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여자, 축구 - 슛 한 번에 온 마을이 들썩거리는 화제의 여자 축구팀 이야기
노해원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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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여자들이 축구를 한다 ' 이렇게 멋진 워딩이라니...책 제목을 보자마자 기대감에 마음이 설렜다.

유일하게 빼먹지 않고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JTBC <뭉쳐야 찬다>이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 단 한편도 놓치지 않았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도 처음부터 챙겨봤다면 아마 광팬이 되었을 텐데 타이밍을 놓쳐 흐름을 타지는 못했다.

우리는 '축구'라는 키워드 하나로 온 나라가 들썩일 수 있다는 것을 2002년에 직접 경험했다. 축구에 온 국민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 '라는 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뭉쳐야 찬다>를 즐겨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축구가 진짜 재미있어서다. 그러니 '시골, 여자, 축구'라는 제목의 책을 만난 순간,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게다가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이라니, 기대감은 한층 상승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생활 반경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반반 FC'라는 팀명으로 모여서 축구를 한다. 팀원은 모두 여자다. 그냥 이리저리 떼로 몰려다니는 축구가 아닌,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진짜 축구를 한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를 읽고 나서, 김혼비 작가의 광팬이 되었는데 그때의 그 짜릿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반반 FC의 주장 노해원 작가는, 일주일에 세 번 축구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축구 글쓰기 모임을 하는 축구에 진심인 사람이다. 주로 초등학교 축구부, 족구팀 아저씨들 등 동네 사람들과 축구를 하기 때문에, 그들과 운동장 외의 공공장소에서 마주쳤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고 했다. 뜨겁게 경기할 때와 차갑게 식어 있는 일상 사이의 커다란 캡 차이 때문이라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반반 FC는 축구를 하기 위해 모였지만, 같이 훈련하고 같이 기뻐하고 분해하는 순간들이 쌓여 우정과 추억을 만들어 갔다. 부끄러운 플레이에 소심해지고, 가끔은 부끄러운 인성이 들켜 멋쩍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발걸음은 운동장으로 향할 정도로 축구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노해원 작가는 어린 시절에 왜 남자들은 축구를 하고 여자들은 당연히 피구를 했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왜 당연하지 않았는지, 그 당연함을 누리지 못하는 쪽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자주 서러워했다.(32쪽) 그러나 축구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한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느껴서 통쾌했을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은 평평해지고 있다고 느껴서 위로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축구가 좋아서 할 뿐이었는데 축구를 하며 나의 한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한계를 함께 뛰어넘는다고 느껴 왔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그 당연함을 누리지 못하는 쪽의 대부분이 여성들의 몫이라는 사실이 자주 서럽지만 또 한편 그것을 넘어설 때마다 경계와 선을 지워가는 모습이 너무너무 멋지다. (32쪽)

스포츠를 하지 않거나 보지 않는 수많은 여성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예전의 나처럼 못 하는 게 너무 당연해서 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은 언제쯤 평평해질 수 있을까. 그때까지 우리는 얼마큼의 시간과 얼마큼의 서운함을 삼켜야 하는 걸까.(138쪽)

<뭉쳐야 찬다>의 어쩌다 벤져스를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능감을 빼고 진짜 축구를 하기 시작한 시즌 2와 시즌 3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각자의 종목에서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운동선수들에게도 축구는 결코 쉽지 않았다. 자신의 종목과 축구에서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 자주 부상을 당했고, 포지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자기 자리를 찾느라 우왕좌왕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힘이 들어간 채 날아간 공은 허공을 배회했다. 그렇게 좌절하고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축구에 열정을 다 쏟았던 그들은 조금씩 성장해갔다. 결국 시즌 3 어쩌다벤져스팀은 전국재패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어쩌다벤져스 역시 반반 FC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었다. 이기면 좋아했고 지면 분해서 땅을 치며 울었다. 이기면 좋아서 계속했고, 지면 분해서 다시 했다. 이 굴레 속에서도 계속 축구를 했고,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고, 우정이 쌓였고, 추억이 쌓였으며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됐다.(55쪽) 축구가 좋은 이유를 질서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역시 어쩌다벤져스와 반반 FC의 공통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수보다 응원단이 더 많고, 이기는 일보다 지는 일에 더 익숙한 축구팀이지만, 당당하고 씩씩하게 운동장을 가르며 슛을 날리는, '축구는 처음인 시골 여자들'의 축구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 통쾌 상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직도 여전히 축구에 미쳐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반반 FC에 조건 없는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골 결정력이 부족하고 유효슛을 날리지 못하면 어떠한가. 초등학교 축구부에 13:0으로 지더라도 결코 패배를 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꾸준히 함께 뛰고, 외치고, 그 안에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일 아닌가. 단,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들이 환갑이 지나서도 여전히 축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시골, 여자, 축구'라는 타이틀로 펼쳐질 시즌 2의 서사를, 반반 FC의 팬이자 노해원 작가의 팬으로서 간절히 기다린다.

지금까지 나는 엄마로서 혹은 다년간 이것저것을 덕질해온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성장을 응원한다는 것이 나를 얼마나 살릴 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좋아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자부심, 책임감, 지키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결국에는 더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성장을 꾸준히 함께 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이 별수 없이 깊어진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무조건적인 응원을 하게 된다. 그런 응원을 받은 날이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기분이 들어서다. 무엇이든 이유가 필요한 세상에서 조건 없는 응원은 언제나 벅찬 감동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응원하는 마음이 나를 살리고 동시에 상대도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201쪽)

축구로 다져진 육체적 근력을 글쓰기라는 마음 그릇에 담아 끈끈하고 단단하게 빚어낸 <시골, 여자, 축구>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우리 동네 여자축구팀'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팀스포츠를 통해 내 삶을 조금 더 액티브하고 조밀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나의 SNS 프사에 이렇게 공지를 띄워볼까?

*우리 동네 멋진 언니들! 우리, 필라테스 말고 축구합시다. 팀명 - 언니들 FC, 모이는 시간 - 매주 토요일 아침 5시, 장소 - oo 운동장, 참가 자격 - 축구는 잘 모르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경험하고 싶은 언니들(팀원들과의 우정, 연대의식, 믿음은 덤으로 얻어 가실 수 있습니다^^)


시골여자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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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생각 버리기 - 입체적 마케팅을 위한 7가지 관점
설명남 지음 / 이은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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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생각 버리기





입체적 마케팅을 위한 7가지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마케팅은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브랜드마케팅, 때로는 체험 마케팅,

때로는 디지털 마케팅, 때로는 데이터 마케팅 등

유행처럼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와 트렌드만 쫓다 보면

열심히 일하고도 돈만 썼지 남는 건 별로 없는

허무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7)

또한 마케팅은 매우 다양한 역량을 요구하는 종합예술분야.

그래서 마케터라면 브랜드와 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8)

무엇보다도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마케팅에서 가장 나쁜 것은

'납작한 생각'

이라는 베이스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마케팅에서 제일 큰 문제는 입체적이지 않은,

평면적이고 납작한 생각입니다.

마케팅적 사고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입체적이어야

그때그때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21)

1. 인사이트&디지털 기술

2. 혁신 정신

3. 브랜드&페르소나

4. 사회경제적 거시 지표

5.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 세대

6. 사기꾼이 되지 않으려면, 이론

7. 오래된 미래, 체험

저는 7가지 주제 중에서

애플의 예를 들어주었던

2. 혁신의 시대, 혁신 이미지에 대한 높은 요구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생각이 마케터의 가능성을 키워준다.

최근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생각은 혁신 IT기업에서

주로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다.

그것이 사람들 삶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해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애플의 정신은 슬로건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라"

그러나 애플은, 혁신은 뒤로 숨고 이야기의 초점을 사람에게 맞추는

전형적인 화법을 활용해서 마케팅에 성공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었던거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집중하는 생각의 힘'

마케팅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성입니다.

단순히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69)

혁신은 현생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공유해야 할

공통의 지혜라는 점에 동의한다.

시대의 화두가 어느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마케터로서 방향을 잡는게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마케팅이란 상황에 맞는 최선의 답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한다.

상황에 맞는 더 좋은 솔루션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다양한 상황에 맞는 좋은 솔루션을 내기 위해서는

적용할 수 있는 프레임이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케팅엔 정답이 없으니까.

우리가 하는 업무에서도 마케팅이 필요할때가 있다.

내가 일하는 조직에서, 내가 하는 일에 관해,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최선의 솔루션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보면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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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
주얼 지음 / 이스트엔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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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은 독립출판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가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다. 책 제목에서 주는 따스함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순간마다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나간 계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행간에서 아련하게 느껴졌다. 12편의 단편이 각자 다른 형태의 계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지나간 계절에 남겨두고온 추억들을 꺼내 그 시간속으로 다시금 들어갔다 나오게 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우리가 계속 반복하며 겪어내고 있는 계절들 속에서 만나는 기쁨, 슬픔, 아픔, 환희 등을 대리해주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공감하며 읽었다. 12편의 단편이 전혀 다른 계절 감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12편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른듯 보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선택된 글 하나하나 살펴보니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속에 어느 정도 유사한 이미지와 감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지나간 시간을 향한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서 느끼는 체념 또는 작은 희망이었다(244쪽)'라고 고백했듯이 말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당시 우리가 이곳에서 얘기하고 나누었던 그 수많은 계획과 미래의 목표들, 그리고 꿈꾸었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모두 흘러가는 저 물에 떠내려간 것일까?(57쪽) [보통의 하루]

어릴적에 우리는 수많은 꿈을 꾸었다. 나의 미래는 이런 모양일꺼야. 나는 반드시 이렇게 만들어갈꺼야. 미래에는 거창한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과 부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시간을 지나오면서 깨닫는다. 특별한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보통의 하루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흩어졌다 모이면서 지금의 우리를 빚어 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우리 안에 스며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가 여기 있으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삶의 모든 모습이 선명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고,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죠. 저는 이제 그렇게 믿게 되었어요.(119쪽) [삼척에서 온 편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나의 존재가 희미하다는 이유로,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 아주 선명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명한 원색이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톤다운된 색이 지닌 매력 또한 충분히 있으니까.

지나간 계절을 훑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글쓰기를 처음 시작해 당당히 소설쓰는 작가가 된 주얼의 쓰는 삶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주얼'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굉장히 독특하다고 느껴졌었 이름에 담긴 뜻이 이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 '어바웃 주얼'에서 밝혀져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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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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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우리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인터넷과 휴대폰 아닐까 싶다. 변화라는 것이 모두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작용을 하는것일까?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 잃어버리는 것들 혹은 잊어버리는 것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런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들, 존재 조차 몰랏던 것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23쪽) 개인적으로는 X세대(1965년~1979년생 포함)에 속한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매우 흥미로웠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언급 부분에서는 어떻게 찍혔을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설렘의 감정을 증폭시켰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필름 한 롤을 다 찍어야만 현상소에 맡겨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고, 비싼 필름 가격 때문에 한장 한장을 정성들여 찍어야 했던 시절. 지금은 한장의 사진을 건져내기 위해 100장의 컷을 버릴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MZ세대는 그 감성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가 집에 방문했을때 어릴적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꺼내 보며 함께 웃고 쑥쓰러워하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어 쓸쓸한 감정도 든다.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온라인에서의 상시적인 연결은 엄청난 위안을 준다. 하지만 공유하거나 참여하지 않은 쪽을 선택한다면,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상황에서도 단절감을 느끼고 심지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달콤한 고독보다는 고립처럼 느껴질 수 있다(107쪽)

우리는 느슨한 연대이든 끈끈한 연대이든 목적을 위한 의도된 연대이든, 연대와 연결 없이 삶이 직조되지 않는 현재를 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바로 옆에서 소통하는 것 같은 친밀함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고립시키고 단절시킬 수도 있기에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연결의 적정선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질문은 존재하지만 해답은 찾을 수가 없다.

미래의 전기 작가들은 편지 대신 페이스북 피드, 트위터 스레드, 오고 간 이메일 목록, 수집된 텍스트를 샅샅이 뒤지게 될가?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수천 명의 소셜 미디어 팔로워에 대한 어설픈 생각으로 채워진, 사적인 사색을 공유하기보다는 리트윗수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이 넓은 창문은 어쩌면 피사체의 감정과 생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가 될지도 모른다.(191쪽)

우리가 가장 지속적으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은 아마도 페이스타임, 줌, 구글 미팅의 화면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때가 아닐까. 안전거리가 확보되었을 때만 우리는 타인의 눈을 바라본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에야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다른 창을 열고 다른 것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233쪽)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반강제적으로 가상의 공간에서 누군가의 눈을, 상대방의 표정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던 시기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눈과 귀는 수시로 핸드폰으로 향했었다. 알림 소리에 신경이 쓰여 앞에 앉아 있는 상대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줌이라는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발언자의 눈과 표정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다준 작은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는 말은 합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며, 여기에는 부인할 수 없는 밝은 면이 있다. 하지만 위험하거나 인기가 없거나 특이한 아이디어가 빛을 보기 전에 친구, 급우, 동료의 지적 속에 빛바랠 수도 있다는 어두운 면도 있다. (235쪽)

쪽지전달. 문자메세지와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 쪽지는 복잡한 우정 네트워크를 탐색하고 지루한 수업을 견뎌내고 방과 후 할 일을 계획하는 방법이었다. 쪽지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악의적인 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258쪽)

쪽지를 주고받는 일!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초등학교때는 교내에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우편함이 있었다. 소소한 이야기들, 싸운 뒤 화해의 메세지를 담은 편지, 친구가 되고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러브레터 등 무수히 많은 글들을 종이라는 물성에 적어 주고받았었다. 나 역시 그 편지와 메모들을 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보관했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꺼내 읽어보면서 그시절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지금은 문자메세지, SNS를 통해 언제든 대화할 수 있고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 쪽지에만 담을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인터넷은 마녀가 유혹하듯 우리의 비밀을 끄집어내 공개한다. 다른사람이 내 비밀을 알아내듯 우리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만족할 줄 모르는 염탐꾼이다. 모든 비밀이 밝혀질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호기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된다.(263쪽)

많은 사람들이 헤어진 연인의 SNS를 몰래 염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카톡 프사가 바뀔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던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많은 유혹들이 완벽한 단절을 방해한다.

때로는 잘못된 염탐꾼들이 잔인하게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완벽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지켜야 할까?

최근 레딧의 한 스레드가 새롭고 무자비한 첫 데이트의 효율성을 깔끔하게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손실도 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알아가던 때가 그리워. 문자로는 같은 질문을 해도 미묘한 표정과 몸짓의 신호는 전달되지 않으니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같아. 매력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가 배제되고 언어적 소통이나 조작에 얼마나 능숙한지에만 중점을 두게 되는 것 같고."(278쪽)

문자를 주고받다가 뉘앙스를 오해하고 불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목소리톤, 표정, 몸짓을 동반해서 전달했다면

오해하지 않았을 상황도 건조한 문자 메세지로 인해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우리는 단문 메세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즉각적인 메세지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의 개성과 성향이 배제된 채 텍스트 위주의 소통으로는 전할 수 없는 진심이 있다. 몸짓도 표정도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기술에 뒤쳐진 것은 우리 인간일지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우리만의 것으로 붙잡고 간직하기 어려운 것도 우리 인간일지 모른다. 잃어버린 것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존재도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인터넷은 주어진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며 모든 것을 보관한다. 어쩌면 인터넷은 우리가 아직 놓칠 수 없는 것들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줄지 모른다.(320쪽)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좋았다는 식의 얘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시 인터넷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지도 모르고 잃어버리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323쪽)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읽혔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잊혀진 그 시절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상황들이 있다. 감정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그 시절엔 소중했으나 지금은 다시 찾을 수 없는 유실물이다. 이 책을 통해 깨닫고 다짐한다. 지금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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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상처가 아니다 - 나를 치유하고 우리를 회복시키는 관계의 심리학
웃따(나예랑)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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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18만 구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상담심리사 웃따가 자신의 상담 경험을 담은 책을 펴냈다. 진짜 내모습이 무엇인지 알수 없고, 내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해야하는지 몰라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구독자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따뜻한 언어로 조언해주던 웃따의 경험이 담긴 심리치유서를 기대감을 가지고 펼쳤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는것 같은데 나만 소외되고 나만 뒤쳐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위로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질거라고 생각한다.

'웃음을 주는 따뜻한 심리상담사'라는 모토로 많은 사람들을 미소로 맞아주는 웃따, 그러나 그 역시 과거에 오랫동안 '가면성 우울'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치유의 과정을 거쳐 우울의 늪,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경험을 토대로 거네는 조언들이기에 수많은 내담자들과 구독자들이 진짜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안에 담긴 내담자의 구체적인 사례와 상담자의 실질적인 조언들이 가짜가 아닌 진짜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 책은 다섯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다. 1부.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감정의 경계선 2부. 나의 행동과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감정 사용법 3부. 감정이 상처가 되기 전에 4부. 자연스럽게 풀리는 인간관계의 비밀 5부.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 다시 맺기이다. 대주제와 소주제 목차를 읽는것만으로도 이미 치유가 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진짜로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은 함께여도 괜찮고, 진짜로 함께여도 괜찮은 사람은 혼자일 때도 괜찮습니다. 결국 내가 괜찮은 상태면 누가 있든지 없든지 다 괜찮다는 말입니다. 관계의 문제를 포함한 여러가지 심리적 문제는 대부분 내 마음이 안 괜찮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5쪽)

'나는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인가? 혼자일때 불안한 사람인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한번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사람과의 관계도 나를 제대로 아는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매우 즐기는 편이다. 커피와 책만 있으면 하루종일이라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아주 괜찮은거겠지?

인생의 모든 순간은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고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때 그 사건, 그 상황,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억울함과 후회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면 좋겠어요. 지구가 잘 순환하기 위해서 지진이나 해일이 불가피하고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성장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몇차례의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게 지금이라면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죠. 내일보다 오늘이 더 젊잖아요.(8쪽)

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러지 말았을걸....'하고 후회를 하곤 한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자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불행이라는 동굴에 갇혀 비관하는 일은 없을것 같다. 어쨌든 내일은 올 것이고, 다 지나갈 것이고, 소소한 행복들은 또 찾아올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내가 평가를 받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남을 평가하기도 해요. 늘 좋기만 한 대화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타인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소통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싶기 때문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대화는 매우 소중합니다. 타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24쪽)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사소한 일상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잖아요. 작은 일상에 감사하기 시작할 때, 작은일에 스스로 칭찬하기 시작할 때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고, 사람을 보는 시각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어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나쁜 스트레스를 좋은 스트레스로 바꿀 수 있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들어버려요.(102쪽)

작은 일상에 감사하기! 소소한 행복들을 즐기며 살기!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기!

우리는 부모나 친구나 연인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한 조건을 달고서 평가하고 각 특성마다 차별해요. 발전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먼저 나를 너무 강하게 밀어내기보다는 일단 수용하고 끌어안아 주는 것이 멀리 봤을 때 훨씬 더 발전적입니다.(181쪽)

어떤 사람은 똑같은 사건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른 사람은 땅굴을 파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땅굴 파는 영역이 달라요. 왜일까요?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신념은 안경과도 같아요.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안경인 셈이에요.(186쪽)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를 끌어안고 다독이면서 살아간다면 비로소 진짜 나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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