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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한 스케치 여행, 개정증보판
이장희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에 숨어있는 많은 풍경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처음 책을 봤을 때는 두께가 적절해보이는데다가 스케치 위주일거라 예상해서 빨리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펼쳐보니 글씨가 좀 작은 편이었고 보기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통의동 백송에서 시작해, 경복궁, 명동, 수진궁, 효자동, 광화문광장, 종로, 청계천, 우정총국, 정동, 혜화동, 경교장, 딜쿠샤, 인사동, 숭례문, 환구단, 서울성곽과 그 주변을 둘러보는 구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미처 담지 못한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풍경 스케치이 가득 담겨 있다.
가장 먼저 나온 경복궁은 스케치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경복궁 곳곳의 풍경을 스케치로 접하면서 익숙했던 공간의 색다른 매력을 느꼈다. 또한, 경복궁 깊숙히 위치해 있어, 가보지 못한 곳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조만간 직접 가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명동에서는 그곳에 위치한 추모비와 표지석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명동에 다녀왔는데, 그런 게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번화가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냥 스쳐가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음에 명동에 가면 찬찬히 둘러볼 이유가 생겼다. 한편 명동 근처에 위치한 을지로 입구역이 최초의 지하상가라는 정보도 새롭게 알았다. 흥미로웠다.
수진궁이라는 곳은 처음 알게 된 곳이었다. 지금의 종로구청 일대인데, 수송동에 수진궁터 표지석이 남아있다고 한다. 수진궁 귀신이라는 것도 생소한 것이었다. 이 일대는 조선 초에는 정도전의 집터이기도 했었고, 수송동 쌈지 공원에는 이색 영당이 있으나 출입은 제한되었다니 아쉽다. 다양한 역사가 있는 곳이라 신기했다.
다음은 서촌, 효자동. 이 곳도 꽤 최근에 갔었는데, 최근 북촌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곳에는 바위에 새겨진 세 개의 각자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각각 필운대, 백세청풍, 운강대라는 것인데, 이것들도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에 모르는 것이 정말 가득한 것 같다. 이곳에는 옥인동 자수궁터, 송석원 터, 김상헌 집터, 세종대왕 생가터가 있다고 한다. 모두 '터'만 남아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전쟁까지 겪으면서 모든 문화재가 살아남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기대일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광화문 광장은 익숙한 풍경이 이어졌고, 종로에서는 한 때 종이 울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최근 다시 바깥으로 나오게 된 청계천에 관한 부분에서는 조용한 곳에 있다는 옛 수표교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장벽 일부를 비롯해 독일 전통 가로등, 독일 의자까지 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청계천 공사가 끝난 후 꽤 가봤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것일까? 스케치를 보니 삼일교 근처인 듯 하니 찾아가야할 것 같다.
종각역에는 우정총국 건물이 있었다. 세계에서 오래된 우체국으로 꼽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한 때는 사라질 뻔 하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우편 서비스 업무도 하고 있다고 한다. 흥미롭다. 이 부분에서 편지와 이메일에 대해 저자가 써 놓은 내용이 있는데,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편지, 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메일이라는 외래어로 바뀐 것 같다.
편지는 아날로그시대로, 메일은 디지털시대로 두 단어가 하나의 분기점쯤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 같다. 친구가 보낸 편지가 대문에 걸린 우편함에 꽂혀 있을 떄의 그 설렘, 몇 번이나 반복해서 편지를 읽던 기분 좋은 밤이 다시 찾아올까? 물론 이메일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저 옛날의 기억과 다른 모습의 감동, 다른 빛깔의 느낌일 뿐이다. 결국 세상은 계속 변해가는 것이니…… 그래도 노란색 지로용지나 간혹 날아오는 분홍빛 과태료 딱지뿐인 우편함에 친구가 보낸 편지 한 통이 고이 놓인 풍경이 문득 그리워지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시대의 사람인가보다. (p.205)
편지를 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편지에는 메일과 다른 뭔가 특별함이 있다. 꾹꾹 눌러쓴 글씨체에서 상대의 특성이 그대로 느껴지니까. 다양한 글씨체를 사용할 수 있다지만, 손글씨에는 좀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게다가 편지의 양에 따라 느껴지는 두께도 있고, 또 편지와 함께 여러가지를 봉투에 담아 보내기도 하고... 우체국이 계속 존재하는 한, 계속 편지를 주고 받고 싶다. 역시 나도 아날로그시대의 사람일까.
사실 이렇게 편지 외에도 전반적으로 개발 때문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문화재를 홀대하는 현실들이 특히 그랬었다. 추모비와 표지석들은 외면받고, 과거의 기억이 담긴 공간들은 '터'만 남거나 새로운 건물 때문에 자꾸 밀려난다.
그런 점에서 정동에 위치한 캐나다 대사관의 건축의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대사관 앞 회화나무를 배려해 공사를 나무의 동면주기에 맞췄고, 나무가 있는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약간 뒤로 건물을 밀어서 건축한 것이다. 개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좀더 오래 간직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동 부분에서 덕수궁에서 떨어져 나온 중명전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역시나 처음 알았다. 예약제로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평일 오전 자유관람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정동에는 시립미술관이 존재한다. 덕수궁과 함께 꽤 많이 방문했던 곳이라 소개가 반가웠다. 더불어 국립 미술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국립 미술관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소격동에 서울관이 생겼다. 꽤 큰 공간이어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좋은 것 같다. 정동에서 배재학당도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는데, 익숙한 이름이고 오며가며 많이 보았던 건물이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없었다. 역시 다음에 근처에 가게 되면 들러야 할 것 같다.
한편 혜화동은 비교적 스케치가 가득해서 그림을 감상하며 읽어가게 되었고, 김구의 이야기가 담긴 경교장을 지나 딜쿠샤라는 독특한 이름의 공간에 관해 읽게 되었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이름을 가진 건물에는 앨버트 테일러라는 인물이 살았는데,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권율 장군의 집터에 있었다는 나무라고 한다. 과거에서 더 예전의 과거까지. 시간의 흐름이 가득 담긴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어 읽은 인사동 부분도 자주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생소한 곳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민영환 선생 자결터라던가, 목조각상 전문 박물관이라는 목인 박물관, 그리고 골목길 서점. 이 세 곳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서울 성곽길. 서울에 있는 여러 성문을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부록처럼 있었던 미처 담지 못한 풍경들은, 북촌 일대, 1900년대 정동일대, 경희동 주변 내수동, 충무로 작업실, 공공 조형물들, 서울 사람들, 고궁문, 운현궁, 추녀마루, 종탑들, 다양한 운송수단들이 스케치로 그려져 있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혜화동에 있었다던 버스 정류장 벤치. 독특한 예술작품처럼 보이는데 지금은 사라진 걸까? 없다고 하니 아쉬웠다.
읽어가면서 서울의 다양한 곳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던 곳들, 아주 오래전 간 적이 있는데도 기억에 묻혀 생소하게 느껴졌던 곳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의 의미를 잘 몰랐던 곳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개발되어 표지석으로만 남아있는 곳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그마저도 잘 찾기 어렵게 되어 있고... 그래도 이런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다행인걸까. 찾아가고, 기억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