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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노드라마의 매력, 콘트라베이스
장르가 다소 독특하다. 한 남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이야기로만 구성된 '모노드라마'. 처음에는 낯선 형식이었지만, 읽다보니 점점 몰입감을 주는 형태였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다.
그는 우선,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른 악기들과는 달리, 주목받지 못하는 악기. 콘트라베이스. 그것이 내는 소리를 음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듯한 소리라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거의 음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뭔가 서로 문지를 때 나는 소리 같은,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하나의 음이라기보다는, 뭔가 절박한 것도 같이 바람결처럼 그냥 획 지나가 버리는 소리 같은 거지요. (p.16)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콘트라베이스를 중요히 여기지 않는 세상에 대해 부조리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모르는 콘트라베이스의 위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러면서 명성있는 음악가에 대해 그만의 시각, 그러니까 콘트라베이스를 중심으로 한 시각에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지만, 유명한 음악가들에 대해 언급했기에 비판하는 시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중간중간 음악을 들려준다는 부분도 나오는데, 이런 지문들 때문에 일종의 연극을 위한 희곡 작품 같은 생각이 들어 무대 위에서 실제로 공연하는 듯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초반에 음악적인 측면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간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소외받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처럼, 화자 자신도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의 연애는 항상 실패로 끝났고, 그 원인을 그는 콘트라베이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콘트라베이스에 대해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한껏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던 것처럼, 그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읽어갈수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안쓰러움이었던 것 같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의 끊임없는 한탄 같았다. 그런데 점점 조금 다른 무언가가 배어들었다. 모르는 새, 분위기와 갈등이 점차 고조되어 결말에서는 그가 누르고 있었던 분노와 열망의 감정이 터져나온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남자의 어조가 건조하면서도 담담해서 다소 지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기에 마지막의 감정의 폭발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때문에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는 연극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연극으로 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니 매력적일 것 같았다. 만약 영화로 제작하게 된다면, 화자가 떠올리는 과거의 사건들과 미래의 사건들을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간에, 모노드라마라는 장르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해주어서 참 좋았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