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무엇을 묻어둔다는 것은 시차(時差)를 만드는 일이었고 시차는 그곳에 먼저 가 있는 혼자가 스스로의 눈빛을 아프게 기다리는 일. 시차를 나와 나를 그리워하며 염원하는 나. 로 묘사한 것이 충격적일 정도다... 한번도 해본 생각이 아닌데 83년생 작가가 이렇게 건져낸 사유의 말이 마음에 오래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