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리커버 에디션) - 전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 토네이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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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른들의 잔소리, 꼰대. 오지랖, 참견, 조언의 이유와 목적과 시작점은

책 제목에 담긴 마음과 같겠지.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1. 내가 겪은 어려움은 너는 겪지 않을텐데

2.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을 너는 하지 않을텐데

3. 내가 아쉬워하고 있는 것을 너는 누릴 수 있을텐데

4.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할 일을 너는 지금 할 수 있는데

5.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당신도 내 말을 들어준다면


하지만, '잔소리 메뉴판'이란 신문물에 

남녀노소가 깔깔 웃고 한편으로는 뜨끔하는 것도 사실인데다가

예전과는 같지 않은 문화/분위기 때문에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부담이나 간섭처럼 들리지 않고 온전히 전할 수 있는지 고민되기도 한다.




결코 좋아할 것 같지 않았던 음식을 먹게 되고

알 수 없어 의미없던 그림이나 음악을 시간과 돈을 들여 관람하고

절대 찍지 않을 것 같았던 풍경이나 꽃 사진을 담게 되고

왜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고 허례허식 같았던 일들을 챙기게 되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각종 미디어나 훌륭한 기계로 실제같은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 해도

sns으로 사람들과 오늘 아침 무엇을 먹고 뭘 입고 나왔는지 속속들이 공유해도

정작 인생의 경험 하나하나를 몸소 겪게 되면 당황스럽고 허둥대며

오롯이 그 상황과 시간을 스스로 견디고 느껴야 한다는 사실에 외롭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어렸을 때 들었던 어른들이 말이 밀도있게 스며든다.

청소년기의 자신감과 반항기, 청춘과 청년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부주의함에

점등신호를 보냈던 어른들의 말이 모두 다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은이의 무시와 코웃음으로 넘겨버렸던, 삶을 겪어본 사람의 나이테가

어느덧 나에게도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거의 항상 조금 늦은 시간에 알게 된다.


그것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비석에 남겼던 그리스 시대부터

인류가 유구히 겪고 있는 인간, 세대, 삶의 어쩔 수 없는 측면인가보다.


코넬대학교 인류 유산 프로젝트는 5년간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현자들에게

삶의 실천적 조언과 지혜를 구하고 '30가지 인생의 답'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은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과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러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정서적 답을 내어놓았다.


70세 이상의 현자들이 살아온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근원적인 한계와 본능적인 바람은 여전히 같다.

A라는 지혜를 곧이 곧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활용하는 법도, 이제는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인생의 짝을 어떻게 찾고 어렵게 찾은 그 짝과 꾸준히 동행하는 법이 있는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중 어떤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아이를 몸과 마음, 영혼과 정신이 성장하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름답게 퇴장하는 법과 후회에서 벗어나는 법,

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깨닫는 법을

8만년의 삶, 5만년의 직장생활, 3만년의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 심층적으로 묻고

그들의 각각의 사연을 이 책에 담아두었다.





나를 저울질하고 채근하기 위한 질문은 돈과 함께가 아니라면 사양하고 싶지만

내가 궁금해서 듣고 싶은 질문에 대한 답은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투자해서 얻고 싶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읽어보길 권한다.


맛집과 핫플레이스도 검색하고 출발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나의 삶을 되는대로 살아야 되겠는가.


#내가알고있는걸당신도알게된다면 #코넬대학교인류유산프로젝트 #출간10주년리커버에디션

#칼필레머 #토네이도미디어그룹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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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갤러리 포스터 북 by 무직타이거 아트 갤러리 포스터 북
무직타이거(스튜디오무직) 지음 / 알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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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해가 될 때부터 기대했다.

커다란 고양이=호랑이의 매력이 듬뿍 담긴 굿즈들이 쏟아져 나오겠다는 걸.

그 중에서 이런 저런 브랜드 및 제품들과 활발하게 콜라보 하고 있는 캐릭터가 있다.

무직타이거.

무직.이라니 좀 슬프기도 하지만 시의적절성 마저 갖추었단 생각도 들었는데

알고 보니 훨씬 멋진 뜻이었다.

그저 직업이 없다는 무직이 아니라 일정한 직업이 없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직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원하는 일을 한다는 무직이다.

또 우리는 무직도 뮤직도 그리고 무적도 될 수 있다는 끝내주는 선언이기도 하다.




호랑이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이미 호랑이를 활용한 국가적인 캐릭터가 호돌이-수호랑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귀여움과 힙함을 함께 겸비한 뚱랑이도 앞으로 쭉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할 것 같다.

올림픽같이 스포츠 느낌이 다분했던 기존 캐릭터와는 달리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과 일상 속에 있는 뚱랑이의 모습은 친근감에서 가산점을 더 얻는다.



스튜디오 무직에서 뚱랑이 캐릭터가 있는 여러 굿즈를 선보이고 있고

이번 아트 갤러리 포스터북은 내가 있는 공간을 아트 갤러리로 만들어주는

인테리어 아이템이자 뚱랑이의 다양한 포즈와 응원 문구를 통해 기운을 얻는 행운템이다.


귤색의 몸에 두꺼운 줄무늬가 있는 뚱랑이는 

얼핏 보면 뚱-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 표정 없는 얼굴이라 오히려 듬직한 느낌마저 준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걸핏하면 부르르~ 떨고야 마는

가랑잎같이 가볍고 바스라지기 쉬운 나의 가냘픈 멘탈을

"괜찮을 거야. 별 일 없을 거야. 여기 나랑 같이 있자. 뒹굴뒹굴 하자." 며 달래주는 기분이다.


A4 사이즈인 미니버전과 A3 사이즈, 2개가 있는데

좋은 건 크게 보고 싶은 마음에 A3에 손이 갔다.

A3에는 시리얼을 먹고, 캠핑을 가고, 치맥을 먹으며 ott를 보는 일상의 모습과

서핑, 할로윈, 눈사람 만들기, (아마도) 보름달 즐기기 같은 명절의 모습이 적절히 섞여 있어

때에 맞춰 방을 꾸미기에 좋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분홍색 뚱랑이 포토카드(!)는 어디에나 데리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깜찍하다.

(빨간모자 뚱랑이는 미니버전 소속이다. +ㅁ+)

미니버전은 초귀여움으로 어필하는데 고양미가 훨씬 진하게 들어간 뚱랑이의 모습이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저절로 장착되는 마력이 있다.


어느 버전을 선택하든, 

다음 버전을 들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 그러나, 구겨지지 않게 배송해주시면 좋겠다. 

우리집에 온 포스터북은 겉 부분이 구겨져서 조마조마하며 비닐 포장을 제거했더랬다.

(다행히 안쪽 뚱랑이들은 튼튼하게 있었다. 역시.. 멘탈 바사삭 인간에게 힘을 주는 뚱랑이!)





#무직타이거 #아트갤러리포스터북 #뚱랑이 #캐릭터 #인테리어아이템 #호랑이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이벤트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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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헤이의 말씨 공부
루이스 L. 헤이 지음, 엄남미 옮김 / 케이미라클모닝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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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고 '루이스 헤이'만 검색창에 쳤는데도 책이 주르륵- 뜬다.

지은이 루이스 L.헤이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긍정 확언이라는 말을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게 한 것은 이 책의 엮은이 엄남미 씨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속담처럼,

그 사람이 어떤 말과 말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인상과 호감도가 영향을 받는다.

대화를 나눌 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감정 쓰레기통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늘 불만과 짜증, 부정적인 말로 하소연을 일삼아 거리를 두게 되는 사람도 있다.


누구도 후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자기가 평소에 쓰는 말을 곰곰이 돌이켜보자. (찔린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 에피소드 주인공은

우영우가 어린 시절 살았던 빌라의 주인 부부였다.

의처증이 있는 괴팍한 남편은 근거 없는 의심으로 아내 주변의 남자들에게 폭언을 한다.

그 폭언을 옆에서 듣게 되는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마침내 치매 초기에 이른 남편을 보살피며 살던 부인도 남편의 패악이 시작되면

'너 죽고 나 죽자', '오늘 다 같이 죽어버리자' 고 하며 남편을 말리지만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다리미로 남편의 머리를 치게 되면서 법정에 서게 된다.


죽일 마음이 있었냐고 묻는 우영우에게 부인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어떨 때는 그냥 다 끝내버리고 싶기도 했으니 죽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부인의 죄를 묻는 검사는 죽이려는 마음이 없던 사람 치고는 

죽음, 죽인다는 표현을 너무 자주 말하는 것 아니냐며 매섭게 다그친다.


<루이스 헤이의 말씨 공부>는 저 에피소드의 남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정적인 신념이 오래도록 계속되면 마음 속의 무거운 짐으로 남고

부정적인 생각의 짐은 신체적인 통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 있는 많은 긍정 확언은 부정적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지 않도록 한다.

인생에 있는 수많은 좋은 것들을 의식하고 인지하여 누릴 수 있도록 마음의 밭을 갈아준다.

마음의 평화가 있는 사람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내면이 가득 차 오르고

마침내 남들이 뭐라고 해도, 부정적인 자아가 비난을 해도 흔들림없이

자기 가치와 자기 사랑을 풍요롭게 누린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변화를 수용하며

지금까지의 삶 속에 상처로 남은 것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하고 난 다음에는

부정적인 생각, 감정이 빠져나간 자리에 원하는 것을 채우면 된다.


이 책은 25개의 긍정 말투 확언이 마련되어있고

작가와 엮은 이는 아침 시간을 활용하여 필사나 명상을 통해 

긍정 확언을 마음에 새기고 하루를 살기를 권한다. 



막상 하려고 보았더니 저자와 엮은 이의 넘치는 사랑이 ^^:

아침에 모두 소화하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모든 것을 숙제처럼 한꺼번에 해치울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에 가장 필요한 것 한 문장만 골라 포스트잇에 써 책상 앞에만 붙여두어도

감정의 고비마다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내가 쓰는 말이 나의 하루를 채운다.

당신이 고를 말은 무엇일까?


#루이스헤이의말씨공부 #루이스헤이 #엄남미 #케이미라클모닝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이벤트 #말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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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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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가보다. (왜 안 그러겠는가...)

사람들끼리 모여 왁자지껄하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어렵고,

호젓한 곳에 가서 조용히 지내기에도 쉽지 않은 코로나 시대.


사람마다 지친 마음을 달래는(그 중에서도 선호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어떤 날은 그저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직장에서 집으로 복귀하는 퇴근길도 만만치 않지만

밖에서 묻혀온 감정과 먼지를 다 털어내고

나를 계속 기다려줬던 포근하고 편안한 침대에 누우면, 딱히 할 일은 없다.

그저 휴대폰이나 태블릿, TV를 클릭하며 흐르는 소리와 영상을 바라볼 뿐이다.

좋을 때도 있지만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아 아쉬울 때도 있다.


<위로의 미술관>은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소중한 개인 미술관이다.

<기묘한 미술관>의 저자이자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님의 새 책으로

그림을 매개로 삼아, 남들에게 인정받을지도 심지어는 알려질지도 모를 자신의 예술을

극도의 절망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세상에 내보인 

작가 25명의 생각, 마음, 삶과 생활을 촘촘하게 다룬다.




살아가며 시기와 진폭은 각기 달라도

자신만이 느끼는 고난과 괴로움, 외로움과 절망이 있다.

어둠과 아픔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모두를 위로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예술가들.

그리고 시대와 공간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문화 콘텐츠 기획자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탁월한 이야기꾼인 저자의 솜씨를

독자는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과 시간에 누리기만 하면 된다.


직접 미술관에 가서 여유있게 큰 원작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대신할 수 없지만

25명의 화가가 그들의 삶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과정을 자세히 읽고 있으면

익숙한 그림 뒤에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가 숨겨져있다는 것이 재미있고

고통과 고난이 늘 지속되지 않는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진리와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보석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어두운 하늘을 깨고 밝아지는 하늘처럼 서서히 깨닫게 된다.



고생하다 잘 나가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화가로서의 삶과

감정적으로 행복을 느끼다가도 곧 절망하고, 다시 평화를 찾는 과정을

지난하게 반복하는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다.


"이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타인의 성과나 평가로 재단하지 않고,

해석과 판단 그리고 실천을 각자의 몫으로 남기는 예술의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위로의 미술관>속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을 때 순수한 위로를 얻게 되나보다.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다소 무거운 책이지만

수록된 그림(사진)의 화질을 위해서라면 집에 도착해 잠의 유혹을 미루며 읽어도 좋겠다.

다시 나를 시험할 그곳에 가게 되더라도 애써 마음을 가다듬던 그 에너지가

내일의 나를 비춰줄 따스함이 될 것이다.


#위로의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명화수업 #그림읽기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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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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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라는 책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도대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건담'과 '싸부' 그리고 (싸부랑은 좀 어울리는) '중식당'이라니.

책을 펴기 전에는 건담이 일본의 거대로봇을 뜻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949년, 공산당과 국민당의 격전 속에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주인공 두위광의 아버지는 아기 위광을 업고 산둥 옌타이에서 인천으로 건너왔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덕(?)에 공산당이 주민들의 해외 이전을 금지하기 직전에

대탈출 러시의 흐름을 탔고, 연고가 있던 한국으로 온 것이다.

졸지에 아무것도 없이 맨 땅에서 생존해야하는 위광의 아버지는 

평생 배 곯을 일 없이, 실컷 먹고 살라는 기원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찌엔딴(건담)'으로 불렀고

어머니는 한국어로 뜻을 담아 '대식아'라고 부르며 함께 기원을 더했다.

남들이 불러주는 것이 자기 이름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기에

두위광은 11살에 학교를 그만 둘 때까지 자기 이름을 '대식아'로 알았고

어렸을 때 이름을 담아 자기 이름을 건 중국집을 열게 된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과 중식당의 이름과 명성에 얽힌 사연을 수타면처럼 뽑아내는 솜씨가

가히 한 왕조나 국가를 세운 역사책을 읽는 것 마냥 장엄하기까지 하다.


주인공 이외의 등장 인물들의 면면도 이에 질세라 참신하다.

누구 하나 독특한 면모가 빠지지 않고 각자의 사연이 궁금하게 잘 설정되어 있어,

이 책의 작가가 괜히 단막극과 장편영화로 신인상, 최우수상, 1등상을 탄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얼핏 마동석 아저씨가 단발머리로 비주얼 쇼크를 크게 준 영화 <시동>도 연상되기도 ^^)



챕터별 제목을 읽으면 중원에서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합을 겨루는 무협지도 생각난다.

익숙한 한국어와 옛날 맛이 나는 한자어에 조금 낯선 중국어의 음차,화교용어까지 

초식을 펼치듯 이야기의 구석구석에서 훅훅 튀어나오는 바람에

한글 소설이지만 번역된 외국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어 기분좋은 모호함을 느낄 수 있다.


첫 장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는 글을 눈으로 읽는데

자동으로 머리 속에서 (마치 <친절한 금자씨>처럼) 나레이션이 재생된다.

시적이기도 하고, 엄숙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말에 녹아있는 주인공의 성격과 특성이 

생생히 전달되는 VR같은 소설이다. 


말맛과 글맛의 향연이 펼쳐질 것을 약속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사가 이야기에 녹아있지만 실제(사실)을 조금씩 비틀어 넣음으로써

현실과 가상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여기서는 영화 <헌트>가 생각나기도) 영리한 설정으로

독자는 속절없이, 이 낯선 인물들에 몰입해가게 된다.


한 때 청와대에서 요리를 받아가고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의 행사에 빠지지 않던 

일반 중식당 최초로 미슐랭 별을 받았던 유명 중식당의, 

요리신을 믿으며 오로지 몰입과 정성으로 환상의 맛을 구현하던 요리사 두위광이

맛과 향을 잃어가도, 과거 자신이 자신일 수 있었던 -그래서 성공도 했던- 

변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그에 따른 괴팍한 성격, 당연히 수반되는 주위 사람과의 불화를,

자신감, 실력, 평생을 바친 중식당을 잃었을 때 비로소 맞닥뜨리게 되는 

주방 밖의 세계에 발 디디며 어떻게 풀어내고 성장하는지 지켜보는 과정을

찰떡같이 완급 조절하며 전달하는 훌륭한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듣는 기분이다.


분명 장편소설로 분류되었고 형식도 그에 맞지만 대본집을 읽는 기분이 든다.


이거 드라마화는 안될까? 보고 싶다. 이왕이면 시즌제로! 



#건담싸부 #김자령 #시월이일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이벤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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