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여자들 1~3 세트 - 전3권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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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문란하다 싶을 정도로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정착되기 전의 서구 사회는 현대적 윤리의 관점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성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그러한 자유는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다. 


하지만, 로마 사회에서 여성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도 높았다.  

로마 사회가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였기 때문이고, 필연적으로 정계는 혈연으로 그물처럼 얽힌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권력가들이 힘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동맹은 혈연 동맹이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이라면 어느 정도 재산 상속권이 인정되었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 시스템도 인권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상당히 합리적이어서 이혼당한 여성의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도 존재했다. 

물론 이 작품이 다루는 주요 인물들이 사회의 최상위 계층이기에 그렇지, 평민 여성의 삶은 더더욱 괴로웠을 것이다. 이 작품이 크게 다루는 여성은 유력자의 딸이거나 그녀의 노예들뿐이니까. 

로마 권력의 핵심층에서 여성은 단순히 가장의 재산에 불과했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성들에게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사실 많은 남성들에게도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은 가문의 '재산'이었고, '결혼'은 가문 간의 '계약'이었다. 

유력한 혈통의 딸들은 언젠가 자신에게 주어질 의무 -가문을 위해 어떤 남자에게 시집가서 헌신해야 한다는 내용의 -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았고, 그것은 카이사르의 딸인 율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의 4부인 "카이사르의 여자들" 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된다.

브루투스는 세르빌리아의 아들로 세르빌리아는 2부 [풀잎관] 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드루수스의 여동생인 리비아 드루사의 딸이다. 독자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리비아 드루사는 카이피오의 부인이었지만 불륜으로 이혼당한다. 어린 세르빌리아는 잔혹할 정도로 날카롭게 엄마인 드루사의 부정을 비난하고, 자신을 거부하는 친아버지 카이피오에게 인정받기 위해 큰아버지인 드루수스의 정보를 훔치는 등 그야말로 악녀에 가까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었다. 특히 엄마인 리비아 드루사가 카이피오에게 이혼당한 뒤 결혼한 카토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부형제 카토를 끔찍하게 싫어했다.('카토'는 정말 너무 많다...ㅠㅠ) 세르빌리아는 지독한 혈통주의자였고, 대단한 야심가인 동시에 정치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다. 그는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브루투스가 도무지 눈에 차지 않았다. 용모도, 체형도, 지적 능력도, 성격도 모두 부족해 보였기에, 그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들이 대부분이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켰음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를 쭉 따라온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콜린 매컬로는 종이를 낭비하지 않는다. 한 두 권 안에 죽어 없어질 인물이라면, 아예 등장시키지도 않는다. 가뜩이나 길고 어려운 이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부자, 모녀, 형제, 자매 간에 이름이 완벽하게 똑같아서 '작다' '크다' 등의 수식어를 앞이나 뒤에 붙이거나 로마식 닉네임이랄 수 있는 코그노멘으로라도 일단 등장했다면, 이야기의 흐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특히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는 지금까지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서, 3권께에서는 사실 이름 기억하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1~3부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자식들은 물론이고 손주뻘들이 등장해서 작가가 친절하게 누구의 아들이나 누구의 조카 등등을 소개해 주긴 하지만, 일일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서, 카이사르의 여자들을 원활히 즐기기 위해서는 딱 두 가지만 구분하면 된다.

카이사르의 아군인가, 적군인가 - 정도. 


'포르투나의 선택' 에서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사이를 오가며 균형 잡힌 활약을 펼치던 카이사르는 어마어마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반드시 권력의 정점으로 다가가야 했다. 당시 로마의 중앙 정계의 수구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니파' 는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연상시키는 변방 출신의 신진세력인 폼페이우스의 발호를 경계했고, 로마의 최대 갑부인 크라수스가 정계를 기웃거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보니파에게 있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사이를 오가며 이 둘의 중앙 정계 진출을 도왔을 뿐 아니라, 보니파의 중심축 중 한 명인 비불루스에게 오래된 원한까지 있는 카이사르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다. 심지어 하층민들의 주거지인 수부라에 살며 계급을 넘나드는 그의 어마어마한 인기 역시 계급과 혈통을 중시하는 보니파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카이사르 역시 보니파를 적으로 인식했다. 일찌감치 그들의 속성과 약점을 알아챘고, 보니파 의원의 부인들을 유혹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곯려먹기에 바빴다. 보니파 의원들의 지속적인 방해해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최고 신관 자리에 당선되고, 역시 어마어마한 권력 다툼 끝에 집정관에 당선되는 이야기가 숨막히게 펼쳐진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두 번째 삼두 연합을 하기도 하고, 이혼과 결혼을 되풀이하며, 카이사르가 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세르빌리아와 불륜으로 쌓아나갈 애증의 역사를 시작하기도 한다. 


전쟁에 관한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한 서스펜스를 느꼈다.

권력 다툼이란 실제 칼과 창을 들고 뒹구는 전쟁만큼 치열하고 잔혹하다. 카이사르의 행보는, 비록 그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내 뒤통수가 근질거리며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로 과감하고 대담하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비전과 인간에 대한 철학에서 기인한다. 인간과 권력에 대한 그의 통찰은 비록 어딘가 비뚤어져 있음에도 당시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시대의 흐름과 로마의 발전에 대한 인상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로마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혈통과 로마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있었지만, 로마라는 거대하게 팽창한 국가가 더이상 계급과 지역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사실 역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기존의 수구 세력들에게 그의 비전은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고,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땅 전체를 뒤집으려는 시도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카이사르를 이해할 수 있었던 자가 정계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크라수스라는 점이 참 재미있게 다가왔다. 크라수스는 오로지 돈의 흐름을 뒤쫓는 자였다. 어쩌면 크라수스는 변화하는 돈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나아가 카이사르가 제시하는 비전을 일부나마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크라수스가 일부나마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였다면,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가 사용해야 할 날카로운 창이었고 넓고 튼튼한 우산이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유용성을 일찌감치 인지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아래에서 힘을 키운 술라, 그리고 술라를 등에 업고 힘을 키운 폼페이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폼페이우스의 우산 아래 들어가야 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딸을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키고 그가 경계를 푼 사이 동방에서 엄청난 부와 힘을 쌓을 터다. 


'카이사르의 여자들' 까지 읽고 보니 새삼 BBC의 역사드라마 "ROME" 가 콜린 매컬로의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아직 등장하지 않은 카이사르의 심복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훗날 카이사르의 이름을 쟁취하고 왕좌에 오르는 옥타비아누스가 어떻게 묘사될지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주로 로마의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카이사르의 여자들" 은 현실 정치와 맞물려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권력욕과 성욕의 적나라한 묘사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나와 진부한 표현이지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진보세력과 수구세력의 이전투구도 그렇지만, 세력 안에서도 명예를 지키는 자들과 명예를 저버리는 자들의 대립이나, 법안을 통해 상대방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과정, 수많은 민중들이 관람하는 원로원 연설에서 특정 의원을 선동가라고 공격하는 장면도 포퓰리스트라 공격하는 현실 어딘가의 누군가와 무척 닮아있다. 

저자도 밝히지만, 이 즈음의 이야기는 실제 보존되어 있는 사료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부터야말로 진정한 실재와 상상이 견고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일 터.  


일단, 뒷권들을 기다리는 사이 다시 1권을 펴봐야겠다.

이번에는 카이사르 말고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읽어봐야지. 참고로 이번 작품에는 키케로의 분량도 대단하다. 사투르니누스의 국가 전복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으니, 1부 "로마의 일인자" 의 3권을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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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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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소년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훌륭한 복서가 된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이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소싯적에 만화 좀 읽은 내 또래 친구라면 불멸의 명작 일본만화 "내일의 조" 를 떠올릴 것이다. 

일본에서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까지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단순히 만화계 뿐 아니라 당시 일본 복싱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망가' 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고, 수십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영웅 서사의 플롯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수없이 재활용되고 변주되는 공공재이기때문에 오히려 창작자에겐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비교대상이 너무나 많기에, 말 그대로 수 없이 많은 도마 위에 올라 수 없이 여러번 난도질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클리셰와 내러티브, 플롯의 레퍼런스를 용납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가차없이 표절이나 도작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쏟아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등돌리기 일쑤이다. 


그래서였을까, 40대를 훌쩍 넘어 수천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남겼던 블로거의 입봉작으로는 정말 잘 어울리는 서사라고 느껴졌다. 

익숙한 플롯 안에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지만 신선하지 않은 대사를 쏟아낸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서사가 펼쳐지지만, 그 속도는 압도적이고, 독자의 호흡을 잡아끄는 특별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일까? 서사 중심이긴 하지만, 그를 구성하고 있는 문장들은 때론 한번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관념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꿈틀거리기 때문일까? 그런 문장들이 단순하고 단단하게, 무게가 실린 스트레이트처럼 감정에 쿡쿡 들이박히기 때문일까?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특별하게, 신선하게 보여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쉐프의 능력에 따라 완성도가 바뀌는 요리처럼 '소설' 을 완성하는 요소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태주는 비합리와 부조리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남들보다 많은 불행을 안고 태어났다면, 세상의 섭리가 비합리적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그 불행으로 인해 삶 전체가 어그러진다면 이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복싱은 합리와 조화의 표상 같은 스포츠이다.

체중에 따라 세밀하게 나뉘어져 최대한 동등한 조건의 선수들이 맞붙는다.

트렁크 하나에 글러브 한 쌍. 선수들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눈으로 보고, 팔을 뻗는다. 모든 신경과 근육들이 조화를 이룬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방보다 한 발 더 뛰고, 한 번 더 뻗고, 한 숨 더 쉬어야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대부분은 노력을 통해 벼려진다. 

비합리와 부조리의 표상 같은 태주는, 링 안에서도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선수들이 보기엔 비합리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복싱에는 '기술' 도 존재한다. 재능 없는 자들이 재능 있는 자를 이기기 위한 특별한 기술. 그것까지 배운 태주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고, 그런 그를 꺾기 위해서는 링 밖의 권력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비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타고난 비합리로 간신히 삶을 살아내는 태주는 사회의 부조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서사는 예상 가능한 흐름대로 흘러가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휙 고개를 꺾는다.

익숙한 서사를 쫓아가던 나에게, 이 클라이맥스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로 다가왔다.

세 페이지에 불과한 이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려왔구나, 싶었다. 

온몸이 짜릿할 정도의 카타르시스가 등줄기를 타고 뒷목을 치고 정수리로 터져나왔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어...이곳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야!" p.355


한 때는 소설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무언가 얻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는 답이 없다.

문학에는 답이 없다.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제" 일 뿐이다.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고, 영원을 찰나로 만들어 문장을 빚어 눈 앞에 보여준다.


"문제" 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작디 작은 사각의 공간을 찾아낸 태주.

하지만, 그 링은 태주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태주가 찾아야 할 세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에게 어울리는 세계는, 어디있을까? 

무엇을 찾으면, 될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문제를 던진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 글 안에는 없다. 그 곳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니까. 

일단은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불 밖으로 나가도, 그 안은 사각의 철창으로 둘러싸인 좁디 좁은 사각의 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불 속일지도 모른다. 

답은, 글 안에, 모니터 안에, 이불 안에 있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 길위에 있다.

장지문과 대문을 지나,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저 큰 길 위에. 

 

 "먼저 덤벼서 자빠지는 거랑 남이 짓눌려 짜부라지는 거는 달라. 이놈 새끼야. 스스로 부딪쳐서 이겨내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더 센 놈이 짓누를 때 짜부라진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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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3 세트 - 전3권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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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까지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군사 전문가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로마의 가이우스 마리우스로 첫 장을 연 "마스터즈 오브 로마; 로마의 일인자'들의 이야기는, 술라의 역사적인 로마 침공과 더불어 로마 공화정의 종장을 향해 치닫는다.

로마 공화정은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름과 함께 막을 내리지만, 사가史家에 따라 그보다 이전, 카이사르의 독재관 등극이나 술라의 로마 침공을 공화정 종장의 첫 문장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이는 로마의 공화정이라는 시스템이 실재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라는 의문과 맥을 함께 하는데, 이 작품의 저자인 콜린 매컬로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첫 주인공을 가이우스 마리우스로 점찍은 것으로 보아, 그의 독재관 등극을 그 시점으로 본 것 같다.


지난 2부까지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세상이 펼쳐지고, 술라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이 그려졌다면, 3부에서는 술라의 로마에 대해 상세하게 그려진다. 사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독재관으로 집권하는 동안 로마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다. 사실상 그는 로마의 통치에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술라가 법제들을 재정비하고, 원로원을 장악하고, 도시를 재건하는 장면들로 시작하는 3부 '포르투나의 선택' 은 전 권들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다.

특히 많은 로마 역사 '덕후' 들이 신처럼 사랑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느낄 수 있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부분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쩌면 그 사랑의 근원이 콜린 매컬로에서부터 시작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이 문장마다 충실히 느껴진다.

어떤 인물이라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1부 1권부터 등장하며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살살 긁던 얄미운 새끼 똥돼지 메텔루스 피우스가 끝끝내 살아남아 노련한 전략으로 그간의 모든 평을 뒤엎을만한 대 활약을 펼치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꽤나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살짝 놀라기도 했다. 

사실, 1부 1권부터 꾸준히 등장했던, 장수한 인물들에게는 대부분 알게 모르게 애정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술라는 물론이고, 그의 오랜 연인 메트로비오스, 카이사르의 어머니이자 술라의 오랜 여사친 아우렐리아, 카이사르의 고모뻘이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아내인 율리아, 카이사르에겐 외종조부이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오랜 친구였던 루푸스까지.(심지어 루푸스는 장수하고 또 장수해서 카이사르와 재회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포르투나의 선택' 이 이전의 작품들보다 놀라웠던 것은 전투에 대한 묘사였다.

보병과 기병의 전략, 전술적 효용과 편제는 물론이고 지형, 지물에 따른 논리적 군사배치(진형), 역할, 상성 등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대의 전투를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군인들이 서로 부딪히는 전선의 상황 뿐 아니라 보급품 확보와 보급로 구성 등 그 배후의 이야기들까지 상세하게 그려내면서 실제 로마 군대의 군인들이 어떻게 전쟁을 치뤘을지 완벽하게 그려낸다!!!

물론 사료가 있긴 했겠지만, 사료와 고대의 지도, 현재의 지형만 보고 수백, 수천, 수만의 장병들이 대오를 이루고 캠프를 구축하는 장면을 상상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남, 북부의 산맥들과 동방의(서아시아) 고원과 황무지까지 수많은 군인들이 보급을 조달하고 전략을 세우고 전투를 치르는 장면들이 정말 리얼하게 펼쳐지는데,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카이사르는 가까스로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씌워놓은 유피테르 대신관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동방의 전쟁에 참여하며 차근차근 업적을 세운다. 카이사르는 가이우스 마리우스나 술라에 비하면 혈통 하나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 된 파트리키 가문 태생으로 적당히 주어진 의무만 다하면 에스컬레이터처럼 권력의 최상층까지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었다. 완벽한 혈통에, 뛰어난 지능, 거기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카이사르를, 그래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유피테르 대신관이라는 굴레를 씌워 영원히 봉인하려 했던 것이었다. 

 평생 제사나 주관하며 살 뻔 했던 카이사르는 어머니 아우렐리아의 뛰어난 기지 덕분에 집정관을 향한 에스컬레이터에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고, 전장을 찾아다니며 군적을 쌓는다.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피우며 활약한 결과 동료 병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냈을 때 수여되는 '시민관' 을 일찌감치 획득하면서 이른 나이에 원로원에 입성하게 된다. 로마는 처음부터 군사 영웅에게 호의적인 시스템이었는데, 술라에 의해 더욱 공고해지게 된 덕이었다.

 로마로 복귀한 후에는 뛰어난 웅변을 바탕으로 뛰어난 변호인으로 자리잡는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인 키케로와는 다른 방식의 웅변으로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카이사르는 어머니인 아우렐리아 덕에 로마 최하층민들이 사는 수부라 지구에서 살아왔기에 최고의 혈통에도 불구하고 최하층민들까지 살피는 안목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엄청나게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완벽한 혈통에 뛰어난 지능, 매력적인 외모에 이제는 떡갈나무 잎으로 만들어진 관까지 쓰며 원로원에 입성하며 시민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그런 그를 우러르는 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뒤따르는 칭송만큼 많은 질시와 견제를 받아야 했다.

이미 청소년기 때 부터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받았듯이. 


한편, 카이사르가 차근차근 성장할 무렵, 로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 이후 최고의 권력자였던 술라가 천명을 다한다. 

자신이 공언한대로 일정 임기를 마친 뒤 종신 독재관에서 내려온 그의 뒤를 이어 폼페이우스가 두각을 드러낸다. 세르토리우스와의 일전에서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긴 했지만, 메텔루스피우스로 인해 큰 깨우침을 얻고 한단계 성장한 그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동방을 정벌하며 그야말로 로마의 일인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로마 최고의 거부 크라수스 역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매사에 잇속이 밝은 크라수스는 카이사르가 장래에 얼마나 높은 인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었고, 카이사르 역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돈벌이에 골몰하는 크라수스라는 인물을 흥미롭게 여기고 있었다.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서 한번 마주친다.

나는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가 힘을 합쳐 스파르타쿠스의 세력을 물리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콜린 맥컬로가 알려준 실상은 약간 달랐다. 크라수스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폼페이우스가 낼름 받아간 느낌이랄까.ㅋㅋ 크라수스는 누가 공을 세우든 상관 없는 사람이었기에 재빨리 손익을 따져 손해보기 전에 알아서 적당히 빠져나갔다. 


'포르투나의 선택' 에서는 위에 언급했듯 전쟁에 대한 묘사도 대단하지만,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 카이사르의 처세술이 무엇보다 돋보였다.

카이사르는 원대한 야망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미미한 세력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공적을 바탕으로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가이우스 마리우스처럼 변방 출신에 혈통도 조금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출신과 혈통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그 때문에 로마 중심의 원로원 정치를 혐오했다. 그 혐오가 그의 최대 단점이었다.

크라수스는 로마 최대의 거부였지만, 정치 세력이 전혀 없었고,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권력은 오로지 돈에서 나왔고, 카이사르는 어마어마한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오가며 여러 정치 공작을 펼치는데, 엄밀히 따지면 로마 공화정도 일종의 대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기에, 원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정치 공작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그 정점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함께 집정관에 오르게 하는 장면인데, 진짜 엄청 재미있다. ㅋㅋㅋ

카이사르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 끔찍하게 싫어하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손을 잡게 만들고, 두 힘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뤄가는지 그야말로 기가 차다!!! 

꼭 책으로 확인하시길~! 


참고로, 4부 [카이사르의 여자들] 은 이러한 균형 외교(?), 처세의 정점을 보여준다.

삼두연합이 이렇게 탄생했구나, 싶은!!!  

참고로 4부는 책도 더 얇고, 재밌기는 훨씬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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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의 꿈 십이국기 7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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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후유미가 창조한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지독할 정도로 불합리하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불완전하다.

이른바, '살아있는 신' 들이 존재하는 세상임에도 지독하게 불합리하고, 때문에 지독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이것은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과는 개별적으로 작가가 확실하게 완성시킨 세계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십이국기는 한 세계관 안에서 꾸준하게 장편과 단편 타이틀이 출간되는데, 서사적으로 연결되는 타이틀이 있고 그렇지 않은 타이틀도 있다. 장편을 통해 국가관이나 리더론의 철학적, 논리적 빈약함과 전투에 있어서의 전략, 전술적 개념의 부재가 드러나고, 단편을 통해 서서히 보충된다.


조금 더 비약하자면, 초기에 설정한 세계관의 빈약함 때문에 뒤로 갈수록 철학과 논리를 그 안에 맞추려고 아등바등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가 지적인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이 거듭될수록 세계관은 완성되어 가지만, 필연적으로 작품 안의 세계는 더욱 불합리해지고, 등장인물들의 삶은 괴로워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전쟁에 관한 설정이다.

십이국기 세계관 안에서 '국가간의 전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조차 하지 않고, 그 국가가 무너져도 소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뿐이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세계관 안에서 전쟁의 개념은 축소되고, 군인이라는 존재는 기껏해야 요수를 사냥하는 일이 주 업무인 '사냥꾼'에 불과하게 된다. 

무관의 역할이 극히 미미해지며 세계관 내에서 무관이 이름을 떨칠 계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요수를 사냥하는 것으로 이름을 떨친다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 외려 요수만을 사냥하는 직종군이 모여사는 그룹이 있고, 이런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에겐 혐오직군으로 기피대상이며 봉산 근처에 자신들만의 부락을 만들어 모여산다.(※도남의 날개) 뛰어난 장수는 요수를 '사냥' 하지 않고, '제압' 해서 길들인다.(※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등) 

 

결국 십이국기 세계관의 군인들은 왕이 정치를 그르치면 나타나는 요수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군이란 의미이다. 이러한 방위군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세력은 금군일터. 경국의 이야기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편제가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타국이 침략할 리가 만무한 궁전 수비병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오로지 내란에 대비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타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자국민을 죽임으로써 역할을 다하는 금군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지만, 십이국기 세계관 안에서는 세계가 뒤집히지 않는 이상 적국이 쳐들어 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국가간의 전쟁이 없는 세계관이라면 상비군이 존재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로 상비군의 개념을 갖게 된 것도 로마 공화정 말기인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고안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제국 로마도 상비군이 아니라 전쟁때마다 집정관의 명령에 의해 소집되는 비정규군으로 거대한 국가를 충분히 일으켰고, 저 강대한 게르만족의 위협이 이탈리아 전역을 침탈한 18세기 말엽이 되어서야 상비군의 개념이 자리잡혔다. 


국가간의 전쟁이 개념조차 없는 세계관 안에서, 게다가 '구름 위' 라는 천혜의 요새 안에 있는 궁전을 지키는 군사가 수천에 달한다는 설정은 솔직히 그 자체로 큰 오류이기도 하다.

심지어, 십이국기 세계관은 지독할 정도로 정체되어있기 때문에 시민의식이 발전할 계기가 없다. 지배층이 신에 의해 간택된 불멸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반란 따위는 꿈도 꾸기 어렵다. 설사 왕이 위왕이나 가왕이라 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편은 가장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무관의 공적인 업무는 변방에서 요마, 요수들의 침입을 막는 역할일 것이고, 부수적으로 내란에 대비해 자국민들을 감시하는 것일 터다. 실제로 십이국기 세계관의 무관은 왕실 소속으로 지방 영주에게 파견되는 형태이다. 지방 영주는 사사로이 장수를 거느리거나 왕권 없이 군대를 소집할 수 없다.(※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하지만, 당연하게도 왕이 무너지면 장수는 어쩔 수 없이 그 지방 제후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가장 강력한 내란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그런 무관이 과연 왕과 함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반 관료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비슷한 직급에 올라갈 수 있을까? 

또 하나, 타국과의 전쟁이 없는 세계관에서 대인對人용 전술이 개발될 리는 만무하다. 개발 되었다면, 이 또한 자국민들의 반란을 대비한 것일 터다.  


이번 작품집에서 이러한 세계관의 설정을 다소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 하나 등장한다.

십이국기 세계는 국가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평화의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는 점이다.

기린에 간택된 완벽한 왕도 치세가 20~30년에 그치고 만다는 설정이 이번 단편을 통해 등장한다. 

아무리 왕기가 있고, 천기까지 받아 불멸의 삶을 누리는 왕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선적에 오르지 못한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수명을 다하고 내정이 안정되고 반복적인 일상이 시작되면 인간은 권태감에 빠져들고, 의식있는 관료들은 왕이 천기를 잃을 것을 대비하기 시작한다.

왕이 천기를 잃으면 요수와 요마들이 출몰할 것이고, 관료들은 봉토를 가진 봉건제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영지를 지켜야 한다. 성을 지키는 상비군도 있겠지만, 왕기를 잃는 난세가 되면 그만으로는 부족할 것이기에 군벌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왕이 천기를 잃고 기린이 병들면 난세가 시작된다.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요수와 요마들이 출몰한다. 봉건제후들은 더이상 내정을 신경쓸 필요가 없기에 영지로 돌아가 영민들을 보호하는데 힘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주들은 자기의 안위만을 챙길 것이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이미 왕보다 훨씬 오래 삶을 누린 존재들일 것이고. 

다음 왕이 왕위에 오르면 난세동안 백성들을 보살핀 제후들을 치하하고 일부는 고위 관료로 임명할 것이다.

그 제후와 함께 한 군벌들 중 일부는 공직을 받고, 선적에 들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배제된 관료들이 빈 자리를 메운다.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혼란을 수습하는 것 역시, 왕의 책임. 

노회한 정치꾼들은 이 세계 안에도 분명 존재한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이렇게 십이국기 세계에서의 왕의 내정에 관한 단편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신과 다름없는 왕. 하늘에 선택받은 왕.아무리 실정을 저지른다고 해도, 하늘이 선택했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신과 같은 왕. 이러한 왕에게 반기를 드는 과정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들이 펼치는 정치와 내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슬몃슬몃 읽을 수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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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1
랜섬 릭스 지음, 카산드라 진 그림, 류이연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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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지대넓얕' 이라는 방송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의 줄임말인데, 최근 몇 년 간 팟캐스트 쪽에서는 방송 차트 상위권에 공고히 자리잡고 있는 방송이다.

"넓고 얕은 지식" 이라는 모토대로, 인문과 과학을 가리지 않고, 종교, 철학, 병리학, 화학, 미학, 역사는 물론 영화와 책까지 폭넓게 다루는 방송이다. 진행하는 네명의 패널들의 지식수준이 상당해서 듣다보면 눈의 뜨이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느낌인데, 그 방송에서 얼마전 이 작품과 같은 제목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내용만 듣고도 흥미가 동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영화 개봉 소식과 함께 그래픽 노블 버전의 동명의 작품이 나에게 왔다. 


이미 동명의 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고, 화려한 시각효과로 장식된 영화까지 개봉하는 시점에 그래픽 노블이라...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과연 손해를 입을지, 이득을 볼 지는 통계적으로 따져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도 영화와 책 사이에서 큰 이득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관객은 한 컨텐츠를 다양한 매체로 접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성향이다. 그나마 최근들어 베스트셀러나 인기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컨버전 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실제로 크게 흥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원작을 따라간다면 너무 따라갔다, 원작과 다른 궤를 좇으면 너무 다르다는 원성을 듣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컨텐츠의 각색은 많은 창작자들에게 강렬한 유혹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스토리작법 시간에 가장 재미있게 했던 작업이 각색이었다.


지금은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 덕 마블과 DC의 그래픽 노블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불과 십수년전만 해도 그래픽 노블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웠다. 교보나 영풍문고의 외서코너에서 간신히 발견하더라도, 사실 상당히 읽기 어려웠다.

일본 망가의 영향을 받은 우리 만화와는 달리 글자가 빼곡하니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픽 노블' 은 독립된 하나의 카테고리로써 얇은 연재용 이슈들을 묶은 일종의 제책방식이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분화한 형태' 라는 태생적 정의이기도 하다. 

그래픽 내러티브만큼 텍스트 내러티브에 집중하고, 일본 망가와 우리 만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컷과 컷 사이의 속도감 보다는 매 컷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작품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그러한 그래픽 노블의 특징과 우리가 제작하고 소비하고 있는 만화의 특징을 잘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온전히 그림체만 보았을 때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과는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화려한 채색도 없고, 인물들의 마스크도 최근의 일본 만화에서 유행하는 미끈한 마스크들이 등장한다. 

컷의 완성도에 집중하기 보다는 컷과 컷 사이의 흐름, 내러티브에 집중한 느낌이 든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상한 아이들보다 새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인 '임브린' 이 갖고 있는 '무한 루프' 라는 특별한 능력이다. 세상에는 이상한 아이들을 먹어 치우는 괴물 '할로우'가 존재하고, 할로우의 부하들인 인간의 형상을 한 '와이트' 들이 존재했다. 미스 페레그린과 같은 임브린들은 할로우와 와이트를 피해 세상 곳곳에 무한 루프의 공간을 만들어 이상한 아이들을 모아 숨어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제이콥의 할아버지인 에이브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제이콥 역시 에이브의 힘을 물려받은 터였다. 

제이콥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무한 루프에 숨어있는 미스 페레그린을 만나게 되고,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이상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잡아먹는 할로우와 와이트들의 거대한 집단은 나치와 연관되어 있는 듯 한 떡밥을 던지기도 해서 긴 스토리의 시작점과 다름없는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아직 원작과 영화를 보지 못한 나에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원작이 아마존에서 수십주간이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사랑받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스토리 텔링이 참으로 흥미롭다. 아직 원작을 만나보지 못한 독자라면,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한번쯤 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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