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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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야기를 읽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참 괜찮은 죽음』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글을 읽는 건 힘들거라고.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글은 읽어보고 싶어졌다.

어릴 때는 죽음이라는 미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들, 죽음이 끌어내는 감정들을 알고, 선명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그 사이 죽음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된 사건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 괜찮은 죽음』은 뇌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의 에세이다. 이제까지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한순간의 의사의 손길에 의해 결정된 환자의 운명. 병원 경영진, 법과 실제 현장간의 갈등에 관한 내용도 있다. 직접 수술을 경험하게 되며 생각하게 된 내용들. 우크라이나에서의 경험도 있었다. 모두 저자가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최근 호스피스에 병문안을 다녀왔다. 그 기억의 영향인지, 『참 괜찮은 죽음』이 조금 읽기 힘들었다. 환자들의 사례를 읽으니 연상되는 기억들. 그게 그대로 스트레스를 주었나보다. 신체적인 고통까지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는데, 서평을 쓰며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힘들다.

그러나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공은 환자들이 일상을 되찾아 우리와 영영 헤어지는 것이다. 병이 나은 환자들은 우리를 다시 볼 일이 없다. 아니, 볼 일이 생기면 안 된다. (p.54)

환자들이 의사를 다시 볼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 이 말이 슬펐다. 병이 다 나으면 좋은데, 재발하는 경우들이 있다. 희망을 줬다가, 잔인하게 빼앗는건 어째서일까.

조그만 방을 나와 어두운 병원 복도를 걸어가며 다시 한 번, 인간은 어째서 삶에 그토록 간절히 매달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텐데. 희망 없는 삶은 사뭇없이 힘든 법이지만 생애 끝에서는 희망이 너무도 쉽게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데. (p.196)

안타까운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해피엔딩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많았지만, 하나하나 진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마주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었다.

읽기 힘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저자 헨리 마시의 해외 경험을 담았는데, 그곳은 우크라이나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 지금의 현실과 맞물려 더 안타깝고, 씁쓸함이 있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구의 4분의 1이 20세기에 일어난 폭력에 의해 죽은 것이다. (p.327) 지금은 21세기인데,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면 비극이 멈추지 않았을거라는 점이 슬프다. 희생되는 많은 이들이 대부분 연약한 이들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다시는 선생님을 뵙고 싶지 않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p.376)

책의 마지막 부분. 예전에 수술을 받았던 환자와 진료실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한 내용이다.

가장 큰 성공은 환자와 의사가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초반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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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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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소설, 『녹색 갈증』

제목, '녹색 갈증'이 뭘까.

작품 해설 첫머리에 답이 있다.

에드워드 윌슨에 의하면 녹색 갈증이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인간에게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p.166, 해설)

이 책으로 '녹색 갈증'이란 용어를 처음 알았다.

『녹색 갈증』이 자연으로 회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물론 책 속에 자연이 등장하긴 했다. 등장인물들이 '등산'을 하러가니까.

관계에서 결핍을 느낀 사람들이 산으로 향했다. 자연으로 향했다.

그러나 뭔가 '초록'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 자연 밖이였기 때문일까?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도시가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이다.

프롤로그, 설탕으로 만든 사람, 빈뇨 감각, 뒷장으로부터.

네 가지 이야기가 모여 『녹색 갈증』을 이루고 있다.

차례로 읽다보니 점점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이해하기보다는 분위기에 녹아드는 편이 좋을 소설들이 있다.

『녹색 갈증』은 후자에 속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현실과 환상이 섞여든다.

화자의 현실인 줄 알았던 이야기가, 소설이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을까. 소설은, 화자의 현실은.

화자와의 거리감이 좀처럼 좁혀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멍하게 떠 있는 느낌이 든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윤조라는 인물을 잘 모르겠다.

그가 정말 현실의 인물인건지.

아니면 화자가 만들어낸 모습대로 환상 속에서 나타난 인물인지.

프롤로그의 윤조도, 뒷장으로부터에서 다시 나타난 윤조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모조리 다 슬픈 것인지. (p.74)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자꾸 나를 살고 싶게 하는지. (p.148)

하지만 너무 잘 이해되어서 씁쓸해지는 것보다는, 이해되지 않아서 슬픈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 소설을 읽을 땐 특히나 공감보다는 거리감을 두는 게 차라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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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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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마음 치유법,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트라우마.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지만 그 의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스로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그 트라우마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레이디 가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돌본 정신과 의사 폴 콘티의 안내를 따라가며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법에 닿을 수 있다.


트라우마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뇌의 생리와 심리에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적 또는 신체적 고통을 말한다. 인간의 회복력은 보통 상당하지만, 많은 사람은 상상 이상의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트라우마로 인한 변화로 고통을 겪는다. (p.29)

먼저 트라우마의 정의를 내리고,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사례들을 제시한다.

트라우마는 어느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급성 트라우마, 만성 트라우마, 대리 트라우마 등 유형이 있었다.

사례들은 어떤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형성될 수 있는지 상황을 소개하고, 간결한 설명도 이어졌다.

저자는 최근의 팬데믹 상황에 빗대 트라우마를 '바이러스'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트라우마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자체도 문제지만, 함께 움직이는 공범자들도 문제다.

수치심, 자기 돌봄 부족, 위험을 불사하는 행위, 수면 부족, 기분 저하, 불안, 면역 저하, 악몽과 환각의 재현까지.

막연하게 단어들로만 존재했던 위험 요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자세하게 풀어내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을 준다.

첫번째 단계가 트라우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파트는 '트라우마의 사회학'이다.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은 트라우마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들이 이어진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서를 바꾸고, 바뀐 정서는 우리의 결정을 지배한다. (p.222)

3부에서는 '뇌'에 관해 말한다. 트라우마와 함께 오는 감정들이 뇌를 장악해 어떤 문제들을 일으키는지 차근차근 단어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설명한다. 트라우마가 감정에 영향을 끼쳐 결국 결정을 지배한다는 한 줄의 문장이 깊은 충격을 주었다. 지금 당장 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묻어둘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필요한 모든 힘은 다 갖춘 셈이다. 트라우마에 대적할 충분한 힘을. 변화를 일으킬 충분한 힘을. (p.334)

그리하여 마지막 4부 트라우마 함께 물리치기에 이른다.

여기의 제안에는 익히 들어온, 어쩌면 '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도 비스듬한 마음으로 보지 않게 되는 건 이미 앞에서 쌓아온 서사가 있어서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인가? 사례와 설명들을 읽어가며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트라우마'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책에 나온 방법들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삶을 파고든 트라우마가 입힌 상처들을 치유하며, 변화를 향해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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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김하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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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은 이야기, 『국화꽃 향기』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 고인 기억과 감정들을 크고 맑은 눈동자 위로 천천히 길어올리고 있는 거 같았다.

10년도 넘은 장면들을. (p.12)

같은 책을 다시 읽는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읽은 건 처음인 것 같다.

10년을 훨씬 넘긴 시간...

죽음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 아이는 그 단어의 무게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어른이 되었다.


대학 시절,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미주에게서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빠진 승우.

같은 영화 동아리라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미주는 연하인 승우를 밀어낸다.

그러나 인연이라는 걸까, 사회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라디오 PD 승우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꾸준히 보낸 사연을 듣던 미주는 결국 승우와 같은 마음이 된다.

결혼하고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였다.

기다리던 아기가 찾아왔지만 그와 함께 미주가 위암 말기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신의 목숨과 아기의 생명 사이에서 아기를 택하는 미주...

힘겨운 시간을 승우와 함께 견뎌나간다...

역시 읽은지 너무 오래된 것일까?

익숙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개정판이라 그런지 이야기는 매끄럽게 읽힌다.

슬픔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눈물이 펑펑 나지는 않았다.

사랑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두 가지 다 잘 모르던 시절에 이 책을 처음 읽었었다.

몰라서 더 책 속 인물들의 감정에 따라갈 수 있었던 걸까.

이번에 읽으면서는 한걸음 정도 물러서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실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곡들도 궁금해진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영화도 봤던 것 같은데, 역시나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화제는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OST는 여전히 불리기도 하고.

오랜만에 그 OST도 들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야기.

국화꽃이 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그 향을 맡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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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와 헤이즐이 절대 사귀지 않는 법
크리스티나 로렌 지음, 김진아 옮김 / 파피펍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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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절대'는 영원하지 않아, 『조쉬와 헤이즐이 절대 사귀지 않는 법』

로맨스 소설은 평소 잘 읽지 않는 장르다.

최근 읽은 로맨스 소설이 나쁘지 않았어서 이 장르의 책들을 조금씩 읽어볼까 했다.

『조쉬와 헤이즐이 절대 사귀지 않는 법』을 읽게 된 이유.

그러나 앞의 몇 페이지를 읽으며 깨닫고 말았다.

아, 내 취향이 아니구나.

로맨스를 평소 읽지 않는 독자가 읽기는 조금 힘겹다.

"난 늘, 어쩌다 네가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우연히 보게 된 건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게 그냥 네 본모습이었구나." (p.23)

여주인공 헤이즐의 '흑역사'의 현장들을 목격했던 남주인공 조쉬.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절친의 친오빠였고, 어쩌다보니 오랜만에 재회한 그와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헤이즐은 조쉬에게 끌리는 마음을 애써 부정하면서 '조쉬와는 절대로 사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마음대로 될까?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기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은 로맨스 소설다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한다.

"하지만 난 헤이즐이 헤이즐이라서 사랑하는 거야." (p.312)

외국 로맨스 소설이니만큼 상당히 개방적인 느낌.

이 소설 극초반에 나오는 헤이즐의 '흑역사'들을 포함한 그녀의 성격이 호감이 가지 않아서 읽기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부분에 거부감을 덜 느낀다면 매끄럽게 읽어갈 수 있었을지도. 역시 소설을 읽을 땐 캐릭터가 중요한 것 같다.

이야기는 헤이즐의 시점, 조쉬의 시점이 번갈아 나온다.

독자들은 두 사람의 속내를 다 알고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들이 '겉'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솔직한 속내를 함께 보면서 인물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 로맨스 소설의 독특한 점은 남주인공 조쉬가 '한국계'라는 거다.

한국 이름이 '임지민'이다.

외국 소설에서 한국과 관련된 부분을 마주하니 신기했다.

가끔 있는 일인데도 볼 때마다 새롭다.

또 하나의 독특한 점. 저자 '크리스티나 로렌'은 한 사람이 아니고 작가 '듀오'다.

둘이 쓴 소설이지만 이야기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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