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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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선선한 날 읽기 좋은 책을 찾는다면

유쾌하고 바람을 맞으며 생각할만한 화두를 주는 책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를 읽으면서

아니, 이게? 이게? 하면서 실소도 나오다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웃음을 얼굴에 한가득 띄우기도 했다.





내용도 재밌었는데 구성도 눈에 띈다.

복선이니 기억하라는 주석도 있고,

실제로 있을법한 가십은 거짓이니 검색하지 말라거나,

픽션일 것 같은 것들이 사실이니 검색해 보라는 말도 있었다.

특히 복선 같은 경우에는 원래도 절반으로 나뉜 듯 복선을 모조리 거두는 글을 좋아하는데,

두루뭉술하지 않고 어디를 가면 어떤 식으로 언급이 되었다는 것들을 알려준다.

굉장히 친절하고 계획적으로 쓰인 글이라고 느꼈다.



대사나 생각에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밈들이 가득했다.

만약 인터넷 속에서 사회를 배우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런 모습일까 싶었다.

현실에서 차마 입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행동하지 못하고 상상에서 그치던 일들을 인물들이 한다.



그리고 큰 흐름으로도 정신없이 여기도 맛집 저기도 맛집이라며 재미를 즐기다가

작가가 소소하게 넣어놓은 유머들에 피식하며 한 발짝이 아니라 먼 발치서 불구경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공감이 되며 채연에게 깊이 몰입하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돈이 있었으며 대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말에는 공감 가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mz 세대가 많은 밈으로 접했을 법한 생각들이 글 전반에 깔려있었다.




밈이 한가득인 책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사실 나는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한 철 지나면 읽지 못할 구닥다리가 될 책이 아닐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라는 이름은 처음에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제목이지?

그런데 근본을 얘기한다고?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태껏 읽어본 칵테일, 러브, 좀비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뉴 러브, 재와 물거품을 비롯한 안전가옥의 책은 항상 안전하다는 느낌을 줬다.

역시나 옳았다.

생각도 못 한 방법으로 전개되는데, 인물들이 아주 입체적이라고 느껴졌다.

원하는 게 명확하고, 채연이가 닥친 상황이 있기까지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줘서

그로 인해 채연이 처한 상황에 개연성이 생겼다.

말도 안 될 법한 일들(국민 대부분이 스포츠토토로 돈을 날린다던가,

축구가 사회악 취급을 받아 근절당한다던가 하는 일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법한 많은 일들)이 있다가도

또 현실에서도 비슷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책에서 흘러가는 흐름을 납득할 수 있었다.

진지하고 무겁게 근본에 대해 말한다던가,

사람들의 무책임에 대해 말한다던가,

이런 내용이었다면 처음에 축구가 사회악으로 근절되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채연이 자신을 과제 헌터로 소개하는 점

그리고 또 그 이유가 크게 해먹겠다는 뜻이 아니라 한 학기 커피 좀 마시면서 편히 살겠다는

지극히도 현실적이고 소소한 일들이라 납득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에 현실이 투명도 80%으로 보였다.

얼레벌레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촘촘하게 짜인 복선들 속에서 하나 둘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간다.

말도 안되는 일들을 말도 안되는 일들로 근절당하는 모습을 보면,

채연 대신 허탈함마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연은 자신을 위해 자신을 막던 것들을 '근절'해 나간다.

또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막던 것들을 근절하고,

자신의 생각을 '뇌절'하며 근절당했던 축구를 다시 사회악에서 제외시킨다.

인물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근본을 말하고, 그들이 생각한 대로 살아간다.

많은 근본들 중에서 독자는 독자 나름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

인물이 말하는 근본을 얕게나마 들춰볼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남은 인물은 덕배였다.

덕배의 인생이 너무 안쓰러웠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며 휘둘리지 않던 때는 모순적이게도,

짜인 틀대로 생활하던 축구 근절 센터 안이었다.

축구공을 던지던 아빠가 다시 축구를 하라며 등 떠미는 상황이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며 욕받이가 되던 상황이나

또 근절센터에서 나오게 된 상황들은 덕배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황은 아니었다.

덕배는 어쩌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인형 같은 삶을 살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근본을 말하며

채연에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의 근본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나름대로 호기심이 남는 점은

다른 인물들의 근본에는 모두 밑줄이 그어져 있었지만

덕배의 근본에는 그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멀어져 있다가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꼭 독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덕배가 자신의 근본을 말하는 곳은 책을 덮으며 자신의 근본을 생각하면 채워질 밑줄이라고 생각한다.

인쇄 오류든, 의도가 있었든 나는 이렇게 해석을 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했듯

끓어오른 머리를 선선한 날, 웃음과 함께 그리고 생각할 거리와 함께 식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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