의 한 숨. 


검정의 한 숨이 지난 깊은 밤의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 

나도 모르게 반걸음을 걸으며 멀어져가는 생각의 손을 잡아본다. 

너무 빠르거나 느려, 지나쳐버린 생각의 얼굴을 떠올리며 앉아 뒤를 돌아본다. 










쌓였던 눈 대신, 밝고 유쾌한 발자국들이 쌓인 길 어딘가.

얇은 기대와 가벼운 물음을 작은 가방 속 어딘가에 넣어둔 채

앞선이의 반걸음을 따르는 명도 7의 얼굴.


때이른 얇은 옷. 

미리 곱게 갈아 놓은 웃음.

주머니 속에 가득찬 기대. 









봄의 한낮이 그렇게 사라지듯, 봄의 발자국이 그렇게 흩어지듯, 

앞서가던 반걸음이 어느새 나란히 걷는 걸음이 되는.

짧은 봄날의 기억.


주머니속 가득찬 부푼 마음과 명도 7의 얼굴이  

짧은 봄날의 따스함을 품는다. 

곧 사그라질지라도, 명도 0의 기억이 될지라도. 


아주 곱게 거리에 내리 앉았던 얇은 봄이 수줍은 발자국과 함께 사라지면

기억에서 반걸음씩 뒷걸음을 걷는다.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마지막 나오던 음악은 <기억의 습작> 보다는 이 곡이었다면 더 좋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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