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별 격차는 권위 격차에서 시작한다.”9
선언같은 설명. 원제가 권위 격차이고 (수없이 많겠지만) 단적으로 그걸 드러내는 일화를 예로 들며 시작하는 책. <남성 특권>도 생각난다.
















목차 같이 봐용ㅋㅋ


하지만 ‘미투 운동‘ 이후로 선진국에서 목격되는 현상은 일종의 립 서비스 페미니즘이다. - P11

무의식적 편향은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뒤를 바싹 쫓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이룬 진보에 너무나 쉽게 기뻐하면서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편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11 (…) 윤리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차별에 진지하게 반대하는 사람도 무의식적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편향은 굉장히 깊은 수준에서 무의식적으로 전달된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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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이 책을 어찌 해.


내 경험은 자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꼭 들어맞지는 않았고 자페를 둘러싼 여러 신화의 미로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신경 생물학 분야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그저 이것이 내 정체성 중 하나임을 인정해달라고 구걸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억하는 한 나는 약간은 만신창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딘가에 속한다는 건 나를 넘어서는 일 같았다. - P410

엄마에게 ‘나한테 자폐가 있다’고 말했을 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네. 나도 네 안에서 많은 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그런데 너의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더. 너는 캔으로 된 콩 통조림인데 내가 가진 캔따개로는 열 수 없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깔끔하고 선명한 비유가 아닐 수 없는 것이, 우리 엄마는 콩 통조림을 싫어한다. - P413

이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이 원래 비호감이라고 생각해버렸고 나의 욕구라는 렌즈로 세상을 보기를 포기했다. - P414

어릴 때 내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때가 많다. 그랬다면 나는 고통이 정상이며 고통을 겪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는 나 자신의 고통을 돌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탓할 사람은 없지만, 인간 퍼즐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질이 나빴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많이 아프다. - P416

이렇게 완성된 나의 작품이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 로의 위대한 작품과 비견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아 니, 나를 뭘로 보는가? 남자의 자아를 가진 남자와 비교하신다고?
내가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농담입니다. 넘어가주세요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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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도시 거대한 공원에서 아이 뒤에 태워 자전거 타고 호숫가를 돌아다녔다. 돌아오는 길 거기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아이랑 읽은 책들. <헤이즐~>은 예전에 인터넷에서 원서 표지 보고 뿅가서 나오면 꼭 봐야지 했었는데 벌써 한글 책이 나왔네. 생기넘치는 작은 마녀와 채도 높은 그림. 나무냄새, 흙냄새 물씬 나는 듯한 숲의 존재감. 아쉽게 다 못 보고 나와서 희망도서 신청했다.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 아이가 빼왔는데 읽어주다 줄줄 눈물 흘리며 울었다. 그림책 보다 내가 우는 게 자주 있는 일이라 아이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넘어가는 편인데 그 장면에서 나오는 풍습을 처음 보게 된지라 같이 잠시 쉬게 됐다. 입에 들어오는 내 눈물 맛 보며 잠긴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b맛이 따로 없네 ㅋㅋ 아이에게 제대로 소개할 기회가 없었지만 나에게도 정말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있다. 언피씨한 할머니 치맛폭에서 그야말로 깨춤추며 자랐다. 언젠가 할머니에 대해 써보고 싶다.

<나의 작은 아빠> 작가 조합도 그렇고 안 살 수 없는. 그런데 다비드 칼리 돌봄하면서 그렇게 다작했단 말이야.. 얼마전에 데이비드 스몰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했지만 어떤 창작물은 그런 깊이, 정확히 말하면 따뜻함의 깊이를 품을 수 밖에 없나 보다. 나이젤 베인스의 <엄마, 가라앉지 마> 봤을 때 남성 작가들의 간병기가 더 나와주었으면 했던 것도 생각나고. 처음엔 갸우뚱했던 제목 <나의 작은 아빠>, 작은 나의 아빠보다 적절한 번역이구나 읽으면서 설득되었다. 더욱이 그림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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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1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헤이즐 저 책 뭐죠? 저 살래요!! >.<

유수 2023-04-10 22:0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피드가 다 화사해지네요. 다락방님도 고고 💚

서곡 2023-04-10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수선화가 예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유수 2023-04-10 21: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곡님! 댓글은 잘 못남겼는데 늘 글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서곡 2023-04-10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러고 보니 저도 첫 댓글인데 인사도 없이...ㅋ 위에 안녕하세요 넣어 수정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유수 2023-04-10 21:33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오며가며 계속 뵈어요 ㅎㅎㅎ
 


골프 묘사ㄲㄲㄲㄲㄲㄲㅋㅋㅋ



이 사실을 바깥세상에 말하고 인정하면과연 앞으로 안전할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 이전 해에 동성애가 비범죄화되었다지만 아직 어린 내가 봐도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 마음까지 마법처럼 바뀔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데 웨스턴은 실은 나에게 안전한 장소에서, 70세 이하의 첫 성인 친구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기회를 선물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선물을 받지 않았다.
웨스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2학기 말에 끝났고 그는 유타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그는 호바트에서 의미있는방식으로 내가 애착을 갖고 삶을 공유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생활 리듬을 읽는 법만큼은 기꺼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가 떠났을 때 심장이 조이듯 아파왔다. 그래도 한가지 사실 때문에 괜찮았는데 웨스턴 역시 나와의 이별을 슬퍼한다는 거였다.
이는 분명 내가 원했던 아름다운 통과의례였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으니, 그때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평범한 상황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 P291

내 골프 스코어는 전혀 향상되지 않았고 그저 골프라는 게임이 얼마나 끔찍한지만을 끔찍이도많이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십대 여자애한테는 특히나 끔찍했다. 만약 당신의 딸이 주제 파악을 하게 만들고 싶다면 이 멋진 게임의 세계에 입성시키기를 강력추천한다. 기본만 압축해서 말하자면 골프는 독보적 기술, 엘리트주의, 백인우월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고상한 걸음걸이에 요약되어 있는 스포츠로, 나 역시초년에 인생의 쓰디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을 감사하게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얻은 교훈은 그럭저럭 준수한 능력만 있는 여자라면 인생이 좆 같다는 것, 더욱이 뚱뚱하고 가난한 여자애라면 완전 좆 같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이 교훈을 정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었고 골프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존중하지 않는 스포츠라는 건 이미 충분한 직접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스미스턴 골프 클럽에서 여성은 정회원 가입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준회원‘으로 주중에만, 아니면아침 일찍, 남자들의 대회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티오프를 할수 있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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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07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해나 개즈비 책이 나왔군요! 일전에 테드 강연 아주 인상깊게 봤었는데, 이 책 사야겠어요. 불끈!!
땡투는 유수 님께~

유수 2023-04-07 15:18   좋아요 0 | URL
오오 땡투 첨받아보는 거 같아요. 이책 왜 이렇게 웃기고 아픈지ㅋㅋㅋㅋ 그런 책 너무 좋아해서 ㅋㅋㅋㅋ저는 그 테드 강연을 찾아보러 가겠습니다!!

다락방 2023-04-07 15:30   좋아요 1 | URL
테드 강연이 아니라 넷플 다큐였나봐요, 유수 님.

https://www.netflix.com/kr/title/80233611

유수 2023-04-07 15:32   좋아요 0 | URL
아 신기 ㅋㅋ 저도 그 스탠드업코미디 보고 알게 됐지만 이건 테드 강연아니야?! 하면서 봤거든요 ㅎㅎㅎ
 


안녕하셨어요.


지난번에 바늘땀 어떻게 읽었냐고 물어보셔서 대답하고 싶었어요. 소용돌이쳤던 감정을 잘 정리해 이야기드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메일이 늦어졌네요. 이해해주시겠죠ㅎㅎ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저에게는 어떻게 읽었다고 말하기가, 말을 꺼내기가 힘든 책이네요. 이번엔 꼭 읽어보자고, 진작에 사둔 책을 손에 집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처음 폈을 땐 보다가 좀 덮어둬야 했고 지난 후에 다시 읽었어요. 읽으면서 역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느끼는 여러가지 공포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피해자 본인이 다시 가해자가 되어버리게 될 것 같다는 자기저주가 아닐까요. 다음으로는, 그 기억이 내 예상보다 훨씬 생생하다는 점. 불쑥,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는 사실이에요. 트리거 워닝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것들이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된 제 삶을 많이 힘들게 하는 요소였어요.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한 채 (제가 자처한) 고립무원에서 육아한다는 것, 양육 파트너의 의식과 균형감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무리였다는 걸, 느리게 깨달아야 했던 몇년이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폭력은 개인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이다. 폭력당한 사람은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고통(trauma)의 생존자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는 것을 경험한다. 남편의 폭력을 기억하고 있는 여성의 몸은 주체의 의지대로 이동하지 못한다.”223, <아주 친밀한 폭력>


가끔 경악할 만할 범죄 기사나 뉴스를 보고 그런 반응들 하잖아요. “어떻게 그런 일을, 도대체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겠는 그런 짓이 일어나는 세계가 분명히 있는데, 사실은 거기 발을 들이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정작 그들이야말로 이전 상황(인두겁의 세계)으로는 도무지 돌아갈 방도가 없는 것이겠지요. 특히 살아남은 피해자가 트라우마에 압사당하지 않으려면 그걸 이고지고 살아갈 방편을 모색해야 하고요. 데이비드 스몰의 이 책이 그 지난한 모색의 결과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몸에 가해진 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다른 종류의 고통과 다르게 대상이 없는 공포(objectless fear)다. 남편의 폭력, 그로 인한 고통과 공포가 몸의 내부(body in pain)에 있기 때문이다. 배고픔, 욕망,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와 같은 고통은 ‘무엇 무엇에 대한 고통’으로서 고통의 대상이 몸 밖에 있다. 즉, 고통의 원인이 되는 고통의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으로 인한 공포는 대상이 없다. 제거할 수 없는 몸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고통인 것이다.
몸이 고통의 기억 속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탈출하더라도 공포는 지속된다. 두려움에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225, 같은 책


쓰다 보니 바늘땀이 완벽한 제목이네요. objectless pain에서 body in pain으로, 수술이 끝나고 병은 치료가 되어도 스티치는 계속 남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소름끼치면서도 섬세하게 수술자국을 구현했을까요. 그걸 그리려고 거울도 자세히 봤을까요. 다른 이미지에서 참고도, 연습도, 많이 했겠죠. 그렇게 많이 보고 그리다(매달리다) 보면 처음의 강렬한 감정을 스스로 좀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저는 그런 단계에 가지 못했지만 그 집요함만은 진정으로 이해해요. 

데이비드 스몰은 종결을 맺더군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제게는 영웅서사예요. 악몽을 자세히 그려내며 “나는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힘주어 얘기했던 마지막 부분이 그래서 크게 다가오고 한편으로는 생존보고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간 봤던 어떤 이야기보다 해피엔딩이고요. 부러웠어요. 


보셨겠지만 스몰이 그린 작가 유년시절의 어른들 얼굴에 다 그림자가 져 있는 거예요. 웃는 표정이든 무서운 표정이든 얼굴 가운데가 어두워요. 조명은 위에 있고, 이 어린이는 키가 작은데다(때로는 누워 있고), 어른들은 그 공간의 빛을 등지고 이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말하니까요. 당연히 음영이 지겠죠. 아이에게 화낼 때, 화나는 감정을 누르더라도 아이를 보는 내 얼굴이 얼마나 굳어있을까, 무서워 보일까, 그전부터 자책해왔는데 말이죠. 하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바늘땀을 결국 그려낸 스몰처럼 언젠가는 저도 “나는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할 그 순간을 상상하겠습니다.


오늘 메일이 너무 무거운 내용이었을까 걱정이 돼요. 다음에는 제가 좋아했던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거대하고 말없는 돌들 앞에서 편안했던 기억. 가끔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인간이라는 게, 작고 나약하다는 게, 내 시간도 공간도 결국 아주 조금뿐이라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던 날들에 대해서요. 그동안 안녕히 지내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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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7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