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쳐박아놨다가
문득 아침할 일들을 끝내고 눈에 띄길래 비닐을 뜯었더니,
옹이같은 투박한 손가락 다섯 개가 눈탱이를 친다.

사람 손만 봐도 아픈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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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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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나의 물렁한 살갗이 들춰지고 근육층이 제거되며 보잘것 없고 앙상한 뼈마디만 남아있는 연약한 상태에서 여문 나무떼기로 툭툭 건드려지고 있는 듯한.
서문을 읽으면서 올라온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버트런드러셀의 철학들이 떠올랐다. 아마 20세기를 오롯하게 꾁채우고 살아간 동시대의 철학자들이라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결방안을 비슷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만 러셀의 주장은 ’내면에 머물지 말고 외부로 한없는 에너지를 발산하라-!‘였다면 에리히프롬의 주장은 ‘ 외부로 향하기전에 진정한 내부를 보살필 수 있는 방안과 어긋나는 이유, 대책‘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에리히프롬을 읽고 러셀을 읽으면 순서적으로는 딱 좋을 듯:-).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라는 제목은 문제 제기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목차와 함께 살펴보자.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삶은 계속 완전해지려는 성질을 가지기에 그 자체가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 방해를 받으면 사랑을 향하지 않고 점차 죽은 것들에 끌리게 된다. 현대인들은 부산함 속에서 삶이 열정적이라 착각하지만 사실 내적인 활동성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지 못한채 살아가고있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 19세기에 악덕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현재는 조금씩 변형 심화되어 기꺼이 인간 스스로가 사물이 되어 착취당하는 존재(수단)가 되기에 이르렀다. 결코 이성에 뒤지지 않는 감성을 기르고 창조력을 길러 무조건적인 소비와 수용에서 벗어나 가슴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인간자체의 목적성를 되찾자.

이기심과 자기애.
사람들은 이기심 자기애 나르시즘 이타적 이런 말들에 혼동하고 휘둘린다. 진정한 자기애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에서 나오며, 자존애가 없는 사람이 이타적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기와 나르시즘은 자기애의 결핍에서 나온 증상이다. 현대사회와 종교는 사람들에게 이타와 금욕을 강요하지만 결국 사회가 인간을 편리하게 다루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창의적인 삶.
창조적 자세는 생각하기에 따라 심플하다. 언제나 주변에 호기심어린 눈을 갖고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귀기울이고 오롯이 생각을 갖는 것.
저자가 유대교인 탓에 점점 구약에서 오는 예시가 많아지는 챕터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태도.
선선히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본능에 따라 충실하게 사랑을 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휘둘려 엉뚱하게 살고나니 미련이 남아서... 죽음이 두려워지는 것이라고.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자연스럽게 살아야 극복할 수 있는 것.

무력감에 대하여.
전업주부이다보니 가장 와닿았던 챕터이다.
집안 일은 대부분 물리적으로 힘이 필요한 부분이 많고, 휴식이나 휴무를 따로 떼기가 참 힘든 대표적인 365일 24시간 대기, 노로테이션 직업. 나라에 세금 내는 사람들 케어해주고 배출하는데 왜 무료 봉사직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데다, 누구나 적성에 맞는 건 아니라고 압축해서 푸념해본다.
무력감의 저변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의 의심을 낳고 결국 자신감 상실로 이어져 내면뿐만이 아닌 외부의 충격에도 대처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무력감을 감추려고 분주해지는 상태도 결국 껍데기만 있다는 걸 감추려는 기재. 사회의 권위(도덕적 의무, 종교등)에 자칫 맹목으로 누가 나를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무력한 복종만 남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기본 소득으로 자유를 얻으려면.
방법은 한가지다. 활동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소비하며 허덕이는 굴레에서 삐져나와야 한다. 소비로 스스로를 채우는 것은 끝이 없다. 내면에서 활동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소비하는 인간의 공허함.
위와 비슷한 늬앙스.

활동적인 삶.
마지막 세가지 챕터가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자기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성을 키우자. 수동적인 줄도 모르고 수동적으로 사는 삶이 억지로 분주해지면 게으름과 진배없다.
외부의 압박에 노예가 되지 말고 수동적인 삶의 고통을 깨닫고,
앉아서 명상이라도 하며,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성장을 오롯하게 완성시켜 나가자.

내부의 에너지들을 긍정적으로 온전히 채우고 바깥으로 뻗어나가라는 얘기는 러셀의 행복의 정복, 아들러의 심리학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산업발전은 서양의 것에 비해 약 백년 정도가 늦어진 까닭에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심리적인 박탈감도 그만큼 늦게 온 듯 싶다.
어릴적에 보았던 서양에서 들어온 영화나 드라마, 책등을 돌이켜보면 미국이나 유럽쪽은 이미 현대인들의 심리 회복에 대한 많은 고심이 있어왔고 대중매체에 녹아나는 경우가 많아서 ‘역시 선진국이구나-’ 하고 감탄했었나, 새삼 깨달았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고, 이런 상태라면 온전한 사람들마저도 타격을 입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어차피 예견되는 공황이라면 앞서간 철학들에게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는 듯 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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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3-04-1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악은 무관심이다.

갱지 2023-04-15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도 죽었지만 사람도 죽었다.
 

이런 거 보면 대답하고 싶어진다.

아무거나 먹을 거다!
우리 엄마가 아무거나 잘 먹어야 건강하댔거든.
:-D


제목보고 농담하고 싶어서 적어봤고
안읽어서 별점 없고
책 자체는 시중에 나온 먹거리들에 대한 표기 설명이나 경고 등의 얘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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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완전판 프리미엄 한정판 박스 세트 - 전24권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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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사는 사람이랑 견해 차이로 인해 가끔 말다툼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소장하는(? 물건에 대한 것이다.

나는 프리미엄, 완전판, 세트, 이런 것들은 그냥 편하게 묶음으로 나왔거니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박스는 당연히 다 벗겨 버리고, 띠지도 너덜해지기 전에 사라지고, 새 책이니 살아서 팔랑거리지 못하게 꾹꾹 눌러서 최적화 시켜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포장된 비닐까지도 조심히 튿어서 알맹이만 조심히 보고 다시 넣어놓고 내일 다시 보더라도 다시 넣어놓고, 책 페이지가 구겨질세라 손가락으로 붙잡고 보는 타입.

그래서 가끔 남편이 선물한 블루레이 디스크 세트가 그냥 알맹이만 굴러다니거나 하면 내 꺼임에도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불공정한(? 상황이 되곤 한다.

이 얘기를 왜 꺼내냐 하면,

지금 알라딘에서 ‘슬램덩크 완전판 프리미엄...’을 쳐보고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런 박스가 있었고 띠지들도 있었고, 무슨 포스터 같은 것도 있었다는 것을.

완전 잊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저 모습 그대로 멋지게 갖고 있겠지.

오랫만에 읽은 슬램덩크는 정말 촌스럽고 순수하게 열정적이었다.
비염으로 숨쉬기가 곤란한데도 맥박이 빨라질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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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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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역사서를 찾아서 헤맸다.
아이한테 권해주기 위해서였기도 하고, 나 역시 세계사라던가 딱히 잡혀있질 않아서 괜찮은 개괄서가 있나 다녀봐도 딱히 발견하기가 힘들었는데
우연히 누가 권해준 책에서 답을 찾은 듯 하다.

대도시의 변천사.

사람들의 살기에 환경적으로 적합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도시라는 인간 집단은
마치 바톤을 이어받듯 끊임없는 흥망성쇠로 이어졌고
현재의 대도시로까지 그 기본 요건을 유지하며 명맥이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론을 보면
‘이 책의 주제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이 도시생활의 압력에 대처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발견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라고 간단히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책 안으로 들어가 보면 풍부한 사료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있는 묘사 -구체적인 건축의 형태부터 도시 구역의 자태, 사람들의 행태 등- 가 매우 다채롭고 흡입력이 있게 다가오며, 더욱이 겉모습에만 그치지 않고 거시적인 안목의 평들로 풍부함을 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대사부터 중세사까지가 정말 재밌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바빌론에 대한 언급이 처음으로 상식적으로 다가왔다.
한마디로 촌무지렁이에 가까운 유대인들이 접한 대도시(바빌론)의 분위기는 압도적이고 개방적이다 못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던 것. 게다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으로 다가왔으니 촌놈의 시각으로 분풀이를 해 놓은 것 모냥 기록을 남겼는데, 하필이면 현재 많은 이가 믿는 종교의 책으로 남을 줄이야.
지금도 소도시에서만 살다가 대도시로 온 사람들이 겪는 충격이 있을텐데, 수렵 채집을 병행하던 시대에 넓은 지역, 높은 건물과 다민족이 교류하고 음탕함과 탐욕이 넘치는(?저자의 표현)도시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분명 아찔함이 있었을 것이다.
한켠으로는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등의 나라에서 성서를 진실로 해체해보는(?) 이런 시각은 매우 지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 문명.
이렇게나 짧게 고도로 발전한 문명을 독자적으로 기리는 것 자체가 항상 의문이었는데, 역시나.
이미 주변에 다양한 민족들과 뒤섞이는 과정을 거쳐 이미 넘치고 있던 지중해 주변의 모든 문화를 다 주워 흡수한 결정체가 아테네라는 폴리스였다.

p127
...‘ 아나톨리아의 아시아적 발상과 기법을 이용했다. 페니키아인과 메소포타미아인, 이집트인의 영향에 노출되었고 다른 여러 민족들의 전통에도 영향을 받았다. ...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들, 즉 아시아와 연계된 개방적 성격의 대도시들에서 그리스적 우주의 지적 전성기가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 흐름에 우연은 없었다.


알렉산드리아하면 떠오르는 대도서관.
생각해보면 침략이 아니었더라도 그 양피지 돌돌이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리가 있을까 싶지만 세계의 지식이 한군데 다 모여있다는 꿈같은 얘기는 언제들어도 가슴이 뛰고 아쉬움이 크다.


로마의 대욕장을 얘기하면서(언제나 불결함부터 생각나지만) 같이 나오는 얘기가 도시사람들의 여가로 수영을 하는 것에 대해 소개가 되는데, 20대 때부터 코로나때를 빼곤 줄기차게 다녔던 한강 수영장이 생각났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같은 대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여가설 물놀이 시설을 얼마나 가깝게 제공하고 싶어하는지도 알게되었고,
비버리힐즈에 수영장 딸린 집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그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욕망이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큰 규모의 도시는 그 것에 걸맞는 여가시설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고 갖춰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 규모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의미하니까.


또 한가지 깨인 것 중에 하나가 서양 중세에 대한 것이었다.
세계사를 배우다보면 마치 중세는 천년이 암흑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데, 알고보면 암흑이었던 곳은 그냥 천주교 믿던 지역 고부분뿐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해양 무역이 발전하는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그렇지.
그러니까, 니네가 니들끼리 박터지는 싸움 끝내고 밖에 나가서 묵을 게 있었던 거지.
가진 것이라고는 꼴랑 무기랑 적대심뿐이었던 거지꼴의 서쪽 유럽놈들이 동네 밖으로 몰려나와, 인간 본성의 믿음을 담보한 합리적이며 찬란했던 경이로운 도시 유산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수탈한 것이 바로 제국, 식민주의의 발로.
정말 생각할수록 헛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긴 흐름으로 보면 작금의 민족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이기의 덩어리라고 여겨지는지.
인간 본성은 한 면이 아니었지.


그 이후에 근대 공업화로 인한 도시화, 세계대전등은 이미 대충은 아는 부분인데다가 언제나 멸망의 가속 페달을 밟아대는 걸 구경하는 느낌이라 후루룩 읽어 넘겼다.(그 중에서도 런던의 태동을 묘사하는 부분은 꽤 흥미로웠음)


오랫만에 재밌는 역사서를 읽었다.
역사라는 것을 고지식 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여느 방향으로든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준 책.
추천해준 분에게 감사하고, 나처럼 역알못들이 있다면 많이들 읽어서 역사적 편견들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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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3-03-14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종교라는 것도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다. 믿음의 바닥에 많은 이가 누렸을 거대한 수익창출 체계가 없었다면 개나 주고 끊겼겠지.
막대한 권력과 부를 이빨만 부딪혀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종교뿐인가 하노라- 아, 정치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