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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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모음집인 이 책은 사실 좀 지루한데, 위대한 소설가들이 쓴 에세이나 잡글들이 대체로 그러한 것과 같다.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고, 이 에세이집의 대부분은 그가 청춘을 보낸 나라 알제리, 그 중에서도 오랑과 티파사 두 도시와 그 인근에 집중하고 있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한 번도 발을 들여 보지 못한 나같은 독자는, 카뮈가 그토록 예찬하는 지중해의 물결, 북아프리카의 태양, 건조한 바람과 나부끼는 올리브나무 이파리들, 모랫빛 도시를 채운 열정적인 젊은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공감이 매우 어렵다. 역시 책은 아는 만큼 읽힌다.

다만 이 책을 통해 확실해진 것은 카뮈가 얼마나 유럽인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 뿌리를 둔 알베르 카뮈의 작가적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소기의 성과다. 예를 들어 아이스킬로스를 이야기하며 카뮈는,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빈약한 무의미가 아니라 수수께끼, 다시 말해 눈부시다 못해서 판독하기 어려운 어떤 의미다. (중략) 우리는 빛이 우리 등 뒤에 있고, 그 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맺은 인연들을 끊어내며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우리의 책무는 모든 단어들을 동원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 노력하는 것임을 배웠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찾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마다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젠가는 모두가 찾아와 불타오를, 숨어있는 태양의 중심에서 좀 더 가까이 맴돌 것이다. 보잘것없는 예 술가라면 작품마다 진실에서 멀어지고, 중심이 도처에 있으며, 빛도 흐트러진다. (158-159쪽)

같은 서술을 통해 그의 작가상을 명확히 한다. 요즘 독서모임마다 출몰하는 유령들 - 해석의 불가능성 운운하며 다른 사람의 해석을 막고 분위기를 망치는 자들을 보며 답답해 하다가 '발견하는 것은 무의미가 아니라 수수께끼' 라는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을 보고 사이다 마신 듯 가슴이 뻥 뚫렸다.

인간이란 이름에 걸맞는 인간들은 생의 끝에 다 다르면 이 정면대결로 돌아와 이제 곧 자기 것이라고 믿었던 몇몇 생각 따위는 부정해 버리고 스스로의 운명과 맞섰던 고대인들의 빛나던 순수와 진실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확신(35-36쪽) 하는 카뮈에게는 모호함 앞에 등을 돌리고 허무주의 쪽으로 걸어가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제한으로 사랑할 권리를 주장하는 자였다. 세계를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육체의 현존을 사랑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정신의 미덕을 믿었다. 요컨대 그는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았고 이 에세이집에는 온통 찬탄이 넘쳐나, 그의 강렬한 긍정적, 의지적 에너지에 읽는 나도 저절로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읽는 이의 피를 뜨겁게 만드는 작가이며, 어쩌면 그 뜨거움이 그가 북아프리카에서 받은 최대의 수혜인지도 모른다.이 책에서 카뮈는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 하지 않는 것이다(55쪽)' 라고 일갈하며, '아무것에도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오직 현재만을 우리에게 덤으로 주어진 유일한 진실로서 간주해야 (72쪽)'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진정한 유럽인 - 그리스를 예찬하며 인간의 가치와 세계의 아름다움을 숭상하는 자였지만, 그것이 쉽게 전쟁 전의 물질주의나 전쟁 후의 허무주의로 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아프리카의 뜨거운 피 때문이다.

세계는 아름답고, 세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없으며, 태양이 데운 돌과 우뚝 선 실편백나무에서 '옳다'는 말이 의미 있어지는 유일한 세계를(74쪽) 상상한 작가. 그는 인간과 세계 어느 한 쪽도 부정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양팔에 가득 끌어안은 작가였다. '인간은 돌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돌을 파괴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자리를 바꾸는 것 뿐이지만 사물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인간의 일이니 그것을 하는지 아무것도 안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107쪽)'는 말과 '우리는 모순을 앓고 있지만 모순을 거부해야 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응당 할 일을 해야 한다(118쪽)'는 격앙된 말에서 나는 굴러떨어지는 돌을 기어이 밀어올리려는 시지프스의 힘, 주어진 운명에 반항하는 인간으로서의 그를 본다. 그는 유럽인으로서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알제리 태생인으로서 알제리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는 모순을 가졌다. 모순은 생의 조건이었고 중요한 것은 그가 선택한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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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계영 옮김 / 레모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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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냥 잡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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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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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는데 가령 죄란 단어가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들이 삶을 거스르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삶을 거스르는 죄라는 건, 아마도 삶에 몹시 절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삶을 바라고 현생의 준엄한 위대함을 회피하는것일 테니 말이다. 그 사람들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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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 - 당신을 혼란에 빠뜨리는 마음과 행동의 모순
아르민 팔크 지음, 박여명 옮김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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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행동경제학자인 아르민 팔크의 책. 간결한 내용, 분명한 주장, 충실한 근거 등으로 짜여진 좋은 책.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 많았다. 올초에 좋은 책 많이 읽었는데 그 중 하나고 두루 추천한다.

이 책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덕적, 친사회적, 이타적 행동이란 무엇인지 탐구한다. 그리고 왜 우리는 옳다고 여기는 일들을 실행하지 못 하는지 원인을 밝히고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 책에 따르면 선함은 이기심과 상반되는 가치이며, 결국 선의 실천은 근시안적인 이기심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익을 위해 협조하는 행위이다.

팔크의 명료한 정의에 따르면, 어떤 동기를 가지고 타인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반대로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도덕적이며 이타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인간은 좋은 자아상을 갖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선을 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도,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합리화 한다. 책임이 분산 되는 집단 내에서 인간 다수는 더더욱 도덕적으로 무관심한 선택을 하며, 다른 사람이 협조하면 나도 협조한다는 호혜성의 원리에 기반해 ‘다른 사람들이 선행을 하지 않으니 나도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습관이 있다. 이른바 ‘합의의 과대평가’라고 하는 이 효과는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 세상은 정말 악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 효과를 떠올려보라. 그의 말이 사실상 세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화자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자발적 개인 정보의 제공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쪽)

‘비자발적 개인 정보 제공’에서 깔깔 웃었음. 정말 재밌는 서술이었고 나의 견해와도 100% 일치한다. 내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되기는 싫으니까 나뿐 아니라 사람은 원래 다 이기적인 존재라고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놀랍도록 잘 먹히는 이기심의 합리화 수단이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기 자신을 속인다. 작은 선행으로 잘못을 덮기도 하고, 아예 보지 못한 척 외면하기도 한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린워싱이다.) 얕은 선행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기분 좋음만을 준다.

과연 어떤 집단이 더 많이 기부했을까? 진실을 말한 집단일까, 아니면 방금 거짓을 말한 집단일까? 거짓말을 한 쪽이었다. 이 집단에서는 약 70%가 기부를 했지만, 진실을 말한 집단에서는 기부한 사람이 30%밖에 되지 않았다. 이유 있는 기부였다. 그러니까 훼손된 자아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투자였던 것이다. (61쪽)

가장 터무니없는 것은 경멸하는 내러티브다. 이것은 다른 사 람의 도덕적 청렴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현실을 모르는 원칙주의자' '사회와 동떨어진 엘리트' ‘기후 나치' '에코 파시스트' 등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이 혼란을 퍼뜨리고, 그렇기에 이들에게 반박해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중략) 적극적으로 선택하느냐 방관의 책임이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평가를 받는다. 우리의 자아상에 상처를 덜 입히는 쪽은 방관이다. 어쨌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내가 행동하지 않아도 그 일은 일어날 것이라는 위로로 자아상에 덜 손상을 입고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81-88쪽)

긍정적 자아상에 대한 집착과 인정욕구는 다양한 합리화를 낳고 선을 노력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린다. 질투심도 공감능력을 약화시키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중요한 기전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성은 호혜성의 원칙 - 우호적인 행동에 대한 보답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격의 원칙이다. 협력적인 태도를 갖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기는 조건부다. 즉 다른 사람이 얼마나 협조하는가에 따라 협조에 대한 나의 의지가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 그래서 집단에게 맡기기 보다는 개개인에게 책임을 확고하게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회적 규범 -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 협력의 체계를 망쳐놓는 사람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행동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특히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결과와 상관 없이 선한 일을 하라는 칸트의 도덕성에 손을 든다. 유익만을 생각하는 실용주의자 도덕성을 적용하면, 기후변화나 빈곤 퇴치 등의 문제에 있어 나의 행동이 최종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따라서 인간이 이기적 선택을 하기 쉽다. 하지만 원칙에 기반한 도덕성은 책임이 분산되는 환경에서도 여전히 효력이 있고, 결과와 상관 이 직접적인 책임을 자기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에 회피 전략을 사용하기 어렵다. 결과에 우선하는 도덕적 판단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규범이 될 수 있다.

‘어차피 나 아니어도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나 혼자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 필요 없을 것’ 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세상을 더욱더 나쁜 곳으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돼지들에게 뾰족한 일침을 가하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덧붙히고 싶은 것은, 많은 연구에서 증명한 바대로 지능이 높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이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팔민에 따르면 무엇이 ‘선’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이기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데도 인지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머리 나쁜 사람이 ‘바보같이’ 순진하게 사는 게 아니다. 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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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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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해나가면서 배우는 중이다. 또한 이 모든 사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심지어 에이콘 사람들에게조차도, 말을 가려가며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일찍이 남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일이라면 아예 가능하다는 상상조차 못 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반콜레 한 명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스스로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 반콜레는 크고 중요한 일들은 오로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지체 높고 권세있는 사람들이 이뤄낸다고 마음속 한구석으로 믿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그가 보기에 당연히 보잘것없고하찮다. 이 점이 왜 이상하냐면, 반콜레가 다른 면에서는 건강한 자아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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