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생공부 - 천하를 움직인 심리전략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나관중 원작 / PASCAL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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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일을 꽤함은 사람에게 있고 이루어짐은 하늘에 있다. 이 말은 조조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 '위서'에서 조조는 군사 행동을 앞두고 위와 같은 말을 했다.

이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진인사대천명'과 닮았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때'가 있는 법이다. '때'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기에 정확하게 그것을 맞춰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때'를 '운'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가수 '신해철'은 성공의 비법을 '운'이라고 했다. 참 가혹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대부분의 것은 시기를 알 수 없이 움직이는 '운'이라는 것에 작용된다. 고로 미래를 미리 재단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 자연스럽게 '유비'로 이입을 하게 된다. 무언가 평범하지만 비범한 인물이 점차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덕'이라는 것은 저렇게 사람을 '모종의 힘'을 통해 길러내는 구나, 하고 배우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읽었을 때, 삼국지의 첫인상은 그랬다. '유비'는 좋은 사람, '조조'는 나쁜 사람.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깨진 것은 머리가 더 성장한 이후였다. 살아보니 삶은 실제유비만큼이나 '조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녕아부천하인, 무천하인부아'

조조의 대표적인 어록 중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

그 독함을 '악'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어쩌면 어린시절부터 읽어왔던, '혹부리 영감'이나 '흥부 놀부'와 같은 '욕심을 버려라'하고 가르치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된다는 느낌으로 '조조'는 틀림없이 '벌'을 받아 마땅했다.

다만 살아가면서 '욕심'이 꼭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지나친 과욕'이 아니라면 사람에게 '욕'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조가 '관우'를 대할 때의 태도에서도 복잡한 그의 인간상이 들어난다. 그는 단순히 관우를 적군의 장수로만 보지 않았따. 인재로서의 가치를 알아보고 예를 다해 대접한다. 동시에 그가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따는 사실 또한 꿰뚫고 있다. 그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던 조조의 태도에서 냉철함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덕'을 중요시하는 '유비'의 답답함이 보이고, 시대를 읽는 통찰력을 가진 조조를 전략가, 현실주의자로의 유능함이 보이면서 '조조'를 다시 평가하게 됐다.

사실 삶에서 '유비'와 '조조' 어느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유비가 이상을 좇는 인간이라면 조조는 실리를 좇는 인간이다. 세상은 소설과 다르기에 '유비'와 같은 태도로는 버티기 어렵다. 또한 '조조'와 같은 실리만으로도 외로워진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는 말은 앞서 말한 '조조'의 인간다움과 스토아철학의 정신을 닮았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의지와 판단, 노력은 인간의 영역이지만 결과와 외부의 상황은 '하늘'의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 '조조'가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이 문장을 '유비'가 했다면 현대 우리가 받아 들이기는 꽤 어려운 수동적인 표현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다면 이 말을 한 사람이 '조조'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짓고 스스로의 영역에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삼국지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와 상황의 다른 모습들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가며 다시금 삶을 인생을 공부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어떤 이의 말에 따라, 역사서는 과거 인간들의 오답노트 같은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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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미술관 문학동네 시인선 241
류성훈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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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는 있지만 커피가 없고, 보일러는 있지만 가스가 없고, 그릇은 있는데 김치가 없고, 현재는 있지만 그 속에 우리가 없고, 삶은 있지만 내가 없는 곳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류성훈 시인의 '아직'의 일부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본질'이다.

본질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시다. 류성훈 시인의 '아직'에서 포트는 그 자체로 본질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쓰임'을 위해 창조된 도구다. 즉 '포트'는 있으나 '커피'가 없다면 그것은 본질을 잃은 사물이 된다. 본질을 잃은 사물이 가진 무의미함.

본질은 뿌리를 찾도록 하는 이정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어디서 왔고,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그것을 묻는다. 커피 포트의 본질을 따라가면 더 깊은 진리에 닿는다.

커피와 포트가 있다고 해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실 여유가 없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언가의 본질을 끊임없이 따지고 들면 결국은 '사람'. 더 깊게는 그 내면을 만난다.

어떤 생각으로 삶을 채우고 사는 사람인가. 그 본질을 다시 쫒다보면 '철학'을 만나게 된다.

예전 한 명품 의류의 원가가 공개된 적 있다. 원가를 알고 봤더니 꽤 저렴하다. 그것에 상표를 박아놓고 그토록 폭리를 취한 까닭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물음에 개인적 공감은 하지 않는다.

오렌지는 오렌지주스가 되는 순간 가격이 수 배로 치솟는다. 상표를 달고 유통 과정 몇번을 거치면 오렌지는 원가의 열배도 넘게 된다. 그렇다면 오렌지 주스는 과연 폭리를 취하고 있는가.

이런 식의 사고는 '시'나 '책'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든다. 책의 원가는 허무할 정도로 적다. 책의 가치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발생한다.

유통과정, 마케팅, 작가의 철학.

원가를 쫒아가는 이들은 '오렌지의 원가'에서 멈춘다.

'농사' 짓는 집에서 자란 '촌놈'의 입장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매번 말씀하셨다.

"'농사꾼'에게 '손해'라는 것은 없다."

농사는 '원가'를 따질 수 없는 '노동'과 '자연'에서 수익을 얻는 사업이다.

하나의 과일을 틔우기 위해 꽤 적절한 '시설'과 '관리'가 들어가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을 길러내는 것은 '사람', '땅'과 '볕', '물' 따위다. 그것의 원가는 무엇인가.

그것을 쫒아 올라간 그 상위의 어떤 것. 그것의 원가는 얼마인가.

태양의 원가는 얼마이고 그 이전에 우주를 이루는 원소들의 원가는 얼마이며, 빅뱅의 순간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는가.


우리 인간은 표피로 연약하게 포장되어 있으나 아주 단단한 과거를 쌓고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언제나 경험하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일 뿐이다. 지나간 혹은 다가 올 현재는 언제나 관념속에서나 존재하는 '상상의 산물'이다. 거기에 '과거'와 '미래'의 이름을 붙인다고 존재가 생겨나는 법은 없다.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유물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다수가 하는 거짓말, 세상이 만들어낸 착각, 누군가의 조작, 그런 것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다. 타인의 정보를 '신뢰'한다는 '관념적이고 사회적인 믿음'이 그것의 '존재'를 연약하게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즉, 태양이 원반이 아니라 '구'라는 것,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공 모양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실제 겪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증명한 더 나은 존재들의 입증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본질로 들어가면 결국 '사람'만 남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무의미하게 변한다.


'포트는 있지만 커피가 없고, 보일러는 있지만 가스가 없고, 그릇은 있는데 김치가 없고, 현재는 있지만 그 속에 우리가 없고, 삶은 있지만 내가 없는 곳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본질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으로 출발하여 사람으로 끝난다. 포트는 커피가 있어야 완성되겠지만 결국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사람이 '커피'를 알아야 하고, 마시고 싶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피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있어야 한다. 커피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은 과거의 현재로 부터 끄집어 내어야 한다. 그 과거의 기억에서 '커피'란 항상 '타인'과 함께하게 된다. '타인'의 '커피'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류성훈 시인의 '산 위의 미술관' 중 '아직'의 일부에서 쓸모와 본질이 생각났다. 시인이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의 본질이란 시인이 남겨 놓은 흔적의 의미를 찾는다기 보다 시인이 남겨 흔적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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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 개정판 미쓰다 신조의 집 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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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 되는 기온에 에어컨을 켰다가 껐다가 반복한다. 여름이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라는 표현에 맞게 '공포'나 '스릴러' 같은 문학작품들이 인기다.

흔히 '간'과 '담(쓸개)'은 '용기'을 담는 주머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쓸개가 담고 있는 '용기의 힘'을 담력이라고 한다. 쓸개가 크면 '대담하다'라고 한다. 몸안에 용기를 담는 주머니가 가득차서 펄펄 끓는 상태라면 모를까. 이것이 '쓱~'하고 빠져 나가면 '간담'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두렵가나 놀라게 되면 '용기' 주머니에서 용기를 다 써버려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동양의 지혜를 담은 말이다.

무더위가 살짝 물러가서 에어컨을 켜기에는 너무 춥고 끄기에는 더울 때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 되는 기온에 에어컨을 켰다가 껐다가 반복한다. 여름이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라는 표현에 맞게 '공포'나 '스릴러' 같은 문학작품들이 인기다.

흔히 '간'과 '담(쓸개)'은 '용기'을 담는 주머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쓸개가 담고 있는 '용기의 힘'을 담력이라고 한다. 쓸개가 크면 '대담하다'라고 한다. 몸안에 용기를 담는 주머니가 가득차서 펄펄 끓는 상태라면 모를까. 이것이 '쓱~'하고 빠져 나가면 '간담'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두렵가나 놀라게 되면 '용기' 주머니에서 용기를 다 써버려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동양의 지혜를 담은 말이다.

무더위가 살짝 물러가서 에어컨을 켜기에는 너무 춥고 끄기에는 더울 때, 딱 알맞게 우리를 서늘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문학과 같은 문화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개중 '미쓰다 신조'의 '화가'는 그런 서늘함을 채험하게 하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쓰라 신지로는 '필명'이고 작가의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꼭 그럴 때가 있는데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작품의 집중도를 해치는 경우다. 어떤 배경의 사람인지 인간적인 공감을 하고나면 그의 상상력에 대한 한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우리가 읽기에 적절한 이유는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문화적 공감을 가진 사람이 쓴 글에서도 깊은 공포를 느낄 수 있겠지만 이국적인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공포감'도 한몫한다고 본다.

미쓰다 신조는 주로 호러나 미스터리 장르를 쓰는 작가다. 어쩌다보니 그의 작품을 꽤 읽어 오고 있다. 본래 공포나 스릴러를 좋아하기도 하고 추리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어느정도 작용하는 듯 하다.

현실과 꿈, 사실과 허구. 그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며 풀어내는 이야기는 과거 '일본식 괴담'을 읽는 듯하다.

학창시절,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빨간 마스크'니 뭐니, 하는 등 일본식 괴담을 듣곤 했다. 역시나 한국과는 궤를 다르게 하는 분위기는 '미쓰다 신조'의 분위기에서 물씬 느껴진다.

단순히 '역겹고 징그러운 표현을 나열하여 불쾌감을 주는 공포'와는 다르다. 특유의 음산함을 문체에 녹여 분위기 자체를 음산하게 만들어 나간다. 거기에 독자가 추리를 하면서 따라가도록 하는 미스터리를 섞는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낯선 동네로 이사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들어오는 그곳에서 어떠한 기시감을 갖는다. 사실 그 도입부 톤과 장치가 비슷한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전에 읽었던 '미쓰다 신조'의 '흉가'와 도입 구조가 비슷하다.

두 작품 다 낯선 곳에서의 기시감과 이질감 거기서 오는 불안, 현실과 비현실의 붕괴라는 전재를 탄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쩌면 그의 '집' 시리즈를 찾아가며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딱 알맞게 우리를 서늘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문학과 같은 문화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개중 '미쓰다 신조'의 '화가'는 그런 서늘함을 채험하게 하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쓰라 신지로는 '필명'이고 작가의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꼭 그럴 때가 있는데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작품의 집중도를 해치는 경우다. 어떤 배경의 사람인지 인간적인 공감을 하고나면 그의 상상력에 대한 한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우리가 읽기에 적절한 이유는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문화적 공감을 가진 사람이 쓴 글에서도 깊은 공포를 느낄 수 있겠지만 이국적인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공포감'도 한몫한다고 본다.

미쓰다 신조는 주로 호러나 미스터리 장르를 쓰는 작가다. 어쩌다보니 그의 작품을 꽤 읽어 오고 있다. 본래 공포나 스릴러를 좋아하기도 하고 추리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어느정도 작용하는 듯 하다.

현실과 꿈, 사실과 허구. 그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며 풀어내는 이야기는 과거 '일본식 괴담'을 읽는 듯하다.

학창시절,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빨간 마스크'니 뭐니, 하는 등 일본식 괴담을 듣곤 했다. 역시나 한국과는 궤를 다르게 하는 분위기는 '미쓰다 신조'의 분위기에서 물씬 느껴진다.


단순히 '역겹고 징그러운 표현을 나열하여 불쾌감을 주는 공포'와는 다르다. 특유의 음산함을 문체에 녹여 분위기 자체를 음산하게 만들어 나간다. 거기에 독자가 추리를 하면서 따라가도록 하는 미스터리를 섞는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낯선 동네로 이사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들어오는 그곳에서 어떠한 기시감을 갖는다. 사실 그 도입부 톤과 장치가 비슷한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전에 읽었던 '미쓰다 신조'의 '흉가'와 도입 구조가 비슷하다.

두 작품 다 낯선 곳에서의 기시감과 이질감 거기서 오는 불안, 현실과 비현실의 붕괴라는 전재를 탄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쩌면 그의 '집' 시리즈를 찾아가며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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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정진영 지음 / 무블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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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과 오디오북의 차이라면 '종이책'은 '작가'가 누구인지 살피고 진입한다는 것이고 오디오북은 일단 듣고 난 뒤 '누가 쓴거야?'하고 보게 되는 것 같다.

완독 후,

'누가썼어?'하고 작가를 다시 찾아보는 일은 왕왕 있지만 감흥없는 글은 누가 썼는지도 잊혀진다.

'윌라 오디오북'에 '박정민 배우'와 '박준면 배우'가 낭독을 했단다. 박정민 배우는 '윌라'건 '밀리'건 가리지 않고 책이라면 열일하는 듯하다.

본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남다른 팬심이 스믈스믈 생기는 중이다.

박정민 배우가 낭독한 글은 꽤 듣는 것 같다. 반면 '박준면 배우'의 낭독은 처음이다. 목소리가 소설과 잘 여울리는 걸 봐서 나름 '섭외'를 참 잘했구나, 했다.


나중에 봤더니 '정진영 작가'가 '박준면 배우'의 남편이란다.

배우 님의 남편이라는

개인적으로 '정진영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지만 만족도는 100에 가깝다. 단편으로 이뤄진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씁쓸한 현실과 재미로운 장면을 담았다. 한편 한편이 흥미로워 종이책 구매 의사 99%다.

'윌라'든 '밀리'든 오디오북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량'이다. 총 분량이 몇분정도 되는가,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총 분량이 7시간 정도 된다. 보통은 2배속으로 듣곤 하지만 정말 솔직히 '박정민 배우'는 목소리가 저음이라 '안들리는 부분'이 살짝 있어서 1.5배속으로 들게 되는 것 같다.


배우 님의 연기력이나 그런 건 아니다. 누가 배우의 연기를 두배 속으로 볼 때, 대부분은 '배우'의 탓이 아닌 '듣는 이의 탓'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설은 하루에 빈틈있는 시간과 청소, 이동 시간을 유용하게 채우고 딱 떨어지는 분량이다.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고 가벼움과 무거움이 딱 중간 정도되는 다양한 이야기의 슴슴한 정도의 재미를 주는 평양냉면 같은 글이다.

'깐따삐야' 별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웅녀'의 이야기는 작품 구성 중간 중간에 들어가면서 지루함을 없애주기도 하니 구성도 알차고 좋다.

오랫만에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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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 내 안의 화를 다스리는 평정심의 철학
이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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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왜 올라오는 것일까.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아들러 철학'을 기반으로 '화'에 대해서 말한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의 실수로 물을 엎질러 옷이 젖게 된다면 화는 올라온다. 그렇다면 웨이터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화가 올라오는 것일까, 여기에 '아들러'는 답한다. 원인이 있어서 '화'가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화'가 올라왔기 때문에 원인을 끌어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들러의 관점은 전통적 관점과 다르다. 전통적 관점에서 원인은 항상 '화'보다 선행한다. 웨이터가 무를 엎질렀고, 옷이 젖는다. 불쾌한 감정이 솟아난다. 화가난다. 원인에서 결과로 점층적 방식으로 나아간다.

반면 아들러의 관점은 이렇다. 사실은 이미 화를 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그 사건을 화낼 이유로 가져 오는 것, 즉 '화가 났기 때문에' 원인을 거꾸로 찾아내는 것. 그것이 아들러의 관점이다.


이러한 사고를 아들러는 '목적론적 사고'라고 말한다.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은 원인보다 목적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나는 화를 내서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는 목적이 먼저 있고, 거기에 맞는 사건을 붙여 정당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괜찮습니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같은 사건인데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목적과 선택에 의해 '화'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들러 철학에서 '화'는 원인 때문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목적' 때문에 선택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고로 '화'라는 것은 '사건 자체' 보다는 '스스로'에 결정과 선택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진우 작가의 '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에서는 '화'에 대한 다양한 철학을 끌어온다. 개중 세네카의 스토아 철학을 통해 화를 해부한다. 세네카는 화를 가장 무익하고 파괴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화는 상대를 겨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좀 먹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들러와 세네카는 모두 '화'가 외부 사건 때문이라는 '전통적 원인론'을 부정한다. 화는 결국 스스로의 통제와 선택의 영역이다. 외부의 사건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얼마 전 유명한 명언집을 보는데 이와 같은 글이 있었다.

'시간을 낭비하지마라, 인생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화'를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네카'와 '아들러'에 따르면 그것은 통제가능한 영역에 있다.

화내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한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화에 저당 잡히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투자다.

세네카의 말처럼 화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되려 일을 더 악화시키고 지연시킨다. 그러면 '화'에 의해 우리는 인생을 저당 잡힌다. 책의 표지가 말을 하듯,

'화를 내며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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