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바람이 발목을 휘감는다. 습기 먹은 공기는 푸석이는 머리를 더욱 붕 뜨게 한다. 낮은 공기와 천천히 흘러가는 낮은 시간. 그만큼의 무게를 지닌 생각이 담긴 손짓은 허공을 가른다. 짧게 반짝이는 여름의 이슬.

 

어디로 가다 멈추었는지 모를,

전깃줄의 끝. 홀로, 이제는 이름조차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져버린 어느 새의 눈이 멈춘 공간의 저편.

 

습기 먹은 밤, 이제 곧 사라질 물기를 조각같은 공간의 저편에 담아 두고 있는.

공간의 밤.

 

 

 

 

 

이제는 1바이올린 연주자의 이름을 따서 그들의 쿼텟 이름을 짓는 전통은 없어진 것 같다. 생각나는 건 부슈 밖에는 없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마데우스, 이탈리아노, 린지,  타카시, 알반베르크,  부다페스트, 에벤, 아르테미스 .. 모두 그들 나름대로 이름 지은 현악사중주로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다. 

 

 

 

 

 

타카시(Takacs) 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다. 이 곡을 듣는데 이들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지에서 명시하고는 있지 않지만 1 바이올린은 Edward Dusinberre 인 것 같다.) 서양 고전 음악사상 오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에서 최정점의 음악을 만들어냈던 베토벤. 그의 현악 사중주는 그 가운데에서도 저 높은 곳에서 유난히 밝은 빛을 내고 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은 그가 30세가 될 무렵 전곡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18의 여섯 개의 현악4중주곡에서부터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인 1826년의 작품 135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곡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결과적으로 단일 악장의 독립된 작품으로 출판된 <대푸가> Bb장조 133이 있다.  - 음악세계, 베토벤편 p.176  

 

 

 

어떤 이는 베토벤이 쓴 다양한 장르의 곡은 모두 교향곡을 위한 스케치라고도 한다. 협주곡, 소나타, 각종 실내악곡들. 과연 현악사중주는 어떠할까. 그의 피아노 소나타와 같이 이 현악사중주는 그이 삶과 궤적을 같이 한 것으로 그가 교향곡에서 남긴 없적과 거의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니 이는 그 독립장르로서 위치가 확고하다. 특히 후기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흔히 후기 현악사중주로 분류하는 곡들 역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원함으로 고전음악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곡이다.

 

미학(미술)에서의 대표적 형식주의자인 로저 프라이(Roger Eliot Fry, 1866~1934.9.9) 와 클라이브 벨(Clive Heward Bell, 1881-1964)은 시대와 환경 구별 없이 그 독자적으로 예술을 구별하고자 하였다.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맥락주의)에서는 비판받고 있지만 극단적으로 추상을 전개한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가 전개한 모더니즘적 사고에서는 그러한 관념이 스며들어 있다. (미술사에서 하나의 극단을 부정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살펴볼 때 서양의 저 먼 곳에서부터 시작해 온 것 같은 형식주의 또한 유사한 예를 찾아 등장할지도 모른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 No.8 / Oil on canvas

 

 

베토벤의 곡을 듣다보면, 그 음악 자체로 따로 떨어져 고도의 형식미를 가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 사소한 동기에서 시작하여 점차 드러나는 견고하고 장대한 건축물은 비록 그것이 하나의 환영물이었다 하더라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고전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기도 하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보다 낭만성을 띤 작곡가들과 비교했을 때 무채색의 기조속에서 그 어느 곳으로 회귀하려는 순수추상적인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이 순수추상적 조형미가 바로 극히 공들여 다듬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또 그 독립적인 모습을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세워놓은 현악사중주의 전통 아래,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이고 심원하여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을 꼽자면  op.130, op.132 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op.130은 제5악장 "카바티나" 가 op.132 는 제3악장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op.132의 제3악장은 첫머리에 [병에서 나은 이가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 라는 글을 적어 두고 있다. 이 곡을 쓸 당시 그는 지병(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병의 호전과 함께 이 곡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한 대, 비올라 한 대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빈틈이 많아 보인다. 곡의 느낌상 빈틈이 많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다가 이 곡을 들으면 적잖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빈 공간이 너무 많고 심심한 느낌이 난다. 그러나 이 악기 네 개로 만들어내는 입체감과 깊이는 때로는 수많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능가하기도 한다. 각각의 악기가 느슨한 공기 속에서 엮이고 엮여 비록 작지만 고고한 빛을 지닌 단단한 공간을 만들어 냄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얕은 바람, 허공을 가르는 시선, 이제 곧 사라질 물기를 조각같은 공간의 저편에 담아 두고 있는. 공간의 밤 을 느끼게 한다.

 

4/4박,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제 3악장은 1바이올린의 여린 두 음으로 시작한다. 악보는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도 연주할 만큼 쉽다. 맑고 투명하게 시작하는 곡은 이후 3/8박자로 바뀌며 안단테로 넘어가는에 이는 보다 밝은 분위기이며 상대적으로 앞부분보다 음표상 변화가 있는 편이다. 이후 이것은 발전하며 숭고하게 끝을 맺는다. 유투브 동영상의 연주는 타카시 쿼텟의 연주이다. 이들은 데카에서 초/중/후기 모두 음반을 발매했다.

 

 

 

 

 

 

 

최근에 하이페리언으로 옮겨 또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 베토벤의 녹음은 여러 면에서 뛰어난 음반이다. ASV 가 기약없이 폐점한 상태에서 린지 쿼텟(Linsay QT)의 음반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태에서는 비교적 안심하고 구입할만한 음반이 아닐까 싶다. 음질면에서 질감이 잘 살아나 있으며 곡을 관조하는 모습도 잘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선명한 투명성을 보여준다. 린지 쿼텟의 1바비올린이 보다 더 폭이 크다면 이쪽은 약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는 음반의 선택폭이 그리 크지 않겠지만 적절히 균형잡힌 이 음반은 여러 면에서 선택할만하다.

 

 

낡고, 바랜 종이가 바람에 부스러지듯 하다. 

그런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습기를 머금은 까닭이다.

빈 종이 하나를 꺼내 접어두라고.

마음을 접어두라고 한다.

 

가끔은 발목을 휘 돌아 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은 법이다. 가끔은 거대한 그림 앞에서 고백하고 싶은 법이다. 가끔은 눈을 감고 허공에 눈을 맡아 두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습기가 적절히 부푼 밤. 허공과 바람에 맞겨 두었던 공간에 종이를 꺼내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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