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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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소설, 『녹색 갈증』

제목, '녹색 갈증'이 뭘까.

작품 해설 첫머리에 답이 있다.

에드워드 윌슨에 의하면 녹색 갈증이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인간에게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p.166, 해설)

이 책으로 '녹색 갈증'이란 용어를 처음 알았다.

『녹색 갈증』이 자연으로 회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물론 책 속에 자연이 등장하긴 했다. 등장인물들이 '등산'을 하러가니까.

관계에서 결핍을 느낀 사람들이 산으로 향했다. 자연으로 향했다.

그러나 뭔가 '초록'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 자연 밖이였기 때문일까?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도시가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이다.

프롤로그, 설탕으로 만든 사람, 빈뇨 감각, 뒷장으로부터.

네 가지 이야기가 모여 『녹색 갈증』을 이루고 있다.

차례로 읽다보니 점점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이해하기보다는 분위기에 녹아드는 편이 좋을 소설들이 있다.

『녹색 갈증』은 후자에 속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현실과 환상이 섞여든다.

화자의 현실인 줄 알았던 이야기가, 소설이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을까. 소설은, 화자의 현실은.

화자와의 거리감이 좀처럼 좁혀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멍하게 떠 있는 느낌이 든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윤조라는 인물을 잘 모르겠다.

그가 정말 현실의 인물인건지.

아니면 화자가 만들어낸 모습대로 환상 속에서 나타난 인물인지.

프롤로그의 윤조도, 뒷장으로부터에서 다시 나타난 윤조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모조리 다 슬픈 것인지. (p.74)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자꾸 나를 살고 싶게 하는지. (p.148)

하지만 너무 잘 이해되어서 씁쓸해지는 것보다는, 이해되지 않아서 슬픈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 소설을 읽을 땐 특히나 공감보다는 거리감을 두는 게 차라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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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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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마음 치유법,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트라우마.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지만 그 의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스로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그 트라우마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레이디 가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돌본 정신과 의사 폴 콘티의 안내를 따라가며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법에 닿을 수 있다.


트라우마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뇌의 생리와 심리에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적 또는 신체적 고통을 말한다. 인간의 회복력은 보통 상당하지만, 많은 사람은 상상 이상의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트라우마로 인한 변화로 고통을 겪는다. (p.29)

먼저 트라우마의 정의를 내리고,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사례들을 제시한다.

트라우마는 어느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급성 트라우마, 만성 트라우마, 대리 트라우마 등 유형이 있었다.

사례들은 어떤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형성될 수 있는지 상황을 소개하고, 간결한 설명도 이어졌다.

저자는 최근의 팬데믹 상황에 빗대 트라우마를 '바이러스'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트라우마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자체도 문제지만, 함께 움직이는 공범자들도 문제다.

수치심, 자기 돌봄 부족, 위험을 불사하는 행위, 수면 부족, 기분 저하, 불안, 면역 저하, 악몽과 환각의 재현까지.

막연하게 단어들로만 존재했던 위험 요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자세하게 풀어내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을 준다.

첫번째 단계가 트라우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파트는 '트라우마의 사회학'이다.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은 트라우마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들이 이어진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서를 바꾸고, 바뀐 정서는 우리의 결정을 지배한다. (p.222)

3부에서는 '뇌'에 관해 말한다. 트라우마와 함께 오는 감정들이 뇌를 장악해 어떤 문제들을 일으키는지 차근차근 단어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설명한다. 트라우마가 감정에 영향을 끼쳐 결국 결정을 지배한다는 한 줄의 문장이 깊은 충격을 주었다. 지금 당장 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묻어둘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필요한 모든 힘은 다 갖춘 셈이다. 트라우마에 대적할 충분한 힘을. 변화를 일으킬 충분한 힘을. (p.334)

그리하여 마지막 4부 트라우마 함께 물리치기에 이른다.

여기의 제안에는 익히 들어온, 어쩌면 '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도 비스듬한 마음으로 보지 않게 되는 건 이미 앞에서 쌓아온 서사가 있어서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인가? 사례와 설명들을 읽어가며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트라우마'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책에 나온 방법들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삶을 파고든 트라우마가 입힌 상처들을 치유하며, 변화를 향해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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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김하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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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은 이야기, 『국화꽃 향기』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 고인 기억과 감정들을 크고 맑은 눈동자 위로 천천히 길어올리고 있는 거 같았다.

10년도 넘은 장면들을. (p.12)

같은 책을 다시 읽는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읽은 건 처음인 것 같다.

10년을 훨씬 넘긴 시간...

죽음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 아이는 그 단어의 무게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어른이 되었다.


대학 시절,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미주에게서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빠진 승우.

같은 영화 동아리라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미주는 연하인 승우를 밀어낸다.

그러나 인연이라는 걸까, 사회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라디오 PD 승우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꾸준히 보낸 사연을 듣던 미주는 결국 승우와 같은 마음이 된다.

결혼하고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였다.

기다리던 아기가 찾아왔지만 그와 함께 미주가 위암 말기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신의 목숨과 아기의 생명 사이에서 아기를 택하는 미주...

힘겨운 시간을 승우와 함께 견뎌나간다...

역시 읽은지 너무 오래된 것일까?

익숙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개정판이라 그런지 이야기는 매끄럽게 읽힌다.

슬픔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눈물이 펑펑 나지는 않았다.

사랑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두 가지 다 잘 모르던 시절에 이 책을 처음 읽었었다.

몰라서 더 책 속 인물들의 감정에 따라갈 수 있었던 걸까.

이번에 읽으면서는 한걸음 정도 물러서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실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곡들도 궁금해진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영화도 봤던 것 같은데, 역시나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화제는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OST는 여전히 불리기도 하고.

오랜만에 그 OST도 들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야기.

국화꽃이 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그 향을 맡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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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 신념을 넘어 서로에게 연결되고 싶은 비건-논비건을 위한 관계 심리학
멜라니 조이 지음, 강경이 옮김 / 심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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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차근차근 읽는 관계의 기술,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뒷표지 추천 글에 '이 책을 비거니즘보다는 관계에 대한 책으로 읽었다'는 언급이 있다. 책을 읽고 그 말에 공감한다.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는 비건과 논비건 사이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공감하려면 어떻게 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비건은 어떤 식으로 의견을 표현하든 주변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처럼 비치기 쉽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대놓고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면 교묘하게 조종한다고 여긴다. (p.156)

비건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었다. 이 책은 이제까지 읽어온 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비거니즘'에 초점은 맞췄지만, 내용을 파고드는 책이 아니다. 그 점이 독특했다.

예상과 다른 내용이었지만, 읽을수록 만족했다. 전반적인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지만, 논비건이 읽어도 좋겠다.

비건은 상대적으로 소수집단이기에, 편견어린 시선이 있다. 하지만 다수가 아닌 소수이기에, 더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식주의-비거니즘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을 향해 가는가다. (p.164)

특히 '육식주의' 파트가 좋다. 육식을 권하는 사회적 통념을 고민해보게 한다.

책에서 육식을 하는 사람을 마냥 비판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이 부분은 최근 읽어온 비건 관련 책들에서 공통점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 것.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하길 권한다.

나도 그렇게 조금씩 비건 선택지를 고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아직은 논비건인 사람이다.

애초에 고기를 즐기지 않는 식성이기도 했지만, 직접 요리를 하면서 비건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돼지, 소, 닭은 소비자에게 손질된 형태로 제공되기 때문에 인식하지 않았던 부분을, 낙지를 손질하며 생생하게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싱싱한 것을 먹겠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낙지를 그대로 손질한다. 속을 제거하는 순간, 살아 움직이던 낙지가 한순간에 굳어지는 느낌이 순간 강렬하게 손에 전해졌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아마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고기 말고 다른 걸 고르게 되는 것 같다.

비건과 논비건 사이에서 각자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방법인 '완전한 메시지'는 비건에 관한 소통 문제 뿐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완전한 메시지는 관찰, 생각, 느낌, 욕구로 구성한다. 자신이 감각으로 보고 들은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관찰'. 관찰한 것에 대한 주관적 해석인 '생각'. 정서적 경험을 나누는 '느낌'. 자신이 필요로 하거나 바라는 걸 말하는 '욕구'. 이 네 가지를 모두 넣으면 긴 말이 되겠지만, 연습을 통해 습관화하면 좋을 것 같다.

왜 좋다고 생각한 책일수록 서평 쓰는 게 어려울까?

이 책이 상당히 좋았는데, 그 감상을 잘 다듬어 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비건이더라도, 비건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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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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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 촘촘히 알아가기!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음식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많다. 그렇다면 식재료 에세이는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읽은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는 만족스러웠다.

'세심한 맛'이라는 제호 아래 <한국 일보>에 3년여간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 실은 책.

향신료와 필수 요소, 채소, 육류와 해산물, 과일, 달걀과 유제품류, 곡물,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이야기.

60여 가지 평범한 식재료를 더 맛있고, 향긋하게 즐기는 법이 차근차근 이어진다.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식재료들에 관한 설명, 손질법, 요리법, 보관법까지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익숙하게 접하던 식재료를 색다르게 요리하는 아이디어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

익숙한 재료에서 색다름을, 의외의 재료에서는 궁금증을 불러내는 내용들이 좋았다.

이미 아는 맛을 떠올리며 공감하기도 했다.

특히 극초반 부분이 그랬다.

카레, 허브류, 겨울 향신료와 뱅쇼부터 나왔는데, 다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향과 맛이 있으니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식재료 에세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에세이의 편안함을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한 편집은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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