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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에게
한종윤 지음 / 다산글방 / 2025년 7월
평점 :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실제로 '꿈일기'를 쓴다. 그는 다양한 인터뷰나 책, 에세이 등에서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면 꿈을 기록하고 그것을 '창작의 소재'로 삼는다고 말했따. 그렇게 '제3인류', '티나토노트', '죽음' 등 다양한 작품들이 꿈을 통해 영감을 얻었고 차후 더 많은 소재들이 꿈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란 '꿈'이라는 것의 속성이다.
'창작의 소재'
한 학생을 만났다. 학생은 스스로 꿈도, 잘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그탓으로 선생님께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편을 들어주자면 그것이 '나쁜가'하는 것이다. 창작 소설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 받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꿈'을 '창작의 소재'로 삼았지, 이루고저 하는 목표로 두지 않았다. 그것은 꿈이 갖는 속성이다.
꿈은 망상과 같은 것이다. 무엇이든 꾸어도 괜찮고 추상적이어도 좋으며 대단한 것을 갖고만 있어도 주변으로부터 인정 받는다. 극현실이며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어떤 '순간'과 '시점'만을 잘라내어 그려낸다.
그게 꿈에 관련된 속성이다.
길을 걸아가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걷다가 아무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인터넷 SNS에 접속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자, 과연 그 많은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 살고 있는가.
본래 꿈이란 매일 아침 새롭게 부여 받는 것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최고의 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갑자기 평범한 중학생이 꿈속에서 '파인만의 경로 적분'을 꿈에서 만날 수는 없다. 이미 현실에서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상상일 뿐이다.
'꿈을 가져라',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수만분의 1의 생존률을 가진 러시안룰렛을 이겼던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 였을지 모른다. 메스컴은 본래 '현실'보다 '꿈'을 좋아하고 '절제'보다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가.
'나'야말로 분명하게 '꿈'도 '잘하는 것'도 없다. 그러고보면 나를 알고 있거나, 내가 알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꿈'이라는 것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처럼 아주 신선한 '창작의 소재'이자 '자극제'가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다보면 꿈에서 꽤 괜찮은 방향을 보여 줄 때가 있다. 고로 그런 상황에서는 그 '망상'과 '방향'이 현실을 이끌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삶은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쪽'이 목적지라고 해서 반드시 동쪽 방향으로만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막다른 길이 나오면 뒤를 돌아 설 줄도 알아야 하고, 후진 길을 만나면 조금은 우회하여 남쪽으로 갈 수도 있어야 한다. 방향은 잊지 않되, 분명한 것은 만나는 상황에 대한 꽤 현명하고 유연한 대처다. 그리고 때로는 '꼭 동쪽인 이유가 있겠는가'하는 더 포괄적으로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한번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다. 워낙 운동에는 젬병이라 그날도 엉망으로 포지션을 지키고 있었을 때, 축구를 꽤 잘하는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공을 두었다.
조금 높게 올라간 공, 밖으로 걷어내는 공, 반대에 있는 우리 편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공.
어느날 그 친구는 말했다.
"원하는 곳에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공을 차고 그것이 '의도'였다고 강하게 주장하면 돼."
그것은 그 뒤로 약간 나의 철학 같은 것을 형성했는데, '선택자체'보다는 '받아들임'의 자세가 '좋은 선택'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다면, 일단 아무거나 고르고 기가막하게 만족하면 그것은 최고의 선택이 된다.
고집스롭게 철도 맞지 않고 때도 맞지 않는 꿈을 지속하는 것보다 언제나 유연하게 대처하며 '이것이야 말로 꿈'이었다,라고 받아드릴 수 있는 자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를 바꾸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은 80억이나 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한 목표의 의식을 가지고 꿈을 이루고 잘하는 것을 발전해 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삶에 만족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발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일론 머스크'의 꿈은 게임 개발자'였지, '우주선을 만들고 화성'으로 가는 것이 아니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초에 꿈이라고 갖고 있지 않았으며, 아인슈타인은 '음악가'가 되기를 바랐다. 팝의 여왕 마돈나는 '발레리나'가 꿈이었고 '안젤리나 졸리'는 의사가, 빌 게이츠는 '수학자나 교수'가 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롯데' 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의 꿈 또한 '기업가'가 아니라 '작가'가 꿈이었다.
그들은 과연 꿈을 이루었는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인물들 중 상당수의 책을 읽었을 때, 그들은 '꿈'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아니라 기회를 마주했을 때의 적절한 대응이 중요했다. 또한 '꿈'보다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한종윤 작가는 청소년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한다.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너희는 잘못이 없다'며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 그는 10년 넘게 청소년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무기력증이나 ADHD, 우울증, 그리고 인간관계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과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루지 못한 욕망들을 다음 세대에 전이하고 살고 있는가, 스스로도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추상적 이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현실과의 간극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있는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극에 달할 때, 삶은 패배적이고 망상적인 사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잘 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며 매일 유동적으로 바뀌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밤 일어나고 나면 잊혀질 일회성 꿈을 꾸다보면 언젠가 개중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가 '현실에 적용해 볼 법 하네'하고 가볍게 찾아올 것이다. 그럼 그것에 대해 열정을 갖고 해봐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최선의 삶을 살며 다음 꿈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