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아노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 난감했었더랬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소설 구성의 3요소 중에서 뭐하나 제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기에는 힘든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인물, 사건, 배경 무엇 하나 뚜렷한 것이 없었다. 이 소설의 시작은 어느 인물이 어떤 공간에 혼자 있다고 하면서 시작이 되는데, 그곳은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다. 좁기도 하고 넓기도 하다.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모티프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에 회귀되는 것은 죽음, 결국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자동 피아노’와 ‘자신’을 동일시 여기는 듯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타자에 의해 입력된 정보를 소리로 내뱉는 자동 피아노. 그리고 그 연주의 끝을 향해 자동 피아노는 달려간다. 그리고 그 연주의 끝은 항상 ‘죽음’뿐.
“이제야 고백건대,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의 단 한 문장을 뽑자면, 단연 켠대 이 문장을 뽑고 싶다. 아마 이 문장이 천희란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읽고 난 뒤, 『자동 피아노』가 천희란 작가의 수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희란 작가는 실제로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자살사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쩐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책의 모든 것이 그가 겪었던 죽음에 대한 강박과 집념, 생각, 욕망, 충동이 합쳐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죽음에 대하여 깊게 고찰, 고뇌해본 사람만이,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 그리고 어쩐 이유에서인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도리어 위로를 받아 버리는 나를 발견한다.
『자동 피아노』는 창비의 새로운 시리즈 소설Q의 서포터즈로서의 마지막 도서이면서 2019년에 읽는 마지막 도서, 그리고 창비에서 내는 마지막 도서이기도 하다. 여태껏 소설Q를 통해서 새로운 문학적이면서 도전적인 접근들을 볼 수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아이돌과 팬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들에 대한 2차 창작물까지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조우리 작가의 『라스트 러브』, 죽음, 고통에 대한 끝없는 독백을 이야기하는 천희란 작가의 『자동 피아노』. 여태껏 나온 이 소설들은 나에게 소설Q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렸다. 벌써부터 소설Q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