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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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킨의 전작 ‘사라진 스푼’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원자 스파이’의 서평단을 신청했다. 594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 것은, 전작보다 더 ‘픽션적인’ 요소가 강해 - 그러나 놀랍게도 ‘논픽션’! - 읽는 재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저자 샘 킨은 서문에서, ‘원자 스파이는 바로 내가 원했던 종류의 물리학 모험 이야기’이며,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깊이 끌어당기는 힘은 바로 등장인물들에 있고’, 이들의 이야기가 통합되며 한 편의 소설에 가깝게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1930년대 후반 유럽이 두번째 세계대전의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1945년 8월 미국이 핵폭탄을 일본 본토에 떨어뜨리기까지의 10년 가까운 이야기를 다룬 ‘원자 스파이’는,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이라는 부제에서 이미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책 575쪽 참고)

1. 모 버그 :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 프린스턴과 소르본에서 공부했고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10여개 언어를 구사했다. 전쟁기에 유럽에서 스파이로 활동했다. 놀라운 언변과 타고난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괴짜.

2. 보리스 패시 : 러시아 백군 출신의 백전노장. 물불 가리지 않는 과단성의 소유자. 미 육군의 골칫거리였던 그는, 유럽 내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염탐하고 우라늄을 탈취하며 핵과학자를 체포하는 등의 ’지저분한‘ 임무를 수행하는 ’알소스 부대‘의 수장으로 파견된다.

3. 새뮤얼 가우드스밋 : 네덜란드 출신 유대인 물리학자. 미국으로 건너가 물리학 연구를 계속하였으나 성과는 미미하였다. ’알소스 부대‘의 과학 분야 책임자가 되어 유럽으로 돌아와 전쟁터를 헤매게 된다. 하이젠베르크의 오랜 친구.

4.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전설적인 독일 물리학자. 독일 원자폭탄 개발 계획 ‘우라늄 클럽’의 핵심멤버이자 알소스 부대의 핵심표적. 나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독일이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랐고 자신이 ‘유대인 물리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5.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 마리 퀴리의 사위이자 이렌 퀴리의 남편. 핵물리학의 개척자이며 1935년 이렌 퀴리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였으나 이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쟁 시기 부역자를 위장하며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6. 조 케네디 주니어 - 케네디 가의 장남. JFK의 형. 해군에서 파일럿으로 복무했다. 타고난 모험가였던 그는, 동생에 비해 전공을 올리지 못해 초조해 하다 독일의 원자폭탄 벙커를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비행기 폭탄 임무에 자원, 폭사했다.

이상 6명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샘 킨은 이렌 퀴리도 포함시켰으나, 주요 인물 전원이 남성이면 안 될 거 같아 리스트에 집어 넣은 듯 하다. 이렌 퀴리는 내향적이었고 방사능에 어릴 떄부터 노출되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학문 이외의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다.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이 책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놀랍게도 논픽션인데, 그래서 작가 샘 킨의 대단한 취재력에 경탄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당대의 많은 인물들-군인들,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범위가 실로 방대하다.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진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핵분열의 시대를 연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 그리핀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며 연합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과학 잡지 편집자 파울 로스바우트, 전쟁 패배 후 독일 우라늄 클럽을 위해 비열한 변명거리를 지어낸 카를 폰 바이츠제커 같은 인물들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는 핵심 조연들이다.

이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중수’를 둘러싼 모험 대활극이다. ‘중수’가 도대체 왜? 싶겠지만, 핵분열 반응에서는 중성자의 속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특히 핵분열이 잘 일어나는 우라늄-235는 느린 중성자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중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중수는 바로 원자로 안에서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감속재이다. 중수는 물과 똑같아 보이지만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이루어져 있고 물보다 밀도가 높다. 1940년 이 중수를 생산하는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군데, 노르웨이의 ‘노르스크 휘드로’ 라는 회사 뿐이었고 이 회사는 노르웨이의 황량한 고원에 동떨어져 있는 베모르크 발전소 - 거대한 폭포 근처의 험준한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이 곳에서 중수를 만들었다.

원자폭탄 개발에 중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독일과 연합국은 서로 이 베모르크 발전소를 손에 넣기 위해 달렸고,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이 한 발 빨랐다. 연합국 입장에서는 이 중수 생산 시설을 파괴하고 이미 생산된 중수를 탈취하지 않으면 히틀러에게 원자폭탄을 쥐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에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베모르크 발전소를 파괴하는 작전을 세우는데, 첫 작전이었던 프레시먼 작전은 영국 특공대원 30명 전원이 사망하며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연합국이 원자폭탄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 노출시키고 만다.

노르웨이 출신 장교들은 처음부터 이 프레시먼 작전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 지형을 잘 아는 자신들이야말로 이 발전소를 파괴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파괴 작전인 ‘거너사이드 작전’은 10여명의 초정예 노르웨이 군인들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침투 작전에 성공, 발전소의 중수 생산 시설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독일은 단 6주 만에 복구 작업을 마치고 오히려 작전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중수를 생산하고 만다. 이 발전소를 아예 폭격으로 날려버리고자 미국까지 뛰어들었으나 결과는 실패였고 오히려 영국과 미국의 관계만 나빠졌다. 폭격을 진두지휘한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 - 은 이로 인해, 영국과 독자적으로 첩보 활동을 통해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저지하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알소스 부대’를 창립, 두 명의 책임자로 보리스 패시와 새뮤얼 가우드스밋을 발탁한다.

이외에도 중수를 둘러싼 모험은 계속되고, 서로의 원자폭탄 개발 진척 단계를 모르는 독일과 연합국 과학자들의 암흑 속의 경쟁은 계속되며, 모 버그는 유럽에서 한량처럼 떠돌면서도 엄청난 정보를 캐치해 미국으로 송구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의 캐칭 실력을 격찬했다.) 수용소에서 부모를 잃은 가우드스밋은 황폐해진 유럽과 죽어간 사람들, 땅에 떨어진 인간의 존엄을 눈으로 확인하며 굵은 눈물을 흘린다. 조 케네디 주니어는 불필요한 작전에 목숨을 날렸다 - 연합국이 독일의 원자폭탄 벙커로 의심한 곳은 사실 위장이었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이 책에서 독자를 가장 시험대에 올리는 이 천재 물리학자는 너무나 선량하고 지적인 방법으로 나치에 부역하면서도 나는 나치 부역자가 아니고 순수하게 과학을 사랑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아름다운 논리를 - 과연 그의 명성답게 - 천재적으로 구축한다. 원자로의 아이히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 신사 과학자는, 결국 1945년 5월 독일의 별장에서 보리스 패시에게 체포되어 영국으로 보내진다.

하이젠베르크가 졸리오-퀴리처럼 위장된 부역자였다는 - 그러니까 그의 내면은 반나치주의자였고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이 지연된 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하이젠베르크가 사보타주를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일부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기는 했지만, 이 ‘원자 스파이’ 이외에도 내가 읽은 몇몇 전쟁사와 양자혁명, 원자폭탄 개발에 대한 책들을 참고하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순수한’ - 눈처럼 순수하고, 너무나 순수하여 거의 아둔하기까지 한, 뒤로 갈수록 반쯤 미쳐버린 것으로 보이는 천재 과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과학을, 자신의 이론을, 자신의 손에서 탄생하는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물리학의 현현을 사랑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조국 독일을 사랑했다. 그는 그 외의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가 손에 묻히고 싶은 것은 오직 아름다운 물리학 공식과 독일 음악가의 소나타 연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 가우드스밋의 부모를 구하지 않았고, 발키리 작전에 나선 친구들이 죽었을 때 공포에 떨었으며, 자신만 못하다고 생각했던 물리학자 쿠르드 디프너가 원자로 개발에서 앞서 나갔을 때 그의 손에서 중수를 빼앗았다. 그는 리제 마이트너를 탈출시키고 가우드스밋의 부모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디르크 코스터르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자였고, 연합국의 스파이가 되었던 과학 편집자 파울 로스바우트보다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인물이었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었으나 전쟁 후 cern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카페테리아에서 혼자 식사를 해야 했다.

흥미진진한 과학사적 전개와 매력 넘치는 인물들의 종횡무진 활약상이 멋지게 어우러진 책. 읽는 재미도 엄청나지만 한 명 한 명 인물들의 삶과 선택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혼돈의 시기, 나는 역사적 사명과 직업적 소명,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직업으로서의 의무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자문하게 되는 책이다. 샘 킨의 명성이 헛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대단한 과학+역사 논픽션이며, 물리학과 첩보물 어느 한쪽이라도, 혹은 양쪽 모두에 (나처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책이라고 추천한다. 책의 클라이막스는 1944년 12월, 취리히에서 모 버그가 하이젠베르크를 암살하려고 접근했던 순간이다. 버그는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불확정 상태에 빠졌다 - 참고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그 원리는 옳았고, 버그는 ‘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양심의 가책이라는 이름에 -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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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 -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새로운 세대 발견, 더 하이퍼리얼 보고서
이은경 지음 / 아워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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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예전에는 학교에서 경계할 정도로 학부모들의 단체 혹은 집단활동이 활발했다면, 요즘에는 단체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학급별 모임 정도는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내가 알아낸 정보를 잘 나누지 않고, 내 아이의 안전과 교육에 모든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 이슈를 중심으로 공동행동에 나섭니다. 이후 그 이슈가 해결되거나 쟁점이 사라지게 되면,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몇 차례 경험했습니다. 내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단체 활동이나 행동에 열심인 학부모들은 이제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 가정, 아이, 개인의 이익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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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노린 음모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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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유년기의 한 이정표였다. 타인의 눈물이 나 자신의 눈물보다 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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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브루 파우치 케냐 야라 AA TOP - 40ml*5ea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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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 커피 마시고 싶어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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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 - 어둠의 시간을 밝히는 인생의 도구들
미셸 오바마 지음, 이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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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임신과 출산의 경험과 동일한 궤적을 따르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완벽한 가정생활을 꿈꾸고 준비하고 계획할 수는 있지만 결국 상황에 따라 되는대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체계와 일과를 정립하고 온갖 다양한 스승으로부터 재우고 먹이고 훈육하는 데 대한 가르침을 받을 수는 있다. 집에서 지켜야 할 준칙을 만들고 신앙과 철학을 소리 높여 선언하고 동반자와 모든 것을 지겹게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개 얼마 가지 않아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해도 나의 통제력은 하찮다는 사실을, 때로는 매우 하찮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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