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잇셀프 Fear Itself 시공그래픽노블
매트 프랙션 지음, 스튜어트 이모넨 그림,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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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포일러 있습니다.

마블 히어로들이 브라운관에서 대활약하면서 지면으로도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우연히 청계천 헌책방에서 만나게 된 미국 코믹스에 순식간에 빠져들었지만, 한창 때는 구입 방법을 몰랐고(인터넷이 없던 90년대 초반),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자 자금력이 딸렸는데(구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 원서를), 이제는 한글 정발판을 마음껏 구할 수 있다니 기쁘지 아니한가!!! 

 게다가 이제는 5년 안팎의 비교적 최근의 이벤트들을 만날 수 있다니, 환호작약하지 아니할 수 없다. 

많은 정발 번역본과 전문 블로거님의 활약으로 미국의 만화 제작 시스템이 잘 알려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래픽 노블은 술술 읽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국내에 라이선싱된 타이틀들은 대부분 크로스오버 대형 이벤트로 타이틀 별 독자적인 이슈들은 만나보기 어렵다. 그나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나 토르, 헐크의 경우엔 몇몇 이슈가 발매되어서 [시빌 워] 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발매 순서는 뒤죽박죽에 딱히 '넘버링' 도 없는 까닭에 연속극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마블과 DC히어로들은 아직 가까운 존재들이 아니다.

 특히 영화를 통해 히어로들을 먼저 접한 독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


[피어 잇셀프] 는 

히어로들이 시빌워([시빌워])에 정신없는 동안 스칼렛 위치의 농간([하우스 오브 엠)]에 정신없던 X 맨들은 호프를 둘러싼 대소동([메시아 컴플렉스])을 일으키고, 

초인등록법안 찬성파의 승리로 시빌워가 마무리 되는 동안 쉴드가 힘을 잃고 세상이 정신없는 사이에 노먼 오스본이 마각을 드러내고([썬더볼츠]), 

외계인들이 쳐들어와 한바탕 대 난리를 피우는 사이 소원했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가 다시 조금 좋아지나 싶더니 노먼 오스본이 본격적으로 권력을 틀어쥐게 되고([시크릿 인베이전]), 

노먼 오스본은 결국 쉴드를 와해시키고 해머라는 단체를 만들어 야욕을 불태우다가 망하고([다크 어벤저스]), 

이 사이에 피닉스 포스가 지구로 오나 안오나 모르겠지만([어벤저스 대 엑스맨]) 

암튼 그렇게 시빌워로 어긋났던 어벤저스가 다시 하나로 잘 모이게 된 후의 이야기다.

브루스 베너는 베티와 결혼해서 잘 사는 듯 보이지만, 베티를 쉬 헐크로 만들어 놓았고, 레드 헐크가 되었다가 그냥 헐크가 되었다가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를 버키에게 물려준 스티브 로저스는 쉴드의 얼굴마담이 되어 있고, 레드스컬의 딸 '신'이 새로운 스컬이 되어 하이드라의 유지를 잇고 있다. 

 

펜슬러가 스튜어트 이모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원화가들 중 한명이다.

표정 묘사가 정말 좋고 데셍이 정말 뛰어나다. 이 원화가는 예전에 DC의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 에서 처음 보고 훅 빠져들었었는데, 이후에 원서로 'All New X-Men' 을 구입했을 정도로 좋아한다.


어쨌든 책을 펼치니, 아스가르드가 아작나있다. 

중간에 무슨 이벤트가 있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시공사의 발매 예고를 보니 [시즈]가 있더라.

아, 맞다. 아스가르드가 지구에 떨어졌었지. [시즈]는 나도 아직 못봐서 잘 모르겠지만, 여튼, 아스가르드가 아작난 사이 오딘의 옛 숙적이 지구로 향한다. 그 와중에 몇몇 히어로들이 휘말리고 무정한 신 오딘은 자신의 숙적을 물리치기 위해 지구를 통째로 날릴 계획을 세운다.


[시즈] 와 [피어 잇셀프] 는 사실상 토르의 타이틀이나 다름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뒤에 [ULTIMATE] 이벤트가 진행되는데, 내가 갖고 있는 [ULTIMATE] 이슈가 [NEW ULTIMATES - THOR REBORN] 이어서, 안되는 영어로 띄엄띄엄 읽으며 '에? 토르가 언제 왜 죽었지?' 싶었는데, [피어 잇셀프]를 보니 그 궁금증이 풀렸다. (헉 스포일러) 

이런 크로스 오버 타이틀의 경우는 언제나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데, [피어 잇 셀프] 역시 기대를 확실히 충족시킨다. 특히 서펀트에 의해 세뇌된 헐크+씽 vs 토르의 격전은 정말 볼만하다.


 


결론은,


THOR - GOD OF THUNDER - 정발해 주시면 안되용???


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785168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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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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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작가를 만날 땐 초기작보다는 후기작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그 작가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탄탄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그의 거대한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세계의 태초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법이고, 그가 밟아온 발자취를 거꾸로 되짚어보는 즐거움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성장과 발을 맞추는 것보다 더 매혹적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데뷔 50주년을 기념작이라는 이 작품은 그 명성에 비해 대단히 얇았다.
별 막힘 없이 술술 읽어내려갔다. 책을 비교적 천천히 읽는 편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읽어냈고, 다 읽은 뒤의 첫마디는,
"음?? 으으으음?????"
이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한 번 빠르게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가면서는 
"음?! 으으으음!!!!!! "
이라는 경탄의 감탄사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읽을 수록 묘한 매력을 뽐내었다.
우선, 무척 얄팍한 나의 독서 경력에 비춰봐도,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현대문학 전반의 모든 기법들이 조금씩 다 눈에 띄었다.
회상을 통해 서사가 펼쳐지고, 미하엘 콜하스 영화의 각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작품 전체를 하나의 메타 픽션처럼 보이게도 한다. 초반부엔 미하엘 콜하스 영화화 계획이 '엎어진 사건' 을 언급함으로써 미스테리어스한 소품을 하나 던져 놓으며 회상 위주의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쿠라의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좇아 공개하는 과정은 한 편의 스릴러로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그 뿐인가, 고모리라는 캐릭터는 일본의 멜로물에서 자주 보이는 상냥하면서도 정력적인 남성형으로 사쿠라와 작중 화자와 묘한 삼각관계를 만듦으로써 한 편의 치정 멜로물을 연상케도 한다. '메이스케 이야기' 를 취재하는 과정은 논픽션, 르포타주를 보는 듯 하고, 작중 화자와 아들 히카리와 관련된 소소한 일상들은 자전적 소설이나 산문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고 평안하다. 미하엘 콜하스 영화 계획에 관련된 디테일한 설정들은 너무나 꼼꼼해서 무척 현실적이기도 하다.
 정말 여러 플롯들이 촘촘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초반에 등장하는 복선들도 빠짐없이 수거하고, 대사 하나, 인물 한 명, 심지어 문장 하나까지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때문에 책의 두께는 얇지만 내러티브가 굉장히 풍성하다.  

작품의 마무리가 연극이라는 형태를 통해 보여진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연극은 고대 제의에서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희 중 하나로써, 희곡의 뿌리가 되고, 시인들을 잉태했으며,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 일종의 소설적 기법들의 원천과 다름없다. 작품의 주요 서사가 대본을 쓰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 중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결국엔 연극을 위한 대본 -희곡과 약간은 다르지만- 이 된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메이스케 이야기' 를 취재하는 과정들 역시 그러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구전' 또한 문학을 태동하게 한 수많은 뿌리들 중 하나가 아닌가.

이러한 나의 얄팍한 독서 경력에 빗댄 어줍잖은 문학적(?) 접근은 차치하고, 이야기와 인물 자체가 참 흥미롭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타이밍 좋게 물음표들을 던지며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서두에 언급했듯, 처음엔 꼬부랑 노인인 작중 화자와 중년인 아들 히카리의 애틋한 부자간의 광경에 안타까워 할 겨를도 없이 지우인 고모리와 만나고 과거 회상이 시작되면, 문학적 기교들이 정신없이 춤추기 시작한다. 숨막히는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엄청난 내러티브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나쳐가고, 그 충격은 책장을 모두 덮고 난 뒤에야 비로소 후두둑 몰려온다. 
여백이 많은 듯 보여서 곱씹기 시작하면, 서사를 쫓아갈 수 없고, 단순한 듯 보이는 내러티브들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서, 풍부하다 못해 풍만하다.  

아마도 책을 처음 다 읽은 뒤에 했던
"음? 으으으음??????" 
은 온통 '익숙하면서 새로운' 묘한 감상 때문이었으리라.

난 이 작품을 온전히 작가인생의 말미에 다다른 한 노작가가 지금까지 자신의 창작세계를 지탱하게 해 준 뮤즈 '하얀 관의의 소녀(애너벨 리)' 를 보내고,  스크린 속의 가공된 인물이었던 '에너벨 리-사쿠라' 를 떠나보내고 '고모리' 라는 지우이자 새로운 뮤즈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읽었다. 
작중 화자인 '겐산로'; 절친한 이들에겐 '겐자부로' 라고 불리는 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굴레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히카리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있었다. 노벨상을 안겨주었을 지도 모르는 여러 창작 동인 중 어린 시절 뇌리에 강하게 박혔던 영화속 주인공 '하얀 관의의 소녀' 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가며 이미 잊혀진 지 오래. 그는 자신에게 노벨상이라는 영광을 가져다 주었던 그 펜을 거의 다 꺾은 시점이었는데, 그의 삶 속에 다시 그 소녀를 끌어 올린 이는 다름 아닌 고모리였다.
작중 화자이자, 작가 그 자체로 보이는 겐산로에게 뮤즈였던 '하얀 관의의 소녀' 를 지운것은 고모리였고, 다시 끌어올린 이도 고모리였으며, 또 다른 뮤즈가 된 이도 고모리였다.

이 리뷰를 적어가던 도중,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던 독서모임에서 "명호씨에게는 어떤 뮤즈가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더랬다.
개인적으로 뮤즈는 그렇게 아무 창작자에게 찾아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뮤즈는, 신이다. 대중의 반응이 아닌 뮤즈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는, 말 그대로 '뮤즈의 사랑' 을 받은 작가가 아닐까 싶다. 아무나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아무에게나 오는 존재는 아니라고 본다. 태어나서 글을 한 번 써 본 적 없는 사람도 '사랑하는 이;뮤즈' 를 위해서는 책 한권을 족히 써낸다. 
받아쓰기 이외에 단어를 써 본 적 없는 초딩들도 사랑하는 짝꿍을 위해 두세문장의 아름다운 글을 써낸다. 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예쁜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뮤즈란 바로 그런것이다. 

인간이 신의 모습을 닮았다면, 그 가장 강력한 증거는 창조의 능력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는 단순히 나와 똑 닮은 자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글을 통해 누군가의 머릿속에 완벽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완벽히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스칼렛 오하라와 제임스 본드, 해리 포터, 루피와 나루토. 그리고 분명 한 때는 환웅과 웅녀, 단군까지 내 옆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야훼와 싯달타도 그렇게 '인간이 창조해 낸 이야깃속 인물' 로 꼽히게 될 시절이 올지도.

여튼, 
작품을 보는 내내 나는 작중 화자가 '하얀 관의의 소녀' 와 '사쿠라' 그리고 '고모리' 라는 뮤즈를 가질 수 있었음을 질투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신의 모습을 떠나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특징을,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 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은 그 누구에게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그 재능은 이제 막 말을 튼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에 이르기까지 거의 비슷하게 발휘된다.
특히 자신이 궁지에 몰렸을 때.^^ ㅋㅋ 

이야기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엄마가 과자를 나로부터 숨기지 않는 세계, 어떤 달콤한 사탕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세계를 상상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태초의 이야기는 그렇게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터다. 
지금도 여전히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줄 때에 수많은 '대중' 들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니까.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는 한 노작가가 평생을 걸쳐 스스로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몸부림쳐 온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문득,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떠올리게 된 건 아니었을까?  
문학이란, 나아가 예술이란 인간 각자의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을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결핍을, 가장 보편적인 소재를 가지고, 가장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 바로 이것일까?
노벨상을 받은 80대의 노작가가 70대에 발표했던, '삶의 마지막일 수 있겠다' 싶었던 작품을 통해서 그 답을 보여주려 했을까?
아니, 아니다.
문학은 결코 답을 내려줄 수 없다.
결핍을 채워준다는 것이 어떠한 의문에 답을 내려주는 것과 같을 수 없다.
문학은 언제나 질문이었다.
문학과 예술은 질문의 또 다른 방식이었다.
태초의 질문이 "뭐에요?" 였다면,
문학과 예술은 " '이건' 뭐에요?" 이다. 
질문의 주체???
그걸 정말 모르신다고??

바로 삶이다.

인생은 삶에 대한 질문이다.
문학은, 
예술은
아주 약간 더 구체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
한 대가가 남긴 좀 더 구체적이고도 좀 더 복잡한 질문이,
요기 있네. 

그리고 난 이제, 이 작가가 이 질문을 하게 된 과정을 좀 더 살펴볼 예정이다.
그러면, 어쩌면 나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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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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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후 2012년 올렸던 리뷰를 수정 보완했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무거운 종잇장을 넘긴다.

하얀 종이는 분명 가벼웠는데, 꽉 채워진 글자들이 무거웠던 걸까, 글자를 읽어내려가는 내 마음이 무거웠던 걸까?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묵직하다 못해, 육중하다. 

산뜻한 제목과 표지에 속았던 [빛의 제국] 도 그랬고, 헌혈을 하면서 읽었던 [검은 꽃]도 그랬다.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단편은 가볍다 못해 낄낄거리다 넋이 나갈 정도였고,[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같은 단편도 페이소스가 잔뜩 묻어있긴 했지만, 헛웃음이 새어나왔더랬는데. 장편은 언제나 묵지근하다. 

김영하 작가의 5년만의 장편 신작이라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바로 전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에는 여전히 가볍고 위트있는 작품들도 보여서 방심했던 걸까. 책 말미에도 언급되는, 배꼽 밑에 화살 문신을 한 소녀가 등장하는 단편 [비상구] 를 읽었을 때 처럼 가슴 언저리가 묵지근해졌다. 


 언제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 세상을 고스란히 종이 위에 박제하는 김영하 작가는 이번엔 아예 논픽션을 토대로 한 픽션을 들고 왔다. 특히 이번 작품은 책의 말미에 르포 형식의 단락까지 실려 있어 더더욱 현실감있게 와닿았다. 한 소년이 다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화자가 제 3자에 대해 회고하는 듯한 서술법 또한 이 어마무지한 리얼리티에 일조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그 도입부터 독자들의 마음에 추를 던져놓는다. '길과 길이 교차하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아이 '제이'. 이 논픽션과 픽션이 교차하는 작품은 제이의 짧고도 긴 일대기이다. 작품은 시종일관 화자와 등장인물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 쓴 문장들로 조립되어있다. 바로 윗단락에 언급한 요소들처럼,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논픽션처럼 읽히기를 의도했다는 증거이다. 


 브릭의 갯수가 많은 복잡한 모형의 레고를 조립하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긴다. 브릭을 꽂을 공간도 딱 하나이고, 그 공간의 모양에 맞는 브릭도 딱 하나이다. 그래서 그 모양의 브릭을 딱 맞게 꽂는다. 그리고 나면 그 위에 또 하나의 공간이 생기고, 또 다시 그 모양에 딱 맞는 브릭도 눈에 들어온다. 그 브릭을 집어 그 공간에 끼워 넣기를 여러번 반복해서, 남아있는 브릭 하나 없이 모두 다 딱딱 맞춰서 완성시켰는데, 레고 박스에 그려져있는, 완성례의 그 모양이 아닌 것이다. 

 분명, 꽂을 자리도 딱 하나였고, 꽂을 부품도 딱 하나였는데, 그래서 갈등할 이유도 없이, 고민할 이유도 없이 딱딱 맞춰 넣었는데, 내가 원하는 완성품이 아니다. 아마 어느 순간 즈음에는 내가 지금 조립을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수도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경은 문제를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브릭을 꽂아넣는 그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을테니.

 

 제이의 인생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돼지엄마에게 버림받고, 결국은 사회로부터도 버림받은 그는 딱 맞는 모양과 크기의 브릭처럼 척척 맞춰졌다. 그리고, 완성된 모형은 한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아마도 경찰들의 진술서에나 한 문장으로 적혀질 수 있을, 그런 것이었다. 그의 브릭은 고통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 제이는 자신의 인생에 고통을 켜켜히 쌓아나간다. 쌓아나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딱딱 맞게 끼워져서 만들어진 레고 모형은 결국 폭력이었을터다. 고통 위에 딱 맞는 모양의 브릭은 분노이고, 분노 위에 딱 맞는 모양의 브릭은 폭력이니까.  


 그를 그렇게 만든것은 당연히 우리 사회이다.

우리 사회 역시 그런 레고 모형과 같다. 구멍의 모양에 딱 들어맞는 레고 브릭들을 쌓아가고 있다. 아니, 딱 들어맞는 모양이라고 우기는 브릭일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어 이러다가는 완전 다른 괴물이 나오겠는데' 싶지만, 멈출수가 없다. 이제는 아예 브릭의 모양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하다. 방법이 없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말하며 브릭을 쌓기에 급급하다.

 결국 이러다가는 우리 사회 역시 분노를 쌓아가고, 결국 폭력을 쌓아갈 것이다. 80년대는 육체적인 고통의 시기였다. 군화발로 채이고, 총칼에 찍히고, 피를 물처럼 쏟아냈다.

 그리고 지금은 말로 인한 정신적, 정서적 고통의 시기이다. 폭력을 행하는 주체는 80년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여전히 공권력은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있고, 사회 전체를 경쟁의 도가니로 만들어 수백 수천의 제이를 양산해내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와 군대 안에 쏟아낸다. 끊이지 않는 잔혹한 학원 폭력,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나리는 푸르게 멍든 잎파리들, 총과 칼을 쥐고 얼룩덜룩한 옷을 입혀 폭력과 고립의 공간으로 내몰리는 제이들, 제이들, 또 제이들.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쌓아가는 브릭들은 어떤 모양인가?

내 삶속에 꽉 채워져있는 브릭들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거야."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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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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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으나, 실제로 불리는 일이 없었다.

왕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획이 많고 뜻도 미미한 글자를 딱 한 자만 골라 이름으로 삼았다. 

하지만, 왕이 이름을 불리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궁중의 법도는 지엄했고, 왕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왕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마마'였다. 이른 나이에 왕의 후계가 되면 '저하' 가 되고, 성인이 되어 왕위에 오르면 '전하' 가 되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하면 대부분은 죽거나, '대군마마' 가 되었다. 

금상, 주상, 상. 

살아있는 동안에는 종이 위에서도 왕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그나마 죽고 난 뒤에는 시호가 붙었고, 족보의 한자락에 획도 많고 뜻도 미미한 복잡하고 어려운 한 글자가 쓰여졌다. 

세자는 어느날 문득, 권력을 향한 치열한 아귀다툼의 밖에서 삶을 향해 꿈틀대는 거대한 용을 보았다.

그들도 자기처럼 이름이 없었다. 그들은 어느 시대이건 '백성' 으로 통칭되었다. 

세자는 권력을 향한 싸움을 그만두고, 용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이 작품을 리뷰하기 위해서는 영화 [역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사, 이 소설을 위해 리뷰 이벤트를 기획한 것도 영화와의 시너지를 위한 것일테니, 기획자의 의도에 맞는 방향으로 미력한 리뷰를 이끌어 나가보련다. 

영화 [역린] 은 조선 역사를 통틀어 외적으로는 가장 평안했지만, 내적으로 가장 치열했던, 백성들은 그나마 살만했지만, 궁중 안에서는 수많은 양반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며 죽고 죽이는 당쟁이 가장 처절했던 영조시대를 계승한 정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 몇 년 간 정조를 다룬 컨텐츠들은 가히 붐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정조는 그 태생부터 드라마틱하다. 결국은 왕이 되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아비를 살리기 위해 맨바닥에 엎드려야 했던 열한살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 왕이 되어야 했다. 아버지를 뒤주에 가둬 굶겨죽인 할아버지의 발 밑에 납죽 엎드려야 했고, 자신과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젊은 할머니(정순왕후)와의 권력 전쟁의 중심에 서야 했다.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살아남아 왕이 되었지만, 그 뒤도 평안하지는 못했다. 노회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이기 이전에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고, 최후의 순간까지 끔찍한 위협이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세력들(노론)도 여전히 강대했고, 그 정점에는 아직도 젊고 건재한 할머니가 있었다.   

 정조는 집권 초기엔 정적들과의 암투로 정신이 없었고, 중기에 접어들어 비로소 뜻을 조금씩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혁의 기틀을 잡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할 즈음 돌연사하고 만다. 

그냥 사건들만 줄줄 풀어놓아도 빠져들만큼 재미있다.

영화 [역린] 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집권 직후. 정조 1년에 있었던 왕의 암살사건인 정유역변을 두고 펼쳐지는 하룻동안의 일들 다룬다고 한다. 

 

다시 소설[역린] 으로 돌아오면, 영화 [역린]의 각본을 담당했던 최성현 작가가 집필한 것으로 총 두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 '교룡으로 지다' 는 냉혹한 정치의 희생양인 사도세자의 참혹한 일화 - 임오화변, 2권 '용의 분노' 는 영화 [역린] 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내가 리뷰단으로 선택되어 받은 책은 1권 '교룡으로 지다' 부분으로 영화 [역린] 의 프리퀄 격인데, 딱 한마디 감상은, 

'상당히 재미있다!!'

 

상세히 들여다보면, 각 챕터가 인물별로 나뉘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이나 최근 인기가 높은 '왕좌의 게임' 의 원작소설인 J.R.R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 와 같은 구성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요 화자가 챕터별로 바뀌는 방식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다각도에서 각 인물별로 사건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소설에 매우 잘 어울리는 구조라 할 수 있다. 특히 임오화변이나 정유역변처럼 대부분의 독자들이 결과를 명백히 알고 있거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의 경우엔 디테일한 세부요소들을 알게 됨으로써 인과관계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구조적인 장점에 어울리는 문체도 정말 좋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물은 김훈 작가의 [칼의 눈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사법을 최대한 배제하고,  적확한 단어들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묘사로 단호한 문체를 구사하는 김훈 작가 특유의 스타일은 이후의 수많은 역사 소설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작품 또한 전반적으로 절제적이고 단호한 문체가 무거운 주제와 어우러져 상당한 비장미를 선사한다. 

 

영화 시사를 마친 전문가들도 대부분 호평을 했던 캐릭터들은 소설 안에서도 지극한 매력을 자랑한다.

사도세자의 이야기인 소설의 1권 안에서 정조의 비중은 미미하지만, 당시 조정을 쥐어잡고 있던 노론의 거두 홍봉한과 정순왕후, 아들 정조를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세자빈 혜경궁 홍씨, 왕의 최측근이자 사실상 권력의 핵심인 내관 안국래, 조선 최강의 암살집단을 구축하게 되는 광백, 그리고 아들을 뒤주에 가둬 굶어 죽게 만든 영조까지 다양한 위치의 인간 군상들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캐릭터들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데에는 위에 언급했던 소설 자체가 갖고 있는 서술 구조도 한 몫을 한다. 읽어나가다 보면 각 캐릭터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조각들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임오화변이라는 하나의 참혹한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지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이상문학상 수상집]부터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집],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까지 치달으며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예민한 단편들만 읽어서인지 선굵은 서사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이 더 호의로운 것일수도 있겠다 싶지만, 1권만 읽었음에도 서사적으로 뛰어난 완성도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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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토월 - 이문구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4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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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영글 눈발이 소나기지면서 잠 씻은 밤이 이우는 섣달이라 기댈 건 화로하고 다시없으련만, 또 무슨 추위던가 횃대 밑에선 벌써 닝닝한 화로 냄새가 돈다. "
[암소]
 
 첫 문장부터 아주 맛깔났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문장을 읽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판소리의 한 자락처럼 가락을 넣고, 중간에 추임새를 넣고 싶을 정도로 문장 맛이 좋았다. 진눈깨비를 '더 영글 눈발' 이라고 표현하고, 후루룩 쏟아지는 모양새를 '소나기지다' 고 표현한다. '횃대' 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라 간만에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 들어갔다. '기름한 작대기의 두 끝에 끈을 매어 벽에 달아매어 놓고 옷을 걸게 한 막대기.' 라고 한다. 사진이 있어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 나고 30년이 훌쩍 넘도록 떠나보지 못한 나에겐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다. 여튼, 벽에서 한기가 스며들 정도의 12월 추위를 횃대 밑에서 닝닝한 화로 냄새가 돈다고 묘사한다. 
 첫 문장부터 이렇게 신선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가락을 타고 흥겹게 흘러나오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총 10편의 작품들 중 1. 이라는 숫자가 붙어있는 [암소] 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쉴새 없이 키들거리고, 미소짓고, 안타깝게 하고, 문장을 입밖으로 소리내었다. 인물들은 어쩜 그리 생생하고, 대사들은 찰진지. 갈등관계는 명확하고, 인과관계도 뚜렷하다. 거기에 우리의 말이 가지고 있는 감칠맛은 또 어찌나 좋은지. 옛날 사투리들이 섞여있어 소리내어 읽어보지 않으면 모를, 그리고 앞 뒤 문장을 통해 내용의 흐름을 잘 파악해 보지 않으면 모를 단어들이 요소요소에 숨어있는데, 그것들이 나에겐 커다란 식빵 사이에 묻혀있는 건포도처럼 달달했다. 오죽하면, [이문구 소설어 사전] 이라는 것이 편찬되어 있고, 이 두툼한 작품집의 권말에 몇 페이지를 할애하여 낱말풀이를 해 두었을 정도이다. 
 
 문장도 문장이지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자체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수필과 소설, 직접 겪은 일과 꾸며낸 이야기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대단히 디테일하고 생생하다. 직접 겪은 일이건, 꾸며낸 이야기이건 작가로서의 관찰력과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재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한 시대를 관통한 사상과 사건, 관념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로인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렸을 적 살았던 옛 동네,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은 기억과 다르게 변했을 과거의 그 장소들, 그 장소를 거닐던 그 때의 기억들. 다시는 바라볼 수 없는 풍경들과 느껴볼 수 없는 시간들. 그 가슴 저미는 향수가 말과 글의 향연 속에 잔잔하게 스며있다.     
 
 [암소] 를 시작으로, '관촌수필 연작' 중 네편이 실려있고, '우리동네 연작' 중 두편이 실려있다. 그 뒤를 [명천유사] 와 [유자소전] 이 뒤를 잇고 [장동리 싸리나무] 로 두툼한 작품집의 마지막장이 덮인다. 
10여편 모두 이문구라는 대가의 수많은 작품들 중 고르고 골랐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다. 특히, [암소] 와 [장동리 싸리나무] 는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묘하게 닮아 작품집 전체가 묘한 수미상관을 이루며 '작품 모둠' 그 자체로서의 완성도가 느껴진다. 
 모든 작품이 다 너무 좋아서 가장 좋았던 한두편을 꼽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산토월]과 [유자소전]은 마지막 장을 덮을때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고, [우리동네 이씨] 와 [우리동네 김씨] 는 잔잔한 카타르시스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암소] 와 [장동리 싸리나무] 에서는 화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공산토월] 외의 관촌수필 연작들 또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다.
   
 '문학' 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들 중 하나는 한 시대의 가치관과 생활관이 후대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남겨진다는 점이다. 여러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공감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를 위해 이야기의 구조와 문장의 아름다움을 포함한 문학적 완성도가 충분히 갖춰져야 하고,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킨 문학작품은 결국 고전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이 작품집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의 배경은 주로 50년대에서 60년대 우리나라의 수도가 아닌 지방이다.'관촌수필' 이라는 제목답게 관촌수필은 모두 충청남도 대천의 관촌부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지금은 미군이 조성해 놓았던 대천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한국전쟁 전후의 혼란한 사회상과 농촌마을의 생활상이 작가의 체험과 상상을 통해 풍부하게 묘사되어있으며, 충청도의 사투리가 듬뿍듬뿍 들어가 있다. 때문에 읽기가 수월치 않을 수도 있으나, 이 또한 작품의 맛이며, 가치이기도 하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 
이문구, 당신은 마법사!!!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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