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가족들(주로 어머니)과의 일화 속 구체적인 장면들을 묘사한다. 얼마나 영특하고 맹랑한 꼬마였는지 현웃 터지고ㅋㅋ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지 오드리 로드의 면면을 납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전 신화는 꼭 맞는 조어구나.

 

“하고 싶은 말이 가장 힘센 언어가 되어 내게서 쏟아져 나올 때면 그것들은 기억 속 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을 닮았고, 그러면 나는 지금 해야 할 모든 말의 의미를 다시금 평가해보거나, 어머니가 옛날에 했던 말의 가치를 다시금 검토하게 된다.”57 



해 질 녘, 희끄무레한 하늘빛이 침대 머리맡에 감긴 눈꺼풀처럼 꼭 닫힌 담황색 블라인드를 통과하며 초록빛이 되어 스미면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겁이 더럭 났다. … 담황색 블라인드 안으로 새어드는 땅거미의 빛깔은 내게 외로움의 색이었고 도저히 나를 떠나주지 않았다. - P79

나는 목제 캐비닛 라디오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아 <푸른 요정 책>을 무릎에 놓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라디오를 듣는 걸 좋아했는데 등을 타고 전해지는 소리의 울림이 마치 동화에 몰입해 머릿속에 펼쳐지는 장면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 같아서였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그만둘 때면 들던, 혼란스럽고 멍한 기분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트롤들이 진주로 된 보물이 묻힌 항구를 습격했다는 소린가? - P94

어머니 집에는 오류를 범할 공간이, 잘못을 저지를 공간이 없었다.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 흑인으로 자랐다. 어머니 의 내면에 있는 충족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본 뜬 대로. (…) 어머니는 백인 남성들의 혀에서, 당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인해 배운 온갖 교활하고 견제적인 방어술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이런 방어술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조금씩 죽었다. 모든 색채는 변하고 서로가 되었으며 섞이고 나뉘고 무지개와 올가미로 흘러들어갔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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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1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2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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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나의 것이고, 그 에너지를 전환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만의 것이 된다. “분노는 정보와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문장이 주는 힘. 책의 일관성이 북돋는 격려. 경전 삼아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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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모르니까 빌려 왔고 흥미롭다. 책에서 다루는 열 권 중 두번째 책 읽는 중. 근대 철학의 이분법적 인간론에 도전하는 책, 개별주체를 “관광객”으로 사유하는 <관광객의 철학>을 다룬다.

특히 슈미트, 코제브, 아렌트와 같은 20세기 사상가들은 좌우파의 입장을 막론하고 인간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현재적 쾌락에 자족하고, 노동과 소비를 왕복할 뿐인 경제적 동물로 전락해 가는 당대의 현실 상황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 그러나 이런 거부의 입장들이 지구화와 정보화가 극도로 진행된 21세기에도 여전히 타당하고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날 인문학의 영향력이 급속히 쇠퇴한 것은 20세기 인문 사상의 근간에 있는 인간 개념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 - P59

그러나 지식인과 대중을 가르고 진정성 있는 정치적 인간만을 성숙한 시민으로 간주하려는 인문학자들의 태도는 현실 정치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공공성과 정치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 - P61

문제는 글로벌리즘에 대항하여 국민 국가의 정치를 옹호하게 되면 결국 모든 논의가 내서널리즘으로, 성숙한 정치적 인간론으로 회수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한쪽에는 경제적 동물 또는 동물적 소비자를, 다른 한쪽에는 진정성 있는 정치적 인간을 배치시키는 인문학적 분할 작업은 세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보다는 이미 진부해져 버린 이분법적 도식을 관습적으로 적용하는 데 그치고 만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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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1-19 1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 재밌어보여요. 여기서 다룬 사람장소환대가 참 좋았습니다. 이건 꼭 따로 읽어보시면 좋을 책!

유수 2023-01-19 16:47   좋아요 2 | URL
못 알아들으면서도 읽으면서 짜릿했던 기억이 나요. 초판 표지가 좋았어서 신판을 못 사고 있음. 리뷰 한번 갈겨조요….

은오 2023-01-19 16:47   좋아요 2 | URL
네ㅜㅜ 그 회색 표지가 훨씬 예쁘더라고요. 전 흰색으로 갖고 있습니다. 근데 저 그거 읽은지 너무 오래돼서 못갈깁니다... 리뷰는 덮고나서 뽕이 차오르고 기억이 남아있을때 가능한것... 언젠가 재독을 한다면 갈겨보겠습니다.

유수 2023-01-19 16:57   좋아요 2 | URL
성실한 답변… 갈김요정이세요♥️

단발머리 2023-01-19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척 어려워보이는 책인데요! @@

유수 2023-01-19 16:44   좋아요 0 | URL
에이~~~~ 단발머리님~~~ 처롹 저만 어렵죠. 길 따라갈게요🥰
 

시리 허스트베트의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을 맘속으로 흠모하는 분께 추천 받고(그냥 따라 읽음) 작년에 재밌게 읽었다. 꽤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식상한 말이지만 실제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주인공을 지지하고 이해하고 한심해하고 그런 열화와 같은 읽기였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동시에 나는 이제 이 젊은 여자 심리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게 비로소 실감나서, 읽을 때 쓸쓸했다. 그렇게 격렬하게는 이제 못 살아. 안 살아. 멀어져서 다행이야. 안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독히 예민해서 웬만한 중독(차라리 약을 해..)조차 필요없고 스스로의 불안과 욕망을 다 파악하고 있는 주인공 아이리스. 책을 관통하는 이 여자의 총명함과 위태로움이 내 허기와 관음을 충족시켜 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읽다가 수치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건 아마 강요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남자애들은 그게 문제였다. 그들의 열렬한 소망은 내게 폐소공포를 유발했다. 언제나 남자들은 내게 숨결을 뿜고, 잡아당기고, 밀고, 심지어 내가 자기네한테 줄 수 있다고 믿는, 무슨 수수께끼 같은 은총을 달라고 애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게는 사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게 없었다. (..) 남자들 잘못은 아니었다. 왜곡은 욕망의 일환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걸 바꾼다.”


관계에 관한 한 온갖 ‘기기묘묘한 모험’(번역가의 말 인용)을 하면서 아이리스는 별 특이점이 없었던 연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은 본인 얘기 아닌가 싶어진다. 내내 눈가리개blindfold한 채 모든 세계를 더듬는 것처럼 사니까. 관계를 거치며 내가 깨달아온 것이 겨우 나라는 사람의 조각이었던 것처럼 외부를 조형하면 스스로의 경계선이 윤곽을 드러낸다. 아이리스는 언제나 아이리스가 원하는 걸 바꿨다. 여전히 이이가 종종 생각나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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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더 용감하지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8
앤 섹스턴 지음, 정은귀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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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의 칼들을 어쩌지 못할 때, 그래 칼춤이 낫지. 이런 칼춤이라면 그런 것 같다. 현재진행형의 고통과 분열. 알아듣겠다는 희열과 괴로움이 공존한다.
(저한테 이거 선물해주시고 알라딘 오라고 하신 분 어디 가셨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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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7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거 유수님께 선물해 주시고 알라딘 오라고 하셨던..... 그 분을 찾습니다!!!

유수 2023-01-18 12:0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이 부르시믄 오신다..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