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 씨의 타격 폼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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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름부터 웃기다. '박 상' ....

그 책 작가가 누군데?

박상.

......

그냥 박상이야.

 

박상 뒤에 뭔가 한 자 더 올것 같아서 작가가 누구냐고 묻고 좀 기다렸는데, 그냥 박 상이 맞단다.

이름부터 '허걱' 하게 했던 이 독특한 단편집은, 매 작품들이 '허걱' 하게 할 정도로 '깬다'.

그래, 한국 문단에서도 이제 색다른 시도를 주류로 받아들이고, 관념을 뒤집는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했는데, 급기야 이런 작품까지 나왔다.

 

첫 단편인 '치통, 락소년, 꽃나무' 를 시작으로,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원식씨의 타격폼' 그리고 '홈런왕B'  생각지도 못한 쇼킹한 러브행각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연애왕C' 그리고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외계로 사라질테다' 와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  그리고 마이너한 감성을 듬뿍 담아내며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사랑과 연애, 고민과 삶들을 잘 담아낸 '춤을 추면 쉽지 않아 '체면 좀 세워줘' ,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

모든 작품들이 통통튀는 상상력과 슬럼가의 흑인 랩처럼 말 그대로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문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어떤 문화 장르에서건 작가가 데뷔하기 위해서는 '단편' 이 필요하다.

영화, 소설, 만화 모두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모든 역량을 부어 자신의 경험과 숨결을 한정된 지면 안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모든게 '압축' 되어 담겨있기 때문에, 단편은 한두번 읽어서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또한 소설 단편은 수필등과 확연히 구분된다.

플롯을 압축하고, 장면들을 나누어 이중 삼중의 장치를 사용해 교묘하게 메시지를 드러낸다.

좋은 단편일수록 플롯은 단순하고, 담겨있는 것들은 많다.

양파를 벗기듯, 단순한 모양 속에 새로운 면들이 계속해서 솟아난다.

 

소설가 박상이라는 인물을 세상으로 끌어올린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이 딱 그런 작품이다.

냉동된 닭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였던 주인공이 연인에게 버림받고,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얻어오면서 시작되는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속에, 절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며, 사랑과 우정이 있다.

 

"그는 공간을 장악해가고 시간까지 장악해간다.

목소리가 시공을 초월하면서 완벽한 절정에 다다른다.

인간의 삶도 없고, 짝짝이 구두도 없고, 잊혀지지 않는 여자의 얼굴도 없고 사투리를 쓰는 배송과장도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

무겁게 퍼지는 하드락처럼 도도하게 존재할뿐.

p.264"

 

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내일도 짝짝이 구두를 목도할 것이고,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사투리로 까대는 배공과장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락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너 뒈지면 죽여버린다!' 고 말하는 친구도 있으며, '자신의 삶에 기대어드는' 따뜻한 체온의 고양이도 있을것이다.

 

"기분 좋은 웃음이 잠깐 그의 심장 박동에 감흥을 싣는다.

바람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날아간다.

P. 265"

 

 

이 등단작이 이 책의 말미에 실려져 있다는 것 또한 유머러스한 편집이다.

편집자와 작가간의 소통이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는데, 비교적 서정적이고 담담한 내용의 등단작과는 달리 나머지 8편의 작품들은 모두 파격에 가까운 상상력과 구조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는듯한 얼얼함, 손바닥을 치게 만들 유머. 거기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현실을 담고, 그것을 교묘하게 조소하는 문체를 뒤섞으면 '박상' 표 '밥상' 이 완성된다.

 

최고의 밥상. 최고의 밥상은 뒤 엎는게 제격이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이해, 라는 것은 무조건 쌍방이다.

일방적인 이해는 폭력이나 돈이나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 없이 이해를 바랄때는반드시 쌍방이어야 한다.

p. 106p"

 

"사랑이란, 그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금 사랑때문에 아픈데 그 사랑을 지키겠노라고, 믿겠노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행복이 다운되어 버린다.

세상에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데 뭣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걸 해야한단 말인가.

p. 110"

 

"작은 고양이와 그의 눈이 처음으로 맞부딪힌다.

그는 밥공기를 놓고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럽게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준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눈물을 닦을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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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 플래닛 헐크 시공그래픽노블
Pagulayan, Carlo 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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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하고 강렬한 액션! 글래디에이터를 뛰어넘는 짜임새있고 완성도 높은 영웅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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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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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번 다 읽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사실 각 최소한 두번, 혹은 세번까지도 읽은 작품도 있었지만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책 말미에 자리하고 있는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작가의 말 까지 다 읽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나 어렵지만, 대단히 매혹적이다. 여기서 어려움이란, 우리가 '인생이란 알수 없는거야.' 라고 말할때의 그 알 수 없음과 일맥상통한다. 대체, 이 이야기들이 왜 이토록 '알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은 다시 책의 처음을 펴게 만든다. 다시 문장들을 하나 하나 씹어 읽게 만든다. 문득, '정작 김연수 작가는 마치 쉬운 듯 슥슥 써내려 갔겠지?' 라는 마음이 생겨 샘이 나기도 한다.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나는 잘 모른다. 그냥 단지,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 세상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인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는 정도. 또한, 이성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비논리, 규칙보다는 랜덤, 권위보다는 관용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얕은 지식으로는 김연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사조로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할 수는 없을터. 단지, 그의 작품이 무언가 진리를 갈구하는 것도,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것도 아님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안에는 어떠한 교훈이나, 삶의 진리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책 안에는 총 9편의 단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케이케이' 라고 불리우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류작가인 주인공. 케이케이의 추억을 더듬어 한국을 찾은 노작가의 따뜻한 사랑이야기만 같은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부터 소름이 오소소 돋았던 엔딩이 인상적이었던 [달로 간 코미디언] 까지, 짧고 긴 단편들이 꽉꽉 자리잡고 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나는 김연수 작가의 단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과 머릿속에서 나오는 창조물이다. 그리고, 사람은 각기 다른 경험과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하물며,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남을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천사의 게임] 이라는 책에서 '한 권의 책에는 작가의 영혼이 스며 있다' 고 까지 했는데, 내가 타인의 영혼이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난 단지 보았을뿐이다. 김연수라는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속에 어떤 영혼을 녹여내었는지 보고 느끼려고 했을 뿐이다.

 

 

단편집 제목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인 것 처럼, 이번 단편집의 작품들에는 모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들어있다.

당연히, 전혀 달콤하지도,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지만, 가슴에 사무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사랑말이다.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결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랑' 이라는 단어 안에 귀결시킬 수는 있을터다.

왜냐하면, 사랑은 '추억' 이고, '소통' 이기때문이다. 사람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어가고, 소통을 통해 현재를 완성해간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P.81 [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시인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세계의 끝'까지 함께 가고 싶었던 사랑. 시인은 지금 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상은 내가 죽는 순간 끝이 난다. 지금 내가 영위하고 있는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은,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일터다. 이렇듯, '자신의 세계' 가 끝이 나는 그 순간까지도 시인은 한 여자와 사랑했던 순간을 추억한다. 어쩌면, 작품속에 등장하는 시인이 말한 '세계의 끝' 은 자신이 죽는 순간을 의미할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인은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하고 싶은 여자' 를 사랑했던 것이다.

 

 

사람의 죽음이 누구도 모르게 느닷없이 찾아오듯, 실연도 느닷없이 찾아온다. 어떤이들에게 사랑의 끝은 자신에게 있어 세상의 끝과 같은 착각을 안겨준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을 '죽음' 으로 잃었을 때 세상의 끝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상실의 고통은 쓰디쓰다. '소통을 노력해온 대상의 세상' 이 사라진다는 고통은 이루 설명할 수 조차 없다.

 


날 때부터 연약했던 그 작은 심장 하나가 멈췄을 뿐인데, 완전히 텅 비어버린 지구에 대해. 그러다가 어느 날, 해피는 문득 깨닫는다. 으아아아으으어. 그건 그 아이가 군살처럼 느겨지던 나날, 차라리 행복했던 그 시절. 새벽마다 자신을 깨우던 아이의 울부짖음이라는 것을.  .....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P. 26-27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때로 사랑은 고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자 하지만, 고통에 매혹되기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이성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랑이 주는 고통보다, 사랑을 잃은 뒤의 고통을 더 두려워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끝이, 그 혹은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세상이 끝나는 것과 맞먹는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혹은 그녀들은 사랑이 주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감내하고 이겨내고 극복하려 한다. 노력하면 극복되어지리라 믿는다. 희생하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듯 일그러진 사랑도 존재한다. 그것도 분명한 사랑이다.

 


 
순식간에 고통이 그녀의 몸으로 밀려들었다. 언제라도 그녀를 매혹시켰던 고통이었건만 맛보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기에 그토록 끌렸던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을 일으켜야만 한다는,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자신이 알던 세계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뒤에도 그녀는 바닷속에 머물러 있었다.    P. 59 [기억할만한 지나침]


 

 

[기억할만한 지나침] 의 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했다. 정해진 틀, 정해진 학교, 강요된 꿈. 그것들만으로도 현에게는 고통이었지만, 그는 더 큰 고통을 원했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음' 에 대한 갈망이었다. 억압된 세계. 강요된 세계. 현은 순간의 일탈로 강요되고 억압된 세상을 끝내고자 애썼지만, 그것은 아직 어린 소녀인 현이 감당할만한 무게가 아니었을터다.

모든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지만, 정작 안정을 획득하고 나면 다시 변화를 원한다. 정작 변화의 계기가 찾아오면, 변화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움찔거리고 오히려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변화에 익숙한 삶이라면, 안정된 삶을 추구하면서도 두려움을 갖게 될 터이고, 안정된 삶이라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두려움을 갖게 된다.

 

사랑은 그 모든것의 복합체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소통을 의미한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멀리 있으면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연애 초기의 남녀는 하루종일 붙어다니고, 전화통에 불이 날정도로 대화를 시도한다. 소통은 일종의 확인이다. 내 옆에 그가 있는지. 내 말을 그녀가 들어주고 있는지. 내 마음이 그녀에게 닿고 있는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나와 가까운지. 그리고, 그것은 고통의 시작이기도하다.


소통하면, 고통은 없는거야. 맞지?? 이 두사람이 늘 함께 붙어 있다가 이렇게 떨어지면, 서로 소통이 안 되니까 그게 고통이잖아.

..... 암튼 붙으면 고통이 없고 떨어지면 고통이 생기고, 그런 거야. 그래서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거야. 곁에 없으면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야.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는 처지가 되는 거지. 걔는 왜 그랬을까? 정말 이상한 얘잖아? 이해할 수가 없어.한때 나 자신보다 더 친했던 사람에게 느끼는 그런 의문 자체가 고통이라구.
P. 246   [달로 간 코미디언]


 

 

결국 인생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고통이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기도한다.

이런 아이러니를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소통이고, 소통이란 서로 노력해야만 가능한 부분이다. 일방적인 소통이란 없다. 한쪽은 말만하고, 한쪽은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사랑은 순수한 고통만 남게 되고, 그것은 더이상 인생을 위한 사랑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설사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잃는다 해도, 아직 당신과 나의 세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우리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끊임없이 사그라든다.

그것이 각자의 '세계' 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날 때는 서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처럼 만난다. 인연에는 우연이 없다.  P.104 [당신들 모두 서른살이 됐을 때] 

 쉽게 위안받을 생각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      P. 180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어떻게 될 지 모르는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 아닌것 처럼, 사랑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없다.

나의 사랑도 언제나 고통이었다.

나의 소통은 일방적이었고, 언제나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없는 삶을 생각해본적은 없다. 사랑이 숭고하거나 고고하기 때문은 아니다. 사랑은 결국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남을 위한 나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와 함께 소통하기로 약속한 사람처럼 누군가와 만나기를 소망한다. 내가 노력하는 한, 소망을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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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들다 (2DISC)
박건용 감독, 이범수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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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역도 동메달 리스트인 이지봉은 대회 중 팔꿈치 부상을 당해 병원에서 검진을 받던 중, 심근경색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이 일 저 일 전전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지봉. 그런 그를 안쓰럽게 여긴 은사는 이지봉에게 보성여중의 역도부 코치 자리를 떠 안긴다. 오로지 역도만 알았던 이지봉이 그렇게 되는대로  삶을 소비하다가 끝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임을 알았으리라.
 한편 보성중학교는, 교장의 의지와 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학원 엘리트 체육, 특히 사격과 테니스에 특화된 학교였다. 역도부의 설립은 구의 지원을 좀 더 받기 위한 교장의 꼼수였고, 전 메달리스트 이지봉은 그야말로 구색맞추기용이었다.
큰 기대와 포부 없이 역도부 코치가 된 이지봉은 역도부 설명회에서부터 역도라는 운동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운동인지, 올림픽 동메달 리스트이지만 연금 한 푼 받지 못하며, 은퇴한 뒤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힘든 자신의 생활을 가감없이 말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결국 역도부원 공개모집에 참여한 학생들은, 여러 사정으로 다른 운동부에서 밀려나거나,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학생들뿐이었다.
이지봉은 그런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밥도 해 먹이고, 조금씩 도움은 주지만 정작 역도를 가르치려는 의지는 없었다.
역시 구색맞추기 용으로 갑자기 참여하게 된 역도대회에서 큰 창피를 당한 아이들은 이지봉에게 역도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고, 그런 아이들에게, '역도는 위험하고 쓸모없는, 나쁜 운동이다. 너희는 이거를 하면 안된다' 고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역도 말고는 희망을 가질수도, 꿈을 꿀수도 없는 환경속에 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의지에 고집을 꺾은 이지봉은, 본격적으로 올바른 체육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연구를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더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처럼 은퇴 뒤 삶이 막막하지 않을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교수법,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바람직한 엘리트 체육인 양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 운동.
생각해보면 운동에 목숨거는 삶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는 듯 하다.
특히 남을 이기기 위한 운동이나, 부와 명예를 쥘 수 있는 운동도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위한 운동에 목숨거는 사람들 말이다.
'승부' 가 아닌 '기록' 의 스포츠.
게다가, '역도'. 라니.
좋게 말하면, 가장 순수한, 나쁘게 말하면, 가장 무식한. 그야말로 원초적인 스포츠.
'인간이 얼마나 무거운 무게까지 들어올릴 수 있을까? ' 라는 명제를 풀기위한 듯한 이 스포츠는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그 몇초의 순간을 위해 매일매일 몇시간에 달하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탁월한 균형감각, 힘을 집중했다 터뜨리는 놀라운 순발력, 한계를 초월하는 허벅지와 허리의 근력과, 어깨의 강인함과 유연함. 그런것들이 하루아침에, 아니 한 두해 만에 완성되는게 아닐 것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인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킹콩을 들다' 는 바로 그러한 '역도' 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쪽이 묵직했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와서 였을까?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전 역도밖에 없다' 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였을까?
내가 잘 될수 없다면, 너도 잘 될수 없다는 식의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헤집어놔서 였을까??
 
영화를 구성하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재미있게 잘 짜여져 있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의 중심인 이지봉을 필두로 6명의 개성 넘치는 역도부 아이들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등장하는 모든 주변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주며,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할만한 코드도 적절하게 쓰여졌다. 역도 이야기만 나왔으면 지루했을 법도 한데, 그 부분들은 상큼한 짝사랑이나 아이들간의 갈등-해소 등으로 내러티브를 풍부히 함으로서 쉼 없이 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극기의 운동, 역도와 아이들의 의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모하는 이지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도 좋았다.
특히, 처음에는 시큰둥 했지만, 점차 아이들과 마음을 소통하고, 아이들 한명 한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선생님으로 변화되는 과정에 대한 부분은 이 영화의 주제이자 백미이다. 아이들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었지만, 이야기의 중심인 이지봉의 변화에 대한 부분에 더 큰 비중으로 집중했다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지봉' 이라는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굳건히 세워 둠으로서 전반적인 흐름과 몰입이 자연스럽고 통일감 있었다. 만약 감독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욕심을 부렸다면, 이도 저도 아닌 산만한 영화가 되었을터다.
좀 아쉬운 점이라면, 극의 후반부 정서를 지배하는 신파적인 요소일터다.
극의 클라이맥스를 이끌기 위해 지나치게 작위적인 사건들을 배치함으로서 자연스러운 감동에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고 본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큰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심지어 몇십년간 즐겨온 담배나 술을 끊는 사람, 몇십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감량해 몸짱으로 거듭나는 사람들만 봐도, 그것은 그 자체로 감동이 된다. 
그와 함께, 참다운 교사의 모습 역시 큰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내가 아닌 한 인간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있고, 참으로 어려운 일일터다. 말 한마디와 하나의 행동이 특정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한 '인간' 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할수 있었다.
'나' 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나에게 가장 큰 '적'. 내가 반드시 이겨 내야할 '대상'은 과연 누구이고, 무엇인가? 
 
 

영화는 한장의 사진으로 시작하여,
 

한장의 사진으로 끝난다.
참고로 이 작품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논픽션은 그 어떤 픽션보다 드라마틱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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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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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나 안개로 뒤덮여있는 '뉴 아일랜드' 의 살인3계에 심리 분석관으로 새로 합류한 라일라 스펜서는, 말 그대로 신출내기였다.

뉴 아일랜드 경찰청 살인 3과장. 살인 3계의 과장인 헐리와 신출내기 심리분석관은 공교롭게도 살인 현장에서 첫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헐리는 전형적인 고집불통에 편협한 '재수없는 상사' 로, 심리 분석을 들먹이는 최신식 수사법에 불만을 토했지만, 심리 분석을 통해 범인을 프로 파일링하는 것이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라일라가 뉴 아일랜드 살인 3계에서 최초로 맞닥뜨린 과제는, 케이블카에서 한 여성을 죽인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이었다.

해협을 가로지르는 일종의 대중교통 수단이기도 한 케이블 카 안에서 오른쪽 이마에 총을 맞고 살해당한 아름다운 금발여인. 그리고, 이런 공개된 공간에서 대담하게 여인을 살해한 범인. 

한가지 특이한 점은, 죽은 여인은 뜻밖에도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또한명의 주인공, 크리스 맥코이.

7년 전, 희대의 연쇄 살인마를 총격전 끝에 사살하고, 자신도 이마에 총을 맞아 3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고, 힘겨운 재활 과정을 거쳐 간신히 복직했으나, 크고작은 사건들로 현재 정직중인 뉴아일랜드 경찰청 최고의 사냥꾼.

맥코이는 뉴아일랜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있는 '웃는 시체' 에 대한 기사를 접하는 순간, 범상치 않은 '사건' 에 대한 냄새를 맡게 되고, 경찰청 국장의 지시로 정직중이지만 헐리의 수사팀에 합류하게 된다.

 

헐리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맥코이, 경험많은 노장 스캇, 신출내기 프랭크와 역시 신출내기인 심리 분석관 라일라 스펜서.

살인 3계는 과거와 현재가 얽여있는 의문의 연쇄 살인마와 숨막히는 게임속으로 빠져든다.

 

 

'뿌리 깊은 나무' 로 인상적인 작가경력을 시작한 이정명 작가의 3번째 장편소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가공의 인물들을 배치하여 인상적인 역사 미스테리물을 그려냈던 이정명 작가는, 뒤이어 '바람의 화원' 이라는 작품까지 큰 인기를 끌면서 일약 베스트 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특히, 풍부한 역사적 지식과 충분한 연구로 실제 인물과 가공의 인물간의 간극을 최소화한 부분과, 한정된 소재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다빈치 코드' 의 댄 브라운 못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침니 랜드' 와 '뉴 아일랜드' 라는 가상의 도시를 만들어 현대적인 미스테리로 출사표를 내밀었다.

예로부터 많은 작가와 철인들은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해왔다.

사회적, 환경적인 많은 요인들을 들먹여가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수많은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존주의의 대가였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심연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자는, 스스로 심연이 된다.' 는 한마디는 수많은 철인과 작가들 뿐 아니라, 심리학자들에게 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의 작가인 이정명 작가 또한 이 부분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을 터.(실제로 극중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인간이 얽히고 설키면서 주고 받은 수많은 상처와 치유의 순간들을 통해 사건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고, 그것들이 한 인간의 인격과 인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자 한 듯 하다.

 

'인간' 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나] 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모든 인간은 죽는다. 나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은 죽으면 흙이되고, 먼지가 되어 바스라진다.

이 세상에 살았던 적이 없는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만다.

 

어차피 사라져버릴 생명이라면, 과연 인간 개개인의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심지어 생존해 있는 동안, 그 사람의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내릴 것인가?

작품 안에서는 이 태고적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온 존재의 의문에 대해 실존주의를 토대로 풀고자 한다.

과거가 없이 현재가 있을수는 없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로서,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현재의 자아를 완성시킨 것은 과거이다.

 
   
  과거는 한 사람의 전부니까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와 물, 단백질 같은 무기질로 만들어졌지만 한 사람을 완성하는 건 그의 과거에요. 시간과 기억이 그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구성하죠.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고통도 지금의 당신을 만든 것들이에요.  P. 238여기에 인용문을 입력하세요  
   


작가는 필멸의 존재로서 인간의 '과거' 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 죽음이라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귀결되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인간들이 죽음이라는 결말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후 세계, 또는 내생등과 같은 종교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것은 죽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공포로부터 기인한다.

이미 내정되어있는 미래가 있기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과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과거를 완벽하게 떨쳐내지 못한다.

 

조금은 평범하게 흘러가는 이 책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완벽하게 다른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한 사람의 전부' 인 과거의 경험이, 그 경험의 주인인 사람을 죽일정도의 고통이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뇌는 이중 삼중의 방어 시스템이 있다.

아주 간단한 예로, 마라톤을 하면서 느끼는 '런너즈 하이' 를 들 수 있다.

런너즈 하이는, 인간의 근육이 한계 이상의 활동을 하여 육체적인 고통이 찾아올때, 뇌에서 그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아드레날린의 일종인 도파민을 분비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 도파민은 말기 암 환자들에게 진통제로도 쓰이는 아편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데,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오히려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 현상 때문에, 마라톤을 마친 마라토너들은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이 놀랍고도 신기한 현상은 비단 육체적인 고통에 국한되지 않는다.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뒤에,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나,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뒤에, 그 당시 상황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일이 그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에요.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애써 그 기억을 외면해왔어요.......그 기억은 왜곡된 거에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작되었다고 해야겠지요."

  "누가 내 기억을 조작했다는 거지?"

  "당신 자신이에요.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 뇌가 당신 기억을 조작했죠."

  .................

  "살고 싶었으니까요. 당신이 제대로 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면 살 수 없었을 거에요. 권총을 물고 자살했거나 우울증을 앓으며 시름시름 죽어갔겠죠. 당신은 살기 위해 끔찍한 기억을 조작해야 했어요."   P. 242~243

여기에 인용문을 입력하세요
 
   

 
이러한 뇌의 방어기제는 기억과 과거를 조작하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한 인간의 성격까지 변화시키곤 한다.

 

작가는 작중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치밀한 설정을 준비했고, 연쇄 살인사건과 퍼즐을 통해 절묘하게 풀어냈다.

'뿌리 깊은 나무' 의 심리 서스펜스 버전이라고 하면 좋을까??

'뿌리 깊은 나무' 와 '바람의 화원' 에 깔렸던 은근한 로맨스 코드도 여전하다.

라일라와 맥코이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동료이자, 심리학자와 상담대상을 살포시 웃돈다.

-심리 분석가와 상당 대상간의 미묘한 애정기류에 대한 내용은 정통 심리 서스펜스를 표방한 '살인의 해석'(제드 러벤펠드 지음/비채)에 보다 디테일하고 흥미롭게 펼쳐져있다.-

 

또한, 속도감 있는 전개와 독자들의 호흡까지 좌지우지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꽤나 어렵고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어둡고, 책 전반을 지배하는 '안개' 라는 코드처럼 묵직함 일변도라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맥코이와 라일라의 심리 묘사를 보다 디테일하게 해서, 분량을 좀 늘렸어도 좋았겠다 싶지만, 그건 역시나 나의 지나친 '개인적' 성향 탓일터다.^-^ (아마 그랬으면 잘 안팔릴지도..ㅋㅋㅋ)

 

뿐만 아니라, 사건과 인물, 에피소드 간의 개연성이 뚜렷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결말을 유도한다.

언제나 장르문학의 문제점은 개연성에 대한 부분이다.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설정들을 집어넣음으로서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헐겁게 하는 에피소드들과 작위적인 상황들이, 최소한 이 작품 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개 자체가 속도가 빠르고, 마치 연극이나 영화 시나리오처럼 대화형식이 많아서  독자가 여유를 갖고 퍼즐을 짜맞추는 과정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뚜렷한 인과관계와 자연스러운 흐름이 인상적이다.

'뿌리깊은 나무' 와 '바람의 화원' 에서도 보여졌던 이정명 작가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적당한 길이와, 빠른 호흡, 입체적인 등장인물과, 그 등장인물을 돋보이게하는 전형적인 주변인물들. 그리고, 끊임없이 곤란한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주인공.

거기에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과, 설득력 있는 결말.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좋은 이야기임은 확실하다.

 

최근 한국의 장르 문학들도 영화, 드라마나 외국 출판등의 기획 하에 제작되는 작품들이 많은 듯 하다.

한국 출판시장은 그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내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왔는데, 이렇게 뛰어난 필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들을  선두로하여 차츰차츰 외국 출판 시장까지 넓게 넓게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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