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2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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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는 진창에서 꺼내주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300파운드를 마련해야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모스에게 해롭다기보다 잘된 일일 것이다. 즉 그는 이 일로 자기 처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며, 올해는 작년처럼 양모를 그렇게 어리석게 처분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털리버 씨는 매제를 너무 너그럽게 대해왔다. 이 년간 이자도 안 받고 내버려뒀기 때문에, 모스는 원금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털리버 씨는 그렇게 빌빌대는 사람을 더는 봐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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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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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가는 첫 단계는 우주의 법칙들이 당신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그래도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당신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기 매문이다. 또한 당신은 스스로에게 마음을 쓰고,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우주의 법칙을 존중할 책임이 있으므로, 당신의 존재를 탕진하지 않는다. 또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마음을 쓴다. 당신은 어린 자식을 고아로, 배우자를 미망인으로, 부모를 고통속에 남겨두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휴머니즘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은 예외 없이 당신에게 마음을 쓴다. 그들이 당신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 인간의 공감 능력은 수십억의 낯선 사람에게까지 퍼져나갈 정도로 강력하지 않다. - 당신의 존재가 우주적으로 그들의 존재 못지않게 중요하고, 우리 모두 우주의 법칙을 이용해서 모든 사람이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증진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 P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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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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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칼 레이먼드 포퍼는 1945년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민주주의는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즉 ‘인민‘)이 아니라, 나쁜 지도자를 어떻게 피 흘리지 않고쫓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과학자 존 뮐러는 민주주의 개념을 모 아니면 도인 심판의 날에서 매일매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되먹임 과정으로 확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불평의 자유를 제공할 때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마련된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폭력을 통해 지도자를 교체하지 않기로 합의할 때, 그리고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롭게 지도자를 몰아낼 수 있도록 지도자가 인민을 내버려 둘 때 출현한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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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예항 / 짐승들의 유희 대산세계문학총서 182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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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 세상의 파리 같은 놈이야. 그놈들은 가만히 노리고 있다가 우리의 부패한 데 들러붙어. 그놈들은 우리들의 어머니와 섹스한 것을 온 세상에 퍼뜨리고 다니는 더러운 파리야. 우리의 절대 자유와 절대 능력을 부패시키는 일이라면, 그놈들은 무슨 일이든 하지. 그놈들이 세운 불결한 마을을 지키려고.” ('오후의 예항', 145쪽)

두 사람은 그야말로 친숙하지 않았다. 인간과 짐승의 대화라면 좀더 가식적인 친밀함이 있을 텐데,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짐승들처럼 위험하게 서로 냄새를 맡고 있었다. 싸우듯이 장난치고, 장난치듯이 싸웠다. 그 와중에 공포에 쫓기는 것은 고지 쪽이고, 화를 내면서도 유코는 대담하고 겁이 없었다. ('짐승들의 유희', 215쪽)

'오후의 예항'은 거칠게 요약하면, 과부가 된 어머니의 새 남편이 되겠다고 선언한 선원 사내를, 친구들과 모의해 살해하는 열세 살 소년의 이야기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햄릿'이다.

'짐승들의 유희'는 거칠게 요약하면, 두 연인이 자신들의 사랑과 결합을 가로막는 '병신' 남편을 교살하고 마침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어디서 본 것 같다. 그렇다, '클리타임네스트라'다.

굉장한 막장극인 것 같지만 사실 서양 문학 역사에 유구하게 흐르고 있는, 아버지 살해 서사의 변형된 두 가지 버전 소설이었다. '오후의 예항'은 말할 것도 없고, 유코와 고지 두 사람의 불륜처럼 그려진 '짐승들의 유희'는 실상, 잇페이라는 넘겨다 볼 수 없는 거대 아버지를 스패너로 때려눕히고 그의 아내 - 어머니를 차지하려던 고지의 계획이 어긋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버지 살해 서사의 줄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고지와 유코와 성적 결합은 계속 방해되는데, 사실 간단히 무시해도 되는 그 벽 - 겨우 한 장의 모기장!- 을 넘지 못하고 서로의 몸을 더듬던 두 사람은, 마침내 잇페이를 밧줄로 교살하고, '동쪽 산에서 한 줄기 여명'을 받으며 자수를 하러 간다. '하루의 첫 햇살을 받은 두 사람의 모습은 반짝이는 것 같았'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흐르고 모습과 발걸음도 자유롭고 생기가 넘쳐서 두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인 적은 없'어 '그야말로 신랑 신부 같'(357쪽)은 모습이이다. 비로소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권위, 아버지의 금지를 '살인'이라는 방법으로 넘어서고 난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싱그럽고 아름답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금기를 뛰어넘은 '짐승'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유희적 존재로서의 기쁨이다.

아들들이란. 대체 왜 그들은 어머니를 가만 놔두지 못하는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겠다는 그들의 욕망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근거한 것이 물론 아니다. 어머니를 차지해야 '남자' - '남근의 완성자' - '아버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처럼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사나이'가 어머니와 성적 결합을 하는 광경을 보며 동일시의 쾌락을 느끼고, '희고 얇은 다리를 가진' 주제에 어머니 아닌 다른 여자와 통정하는 유사 아버지의 대가리를 검은 스패너 - 더욱 강한 남근으로 후려갈김으로서 아들의 반란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궁극의 금도를 넘지는 못하는데, 이것이 결국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에서 그린, 영웅-초인이 되지 못하는 남성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영원한 과부로, 남자 없는 여자들로 남는다.

두 편의 소설에서 유일하게 금도를 넘어선 인물 - 친딸과 성관계를 갖고 그와 비슷한 사진을 주머니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는 남자 데이지로는, 따라서 결코 죽거나 처벌받지 않는다. 그는 선악의 저편을 완벽하게 넘어선 초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그만이, 유코-고지-잇페이 세 사람의 불균형한 관계를 사진에 담아 박제시키는 권력을 소유한 자가 될 수 있다.

정말 너무나 유해한 작가인데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인 것... 세상 어디에서 미시마 유키오 같은 작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돌파해 산산조각을 내어놓고 달려가는 패기. 게다가 그의 문장은 얼마나 정치하고 아름다운가. 풍경 묘사에서부터 극세밀한 사물 묘사, 지독히 느리게 이어지는 아주 선명한 한 장면 한 장면의 묘사들. 주제의식과 표현방법 뿐 아니라 문장 한 줄 한 줄까지도 언어로 할 수 있는 극한으로 밀어부친 것 같은 이 귀기의 작가는, 여러분 다 아시는 그 방법 그대로 광인같이 세상을 버렸다. 그는 자기 자신까지도 극한으로 밀어부쳤다.

덧붙임)

'짐승들의 유희'에 나오는 이 기묘한 삼각관계의 공존은, 최근 읽은 무라타 사야카의 '지구별 인간'을 연상시켰다. 지구별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세 명의 남녀가, 지구인의 금기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알몸으로 뒹굴며 살인과 식인을 저지른다는 이 압도적인 엽기소설은, 분명 미시마 유키오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도대체 세상 어디에서 이런 일본소설들을 넘어서는 괴작들을 만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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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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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장대익 교수는 책의 시작에, '공감에 대한 통념은 타인이 슬퍼하면 나도 슬프고 타인이 기뻐하면 나도 기쁜 것, 남의 작은 상처에 눈물 흘리는 게 높은 공감 능력이고 그런 사람이 더 이타적이고 도덕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공감에 대한 통념이 수정 보완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장대익 교수는 후술하여, 공감은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뉘는데, 인지적 공감은 느낌을 넘어서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이성이고 의지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한다.인간에게는 정서적&인지적 공감이 다 필요하고 이것이 문명의 기반이 되는데 우리는 정서적 공감만으로 공감의 반경을 제한하고, 이것은 나와 연관되어 있는 나의 '내집단'에 대한 지나치게 깊고 좁은, 배타적인 공감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통념과 달리 공감은 무한정한 자원이 아니고 사용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내집단에게 공감을 준 사람들은 외집단에 그만한 공감을 줄 여유가 없다. 내집단에 대한 선택적 과잉 공감은 외집단에 대한 폭력이 되기 쉽다 - 도덕적 판단조차 이 두 집단을 구별하는 도구로써 만들어졌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부족 본능은 인간에게 뿌리 깊고 호르몬으로도 뒷받침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적대적인 이 본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의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SNS가 더 많은 사람들과 배리어 없는 소통을 하게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공감하는 구조 속에 확증 편향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이견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동조 본능은 타격을 입고 집단의 압력은 감소한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가 타인을 평가할 때 두 가지의 기준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의 범주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가', '그 의도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가 두 가지 기준이며, 각각 따뜻함과 유능함으로 연결되는 이 두 개의 척도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는 차갑고 유능하며 (시기의 대상), 전문직 흑인은 따뜻하고 유능하고 (존경), 주부는 따뜻하고 무능한 존재 (연민), 가난한 흑인은 차갑고 무능한 존재로 인식된다. 말할 것도 없이 네번째 집단이 가장 비인간화되기 쉽다. 여기서도 재미있는 것은 인간은 유능/무능의 이성적 척도보다는 따뜻/냉정의 감성적 척도에 더 예민해 보인다. (페미니스트는 시기의 대상이지만 주부는 경멸이 아닌 연민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하지만 타인의 의도를 읽는다는 것은 인류 진화에 정말 중요했고 인류는 이것을 위해 마음 이론을 개발, 발전시켰다. 인간의 뇌는 사회성과 조직 생활을 하기 위해 진화했고 사이즈가 커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서적 공감과 달리 인지적 공감은 이 마음 이론에서 온다. 우리 사회는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아, 내가 너무너무 하고 싶은 말!)


 또 하나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여하지 않고 이익만 취하려는 무임승차자는 자동적으로 발생하게 되고, '처벌하는 신'의 개념은 이런 무임승차자를 막기 위해 생겼다는 거였다. 흥미로운 관점. 집단 내 구성원들이 규범을 상호 준수하는 것뿐 아니라 규범을 어긴 자를 처벌하기도 해야 (처벌의 비용이 높지 않다면) 강한 호혜성이 진화한다는 얘기였다. 이타적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외에도 재미있는 내용 참 많다. 뒷부분의 한국사회의 한국인의 종특 분석도 매우 재미있음. 한국사회는 '입시 지상주의' 사회이며 한국인 종특의 핵심은 '학습 열망' 이라는 거 뼈때리는 지적. ㅎㅎㅎ 과거 제도와 관료 사회가, 관료가 될 개연성을 높이는 '학습 열망 유전자'를 선택해 후대 집단에 확산시켰고, 이것이 성리학과 공진화 했다는 얘기 너무 웃겼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었던 이것이 다양성을 극도로 억압하는 결과를 낳아 지금 대한민국을 침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날카롭다.




우리는 대개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경쟁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만연해 있는 인류에 관한 가짜 뉴스라고 생각한다. 영장류학, 심리학, 뇌과학을 비롯한 인간에 대한 모든 과학은 지상에서 가장 배려와 협력을 잘하는 종이 우리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문명을 건설한) 유일한 영장류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우리의 특출난 다정함 때문이다.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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