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Walk 문워크 - 마이클 잭슨 자서전
마이클 잭슨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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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9년 6월 25일. 충격적으로 돌연사한 마이클 잭슨은 결국 타살로 결론이 났다.

주치의에 의한 살해.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태어나, 5세때 연예계에 데뷔해, 전 세계적으로 7억 5천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하고, 13개의 그래미상을 받았으며,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공연자' 와 '작곡가' 부문에 영원히 남을 이름을 새긴 그는 결국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교 2학년때로 기억한다. 1995년.

바로 마이클 잭슨의 히스토리 앨범이 한국에 발매 된 바로 그 해이다.

그렇다.

내가 가장 처음 접해본 마이클 잭슨의 음반은 바로 '히스토리' 였다.

카세트 테입을 통해 들은 그의 넘버들은 그 자체가 역사였던 곡들이었다.

개인의 역사와, 음악의 역사가 맞물려지는 놀라움.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은 내 기억에 2004년인가 5년에 미국과 유럽에 출판되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몇곡의 새로운 싱글이 포함된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까웠던 '히스토리' 이후 6년만에 나온 <ivincible>(2001) 이 생각외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하자 마이클 잭슨은 지금까지의 음악인생을 정리해보고 뒤돌아보는 입장에서 자서전을 계약하고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음반을 낸것도 결혼과 이혼때문이라는 루머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아주 말이 안되는건 아닌 듯 하다.)

당시의 기사들을 찾아보면, 이 자서전도 인터뷰어가 발췌하여 엮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부분도 있다고 한다.

여하튼, 국내에서 절대 구할 수 없었던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한국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히스토리' 투어와 '잭슨과 친구들' 투어를 통한 두번의 한국공연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외빈으로 초청되었던 일 등이 떠오른다.

한국에 올때마다 아동시설에 큰 돈을 기부했던 것도 기억난다.

 

마이클 잭슨은 정말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의 감각은 언제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음악은 단지 사람들이 좋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가볍고 신나는 댄스곡부터, 감미롭고 아름다운 발라드까지.

가벼운 가사로, 즐겁고 흥겨운 곡들부터, 무겁고 진중한 메시지가 가득한 곡들까지.

 

그는 언제나 사랑을 노래했고 <I just can't stop lovin'n you> , 폭력을 세상에서 없애고 싶어했다.<Beat it>

소외되고 길거리로 몰린 소년들을 걱정했으며 <Bad>, 모든 인종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Black & White>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를 원했다.<We are the world>, 우리의 아이들만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Heal the world>. 그리고, 언제나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이기도 했다.<You are not alone>

 

이 자서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친 그런 여러 곡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가 잘 나와있다.

그가 어떻게 5살에 잭슨5 로 데뷔를 했는지, 어떠한 연예계 생활을 해왔는지.

그의 인생에서 음악이란 무엇이고, 공연이란 무엇인지가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 재능이 100%이상 구현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조건들도 재능 안에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자신이 만드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가는 최선을 다할 수가 없다. 자신을 스스로 믿지 못한다면 누가 믿어주느냐 말이다." p.215

 


 


 
"작업에 들어가면 나는 그야말로 대단한 자신을 갖는다. 계획에 착수할 때는 그것을 백 퍼센트 믿는다. 나는 글자 그대로 혼을 거기에 쏟아 넣은 것이다. 그러다가 죽어도 상관없다.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다. " p.217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 할 수 있는 열정이 있었으며, 목표를 만들고, 이루기 위한 노력을 했다.

 


 
"만약 당신이 세계를 좀 더 멋진 터전으로 꾸미고 싶은 생각이라면, 먼저 당신 스스로를 잘 보고, 자신부터 개선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당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신 스스로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p. 300

 


 

 

 

그는 비록 결혼에 실패했지만,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음악과,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물론, 그도 사람이었기에, 많은 상처도 받았고, 많은 실망도 했다.

 

하지만, 음악은 영혼의 거울이다.

만약 그의 영혼과 마음이 거짓투성이었다면, 그의 음악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고,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그의 삶은, 그의 재능의 댓가이자 선물이다.

 

그의 삶이 존경스럽다.

결국은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공연을 준비하던 연습도중 죽지 않았는가?

 

그의 삶이 담긴 이 책의 문장들이 내 마음속에 꽉꽉 들어찬다.

나의 열정도, 아직 타오르는 중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어영부영 할 때가 아니다. 우물쭈물 할 때가 아니다.

'버나드 쇼' 의 묘비명처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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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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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스페인 바르셀로나.

다비드 마르틴의 아버지는 필리핀 전쟁에 참여한 상이군인이었다.

전쟁에 참여하는 동안 아버지에게 남겨진 건 아내로부터의 버림, 국가로부터의 버림, 사회로부터의 버림. 그리고, 어미로부터 버려진 아들, 다비드 마르틴이었다.

마르틴의 아버지는 전쟁이 남기고 간 잔상으로 고통스러워 했고, 자신과 유리된 세상을 원망했으며, 메마른 감정을 적시기 위해 끊임 없이 술을 들이부어야 했다.

마르틴은 불우한 환경속에서 유일한 마음의 위안을 펜과 잉크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보다 빠른 속도로 글자를 습득했고, 글이 종이위에 쓰여지며 만들어내는 반짝거리는 이야기들을 사랑했다.

이웃 서점 주인인 셈페레는 그런 마르틴에게 언제나 마음껏 책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마르틴의 아버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살인자들에게 총을 맞아 품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마르틴은 아버지가 일하던 [기업의 소리] 신문사에 사환으로 취직된다. 마르틴이 신문사에 취직되는데는, 신문사의 스타이자 편집인의 절친한 친구인 바르셀로나 최고의 갑부들 중 하나인 페드로 비달의 덕이었다.

그때부터 페드로 비달과 마르틴의 인연은 시작된다.

스승이자 친구였던 페드로 비달의 후원 덕에, 마르틴은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운 좋게 신문 지상에 글을 올리게 된다. 

그의 재능은 지면에 실려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일약 인기 소설가가 된다.

 

그가 스페인 유수의 출판사와 10년의 장기계약을 맺고 글쓰는 기계처럼 인기 작품을 양산해 내고 있을 즈음, 페드로 비달의 운전수 딸인 크리스티나와의 인연이 시작되고, 안드레아스 코렐리라는 의문의 인물과 첫번째 접촉을 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남몰래 크리스티나를 연모하고 있던 마르틴.

그리고, 어마어마한 댓가를 약속하며 의문의 책을 집필해 줄 것을 요청하는 안드레아스 코렐리.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스페인의 현대문학을 접한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고전 중에서도 스페인 작품을 접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투우,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 월드컵에서 한국과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 가우디의 고향, 열정의 나라.

스페인에 대해 떠오르는 몇가지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

책에서는 이런 이미지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몽환적이고, 전반적으로 차분한 이 작품은 자신만의 흐름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독자를 이야기의 흐름속으로 빠뜨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전형적인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독자들을 이입시킨다.

특히, 작가로 나오는 주인공은 마치 실제 인물처럼 감정의 흐름과 묘사가 대단히 리얼하고 디테일하다.

또한,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장들도 대단히 아름답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문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야기의 진행은 약간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의문의 인물, 의문의 사건들이 등장하고, 마지막까지 속 시원하게 뭔가를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것 같다.

최근 한국의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풍의 속도감 있고, 전반적으로 잘  정련된 작품들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복잡할 뿐더러,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도 상당히 디테일하다. 그때문에 전반적인 호흡도 보다 여유있게 느껴진다.

작가는 어떤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데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상황을 인지하고, 감정의 흔들림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과정이 디테일한 반면, 이야기의 진행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런 점들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면, 독자들은 주인공에 보다 쉽게 이입할 수 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느끼는 일련의 흐름들을 똑같이 느낄 수 있고, 마치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그런 식의 독서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지루하고, 쓸데없는 묘사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다비드 마르틴' 은 삶의 굴곡을 겪으면서 부드럽고 배려심있지만, 어딘가 빈 인물로 자라난다.

어머니가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시절을 겪은 마르틴은 외로움이 너무나 익숙하다.

그에게 고독과 외로움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을 터다.

그런 마르틴이 부드러운 심성과 배려심을 배운 것은 너무나 자상했던 서점주인 셈페레와 멘토이자 스승이었던 비달 덕분이었으리라.

셈페레는 책에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마르틴은 좋은 영혼, 고귀한 영혼이 담긴 책들을 읽으며 자라왔고, 결국 마르틴 역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위에 언급했듯, 이 작품의 복잡한 이야기들은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다.

책을 덮어도 수많은 의문들이 그대로 살아있고, 해피엔딩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는 순간 무언가가 가슴 깊이 다가왔다.

 

나는 가끔, 나의 인생은, 사실 누군가가 읽고 있는 책이 아닐까. 혹은, 누군가가 써내려가고 있는 이야기의 인물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어느정도 맞을지도 모른다.

신이 써내려가는 나의 인생.

혹은 내 자신이 써내려 가는 나의 인생.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책을 만들어 낸다.

 

나는, 하루하루 어떤 이야기들을 모아서 적어넣고 있는가?

 


 

"네가 보고 있는 각각의 책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어.

그 책을 쓴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도 가지고 있어.

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가 그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릴 때마다, 그 책의 영혼은 커지고 강해지지.

이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잊혀 버린 책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살면서,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에 이르기를 기다려.... "        2권 p.349 

 



 

 



 

"자네에게 달려 있어, 마르틴. 나는 자네에게 백지 한 장을 건네주겠네. 이 이야기는 이미 내것이 아니야."    2권 p. 365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내가 그녀에게 끼쳤던 해를 보상하며, 내가 그녀에게 결코 주지 못했던 것을 되돌려 주는 데 우리에게 남은 모든 시간을 사용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이 글은 그녀의 마지막 호흡이 내 품에서 꺼지고,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안 쪽으로 그녀와 함께 갈 때까지 우리의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녀와 함께 영원히 물속에 가라앉고 마침내 천국이나 지옥도 우리를 결코 발견할수 없는 장소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2권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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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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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세기 말. 흔히 구한말이라고 불리우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던 바로 그 무렵.
조선은 서구 열강의 개방요구를 묵살하며,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주도 하에 쇄국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흥선 대원군은 고종을 조선의 왕으로 옹립하고, 외척을 배재하기 위해 민자영을 고종의 배필로 삼게 한다.
 
사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던 민자영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즐겨 가셨던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가기 위해 나룻터로 나간다.
민자영의 사가에서 바닷가 까지 가기 위해서는 일단, 강의 물길을 따라 근처까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룻터에 묶여있는 배의 사공인 무명은, 낮에는 뱃사공이지만 밤에는 살인청부업을 하는 암살자였다.
나룻배에 홀로 몸을 실은 민자영과 그 배의 사공인 무명.
무명은 자영을 보자마자 한눈에 빠져들게 되고, 자신의 어두운 앞날을 체감하는 민자영의 옆모습을 보며 정줄을 놔버린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최근,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는 사고능력이 현격히 저하된다는 사실을 영국(인가 미국인가)의 한 유명 대학교에서 실험을 통해 증명해냈다고 하지 않는가.
 
민자영에게 한눈에 반한 무명은 바로 그순간, 자신의 모든 인생을 민자영에게 바치기로 한다.
 
소싯적에, 두려움에 떨던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 가슴속에 두고두고 사무쳤는데,
바다를 바라보던 민자영의 옆모습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나 뭐라나.
그런 이유를 대지만,
결론은 하나다.
 
이쁘니까.
 
너무나 예쁜 민자영에게 순식간에 반해버리고,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이해할 수 있다.
난 남자니까.
 
그런데...
이건 영화다.
남녀노소 모두가 다 보는,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딱지를 붙인 모두에게 공개된 영화.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결국은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되는 비극의 왕비 민자영.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무명.
정말, 너무나 많은 작가들이,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던, 고리타분하기 그지 없는 소재들을 엮고 엮어서 뭔가 만들어는 냈는데.
너무나 아쉽기 짝이 없다.
 
이야기의 구조는 헐겁기 짝이 없고, 시퀀스의 전환은 생뚱맞을 정도로 부자연스럽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부자연스러운 전개과정 속에서 고군분투하지만, 위에 언급한 자영과 무명의 첫 만남처럼,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전개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려버린다.
 
액션장면은 그렇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최근 액션의 트렌드인 슬로우 - 퀵 - 슬로위- 퀵 의 느낌도 잘 살렸고, 특히 피겨 스케이팅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조선최고 검객이자 대원군의 수하였던 뇌전과의 1:1 대결은 이미지들이 적당히 어우러진 신선한 시도였다.
영화 전체에서 액션의 비중은 지나침도, 모자르지도 않은 적절함이 돋보였다.
 
하지만, 역시 악평이 끊이지 않는 허접한 CG는 그야말로 옥의 티 중의 티.
액션장면에서는 비교적 많은 공을 들인 듯, 생뚱맞은 장면들은 있었을지언정, 그래픽 처리가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액션장면보다 중요했을 감정씬에서 등장하는 CG들은 솔직히, 드라마 '꽃남'의 오리CG만큼 어색했다.   
폭탄 테러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했고,  클라이맥스에 광화문 앞 서울거리의 CG는 너무나너무나 어색해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액션장면보다 중요한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처리했다니.....ㅠㅠ
 
전반적인 이야기의 줄기는 괜찮았다.
무명이 민자영에게 연심을 품는 초반 설정만 괜찮았다면, 자영과 무명 사이의 감정 흐름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덕수궁 전기불 점등식이라던지, 외국인들을 초대하여 오찬을 즐기는 모습 등은 정말 신선하고 좋았다.
하지만, 역시 임오군란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이야기의 줄기를 지나치게 압축해서 보여줌으로서 오히려 이야기 전반에 독이 되었다고 본다.
 
수애와 조승우의 연기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대사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소화해 냈다.
 
특히 마지막 10분은 액션도, 흐름도, 캐릭터도, 연기도 모두다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명장면으로 꼽히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감정의 누르기와 터뜨리기가 절묘하게 자리잡아 있었다.
 
전반적으로 긴 호흡의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 무리한게 아닌가 싶다.
사건이나 시간의 앞뒤를 좀 더 창의적으로 비틀어서 전개했으면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무명이 자영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아름다운 갈대밭,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가을.
원래 가을남자는, 껌 하나만 내밀어도 홀라당 넘어온다고 하지 않는가.....
 
 

뇌전과의 일검.
궁 안에서의 음모가 지나치게 압축되어져 있어서 대체 뭔소린가 싶기도 했다.
뇌전이 왜 자영의 어머니를 죽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해보고, 역사적인 배경지식까지 알아야만 했다. 
 


그래도 멋있었던 둘의 진검승부.
 
 
 

외국 공사관의 부인들과 오찬을 나누는 자영.
저 외국 부인들 뒤에 조선 통역사들이 한명씩 붙어있다가, 자영이 말 한마디만 하면 열심히 통역해 주는 장면이 신선하고 웃겼다.
 
 

허리가 드러나니, 모든게 드러나는 것 같군요. 난 한복이 좋아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죠.
 
 
 

빛이 없는 곳에, 이름도 없다. 무명.... 그래서 그는 그림자의 삶을 살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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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달력 2
장용민 지음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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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레이크는 촉망받는 역사학자였다.

향후, 미국 역사학계의 장래까지 거론될 정도로 명성을 쌓고 있던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 헬렌과의 사이에서 어여쁜 딸 제레미를 얻으며 최고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가. 딸 제레미가 행방불명 되고 만다.

레이크와 헬렌은 경찰에게 맡기고 매일매일 기도하는 나날을 보냈지만, 두달이 넘도록 뉴욕 경찰들은 어떠한 단서도 잡아내지 못하자 레이크가 직접 딸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모든 능력과 초인같은 의지를 발휘한 하워드 레이크는 결국 사건의 범인을 스스로 검거하는 일을 해내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딸 제레미는 차디찬 주검으로 변한 뒤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헬렌은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고, 하워드 레이크는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내려두고 사설탐정이 된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 의뢰인이 찾아온다.

의뢰인인 여인은 하워드에게 자신의 딸 '엠마' 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딸처럼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던 엠마는 무수한 상처자국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왔으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엠마가 집으로 돌아왔을때 했던 첫 마디는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했다.

그 이름은 '새뮤얼 배케트' .

 

하워드 레이크는 이 정체불명의 여인으로부터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새뮤얼 배케트라는 인물의 뒤를 밟아가면서 뭔가 이상한 점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지구의 멸망에 관계된 무언가에 한발 한발 다가가게 된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놀라운 소설을 선보였던 장용민이 오랜 세월동안 웅크린 끝에 엄청난 스케일의 대작을 완성했다.

마치 미국의 장르소설들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 큰 스케일의 작품은 퍼즐을 하나씩 짜맞추는 미스테리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주제는 결국 인간의 종교에 직결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있다는 점에서 [다빈치 코드] 와 [천사와 악마]의 '댄 브라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개의 큰 축 중 하나는, 

'새뮤얼 배케트'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을 갖고 그 뒤를 쫓는 하워드 레이크와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이고,

두번째는 주인공인 하워드 레이크가 끊임없이 되뇌이는,

'신을 믿습니까?' 라는 의문일 것이다.

 

'새뮤얼 베케트' 라는 인물을 보면, 단순히 어떤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서로가 대화하는 시퀀스들로만 이루어졌지만, 큰 파장을 불

러 일으켰던 영화 [맨 프롬 어스 The Man From Earth] 라는 영화가 곧바로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새뮤얼 베케트' 라는 인물을 창조해내고, 작품의 얼개를 짤때 어느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가 전 이 영화 몰라요, 그럼 할 말은 없다.)

 

잠깐 이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1만 4000년. 즉 인류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현대까지 죽지않고 살아왔던 한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이 바로 어떤 학교의 선생이었다. 그는 불멸이라는 속성 탓에, 한 지역에서 몇년 이상 머물지 않는데, 이번 직장의 동료들에게는 자신이 불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어떠한 가정법을 통해 밝혀준다.'

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축적해온 엄청난 지식과 지혜를 통해 그 자리에 모였던 동료 교사들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자신이 불멸의 존재이고, 그들이 '예수' 라 부르며 신의 아들이라 믿는 존재의 발자취도 실은 자신의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들에게 '불가침의 영역' 을 건드린 것이다.

 

이 부분때문에 [맨 프롬 어스] 라는 작품이 미국 종교사회 안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고 알고 있고, 아마 국내에 수입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극단적인 나의 생각이지만) 국내 종교단체의 압박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거의 예술영화 수준이어서, 그게 아니더라도 배급사들이 수입할 생각조차 안했을수도 있다. ^^

 

다시 [신의 달력] 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수집을 하고, 그 정보들은 이야기 안에 짜넣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분명히 느껴진다. 이 정보들은 분명 단순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디테일하고 정밀한 정보들은 톱니바퀴처럼 어우러져 이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조금 아쉬운 점은 역시, 지나치게 획일화된 플롯에 있을 것이다.

사실, 이야기의 얼개는 '다빈치 코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헐리우드 영화식 구성' 을 모범답안처럼 차근차근 쫓아간다.

 

의문이 등장하고, 의문을 쫓기 시작하면, 단서들이 툭툭 떨어지고, 음모가 있고, 적들이 있으며, 반전이 있고.

결국 이런 작품의 재미는 단서간의 유기성과, 음모의 참신성과 현실성일 것이다.

참신하고 현실적인('아 이럴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음모를 통해, 단서들이 유기적으로 배치되면, 굳이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안타깝게도 단서간의 유기성이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또한, 인물간의 갈등이나 관계성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헐거운 느낌이다.

도입부는 좋았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만든 거대한 스케일의 압박때문인지, 캐릭터의 매력은 점점 떨어져간다.

특히, 2권째에 진행되는 내용들은 좀 생뚱맞다고 생각되는데, 결국 극의 초반과 후반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단서와 단서간의 연관성이 이야기와 인물에 의해 착 달라붙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정보에 의한 연관성으로 모아지기 때문일수도 있을 것 같다.

 

[신의 달력] 이라는 이 작품은 생각보다 책장이 굉장히 잘 넘어가는데, 이야기가 감칠맛난다기 보다 흥미로운 정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보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들이 가득하다.

작품을 놓고 봤을때는, 그 방대한 정보들과, 그 정보들을 담으려 하는 작가의 과욕이 조금은 독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봤을때도, 이 작품은 꽤나 재미있다.

영화 [맨 프롬 어스]가 떠오르고, [만들어진 신] 의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인문학자가 보면 펄펄 뛸 행보를 보여주지만, '새뮤얼 배케트' 라는 인물 또한 흥미롭다.

위에 언급했던 헐리웃식의 플롯도 모범적으로 따라가고 있기때문에, 이야기의 통일성이나 완성도도 좋은 수준이다.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출신 답게, 묘사나 서술도 시각적이고, 진행도 스피디 하여 읽는 맛은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소재들로, [다빈치 코드] 못지 않는 팩션을 우리작가가 만들어 냈다는 점 또한 자랑스러워 할 만 하다.

 

책을 덮은 뒤에, 나 역시도 고민했던 이 주제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일단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과연 신은 정말 인류의 탄생과 멸망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만든 것 처럼,

인간들의 집단인 '인류' 역시 태어났기에, 언젠가 반드시 멸종되도록 만들어 놓으셨을까?

 

아, 배고파.

밥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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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종로구 명륜동. 평범한 여교수가 목을 멘 시신으로 발견된다.

어떠한 저항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여교수는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여교수는 앉은채로 목이 졸려 있었던 것이다.

과연, 사람이 앉아서 자살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냥 일어서기만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데, 그 생존욕구를 이겨내고 죽어갈 수 있을까?

종로 경찰서의 목반장은 본능적으로 사건의 냄새를 맡았지만, 타살의 어떠한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혼자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여교수 김미진의 장례식에 들른 이정수라는 남자를 발견한다.

국제적인 핵융합 원자로 연구단체 ETER 에서 핵심적인 기술의 연구를 맡고있는 이정수는 죽은 여교수 김미진과 절친한 사이였다.

목반장으로부터 김미진의 시신 발견 당시의 정황을 들은 이정서 역시 타살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수사에 협조하게 된다.

 

김미진의 유품인 컴퓨터의 데이터를 살펴보던 정서는 김미진이 절친한 사이였던 사학과교수 한은원과 공동으로 연구하던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동으로 연구하던 과제는 다름아닌 과거에 있었던 행성배열에 대한 것이었다.

바로 [단군세기] 에 나와있는 기록인 태양계의 다섯 행성의 일자배열에 관한 부분을 시뮬레이션 한 기록을 찾아내고, 죽은 김미진과 한은원이 곰과 호랑이의 단군신화로 치부된 고조선의 진정한 역사를 찾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것이다.

이정서는 김미진의 죽음에 그것이 연관되어있음을 눈치채고, 목반장과 함께 한은원의 행방을 수소문한 결과, 한은원이 중국에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러던 도중, 한은원이 자신에게 남긴 듯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정서는 사건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김진명 작가의 최신작인 '천년의 금서' 는 한국 사학계에서 정사로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는 '환단고기(한단고기)' 중 [단군세기] 라는 책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부분은 예로부터 많은 관심과 주변국들의 공격을 받아왔던 부분이다.

김진명 작가는 초기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에서부터 끊임없이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부분을 조명해 왔다.

'환단고기(한단고기)' 에 약 5000여년간의 치세 기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배달국'과 '환국'이다.

(이 저서는 20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여러 의문점이 제기되어 현재 한국 사학계에서는 위서로 치부되고 있다. 이 저서에 행성의 일자배열과 조수간만의 특이한 변화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작가는 이 일자배열과 조수간만의 변화가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명해낸다면 환단고기라는 저서 자체의 신빙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천년의 금서' 의 한 축이기도 한 '한은원' 은 "왜 우리나라의 이름을 지을때 '대한제국' 이라 지었었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대한민국. 한국의 한韓은 과연 어디서 온 한일까?

분명 중국의 그 한나라는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조선의 국왕이 나라 이름을 짓는데, 중국의 나라이름을 계승할리는 없지 않은가?

 

'고구려' 는 '고려'를 계승한 이름이다. 고구려처럼 기세를 떨치기 위함이었을 터다.

'조선' 은 '고조선' 을 계승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대한제국' 은 왜 하필 한반도의 아주 작은 연합체였던 '삼한(마한 진한 변한)' 의 이름을 계승했을까?

일제시대 전인 고종시대에는 '삼한' 이 계승했던 고대'한' 에 대한 기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는 결국 한국의 뿌리는 어디일까?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김진명이라는 작가를 말하면, 언제나 들먹이는 단어들이 있다.

애국, 애족주의, 민족주의, 국수주의...

아름다운 단어들이지만,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나름 진보주의자라 칭하는 것들의 입에서 새어나올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보다 부정적 의미를 담은 단어가 되고 만다.

 

개인적으로, 나도 지나친 애국, 애족주의나 민족주의, 그리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치우쳐지는 국수주의, 나아가 군국주의로 변질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애국,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쉽게 쓰여지고, 지나치게 신봉되어도 안되지만,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할 성질의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의 자긍심과 아름다움을 찾아내자." 는 얼마든지 지향되어야 하지만,

"우리민족을 얕보는 것들은 모두 추방하자." 는 절대로 지양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전통을 널리 알리자." 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세상 다른 민족들보다 우리 민족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하자." 는 확실히 몰아내야 한다.

 

김진명이라는 작가의 수많은 저서들은, 언제나 지향되고 존중받을만한 메시지들로 충만했고, 여전히 충만하다.

특히, '황태자비 납치사건' 에서는 '화해와 용서' 에 대한 메시지를 당당하게 내밀었었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민족주의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비난도 받았었다.)

이 작품 역시, 분명 애국,애족주의로 비판당할 부분은 분명 존재하지만, 한국 사학계의 잘못된 점 역시 날카롭게 지적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탐욕스러운 국가에 둘러쌓여 있는 우리에게는 분명 애국, 애족, 민족주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민족주의의 발로가 혼혈아를 차별하거나, 재외동포에 무관심하거나, 우리 민족을 욕한 외국인을 찾아 성토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광장에 모여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외국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응원하고, 광복절날 태극기를 망토처럼 펄럭이며 오토바이로 폭주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역사를 똑바로 알고, 외국인에게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우리나라를 잘 모르고, 한 면만 보고 욕하는 외국인에게, 우수성과 아름다운 점들을 보여주고 안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나라에 어떤 세계문화유산이 있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월드컵 4강에 오르고, wbc 준우승에 빛나지만, 혼혈아가 차별당하고, '미수다'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좋은말을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 재외동포인 젊은 연예인이 마녀사냥처럼 악플에 시달리다가 씁쓸하게 출국한 일련의 사건들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 때문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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