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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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대하소설만 좋아하던 내가 단편의 세례를 받은지 꽤 되었다. 

나도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끝난 듯 끝나지 않은 듯, 마치 응가하다가 중간에 끊고 나온 것 같은, 애매하고 모호한 결말이나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서사, 무엇보다 단편의 소재로 쓰이는 대부분의 것들은 불편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괴로운 것들 투성이라서 정말 싫어했다. 물론 아름다운 단편들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 수능 모의고사에서 봤던 것들이라 괴로운 기억의 촉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알퐁스 도데의 '별' 은 너무 아름답지만, 빨리 읽고 문제 풀어야 할 것 같지. '소나기' 나 '동백꽃'도 마찬가지.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 고통이나 괴로움이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서사로 끝난 듯 끝나지 않게 끝나서 마음 속 어딘가를 쟁쟁 을러댄다. 

 대하서사물은 언제나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면 카타르시스가 온다. 주인공은 반드시 성장하고, 언젠가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낸다. 

 하지만 단편은 -어떤 단편들은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다. 



 뚜렷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좋아졌다. (나...나이 먹어,서? ㅋㅋ)

어쩌면 '문학은 답을 주지 않는다' 는 명제를 받아들인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주지 않으며, 괴로움을 해갈시켜주지도 않는다. 카타르시스나 열망을 주는 것도 아니며, 위로나 안정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 벼락처럼, 어느순간 갑자기 나는 문학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여기게됐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단편의 세례' 라고 적은 것이다.  

소설가들은 답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질문을 찾는 사람들이다. 답은 철학자(같은 사람)들의 몫일 터. 어쩌면 과학자도?  

 물론 각자의 해답을 갖고 있고, 그 답을 작품 속에 메시지로 넣는 작가들도 있겠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문학은 '주로' 질문자의 역할을 해왔다. 훌륭한 작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이런 건 어떨까?' 정도의 자기 의견을 피력할 뿐, 결코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소설을 "일어날 법 한 일" 이라고 일컫지 않았을터다. 소설가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퍼올리는 사람들이다.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처한 인물들이 하는 행동과 생각들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소설가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며, 문학 안에서 정답을 찾는 일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과 같다. 물론, 우물에서 퍼올린 물로 숭늉을 끓일 수는 있겠지만, 솥과 불을 마련해서 밥을 한차례 잘 지어 먹는 일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다. 

어떤 솥에, 어떤 곡식으로, 어떻게 밥을 했는지에 따라 숭늉의 맛은 달라질 터다. 

 


 이번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그런 의미론 같은 우물 안에서 얼마나 다른 우물물이 길어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내가 매년 수많은 수상작품집을 모두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이전회의 수상작품집에 비해 다채로움 면에서 즐거움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타이틀에 붙어있는 '젊은작가' 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았다. 물론 수상한 작가들이 모두 젊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번 작품집에서도 무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작가분도 두분이나(!!) 계셨다.ㅋㅋ) 하지만, 이 상에 작가의 연령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 상 안에서 젊음은 '등단시기' 에 가깝다. 때문에 기존의 문학상에서 발탁되기 힘든, 예를 들어, 장르적 요소가 가득한 소설이나 민감한 소재들이 활용된 작품들이 근근히 보였더랬다. 이번 수상집에서는 그런 소설을 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재미있는 형식이나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플롯, 헉, 소리 나게 만드는 소재들로 가득 차서 거의 쉬지 않고 모든 작품들을 즐겼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품집을 다채롭지 않다고 느낀 이유는 모든 작품들이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일들을 주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집의 가장 앞에 놓인 임현 작가의 "고두" 는 여고생 소녀가장과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 나아가 고교 교사와의 육체적 관계와 미혼모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지만, 누구나 거부하고 싶은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최은미 작가의 "눈으로 만든 사람" 은 성조숙증 자녀를 가진 어머니 강윤희와 강윤희의 과거에 있었던 남매간의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자인 강윤희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던 오빠 강중식이 "고두" 의 화자인 윤리 선생님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껴져서, 완벽하게 다른 정서의 두 작품이 미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김금희 작가의 "문상" 은 제목처럼 썩 내키지 않는 사람이 상주 중 한명으로 있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간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남자는 대화를 하던 도중 동시에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는데, 화자의 전 여자친구와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든그녀와 얽힌 듯이 보이는 다른 남자의 이야기가 묘한 위화감을 풍겼다. '나와 전 여자친구의 관계' 에 대한 내용이 다른 남자의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유쾌한 일은 아닌데, 그녀가 이 남자와 모종의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수컷들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든다. 

 백수린 작가의 "고요한 사건" 은 한 소년과 두 소녀의 애정의 삼각관계, 그리고 길고양이와 재건축을 둘러싼 동네 주민들의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갈등들을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삼각관계로 치환해 그려내고 있는데, 한 소녀의 짝사랑이 끝나고, 다른 소녀와 소년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동네 주민들의 갈등이 '고양이 살해' 로 폭발하는 플롯이 돋보였다.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사람" 은 데이트 폭력과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공포에 직면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방식은 마치 의식의 흐름 같기도 하지만, 짧고 명확한 서사를 꽉 붙들고 있다.  화자가 가지고 있는 의심들이 현실로 드러나는 클라이맥스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데, 여러 면에서 "고두"와 함께 읽는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 과 천희란 작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는 여성 게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여름" 이 젊은 두 동성 연인간의 연애와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여성 게이의 삶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그 여름" 의 경우에는 화자를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로 치환시켜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얼핏 통속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상적인 사랑과 연애 이야기였는데, 이를 통해 오히려 동성연애도 이성연애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환기시켜준다. 특별히 다를 것이 없이, 똑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똑같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진다는 점. 

반면,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서 각자가 피치 못할 선택을 한 동성연인의 비애가 서간체를 통해 그려진다. 특히 이 작품은 서간문이 갖고 있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인데, 자연스러운 구어체와 행간에 함축된 내용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인물들을 풍성하게 만듦과 동시에 독자들이 상상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해서 이 작품은 장편으로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일곱작품 모두 재미있었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신선한 점들이 많았으며,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상상을 하며 읽었던 작품은 역시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 사람" 이었다.

 치밀하게, 혹은 본능적으로 계산한 듯한 "여백" 이 특히 많았기에 더욱 그랬는데, 화자인 여성이 호수 바닥에서 '무언가 길쭉한 것' 을 손에 쥐었을 때는 정말이지 엉뚱하고도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아서왕이 죽으면서 호수에 버린 그 엑스칼리버도 떠올랐고, 화자의 손을 잡아끄는 '이한' 이라는 남성이 사실은 처음부터 귀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실제로 이한을 귀신으로, 주인공 화자를 영매 능력과 같은 신비한 능력이 있는 여인이었다고 생각해도 흐름상 전혀 무리가 없다.(외려 더 재밌- ㅋㅋㅋ그정도로 작품 내외적으로 풍성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느낌이 드는 소재들이 사용되었다.

나는 이런 수상작의 경우엔 심사경위나 해설을 가장 나중에, 각각의 작품들을 읽고 나름의 독후감까지 마친 뒤에 읽는 편이다. 책을 읽는 순간의 내 감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 작 역시 그랬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작품집은 심사 경위와 개별 작품에 붙어있는 해설도 굉장히 궁금하다. 

 평론은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예술 장르의 발전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평론에 비해 문학 평론이 많이 쳐진 감이 있는데, 이는 평단이 문단과 독립되지 못하고 종속되거나 공동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지나치게 고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가까운 과거, 큰 표절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자정 노력이 있었고, 물갈이를 통해 젊은 평론가들이 중요한 위치에 서면서 변화와 발전의 기로에 접어들었다. 이들이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전철대로 가느냐,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견제와 상생의 길을 개척하느냐는 결국 평론가와 작가들의 '친목질' 에 달려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어디나...그게 문제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은 언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쌓인 것보다 쌓아갈 것이 많은 작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단후 10년 이내라는 제한을 비춰 볼 때, '10년 이내' 라는 기간이 과연 직업적으로 '젊다고 할 수 있느냐?' 고 묻는다면, 나도 고개를 갸우뚱 할 것 같긴 하지만, 문학의 특성상 10년 동안 딱 한 작품만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반박하기도 어렵다.(ㅋㅋ) 

그래,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상이란 것은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독려하고, 더 많은 독자들에게 더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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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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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소년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훌륭한 복서가 된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이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소싯적에 만화 좀 읽은 내 또래 친구라면 불멸의 명작 일본만화 "내일의 조" 를 떠올릴 것이다. 

일본에서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까지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단순히 만화계 뿐 아니라 당시 일본 복싱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망가' 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고, 수십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영웅 서사의 플롯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수없이 재활용되고 변주되는 공공재이기때문에 오히려 창작자에겐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비교대상이 너무나 많기에, 말 그대로 수 없이 많은 도마 위에 올라 수 없이 여러번 난도질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클리셰와 내러티브, 플롯의 레퍼런스를 용납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가차없이 표절이나 도작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쏟아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등돌리기 일쑤이다. 


그래서였을까, 40대를 훌쩍 넘어 수천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남겼던 블로거의 입봉작으로는 정말 잘 어울리는 서사라고 느껴졌다. 

익숙한 플롯 안에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지만 신선하지 않은 대사를 쏟아낸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서사가 펼쳐지지만, 그 속도는 압도적이고, 독자의 호흡을 잡아끄는 특별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일까? 서사 중심이긴 하지만, 그를 구성하고 있는 문장들은 때론 한번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관념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꿈틀거리기 때문일까? 그런 문장들이 단순하고 단단하게, 무게가 실린 스트레이트처럼 감정에 쿡쿡 들이박히기 때문일까?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특별하게, 신선하게 보여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쉐프의 능력에 따라 완성도가 바뀌는 요리처럼 '소설' 을 완성하는 요소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태주는 비합리와 부조리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남들보다 많은 불행을 안고 태어났다면, 세상의 섭리가 비합리적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그 불행으로 인해 삶 전체가 어그러진다면 이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복싱은 합리와 조화의 표상 같은 스포츠이다.

체중에 따라 세밀하게 나뉘어져 최대한 동등한 조건의 선수들이 맞붙는다.

트렁크 하나에 글러브 한 쌍. 선수들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눈으로 보고, 팔을 뻗는다. 모든 신경과 근육들이 조화를 이룬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방보다 한 발 더 뛰고, 한 번 더 뻗고, 한 숨 더 쉬어야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대부분은 노력을 통해 벼려진다. 

비합리와 부조리의 표상 같은 태주는, 링 안에서도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선수들이 보기엔 비합리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복싱에는 '기술' 도 존재한다. 재능 없는 자들이 재능 있는 자를 이기기 위한 특별한 기술. 그것까지 배운 태주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고, 그런 그를 꺾기 위해서는 링 밖의 권력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비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타고난 비합리로 간신히 삶을 살아내는 태주는 사회의 부조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서사는 예상 가능한 흐름대로 흘러가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휙 고개를 꺾는다.

익숙한 서사를 쫓아가던 나에게, 이 클라이맥스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로 다가왔다.

세 페이지에 불과한 이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려왔구나, 싶었다. 

온몸이 짜릿할 정도의 카타르시스가 등줄기를 타고 뒷목을 치고 정수리로 터져나왔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어...이곳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야!" p.355


한 때는 소설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무언가 얻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는 답이 없다.

문학에는 답이 없다.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제" 일 뿐이다.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고, 영원을 찰나로 만들어 문장을 빚어 눈 앞에 보여준다.


"문제" 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작디 작은 사각의 공간을 찾아낸 태주.

하지만, 그 링은 태주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태주가 찾아야 할 세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에게 어울리는 세계는, 어디있을까? 

무엇을 찾으면, 될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문제를 던진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 글 안에는 없다. 그 곳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니까. 

일단은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불 밖으로 나가도, 그 안은 사각의 철창으로 둘러싸인 좁디 좁은 사각의 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불 속일지도 모른다. 

답은, 글 안에, 모니터 안에, 이불 안에 있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 길위에 있다.

장지문과 대문을 지나,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저 큰 길 위에. 

 

 "먼저 덤벼서 자빠지는 거랑 남이 짓눌려 짜부라지는 거는 달라. 이놈 새끼야. 스스로 부딪쳐서 이겨내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더 센 놈이 짓누를 때 짜부라진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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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아해들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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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문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요즘이다.

삶이 잘 풀리지 않으니, 타인들의 이야기도 좀처럼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9편의 단편이 모여있는 김종광 작가의 작품집 [처음의 아해들].

무심코 첫 작품 [세족식] 을 읽고, 어찌나 키들거렸던지. 생생한 인물들과 쫙쫙 달라붙는 대사들,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해학 가득한 감칠맛 나는 문장들이 정말이지 '끝내줬다.' 


이 작품집에는 [세족식]을 시작으로 [당장,나가버려!],[처음의 아해들],[옷은 어디에?],[내시경],[시골사람 중국여행], [면민바둑대회], [우라질 양귀비],[뻥집이 사라졌네] 까지 총 9편의 작품들이 모여있다.

초반의 세 작품, [세족식],[당장, 나가버려!],[처음의 아해들]은 교육이라는 소재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 학원 선생님, 대학 교수, 옛 제자들을 만난 정년퇴직을 앞둔 고등학교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동료, 제자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학원 선생님들간의 관계와 그 세계가 갖고 있는 생리, 대학 교수와 대학생들간의 묘한 관계, 이제 정년 퇴직을 하는 노선생의 회한과 추억이 담긴 첫 제자들과의 거나한 술자리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능란하게 그려진다.   



[세족식] 은 자신이 몇년간 열심히 다녔던 입시 학원에 강사로 취직하게 된 대학 휴학생 강쇠의 이야기이다. 학원 수강생들을 보충하기 위해 세족식을 열려고 하는 학원 원장과 동료 선생님들의 다양한 생각들의 강쇠의 과거 편린들과 함께 조각되어 있다. 현재 대학생들의 고난스러운 삶이 가감없이 등장하고,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가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의 이미지가 묘한 정겨움을 준다. 풍자와 해학은 에로틱을 동반하기 마련, 적절하게 활용된 묘한 에로티시즘 역시 달콤매콤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평범한 이야기도 특별하게 만드는 필력이 작품집의 서두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은 그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입시학원은 '대학 입학' 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서비스업과 같다. 물론 학교 교육 역시 서비스이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다르다. (최근의 학교 교육이 학원과 뭐가 다르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취지 자체는 다르니까.) 당연히 학교 선생님간의 동료 의식과 학원 선생님간의 동료 의식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학원은 보다 회사의 사원간 관계가 비슷할 것이다. 

특히 주인공 강쇠와 학원 원장 혈녀와의 관계가 재미있다. 고교시절, 혈녀에게 매맞아가며 배우던 학생이 장성해서 상사와 부하로 다시 만났으니, 제자가 부하가 된 것이다. 학생들에게 세족식을 해주자는 혈녀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학원의 주 목적인 입시와 세족식의 상관관계를 도무지 이해하지도, 인정할 수도 없는 강쇠의 의식의 변화가 다른 선생님들과의 회의 석상을 통해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정말 감칠맛나고 찰졌다. 읽는 맛이 참 좋은 작품이었다.


[세족식]은 학원이긴 하지만, 장성한 제자와 재회한다는 점에서 [처음의 아해들]과 맞닿아있다.

[처음의 아해들]은 추억의 냄새가 가득할 것 같은 오래된 술집에서 시작된다. 수십년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질긴 인연을 이어온 첫 제자들과 노은사의 만남이라는 소재 자체가 참으로 정겨웠다.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지방 중소도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그 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라면 아마 몇몇은 끈질기게 그 도시에 남아 삶을 이어갈테니 말이다. 젊은 시절 부임해서 정년 퇴직 할 때 까지 한 고등학교에 재직한 선생님이라면 평생 몇차례라도 부딪히지 않을 요량은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교원노조의 설립 역사와 불합리한 우리 사회의 일면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짧은 분량 안에서도 캐릭터들에게 뚜렷한 개성을 부여하며 단 몇 문장만으로 풍성한 내러티브를 선보이는 작가의 역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옷은 어디에?]는 동네 세탁소에 맡긴 옷이 없어진 부부의 일화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가난한 작가인 판돈은 모처럼 외출할 일이 생겨 아내인 쾌순에게 세탁소에 맡긴 면바지를 찾아오라고 시킨다. 판돈에게는 외출용 면바지가 단 두 벌 있었는데, 마침 세탁소에 맡긴 참이었다. 하지만, 쾌순은 판돈에게 빈손으로 돌아오고, 세탁소가 처한 딱한 상황을 들려준다. 동네 작은 세탁소와 거래를 하는 읍내 거대 세탁소간에 문제가 생겨서, 작은 세탁소의 옷들이 몽땅 읍내 거대 세탁소에 압류당했던 것이다. 

쾌순과 판돈을 통해 이 세탁소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펼쳐친다. 읽는 내내 키들거림을 멈출 수 없을 정도였다. 역시 이번에도 판돈과 쾌순이라는 캐릭터의 개성이 면밀하게 드러나는 대사들의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작품 중반에 쾌순이 남편 판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한 문단에 가까울 정도의 장문이 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다.

기업(세탁소)간의 분쟁을 통해 곤란을 겪게되는 소시민적인 일상이 스릴러와 같은 장르의 문법으로 펼쳐지는데, 이토록 별 것 아닌 소재를 대단한 것처럼 풀어내는 기술이 돋보였다. 사실 이 작품은 소재와 문장은 물론 인물과 대사까지 허세와 과장이 가득한데, 그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시경] 와 [시골사람 중국여행] 은 구조, 형식적인 해학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내시경]은 모두 '~했네.'체로 끝나는데, 단지 그것만으로도 아주 평범한 이야기가 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시골사람 중국여행]은 중국여행을 간 시골의 한 오랜 동창회 멤버들을 인터뷰한다는 방식의 논픽션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동창생들이 중국 여행을 하게 된 계기와 학창시절 이야기, 몇 안남은 동창회 멤버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각자의 시각에서 풀어내는데, 인물들의 개성이 아주 잘 드러난다. 역시, 소시민적인 인간군상을 풀어내는데 탁월한 감성과 시각을 즐길 수 있었다. 새삼, 지난 뒤에 돌이켜보면 인생은 꽤나 길구나, 라는 느낌과 함께 별 탈 없이 살아간다면 나에게도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면민바둑대회]는 이 작품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한번 다 읽은 뒤, 바로 다시 또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고희를 다섯해 남긴 이발사 이상원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잔치를 열어보고 싶었다. 

승부를 가리는 '대회' 만의 긴장감이 잘 살아있었고, 역시나 인물들의 개성이 듬뿍 묻어나는 감칠맛 나는 대사도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작은 지방 소도시의 정겨운 분위기와 사람 사는 맛이 구수하게 어우러져 무척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몇 번 이나 찬사를 되풀이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저자의 감각은 무척이나 탁월하다. 게다가 한 두 문장만으로 한 인물의 과거와 성격을 표현해내는 기술이 탁월해서 짧은 이야기들임에도 무척이나 풍성한 느낌을 준다.


[빵집이 사라졌네]는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먹고사니즘' 의 정점을 찍는 작품이자, 그 상징과도 같은 우리네 어머니를 다루고 있다. 일절 가계에 신경쓰지 않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남편과 함께 사는 기분씨는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들에게 용돈을 보태주기 위해 읍내 제과점에 취직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장을 가진 기분씨는 창문닦이와 청소등 잡일부터 시작해 손님 응대까지 무려 십일년 간이나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갔다. 제과점 사장과 기분씨의 사이가 비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제과점 사장이 기분씨를 해고한 뒤  퇴직금을 받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야말로 우리 어머니들이 한번은 겪었을 먹먹한 이야기가 [내시경] 처럼 '~했네' 체로, 마치 누군가에게 전해듣는 듯 한 문체로 펼쳐지느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 사장과 노동자의 관계 등 우리 사회 전반의 "갑을 관계" 들이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불과 한 두 문장으로 수 년의 세월이 쑥쑥 지나가 버리곤 하는데, 이러한 시도 역시 작품의 주제와 맞물려 관조적이면서도 허망한 감정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한 두 작품만 상세한 리뷰를 해 보려고 했는데, 기억을 헤집으며 책을 다시 펼쳐보니 모든 작품을 한마디씩은 꼭 달고 싶었다.

어차피 리뷰는 타인보다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문장을 추가해갔다. 


작품집 말미에 문학평론가의 상당한 분량의 비평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절망의 강바닥에서 퍼올린, 이 싱싱한 낙관들" 이었다.

멋진 제목에 감동하여, 자칫하다가는 내 감상도 흐트러질까봐 비평은 읽지 않았지만,(다 적었으니 이제 읽어봐야지.) 작품 전반에 흐르는 미묘한 낙관이 큰 울림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런 낙관은 작품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해학과 절묘한 웃음 포인트 덕이었겠지만,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넉넉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매우 날카롭고 냉정하게 절망적인 현재를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꿈도, 희망도, 사랑도 풍성히 흘러 넘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  


정말로 절망적인 현실을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10년 뒤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칠흙같은 어두움에 가슴이 무너져서,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 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말도 공허할 뿐이다. 

누군들 안 그럴까?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는 삶인데. 

어차피 종착지는 죽음이다. 절멸이다. 이 땅 위에서는 다시는 소생할 수 없는 영원한 어둠이 예정되어 있는 삶이다. 때문에, 현실은 언제나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아니면 뭔가를 믿어 어떻게든 부정하던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이라면, 절망 안에서 버텨내는 법을 익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삶이란, 버티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고,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는 존재라고 또 누군가가 노래했었다.

결국, 그렇다면,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그 방법을 찾기 위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보는 것일테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제를 버티어낸 결과가 오늘 아니던가?? 

삶이란 그저 기억을 켜켜히 쌓아내는 일에 불과하다. 별 것 아니다. 절망 역시 그러하다. 

'1리터의 눈물'의 카토 아야가 말했듯이, 그저, 오늘을 살아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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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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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어찌될지 궁금했던 책은, 그야말로 오랜만이었다. 

책의 중간을 읽다가 맨 뒤를 펼치면, 책을 그냥 쓰레기통에 쳐박는 것과 다름 없다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은 지 수 년 이지만, 어지간히 날고 기는 미스테리 스릴러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뒤가 궁금'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맨 뒤를 펼치고픈 욕망과 한없이 싸웠다!!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 다음은?" "아 빨리 말해봐~~!!!" 라고 안달하는 그 즐거움.

정말 오래간만에 '이야기의 힘'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과거를 미스테리하게 숨긴 주인공도 아니고, 중첩되어 복잡 미묘한 플롯을 가진 것도 아니고.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지만 그 길의 끝이 궁금해 미칠 것 같게 만드는, 우직하게 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이야기의 힘, 말이다. 


이야기의 첫 머리에 주인공 기현은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한 명 구해 차에 태운다. 여성에게 선불로 넉넉한 화대를 지불하고, 기현은 한 모텔 방 으로 그 여성을 들여보낸다. 방 안에는 한 남성이 누워있다. 기현이 낙향하기 전에는 몇 년 동안 기현의 어머니가 그 성인 남성을 등에 업고 창녀촌을 전전했다고 한다. 창녀가 들어간 모텔 방에 누워 있는 남성에게는 두 다리가 없었다. 기현의 형인 우현의 다리가 잘려나간 것은 5년 전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명문대생 우현은 기현이 모르는 새에 군대에서 두 다리가 잘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현은 자신의 형의 두 다리가 잘려나간 것에 대한 자책감을 갖고 있다.


 이것은 '가족' 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디서 읽었더라.

가족이란,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인 동시에 가장 큰 짐이라는, 내용을.

이 이야기는, 그 내용이 담겼던 문장 자체가 그냥 멋에 겨워 쓴, 무의미한 문장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애초에 삶 자체가 짐이 가득한 선물인걸. 


 꽤 오랫동안 가출했다가 낙향한 기향은 다리가 잘려나간 형을 업고 사창가를 전전하는 어머니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기현은 어머니를 보며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을까? 짐을 지고 가는 어머니? 선물을 지고 가는 어머니? 

기현이 어머니를 본 것은, 작은 개인 심부름 센터를 하는 기현에게 온 의뢰 때문이었다. 상당한 착수금과 함께 어떤 여성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알고보니 그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 후로도 기현에게는 자신의 어머니를 미행하라는 의뢰가 끊이지 않고, 생활비에 쪼들리던 기현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의뢰를 받아들인다.

다리를 잃은 뒤 주기적으로 성충동적인 발작을 일으키는 형 우현. 특별한 비밀을 가진 어머니, 항상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화단을 가꾸는 아버지. 평범한 중상층보다 약간 더 위쪽 포지션이었던 기현과 우현 가족에게 과연 어떠한 과거가 있었을까? 

결말이 궁금하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서 책 앞표지와 뒷표지를 다 봤다. 몇 초 만에 맨 뒤로 넘길 수 있었지만, 욕망을 참고 참아 두어시간 동안 한 장씩 맨 뒷 페이지를 향해 읽어 넘겼다. 그렇게 책장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덮고 난 뒤 한참동안 이야기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우현과 기현 형제는 물론, 그들 부모님의 삶까지 지배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지극한 파괴성과 삶의 냉혹함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얽매여 살고 있을까. 불현듯 그 거대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전에 봤던 [이웃집에 신이 산다] 는 영화가 떠올랐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을 괴롭히기 위해 매일매일 기상천외한 규칙들을 만들어내고,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사고를 일으키는 내용이 있었다. 인간들을 괴롭히기 위해 창조해낸 규칙 중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같은 것과, "배우자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와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일종의 착란과도 같다. 정신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지 않나. 

자기 자신을 온전히 타인에게 맡긴다거나, 타인의 모든 것 - 빚이나 병이 있는 가족 등 까지- 떠안는 일 따위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리해야, 그 어떤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곤 하는 사랑에 빠진 인간들을 설명할 수 있을터다. 그리해야, 사랑 놀음은 결코 행복하거나 달콤할 수 없다는 나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터다. 아니 그런가? 1초의 행복과 달콤함을 위해 남은 모든 시간은 괴롭고 화나고 슬프고 우울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외로움이라는 선천적 질병 앞에서 사랑이라는 모르핀을 취할 수 밖에 없다.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유일한 빛은 사랑이다. 1초의 행복을 위해, 1초의 달콤함을 위해, 사람들은 마약쟁이처럼 매달리고, 구걸하고,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기억은 있다. 마치 남에게 들키면 안되는 불법적인 일처럼 꼭꼭 숨겨놓은 그 곳에 말이다. 

이야기의 여운 속에서 한참을 허덕이다가 [식물들의 사생활] 이란 제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온갖 종류의 식물이 떠올랐다. 잡초, 푸성귀, 벼, 보리, 배추, 무우, 브로콜리, 피망, 양상추부터 개나리, 진달래, 프리지아, 히야신스, 물망초 등의 꽃은 물론, 단풍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미류나무, 밤나무, 잣나무 이 작품에 언급된, 야자나무, 물푸레나무 등까지. 식물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보다 볼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 집 뒤의 산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빼곡한 숲을 떠올려도 그렇다. 상상의 범위에도 담지 못하는 엄청난 뿌리들이 서로와 얽혀있다. 얼마나 많은 나무와 풀들이 서로에게 얽혀있을까? 어지간한 비가 와도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그 어떤 태풍이 몰아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굳게 얽혀있다.

 사람들도 그렇지 않던가.

애인의 스마트폰을 몰래 열어 전화부를 열어 보면 보이는 수 많은 사람들. 마치 집 뒤의 산이 떠오를 만큼 가득 찬 나무처럼 빽빽한 이름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의 관계를 모두 알 수는 없다. 우연히 문자나 카톡 메시지를 통해 흙 밖으로 비죽이 솟아나온 뿌리를 본 연인처럼 히스테리를 부려봐도 결코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관계의 뿌리들이 어디에든, 누군가와든 닿아 얽혀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사랑의 기억이 묻혀있다. 당신과 나만 아는 곳. 그 곳에. 


 이 작품에서 기현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오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 아버지, 어머니, 형제의 뿌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뿌리는 대부분, 사랑으로 얽혀있다. 딱히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드러내려 한 적도 없으나, 세월의 흙이 켜켜이 덮여 저절로 숨겨진 비밀스러운 어찌보면 '대부분의' 삶들.  (재미있게도, 가족들의 뿌리를 파헤치는 기현의 뿌리는 독자들만이 볼 수 있다.)


 뿌리는 흙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함부로 누군가의 뿌리를 파헤치다가는, 그 누군가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기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점철된 뿌리는, 또 다른 사랑으로 파헤쳐진다. 사랑과 사랑이 얽히고, 시간속에 묻힌다.

삶이라는 식물은, 그렇게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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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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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만큼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작가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데,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특히 여성 독자층 중에 정이현 작가를 싫어하는 분들이 꽤 많다는 것을 꽤 여러번 느꼈다.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특정 연령대에 어필할 만 한 매력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졌지만, 통속성이라고 폄하 할 수도 있겠고, [너는 모른다] 는 상당히 재미있으나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랑의 기초]는 딱 봐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기획을 모방한 상품에 가까운 작품이니 그 역시 '깔'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정이현 작가의 데뷔 작품집과 다름없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는 동성의 팬들에게 불편을 줄 구석이 많다. 

우리 사회 안에서 속물적으로 소비되(하)는 여성성을 너무나 날카롭게, 관용 없는 차가운 시선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정이현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설적으로 여성들의 시각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단지 '여성' 이라는 이유로 그녀들에게 행하는 수많은 유무형의 폭력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이현 작가의 데뷔 작품집이나 다름없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작품들 역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연애, 결혼, 직장, 동성애 등의 소재들을 생활에 밀접시켜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다. 남성으로서 때로는 읽기 불편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다소 속물적이라는 비판을 들어 마땅한, 선택들에 대해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다. 능동적으로 남성들의 세계에 비집고 들어가려는 여성들의 시각으로 비틀린 우리 사회의 비틀린 남성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지 '여성' 이란 이유로 당연스레 가해지는 수많은 유무형의 폭력들,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기 위한 여성들의 전략과 전술, 타협과 대결을 대해 다채롭게 그려낸다.

 

표제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 는 주인공 여성이 사회적인 지위가 번듯한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처녀성을 잘 지키면서 적당히 즐기는 내용이 펼쳐지는데, 우리 사회가 한 때, 어쩌면 지금도 일부, 여성의 성경험 유무를 인격, 인성, 인생과 결부시키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 오래 된 일도 아닐터다. 

주인공 유리는 때론 여러 남자들을 만나며 잠자리만은 피하기 위해 낡은 속옷을 입고 다니고, 아슬아슬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대담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처녀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데,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상승시켜 줄 수 있는 남성을 위해 가질 수 있는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20~30년 안쪽이었을 것이다. 여성에게 혼전순결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가치였던 시절이. 지금 친구들은 콧방귀를 뀌겠지만, 90년대 소설만 찾아봐도 '첫날 밤 이불 위의 붉은 꽃' 따위의 메타포를 수두룩하게 찾아볼 수 있을터다. 

우리 사회가 그랬다. 남성들이 그랬다. 불과 내가 10대이던 시절만 해도, 그렇게 원초적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트렁크 안에서 소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야릇한 관계인 회사 상사에게 연락을 하지만 결국 스스로 모든 걸 처리하는 여성이 등장하기도 하고(트렁크), 아빠 차를 한 번 몰아보고 싶어하는 짝사랑하는 용이오빠의 부추김이 있었지만 오히려 한 술 더 떠 부모님을 상대로 자작 유괴극을 펼치는 여고생도 등장한다(소녀시대). 마녀처럼 주변 사람들을 파국으로 이끄는 특별한 기술을 지닌 여성도 등장하고(순수),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끊긴 동성 연인을 찾으려는 레즈비언 여성의 이야기(홈 드라마)는 소수 중에도 소수의 이야기를 다뤄낸다. 결국은 현실에 좌절하고 마는 비만여성의 이야기(신식 키친)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0세기 모단 걸; 신 김연실 전'은 일제 강압기에 당당하게 일본으로 유학간 김연실이라는 여성이 한 남성의 찌질함 때문에 결국은 사회의 편견에 굴복하고 인생의 항로를 바꾸게 되지만,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의 제대로 된 복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김연실도 남성의 폭력에 의해 인생이 '바뀐' 것이었을 터. 


사회에 맞서 '남녀평등'!!! 을 외치며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순응하고, 순응하는 것 처럼 위장하고, 타협하고, 타협하는 것 처럼 위장하며 살아갈 것이다. 

책 말미의 해설(이광호)에도 언급되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녀들의 '위장술' 과 '정치학' 을 참으로 재미나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이제스트로 훑어본 정도였던 [여자가 섹스를하는 237가지 이유] 라는 책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확실히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복잡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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