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 152 True Stories & Innocent lies 생각이 나서 1
황경신 지음 / 소담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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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톡톡, 가벼이 지붕을 때리는 무언가.

 

봄비가 진하게 내리는 날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열차표를 한 장 사기로 한다.

그리고 길을 나서는 한 걸음이 닿을 수 있는, 저 멀리 낯선 곳까지 걷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비가 그치기 전 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눈 주위를 촉촉하게 했던 밝은 것들, 때로는 눈을 적시는 것들을 마음껏 담아서.

 

 

 

 

 

불협화음, turn, 선, 더블플랫, 노래, 슬픈 이야기, 오케스트라, 식후 30분, 얼마나, 모르겠다, 반지, 99퍼센트의 여인,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 나는 거짓말을 했다, 베토벤 10번 교향곡, 세르반테스, 무수한 반복, 그 말은, 바라보는 것은 소유된다, 연습하면 다 돼, 편, 그럴 수만 있다면, 아직 이렇게, 외롭습니까, 기적처럼 만났으면 해….

이는 오래오래 빼곡하게 작가의 뇌리에 박힌 것들이다. 어쩌면 모두가 흔하게 쓰는 말들이다. 흔하지만 작가에게는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들이다. 좋은 기억이거나 나쁜 기억이거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일상 속에서 추억으로 남아 사소하지만 잊히지 않는 152개의 진실과 거짓말들을 소재로 담았다.

 

 

- 출판사 소개 중

 

 

알싸한 겨울의 공기가 봄비의 부스스함에 자리를 내주고 저 멀리 발걸음을 재촉할 때가 되면, 겹겹이 쌓인 삶의 부스러기가 눈과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 발걸음을 재촉해 삶의 눈길을 밟게 한다. 꾸욱, 미묘한 발자국 소리. 삶을 걷는 소리.

 

헤겔의 관념론 미학에 반대하며 "미는 생활이다" 라는 주장을 했던, 러시아의 사상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1828-1889). 그는 불온한 사상을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갖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장편 소설을 완성하였고, 20년이 넘는 유배생활을 마감하는 동시에 생을 마쳤다. 그는 미에 대해 <예술과 현실주의 미학> 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였다.

 

인간이 아끼는 모든 대상에 들어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것,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삶이다. 그중 으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 다음은 어떤 방식이든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어찌 되었든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명이 유지되기를 원한다. 따라서 위의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미는 생활이다. 무엇이든 그 안에서 생활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름답다. 무엇이든 생명을 드러내거나 그것으로 우리가 생명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답다."  

 

- 창홍 미학산책 235 발췌

 

 

 

살아가면서, 낯익은 사람들, 낯설은 물건들

그것에 다가가기, 그것을 잠시 잊기

다시 볼 수 없을 듯 눈에 담기. 살아가며.

 

여행을 떠나며 한 발 움직이며 담는 주변의 것들. 이 작은 책에서는 그것에 대한 작은 기록.

체르니세프스키가 '미는 생활이다' 라고 정의했던 그 작은 삶을 살아가면서 찾고 만나며 보는 무엇이.

 

 

 

 

 

아무도 없는 새벽을 가르지르는 소리.

눈을 꼭 감고 귀를 열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

살아감이 삶이 되는 소리. 땅을 짚는 발이 온 몸을 울리는 소리.

피아노 건반 사이의 거리의 느낌이 이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소리와 느낌. 감각들.

 

 

 

 

 

 

PAPER, 초콜릿, 세븐틴! 순수함과 달콤함이 느껴지는 3음절 단어들이다. 그리고 생각나는 한 사람은, 황경신. 그녀는 월간 PAPER 편집장. 현재까지도 PAPER를 만들고 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작은 사물에까지 애정을 품는 섬세함과 매혹적인 문체로 깊고 깊은 소녀의, 여자의, 어른의 속내를 이야기했던 그녀가, 이 가을 『생각이 나서』로 우리의 감성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리석도록 깊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생각이 나서, 라는 그 말은. 때론 질투와 동경과 희망으로, 때론 포기와 좌절과 허무감으로 지금까지의 그녀를 이룬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게 작가의 색과 감성을 덧칠하고 있다. 글쓰기와 감성만큼은 카멜레온 같은 황경신의 친절하지 못한 한뼘노트다, 『생각이 나서』는.

 

- 알라딘 책 소개 중

 

 

 

이, 책과 작가를 소개하는 문구는 이 책을 담은 눈과 귀, 그리고 감성올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주 작게 울리는 바람과 수줍음, 그 마음을 타고 조용히 새벽을 가르는 어느 나그네가 봄길을 딛는 발자국의 느낌을 담기에는 더더욱.

모노, 아날로그의 주파수를 담아 원목의 몸통을 울리는 작디 작은 라디오 티볼리가 전해주는 조용하고 눈낮은 인사. 툭 하고 스위치를 켜면 피어나는 램프, 그리고 작은 목소리.

이 책에는 그런 작지만 몸을 녹여주는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미묘하게 부풀어가는 봄비, 봄바람, 봄햇살.

그 속에서 자리한, 일상이 건네주는 팍팍함과, 까슬까슬함.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벼운 옷을 입고 떠나는 새벽 여행.

 

그 티켓은 아직 유효하다.

 

 

 

 

 

Grieg Lyric Pieces Book I, Op.12 - 1. Ari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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