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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부모 수업 - 교육학자 할아버지가 평생의 삶으로 증명한 교육의 원칙
이해명 지음 / 청림Life / 2025년 8월
평점 :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면 가운데가 눌려 있는 '납작한 모양의 빨때'를 함께 준다. 그것을 '쉽스틱'이라고 하던데 본래 설탕이나 우유를 잘 저어 마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 모금씩 마시라는 용도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빨때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십중팔구 혀가 데겠지만 용도를 다 해보겠노라는 욕심으로 미지근한 커피를 빨아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힘을 주고 빨아도 음료는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다. 역시 앞니로 빨대 입구를 막고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답답할 때가 있다.
어느샌가 '쉽스틱'을 보니 '교육'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는 분명 중요하겠지만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일본에서 '피라미드 수박', '하트 수박'하며 다양한 수박을 생산해 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이라고 했다. 이미 다 자란 수박은 잘라내는 것 말고는 모양을 다듬을 방법이 없지만 한창 성장하고 있는 수박에 '틀'을 씌워 두면 수박이 원하는 모양으로 자란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수박은 썩어 문드러지기 전까지는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쉽스틱'을 만드는 주재료가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가공이 용이하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생산 과정에서 열을 가하면 플라스틱은 자유자재로 가공할 수 있다. 다만 그 모양이 굳어지고 열이 식으면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 쉽게 변형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러한 '적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그러한 '적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수박이 조금 단단한 외피를 갖게 되는 경우에도, 말랑거리던 플라스틱이 조금 단단히 굳어가는 과정에도 얼마든 그 모양을 변형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더 쉬운 시기가 분명하게 있으며 그 시기를 놓치면 같은 노력이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본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수학, 과학, 예술까지도 개념과 절차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교육 심리학자 '비고츠키' 또한 '사고는 언어를 통해 발달한다'고 봤는데 단어가 풍부하면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고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 더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미술, 음악, 체육도 감상 단계에서는 언어로 해설과 평가, 지시가 이뤄지고 수학이나 과학도 모두 언어를 거쳐 체계화된다. 인류가 만들어낸 체계 중 언어 없이 순수 감각만으로 교육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99%은 '선사시대'다. 언어가 없던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평생을 일궈 놓은 지식을 후대에 전수하지 못하고 죽었다. 정보가 전달되지 못했던 '사피엔스'의 문명 수준이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던 300만년이 지나고 첫 문자가 발견되기 시각한 5000년 전부터 인간의 지식은 비약적으로 누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자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을 기르는 '교육'이 아닌 셈이다. 우리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훈련 시킬 수 있지만 '교육'시킬 수는 없다. 교육은 인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언어 기반 지식 전달체계다.
그렇다면 이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글'과 '말'이다. '글'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소통'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이중 '글'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말'과 다르게 '글'은 '보관'과 '전달', '이동'이 용이하다. 고로 언제든 반복적으로 꺼내 볼 수 있고 전달할 수 있으며 가지고 다닐 수 있다.
글 중에서도 무엇이 필요한가. 동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에서도 널리 쓰이는 언어다. 이 언어 사용자가 1억명이라는 것은 '한국어'보다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이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스와힐리어'를 공부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그 언어가 '국어', '수학', '한자', '영어'라는 것에는 결코 이견이 없다.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태국어', '스페인어' 등도 배우면 좋다.
다만 우리가 '모국어'로 사회 생활을 하며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언어는 앞서 말한 4개의 언어가 최선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딸은 현재 한자와 수학, 영어 그리고 독서를 매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는 흔히 말하는 '조기교육'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 엘리트'가 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이 인간으로써 사회에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본업과 관련 없이 '글을 읽는 독자'가 됐으면 하고, 될 수 있으면 본업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됐으면 한다.
직업이야, 뭐가 되던 상관이 없다. 스티브잡스의 부모는 그의 아들이 '스마트폰'을 만들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링컨의 부모도 자식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조기교육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본래 직업이란 살면서 기회가 생기는 부분에서 현명한 판단으로 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본래 링컨은 25년동안 변호사로 살았고 말년에 4년 대통령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20년간 배우 생활을 했고, 이순신 장군은 그의 삶 대부분이 '수군 지휘관'이 아니였다. 본래 직업이란 이랬다가, 저럴 수도 있고, 저렇다가도 이럴 수 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의사를 하다가 유튜버가 되기도 하고, 축구선수를 하다가도 수필작가가 되기도 한다. 그것을 한 세대 먼저 태어난 이가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된지 벌써 8년이 다 되어간다. 어떤 의미에서 처음 겪는 다양한 '선택'들에 '설명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얼마나 나에게 '빛'과 '소금' 같은가.
살면서 아이에 대한 교육 방식이 길을 잃어 갈 때마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