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7년 - 문(問):지승호 답(答):김의성
김의성.지승호 지음 / 안나푸르나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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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던 대담집은 '촘스키, 누가 세상을 무엇으로 지배하는가' 였다.

얇지만 더디 읽혔고, 분량도 적었지만 오래 읽었더랬다. 그래도 유익하긴 했다. 촘스키의 책은 너무나 어려웠는데, 적어도 대담집은 쉬운 편이었다.  눈 앞에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다. 그 상대의 반응을 보며 단어를 고르고,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며, 과거에 있었던 주요한 발언과 그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들을 주관적으로 상세히 풀어준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역시 자신의 주관대로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실린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주관이 실리고, 그걸 읽는 독자의 주관이 섞인다. 

소위 '객관적' 이라고 주장했던 그것들이 그 안에서 산산히 깨진다. 

수학 공식도 아니고.

철학과 사상에 객관성이 존재할 리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중성을 끼얹어볼까? 

대중성은 얼핏, 객관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성공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도, 자신이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주장해도 말이다. 


김의성 배우는, 나에겐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진 배우였다.

[관상] 에서 처음 봤지. 고개를 한쪽으로 꺾고, 얼굴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지만, 아주 강렬했다.

그 다음은 [육룡이 나르샤]였다.

정몽주 역이었는데, 선하게도 보였다가, 비열하게도 보이는 마스크가 굉장히 신선했다. 마침 그 작품에서는 정도전 역을 김명민 배우가 했었는데, 사료에 따르면 정도전은 풍채가 당당하고 뚱뚱한 편이었다고 하니, 싱크로율롷는 조재현 배우의 정도전보다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명민 배우와 김의성 배우의 조합은 고려 왕조의 온건개혁 세력이었던 정몽주와 급진개혁 세력이었던 정도전으로 무척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나는 트위터를 거의 안하는 탓에 김의성 배우의 SNS 활약은 잘 몰랐다. 

하지만, 설리를 두둔하고, 굴뚝에서 농성하던 쌍차 노조원을 지원하는 1인 시위를 하고, 명치를 존나 쎄게 맞겠다는 공약 정도는 알았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책 소식이 조금 의아했지만, 쉽게 손이 갔다.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은 인터뷰에 특화된 직업들이기도 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수많은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담은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책을 펴내기도 했고, 한 때는 영화 잡지를 통해 매주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악당 7년] 은 그러한 숱한 인터뷰들 중 일부다. 단, 한 자리에 앉아 반나절, 한나절을 이야기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꾸준히 만나면서 내용들을 쌓았다. 몇주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하고, 며칠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전에 나왔던 내용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있고, 이야기의 화제가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 탄핵으로, 대선으로, 문재인 당선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연극은 우리 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장르였다.

많은 연극들이 노동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상영되었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민감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의성 배우는 그런 우리나라의 연극판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몸담은 연극판은 노동운동 현장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했고, TV드라마와 연극배우로 데뷔하고, 영화판을 떠나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떠난 베트남에서 드라마를 제작했고, 무일푼으로 돌아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로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었던 홍상수에게 다시 이끌려 [북촌 방향] 으로 컴백했다.

그 이후 몇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고, [관상] 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각인을 새겼고, [부산행] 으로 지난 해 백상영화대상 조연상을 받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그래선지, 김의성 배우는 배우이지만, 배우답지 않은 발언이 많았고,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숨기지 않았다. 

비록 주연급은 아니라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반응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과 캐릭터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경력부터 설리, 홍상수에 대한 의견, 주진우와 이승환등 '강동모임' 과의 관계, 쌍차 해고 노동운동가들과의 관계, 베트남 국민 드라마의 제작자, 여러 연극단과 얽힌 배우들과의 인연 등 상당히 광범위하게 까고 씹을 거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지승호 인터뷰어와의 대담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이 보다 넓고 깊게 조망된다.

특히 '연기철학' 을 묻는 대화에선, '그런건 없다' 고 말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 자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묻어난다. 


김의성 배우의 어린시절부터 50을 넘은 현재까지, SNS, 직접 겪은 노동운동과 메갈리안, 연극판, 영화판 스텝들과 함께 한 배우들의 이야기, 결혼관과 연애관, 연기와 철학, 나아가 예술관까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 부분들을 논리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대담을 읽는 재미가 생겼다.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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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0 : 삼국시대 이중톈 중국사 10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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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정치투쟁은 근본적으로는 다 이익을 둘러싼 투쟁이다. 이익을 다투면서 의를 얘기하는 것은 허풍과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위선' 이다. 이것이 바로 [삼국연의]의 병폐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씨본 [삼국연의]의 문제는 역사의 사실을 바꾼 데에 있지 않고 역사의 본성을 바꾼 데에 있다.

역사의 사실은 바꿔도 되지만 본성은 바꾸면 안된다."


"앞부분은 조조와 원소의 노선 투쟁이고 뒷부분은 조조, 촉한, 동오의 권력 투쟁이다. 나중에 삼국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역사의 원래 추세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그 추세를 가리키고 그 뒤편의 깊은 의미와 지배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의 임무다."


 p. 263. 저자 후기 중.



중국 문화권에 걸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비, 조조, 손권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적어도,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나,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진 적벽대전, 제갈량이 등장하는 삼고초려 정도도.

우리가 자주 쓰는 고사성어의 대부분도 연의에서 빌려온 것들이 많다. 

헌데, 중국 역사를 크게 나눌때 삼국시대는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비록 대충 배우는 것일지라도 중국 역사를 겉핥기로 싹 훑는데, 삼국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진시황이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놓고 싸우다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한나라가 당분간 쭉~ 가다가 위진남북조시대가 도래한다. 삼국시대는 이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 사이에 껴있다. 

따지고 보면 진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초나라와 한나라로 패권을 다투던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장기놀이를 통해 각인된 것 처럼, 삼국시대도 나관중-모씨본의 [삼국연의]를 통해 각인된 것이다. 

이 책은 면밀히 말해 삼국시대의 전반은 후한에, 후반은 위진남북조에 속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조조는 자신이 죽을때까지 황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한나라 황제를 '끼워' 제후들을 호령했다. 한 황조가 쭉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 뒤이어 촉의 유비가 제위에 올랐고, 오의 손권이 제위에 올랐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지 45년뒤인 265년에 위가 망했고, 유비가 제위에 오른지 42년 뒤인 263년에 촉이 망했다. 손권이 제위에 오른지 51년뒤인 280년에 오가 망했으니, 한 시대로 통칭하기엔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시대정신의 전환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조와 제갈량은 법가를 통해 유교 중심의 한나라의 정치를 뒤엎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대다수의 사족들은 한나라의 초기 정치로 복귀하고자 했다. 

저자는 천하가 세 나라로 변한 원인도, 조조와 제갈량, 원소가 실패한 원인도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이 시대가 바라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당 이후의 정치 노선은 원소의 '유가적 사족' 도 조조의 '법가적 서족' 도 아니고 '유가적 서족' 이나 유, 불, 도를 아우리는 서족지주였다.  

 하지만 그것은 위진남북조시대에 369년간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야 실현되었다."

p.253

즉, 저자는 삼국시대가 흥미본위로 각인된 것에 대해 심심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지, 시대가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된 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위해 지나치게 윤색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정말 재미있게 읽히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의의 대표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시대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인물의 한 사건과 인평에 대해 최소한 두가지 이상의 판본을 비교, 대조하는 방법으로 전후를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해낸다.

연의 안에서 과장되고 윤색된 부분을 도려내고, 사실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지만, 책 말미 저자의 말을 통한다면, 저자는 결코 [삼국연의]를 다시 읽기를 권하지 않고 있다.(ㅋㅋ) 
당연히 유비나 조조, 제갈량, 손권 등에 대한 지나친 비하는 전혀 없다.

그들이 했던 선택들이 충이나 의가 아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흐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종의 '시대적 재평가' 를 권하는 정도다. 연의의 팬들이 열폭할 이유는 전혀 없는 정도. 

서두에 언급했듯, 저자는 연의가 시대정신을 왜곡하고, 흥미본위의 역사 컨텐츠는 무의하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저자가 역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언급한다면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작가가 없어서 문제인 것이지, 라며.)

[삼국연의]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도마위에 올린 것이다.


우리가 읽는 [삼국연의] 는 삼국시대에 쓰여진 책이 아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약 1500년대인 명나라 시대. 무려 1200여년 뒤에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널리 퍼진 것은 1600년대 후반인 청나라시대 모성산, 모종강 부자가 수많은 주석을 붙였을 대라고 한다. 

저자는 삼국연의가 그 과정을 통해 역사의 본성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현듯,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역사소설들이 떠올랐다.

가끔 지나친 국수주의와 배타주의에 젖은 소설들이 '역사' 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것을 본다.

심지어, 교과서까지. 

대중들의 시각에 영합하는 짓은 작가라면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심지어, '실제 역사와 무관할리 없다' 고 주장하는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독자를 특정하고, 그 독자들의 입맛에 따라간다면, 그 시대엔 인정받을지 몰라고, 다음 시대엔 반드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심지어, 그 독자가 대중이 아닌, 권력자라면 더더욱 안될 것이고.

(반면, 이중톈이라는 학자가 중국 관영매체인 CCTV의 TV강연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기에, 중국 당국에 의해 키워진 어용학자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는 건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 역시 후대에 평가받겠지.)   

그런 의심과는 별개로, 그의 역사서는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중톈 중국사' 는 총 16권에 달하는 출간 예정 목록 중, 이게 10권째의 책이다.

10권의 목록 중 가장 잘 아는 분야를 먼저 골랐다.

다음으로는 시황제의 진나라가 가장 흥미가 돋는다. 여불위와 영정의 이야기 역시 대중들에게는 아주 많이 알려진 인물들이니 이중톈 박사가 산산히 깨주겠지!! 
하지만, 좀 더 내려가서 춘추 전국시대인 5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볼 셈이다.

이중톈이라는 사학자가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이, 공자와 맹자를 한 테이블 위에 올린 '백가쟁명' 강좌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아마 제 5권인 '춘추에서 전국까지'  역시 그 기조가 유지되겠지. 

역사서지만 정말정말 쉽고 재미있다.

대중 강좌에 익숙한 사람이어선지, 시간의 흐름에 구애없이 명확한 주제별로 짧게짧게 이어가는데, 굉장히 이해가 쉽다.

물론, 이 저자가 일부러 아주아주 잘 알려진 인물들을 도마위에 올리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5권부터 10권까지 올라오다 보면 11권.12권도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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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1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조는 죽는 날까지 헌제를 끼고 돌면서,
한왕조의 충신이라는 코스프레를 했죠.

아마 찬탈자라는 오명은 쓰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뭐 그런 오명은 선양이라는 형식
으로 아들에게 갔지만 말입니다.

나관중에 그렇게 추켜 세우는 유비 역시 지방
군벌에 지나지 않았다는게 현실 아닐까요.

그나저나 16권이나 된다고 하니 징하네요.

열혈명호 2018-08-27 18:02   좋아요 0 | URL
앗 레삭매냐님 댓글 이제 봤어요! ㅋㅋㅋ 죄송죄송.
유비, 손권, 조조는 물론 제갈량, 곽가, 가후, 사마의, 순욱, 원술에 대한 색다른 풀이들이 있어서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당시 지방 호족들이 가장 싫어했던 부류인 조조에게, 당대 가장 명망있는 선비집안이었던 순욱이 가세한 이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웠어요.

참고로, 이 시리즈는 아마 국내에선 16권 분량만 계약이 되어있나봐요.

중국에선 이미 30권 가까이 나왔대요;;;;
 
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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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리뷰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고 작성한 책입니다.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야기는 공동주택에서 은퇴 후의 연금생활을 즐기던 전직 회계전문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매일 아침 신문을 돌리는 성실한 소말리아 출신 난민인 셉티무스 아코펠리가 끔찍한 시신을 발견했다. 

죽은 칼 다니엘손은 무쇠 냄비 뚜껑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고, 죽은 뒤에 목을 졸려 살해당했다.

이 끔찍한 사건은 벡스트룀에게 할당됐다.

인종차별주의자에 성차별주의자, 계급차별주의자에 알콜중독자이기도 한 벡스트룀은 상사들에게는 차라리 제손으로 죽이고 싶은 꼴도보기 싫은 부하고 부하들에게는 끔찍하고 재수없는 상사였다. 그런데, 그가 조직에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의외로 큼직한 사건을 해결해냈기 때문이었다.  

칼 다니엘손의 죽음은 단순 폭행치사로 보였지만, 그의 은행 대여금고에서 수백만 크로나의 현금뭉치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차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처음 몇페이지는 벡스트룀의 독백이 다소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욕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과 어떤 대화를 할 때마다 속으로 미친듯이 욕을 해대는데, 그 욕의 수위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벡스트룀은 정말 쓰레기 같은 인성을 지닌 인물이다. 인종, 성별, LGBT 등 온갖 금기시되는 개념들을 총 동원하어 쉬지 않고 욕을 해댄다.

그 욕이 정말이지, 너무나 창의적이어서 익숙해지니 웃음이 터져나올만큼 유머러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주인공이 모든 것에 차별주의적인 인물이라는 점만 빼면, 이 작품이야말로 정말이지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큰 이슈인 'PC(정치적 올바름)' 에 가장 걸맞는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온갖 인종과 커플들이 등장하고, 그들 모두 정당한 배역들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다.

이러한 균형성이 작가의 출신지이자 작품의 배경인 스웨덴의 단면으로 읽히기도 했다.

작품 안에서도 인종갈등과 남녀갈등, 계급갈등, 연금 생활자와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편하게 지내는 젊은 백수로 대표되는 세대갈등, 난민,이민자들과의 민족갈등  등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속으로 수없는 욕을 쏟아내는 벡스트룀에게 조금씩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벡스트룀은 작가의 입장에선 위악적인 인물이고, 작품 내에서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독자에겐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다. 

내가 느낀 감정은, 일종의 길티 플레져랄까.

겉으로는 사려깊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욕을 내뱉는 벡스트룀이 이해되기 시작하자, 작품 안 모든 인물들의 속마음도 들리기 시작했다. 벡스트룀이 중남미계의 부하 경찰들을 욕하는동안, 그들 역시 겉으로는 위계질서에 따라 굽신대지만, 벡스트룀을 그 못지 않게 욕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가 예의라는 안경을 쓰고, 위선의 탈까지 쓴다. 

벡스트룀은 인간 그 자체의 모사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인종적, 민족적으로 대단히 폐쇄적인지라 작품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종, 민족갈등에 공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이민자들을 홀대하고, 난민 출신 흑인들을 비하하는 등장 인물들의 태도를 보며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과연 나라고 다를까? 우리사회라고 다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침, 우리 사회에서도 난민 문제가 일기 시작했다. 엄청난 유언비어들이 양산되고, 난민들을 쫓아내자는 청원이 순식간에 30만을 넘는 동의를 얻는 모습을 지켜보며, 더더욱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우리 윗집, 아랫집에 예멘 난민과 시리아 난민, 소말리아 난민들이 들어온다면. 그들이 무리지어 동네 여기저기서 낯선 말을 하고, 낯선 몸동작을 하며, 낯선 눈빛을 보낸다면. 같은 시간마다 같은 곳을 향해 절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면. 

회사에서 나의 상사가 필리핀인이고, 내 파트너가 베트남인이라면.
그 중 일부는 게이이고, 일부는 무슬림이라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만약 통일되면, 북한 출신 사람들을 남한 사회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엄청난 지역차별로 어마어마한 갈등이 생겨날터다.

심지어, 경찰이라면.

새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스웨덴 경찰 시스템의 공정성과 평등함이 놀라웠고,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건들을 통과해 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도 문제인지라, 이야기 자체보다 이런 점들이 먼저 신경쓰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다.

저자가 책 앞에 붙여놓은 '다 큰 아이들을 위한 사악한 이야기' 라는 문장이 아주 안성맞춤이다.

벡스트룀이 길티 플레져라면, 안니카 칼손 경위는 저스티스 플레져(이런 단어는 없겠지)를 주는 인물이다.

둘 다 위선의 탈을 쓰고 서로의 뒷다마를 까면서도 서로의 능력을 완벽히 존중하고, 결국은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해 달려가는 조합이 참 신선했다. 특히, 벡스트룀이 안티 히어로라면, 안니카는 전형적인 히어로다. 알콜 중독자에 불평불만 투성이인 벡스트룀과 전도 유망한 여성 경찰이자 유능하고 머리도 팽팽 잘 돌아가는 안니카. 결국 따지고 보면 벡스트룀을 얼르고 달래면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인물이도 하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깜찍한 반전까지.

 

이 작품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틀을 따르고 있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사실은 얽혀 있었고, 전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이 범인이며, 결코 예상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다. 멕거핀과 힌트가 적절하게 흩어져있고, 반전도 꽤나 흥미롭다. 

범인과 대면해서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도 클리셰이지만, 어차피 추리소설은 장르 자체가 클리셰다. 

얼음틀 안에 어떤 음료를 넣어 얼릴까의 문제일 뿐이다. 

간만에 정말 푹 빠져 읽었다.

벡스트룀은, 정이 간다해도 다시 보고싶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짜증나는 인물이지만, 다음 권에 안니카 칼손 경위가 나온다면, 꼭 다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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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셔츠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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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시리즈를 접한 사람이라면, 존 스칼지가 점거하고 있는 미묘한 지점을 익히 알 것이다. 

그의 작품은 엄밀히 분류하면 '스페이스 오페라' 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과학적 지식들을 전혀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발상과 아이디어들은 충분한 설득력을 품어 팬들에게 어필하지만, '스타쉽 트루퍼스' 류의 전쟁, 오락물의 클리셰들을 매우 영리하게 활용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레드셔츠]의 이야기는 아주 먼 미래, 지구의 대기권 밖 우주정거장에서 시작된다.

앤드류 달 소위는 우주 탐사선인 '인트레피드' 호에 배속된 참이다. 그는 정거장에서 역시 인트레피드 호에 배속된 '마이어 듀발' '지미 핸슨' , '핀' 과 '헤스터' 등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인트레피드 연대기' 를 이끌어가게 된다. 

외계 행성인 '포샨' 에서 외계 종교의 사제 수업을 받은 경험이 있는 달은, 뒤늦게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탐사선 인트레피드 호의 '이종생물학 연구실' 이 배속된 것이다. 

달은 빠르게 인트레피드호의 이종생물학 연구실 대원들과 어울리며 적응하기 시작한다. 헌데, 이 우주 탐사선에는 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최근 몇년 동안, 탐사 과정중에 한두명씩 끊임없이 대원들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주 항해사인 케렌스키 대위는 '항해사' 임에도 무슨 연유로든 탐사팀에 포함되며, 각종 중상을 입지만 언제나 살아남아 귀환한다는 점도 희안한 일이었다. 이종생물학 연구실 대원들은 탐사팀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고, 달 스스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     러    경       !!!!!!!!!!!!!!!!!!!!******************  

라지만,

이미 띠지에 초중반의 중요한 스포일러의 힌트가 적혀있고, 책의 뒷면에는 아예 스포일러의 내용이 빨간 글씨로 적혀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이 현지에서도 엄청난  화제가 된 작품이라... 어지간한 내용들은 다 밝혀진 참이지만,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띠지째로 북커버로 감쌌고,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는 터라, 스포일러를 완벽하게 피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정말 큰 즐거움들을 모두 온 몸으로 느꼈다!!!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더이상 내 글도 읽지 마시고, 책 커버에서 어떠한 텍스트도 읽지 마시길 강추드린다.








 







이 작품은 일종의 메타 소설로 읽힌다.

책을 읽다보면, 힌트가 끊임없이 던져지고, 중반쯤에 큰 반전이 던져지며  이야기의 휙이 180도로 바뀌게 된다. 

이 반전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축이기에, 알고 보면 이야기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 뻔해보이는데, 반전의 핵심 키워드가 띠지와 책 표지에 커다랗게 적혀있는게 참 아쉬웠다.


그렇다.

[스타트렉].


인트레피드 호의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스타트렉과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연속극의 등장인물들과 같음을 깨닫는다.

달리 말하자면, 21세기에 만들어진 드라마의 내용이 수십세기가 훌쩍 흐른 미래에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 미국에서 [인트레피드 연대기] 라는 드라마가 제작된 적이 있었고, 달 소위가 속한 세계의 이야기들이 그 드라마의 내용대로 똑같이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안에서는 드라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서로에게 간섭하고 있다고 설정한다.

이는, 아직 제작되지 않은 드라마라도, 등장인물들이 주도적으로 각본을 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함께 해야했고, 그가 케렌스키 대위임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달 소위는 과거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과거의 지구로 가는 에피소드를 참조해 케렌스키를 셔틀에 태워 태양속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케렌스키와 달, 듀발 등의 친구들은 현재의 플로리다에 당도하게 된다. 

달 소위와 일행들은 플로리다에서 자신을 연기하는 연기자들과 만나게 되고, 드라마 제작자와 작가들을 만나 자신들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데...



정말 '골때리게' 재밌었다.

이야기는 위에 요약한대로 두개의 덩어리로 나뉘어진다.

거의 책의 중반부를 기점으로 나뉘어져서, 깔끔하게 1,2부로 나뉘는 느낌이다.

위에 언급했듯, 작가는 의도적으로 힌트를 마구 던져주는데, 나는 처음에는 게임 속 이야기일 줄 알았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케렌스키' 주변의 NPC들 이야기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스타트렉] 이라는 단어를 보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다. 게임과 드라마의 간극을 다른 독자들도 충분히 느껴보기를 바란다.   

 

이 작품은 사실은 '글쓰기' 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모든 창작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어느 곳으론가 팡 튀어나가는 생생한 경험.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배경과 설정, 캐릭터의 성격이 입체적으로 어우러지면, 자신이 창조해낸 캐릭터는 마치 부모님에게 반항하는 사춘기 자식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이야기 속을 뛰어다닌다. 

이 작품은 그러한 창작자들의 소망을 구현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다. 


창작자는 창작물에 세계에 관여한다. 그리고, 창작물이 창작자의 세계에 관여한다.

쉽게 할 수 있는 망상적 상상이지만, 구체적으로 구현해내긴 쉽지 않다.

존 스칼지는 정말 쉽게 해낸 것 같다.

정말 놀라웠다. 너무나 재밌기도 했고.

그가 점유하고 있는 독특한 지점. 그에 딱 맞는 작품이기도 했다.

오직 존 스칼지만이 쓸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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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말 1~3 세트 - 전3권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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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뛰어난 것을 신에게 바친다.' 

경기대회에서 우승한 가장 빠르고, 강한 말이 희생제물로 쓰였다. 

'시월의 말' 은 그렇게 재단에서 목이 잘리는 말을 의미했다. 희생제가 끝나면 그 목은 두 무리의 하층민들에게 던져졌다. 수부라 지구의 하층민들과 사크라 가도 지구의 하층민들이 이 목을 두고 난투에 가까운 소동을 벌였다. 이 목을 차지한 무리는 자신들이 속한 지구의 대표 건물에 그 목을 못박아 자랑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 1권의 첫장부터 조심조심 페이지를 넘겼다.

카이사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셰익스피어와 BBC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고 있어서, '여기부터일까?' '이쯤일까?' 하며 조마조마했다. 과연 매컬로는 위인의 죽음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너무 궁금해서 미리 뒤를 넘겨보고 싶을 정도였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에서 시작된 로마 공화정 말기 '로마의 일인자' 는 술라를 거쳐 나이우스 '마그누스' 폼페이우스에게로, 그리고 카이사르에게로 넘겨졌다.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의 죽음으로 폼페이우스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졌고, 카이사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보니파의 준동에 의해 정치권력의 균형추는 크게 흔들렸다. 크라수스의 죽음과 함께 '삼두연합'은 깨진지 오래였지만, 폼페이우스와 사돈으로 연합하며 카이사르는 로마의 권력을 차근차근 장악한 터였다. 폼페이우스를 등에 업은 보니파는 비불루스와 카토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카이사르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결국 카이사르는 '주사위를 던졌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넜다'. 이탈리아는 다시 내전의 격랑에 휘말렸다. 그들은 카이사르를 '독재자', '왕' 이라 불렀다. 폼페이우스와 카토를 위시한 보니파는 스스로를 '공화파' 라 불렀다. 그들에게 카이사르는 공화정의 적이었다. 


 [시월의 말] 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비록 이탈리아에서 카이사르의 군대에게 패했지만, 시리아 등 동방 속주의 공화파들을 재결집시켜 이후를 도모하려 했다. 카이사르와 공화파의 대결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내란은 속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도시들은 공화파와 카이사르파로 나뉘었고, 그에 따라 속주의 총독들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동방 속주는 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보니파가 파견한 총독들이 많았다. 로마의 곡물은 주로 이집트를 비롯한 동방 속주에서 나왔고, 내전이 길어질수록 동방 속주의 중요성은 커질 터였다. 폼페이우스는 동방을 향해 도피로를 잡았다.  이 정보를 파악한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카이사르에게 잘보이기 위해 이집트에 도착한 폼페이우스를 죽이고 그 목을 선물로 보낸다.  


 하지만, 이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큰 오해였다. 집정관까지 지낸 로마인이 이집트에서 참살당한 사건은 카이사르에게 알렉산드리아 정벌에 대한 명분이 되었고, 카이사르 개인적으로도 큰 충격과 분노로 다가왔다.

그는 결코 공화파들을 죽일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온 카이사르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클레오파트라.

하지만, 남동생이자 남편이기도 한(!!)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축출당해 지방으로 쫓겨난 그녀에겐 프톨레마이오스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양탄자에 말려 카이사르에게 바쳐지는 장면이 여기서 등장한다.

수많은 작품에서 허접한 양탄자에서 등장하는 클레오파트라는 자기보다 몇배나 나이가 많았던 카이사르를 사로잡은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묘사하지만, 역시, 콜린 매컬로는 달랐다. 

[시월의 말]의 카이사르에게 바쳐진 돗자리 안에서 솟아난  클레오파트라는 어떠한 매력포인트도 없었다. 로마인에 비해 피부는 갈색이고, 자신의 딸보다도 어린, 비쩍 마른 마케도니아 혈통 소녀의 외모가 로마의 숱한 귀부인들을 농락한 카이사르의 욕망을 자극했을 리는 만무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에게 그저, 딸 율리아보다 어린 깡마른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정벌한 뒤에 프톨레마이오스를 그대로 둘 마음이 없었다.

폼페이우스를 척살한 프톨레마이이오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로마인의 복수를 해야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군주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집트는 속주로 거느리기에 너무 넓었고, 시리아, 아프리카등 여러 국가들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었으며, 이집트 안에서 자기들만의 공고한 집단을 이루고 있던 유대인들도 다루기에 쉽지 않았다. 총독을 파견하여 속주로 다스리는 것보다, 철저한 계약관계로 국가대 국가로 맺어지는 편이 나았다.

프톨레마이오스를 축출해내고, 그 자리에는 클레오파트라를 앉히는 편이 나았다.

카이사르에게 클레오파트라의 정략적 가치가 생긴 것이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줌으로써 로마의 오랜 우방이 될 씨앗을 심었다.    



이 당시 평균수명이 50~60 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카이사르는 인생의 황혼기에 막 발을 들여넣은 셈이다.

우리 삶에서 나이를 느끼는 순간은  당연하게도 육체의 쇠락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시대의 군인이라면, 매일같이 수십킬로그램의 등짐을 지고 매일 수십킬로미터를 행군하던 시기다.

카이사르는 항상 보병들과 함께 했던 장군이다. 매우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였던 그는 그 즈음, 이미 육체의 쇠락을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사가들이 추측하는 카이사르의 지병인 간질발작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드러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카이사르는 수많은 역사기록을 통해 인류 역사상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가장 완벽한 정복군주로 손꼽힌다. 알렉산더가 뜻밖의 이른 죽음으로 신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카이사르는 이 간질 발작(으로 추정되는)의 기록으로 인간의 역사에 남았다. (한편, 간질 발작이 다른 병들과는 달리 당시 신관들이 '접신' 했을때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신에게 선택받은 증거' 로도 읽혔다고 한다.)

콜린 매컬로는 이 발작도 매우매우 현실적으로 추론해서 소설 안에 너무 잘 녹여냈다.

카이사르 간질설은 나폴레옹 치질설과 함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애초에 '간질' 은 병명이 아니라, 증상이다.

원인이 너무 다양한 병변이라 그 시대의 다른 이들처럼 어떠한 지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콜린 매컬로는 기록상 카이사르가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인한 저혈당을 원인으로 삼았다. 카이사르가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위에 관련된 다양한 병을 앓았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심한 위궤양과 저혈당도 간질과 같은 발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당대의 식습관을 떠올리면, 귀족들은 그런 병들을 앓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시월의 말] 에서 초반을 장식하는 인물은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이지만, 중반을 장식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카토이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어머니이자 카이사르의 오랜 정부였던 세르빌리아의 이복 오빠. 그리고 그녀가 평생에 걸쳐 가장 증오하는 인물. 카이사르를 가장 맹렬히 공격했던 보니파의 아이콘이자 철저한 금욕주의자.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괴이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 카토.

작품 전체를 통틀어 카이사르와 함께 가장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마력적인 매력을 풍기는 인물이다. 

특히 최후까지도 너무너무 인상적인데, 그 페이지를 읽으며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자신의 OO를 꺼내는 최후. 이건 진짜....

너무나 카토다운 죽음이었다. 


 

[시월의 말]의 후반부 이야기의 축은 '계승자'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기병대장이었던 안토니우스의 대립으로 옮겨간다.

카이사를 암살한 세력들은 권력의 공백을 장악하지 못했고, 옥타비아누스가 가장 먼저 카이사르의 군자금들을 접수하면서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술라, 카이사르에게도 각기 약점은 있었지만, 옥타비아누스의 약점에 비교하니, 약점도 아니다.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의 약점을 알면서도 그를 후계자로 지명할 정도로 그 재능을 읽었고, 약점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조언들을 건넸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에게 충성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들을 두면서 약점들을 커버하고자 했다. 그들 중 하나가 내가 2000년 대학입시때 소묘로 그렸던(ㅋㅋ) 아그리파였다. 젊은 정치 천재가 동료들을 얻고, 탁월한 정치감각을 발휘해 육체적인 약점을 극복하며 차근차근 성장하는 이야기는 흡사 일본만화처럼 흥미롭기 짝이없었다!!!! 


많은 학자들이 '로마 공화정의 최후의 정확한 시기' 를 점찍지 못한다. 

이는 이후 동서 로마의 멸망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로마는 시대를 지배한 패러다임이었고, 정신이었다. 

그저 왕과 나라이름이 바뀐게 아니다. 

수백년간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바뀌는 과정이 한두해 뚝딱 해서 바뀔 리가 없다.

로마 공화정의 종말은 고대와 중세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사건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으로 로마라는 거대한 문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간파해냈다.  

로마에서 가장 먼 속주까지 법률이 도달하기까지는 몇년이나 걸렸지만, 정작 집정관의 임기는 고작해야 한두해에 불과하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집정관을 여러번 역임하면서 그 맹점을 해결했고, 술라는 독재관이라는 예외조항을 강화하여 적용시켰다. 콜린 매컬로와 많은 학자들이 공화정의 종말을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기준점을 찍는 이유이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후 콜린 매컬로는 독자들의 성원에 못이겨 7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를 집필했다고 한다.

옥타비아누스는 [시월의 말] 을 통해 로마 제국의 꿈을 이미 싹틔웠다. 이미 동서를 가르는 거대한 지배체계도 상상해냈다. 옥타비아누스의 로마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비록 콜린 매컬로의 로마사는 다음권이 마지막이지만, 옥타비아누스가 만들어갈 새로운 로마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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