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 - 당신을 혼란에 빠뜨리는 마음과 행동의 모순
아르민 팔크 지음, 박여명 옮김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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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행동경제학자인 아르민 팔크의 책. 간결한 내용, 분명한 주장, 충실한 근거 등으로 짜여진 좋은 책.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 많았다. 올초에 좋은 책 많이 읽었는데 그 중 하나고 두루 추천한다.

이 책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덕적, 친사회적, 이타적 행동이란 무엇인지 탐구한다. 그리고 왜 우리는 옳다고 여기는 일들을 실행하지 못 하는지 원인을 밝히고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 책에 따르면 선함은 이기심과 상반되는 가치이며, 결국 선의 실천은 근시안적인 이기심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익을 위해 협조하는 행위이다.

팔크의 명료한 정의에 따르면, 어떤 동기를 가지고 타인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반대로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도덕적이며 이타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인간은 좋은 자아상을 갖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선을 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도,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합리화 한다. 책임이 분산 되는 집단 내에서 인간 다수는 더더욱 도덕적으로 무관심한 선택을 하며, 다른 사람이 협조하면 나도 협조한다는 호혜성의 원리에 기반해 ‘다른 사람들이 선행을 하지 않으니 나도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습관이 있다. 이른바 ‘합의의 과대평가’라고 하는 이 효과는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 세상은 정말 악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 효과를 떠올려보라. 그의 말이 사실상 세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화자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자발적 개인 정보의 제공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쪽)

‘비자발적 개인 정보 제공’에서 깔깔 웃었음. 정말 재밌는 서술이었고 나의 견해와도 100% 일치한다. 내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되기는 싫으니까 나뿐 아니라 사람은 원래 다 이기적인 존재라고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놀랍도록 잘 먹히는 이기심의 합리화 수단이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기 자신을 속인다. 작은 선행으로 잘못을 덮기도 하고, 아예 보지 못한 척 외면하기도 한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린워싱이다.) 얕은 선행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기분 좋음만을 준다.

과연 어떤 집단이 더 많이 기부했을까? 진실을 말한 집단일까, 아니면 방금 거짓을 말한 집단일까? 거짓말을 한 쪽이었다. 이 집단에서는 약 70%가 기부를 했지만, 진실을 말한 집단에서는 기부한 사람이 30%밖에 되지 않았다. 이유 있는 기부였다. 그러니까 훼손된 자아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투자였던 것이다. (61쪽)

가장 터무니없는 것은 경멸하는 내러티브다. 이것은 다른 사 람의 도덕적 청렴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현실을 모르는 원칙주의자' '사회와 동떨어진 엘리트' ‘기후 나치' '에코 파시스트' 등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이 혼란을 퍼뜨리고, 그렇기에 이들에게 반박해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중략) 적극적으로 선택하느냐 방관의 책임이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평가를 받는다. 우리의 자아상에 상처를 덜 입히는 쪽은 방관이다. 어쨌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내가 행동하지 않아도 그 일은 일어날 것이라는 위로로 자아상에 덜 손상을 입고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81-88쪽)

긍정적 자아상에 대한 집착과 인정욕구는 다양한 합리화를 낳고 선을 노력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린다. 질투심도 공감능력을 약화시키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중요한 기전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성은 호혜성의 원칙 - 우호적인 행동에 대한 보답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격의 원칙이다. 협력적인 태도를 갖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기는 조건부다. 즉 다른 사람이 얼마나 협조하는가에 따라 협조에 대한 나의 의지가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 그래서 집단에게 맡기기 보다는 개개인에게 책임을 확고하게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회적 규범 -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 협력의 체계를 망쳐놓는 사람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행동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특히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결과와 상관 없이 선한 일을 하라는 칸트의 도덕성에 손을 든다. 유익만을 생각하는 실용주의자 도덕성을 적용하면, 기후변화나 빈곤 퇴치 등의 문제에 있어 나의 행동이 최종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따라서 인간이 이기적 선택을 하기 쉽다. 하지만 원칙에 기반한 도덕성은 책임이 분산되는 환경에서도 여전히 효력이 있고, 결과와 상관 이 직접적인 책임을 자기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에 회피 전략을 사용하기 어렵다. 결과에 우선하는 도덕적 판단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규범이 될 수 있다.

‘어차피 나 아니어도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나 혼자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 필요 없을 것’ 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세상을 더욱더 나쁜 곳으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돼지들에게 뾰족한 일침을 가하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덧붙히고 싶은 것은, 많은 연구에서 증명한 바대로 지능이 높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이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팔민에 따르면 무엇이 ‘선’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이기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데도 인지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머리 나쁜 사람이 ‘바보같이’ 순진하게 사는 게 아니다. 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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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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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언어
김겨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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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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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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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웃음은 나쁜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녀는결국 투명인간처럼 눈에 띄지 않는 능력을 키워나갔고, 따라서 아무런 소동도 없이, 나간다는 말도 없이, 그렇게 하기로 이미 정해져 있는 듯이 조용히 사라졌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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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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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람들은 다양한 채도의 베이지색과 갈색과 크림색과 불그레한 황갈색 피부를 지니고 있고, 아무리 백인이라 불린다 해도 세상에 밀가루와 소금물로 반죽한 것처럼 새하얀 색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았다. 그렇기에 내가 빚어낸 사람이 진짜가 되게하려면 바닐라가 꼭 필요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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